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장자 읽기'에 이어서 '노자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보았다. 이 페이퍼는 그 리스트의 배경을 짚어주는 것인데, 교수신문의 서평과 담비의 리뷰를 관련자료로 옮겨온 것이다. 교수신문의 서평은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인 최재목 교수의 <노자>(을유문화사, 2006)에 대한 것인데, 이 책은 오늘 손에 들었지만 상당히 공을 들인 역주서로 흡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문가의 서평을 미리 읽어두기로 한다.

그리고 담비의 리뷰는 노자의 사상이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하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다루고 있는데(이와 비슷한 스케일의 쟁점으론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라는 게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재목 <노자>의 서평 필자이기도 한 조민환 교수의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예문서원, 1996) 외에 두 사상의 뿌리를 다룬 방동미 교수의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광사, 1999)도 참고삼아 읽어볼 수 있겠다.

 

교수신문(07. 02. 05) '죽간본' 최초 완역서 - 노자사상의 本意 꿰뚫어

우리가 노자사상을 유가사상과 관련지어 말할 때 일반적으로 한대 사마천(史馬遷)이 ‘사기’에서 “노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도 노자를 배척한다(世之學老者, 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노자는 유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연구가들이 ‘노자가 과연 그랬을까’ 하고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지만, 현행본 81장으로 된 ‘노자’를 보면 유가와 대척점에 선 노자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노자’ 연구 가운데 여전히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노자’라는 인물은 과연 어떤 사람이며, ‘노자’ 장의 구분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는지, 또 ‘노자’가 과연 한사람의 저작인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자신한열전(老子申韓列傳)’에서 “노자의 성은 이씨(李氏)고 이름은 이(耳)이며, 시호는 노담(老聃)이다”라 하는데, 중국고대의 위대한 사상가 중에 존칭을 나타내는 ‘자(子)’자를 붙인 경우 성이 다른 인물은 노자 한사람 뿐이다. 노자사상을 연구할 때 이미 사마천이 ‘사기’에서부터 제기한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과 관련되어 제기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1973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쓰여진 ‘노자’(일명 ‘帛書老子’)의 발굴과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나라 무덤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 경으로 추정되는 죽간(竹簡)에 쓰여진 ‘노자’(이하 ‘竹簡本老子’로 함)의 발굴은 이같은 의문점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죽간본노자’의 발굴은 무덤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을 실감케 한 발굴이었다.

‘죽간본노자’는 ‘백서노자’보다 더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서, 현행본 ‘노자’와 장·절의 순서 및 사상 내용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행해진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번역자가 노자의 ‘노’는 성이 아니고 존칭이면서, 노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 즉 ‘늙은 선생(Old master)’을 의미한다는 것, 인물로서의 노자와 책으로서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 그리고 원시유가와 원시도가는 사마천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대척점에만 서 있지만 않았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이, 기존의 노자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준 것이 바로 ‘죽간본노자’인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죽간본노자’에 대한 번역 및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이 번역서의 출간은 한국의 ‘노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역자는 유가·불가·도가 삼가사상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중국과 일본에서 행해진 ‘노자’ 관련 연구를 최대한 참조하면서 자구 하나하나에 대해 꼼꼼하게 주석하고 있다. 아울러 노자사상이 갖는 의미를 중국사상을 통관하는 입장에서 해설을 하고 있어 원형으로서의 노자사상과 그 사상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성인(聖人), 자연(自然), 사(士), 미(美), 정(精), 음(音)과 성(聲)에 대한 자구 풀이에서는 관련 자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까지 반영하면서 거의 소논문 수준의 주석을 하고 있다. 저자의 성실성과 해박한 학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노자라는 인물, 책으로서 ‘노자’, 그리고 ‘초간본노자’가 출토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여 노자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좋은 번역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어떤 책보다도 주석서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노자사상의 본의에 가깝게 번역된 이 번역서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동양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번역자의 절제된 언어와 맛깔스런 번역이 노자사상의 묘미를 잘 느끼게 해 준다. 다만 역주에서 또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지만, 현행본 ‘노자’ 19장(죽간본: ‘返也者, 道僮也’)의 ‘반(返)’자를 풀이할 때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고 한 것은 역자가 해설 부분에서 “‘반(反)’은 도의 기능적 측면을 말한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반대(反)’라는 의미보다는 ‘되돌아감(返)’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점만 거론하고자 한다.(조민환/ 춘천교대 - 동양철학)

담비(07. 03. 20) 老子는 親유가적인가 反유가적인가

1993년 중국에서 '노자' 연구자들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심한 이들은 다리 힘이 쪽 빠질만한 일이 발생했다.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노자'의 또 다른 판본이 발굴된 것이다. 이후 노자 학계는 충격과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였다.

'노자'엔 다양한 판본이 있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이 텍스트는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왕필(226~249)은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요절한 천재로서 그의 주석은 '노자'를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판으로 해석하게 된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帛書本)가 출토되었다. 학계가 깜짝 들썩였지만 왕필본과 비교해볼 때 道經과 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20년 뒤인 1993년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竹簡)가 발굴된 것이다. 학계는 뭐가 많이 다르겠냐 싶었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노자'에서 儒家를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다 빠져있어 '노자'라는 텍스트가 후대에 많이 개정, 첨가된 것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곽점본과 왕필 및 백서본(이하 합쳐서 통행본)의 내용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줄지어서 나왔다. 지난 10년간은 주로 글자를 해독하는 등 텍스트를 확정짓는 연구들이 주로 나왔다면, 근자에는해독된 내용을 바탕으로 '노자'라는 텍스트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과감한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최근 두 명의 학자가 곽점본과 통행본을 비교하는 논문을 나란히 발표해 주목을 끈다. 하나는 임헌규 강남대 교수가 학진 프로젝트로 수행해 최근 '동양고전연구' 제25집에 발표한 '노자의 무위이념은 유가의 인의를 비판하는가?'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오상무 고려대 교수가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최근 '동양철학' 제26집에 수정보완해 실은 '노자의 유가관 재론-통행본과 곽점본을 중심으로'이다.

그러나 두 학자가 곽점본을 읽고 내린 결론은 서로 상반되는 감이 있어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예상된다. 임 교수는 곽점본이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노자 판본이라고 볼 때 노자가 반유가적이라는 기존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노자는 친유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오 교수는 비록 노자 곽점본은 유가에 대해 덜 적대적이지만 유가의 통치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는 결론을 낸다. 또한 두 교수는 한자 해석 방법에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논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임 교수의 논의를 보자. 핵심은 기존 통행본의 제38장이다. 여기에 "道를 상실한 이후에 德이 있게 되었고, 덕을 상실한 이후에 仁이 있게 되었고, 인을 상실한 이후에 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상실한 이후에 禮가 강요되었다. 대저 예라는 것은 忠信이 엷어진 것이며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미리 아는 것은 도의 헛된 꽃이며 어리석음의 시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 교수는 이런 노자의 인, 의, 예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살핀다. 공자는 '논어'에서 "仁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을 실행할 때 편안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공자를 이은 맹자 또한 "仁은 인간의 편안한 집"이라고까지 천명했다. 맹자는 도처에서 인을 식물, 나무, 생장하는 곡식 등 유기체에 비유하면서 인의 실천은 유기체의 성장, 실현, 성숙과 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를 통해 볼 때 "仁이 실행하는 의지에 의해 실천된다고 주장한 노자의 주장은 잘못"이라는 게 임 교수의 견해다. 또한 義가 仁의 외표라는 점에서 의 또한 인간의 내적 본성에 말미암아 마땅히 가야하는 바른 길이지 강압적인 것은 아니었기에 노자의 유가비판은 전반적으로 오해나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죽간본에는 이 38장이 빠져있다. 여기서 임 교수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통행본에는 죽간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절들을 덧붙인 부분이 꽤 보인다. 게다가 글자를 교묘하게 바꿔서 뜻을 완전히 틀어놓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18장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경우이다.

죽간본 : 그러므로 大道가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仁義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한데 어찌 효자와 자애로운 부모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한데 어찌 올바른 신하가 있겠는가?

통행본 : 大道가 행해지지 않자 인의가 생겨났고,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고, 육친이 불화하니 효성스런 자식과 자애로운 부모가 있게 되었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죽간본에는 "故大道廢 安有仁義"라고 돼 있는데 통행본에는 "大道廢 有仁義"라고 두 글자가 빠짐으로써 뜻이 위에서 보듯 확 달라졌다. 통행본에서는 道가 仁보다 더 상위의 가치라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임 교수는 이를 이데올로기적 투쟁 때문에 개작을 통해 본문을 반유가적으로 바꾼 결과라고 해석한다.

임 교수는 이외에도 많은 부분들을 대조하여 노자의 無爲之道가 유가의 仁政과 전혀 상반되지 않고, 오히려 상호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흔히들 도가는 '도'를 자연물인 天地보다 선재하는 것으로 상정하여, 道 => 天地 => 萬物로 내려오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유가는 천지에서 만물로 내려오는 우주발생론적 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도가는 무위를 최상의 이념으로 하며, 따라서 정치 역시 무위정치를 이상으로 한다고 간주되어 왔다.

이에 비해 유가는 인을 최상의 덕목으로 하면서 인정을 정치이상으로 주장하였다. 하지만 단순한 문자상의 차이를 버리고 그 근본정신과 거시적인 체계에서 보면 비슷하다는 게 임 교수의 입장. 도가에서 道가 자연물인 천지를 넘어서는 生生하는 자연 그 자체이듯, 유가의 天 또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상무 교수의 의견은 좀 다르다. 임 교수가 도가와 유가의 유사점을 강조했다면 오 교수는 그 차별성을 여전히 강조하는 입장이다. 가장 확연한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故大道廢 安有仁義"에 대한 해석이다. 임 교수는 여기서 '安'을 의문대명사 "어찌"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 교수는 전후맥락상 볼 때 "어찌"보다는 연결조사 "이에"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이다.

오 교수는 그 근거로 이 18장이 내용상 17장을 잇고 있으며, 17장에 '安'이 명확하게 '이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安'을 '이에'로 본다면 "위대한 도사 폐기되면 이에 인과 의가 생겨난다. 가족이 화목하지 않으면 이에 효와 자가 생겨난다"로 죽간본과 통행본 사이에 변별점이 없다. 이런 견해에 대해 임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여줄 지 궁금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굳이 뜻이 다르지 않은데 왜 후대에 이 '安'자를 없애버렸는가 하는 점이다. 좀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아무튼 오 교수는 이런 입장에서 보듯 곽점본 노자 또한 유가에 대해 유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유가의 통치론에는 비판적이지만, 도덕론에는 동조적이라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짓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한다.

"노자가 仁을 끊고 義를 버려라고 말했을 때 그 청자가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주이다. 다시 말해 인과 의를 버려야 할 사람은 군주이지 백성들에게 인과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치자가 인의의 통치방법을 버릴 때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효의 마음과 행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게 노자의 본의이다."

과연 이를 보면 노자는 유가의 '仁'이라는 덕목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것을 통치술에 활용하는 '仁政'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임 교수는 '곽점본' 노자로 볼 때 노자 또한 '인정'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석한다. 과연 노자라는 텍스트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학계의 좀더 깊이있는 토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리뷰팀)

07. 07. 16.

P.S. 비전문가로서 <노자> 텍스트 비평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기 어렵고 대신에 노자 사상/철학의 '해석'의 문제에 주의를 두게 되는데, 나의 견문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강신주의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태학사, 2004)이다. 이 또한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는데, 책의 타이틀 자체가 상당히 '모던'하면서 파격적이다. 흔히 '형이상학'으로 이해되는 노자철학을 '정치철학'으로 재해석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도덕경>은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관련학계의 반응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런 '반응'을 따로 알 길이 없어서 리뷰 기사 정도만을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4. 05. 14) 군주의 통치윤리로 ‘老子’ 뒤집어 읽기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와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환기시켰던 흐름 중 하나로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노자에 대한 관심을 들 수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노자 열풍’을 지피는 데 공헌한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 외에도 국내외 수많은 연구자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텍스트 ‘노자’에 주목했으며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한 다양한 책을 끊임없이 내놓아 왔다. 이에 따라 과거에 양생술(養生術)이나 통치술, 처세술, 무(無)의 형이상학, 마음의 수양론 등으로 이해해온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나 생태철학, 페미니즘의 이론적 기초로 보는 견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노자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자 이해의 주류를 이뤄왔던 것은 중국의 보편적인 형이상학 또는 형이상학적 수양론의 결정체로 보는 견해였다. 이는 지난 2000년 가까이 노자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중국 위진 남북조시대 왕필(226~249)이라는 천재가 18세에 붙인 주석의 탓이 크다.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에 따라 일반 대중에게 ‘노자’는 무욕(無欲)의 삶을 설파한 마음의 수양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개인에게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교훈서 또는 ‘삶의 기술’을 통찰해낸 성인(聖人)의 글로 이해돼 왔던 것이다.

이에 반해 책은 개인이 아닌 ‘국가(state)’의 관점에서 ‘노자’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노자 이해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장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쟁과 살육, 주장과 논쟁으로 뜨거웠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국가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국가의 논리를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숙고한데서 ‘노자’의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다. 물론 ‘노자’라는 텍스트에서 국가라는 관점을 찾아낸 것이 저자가 처음은 아니다. 한비자(韓非子) 이래 최근까지 많은 철학자가 ‘노자’에서 국가를 읽어냈지만, 이들의 작업은 그동안 통치술로 가치폄훼돼온 현실에서 보듯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우선 20세기 후반 중국에서 새로 발견된 판본들을 통해 기존 노자 이해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모두 81개 장으로 이뤄진 ‘노자’란 텍스트는 그동안 주로 왕필이 주석을 붙인 ‘왕필의 판본’에 근거해 해석돼왔다. 그러나 1973년 중국 남부 창사(長沙) 마왕두이(馬王堆)의 무덤(기원전 168년으로 추정)에서 비단에 쓰인 2종의 ‘노자’ 백서본(帛書本)이 출토되고 다시 20년 뒤인 93년 허베이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중기 무덤에서 ‘노자’의 일부분이 들어 있는 대나무 문서(죽간·竹簡)가 발굴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결국 우리는 ‘노자’에 대한 상이한 판본을 3종류 가지게 됐는데, 도경(道經)과 덕경(德經)의 순서가 바뀌고 글자 일부분이 다른 점을 제외하면 백서본과 왕필본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반면 곽점본의 경우 백서본과 달리 유가사상에 적대적이지 않고 유(有)와 무(無)가 존재론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등 몇가지 사상적인 차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상의 두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노자’ 81장을 포괄적이고 하나의 연결된 문맥으로 독해할 것을 주장한다. 81개 장 전체를 동일한 비중으로 고려하지 않았고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도가도비항도·道可道非恒道)”와 같이 일부 몇몇 장만 핵심적인 장으로 간주해 온 것이 기존 노자 이해 의 문제점이란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노자’라는 텍스트의 핵심을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교환의 논리를 발견한데서 찾고 있다. 군주가 통치자라는 자리에 오래 있기 위해서는 세금의 대 가로 무엇인가를 피통치자들에게 주어야 하며, 만약 이 교환의 논리를 어기게 되면 군주는 결코 통치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와 가라타니 고진, 라이프니츠 등의 저작과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저자는 노자가 유가와 법가를 비판적으로 종합해 사랑과 폭력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제국의 논리를 제공했으며, 이는 한(漢)제국을 거쳐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중국적 제국의 논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히 ‘노자’에 나오는 수양론도 대상이 군주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와 함께 장자 연구자인 저자는 노장(老莊)으로 한데 묶어 이해해온 도가(道家)라는 범주가 해체돼야 한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매우 도발적으로 들리는 주장을 제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철학자
였던 노자와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철학자였던 장자를 함께 도가 또는 노장사상으로 부르는 것은 사마천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일 뿐 순자(荀子)의 저서나 ‘장자’를 정밀하게 독해하면 노자와 장자가 별개의 학풍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노자의 해석과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주장이 일반 독자들에게 당황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노자 열풍’ 속에서 노자에 덧씌워진 각종 신비한 외관을 벗겨내고 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이 음미할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최영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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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16 21:52   좋아요 0 | URL
장자에 이어 노자까지 자꾸 제 가슴에 불을 지피시는군요. 둘 다 매우 관심있고 파들어가보고싶은 매력적인 철학자입니다. 저도 겉핥기 정도의 지식 밖에는 없죠. 장자와 노자는 공부하려면 좋은 텍스트들이 참 많습니다. 지적하신 강신주씨 같은 경우 <도에 딴지걸기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도 섞어가면서 재밌게 노자와 장자를 비교하기도 하고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방화까지 하다니요!^^; <장자 & 노자>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보다 면밀한 책을 써서 중국이나 미국에 자신의 학설을 소개하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가넷 2007-07-17 00:35   좋아요 0 | URL
장자와 노자 아닌가요...^^;

로쟈 2007-07-17 00: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노자읽기 2007-09-18 22:3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일년전 쯤 노자, 곽점초간, 백서, 통행본을 완독, 비교 연구해 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그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일년의 소회라 하면, 생각보다, 현대 우리는 한문 독해 능력이 참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
임교수님과 오교수님의 논쟁이라면, 저는 오교수님의 입장입니다 .참고로 백서의 표현은 '책상, 밥상, 안석 안案'이라 했습니다. 번역해 보면 큰 도가 기울고(大道廢), 책상, 밥상피고, 안석 기대고 인, 의를 잡고 있다(案有仁義)는 것입니다 즉 오교수의 번역에서 제 번역은 더 나아간 것인데, 큰 도가 짓밟고(大道發), 편안히 인, 의를 가졌다(安又{身心}義)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기존 통행본 도덕경에, 安, 案이 없는 것 보다 더 파격적이고, 심한 비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덕경은 安, 案을 누락해서 더 순화된 표현을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가와 도가의 대립점이라면 유가 또한 무위를 주장하기도 하여 무엇보다, 무위냐, 유위냐의 대립이 아니라, 正名과, 無名이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유가는 배워서 더 잘 이름을 알고 이름에 걸맞게, 즉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자는 것이고, 도가는 억지로 끌어 올려 배워 익히지 말고, 왕도 스스로 고아, 과부, 나쁜 놈으로 부르며 외롭고 천하니, 이름을 가리지 말고, 날마다 비워, 스스로 그러한 바 대로 내 맞겨도 왕은 왕이고, 신하는 신하고, 백성 또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이를 다시 법가와 비교하자면, 법가는 刑名이라, 이름을 벌준다(?!)는 것이니, 신하가 신하 답도록, 백성이 백성 답도록 상벌을 명확히 해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저도 강신주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탁월한 관점은 아마도 무뮈무불위에서, 무불치지나, 무소불위와 같은 개념이 나와서, 통치론으로 노자가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강신주 님은 아예 노자가 곧 이러한 통치론, 심지어 파시즘적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강론하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이무불위가 나오는 장은 도덕경에서 딱 두 장인데, 첫 째는 37장에 도상망위편이고, 두 번째는 48장에 위학자일익편입니다. 그런데 48장에는 초간부터 而亡丕爲가 있는반면, 37장에 而無不爲는 현행 도덕경에서 덧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초간에는 아닐 不이 아니라 커질 丕를 쓰고 있으니, 짓길 잃고도 짓기가 커지길 잃는다는 뜻이거나, 丕가 혹 不의 필사 중 오기라면, 짓길 잃고도 짓지 않기를 잃는다는 뜻으로 행위를 잃었는데도 행위하지 못함이 없다(無弗爲; 사실 이렇게 못한다는 것이라면, 不이 아니라 弗이라 해야 합니다. )는 뜻이 아니라, 행위를 잃고 또, 행위 하지 않아야 함에서 자유롭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대게 사람은 무엇을 한사코 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한사코 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8장에서는 이는 직접 도를 말하는 술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도를 무위라 여기게 된 것은 [도덕경] 37장에서 道常無爲而無不爲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25장 도법자연 구를 덧붙여, 우리는 현재 道는 無爲自然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서 갑이나, 을은 모두 '도항무명'이라 했으니, '이무불위'라는 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초간은 예초에 道를 말한 것도 아니고, 행위의 도인 갈 행行 가운데 人을 끼워 넣은 글자,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구전에, '도 인'자라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간에선 그럼 이 행위의 도와 노자의 도가 같은 것인가? 이는 똑같은 형식으로 즉 인항무뮈와, 도항망명이라 한 장을 비교해 알 수 있는데, 결론 부터 말하면 초간은 도와 인을 같이 보지 않고, 인을 도에 못 미치는 것으로 봤다는 것입니다. 초간 12편(도덕경 32장) 망명의 도는(道恒亡名) 종놈이고(僕), 단지 점괘를 전하는 여자일 뿐이라고(唯{卜曰女}, 천지가 감히 신하삼지 못하고(天地弗敢臣), 만가지 날림들이 스스로 집안에 재물인데(萬勿將自{宀貝}) 비해, 37장에 인용된 초간에선, 행위의 도인 인은 항구히 짓기를 잃어({行人}恒亡名, 후황이 지켜지는 것임에도(侯王守之) 그래도 만가지 날림은 스스로 마음 짓고(而萬勿自{爲心}, 마음 짓고도 욕망을 갑자기 일으키니({爲心}而慾作}, 이름 잃은 깨침인 것으로써 바로 잡아지는 것({貞之以亡名之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서에서는 이제, 행위의 도인 인과 망명의 도가 구별되 쓰이지 않고, 오직 도만이 쓰이게 되었고, 그래도 백서는 이를 차마 无爲라 하지 못하고, 오직 無名이라 옮기게 되니, 이미 망명인데, 다시 망명지박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통행본처럼 다시 초간을 따라, {行人}이 이미 道라 바뀐 상황에서 무위라 하는 것 역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았으니, 통행본은 도가 늘 함이 없고, 게다가 하지 못함이 없어, 후왕이 이를 잘 지키고(侯王守之) 만물도 장자 스스로 잘 바뀌는데(萬物將自化), 바뀌다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욕망이 일어나고(化易欲作), 그러면 내가 이름 없는 통나무 인 것으로 누르는 것이라 하게 된 것입니다. 즉 통행본의 논리 속에서도 무위이무불위 한 도는 다시 무명지박의 힘을 빌어야 하는 만큼, 無所弗爲, 無弗治之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백서가 도를 차마 무위라 하지 못하고 논리적 모순이 있더라도 한사코 망명이라 한 것은 결국 도는 초간이나, 백서나 망명의 도라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위를 무불치지로 착각하여 통치술로 본 것은 법가의 오해라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사실 초간에서는 治자가 쓰인 적이 없고, 바로 잡아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以正之邦), 창을 크게 구부려서 병장을 꿰고((以{奇戈}甬兵), 기원해 섬기길 잃고서 천하를 취한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병법과, 천하를 취하는 일이 다르다 구분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천하를 천자 또는 황제가 다스리는 천하로 본다면, 어쩌면 비약일 수 있습니다. 혹 춘추전국시대 천하를 주유했던 모든 유가들이 재패하길 소망하는 바, 당대의 세계, 세상을 말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설혹 초간에서 백서로의 변화가, 혹 정치적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유독 법가적 관심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문헌적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자, 특히 전국시대 백서 노자를 법가라 보는 김홍경씨나, 강신주님의 책에는 그러한 문헌적 검토가 없는데다, 이를 테면, 한 고조본 즉 백서 을 노자를 전국시대 노자로 보는 착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게 도덕경에 꿰어 맞추어진 현행 백서 노자 번역본을 빌어 쓰다 보니, 현행 도덕경을 전국시대 노자라 우기는 사태도 비일비재하게 됩니다 . 무엇보다, 강신주님이나, 김홍경씨가 증명해야 할 것은, 노자를 통치이념으로 써서, 춘구전국시대 '파시즘'을 구가한 군주나 그러한 통치예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아다시피 현행 [도덕경]을 정리한 한 고조의 네째 아들 문제는 노자를 좋아하여 법령을 간소히 하고, 함이 없는 정치를 행하다, 비록 명을 길게 하여 제위기간은 좀 길었을 지언정, 흉노의 침입과 귀족들의 반란을 막지 못하였다는 것은 모두가 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로쟈 2007-09-18 22:33   좋아요 0 | URL
댓글로 카바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책으로 내시는 건가요?). 저야 '관전자'의 입장지만, 부엌데기님의 입론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노자읽기 2007-09-18 22:43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줄 데가 없는데요... ^_^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수천년간 그 이해가 답보 상태였던, [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제겐 정말 행복한 '삼 년'이었습니다.

2007-09-18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