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작성한다. 한달 단위로 목록을 뽑았었지만, 지난 6월에 사정이 좋지 않아 5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연장했었고, 여름이 실질적인 '독서의 계절'이라곤 하지만 책만 읽을 수 있는 계절은 아니기에 기한을 넉넉하게 잡기로 했다. '새로 나온 책'들에 대한 편애 때문에 미리 이런 리스트를 뽑는 게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여하튼 다섯 가지 주제에 따라 다섯 권의 목록을 만들어본다. 이를테면 오지선다인 셈이며 주제별로 한 권 정도씩을 읽어보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빠져나갈 구멍들도 만들어놓았다). 이런 사회적 독서의 제안 취지는 소위 '상식'을 공유하고 공통감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첫번째 주제는 지난 6월의 '후일담' 같은 것인데, 실질적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무의식은 '97년 체제'처럼 보이지만 여하튼 공식적으로 더 많이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87년 체제'이며 그 '민주화'의 열망과 절망이 연말 대선을 앞둔 올해의 화두이다. 최근에 출간된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07)은 지난봄에 나온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후마니타스, 2007)과 짝을 지어 읽어볼 만하다. 후자는 경향신문의 기획특집이었고 전자는 현재는 휴간중인 당대비평의 편집위원회가 엮은 것으로 '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이란 화두를 붙들고 있다. 다양한 필자들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지난 20년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모색해보고 있다. 우리의 사회적/정치적 현실을 되새겨보는 데 유익한 자료가 되어줄 듯하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이 창간 5주년 기념으로 기획했던 것은 문제의 진단보다는 해법이었는데, 우리시대의 명망가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을 담은 <여럿이 함께>(프레시안북, 2007)는 '부교재' 정도로 읽어봄 직하다(지면이 아닌 온라인으로도 읽어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몇년 동안 부쩍 언론 노출 빈도가 잦아진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2005)는 '한국 민주주의' 담론 유포에 도화선이 된 책이다. 넓은 의미의 '정치적인 것'이 아닌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에서 지난 20년을 회고하고 문제를 진단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한겨레출판, 2007)는 우리의 시야를 동아시아로 넓혀주는 책. 한국적으로 '행동'하기 이전에 동아시아적으로 '사고'해볼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두번째 주제는 한반도와 북미관계이다. 새로운 화제는 아니지만 일부러 이 주제의 책들을 검색해본 일은 드물었다. 최근 BDA 문제가 타결되어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와 주변국들간의 긴장관계가 일단은 해결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향한 로드맵이 앞으로 탄탄대로일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욱식의 <동맹의 덫>(삼인, 2005)의 표현을 빌면 우리에게 가로놓여 있는 건 '동맹의 덫'과 지정학적인 '지독한 역설'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주 따끈한 신간들은 아니지만 개번 맥코맥의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이카루스미디어, 2006), 브루스 커밍스 등의 <악의 축의 말명: 미국의 북한 이란 시리아 때리기>(지식의풍경, 2005), 마이크 모치주키 등의 <대타협: 북한 vs 미국, 평화를 위한 로드맵>(삼인, 2004) 등이 모두 관련서들도 눈길을 끄는 책들이다. 거기에 백낙청 교수의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2006)이 최근 국내에서 나온 책으로는 독보적이다.

소개에 따르면 "통일을 지금의 분단체제보다 국민들이 더 나은 체제에서 살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인식 하에서, 국가연합 형태의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을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는 지은이는 이른바 '6.15 시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전쟁 같은 불가피한 파국을 전제로 하는 일회성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은 어느 순간 '도둑같이' 찾아올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만큼 사전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여름 휴가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다).  

 

 

 

 

다소 무거운 주제들을 나열한 듯싶은데 스트레이트로 하나 더 보태자면 '인문학 문제' 또한 이 여름의 읽을 거리이다. '인문학 위기'는 이미 지난 2-3년간 학술 저널리즘의 최대 유행어가 되었고, 최근에는 급기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이란 것까지 발표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문학 IMF'라고도 할 만한데(생각해보면 경제파탄 10년후에 정신파탄이 수반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덕분에 인문학-인문주의-인문정신의 가치와 위상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들이 간단없이 제기되었던 건 나름대로 소득이라 할 만하다.  

최근에 한국학술협의회에서 펴낸 <인문정신과 인문학>(아카넷, 2007)은 한국 인문학의 현재를 가늠해보는 데 유익한 참조가 될 만한 글들을 다수 싣고 있다. 대담 코너에서는 김우창 교수와 최근 타계한 리처드 로티의 서신대담이 연재돼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책에 손길이 간다. 그런 대담 꼭지에서도 시사되는 바이지만 한국 인문학의 간판급 지식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이는 김우창 교수이다(가령, '김우창 vs 리처드 로티', '김우창 vs 가라타니 고진' 등등). 알려진 대로 문광훈 교수의 여러 저작들이 인문학자 김우창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김우창의 인문주의>(한길사, 2006)은 대표적이다. 내친 김에 5권으로 묶인 김우창 전집에 이 여름에 독파해볼 수도 있겠다(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더불어 이미 많은 화제를 모았던 책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6) 또한 시세에 둔감한 분들을 위해 다시금 거명해둔다. 앞서 언급한 교육부의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에 보면 "인문학은 자기와 주변의 이해를 돕고 품위 있는 삶을 유도하는 학문"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인문학을 배움으로써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얼 쇼리스의 주장을 참고한 것이다(라고 부언해놓았다). 그 정도면 '한국을 움직인 책' 후보감이다.     

인문학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은 이 여름에 통섭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최재천 교수의 '작명'이지만 어느새 입에 익숙한 단어가 돼버린 통섭은 개별 학문의 경계를 넘어 폭넓게 사유하는 것을 뜻하는데, 사실 기원으로 소급해 올라갈 수록 현재의 허다한 학문들은 몇몇 교차점과 공통의 근원에 가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찌보면 학문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회복해보자는 취지로도 들린다. 에드먼드 윌슨의 <통섭>(사이언스북스, 2005)이 소개된 이후 올해엔 아예 통섭원총서 제1권으로 <지식의 통섭>(이음, 2007)까지 출간됐다. 개인적으론 책들을 구해놓은 지는 꽤 되는데, 이번 여름에나 읽어볼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읽어도 좋겠다. 통섭 본래의 아이디어도 그러하고.    

 

 

 

 

드디어 좀 가벼운 분야로 와서 올 여름에 읽을 문학이다. 일단은 <올해의 좋은 소설>(현대문학, 2007), <올해의 좋은 시>(현대문학, 2007)을 꼽아둔다. 물론 '좋은 소설'에 선정된 작품들은 대개 문예지들에 발표되었던 중단편들이다. 장편소설들이야 독자들이 알아서 챙겨읽지만 문예지들이 거의 읽히지 않는 상황에서 아깝게 묻히게 되는 문제작/수작들이 적지 않다. 그런 작품들을 좀 챙겨두자는 취지이고 최소한 동시대 작가들이 어떤 고민거리를 안고 있으며 어떤 성취에 도달하고 있는가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고른 장편들은 동아시아 삼국의 문제작들을 꼽았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거론하는 건 새삼스럽지만 지난 1967년에 씌어진 그의 대표작 <만년원년의 풋볼>(웅진지식하우스, 2007)이 이번에 재출간됐으므로 핑계가 없지는 않다. 이전에 나온 고려원 전집판은 절판된 상태였고 나도 따로 구해두지 않았던 터라 이참에 게획을 잡은 것. 그리고 중국 소설로는 본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된 작가 위화의 최신작 <형제>(휴머니스트, 2007)이다. 3권짜리로 종횡무진 중국 현대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군상들의 삶을 대표작가의 입담을 통해서 들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올 상반기 최대 베스트셀러이자 문제작인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 2007)은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는데, 동아시아 3국의 소설을 비교해보려니 다른 작품을 얼른 떠올리기 어려웠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한번 더 읽으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여름 휴가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라면 교양과학서를 일순위로 꼽는다. 일반독자들에게 추리소설이나 SF소설에 해당하는 것이 내겐 교양과학서들인 셈인데, 지난 2-3년간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어서 스스로는 실행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밀린 책들이 많지만 이 여름에 읽을 책들도 부지런히 사두었다.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는 부제의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들 던지다>(해나무, 2007)은 국내 필자들의 책이어서 거명은 하지만 270쪽의 얄팍한 책이다. 휴가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닥날.

아미르 아젤의 <데카르트의 비밀노트>(한겨레출판, 2007), 도널 오셔의 <푸앵카레의 추측>(까치글방, 2007) 모두 수학(기하학)에 관한 책들이다. 올해가 18세기의 수학자 오일러 탄생 300주년이라고 하여 그에 관한 책을 찾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국내에는 변변한 책이 소개돼 있지 않다(오일러는 주로 러시아에서 활동한 수학자이다).

<핀치의 부리>의 저자 조더던 와이너의 <초파리의 기억>(이끌리오, 2007) 또한 소설에 못지 않은 재미와 이야기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원제는 보다 고급스럽다. <시간, 사랑, 기억>). "행동도 당연히 유전자에 적혀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마땅하다 믿고 그 증거를 찾아낸 생물학자 시모어 벤저와 그의 연구과정을 풀어낸 책. 진화학, 동물행독학, 분자생물학등 생물학의 다양한 파노라마가 한 곳에서 펼쳐진다"고. 그리고 '의사들은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란 부제의 <의학의 진실>(마티, 2007)은 교양서를 거의 읽지 않는 동생들에게 선물을 할까 생각중이다(그들은 의사이다)...

07. 07. 01.

 

 

 

 

P.S. '사회적 독서'만 늘어놓고 보니 약한 허전한 듯하여 '개인적 독서' 목록도 적어둔다. 현재 읽고 있거나 조만간 읽어볼 생각인 책들이다(주로 에세이들이다). <다른 곳을 사유하자>(푸른숲, 2007)와 <브레이크 없는 문화>(이카루스미디어, 2007)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서 소개한 바 있고, 미셀 포쉐의 <행복의 역사>(열린터, 2007)는 프랑스 역자학자의 행복을 주제로 한 대중적인 에세이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해왔던가를 돌이켜보노라면 행복에 대한 강박에서 약간은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그리고 프랑스 미술사가인 다니엘 아라스의 <디테일: 가까이에서 본 미술사를 위하여>(도서출판 숲, 2007)는 기이하게도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책이다. "이 저작은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연다. 그것은 디테일이다. 우연하게 보여졌거나 차츰차츰 발견된, 식별되고 고립되고 전체에서 분리된 디테일은 '멀리서' 성립된 것처럼 보이는 미술사의 범주들에 의문을 던진다. 프랑스의 미술사가 다니엘 아라스는 그림 속 디테일의 서로 다른 지위를 연구함으로써 또 다른 미술사를 제안한다. 그것은 붓과 시선의 실천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미술사다."란 소개가 머쓱한데, 경제력 때문에 아직 구입한 책은 아니지만 충분히 관심을 끄는 책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1902-1977)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갈라파고스, 2007)는 어제 퇴근길에 손에 든 책인데, '한 기억술사의 삶으로 본 기억의 심리학'이 부제이다. 저자인 루리야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심리학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올리버 색스의 책들에서 그의 이름이 종종 언급되면서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러시아에서는 그의 <일반심리학 강의> 등이 아직도 교재로 나오고 있다(아래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신경심리학의 기초>).

Основы нейропсихологии

책은 솔로몬 셰르셉스키라는 러시아 출신의 언론인 겸 기억술사에 관한 루리야의 임상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국역본은 영역판의 중역이지만 193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나 같은 러시아문학 전공자의 관심 또한 충분히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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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01 21:40   좋아요 0 | URL
로쟈님 페이퍼를 오면 제가 읽고프지만 부담가서 못읽고 있는 책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 책이 지니는 무게감 때문에 주제별로 줄줄이 엮어 볼 수 없는. 언제쯤이면 로쟈님 같이 독서를 할 수 있으려나...

로쟈 2007-07-01 23:55   좋아요 0 | URL
'사회적 독서'에 올려놓는 책들은 대부분 내용 자체가 '부담'스러운 책들은 아닌데요.^^; 줄줄이 읽으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될 듯하나...

동대장 2007-07-10 09:07   좋아요 0 | URL
경제적 부담에 한표 던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