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차가 안막히는가 싶어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이런 그런데 역시나다.. 집에 가는길이 1시간 걸렸다..
어제 그 이후로 먹은건 비빔밥과 물한컵, 메치니코프 1개가 다였다.... 시계바늘이 거의 8시를 향하고 있었고 쓰러질 듯 도착하니 엄마가 도배를 마치고 식사중이셨다.
으 맛나는 고구마줄거리 볶음, 엄마네 옥상텃밭에서 솎아준 열무로 만든 겉절이 김치...
에라 모르겠다.. 처음엔 3숟가락 퍼서 비벼서 먹다.. 한숟가락만더 더 하다가 결국 밥 한공기 다 비벼 먹었다..할 수 없지뭐...
아니 더위 가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도배를 하시나요 엄니..
안방문을 열어 보니 할 만 하다.. (담배를 태우시는 울 아버진 절대로 나가서 태우고 들어오시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도배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누렇게 변해 버린다...)
새로 도배를 한 곳은 산뜻한데 아직 도배지가 발라지지 않은 곳은.. ㅎㅎㅎ 한 30년 때국이 흐르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그걸 보니 20여년전 겨울이 생각나서 엄마.. 기억나?
왜 엄마 길동에서 가게할 때 엄마 오면 따뜻하게 해준다고 나무 때다가 집 불날 뻔 했잖아
그걸 왜 기억못하냐... 이불까지 탔는데.. 사람 잡을 뻔 했잖아 그때..
ㅎㅎ 그렇다.. 우리집이 개보수를 한게 1984년.. 내 중1때 였고 그 이전의 우리집을 설명하면 도심속의 시골같은 집이었다.
아빠가 별나셔서 연탄아궁이 외에 옆에 별도로 가마솥을 걸어 두는 불때는 아궁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 뒷켠에는 항상 나무가 잔뜩 쟁여져 있었고 이집 저집에서 나무를 버려야 할때면 우리집으로 가져오곤했다.
나무 한 번 때면 집이 그으름으로 가득차는것 같지만 그래도 거기다 해먹는 밥은 구수하고 압력솥 밥은 저리 가라 이고... 불때면서 집어 넣어 구워먹는고구마나 감자는 별미다 별미...
또 욕실이 따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엌에서 물 데워서 목욕하곤 했는데 커다란 가마솥에 한번 끓여주면 웬만한 식구 씻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다 엄마가 가게를 하게 되셨다.. 할머니가 4남매 키우는데 반찬값이라도 벌어 보라면서 가게 한칸을 내주신 덕에 엄마는 우리들 학교 보내 놓고 나면 길동까지 먼거릴 가셔야 했다.. 다행히 버스가 한 번 타면 가는 거리지만 1시간 걸리는 그 거리는 오가는 엄마는 엄청스레 피곤하셨을꺼다.
한 겨울.. 정말 너무 너무 추었던 날이었다.
눈도 많이 오고 게다가 바람까지 쌩쌩불어 추웠던 날.. 연탄불을 간 지 얼마 안되어 방이 뜨겁지 않고.. 옛날집이다 보니 외풍은 심하고...
엄마가 오기전에 얇은 담요로 창문을 가려도 보고 그랬는데 집이 춥길래 언니랑 나랑 엄마 오면 따뜻하게 주무시게 나무를 때자에 합의를 했고 처음으로 불때는걸 해봤다.. 평소엔 엄마가 불을 지피면 꺼지기 않게 나무 부시러기 던져 넣거나 그런게 다 였는데...
본 것은 있어서 잔챙이 나무긁어다 놓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 불길을 잡은 후 본격적으로...
햐~ 우리 처음인데 너무 잘한다 하면서 기특해 기특해 하면서 불을 때기 시작...
언니가서 방바닥 만져보고 와봐.. 따뜻한가...
이상해.. 아직 찬데.. 둘이서 들락 날락 하면서 방바닥을 만져보곤...
그럼 더 넣자...
우린 몰랐다.. 불을 때면 바로 방이 쩔쩔 끓어 오르는 줄만 알았던 거였다..
결국 그렇게 1시간여를 땠나... 눈도 맵고 불씨 앞에 앉아 있는것도 힘들어 죽겠을 때 쯤 엄마가 오셨다.
ㅎㅎ 엄마는 깜짝 놀라시면서 우리 둘이 엄마를 위해 그렇게 한것에는 기특하다 칭찬을 하셨지만 일을 만들어 놓았다고 야단도 치셨다.
가마솥의 물은 펄펄 끓어 졸아들고... 달궈지기 시작한 방구들은 쩔쩔 끓다 못해 장판이 우그러 들고 있었다... 깔아 놓은 솜이불은 탄냄새가 나고...
비상~ 늦게 까지 공부하고 돌아 온 오빠들도 건너와선 이불 다 걷어내고 창문 활짝 열어 놓고...
심지어 그 야밤에 안방에 있던 가구까지 옮겨야 했다.
엄마 따뜻하게 해주려다 집안 말아 먹을 뻔 사건을 엄마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엄마 그때가 좋았지? 난 가끔 말야.. 엄마가 그 가마솥에 잔뜩 고구마 쪄서 소쿠리에 담아 내놓고 마당에 묻어 두었던 김치독에서 김장김치 꺼내와서 손으로 쭉쭉 찢어서 포실포실한 고구마 위에 둘둘 말아 얹어 먹던 그 고구마가 먹고 싶단 말야...
지금은 그런 맛이 없어.. 그치?
아삭아삭한 그 김치 정말 예술였는데... 지금도 땅에 묻으면 그런 맛이 날까?
먹을게 흔해 빠진 시대에 살면서 고작 고구마에 김장김치라니...
그런데 아무리 먹어봐도 그때처럼 맛있는 고구마는 없다. 김치냉장고가 있다해도 그 아삭거리는 시원한 맛을 못살려 낸다.
가위나 칼을 대지 않고 손으로 쭉쭉 찢어 먹는 김치의 맛....
뜬금없이 엄마네 도배하는걸 보다 생각나다니...
가을 찬바람이 불때 방문을 떼어내 풀 쑤고 창호지 발라 바람에 말리던 엄마의 손길도 생각난다.
지금 세상은 살기 좋아졌는데 그런 멋은 없다.
쭈글쭈글 하던 창호지가 바람에 마르면서 금방이라도 터질듯 팽팽해지면 엄마는 그걸 보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곤 하셨는데...
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그리워 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