아침신문에서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CEO들의 서재 얘기인데, 사실 내용 자체는 며칠 전에 접한 것이니 관심은 그에 대한 '논평'이었다. 한편으론 개인도서관들을 갖고 있는 데다가 주로 (경영서가 아니라) 인문계열의 책들을 읽는다는 이 CEO들이 '강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론 "책 읽는 CEO들의 얘기는 그래서 가뭄의 비 소식 같은 데가 있다"란 주장에 묘한 반발심이 생겼다. CEO들도 읽는 인문학? 책이야 각자가 알아서 읽을 일 아닌가 싶고, CEO들도 인문서를 읽고서 사업의 영감을 얻으니 이런저린 핑계를 대며 독서를 게을리하는 샐러리맨들도 인문서 좀 읽으시오, 란 암묵적인 권유가 너무 속보였다(거꾸로, 인문서를 즐겨 읽던 한 CEO의 회사가 부도나면 그것도 인문서 탓일까?). 

그러다 오늘 받은 김우창 교수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생각의나무, 2007)을 펼치니 제일 첫 얘기가 작년 여름의 '페렐만 사건'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의 젊은 수학자 페렐만이 막대한 상금이 걸려 있던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었지만 상금도 거부한 채 은둔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가 당시 화제가 되었던 그 '사건'의 골자다(http://blog.aladin.co.kr/mramor/937360). 김우창 교수의 글을 읽으며 역시나 그맘때 읽은 도정일 교수의 칼럼이 생각났다. 두 칼럼을 거푸 다시 읽으며 도정일 교수가 경탄을 아끼지 않는 두 사례, 곧 '책 읽는 CEO'와 '버섯 따는 페렐만' 가운데 누가 우리의 '모델'이어야 할지 잠시 생각해본다...  

경향신문(07. 07. 26) [도정일 칼럼]CEO들의 샘 ‘서재’

미국의 각종 업계를 이끌어온 최고경영자(CEO)들은 주로 어디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고 생각할 거리를 공급받는가? ‘아이디어가 돈’이라는 말은 현대 비즈니스의 ‘황금 언어’가 되어 있다. 밥 먹을 때도 오고, 길 가다가도 얻고, 얘기하다가도 떠오르는 것이 아이디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영감처럼 아이디어도 평소에 준비되어 있는 사람의 머리에만 찾아온다. 녹슬고 무딘 안테나에는 아이디어가 걸려들지 않는다. 문제는 그 CEO들이 평소 어떻게 자기네 안테나를 섬세하고 예민한 상태로 준비해두느냐라는 것이다.

-고전 책 읽는 요즘 경영자들-

뉴욕 타임스 신문은 지난 21일자 인터넷 판에 ‘CEO들의 성공의 열쇠’에 관한 기사 한 꼭지를 내보내고 있다. 그 열쇠는 놀랍게도 ‘서재’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업계를 이끌어온 주요 CEO들의 상당수가 자기 집이나 회사 집무실에 개인 도서관 규모의 큰 서재들을 갖추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속도전 시대에, 인터넷과 전자매체로 무슨 정보이건 쉽게, 빠르게, 싸게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책으로 꽉 찬 서재라?

더 놀라운 것은 그 CEO들이 즐겨 읽는 책의 종류다. 틀림없이 경영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책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얼른 들지만, 천만에 말씀, 기자가 취재한 ‘서재’파 CEO들 중에 경영이나 비즈니스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럼 무슨 책? 시, 소설, 전기, 역사, 철학 같은 이른바 인문학 계열 책들이거나 예술서들이다. 예컨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지금도 즐겨 읽는 것은 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 미술 책, 시집이다.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마이클 모리츠가 노상 꺼내어 읽고 또 읽는 책은 티 이 로런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이다. 신용카드 사업의 아버지이자 ‘비자’ 창업자인 디 호크가 서재 탁자에 펼쳐놓고 매일 읽는 것은 12세기 페르샤 시인 오마르 카얌의 시집 ‘루바이야트’다.

티 이 로런스? 오마르 카얌? 젊은 세대들로선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름들일 것이다. 영화로 알려진 ‘아라비아의 로런스’가 바로 그 로런스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책 ‘지혜의 일곱 기둥’은 금시초문일 것이 틀림없다. 대학에서 세계문학 강의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오마르 카얌이라는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시집 ‘루바이야트’를 읽어보는 젊은이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다. 사운드 시스템 사업의 대부격인 시드니 하만은 셰익스피어, 테니슨 같은 시인들과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소설의 애독자다. 이런 작품들도 지금은 젊은 세대의 관심 대상에서는 한참 멀어진 책들이다.



CEO들은 왜 이런 책을 읽는가? 시인 경영자를 구하려 했으나 구할 수 없어 스스로 시인과 비슷해지기로 했다는 시드니 하만은 말한다. “시인들은 우리가 생각한 ‘시스템’을 생각해낸 원초적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처해있는 복잡한 환경들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꿔준다.” 또 ‘세일즈맨의 죽음’이나 ‘이방인’ 같은 작품은 일하는 삶의 품위를 정의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그 작품들의 시적 품질을 노동자 친화적 공장 환경에 들여오고 싶었다는 것이 CEO 하만의 말이다. “나는 논픽션보다는 픽션을 더 많이 읽는다. 비즈니스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앤디 그로브의 ‘헤엄쳐 건너기’인데, 그것도 비즈니스와는 관계없이 어떤 탁월한 개인의 정서적 바탕을 기술한 책이다.”

-가치는 가격이 아닌 문화에서-

모든 것에 ‘가격’을 갖다 붙이고 모든 가치들을 돈이 되는가 안 되는가의 잣대에 의한 가격체계로 바꿔놓는 것이 우리 시대다. 오늘날 문화는 ‘오락’이다.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쪼가리 뉴스가 심층적 분석과 신중한 판단들을 밀어내고, 모든 창조적 작업을 가능하게 할 가장 창조적인 지식과 통찰의 소스들이 말라죽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콜레라, 우리 시대의 문화적 위기다. 책 읽는 CEO들의 얘기는 그래서 가뭄의 비 소식 같은 데가 있다.

한겨레(06. 08. 25) [비판적상상력을위하여] 버섯 따러 간 천재 수학자

지난 22일 마드리드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회에 앞서 세계수학자연맹 회장 존 볼 경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스부르크까지 날아가 이틀씩 머물며 대회 참석을 종용한 끝인데도 그는 종내 오지 않은 것이다. 개막식에서 존 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섭섭하다. 그러나 참석하지 않은 것은 그의 결정이고 그에게 상을 주기로 한 것은 우리의 결정이다.” 그렇게 해서, 4년에 한 번 40세 미만의 젊은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큰 상 ‘필즈메달’이 그 고집스런 불참자에게 수여된다.

세계 수학계가 백 년 동안 매달렸으나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 하나를 풀어냈다 해서 신문들이 대서특필하는 통에 갑자기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그가 ‘그’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스포츠 영웅도 아닌 수학자가 세계의 눈을 끌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진귀한 뉴스다. 수학은 지금 어느 나라에서도 ‘인기 학문’이 아니다. 수학은 돈, 명성, 권력의 어느 것도 가져다주기 어려운 기초학문 분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대학 총장들조차도 “수학? 수학이 밥 먹여주나?”라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한지 10년이 넘는 나라다. 그런데 수학자가 수학으로 유명해졌다니?

따지고 보면, 그리샤(그리고리의 애칭) 페렐만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게 된 것이 꼭 그의 학문적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우주공간의 생김새에 관한 가설의 하나인 이른바 ‘푸앵카레 문제’를 풀어낸 것은 수학계의 대사건은 될 수 있을지라도 대중적 관심을 끌만한 뉴스거리는 아니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오히려 수학 외적 요소들이다. 그가 세계수학자대회의 수상 후보가 되었으면서도 종적을 감추어버려 “그리샤, 너 어디 있니?”라고 신문들이 찾아나서야 했다는 사실, 그 이전에도 그가 유럽 수학회의 어떤 상을 거부한 적이 있다는 일화, 미국 스탠포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이 교수로 모셔오고자 했는데도 그가 “싫다”며 퇴짜를 놓았다는 소식, 생김새가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 (이 괴승은 총알 여섯 발인가를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되레 저격자들에게 달려들었다는 얘기로 유명하다) 비슷하다는 형용묘사, 지난 3년간 어딘가로 꼭꼭 숨어 전자우편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인 16세 때 세계 수학올핌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은 ‘천재’라는 칭송, 이런 일화들이 말하자면 그를 뉴스의 인물이 되게 한 ‘페렐만 미스테리’의 요소들이다.


지금 이 시장시대의 눈으로 보자면 페렐만 미스테리에서 단연 압권은 천재 그리샤가 돈 알기를 뭣 같이 한다는 얘기다. 그가 풀어낸 푸앵카레 문제는 미국의 클레이연구소가 큰 상금을 걸고 지정한 ‘제3천년의 7대 난제’ 가운데 하나다. 아직 풀지 못한 그 일곱 개의 수학문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풀어내는 사람에게는 상금 1백만 불을 주겠다는 것이 ‘클레이 밀레니엄 상’의 내용이다. 그리샤는 이 상의 아주 유력한 수상 후보다. 그의 업적이 향후 2년을 더 기다리며 테스트를 견디어낸다면 그는 백만 불을 받게 된다. 그가 백만 불의 주인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수학계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행보로 보아 그가 냉큼 돈을 받아 챙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돈 백만 불을 감히 거절한다고? 백만 불이 무슨 껌 값이냐? 그리샤, 너 참 사람 놀라게 하는구나.

그렇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놀라게 하고 뭔가 생각하게 하는 것은 페렐만의 학문적 업적보다는 그의 이 괴짜 운신법이다. 그의 행보는 돈, 명예, 권력으로 사람값이 매겨지는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고 시대의 도덕률과 성공의 법칙을 넘어선다.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찾아간 존 볼 경에게 그는 “문제를 풀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상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대학들로부터의 교수직 제의만 거절한 것이 아니라 재직하고 있던 상트페테르스부르크 대학에서도 사임했다고 한다. 이런 운신은 그가 괴짜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찐이 은근히 자랑해마지 않던 ‘러시아의 정신성’이란 것의 한 자락에 연결된 어떤 삶의 원칙 혹은 가치관 때문인가?


모를 일이다. 러시아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와 박사후 과정을 밟는 동안 그를 알고 지낸 미국인 동료들은 평소의 그리샤가 ‘딴 세상 사람’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가 즐겨 추억거리로 얘기했던 것은 고향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숲에서 ‘버섯’을 찾아 돌아다닌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을 종합해보면 그의 일련의 처신법이 돌발적 행동은 아님이 분명하다. 지금도 그는 딴 세상 사람처럼 버섯 하이킹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를 만나고 온 존 볼의 보고 가운데 심상치 않은 대목이 하나 있다. “그는 수학 한다는 것에 어쩐지 실망한 것 같았다”는 보고가 그것이다. 수학 그 자체에 실망한 것인지, 아니면 수학 한다는 사람들의 ‘노는 꼴’에 정나미 떨어져 ‘수학하기’를 그만두려는 것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유럽 수학회가 상을 주려 했을 때 그가 거절한 사유를 들어보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심사위원들의 자격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수상을 거부한 이유다. 심사할 자격이 의심스러운 자들이 주는 상은 받지 않겠다--오 그랬구나, 그리샤, “차라리 버섯상이 낫지”가 그대의 메시지였구나, 잉? 그렇다면 세계수학자대회의 필즈메달을 거부한 것도 심상치 않군 그래.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그리샤 페렐만 같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위를 한다면 그가 대학에 취직이나 할 수 있을 까,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영광도 명예도 돈도 내팽개치는 사람이 한국 대학사회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그가 천재라면 우리의 교육이, 우리 대학들이, 그런 유형의 천재를 길러내고 보듬을 수 있을까. 돈 될 ‘대형연구’ 같은 것에나 목매단 대학들이 혼자 외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페렐만 스타일의 학자를 쫒아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리샤, 너는 한국에는 오지 말라. 여긴 버섯의 숲도 없다네.(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책읽는사회’ 대표)

07. 07. 26.

P.S. 생각해본 결론은 내가 CEO도, 수학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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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7-27 00:48   좋아요 0 | URL
"심사위원들의 자격을 믿지 않기 때문”거참 말되네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페렐만이 저런 이야기하니 왠지 납득이 되는군요..^^그리고 돈 이야기나와서 말인데..페렐만이 거부한것은 클레이수학연구소에서 준다는 100만달러만이 아닌걸로. 필즈메달도 만만찮은 액수의 상금을 부상으로 준다고 합니다. 페렐만은 그것도 거부한거죠..

yoonta 2007-07-27 03:44   좋아요 0 | URL
페렐만 관련글을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더군요. 위의 글도 아마 이 내용을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http://www.newyorker.com/archive/2006/08/28/060828fa_fact2?currentPage=1

로쟈 2007-07-27 08:45   좋아요 0 | URL
칼럼의 첫 내용이 필즈상 거부에 관한 것이죠.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장문의 기사까지 찾으셨네요.^^

전자인간 2007-07-27 15:32   좋아요 0 | URL
나이키 회장은 아시아인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서 아시아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나 보군요.

philocinema 2007-07-27 16: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효과적 착취.

로쟈 2007-07-27 22:44   좋아요 0 | URL
착취 당하지 않으려면 나이키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할까 봅니다...

수유 2007-07-28 21:02   좋아요 0 | URL
<지혜의 일곱기둥>은 정말 아라비아의 로렌스 의 그 T.E.로렌스가 맞죠^^ 토마스 로렌스가 오뒷세이아를 산문으로 번역도 하였다 하더군요.. 그리고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이얌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페렐만도 요즘 꽤 회자되는 물리학자이구요^^

로쟈 2007-07-28 21:26   좋아요 0 | URL
페렐만은 수학잡니다.^^

수유 2007-07-28 23:52   좋아요 0 | URL
앗!! 수학자이지요. 더 이상 수학과 관련된 연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지요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