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항 만남의 장소에서
나는 만날 사람이 없는 표정으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태국 여자가 핸드폰으로 나를 찍는다
나를 보고 찍은 셀카일 뿐
내국인과 외국인이 언제나 구별되는 건 아니다
쾌락독서와 내성적 여행자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나는 발터 벤야민을 손에 든다
아침에 가방에 넣을 때만 해도
대구공항까지 오게 될 줄
벤야민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력서가 그렇지 않던가
대학시절 그에게 자극을 준 책은
전공과 무관한 책들
(벤야민의 전공이 뭐였지?)
후기 로마의 미술산업이라거나
횔덜린의 시 빵과 포도주 분석 같은
대학시절 그는 여러 민족의 언어구조에
대한 강의와 후기 괴테의 언어에 대한
강의에 자극을 받는다 인생은
자극에 대한 반응인가 나는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여기까지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까지 이르렀는지
벤야민이 알지 못한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다
국제공항에 있으면서 나는
중국어와 태국어를 일지 못하고
나는 내성적인 여행자의 표정으로
벤야민의 카프카를 읽는다
막스 브로트에게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신의 머리에 떠오른 자살적 사고들이야˝
신은 고개를 바로 내저었을까
그래도 한번 떠오른 생각은 신과 함께 불멸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신의 기분이 나쁜 날일 따름이야˝
찌푸린 날이 있듯이 신도 기분 언짢은 날이 있는 것이지
신의 한번 언짢은 기분도 불멸하는 것일까
˝희망은 충분해. 다만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지˝
나는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덮는다
그래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카프카를 만나지
아무런 희망도 없을 때 카프카의 친구가 되지
카프카처럼 유쾌해지지
카프카와 함께 불멸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대구공항 만남의 장소에서 나는
잠시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