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의에서 춘향전을 읽었다. 몇년 전에 마포도서관에서 강의한 적이 있고 광명에서도 읽었던 것 같다. 춘향전에 관한 연구서도 몇 권 갖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인데 그 사이에 이사를 한 탓에 제자리에 있는 책이 거의 없다. 강의 전에 겨우 한권 찾았는데(힘들여 찾은 건 아니고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읽어볼 여유까지는 없었다. 이럴 때는 강의 뒤풀이용.
지난주말 홍길동전에 대해서도 강의에서 다룬 터라 이 참에 두 대표적 고전소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홍길동전과 관련해서는 허균과의 관계를 끊어야지 비로소 다시 읽을 수 있겠다는 것과(이윤석 교수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한다) 춘향전과 관련해서는 흔히 가장 뛰어난 판본으로 간주되는 완판 84장본(열녀춘향수절가)보다 경판 30장본(춘향전)이 더 중요한 판본이라는 것 등이다.
경판본도 여러 본이 있고 또다른 이본으로 남원고사도 살펴봐야 하지만 현재로선 그렇다. 나의 추정은 춘향전의 초기 판본들이 좀더 민중적이라는 것으로 아마도 여러 설화들을 결합하여 최초의 춘향전 얼개를 만든 이가 있다면 평민이나 기녀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초기 춘향전은 완판 84장본처럼 분량이 늘어나면서 양반계급의 취향과 욕구를 반영한 중세소설로 퇴행한다. 거꾸로 경판본은 불완전하긴 해도 근대적 맹아를 보여준다.
가령 지나가는 인물 가운데 옥에 갇힌 춘향의 꿈을 해몽해주는 봉사가 경판본에서는 욕망의 주체로 그려지는 반면에(음탕하게 춘향의 다리를 더듬는다) 완판본에서는 기능적 인물에 그친다. 완판본이 더 긴 분량으로, 더 나중에 나온 판본이지만 이런 설정은 퇴행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남원고사에서 어떻게 나오나 보려하니 이윤석 교수의 주해본이 보이지 않는다. 설성경 교수의 주해본을 새로 주문했다. 춘향전 하나만 읽으려고 해도(이해해보려고 해도) 꽤 견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