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밤,
헬스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근육 운동을 하고 있었다.
정말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운동하는 게 좋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

무아지경에 빠져,
온갖 인상을 다 쓰며 기계를 끌어 당기고 있을 때
트레이너인 루씨가 물었다.

루씨 : <까만 안경> 들어 보셨어요?
수선 : 네? 뭐라구요?
루씨 : <까만 안경> 들어 보셨냐구요?
수선 : 네? 까만 안경을 봤냐구요?

루씨가 세번째 말했을 때,
<까만 안경>이 노래 제목이란 걸 알았다.

루씨는 말했다.
"그 노래....정말 좋아요."

<까만 안경>이 어떤 노래인지 궁금했던 난
자기 전에 노트북을 켜고 maxmp3 검색창에
"까만 안경"을 쳤다.

그랬더니 글쎄...."차트 투데이"에서 1위였다.
이런.... 요즘 1위하는 노래 제목도 모르고 있었네!

며칠 전 엘레베이터를 같이 탄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애들이
"우리 과장님은 너무 고리타분해!" 하며
입을 모아 합창을 하던 생각이 났다.

요즘 나처럼 1위하는 노래도 모르고 넋 놓고 살다가는
부지불식중에 "고리타분한 과장님"이 될 것 같아 아찔했다.

심호흡을 해서 아찔한 마음을 달래고
도대체 어떤 노랜지 들어봤다.

까만 안경을 써요
아주 까만 밤인데 말이죠
앞이 보이질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울고 싶을 뿐이죠
한 여자가 떠나요
너무나 사랑했었죠
그래요 내 여자에요
내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여자
사랑해요 나도 울고 있어요 오 난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만 싶어요

미안해요 잘해주지 못한 나지만
이별까지도 사랑할거에요 행복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제발요


아....정말....진정한....신파다!!!!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만 싶어요~"
이루('이루'라는 가수도 처음 알았고, 그가 태진아의 아들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가
절규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연애란 건....사랑이란 건....
58년 개띠가 하건, 73년 소띠가 하건,
이제 수능이 한달도 남지 않은 88년생 용띠가 하건
다.....다....똑 같구나!!!

어떻게 이렇게 유행가 가사는 항상 똑 같을까?
연애 감정이란 게...누가 해도 다... 똑 같으니까...

83년생 이루가 절규하고,
79년생 근육맨 루씨가 들으며 상념에 빠지는 까.만.안.경.

문득 추석연휴 끝나고 루씨를 처음 봤을 때,
"여친은 잘 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안부 인사를 던졌을 때,
"잘 있겠죠 뭐...."
대답하던 루씨가 떠올랐다.

아...만약 헤어졌다면,
그럴 때 <까만 안경>을 듣는 그 심정이란...
그럴 때...유행가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다 절절하게 와닿는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맘이랑 똑 같지? 이거 내 노래야...

난 아직도 가끔...
술 기운을 빌려 노래방에서 <화장을 고치고>를 부를 때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쩍 팔리게~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가 하나씩 있다.
울~컥 해지는 노래가...
어쩌면 루씨에게는 <까만 안경>이 그런 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저녁 루씨는 스피닝 대회에 나간다.
직접 가서 응원해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 가득 응원을.... 멋진 루씨,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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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10-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한글날 맞이 교내백일장 주제가 '가을'로 나갔더니, 애들이 신파조 유행가 가사로 어울림직한 시에 소나기의 아류 소설 몇편이나 써내던데요?

2006-10-21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10-2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몰랐어요.

kleinsusun 2006-10-2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Briny님도 심사위원이었나요? 애들 글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중딩, 고딩들도 "신파"에 익숙하군요. 역시... 연애감정이란 나이에 관계 없는 건가봐요.ㅋㅋ

아프님, 저만 모르는 게 아니었군요. 다행...^^
 

작년 상반기에 "커피 믹스"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한참 출장도 많고 힘들 때였다.
항상 졸렸고 피곤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부팅하듯이
습관적,기계적,자동적으로 유서 깊은 정통 커피믹스
동서 "Maxim 모카 골드"를 종이컵에 털어 넣고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생수통으로 이동,
뜨거운 물을 종이컵의 반 정도까지만 따르고
"달달하게" 한 잔을 마시면 그 때서야 잠이 깨며 정신이 들었다.

커피믹스를 각성제 삼아 잠을 깨고 오전 근무를 버티면
오후 2시쯤 다시 잠이 쏟아졌고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듯이 커피믹스 한잔을 더 마셨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5시쯤 또 한잔을 마셨다.

이렇게 3~4개월이 지났을 때,
난 아기 곰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커피믹스의 열량은 정말....살인적인 거였다.
하루에 커피믹스 3개씩 마셨으니.....
커피믹스 속에 들어 있는 그 엄청난 양의 백설탕과 프림은
지구를 반바퀴 뛴다 해도 소모하기 힘든 열량이었다.

그 폐해를 알면서도,
그것도 똑똑히, 잘 알면서도,
커피믹스가 주는 강력한 각성작용 때문인지
쉽게 커피믹스를 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진한 espresso를 마셔도 안 깨는 잠이
달달한 커피믹스를 마시면 확~깨면서 일할 기분이 들곤 했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코카콜라 CF의 북극곰 같은 내 모습을 보고는
과감하게 커피믹스를 끊었다.
회의할 때 팀원 전체가 다 마셔도 마시지 않았다.
커피믹스를 마시고 잠을 깨느니
차라리 근무시간에 졸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난 커피믹스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제 사무실 도처에 누~런 커피믹스가 쌓여 있어도 눈길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처음 마신 스타벅스의 "시그니처 핫 초콜릿"이 날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
토요일에 만난 한 잡지사 기자에게
스타벅스 "시그니처 핫 초콜릿"이 "너무" 맛있다는 찬사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그 기자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왜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시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무" 맛있지만 엄청난 열량 때문에 망설여 진다고 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도 기자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한참 프로모션 중인 시그니처 핫 초콜릿 사진을 잠시 쳐다 봤다.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난
어제 스타벅스에 갔을 때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셨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정말 진한... 풍부한 dark chocolate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초콜릿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환장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그 맛을 잊지 못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이유 삼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른 난
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그것도 tall size로!

사무실에 들어와서 책상에 앉아 핫 초콜릿을 마시며 생각했다.
맛있다. (그럴 땐 행복하다!)
그런데.....중독되면 어쩌지?
이 엄청난 열량을 어떻게 감당하지?
커피믹스는 "꽁짜"지만,
한잔에 4천5백원이나 하는 "시그니처 핫 초콜릿"은?

뭔가에 중독되는 건 싶다.
하지만 벗어나는 건 어렵다.
중독된 그 무언가로부터 얻은 기쁨에 맞먹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탈출할 수 있다.

그래서...중독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시그니처 핫 초콜릿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어느 흐린 가을날의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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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9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믹스에 중독된 아기 곰.. 저를 부르셨나요?

moonnight 2006-10-1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때도 스타벅스 갔었어요. 신제품이라며 홍보를 많이 하더군요. 아직 많이 더워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긴 했지만 좀 더 추워지면 분명 하루가 멀다하고 시그니처 핫쵸코를 마시게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더군요. 중독은 싫지만 막상 중독되었을 때는 확실히 행복을 느끼게 되니, 이것 참. ^^;;;

hnine 2006-10-1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칼로리를 생각해야하는 건가요 흑 흑...그래봤자 커피인데.
저 같으면 그냥 마십니다! ^ ^

BRINY 2006-10-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안 마시지만, 저도 저 시그니처 핫초컬릿 맛나게 마셨어요~ 그 위에 얹힌 크림과의 고소한 조화라니~!!! 이 도시에 스타벅스가 없어서 다행이지 뭐여요~

클리오 2006-10-1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유슈유중임에도 하루에 꼭 한잔은 커피믹스를 마십니다. 일단, 겨우 있는 커피한잔의 여유~ 가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그나마 먹지 않음 하루종일 졸고 있거든요. ㅋ~ 핫쵸코에 중독되면,,, 으아. 괴롭겠군요...

잉크냄새 2006-10-1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입이 고급스러워졌어요. 150원짜리 자판기에서 200원 짜리로 등급 상승시켰습니다. 뭐랄까~ 좀더 깊이가 있다고나 할까요...^^

혜덕화 2006-10-1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입니다. 수선님. 저도 커피믹서 좋아해서 매일 마시다 요즘 감기로 몸이 안좋아서 잠시 끊었습니다. 그래도 커피 마시고 찐 살은 요가로 뺄 요량하고, 그 달콤한 향기와 맛을 포기하긴 쉽지 않네요. 스타 벅스 보다는 싼 커피믹서로 다시 가시는 것은 어떨지? ^^

kleinsusun 2006-10-1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군님도 커피믹스 중독이예요? 게다...아기곰? ㅋㅋ 넘 귀여우신거 아니예요?^^

달밤님, 맞아요! 중독은 싫지만 막상 중독될 당시에는 "행복함"을 느낀다니깐요.
아...내일 시그니처 핫초코 또 먹고 싶당.ㅋㅋ

hnine님, 커피믹스 중독 때 하도 고생을 해봐서 못마시겠어요.ㅠㅠ
시그니처 핫초코 진~짜 진한것이 열량이 장난 아닌 것 같아요. 한잔 마시면 두 시간은 뛰어야 할 것 같아요.ㅋㅋ

kleinsusun 2006-10-2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전 크림을 빼달라고 그랬거든요. 두번 다~
크림 얹어 먹으면 더 맛있나요? 아.... 내일은 크림을 얹어서 먹어야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음하하하.

클리오님, 그죠..? 핫초코에 중독되면 "울트라" 북극곰이 되는건 시간 문제일 것 같아요.ㅋㅋ

잉크님, 오랜만이예요!^^ 근데....일반 커피(150원)랑 고급 커피(200원)랑 맛 다른가요? 전 잘 모르겠더라구요.ㅋㅋ 참! 저 BB 합격했어요. 축하해 주세용!^^

혜덕화님, 아..감기 드셨군요.환절기 감기 오래 가던데...몸조리 잘 하시고 빨리 나으세요!^^ 커피믹스 끊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다시 커피믹스를 마시긴 넘 두려워요. 뭐든 중독은 안되게 하려구요.^^

2006-10-20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10-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믹스에 중독된 엄마곰인데요. 기본 하루 4잔!!! 열량 그냥 무시하고 삽니다. 결혼도 했겠다 애도 낳았겟다. 대한민국 아줌마 기본 체형이라고 빠락빠락 우기면서 산다고요. ㅠ.ㅠ

kleinsusun 2006-10-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부러워요!!!!!!!!

잉크냄새 2006-10-20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자판기 커피만 드셔보시면 압니다. 150원짜리와 200원짜리의 맛이 차이를요.ㅎㅎ 아, 그리고 BB 합격 축하드립니다. 전 합격만 해놓고 추가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 반쪽짜리 검은띠랍니다. 언젠가는 불끈!

비연 2006-10-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믹스에 중독되어 하루 5잔을 마시는.....킹콩입니다....ㅜㅜ
곧 동물원이나 박물관에 갇힐 지도 몰라요..흑흑. 근데 안 끊어지네요...

kleinsusun 2006-10-2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저도 아직 반쪽짜리 BB예요. 필기만 합격한거죠. 근데....추가 프로젝트 안하고 그냥 반쪽으로 만족하고 싶어요.ㅋㅋ

비연님, 하루 5잔을요??? 아....그래도 자전거도 타시고 운동을 많이 하셔서 체중을 유지하시는 것 같아요.^^ 전 아기곰처럼 무럭무럭 자라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ㅋㅋ
 

이틀 전, 태어나서 처음 "하숙집"에 가봤다.

신촌에는 하숙집이 많다.
물론 내가 학교 다니던 10년 전에는
원룸, 원룸텔, 오피스텔 이런게 거의 없었던 만큼
하숙집이 훨~씬 많았을 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하숙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같은 과 동기중에도 하숙하는 애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하숙집에 놀러갈 만큼 친하지 않았다.
학교 앞에 하숙집은 허름한 호프집, 소주방 만큼이나 많았지만
내겐 "다른 세계" 나 다름 없었다.

이틀 전, 엉뚱한 기회로 하숙집에 가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 대학가 하숙집에 가볼 기회는 영원히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오랜 친구 James가 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맨날 "My life is so boring." 하더니 일상의 권태를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쌩뚱 맞게 서강대 한국어학당 가을학기를 등록했다며
테러 경계로 삭막한 히스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신촌에서 하숙집을 구해야 한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이 미칠듯한, 찜질방 같은 더위 속에 학교 앞 하숙집을 보러 갔다.

소개 받은 하숙집 아줌마는 "수정 사우나" 앞에서 전화하라고 했다.
그곳에서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을 때
반바지에 쓰레파를 질질 끈 아줌마가 나타났다.
"덥지?"로 인사를 건넨 아줌마를 따라 몇걸음 걸으니
첫눈에도 하숙을 치려고 날림으로 지은 것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붉은 벽돌로 조잡하게 쌓아올린 빌딩.
좁아 터진 현관에는 열 켤레 넘는 구두, 운동화들이 마구잡이로 엉켜 있었다.

"들어와! 3층 방이 비어있어."
(그러고 보니 그 아줌마는 처음부터 반말을 썼다!)
아줌마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한층에 방이 5개씩 있어."

방과 방 사이의 복도는 어찌나 좁은지
마주한 방문이 동시에 열리면 부딪힐 것만 같았다.

지붕은 도대체 뭘로 만들었는지
한낮의 지글거리는 태양을 스폰지가 물을 빨듯 쭉쭉 빨아 들이는지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았다.

"이 방이야."
아줌마는 열쇠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바둑판만한 창문이 있는 좁은 방에는
썰렁한 침대만 하나 휑하니 놓여 있었다.

"화장실은 어디 있어요?"

아줌마는 그 자리에서 팔을 뻗어 옆 문을 열었다.
" 한 층에 하나씩 있어."

화장실에는 칠이 다 까진 변기 하나, 세면대 하나,
초라하게 늘어진 샤워 꼭지 하나가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냄새도 훅~밀려 왔다.

"밥은 어디서 먹어요?"

아줌마를 따라 1층에 내려가니 뜻밖에 4인용 식탁이 있었다.
"열다섯명이 다 여기서 먹어요?"

아줌마는 뭘 이렇게 모르나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들 마다 먹는 시간이 틀리니까."
돌아 가며 먹는다기 보다는
거의 애들이 밥을 안 먹는거 같은 분위기였다.

방 하나에, 아침/저녁 식사 포함해서 한달에 40만원이라고 했다.

"네...다른데 둘러 보고 연락드릴께요."
하고는 신발을 구겨 신고 나왔다.

근처 하숙집들도 다 비슷비슷한거 같았다.
하숙을 치려고 급하게 쌓아올린,
"최대 인구 수용" 단 하나의 건축미학(?)으로 지어진 조잡한 빌딩들.

어떻게 학교 바로 앞에 이렇게 하숙집들이 많은데 한번도 와본 적이 없었을까?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산게 아닐까?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일주일 전, 동아리 동기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 수선아, 넌 아직 과천 사니? "
한 동기의 질문에 집이 너무 멀어서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이 지방이라 1학년 때 부터 하숙,자취를 전전했던 동기 두명이
목소리를 높히며 말렸다.

" 얘가 정말 뭘 모르네. 집 떠나면 고생이야.
결혼을 해야지. 니 나이가 지금 몇살이냐? "

난 그냥 자주 듣는 말이라 씩 웃으며 소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반가운 애들을 만나서 그런지 소주가 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틀 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 학교 앞 하숙집에서 신발을 구겨 신고 나오면서,
한귀로 흘렸던 동기들의 말이 귀에서 윙윙 거렸다.

내가 정말 뭘 모르는구나,
뭘 모르고 살았구나,
아니....알 수도 있었는데 귀 막고, 눈 가리고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마구 몰려 왔다.

3년 전인가?
도서관에서 공선옥의 <피어라 수선화>를 읽다가 덮어 버린 적이 있다.
도저히 불편해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비슷한 느낌이 더위와 뒤섞여 몸에 착착 달라 붙었다.

너무 늦게 철이 드는걸까?
아무 생각 없이,
통역이나 하면 되지...하고 찾아간 학교 앞 하숙집의 잔상을 쉽게 떨어낼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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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08-1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의 친구는 이대 앞에서 하숙하는데 반찬없이 밥만 주고 45만원이래요. 게다가 밥도 하루에 한 번만 해서 애들이 다 밥을 락앤락같은데다가 쑤셔담아서 쟁겨두기때문에 학교 끝나고 오면 밥도 없다나 뭐라나. 아줌마한테 항의했더니 애들이 밥을 잘 안 먹어서 한 번만 하면 된다고 그러더래요. 다른 대학가들보다 신촌 쪽이 하숙이 비싼거 같더라구요.

kleinsusun 2006-08-17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하숙하는게 장난 아니군요. 싸지도 않은데 말이예요...
집이 멀다고 투덜투덜 했었는데, 제 방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2006-08-1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17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6-08-1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하숙은 오래할게 못되는거 같아요. 전 해보진 않았지만. 독립을 못할거면 지금 있는 아늑하고 깔끔한 제 방이 좋아요. 어여 독립을 해야돼. 나가 살아야돼.

kleinsusun 2006-08-1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학교 다닐 때 집이 멀다고 툭하면 투덜투덜했어요. 하숙하는 애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늦게 가도 부모님한테 혼 안나니깐....제가 너무...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ㅠㅠ

바람돌이 2006-08-1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저런 하숙집 다 없어졌는줄 알았더니 아직도 있네요. 저 학교 다닐때는 하숙하는 애들은 그래도 지방 유지쯤 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고 대부분은 저런 방에서 자취를 했었지요. 그 자취방을 내 방처럼 드나들면서 얻어먹고 얻어 자고 하는 대신에 집에서 반찬이니 김치니 이런거 훔쳐다 날라주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근데 그 때는 딱히 누구도 그런 하꼬방 같은 곳에서 산다고 가난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힘들다거나 뭐 이런 생각 안했던 것 같아요. 서로가.... 뭐 제 주변에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

kleinsusun 2006-08-1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요즘은 있는 집 애들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산데요.ㅠㅠ
후배의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원룸에 전세로 사는 애들이 많더라구요.
"최대 인원 수용"을 위해 조악하게 지어진 하숙집들을 보니 화가 났어요.
요즘엔 하숙집 아줌마의 정...이런게 없는 거 같아요. 하숙도 기업형. 다 빌딩이 하나씩이더라구요.

LAYLA 2006-08-1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한명이 요즘 하숙방이 너무 덥다고 중도와서 삽니다.
아침에 나와서 밤 10-11시에 돌아가요
심지어 집이 너무 덥다고 찜.질.방 가서 자더라구요
찜질방보다 더 더운 하숙방?ㅠㅠ

kleinsusun 2006-08-1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찜질방 보다 더 덥다는 말...정말 뻥이 아니예요.
제가 간 방은 꼭대기라 그런지 정말 숨이 턱턱 막히게 더웠어요.ㅠㅠ
그나저나...방학이 다 끝나가네요. 즐거운 방학이었어요?^^

nada 2006-08-1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숙집도 하숙집이지만 그 친구 분이 멋지네요. 어느 날 갑자기 한국어를 배우러 바다를 건너 오다니요! 근데 환경에 비해 가격이 세긴 세군요..ㅠ.ㅠ

kleinsusun 2006-08-1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결국 하숙 얻기를 포기하고 James는 "원룸텔"에 입주했어요.
3평 정도 되는 작은 방에 책상, 침대, 화장실 있는 그런....럭셔리 고시원 같은...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네요.

잉크냄새 2006-08-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그냥 자주 듣는 말이라 씩 웃으며 소주를 마셨다. --> 공감....
대학교때 친구들 하숙집이 생각나네요. 전 누나집에서 다녀서 하숙집에 대한 경험이 없지만요...

moonnight 2006-08-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저도 하숙집에 가 본 경험이 없네요. ^^; 옛날 과동기 중 타지방에서 온 애들은 자취를 많이 했던 거 같구요. 그애들 집에도 놀러가본 적 없는 거 보면 예전의 전 참말로 혼자 놀았던 거 같군요. (쓰고보니 뭐, 지금도 그렇군요. ;;;) 그나저나 그 정도의 환경에 한달에 40만원! 허걱. 정말 비싸요. -_-;;;;

kleinsusun 2006-08-1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공감하시는구요.^^
근데...잉크님 댓글을 보니 갑자기 시그마가 생각나요. 이번주 휴가 끝나면 또 독촉 받겠네요.ㅠㅠ 시그마가 무서버요!!!

달밤님, 네...그런 환경에 40만원은 정말 비싸요. 그나저나....전 언제 독립하죠? ㅎㅎ

2006-08-1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달 2006-08-2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집 떠나면 고생이예요. 고등학교 다닐 땐 빨리 독립하고팠는데, 막상 독립하니까 집이 무지무지 그립더라구요. 흑 ㅠ 이제 또 다시 학교로 가야되는데, 걱정이예요.

비로그인 2006-08-2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셜록 홈즈가 살던 베이커 가의 하숙집은, 정말 꿈의 공간이군요. 물론 환경과 시공간, 국가, 모든 것이 다르긴 합니다만.
 

어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벽시계를 보니 7시 10분.

'어? 이상하네. 허리가 아플만큼 잤는데 얼마 안 잤네.'

근데....이상하게 아침 같지가 않았다.
동생들 방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창밖을 보니 약간 어둑어둑한 것이 설마....저녁인가? 하는 생각에
황망히 핸펀을 열었다.
7:10 PM

헉! 일어난 시간이 저녁 7시 10분.
도대체 몇시간을 잔거야?

믿어지지 않게도 7시 10분까지 한번 깨지도 않았다.

약속도 있었고,
아침에 한국에 도착한 스페인 바이어 Juan에게 전화도 했어야 했고,
운동도 했어야 했는데....

핸펀엔 수많은 '부재중 전화'들이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까잇거, 기왕 이렇게 된거 어쩌겠냐?

룸펜처럼 일어나자 마자 캔맥주 하나를 마셨다.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았고, 허리가 좀 아프다는 것 외엔
대체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룸펜처럼 늘어져 쇼파에 누웠다.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늘어져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 : 뭐하냐? 전화도 안하고....
수선 : 어...나 지금 일어났어.
친구 : 뭐? 저녁 7시가 넘어서 일어났단 말이야? 야...너 왜 그래?
수선 : 몰라, 넘 피곤했나봐.
친구 : (껄껄 웃으며) 야...너 인생 그렇게 살지마. 음하하.

일주일간 여기저기 많이 시달렸다.
뭘 그렇게 "할 일", "해야할 일", "중요한 일", "중요하진 않지만 거절하기 곤란한 일". "꼭 해야할 의무는 없지만 안하긴 미안한 일" 등이 많은지...

어쩜 어제 그렇게 하루 종일 잔건 '도피'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처럼.

사실 내가 스트레스를 못 이길 때 하는 일은
'잠'에 빠지는 거다. 자고 자고 또 자고....

극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오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수 있다. 그것도 길~게.
오래오래 잠을 자고 일어나면 대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단, 자명종이나 누가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서는 안되고
자다 자다 지쳐서 일어나야 한다.)

예전에 나를 "쟌다르크"라고 부르던 남자가 있었다.
시커먼 남자뿐인 직장에서 항상 씩씩한 모습을 보면,
힘들 때도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소녀 전사 "쟌다르크"가 생각난다고 했다.

음...그러고 보니 회사생활을 하면서 "전투적"이란 말도 많이 들은 것 같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기사를 보니(edaily 하정민),

아직까지 이 사회는 여성에게 "천사가 아니라 악마만이 프라다를 입을 수 있다."고 알려주기 때문에.

라는 "한탄"이 있었다.

뭐 내가 성공한, 출세한 직장인은 아니지만,
이만큼 버틴 것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은 "전투"가 아니었나,
다른 사람 눈에는 쟌다르크처럼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일주일만, 아니 월~금 5일만 더 견디면 여름휴가다. 야호!

"할일 리스트" 같은걸 만들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빈둥빈둥 거리는 시간을 불안해 하지 말고,
이번 휴가는 편하게, 그저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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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8-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글의 끝부분 저 [할일 리스트]란 단어를 보니 [워커홀릭] 의 주인공 '사만다'가 생각나네요. 그때까지 한번도 안깨고 주무셨다는 이 글만 읽어도 제가 다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예요. 남은 주말도 편안하게 보내세요!

kleinsusun 2006-08-0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긴긴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계속되네요.
비가 올 때 마다 다락방님을 생각했다는...^^
잠을 많이 잤더니 한결 기분이 좋아요.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생각중이랍니다.
다락방님은 뭐해요?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프레이야 2006-08-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잘 주무셨네요. 그렇게 편안하게 때론 모른 척 잊어버리고 놓치기도 하며 사는거에요 그죠? ^^ 휴가까지 5일 남았네요. 휴가도 느긋하게 보내시길...

kleinsusun 2006-08-06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감사합니다.^^
7시 넘어서 일어난 제게 "인생 그렇게 살지마!"하는 친구도 있지만,
혜경님처럼 칭찬을 해 주시는 분이 있어 큰 힘이 돼요.^^


2006-08-06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6-08-0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다르크라는 별명, 멋져요!

kleinsusun 2006-08-0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부끄부끄^^

moonnight 2006-08-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알라딘의 잔다르크 수선님! ^^ 저도 어제는 하루왼종일 허리가 아프도록 잤답니다. 자도자도 잠오고 밤에도 엄청 많이 자고. 덕분에 오늘은 월요일이라도 기분이 아주 많이 나쁘지는 않네요. ^^; 스트레스쌓일 땐 그저 푹 자는 게 도움 되는 거 같아요. 곧 여름휴가시군요. 멋진 계획 세우셨나요? ^^

icaru 2006-08-07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12일부텀 여름 휴가 스타트시구만요~ 신나겠다...
전 잔다르크 라고 해서...'잔다'에 뽀인트를 두고, '르크' 그냥 의미없는 접미사...인 줄 알았구만요.. ㅋㅋㅋ

비로그인 2006-08-08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왜 이렇게 잠꾸러기,라는 단어만 떠오를까요^^;;

kleinsusun 2006-08-0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역시 "잠"이 강력한 것 같아요. 주말에 많이 자면 한주가 쌩쌩하다니깐요.^^
전 이번 휴가에 아무데도 안가요. 외국에서 친구도 오고, 좀 할일도 있고...
아....이제 삼일만 있으면...랄랄라~ 달밤님의 휴가 계획은?^^

icaru님 댓글 보고 한참을 웃었어요. '잔다'+'르크' 음하하하.
휴가 때 뭐할꺼냐구요? 일단 '잔다'!!! ^^

비숍님, 혹시....OO은 잠꾸러기..가 떠올랐나요? ㅎㅎㅎ
 

4월 상하이 출장 때, 상하이 사무소 직원인 Lin(83년생 남자)이
자기가 한국 노래를 할 줄 안다고 했다.
불러 보라고 하니깐, 기다렸다는 듯이 율동까지 하며 노래를 했다.

"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

놀라며 물었다.
"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 "

한국 드라마(아마도 <풀하우스>였던 것 같다.)에서 주인공이 이 노래를 자주 불러서
자기 친구들도 다 이 노래를 안다고 했다.

Lin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어렸을 때 기억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난 이 노래를 아주아주 좋아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아빠는 뚱뚱했고, 우리 엄마는 날씬했다.
지금도....그렇다.

엄마는 내년이 환갑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아주 날씬하다.
주위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아빠는?
꾸준한 운동과 참선으로 많이 빠지셨지만 여전히 뚱뚱한 "편"이다.

내가 가끔 폭음이나 폭식을 하면
아빠는 막 뭐라 하신다.
"젊은 애가 자기 관리를 그렇게 못해서 어떡해?"
"절제를 할 줄 알아야지."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아빠도 젊었을 때 폭음과 폭식을 자주 하셨다.

"투사"라고 하나?
아빠는 폭식,폭음하는 사람, 뚱뚱한 사람을 싫어하신다.
특히 비만 증세를 보이는 젊은이들을 무척 싫어하신다.

한 번은 소개팅을 하고 들어왔는데 아빠가 어땠냐고 물어 보셨다.
" 음...괜찮은 편인데 넘 뚱뚱해. "
( 그 남자는 성악 전공자였다. 파바로티 까지는 아니지만, 중형차 좌석이 작아 보일 정도로 뚱뚱했다.)

아빠는 그 한마디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웬만하면 한 번 더 만나 보라는 평소와 달리 말도 짧게 하셨다.
" 됐다. "

가끔씩 나는 이런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 너 요즘 체중이 너무 나가는 거 아니냐? "
" 운동 좀 해라. "
가끔 장기간 출장을 갔다 오면
" 애가....불어서 왔네. "

며칠 전이었다.
그 날은 저녁을 먹지 않고 운동을 했다. 그것도 빡 세게.
강도를 높혀서 근육 운동을 했다. 땀을 뚝뚝 흘리면서.
샤워까지 하고 나니 10시.

집에 가는 버스에서 미치도록 배가 고팠다.
근육통인지 뭔지 온 몸이 욱신욱신 했다.
책도 읽지 못하고, 배고픔과 몸의 통증으로 그저 피곤하고 멍~했다.
필름이 도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음식들이 머리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두유 하나로 견디려 했으나, 뭔가 너무.....먹고 싶었다.
부엌에 들어가서 가스렌지 위에 있는 냄비 뚜껑들을 열어 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먹을 건 미역국 밖에 없었다.

미역국을 뜨고 있을 때였다.
국자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아빠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 지금 뭐 하는 거냐? 이 한밤중에 뭘 먹으려고? 그걸 못 참고...."

난 순간....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아빠나 잘하세요! "
시위하듯이 미역국을 원샷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고꾸라져서 잤다.

그 다음날, 내내 후회했다.
왜 그랬을까?
아빠한테 왜 그랬을까?

그 순간엔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늦은 밤에 뭘 먹는다는 사소한 일 하나까지 통제(?)당하고
잔소리를 듣는 게 너무나 화가 나고 싫었다.

좀 모른 척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 저녁 안 먹었니? " 한마디 하면 그만일 일을,
아빠는 정말 왜 그러나?....생각했다.

내 홈피에 자주 놀러 오는 친구들은 말한다.

"넌 아빠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넌 참 효녀인 것 같아."
"나도 너처럼 아빠랑 친했으면 좋겠어."

그래, 난 아빠를 좋아한다.
효녀는 아니지만 잘 하려고 노력한다.
"마마 걸" 보다는 "파파 걸"에 가까울 만큼 아빠랑 얘기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를 겪는 중딩처럼,
안 되는 일은 다 부모 탓으로 돌리는 싸가지 없는 고딩처럼,
그렇게 아빠가 미울 때가 있다.

좀 자식을 내버려 두지 못하고,
항상 훈화말씀과 충고로 자식을 선도하려는 아빠의 목회자 같은 태도에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날 때가 있다.

어떤 관계에나 애증은 있다.
뚱뚱한 아빠 곰과 너무 귀여운 아기곰 사이에도 애증은....있다. 있을 꺼다.
"아버지"에 대한 그 많은 소설을 쓰고 요절한 김소진 만큼은 아니지만,
(김소진의 거의 모든 소설은 "아버지" 얘기다.)
나도 아빠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언젠가....소설이 될지도 모른다.

아빠 곰은 뚱뚱해~ ♬♪♬
며칠 내내 이 노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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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7-2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참...쉽지 않아요.
나침반님도 곰 세마리 노래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귀여운 아기곰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애물단지가 된 것 같다는...ㅎㅎㅎ
나침반님, 인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06-07-29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엄마곰은 뚱뚱해,랍니다.
저도 간섭이나 잔소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아이에게만은 예외가 되더군요.
얼마나 간섭하고 싶은지.ㅎㅎ
애정의 잘못된 표현방식이지만, 그것도 귀엽게 봐주심 안될까요?
늙어가는 부모의 권리랄까.
그리고 수선님 마음도 편하게.....^^

2006-07-31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3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02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8-0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