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생각하는발님(약칭 곰발’)의 글 선동과 증언 사이에 비회원 계정으로 남긴 댓글 3개가 달렸습니다. 몇 분 후에 댓글 작성자는 자신이 쓴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다행히 삭제되기 전에 3개의 댓글 모두 확인했습니다. 자신이 쓴 (악성) 댓글을 직접 삭제해놓고선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어요. 그런 사람들이 후안무치한 자세로 나올까 봐 문제 있는 댓글은 무조건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놓습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은 곰발님의 글에 달린 댓글 내용입니다. 토씨 하나 안 빼놓고 그대로 썼습니다.

    

 

정리하죠. 이 세상이 이 꼬라진 건 남성의 잘못을 아무리, ~무리 높게 봐도 52% 이하라고 봅니다. , 여성들 잘못이 최소 48% 이상이라는 거지요. 물론, 수천만을 평균낸 거니 최대 4% 차이가 나는 거라면 적은 차이는 아니지요.” (첫 번째 댓글, 2017년 6월 15일 1331분 작성)

 

 

댓글 작성자는 남성의 잘못은 52% 이하’, ‘여성의 잘못은 48%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저분이 들고 나온 수치의 출처는 무엇일까요? 해당 수치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치 결과가 편향적입니다. 수치 결과를 그대로 해석하면 여성이 잘못한 일의 비중이 남성이 잘못한 일의 비중보다 높다는 의미가 됩니다. ‘52% 이하라고 하면, 최대 수가 ‘52%’입니다. 반면 ‘48% 이상48을 포함한 최대 수를 의미합니다. 이러면 수치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성의 잘못한 일의 비중을 ‘48%’로 볼 수 있고, 52보다 더 높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치 결과가 부정확한 정보라고 생각했습니다.

    

 

“p.s. 어쩌면, 님은 한국 남성을 비판하는척 한국 여성의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하는 듯 제스쳐를 취하지만 그 기저에는 남성 우월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가란 의심이 든다는 얘길 수도 있겠네요. (첫 번째 댓글, 여기서 말하는 '님'은 곰발님을 지칭한 명칭)

 

 

제가 어느 분의 글에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저 보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제 내면에는 남성 우월주의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제 의견에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메갈들이 잠재적 가해자란 개념을 만들어 낸 머리로, 왜 잠재적 이타자란 개념은 못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성들의 가정폭력은 분명 급속이 줄어들어 왔습니다. 한국 남성이 선한존재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겁니까?? 여성의 경제력 향상이 핵심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들의 인식전환이지요.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은 쓰레기로 보는 문화를 정착시킨 게 이게 가장 중요하지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라면 우선 배제해버리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웬만큼 인생 막사는 남성 아니라면 여성에게 손을 대는 건 상상하기 힘든 문화가 됐지요.” (두 번째 댓글, 2017년 6월 15일 1338분 작성)

    

 

남성들의 가정폭력이 급속히 줄어들었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기사 전문 :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455546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는 가정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가 남편을 학대하는 가정폭력 건수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전체 가정폭력 피해자 중 아내가 절반을 넘습니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배우고 전달받은 생각과 행동 방식 등을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을 쓰레기로 보는 문화를 정착하는 일에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 토니 포터 맨박스(한빛비즈, 2016)

 

 

 

저는 남성들의 인식 전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성성에 대한 틀에 박힌 편견을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 혐오, 여성 폭력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대부분 남자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자를 배제하는 동시에 여성을 잘 대해주는 착한 남자로서의 위치를 선점합니다.여성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범죄야. 죗값을 무겁게 받아야 해.” 당연히 남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 자신의 친구가 애인이나 아내를 학대한 사실을 알게 되면 모르는 척할까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까요?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남자들끼리의 동맹은 여성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남성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남성을 배제하는 사고방식이 용인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성이 폭력을 행사한 남성을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하고, 거리를 둔다고 해서 여성 폭력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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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6-1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간 베스트‘이후 페미니즘 물결이 더 활발했는데, 반면 지난 5년간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 증가했다. ; 는 것이 사실이라면 페미니즘 (운동,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오히려 역상관관계라면 페미니즘은 남녀차별의 현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이 되는군요.

나와같다면 2017-06-15 23:01   좋아요 2 | URL
제 생각은 가정내 폭력이 5년간 5배 증가
했다는 거는, 가정사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 마누라에게 폭력을 행한게 무슨 문제냐?
라는 인식에서

이제는 가정내 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그 범죄가 더 드러나는거는 아닐까요..?

마립간 2017-06-15 23:20   좋아요 1 | URL
질병에 대한 진단률이 높아지면서 유병율이 높아지는 착시 현상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래 고양이라디오 님도 같은 의견을 주셨네요.)

만약 두 분의 의견이 옳다면, ‘가정폭력 5년간 5배 늘었다‘는 선동적인 왜곡된 기사 제목이고, 그 기사에 근거에 주장한 cyrus 님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죠.

cyrus 2017-06-16 09:55   좋아요 1 | URL
여성 폭력이 늘어났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노력이 물거품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성 폭력 증가의 원인을 페미니즘에 대한 역반응(ex.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을 차별한다)으로 찾는 마립간님의 해석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여성 폭력은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폭력의 심각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피해자만 두둔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통계 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은 동의합니다. 통계 착시가 부른 결론은 왜곡된 게 맞습니다. 어제 제가 인용한 기사와 이 기사를 통해 내린 결론도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7-06-19 04:44   좋아요 0 | URL
제 댓글에 오해가 있는 듯하여 답변드립니다.

상관관계는 원인을 수도 있지만,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 폭력의 증가를 페미니즘의 역반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페미니즘이 남녀차별의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이죠.

아래 댓글을 보니, 남성이 여성 배우자에 대한 폭행이 신고 건수가 늘은 것이지, 실제로는 늘지 않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진 것 같은데, cyrus 님은 페미니스트의 노력을 남성 배우자 폭력이 감소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그대로라고 보시나요?

cyrus 2017-06-19 08:42   좋아요 0 | URL
제가 마립간님이 표현한 ‘남녀차별의 현상(반응)‘을 잘못 이해했군요. 그렇다 보니 남편의 아내 폭행 신고 건수와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의 상관성을 단순하게 해석했습니다.

2017-06-15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6 09:54   좋아요 1 | URL
작년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댓글로 시비를 걸었어요. 그 사람이 나중에 자기가 쓴 댓글을 삭제하고, 모른척할까 봐 사진으로 캡처했어요. 만약에 캡처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의 정체를 몰랐을 거예요. 그 사람, 닉네임을 바꾸고 다른 사람한테는 친한 척 행동하더군요.

고양이라디오 2017-06-15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기사는 충격이군요. 하지만 자료가 가정폭력 검거 현항이니 과거에는 신고나 검거가 되지 않았던 가정 폭력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에는 가정 폭력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갈수록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그로인해 가해자들이 처벌받게 되는 건 아닐까요?

나와같다면 2017-06-15 22:41   좋아요 1 | URL
저 오늘 스켑틱 SKEPTC 잔뜩 전시된거 보고 고양이라디오님 생각났어요
근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ㅋ

고양이라디오 2017-06-15 22:54   좋아요 0 | URL
저를 떠올려 주셨다니 감사하네요^^ 나와같다면님도 <스켑틱> 좋아하시나요ㅎ?

나와같다면 2017-06-15 22:57   좋아요 1 | URL
ㅋ 아뇨 스켑틱 잘 알지도 못해요. 댓글에 사진이 안 올라가죠.. 저 오늘 올린 글 사진 봐주실래요?^^

cyrus 2017-06-16 09:59   좋아요 1 | URL
마립간님과 고양이라디오님의 의견을 듣고 보니 통계 수치만으로 어떤 현상이 증가했다고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7-06-1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6 10:00   좋아요 0 | URL
자식이 보는 앞에서 남편 또는 아내를 폭행하는 것은 정말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건 자식에게도 정신적 상처를 안겨 줍니다.

나와같다면 2017-06-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팩트체크를 저는 좋아해요.
사회현상에 대한 견해, 세밀한 번역에 대한 의견이라던지..
집요하고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이 매력 있으십니다

cyrus 2017-06-16 10:01   좋아요 1 | URL
제가 예리한 분석을 할 정도의 능력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집요한 것은 맞습니다. ^^;;

:Dora 2017-06-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팩트체크성 글을 올리시고 혹여 공격받지나 않으실까 걱정이 드는 건 ... 페미니즘이 사라지는 완전 평등의 그날이 아직도 머나먼 일임을 역설적으로 알게됩니다. 가정폭력은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국한하기보다 폭력이라는 관점에서도 용인되어서는 절대 안 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6-16 10:03   좋아요 2 | URL
제가 잘못 해석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한 점이 있으면 떳떳이 인정하고, 수정하면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면 비판 받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

:Dora 2017-06-16 10:26   좋아요 0 | URL
멋진 글 감사요^^ 계속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17-06-16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라디오님의 의견과 같은데요.

‘네 잘못이 아니다‘, ‘나쁜 놈은 가해자다‘ 같은 인식이 점차 퍼지면서 신고와 검거가 기존보다 활발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나저나 인용하신 댓글은 댓글의 의미 자체가 없네요. 저도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려드리면 여성의 의무군복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분 가운데 여성의 군복무, 최소한 공익근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분은 한 분도 없는게 페미니즘 발전의 가장 큰 장벽이예요] 이런 댓글 받고 어이상실 했는데요. 누가 누구한테 페미니즘 인정 방법을 말하고 있는건지, 페미니스트가 왜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하아-


갈 길이 진짜 아주 먼 것 같아요.

cyrus 2017-06-16 10:09   좋아요 0 | URL
어제 다락방님이 곰발님의 서재에 달린 댓글을 보셨다면 또 한 번 어이상실 했을 겁니다. 어제 댓글 작성자도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 비슷한 대안을 제시했거든요. 납득이 되지 않았고, 논리 비약이 심했습니다. 그 분의 논조가 ‘페미니즘이 잘못했으니, 페미니즘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이렇게 해라’ 식이었습니다.

나는달걀 2017-06-16 10:51   좋아요 0 | URL
여성군복무가 도입된다해도 그분은 달라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뭔가 다른 공격 이유를 찾겠죠. 역시 갈길은 멉니다 ㅎㅎ

다락방 2017-06-16 11:14   좋아요 0 | URL
네, 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은 안들어요. 한숨만 나요. 갈 길이 너무 멀어요 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6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11 ㅎㅎㅎㅎㅎㅎㅎ
이야, 사이러스 님의 수집력에 감탄을 보냅니다.
사실은 댓글이 5개 정도 되었습니다. 혼자 흥분해서 막 횡설수설하다가
나중에는 자삭하는 걸로.. ( 나중에 한줄짜리 댓글 하나 남겼길래 불쌍해서 제가 고것은 삭제했습니다. )

cyrus 2017-06-16 10:58   좋아요 1 | URL
원래 계획은 댓글 작성자의 의견을 반박하려고 사진을 찍어둔 것이었습니다. 댓글 2개도 봤습니다. 하나는 곰발님의 댓글이었고, 또 하나는 문제의 댓글 작성자가 ‘조한일보’라는 닉네임으로 단 것이었죠. 댓글을 처음부터 끝가지 읽어봤는데, 급하게 쓴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블랙겟타 2017-06-16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들의 인식 전환, 저도 공감하는 바 입니다.
저도 이쪽에 관심이 많지만 ‘착한 남자‘로 선점하기 위함인지 진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건지 제 자신에게 의문이 있을때도 있습니다.
아직 제 안에 내재되어있는 편견이 있거나 알게모르게 ˝동맹˝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저 조차도 조금 더 노력해야겠어요.

cyrus 2017-06-16 10:54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래요. 마음이 혼란스럽지만, 내 생각 속에 남아있는 편견을 끄집어내려면 성차별, 여성 혐오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내 의견이 비판 받으면 수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전에 저지른 착오를 또 다시 반복할까 봐 걱정됩니다.

이하라 2017-06-17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내학대의 고발율이 높아진건 아마도 페미니즘이 확장하면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기에 그런 것 같네요, 오히려 남편학대,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은 숨겨진 채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yrus 2017-06-18 12:1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가정폭력, 특히 아내 학대의 고발율과 검거율이 높아진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페미니즘 운동의 노력을 꼽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편의 아내 학대만 가지고 문제 삼지 않습니다.

마립간 2017-06-19 04:21   좋아요 0 | URL
≪이웃집 살인마≫를 포함한 몇 권에 책에 의하면 여성 배우자에 의한 배우자 폭행 및 학대는 남성 배우자에 의한 폭행 학대보다 신고 건수가 훨씬 낮다고 합니다.

또한 남성의 강간 피해 사례 역시 여성의 강간 피해 사례보다 신고 건수가 훨씬 낮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의 가해자는 남성입니다.)
 

 

 

 

 

 

 

 

 

 

 

 

 

 

 

 

 

 

 

 

 

 

 

 

 

 

* 토마스 다비트 나는 영혼의 표정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마루, 1998, 구판)

* 토마스 다비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영혼의 표정을 그린 화가(RHK, 2006, 개정판)

* 댄 브라운 다 빈치 코드(문학수첩, 2013, 개정판)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건축 10>라는 책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그는 건물 치수가 비례를 이루고 있으면 건물 외관이 우아해진다고 서술했다. 그는 그리스 신전은 모두 비례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비례는 인체에서 얻어진다고 했다. 비트루비우스는 인간의 몸이 아름다운 비례를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을 그림에 적용한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그의 소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는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됐다.

 

 

 

 

 

다 빈치 코드를 보면 루브르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Jacques Saunière)가 죽으면서 레오나르도의 수학적 흔적을 남긴다. 소니에르는 누구나 눈에 익었을 레오나르도의 인체 비례도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성과 같은 모양으로 몸을 만들고 죽어갔다. 소니에르는 자신의 흉부 위에 펜타 그램(pentagram)을 그려 놓았다. 펜타 그램은 기하학에서 황금비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오각형이다. 정오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의 비를 구해보면 황금비인 1:1.618이 된다.

    

 

 

 

 

 

 

 

 

 

 

 

 

 

 

 

 

*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을유문화사, 2006)

* 마틴 켐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유문화사, 2010)

* 토비 레스터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뿌리와이파리, 2014)

    

 

레오나르도는 인간을 하나의 소우주로 봤다. 그래서 그는 인체의 완벽한 구성이 우주에 감춰진 자연의 원리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라고 부르는 것은 참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몸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물, , 공기, , 네 가지라고 보면, 바로 자연을 이루는 네 가지 구성 요소와 똑같기 때문이다. 몸속을 순환하는 피는 자연의 바다에 해당한다. 사람의 허파는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면서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밀물과 썰물이 주기적으로 드나들면서 육지와 바다가 번갈아 날숨과 들숨을 쉬는 것과 같다.”

 

(토마스 다비트 나는 영혼의 표정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82)

    

 

레오나르도는 산, , 바위 등을 관찰하여 지구의 몸이 작동되는 방식을 유추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을 동일한 유기체로 보는 소우주론설계자로서의 신이 만들어 낸 자연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레오나르도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의 화가들은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낸 것처럼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는 눈을 영혼의 창이라고 했다. 그가 가장 중시했던 오감 중 하나가 바로 시각이었다. 그는 눈으로 보는 행위를 세상의 모든 형태를 이해하고, 자연을 모방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봤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평생 자연과 인간을 조사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일에 매진했다.

 

 

 

 

 

 

 

 

 

 

 

 

 

 

 

 

* 로버트 루빈슈타인, 미셸 루번스타인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2007)

    

 

자연 세계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유추 방식은 패턴 인식을 이용한 발상이었다. 뇌는 어떤 대상에서 패턴을 찾아 인식하려는 욕구가 있다. 레오나르도의 패턴 인식은 여러 가지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여 조합하는 능력이다. 패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각 현상을 서로 연계하는 것이다. 그는 인체의 비례를 연구하여 인간의 움직임을 역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인체의 움직임과 새의 비행을 비교했다. 레오나르도는 새의 날개에 착안해 비행기를 구상했다.

 

 

 

 

 

 

 

 

 

 

 

 

 

 

 

 

* 김대식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21세기북스, 2017)

    

 

레오나르도는 눈을 천문학의 지휘자라고 극찬했다.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바라보는 눈의 능력 덕분에 위대한 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부정했다. 그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데카르트는 감각 기관으로서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악마가 인간의 인식을 기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악마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데카르트가 두려워했던 악마가 누군지 안다. 악마의 정체는 바로 뇌 앞부위에 있는 전두엽이다. 뇌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면, 지휘자는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여러 뇌 기능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 인간의 특징이 바로 고도로 발달한 전두엽이다. 이때까지의 전두엽은 '천사'다. 그런데 간혹 전두엽이 눈앞에 있는 사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전에 뇌의 편도체(감정을 조절하는 부위)가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부터 전두엽은 짖궂은 '악마'로 돌변하고, 착시 현상이 생긴다.

 

레오나르도의 패턴 인식법으로 도출한 소우주론은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거리가 멀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확인된 것들을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이 문제다. 레오나르도는 관찰한 것 중에 유사한 정보 요소들을 선택, 조합해서 하나의 우주론을 만들었다. 소우주론은 비과학적인 내용이지만, 그의 탐구 정신은 선택의 정당화를 건설적으로 사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1] 관찰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상적인 현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은 어렵다. 레오나르도는 표면적인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것,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부터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그를 과학적인 사고를 하도록 이끌었으며 과학은 그의 예술을 완성하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예술에서 혁명을 이루었고, 과학에는 혁신을 불러왔다.

    

 

 

[1]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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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5 18:2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전두엽은 사람의 감정을 지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반 사람보다 떨어져있습니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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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한다. 대부분 사람은 뇌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1.4kg에 불과한 회백색 단백질 덩어리는 깊이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지구상에 사는 인구는 75억 명이지만 한 사람의 뇌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신경세포의 수는 140억 개에 이른다. 지구는 넓고 크지만, 우리의 뇌는 그보다 더 크고 무한하다. 뇌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들은 고도의 사유 능력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를 핀셋으로 집어내듯 밝혀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수준 높은 사고는 뇌의 여러 부위가 협력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게 최근 연구의 잠정적 결론이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은 절대 서로 무관하지 않은 뇌과학과 인간의 행위 간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을 추적한다. 호흡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생명 활동에서부터 복잡한 감정의 표현들, 학습과 기억, 상상 그리고 자아 성찰까지 뇌가 하지 않는 일은 없다. 뇌는 인간의 신체 중에서 물질이면서 정신을 가진 유일무이한 부위이다. 김대식 교수는 철학적인 질문인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과학적으로 궁구한다. 이 책의 주제가 과학과 철학의 접목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 정체성은 우리가 아는 상식과는 달리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성자(聖者)들은 흔히 진정한 나는 내 안에 있다, 깨달음이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이라고 안내한다. 그러나 뇌과학의 관점으로 보면 인류가 여태껏 생각하던 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뇌의 총체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순전히 덕분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이 기억은 거의 만들어진 것에 가깝다. ‘· 우뇌의 기능 분화설을 발표한 과학자 로저 스페리(Roger Sperry)는 뇌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지 못하며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계[1]라고 주장했다. 뇌를 뛰어난 기계 혹은 컴퓨터에 비유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상황에 대처하는 이성적 사고라는 것은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얻는 반응의 일종이다. 인간은 뇌에 저장된 우연한 경험들을 결합하여 필연의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지식과 체험을 통해 뇌 속에 담긴 정보는 오늘날의 를 규정짓는다. 스페리의 주장은 우리의 뇌가 우리를 속이고 인간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식 교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철학적 명제를 나는 뇌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과학적 명제로 바꾸어 놓았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갖는 효과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가 됐다는 점이다. 이성을 가지고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무기 삼아 세계를 지배할 힘이 인간에게 생긴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묻는다. ‘는 어디서 나온 거야?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내 생각이야? 뇌를 활용하는 주체는 인데, 그 정보가 거꾸로 를 통제한다. 이런 에게서 뇌를 빼면 시체 또는 좀비다.

 

이 책을 읽다가 멀쩡한 를 잃어버릴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의 뇌를 인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생각의 틀을 바꾸는 사고 전환이다. 뇌는 신체의 한 기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온전히 활용해야 할 소중한 대상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자신의 뇌를 어떻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나의 뇌 속에 있는 숱한 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하나씩 걷어내면, 그동안 살면서 의식하지 못한 본질적 자아를 발견한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의 여정은 자신을 성찰하는 행위. 뇌의 본질적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온갖 정보 속에 덧씌워진 를 올바르게 보는 길이다.

  

 

 

[1]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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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뇌과학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비판하는 데서부터 인지부조화 그리고 실수에 대한 주제까지... 저두 이 분야의 책을 주섬주섬 모으다 보니 책의 주제가 한 3부류 정도 나눠지는 듯합니다. 어쨌거나 일독하면 매우 유익한 책들인 것만은 분명하고 읽고 나면 내가 아주 유식해진 기분이 들곤하는 책들이죠~^^

cyrus 2017-06-14 20:04   좋아요 0 | URL
한 번 본 지식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도 뇌가 일으키는 자기정당화 경향인 것 같습니다. ^^

2017-06-14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23:3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인간이 다가 오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뇌의 발달에서 비롯된 인간 고유의 사고 행위입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 방식을 늘 생각해야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어요. 이 모든 일이 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죠. ^^

AgalmA 2017-06-15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제 참 잘 지은 듯ㅎ
생각 좀 한다하는 분들 이 문장 응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나 봐요.
바바라 크루거 -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 등등ㅎ

cyrus 2017-06-15 09:46   좋아요 0 | URL
바리에이션이 많은 명언입니다. 아무나 끼워 맞춰도 문장을 만들 수 있어요. ^^
 
초판본 주홍색 연구 - 188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아서 코넌 도일 지음, 송성미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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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쪽에 아서 차펜티어, 해군 중사입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 해당하는 원문은 “Arthur Charpentier, sub-lieutenant in Her Majesty’s navy”입니다. ‘sub-lieutenant’해군 중위를 뜻합니다. 중위는 위관급에 속하는 군대 계급이며, 중사는 부사관 계급입니다. 영국 해군 중사는 ‘Petty Officer’입니다. 28쪽에 멘델슨의 <무언가>’가 언급된 문장이 있습니다. 멘델슨은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Mendelssohn)의 영국식 발음입니다. 88쪽에 오역이 있지만, 문장이 읽기 편해서 대체로 만족할 만합니다.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실린 시드니 패짓(Sidney Paget)의 초판본 삽화뿐만 아니라 다른 판본에 있는 삽화도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판형이 작아서 삽화 크기도 작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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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20: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 글을 참고하셔도 좋습니다. 오역 문장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요즘 저는 홈즈 전집 번역본들을 살펴 보고 있습니다. 제가 전문 번역 일을 하지 않아서 오역을 지적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번역에 대한 제 의견을 보시게 되면, 비판적인 첨언을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5월 17일에 작성된 글에도 ‘sub-lieutenant‘ 오역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sub-lieutenant‘를 ‘중사‘로 오역한 책이 더 있어요.

※ http://blog.aladin.co.kr/haesung/9343606

2017-06-14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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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 먹자!” 아기가 징징대고 떼를 쓰다가도 과자 하나만 주면 만사 오케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어른들도 까까를 참 좋아한다. 까까는 과자가 아니다. 어른들의 까까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까는 행위를 의미한다.나는 깔 거야. 빨갱이 정치인을 깔 거야.” 박사모는 까까를 엄청 좋아한다. 그들은 ‘좌파 까기 인형이다. 좌파 까기 인형은 진보 정치인들을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여 빨갱이딱지를 붙인다. 박사모의 집단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형의 모습과 같다. 여전히 수인번호 503’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정치가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될수록 까까를 찾는 어른들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정치 잘 모릅니다. 까는 것만 잘할 뿐이죠.” (5)

 

서민적 정치의 머리말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이 말은 서민적 정치의 저자 서민 교수가 밝힌 솔직한 고백이다. 이 사회에 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 나도 그렇다.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모른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내버려 두면 무식(無識)으로 직결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치가 뭔지 전혀 모르고 정치인을 까기만 한다. 정치인을 까면 정치 무식자 소리를 듣지 않는다. 정치를 더 모를수록 여론 주도층의 분위기에 쉽게 빠져든다. 내 주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명의 정치인을 까기 시작하면, 눈치껏 따라 한다. 정치인을 까는 것을 정치적 식견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정치를 몰라서 근거도 없이 정치인을 까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감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야구에서도 정치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망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누가 감시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관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판의 관중, 즉 유권자들은 야구경기의 관중들과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승패만이 중요하다 보니 자기 팀이 부정한 방법을 쓰고, 그들과 결탁한 심판이 눈감아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7~8)

 

정치판은 정치인들만 짜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이 내 손으로 권력을 선택해서 바꿀 수 있어야 민주적 정치가 정착된다. 그러나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박사모처럼 일편단심 응원부대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숙한 시민의 노력이다.올바른 사회에서는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할 수 있고, 어려운 사회 문제를 만나면 이념을 초월해서 협력할 수 있다. 반면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선거를 자신의 앞날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도박으로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 생명을 걸고 선거 운동에 임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낙선이란 굴욕적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거 구도에 불리한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반전을 꾀하려고 극언(極言)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대선에 이기지 못하면 보수 우파들이 한강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로서 그의 극언은 불쾌하다. 왜 내가 한강에 빠져야 하는가.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은 이념 하나로 똘똘 뭉친 집단에서 나타나는 심리이다. 낙선 후보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한강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치인의 극언은 그저 웃고 지나갈 말이 아니다. 다음 선거에도 이념 세력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어필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선거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되는 국민의 소중한 선택이 아닌 세력의 운명이 결정되는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정치인과 지지 세력들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다. 다음 대선에 이기려고 여당을 까기 시작한다. 근거 없는 소문을 동원해서 비난을 일삼고,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탄핵하자는 소리까지 한다. 우리의 정치권은 정치 게임을 원하는 정치꾼에 의해 심각히 오염되었다. 정치꾼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의무는 팽개쳐 놓고 권한만을 행사하기 위하여 아전인수 격으로 행동한다. 본래 염불에는 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있으니 인간적인 기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가 진행되는 광장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과거를 반추하는 동시에 뼈아픈 교훈을 확인한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촛불로 상징되는 거리의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30)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다고 해서 정치 보는 눈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은 대중이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했지만, 유권자인 대중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현실을 오판한다고 지적했다. 무지를 먹고 사는 국민이 무섭다. 이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면 책임을 회피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높아지면 그들의 마음은 미움과 증오를 넘어 무관심과 냉소로 가득 차게 된다. “정치판이 가장 썩었다며 모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한 뒤 정치판과 선거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나이든 기성세대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무관심이 제2의 일베, 박사모를 만들어낸다. 서 교수는 서민적 정치를 하기 위한 제안으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에서 찾고,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불행하게도 인터넷에서 정치인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민(庶民)’이다. 인터넷에서 불평을 늘어도 세상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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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10:24   좋아요 0 | URL
비난과 비판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비난은 흑색선전의 논리에 가깝습니다. 비판은 근거가 충분해야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transient-guest 2017-06-14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컨텐츠가 있어야 논쟁도 가능하죠. 그런데 극으로 달리게 되면 사실 좌나 우나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어야 하죠. 다만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문제를 보면 우로 워낙 기울어진 탓에 논객을 자처하는 수준 낮은 자들이 너무 많았고 이들과 논쟁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로지 비난하고 욕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와 토론은 아주 중요해요. 요즘 저희 아버님이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고 세월호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으시면서 조금씩 비전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오스기 사가에 자서전을 읽으면서 받으신 것 같지만요.ㅎㅎㅎ 꾸준한 독서와 토론이 중요하다는 예라고 봅니다.

cyrus 2017-06-14 10:30   좋아요 1 | URL
책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편견과 아집에 둘러싼 사람은 책을 읽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책을 오독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불리해지는 입장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합니다.

레삭매냐 2017-06-1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다른 책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빌렸네요.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정독
하면 바로 다 읽을 수도 있지만 쉬엄
쉬엄 읽고 있답니다.

cyrus 2017-06-14 15:16   좋아요 1 | URL
글의 장르가 정치 칼럼이다 보니 교수님 특유의 유머러스한 면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전에 나온 책들과 비교하면 글의 분위기가 진지했어요.

yamoo 2017-06-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마태우스 님이 전방위적으로 책을 내고 계신 듯합니다..ㅎㅎ

cyrus 2017-06-14 20:06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이 《소설 마태우스》 같은 소설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생충 문학의 부활을 고대합니다. ^^

자강 2017-06-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고 진지하게 봤습니다 역시 서민 작가님~

cyrus 2017-06-15 18:47   좋아요 0 | URL
다음 신작은 재미있고, 웃긴 내용이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