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문제제기를 기화로 하여 한국 기독교와 관련된 글들을 몇 차례 옮겨오고 몇 마디 덧붙이기도 했다. 그가 출간한 <기독교 성서의 이해>(통나무, 2007)도 출간되자 마자 사두긴 했는데 아직 펼쳐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그 책에 대한 차분한 리뷰가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미리 읽어둘 만하다.

경향신문(07. 03. 24) ‘보수 교리’ 뒤엎은 ‘도발적 비판’

도올 김용옥은 최근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라는 두 권의 저서를 동시에 출간함으로써 한국 그리스도교계에 충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삼위일체와 동정녀 탄생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예수의 신성(神性)성 문제 등과 관련해 정통적인 한국 보수 신학계와 교회가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올은 “콘스탄티누스(313년) 이후의 역사는 ‘성서주의’의 본연으로부터 너무 이탈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가 아니라, 황제교화된 다른 차원의 기독교 발자취”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성서주의’는 ‘교권주의’와 대비되는 말이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도 ‘교권주의’의 산물로 파악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부정하다가 이단으로 지목된 아리우스를 황제교화된 교회의 권위로 부당하게 축출된 하나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보수적 신학자인 이국헌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니케아 신조)이며, 그 분은 완전한 인간이시다(칼케돈 신경)”라는 정통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도올은 오히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보다 반대파 아리우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정통적 삼위일체론의 교권적 해석을 거부한다.

도올은 또 “복음서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아버지(파테르)와 아들(휘오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은 예수의 자기 이해 속에서 일차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며, 가부장적 유대인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쓰였던 토속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신적 존재”라기보다는 “자비의 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버지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하고 증명하려던 일체의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올은 유일신론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한다. 예수 이전의 유대교 전통에서도 하나님은 유일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외의 다른 신들을 ‘참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서 기자들의 입장으로 보면 어떨까. 도올은 “마르시온이 구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라면서 구약성서와의 단절의 정당성을 부추기고 있다. 그의 지적대로 신약성서가 구약성서의 율법적 정신을 대치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더이상 편협한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적 하나님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창세기가 지니는 다양한 메타포와 예언서들이 외치는 정의와 공의는 시대를 막론하고 신자들에게 언제든지 효력을 발생한다.

도올이 말하는 ‘낭송문화로서의 복음서’는 여전히 문학적 효과 이상을 던져주지 못한다.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도 심청전의 문맥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청의 죽음과 연꽃에서의 부활은 “어린 도올의 통곡을 자아내는 ‘역사적 사실’이고”, 그렇게 ‘믿는’ 자에게는 감동이 크며 기쁜 소식으로서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또 다른 의미의 “역사적 사실”이 된다. 예컨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의 확충이라는 점과 그리스도 복음의 독특성이 다른 문맥 속에서 보편적 이야기로 세속화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또 동정녀 탄생을 우리나라의 시조설화인 난생설화와 비교하고, 마태가 이사야서 7장14절을 인용하여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은 그릇된 인용이라고 비판한다. “순결한 처녀로서의 마리아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난센스”라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은근히 부정하는 눈초리다.

이 책에서 도올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요한복음과 로고스 기독론’이다. 로고스는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는 ‘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과 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한다. 이러한 논리를 확대해서 도올은 로고스의 화신으로서의 아인슈타인을 언급한다. 범인이 접하기 어려운 상대성이론의 수리적 사유를 영감으로 구성해 내었는데 그것이 로고스다. 그 로고스가 아인슈타인이라는 역사적 인물로서 육화되어 나타났다. 이를 극단화시켜보면 ‘과학적 진리의 구조’를 띠고 발언되는 모든 견해는 로고스의 기능을 가지게 되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로고스의 화신이 된다. 따라서 붓다도 ‘연기(緣起)’적 사실을 말한 것 하나만으로도 로고스의 화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도올의 일부 주장은 실상 진보주의적 신학자들이 이미 개진해왔던 내용이다. 이러한 책이 만일 서양에서 발행되었다면 그다지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계몽주의 이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무수히 나왔다. 유독 한국에서 반론이 거센 까닭은 그만큼 한국 그리스도교가 보수적인 색채가 짙다는 뜻도 되겠지만 진보적인 해석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까닭도 있다.

성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열려 있는 책이기에 다양한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한 해석과 주장들을 감정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다투는 식으로 대해서는 안될 것이며, 성숙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본서의 출간을 기화로 한국 기독교계에 진보와 보수간의 건전한 대화의 신학적 풍토를 기대해 본다.(이명권|코리안아쉬람대표·종교학박사)

07. 03. 25.

P.S. 마지막 문단의 멘트, 곧 "이러한 책이 만일 서양에서 발행되었다면 그다지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계몽주의 이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무수히 나왔다." 같은 진술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식적인 주장을 상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지적/정서적 성숙이다. 그럴 때 아래와 같은 박노자의 '만감' 또한 '상식'(공통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박노자의 지적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종교문제에 대한 그의 '외부자적 시선'에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제기한 문제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지각'을 갖고 있는 걸 보면 그의 마음상태도 거의 한국인이 다 된 듯하다). 

박노자글방(07. 03. 14) 유사 성행위와 유사 신앙 행위

유럽 같으면 조금 더 대담하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한국 같으면 "이미지 클럽/대딸방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여성이 거의 없을 듯합니다. 대체로 이와 같은 일이 "부끄러운 직업"으로 인식되지요. 물론 실제로는 성매매 정도로는 아니지만 일단 성적 이미지를 상품화시키고 남성의 일방적인 만족을 전제로 하는 직업인 만큼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또 심신상의 피로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기에 별로 "자랑"스러워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도 과연 다른 직종에 비해 그렇게 "부끄럽게"만 생각해야 하나요? 솔직한 말씀으로는, 저는 "마사지 클럽 아가씨"보다 상당수의 성직자들이 훨씬 더 부끄러운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사지클럽에 오는 손님도 한 시간 동안의 "플레이"를 "사랑"으로 착각할 일이 없지만 서빙하는 여성도 굳이 "사랑" 따위를 연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 않습니까?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일시적인 만족을 주되 본격적으로 외로움과 같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대체물"이라는 것을, 양쪽에서 다 알고 솔직하게 하는 것이지요. "유사 성행위"와 남녀간의 진짜 사랑 사이의 거리란 거의 천문학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컨대 대다수의 교회에서 설교되어지는 이야기나 행해지는 행위와,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사랑"의 사이의 거리도 거의 같을 것입니다. "우리 종파"가 아닌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느니 진정한 영적 생활을 못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와, 차별과 배제가 없는 하나님의 평등한 사랑을, 사실 같은 차원에서 논하기조차 어렵지요. 그리고 만법의 연기를 깨닫고 팔정도를 통해 사생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불교의 원래 논리와, "49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의 메꿀 수 없는 갭이 벌어져 있는 것이지요. 대다수의 교회나 사찰에서 "신앙"이라고 포장하여 파는 것은, 마사지클럽에서의 "유사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진정한 신앙의 "대체품" 내지 그 수준에도 못미치는 신앙적 "짝퉁 상품"입니다.

그런데 마사지클럽 아가씨가 자신의 손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 아닌 사랑이라고 거짓말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수많은 목사님 분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전달한다"고 큰 소리를 치지 않습니까? 이 분들이 차라리 이미지클럽에 가서 거기에서 진솔함과 겸손함을 배웠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분들께서 "부자가 낙원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을 충실히 따라 가난은 몰라도 적어도 국내 도시 근로자의 한달 평균 소득인 1,600.000-1,700.000원 정도로 자신들의 소득과 소비를 조절했으면 그나마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고리가 보였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과연 많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면 지금의 교회가 "사학법"을 갖고 떠드는 대신에 아이들의 인성을 파괴하는 성적, 등수 없애기 운동 정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교회"/"사찰"이라는 제도상에 이야기되어지고 실행되어질 수 있는 "신앙"과 진정한 신앙의 차이는, 말그대로 이미지클럽과 이도령과 성춘향의 첫날밤의 차이 정도지요. 그러면서도 저 분들은 이 사실을 꾸준히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직자들이 "사회적 어른"의 대접을 받는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대딸방"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부끄러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해요. 대형 교회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성령"을 받아보고 미쳐보는 것이, 마약복용이나 알콜 중독, 인터넷상에 이효리 팬클럽하는 일 등 또 다른 종류의 "자기 물화"보다 낫지 않느냐는 반론이지요. 맞습니다. 비툴어진 사회에서 비툴어진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필요하다면 안방 극장과 술보담 교회가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 다니다가 아주 광신으로 안나가는 한에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위안"과 진정한 의미의 "신앙" 사이의 차이를 좀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안"이야 교회에서도 사찰에서도 휴게텔에서도 다 가능하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어딜 가나 뭘 하나하고 무관하게 자기 안에서의 거짓을 불태우고 자기 바깥에서의 거짓을 적어도 "거짓"이라고 정확하게 부를 수 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마음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런 민감한 문제(다 알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가 어젯밤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에서도 다루어졌다. 나는 예고편만 보았을 뿐인데, '한국인'으로서의 감각에 따르면 기독교계의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한기총에서는 이미 방송취소를 요구한 바 있다). 관련기사는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8340§ion=sc4 참조. 방송 내용의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의 뉴스엔 기사에 정리돼 있다.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 후’가 국내 대형 교회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방송한다. 이에 따라 기독교계의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뉴스 후’는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라는 제목으로 대형 교회의 세습, 부당한 부의 축적 등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24일 오후 10시50분 방송한다.

취재진에 따르면 K교회 김모 목사는 공금횡령 혐의로 지난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교단 법정은 ‘기소유예’의 면죄부를 안겼고, 김 목사는 아들을 자신의 후임자로 내세웠다. 김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부정당선자금과 당선 사례금 2억3,000여 만원과 부인 명의 별장 건축비 3억1,000만원, 미국 유학 중이던 큰 사위 생활비 2억원 등 총 30여억원의 교회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또 지난 1998년 100% S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한 기업체는 이 교회 당회장인 목사의 장남 조씨가 취임했으며 조씨는 수익 부서들을 개인소유회사로 넘기는 방법으로 2년 만에 재벌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조씨는 모두 200여 억원을 탈세하고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05년 1월 50억원의 벌금형이 확정됐음에도 벌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취재진은 밝혔다. 조씨는 ‘뉴스 후’ 취재 결과 일본 도쿄의 부자 동네에 살면서 도쿄 소재 S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또 S교회는 미래에 교회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명분으로 경기도 파주에 땅 3만평을 장로들의 명의로 집중적으로 사들였으며 이 가운데 2만여 평이 교회 소유가 아닌 조 목사 개인 소유로 드러났다고 취재진은 전했다. 취재진은 또 “매입 당시 땅값은 평당 1만원이었으나 지금은 최대 60만원까지 급등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조 목사가 교회 돈으로 자신의 부동산 자산을 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S교회 측에 제기했으나 교회 측은 토지법상 농지를 교회 재단 명의로 살 수 없어 장로들의 이름으로 매입한 뒤 조 목사 개인 소유로 바꿨다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회측 주장과 달리 농지뿐 아니라 교회 재단 명의로 소유할 수 있는 일반 땅들도 조목사 개인 소유로 바뀐 사실도 드러났다”고 설명했다.(김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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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3-25 13:37   좋아요 0 | URL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어제 본 <뉴스 후>는 한편으로는 저를 매우 부끄럽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통쾌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은 작금의 기독교 세력들이 쌓아놓은 부끄러운 신앙적 찌꺼기들과 직접 대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였고, 통쾌했다는 것은 그런 껍떼기와 같은 부분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대리적으로 비판한 것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을 의미하겠지요. 이래나 저래나 제 얼굴에 침 뱉기는 마찬가지네요. ㅠ.ㅠ

로쟈 2007-03-25 13:48   좋아요 0 | URL
기독교인시라니 뜻밖인데요.^^

yoonta 2007-03-25 17:17   좋아요 0 | URL
유대교의 유일신전통은 더 길게는 이집트의 아톤신 숭배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 황실에서 자랐다는 것은 성서에서도 나오는것이고 때문에 아톤신숭배의 영향이 유대교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이죠. 도올의 로고스기독론에 의한 구약의 폐기나 유일신적 전통의 부정은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로고스기독론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의 헬레니즘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말이죠.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인데. ㅋ

로쟈 2007-03-25 20:33   좋아요 0 | URL
그 대목에선 사실 고진의 모세론에 더 공감하는 편입니다. 구약 자체 안에도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적 계기가 혼재돼 있다는.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의견이야 다양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