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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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독서감상문 대회에 출제한 글입니다.

 

 

 

기초과학 연구 환경이 척박한 이 땅에서 로봇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즘처럼 뜨거운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언론에선 로봇 산업을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차세대 미래 산업이라며 연일 치켜세운다. 대중의 상상력은 온갖 궂은일을 대신해주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에 나오는 인간형 로봇을 꿈꾸고 있다. 그 즐거운 공상 속에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려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인간이 기계를 발명하게 된 계기는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일, 안드로이드(Android)는 기술 발전의 꼭대기에 이르는 것이 된다.

 

안드로이드도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인간 생활은 더 윤택하고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듯이 안드로이드 산업에도 그림자가 어려 있다. 그 그림자는 정보사회로의 급격한 이행 중에 경험했던 대량실업의 공포다. 몇몇 학자는 안드로이드의 등장으로 사람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회사와 공장들이 속속 생길 것을 경고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먼 미래에 인간과 신이 결합한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지구에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한다. 인류에 행복을 선물할 거로 기대했던 데이터가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하라리는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꼭 예언은 아니라며,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선택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몰락한 인류 대신 안드로이드가 지배하는 세계는 공포영화보다 더욱 심각한 현장이 될 수 있을까? 하라리의 전망이 남긴 찝찝한 뒷맛을 지우고 싶을 때 시나리오 작가 닉 켈먼(Nic Kelman)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푸른지식, 2017)을 읽으면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 이다. 잭이 사는 세상은 인류와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미래 사회이다. 안드로이드 주제에 여성 인간을 사귀기도 한다. 닉 켈먼은 과감한 역발상으로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두 개의 이야기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하나는 잭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의 인간 관찰 보고서다. 편집 방식 때문에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탄생의 비밀을 추적하는 잭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말이 몹시 궁금해진다. 잭은 처음에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눈은 정확하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선택은 대부분 비합리적이다. 잭은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 인간의 약점까지 따라 한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안드로이드가 약점이 많은 인간이 되기 위해 흉내 내는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잭은 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걸까? 재미있게도 잭은 안드로이드야말로 인간보다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드로이드에 관한 사람들의 환상은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인류를 멸종시키거나 인류를 대체할 거라는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기계들이 얼마나 엉성한 것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파괴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지.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야. 우리도 사람처럼 연약한 존재란 말이야. 아니, 사람보다 더 연약할지도 몰라. (11~12)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와 마주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이성적으로 똑똑한 결정을 내린다고 자부한다.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AI 로봇이 상용화되는 미래를 원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깊숙이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인간이 엄청 똑똑한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우습다. 아직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은 안드로이드 제작 기술에 벌벌 떠는 인간의 모습도 좀 웃기긴 하다.

 

인간 관찰 보고서는 직업, , 사랑, 종교, 문화 등 여러 가지 삶의 방식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것은 안드로이드를 위한 훌륭한 처세술이다. 인간으로 살고 싶은 안드로이드는 이 보고서를 읽고, 거기에 적힌 내용대로 행동한다. 그렇다고 이 글이 인간 독자가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독자가 인간 관찰 보고서를 읽으면 그 글은 인간 탐구 보고서가 된다. 이 글을 읽고 우리 자신, 즉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안드로이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속에 기술 발전에 집착하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만들려는 욕구는 번식 욕구 다음으로 강하다. 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이런 욕구는 아주 유용한 본능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 지나치게 사람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욕구가 아닌가 싶다. (142)

 

우리 같은 안드로이드가 문자 그대로 사람을 종속시키거나 몰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은 우리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144)

 

더 나은 기술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상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강박의 산물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도저히 예측하지 못하겠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미래의 모습보다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우리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을 광기다. 안드로이드를 만들려는 인간의 시도는 바람직한 도전인가, 아니면 강박에 의한 집단 광기일까. 인간의 온기를 품지 않는 과학기술이 자본의 가치 증식에만 봉사한다면 사회적 경종이 울려야 할 것이다. 그 경종을 제때 울리려면 일단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리뷰의 제목은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구절(“시몬, 너는 좋냐? 낙엽 밟는 소리를.”)을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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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등이 굽은 사나이

(The Adventure of the Crooked Man)

 

 

 

* 원문 :

“Ah, here is Simpson to report.”

“He’s in all right, Mr. Holmes,” cried a small street Arab, running up to us.

“Good, Simpson!” said Holmes, patting him on the head.

 

 

* 시간과 공간사 (구판, 233) :

, 저기 내가 일을 맡긴 심슨이 있군. 심슨의 보고부터 들어봐야겠네.” 좁은 거리에서 한 소년이 우리에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그는 집에 있습니다. 홈즈 선생님.”

잘했네, 심슨!” 홈즈는 만족한 듯 소년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 동서문화사 (중판) :

보게, 심프슨이 보고하러 이리로 오고 있네.”

집에 있어요. 홈즈 씨.” 조그마한 떠돌이 소년이 뛰어와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좋아.”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홈즈는 말했다.

 

* 더클래식 (구판) :

여기일세, 저기 심슨이 보이는군.” 거지 소년이 홈즈를 보자 달려왔다.

지금 집에 있습니다, 홈즈 선생님!”

좋았어, 심슨!” 홈즈가 소년의 등을 토닥였다.

 

* 문예춘추사 :

, 심슨이 보고를 하러 오는군.”

선생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기에 있으니까요.” 꼬맹이 부랑자가 달려와서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다, 심슨!” 홈즈가 그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 현대문학 (주석판, 265) :

, 저기 심프슨이 보고하러 오는군.”

그 사람은 이상 없어요, 홈즈 씨.” 거리의 꼬마 아랍인이 우리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고생했어, 심프슨!” 홈즈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 더클래식 (개정판) :

저기 심슨이 보이는군.” 거지 소년이 홈즈를 보고 달려왔다.

지금 집에 있습니다, 홈즈 선생님!”

좋았어, 심슨!” 홈즈가 소년의 머리를 토닥였다.

 

* 황금가지 (2, 247) :

, 여기 심슨이 보고하러 왔군.”

홈즈 선생님, 그 사람은 집 안에 있습니다.” 작은 거리의 아이가 우릴 보고 달려와서 소리쳤다.

잘했다. 심슨!” 홈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 코너스톤 (개정판) :

저기 심슨이 상황을 알리러 오고 있군.”

별 이상 없습니다, 홈즈 씨.” 부랑 소년이 우리에게 달려오면서 외쳤다.

잘했다, 심슨!” 홈즈가 심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엘릭시르 (273~274) :

, 저기 심프슨이 있군. 보고를 하러 오는 걸 거야.”

그 사람은 여기 있어요. 홈스 씨.” 자그마한 체구의 부랑아가 달려오면 소리쳤다.

잘했다. 심프슨!” 홈스는 소년의 머리를 토닥이며 칭찬을 해주었다.

 

  

 

Comment

pat : 쓰다듬다, 토닥거리다

 

 

 

 

 

 

 

 

8. 그리스 어 통역관

(The Adventure of the Greek Interpreter)

 

    

 

* 원문 :

It was after tea on a summer evening, and the conversation, which had roamed in a desultory, spasmodic fashion from golf clubs to the causes of the change in the obliquity of the ecliptic, came round at last to the question of atavism and hereditary aptitudes.

    

 

* 시간과 공간사 (구판, 277) :

어느 여름 저녁, 홈즈와 나는 차를 마시고 난 뒤 밑도 끝도 없는 잡담을 했고, 이야기의 화제는 마침내 격세 유전과 유전적 소질에까지 미쳤다. 어떤 개인의 특수한 재능이 어느 정도까지 젊을 때의 훈련에 의하는 것인가 하는 게 논점이었다.

 

* 동서문화사 (중판) :

어느 여름날 저녁 때, 차를 마시고 난 뒤 골프 클럽 일로부터 황도(黃道)의 경사도 변화에 이르는 밑도 끝도 없고 껑충 뛰는 식인 종잡을 수조자 없는 잡담을 하고 있는 사이, 화제가 마침내 격세 유전과 유전적 소질에까지 미쳤다. 어떤 개인의 특수한 재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젊을 적의 훈련에 의하는가 하는 게 논점이었다.

 

* 더클래식 (구판) :

어느 여름날 저녁, 홈즈와 나는 식사를 마치고 끊임없이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이야기가 가족력과 유전에까지 뻗쳤다. 우리는 한 사람의 재능이 그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 문예춘추사 :

어느 여름날 저녁, 차를 마시고 난 뒤 나와 홈즈는 골프 클럽 이야기나 23.5도 기울어져 있는 황도 경사도가 바뀌는 원인 등등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화제는 격세유전과 유전적 특성의 문제로 이어졌다. 특정한 재능은 어디까지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또 어디까지가 젊었을 때의 훈련에 의한 것일까 하는 점이 논의의 초점이었다.

 

* 현대문학 (주석판, 309~310) :

어느 여름날 저녁, 차를 마신 후였다. 두서없이 산만하게 흘러가던 대화는, 골프채 얘기에서 황도의 기울기가 변하는 이유로 넘어갔다가, 이윽고 격세유전과 재능의 유전 문제에 이르렀다. 개인의 독특한 재능은 순전히 조상 덕인가, 아니면 초기 학습에 좌우되는가, 이것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 더클래식 (개정판) :

어느 여름날 저녁, 홈즈와 나는 차를 마신 후 끊임없이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두서없는 이야기가 골프채에서 황도 경사의 변화 원인을 거쳐 마침내 격세 유전과 유전적 소질에까지 뻗쳤다. 우리는 한 사람의 재능이 그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유전으로 물려받은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 황금가지 (2, 293~294) :

어느 여름 저녁, 차를 마신 다음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두서없이 산만하게 이어져 골프채에서 황도 경사의 변화 원인을 거쳐, 종내는 격세유전과 유전적 소질의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개인의 특수한 재능에서 어디까지가 물려받은 것이고, 또 어디까지가 교육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 코너스톤 (개정판) :

어느 여름날 밤, 차를 마시고 난 뒤 대화가 이어졌다. 골프채 이야기부터 태양이 지나는 황도의 경사도가 변하는 원인까지 종잡을 수 없는 주제로 산만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결국 격세 유전과 유전성 재능이라는 문제에 이르렀다. 개인의 뛰어난 재능에 가계 혈통이 얼마만큼 기여하고, 어릴 적 교육은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가 토론의 핵심이었다.

 

* 엘릭시르 (320) :

어느 여름날 저녁, 우리는 차를 다 마시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대화는 골프채 이야기에서 황도 경사각이 바뀌는 원인을 오가며 특별한 주제도 없이 오락가락 이어지다가 마침내 격세유전과 재능의 유전 문제에 다다랐다. 개인의 특별한 자질은 어디까지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훈련의 결과인가 하는 문제였다.

 

 

 

Comment :

홈즈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사전과 같은 인물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 삼천포로 여러 번 빠지는 일은 기본이다. [시간과 공간사 구판][더클래식 구판]에 홈즈와 왓슨의 대화 주제를 나타내는 문장(from golf clubs to the causes of the change in the obliquity of the ecliptic”)이 누락되었다.

 

golf club : 골프채, 골프

obliquity : 경사각(傾斜角)

ecliptic : 황도(黃道. 태양의 둘레를 도는 지구의 궤도)

 

 

 

 

 

 

 

 

9. 해군 조약문 / 해군 조약 사건

(The Adventure of the Naval Treaty)

 

  

* 원문 :

“A very commonplace little murder,” said he. “You’ve got something better, I fancy. You are the stormy petrel of crime, Watson. What is it?”

    

 

* 시간과 공간사 (구판, 313) :

흔한 살인 사건이야. 왓슨, 자네가 가지고 온 사건은 좀 더 좋아야 할 텐데. 매우 중대한 사건인가 보군. 뭐지?”

 

* 동서문화사 (중판) :

아주 흔해 빠진 조그만 살인 사건이라네.” 그는 말했다. “자네는 좀 더 굵직한 것을 가져왔을 테지. 자네는 정말 범죄의 바다제비니까 말일세. 어떤 사건인가?”

 

* 더클래식 (구판) :

살인 사건이야. 왓슨, 과연 자네가 가져온 사건은 어떨지 모르겠군.”

 

* 문예춘추사 :

그냥 평범하고 작은 살인 사건일세. 왓슨, 자네는 좀 더 재미있는 사건을 가져왔겠지? 자네는 폭풍을 부르는 바다제비 같은 사람이니까. 어떤 사건인가?”

 

* 현대문학 (주석판, 348~349) :

아주 진부한 살인 사건이야.”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자네는 좀 더 나은 사건을 물어 온 모양이군. 자네는 범죄 사건을 물어 오는 바다제비야, 왓슨. 그래, 무슨 사건이지.”

 

* 더클래식 (개정판) :

아주 평범한 살인 사건이야, 왓슨. 자네는 더 나은 사건을 가져왔겠지? 자네는 사건을 물어오는 바다제비잖아. 어떤 사건인가?”

 

* 황금가지 (2, 331) :

아주 평범한 살인 사건이지. 그런데 자넨 좀 더 그럴듯한 사건을 가져온 것 같군. 왓슨, 자네는 사건을 물어다 주는 바다제비일세. 이번엔 뭔가?”

 

* 코너스톤 (개정판) :

아주 진부한 살인 사건이야.” 홈즈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뭔가 더 나은 일을 가져온 거지? 자네는 제비처럼 사건을 물어 나르니까. 그래, 이번에는 뭐야?”

 

* 엘릭시르 (361) :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살인 사건이지. 그런데 자네가 이보다 더 좋은 사건을 가져온 것 같군. 자네 주변에는 항상 사건이 일어나잖아, 왓슨. 이번에는 무슨 사건인가?”

    

 

 

Comment :

 

 

 

 

 

 

 

 

 

 

 

 

 

 

  

* J. 스티븐 랭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들녘 · 2007)

    

 

‘stormy petrel’은 관용어다. 직역하면 폭풍을 부르는 바다제비가 된다. 바다제비는 바다 표면 위를 살짝 스치면서 날아가는 습성이 있다. 고대 사람들은 바다제비가 나는 모습을 보면서 물 위를 걷는 예수의 기적이 떠올렸을 것이다. 성서 마태복음에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따라 하다가 실패한 베드로(Peter) 이야기가 나온다. ‘stormy petrel’는 베드로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J. 스티븐 랭)

 

 

 

 

 

 

 

 

 

 

 

 

 

 

 

  

* 강준만 교양 영어사전 1(인물과사상사 · 2012)

    

 

옛날 선원들은 바다제비를 폭풍이 나타나는 징조를 알려주는 새로 여겼다. 그래서 ‘stormy petrel’나타나면 사건이 일어나는 사람’,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뜻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강준만)

 

홈즈는 사건을 해결하는 일에 재미가 들린 인물이다. 그래서 홈즈는 하숙집을 방문한 왓슨이 반가워서 사건을 물어다 주는 바다제비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시간과 공간사 구판]을 번역한 정태원 씨는 ‘the stormy petrel of crime’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의역했다. [더클래식 구판] 번역은 홈즈가 사용한 관용어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사실은 항상 나타날 때마다 사건이 일어나는 엄청난 녀석이 따로 있다. 그 이름은 코난. 탐정이다.

 

 

 

 

 

10. 마지막 사건

(The Adventure of the Final Problem)

 

    

 

* 원문 :

“This morning the last steps were taken, and three days only were wanted to complete the business. I was sitting in my room thinking the matter over, when the door opened and Professor Moriarty stood before me.”

 

 

* 시간과 공간사 (구판, 371) :

오늘 아침에 마지막으로 할 일을 마쳤고, 3일만 있으면 모든 일이 끝나게 되어 있었어. 그런데 방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모리아티가 내 앞에 나타난 거야.”

 

* 동서문화사 (중판) :

오늘 아침에 마지막 짜임이 갖추어져서 이제 일의 완성에 앞으로 3일간이 필요할 뿐으로 되었네. 내가 방에 앉아 이 사건을 여러 모로 생각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눈앞에 몰리아티 교수가 서 있지 않겠는가.”

 

* 더클래식 (구판) :

오늘 아침에 마지막 단계를 끝냈고, 이제 삼 일만 더 지나면 모든 게 마무리되지. 그런데 내 사무실로 누가 들이닥쳤는 줄 아나? 바로 모리어티였어.”

 

* 문예춘추사 :

오늘 아침에 나는 최후의 수단을 썼어. 이제 사흘 후면 모든 것이 끝날 판이었지. 그래서 나는 내 방에 들어앉아 이 사건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모리어티 교수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 현대문학 (주석판, 410) :

오늘 아침 최후의 조치가 취해졌고, 이제 일이 완결되는 데에는 딱 사흘이 남았어. 그런데 오늘 내가 방에 앉아 이 문제를 곱씹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모리아티 교수가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난 거야.”

 

* 더클래식 (개정판) :

오늘 아침에 마지막 조치를 했고 이제 삼 일만 더 지나면 모든 게 마무리된다네. 그런데 오늘 내 방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모리어티가 내 앞에 나타난 거야.”

 

* 황금가지 (2, 398) :

나는 오늘 아침에 마지막 포석을 놓았지. 이제 사흘간 기다리기만 하면 상황이 종료될 참이었네. 그런데 아침에, 곰곰이 그 생각을 하면서 방에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모리어티 교수가 나타났네.”

 

* 코너스톤 (개정판) :

나는 오늘 아침에 마지막 조치를 취했고, 이제 단 사흘만 기다리면 일이 완전히 마무리될 거야. 그런데 내 방에 앉아서 이번 일을 다시금 곱씹고 있는 도중에 문이 덜컥 열리더니 모리아티 교수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 엘릭시르 (433) :

마침내 오늘 아침 마지막 조치를 취했네. 앞으로 사흘이면 모든 일이 끝날 걸세. 내 방에서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모리아티 교수가 보이지 뭔가.”

 

 

 

 

 

 

* 원문 :

‘You have less frontal development that I should have expected,’ said he, at last. ‘It is a dangerous habit to finger loaded firearms in the pocket of one’s dressing-gown.’

    

 

* 시간과 공간사 (구판, 371) :

일의 진행이 내 기대에 못 미치는군요.’ 마침내 모리아티가 입을 열었지. ‘가운 주머니 속의 장전된 권총에 손을 갖다대는 건 위험한 짓이오.’

 

* 동서문화사 (중판) :

생각했던 것보다 두뇌의 발달이 모자라는 사람이군요.’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네. ‘가운의 주머니 속에서 장전한 권총을 만지작거린다는 건 위험한 습관이지요.’

 

* 더클래식 (구판) :

일은 잘 되어 갑니까?’ 모리어티가 말했어. 나는 극도의 위협감을 느꼈다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가운 주머니에 넣었지. 하지만 모리어티는 그걸 알아챘어.

 

* 문예춘추사 :

자네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군. 실내복 주머니 속에서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니, 위험한 습관이야.’

 

* 현대문학 (주석판, 412) :

자네 전두골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니 뜻밖이군.” 그가 마침내 말했어. “실내복 주머니에 장전된 화기를 집어넣고 만지작거리는 건 위험한 버릇이야.”

 

* 더클래식 (개정판) :

생각만큼 전두골이 발달하진 않았군.’ 마침내 그가 말했어. ‘자신의 가운 주머니에 장전된 총을 넣고 만지작거리는 건 위험한 습관일세.’

 

* 황금가지 (2, 399~400) :

예상보다는 전두골이 덜 발달하셨군.’ 교수는 마침내 입을 열었네. ‘그런데 실내복 주머니에 장전한 총을 집어넣고 만지작거리는 건 위험한 습관이지.’

 

* 코너스톤 (개정판) :

자네는 생각보다 전두골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군.’ 마침내 그자가 말문을 열었어. ‘실내복 주머니에 장전한 화기를 넣고 만지작거리는 건 위험한 버릇이네만.’

 

* 엘릭시르 (434) :

내 기대보다 전두골이 덜 발달했군. 실내복 주머니에 장전된 총을 만지작거리는 습관은 위험하다오.’

 

 

Comment :

모리어티의 말(‘You have less frontal development that I should have expected,’)19세기에 유행했던 골상학과 관련되어 있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의 형태를 통해 인물의 성격 그리고 범죄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근거로 범죄자 얼굴의 특징을 찾는 연구를 시도했다. 골상학자들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전두골이 발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리어티는 홈즈의 전두골을 비난하면서 기선 제압을 시도한다. [시간과 공간사 구판][더클래식 구판]의 번역문은 원문의 의미와 완전히 다르다. 의역을 시도한 문장으로 보인다. 머리가 둔한 사람(전두골이 발달되지 않은 사람은 둔하다)은 일 진행이 더디기 때문이다.

 

 

 

 

 

* 원문 :

Tell Inspector Patterson that the papers which he needs to convict the gang are in pigeonhole M.,done up in a blue envelope and inscribed “Moriarty.”

 

* 시간과 공간사 (구판, 392) :

모리아티라고 적힌 푸른 봉투 안에 모리아티 일당을 유죄판결로 소탕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다 넣어 서류함 ‘M’항목에 두었으니 패터슨 경감에게 전해 주게.

 

* 더클래식 (구판) :

모리어티라고 적힌 봉투에 그와 그 일당들을 유죄 판결을 내릴 증거가 들어 있네. 그걸 패터슨 그레고리 경감에게 전해 주게나.

 

 

Comment :

페터슨 그레고리 경감은 누구?

 

 

 

 

 

 

 

* 원문 :

I shall ever regard as the best and the wisest man whom I have ever known.

    

 

* 시간과 공간사 (구판) :

문장 생략

 

* 더클래식 (구판) :

문장 생략

 

* 문예춘추사 :

셜록 홈즈는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현명한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 현대문학 (주석판, 438) :

홈즈는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선하고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내 마음에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 더클래식 (개정판) :

내 기억 속에서 홈즈는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현명한 남자일 것이다.

 

* 황금가지 (2, 423) :

홈즈는 내게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 코너스톤 (개정판) :

홈즈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가장 선하고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엘릭시르 (458) :

홈스는 언제까지고 내게 살면서 가장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Comment :

<마지막 사건>의 마지막 문장. 떠나간 친구에게 보내는 왓슨의 찬사는 홈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독자들을 울리게 만든다.

 

[동서문화사]의 괴랄한 번역은 슬픈 분위기를 반감시킨다. 도대체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망쳐 놓다니.

 

 

가공할 만한 괴수에 관해서는 재판 중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 문장에서 내가 그의 경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어째서냐 하면, 그것은 그를 옹호하려고 하는 지각없는 인간들이 존재하여 그들이, 내가 내 평생에 알게 된 가장 선량하고 가장 현명한 인간이라고 영원히 간주할 인물에게 공격을 가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몰리아티의 이름을 결백한 것으로 남기고자 노력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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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4 17:28   좋아요 0 | URL
네, 번역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일도 어렵지만, 다른 나라의 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힘든 작업에 감히 토를 다는 제가 우습기도 합니다. ^^;;

카스피 2017-07-04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예전에 한 3개정도 출판사의 홈즈관련 번역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님은 많은 출판사를 비교해 주셨네요.그나저나 영문번역이 모두 각각인것을 보면 역시 남의 나라 글을 우리글로 번역하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패터슨 그레고리는 누구?라고 코멘트를 하셨는데 셜록홈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경찰관련 인물들중의 하나가 그레고리 경감이 있는데 해당 단편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소설에 그레고리 경감이 등장해서 그렇게 번역한것이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7-07-05 12:54   좋아요 0 | URL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권에 ‘패터슨 경감’에 관한 주석 항목이 있어요. 어떤 학자는 패터슨 경감이 모리어티가 심어놓은 스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무튼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원문에 경감 이름이 ‘패터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패터슨이 그레고리 경감의 동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오후즈음 2017-07-05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런걸 볼때마다 cyrus님에게 감탄!! 다른 나라 와서 한정된 언어로 얘기 할때마다 우리 나라만의 그 느낌의 말을 찾아 전달 할 수 없을때가 있더라구요. 번역도 그런 부분에서 오류들이 있는것 같아요.

cyrus 2017-07-05 12:58   좋아요 0 | URL
번역을 어설프게 하면 인물의 말투도 이상하게 됩니다. 홈즈가 자신의 대학교 동창인 사건 의뢰인에게 높임말을 쓰는 번역본이 있습니다. ^^;;

Finiteness 2019-09-30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잘 읽고 있는데 혹여 오해하는 바가 있으신 거 같아 댓글을 남깁니다.
three days를 사흘로 해석한 걸 틀렸다고 했고, 3일로 한 건 옳다고 표시해뒀습니다. 하지만 사흘은 3일과 동일한 뜻입니다. 4일과 동의어는 나흘입니다.
또한 이 오해로 인하여 https://blog.aladin.co.kr/haesung/9422406에서도 실수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cyrus 2019-10-01 17:38   좋아요 0 | URL
오류를 지적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사흘’과 ‘나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어요.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는 건데 제가 방심했습니다.
 
끌리는 박물관 - 모든 시간이 머무는 곳
매기 퍼거슨 엮음, 김한영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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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히 아꼈던 책 한 권이 있다. 오래돼서 낡고 해어졌지만, 정든 거였다. 어렸을 때 읽은 책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보물 상자처럼 남아 그 지나간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시절을 잊고 싶지 않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그것은 흔한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 스며든 특별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은 연락이 뜸한 친구나 옛 연인의 안부가 새삼 궁금하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물건은 나만의 사연을 간직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나중엔 버리자니 아깝고 당장 쓰일 것 같지는 않은 물건을 죽을 때까지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져 온다. 결국, 조금 아깝다 싶어도 과감히 버리게 된다.

 

자다가 일어날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물건들을 원하게 되면 과거에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의 자리가 위태해진다. 그들이 놓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놓일 자리가 없어진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추억이 망각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망각에 이른다. 그렇지만 망각으로부터 추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세태가 변화하면서 사라진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박물관(museum)’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진열함으로써 적어도 기록과 흔적을 남기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끌리는 박물관(예경, 2017)이라는 책을 읽으니까 박물관이 있어야 할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끌리는 박물관은 박물관에 얽힌 추억과 상념을 진솔하게 표현한 스물네 명의 작가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글은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자매지 <인텔리전트 라이프(Intelligent Life)>에 연재되었다. 스물네 편의 글은 <인텔리전트 라이프>의 문학 담당 편집장인 매기 퍼거슨(Maggie Ferguson)이 선별했다.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도 기획물 연재에 참여했다.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물건들은 아날로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화석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특별하다. 과거의 물건이 미래의 괜찮은 물건으로 간주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로어 이스트사이드 주택 박물관(Lower East Side Tenement Museum)화려함이라곤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20세기 초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을 세 번째로 방문한 로디 도일(Roddy Doyle)은 박물관에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종종 낡고 방치된 집들을 둘러보고 다니며 그곳을 내 집으로 삼아 여기저기 수리해서 산다고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곳에는 방치에 딱 들어맞는 이유, 심지어 사람을 매혹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이건 결코 방치가 아니다. 존경이다. 여기 사람이 살았다. 여기 사람의 삶이 있다. (26)

 

대부분 사람은 값비싸고, 모양새가 화려하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야말로 박물관에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미술사적인 작품을 많이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서 유독 관람객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루브르의 심장부에 고고한 자세로 서서 미소 짓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모나리자. 가장 많은 관람객이 가장 오래 머물다 가는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연평균 500만 명이 몰린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소에서 그녀를 가까이서 보기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모나리자라는 신비스러운 여인의 삶을 상상해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가깝지만, 너무나 먼 사람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은 아스라한 역사만큼이나 신비하고 손때가 묻은 만큼이나 정겹다. 박물관에 보관된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때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았을 거야, 저렇게 살았을 거야,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여유롭다. 현대의 사람과 과거 사람의 물건이 만났을 때 박물관은 살아있다.

 

박물관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앨리슨 피어슨(Allison Pearson)은 자신이 사랑하는 장소인 로댕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라면 하이힐을 신고 달릴 수 있는 여자다.[1] 그녀는 로댕 미술관이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라는 사실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시인 돈 패터슨(Don Paterson)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을 찾는다. 그는 힘들 때마다 코로의 그림 속 호수로 피신한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코로의 그림이 진정제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박물관은 상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안락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 장소를 만나면 계속 머물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특별한 곳을 아무에게나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곳에 머무르는 현재의 시간은 앞으로 영영 잊히지 않는 과거의 추억이 된다.

 

요즘 몇 년 새 우리 주변엔 추억의 물건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옛날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마치 빛바랜 앨범 사진을 꺼내 들고 지나간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싶어서일까. 세상의 속도가 한없이 빨라지면서 조금은 뒤를 돌아보고 천천히 가고 싶은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냥 가볍게 지나치는 것들도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그 앞에 종일이라도 머물고 싶어진다. (앤 패칫, 133)

 

추억의 물건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자신만의 보물을 찾으려고 한다. 박물관에 가면 추억의 물건,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보물 모두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그곳은 매순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늘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다.

    

 

 

[1] 앨리슨 피어슨이 쓴 베스트셀러 제목이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사람i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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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4 11:12   좋아요 0 | URL
루브르의 명성을 과시하려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통계일 수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03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사진 특히 흑백 사진을 보면 칼라 사진보다 더 아련함을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사람들이 ‘찬란한 슬픔‘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7-04 11:15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표현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가 된 현재가 소중하고, 찬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AgalmA 2017-07-0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미유 코로 그림 보면 늘 치유받는 기분이 들어요ㅎㅎ 모나리자 보다 저는 코로 그림이 더 좋음^^

cyrus 2017-07-04 11:16   좋아요 0 | URL
저도요. 모나리자는 너무 흔해요.. ㅎㅎㅎ
 

 

 

열린책들 출판사 초대전 이벤트(‘내 서가 속 열린책들’)가 작년 2월에 진행됐다. 이벤트 적립금 5,000원을 받으려고 집에 모셔둔 책들을 공개했다. 생각보다 많았다.

 

[열린책들 출판사 책이 좀 많습니다] (2016221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252655

 

이벤트가 종료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열린책들 출판사의 책을 더 샀다. 10권이다. 여기에 미메시스 출판사에 나온 책도 포함되어 있다. 책을 엄청 많이 사는 병적인 버릇 때문에 구매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구매한 책들 전부 중고서점(대구 동성로점, 대구 상인점)에서 만났고, 절판 · 품절된 것들이다. 대부분 사놓고 안 읽은 것들이다. 줄거리 소개와 평()은 생략한다. 이런 거 진지하게 쓰면 안 볼 거잖아!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희소성을 기준으로 10권의 책을 순위별로 매겨봤다. 희소성이 높은 책일수록 순위가 높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원래 프레스21’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이었다. 1997년에 총 2권으로 분권 되어 나왔고, 2001년에 합본으로 다시 나왔다. 2001년에 나온 합본마저 절판되었다가 2004년 세계문학 소개에 힘을 쏟던 열린책들 출판사의 버프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했다. 알록달록한 색상을 이용해 표지를 예쁘게 만들기로 정평이 난 출판사답게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표지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집에 민음사 판 신곡(2007)이 있다. 그런데 '신곡'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 일이 바로 수백 개의 역주를 읽는 것이다. 책 뒤편에 배치된 역주를 읽으려고 하면 독서의 흐름이 끊긴다. 민음사 판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열린책들 판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갖고 싶은 책을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은 내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요즘 구하기 힘든 열린책들 판 신곡합본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합본이 나온 지 2년 후에 신곡열린책들 세계문학에 포함되면서 총 3권으로 분권 되었다.

 

 

 

 

 

 

합본의 장점은 역주와 해설의 위치다. 본문 바로 옆에 있다. 본문과 해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편하다. 아쉽게도 열린책들 판 신곡에는 삽화가 없다. 삽화만 보고 싶을 땐 민음사 판, 본문을 읽을 땐 열린책들 판을 선택한다.

 

 

 

 

 

 

 

 

 

요즘 국내에서 인기 있는 영미권 작가 중 한 사람이 줄리언 반스다. 반스의 작품을 많이 번역한 출판사가 열린책들이다. 하지만 반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플로베르의 앵무새(2009),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2010)를 제외하면 나머지 작품들은 절판되었다. 요즘은 다산책방 출판사가 반스의 최신작들을 번역하고 있다. 하드커버(양장본) 표지가 없는 열린책들 출판사의 책은 화려한 깃털이 하나도 없는 수컷 공작새와 같다. 구하기 힘든 책이라도 표지가 없으면 허전하다. 열린책들 출판사에 나온 반스의 작품이 그렇다. 책장에 영원히 보관해두고 싶을 정도로 디자인이 아기자기하다. 레몬 테이블을 보라. 표지만 보는 데도 상큼미가 팍팍 터진다. 그렇게 cyrus는 넋 놓고 표지만 바라보는 바람에 본문을 한 번도 못 읽었다고 한다…‥

 

 

 

 

 

  

 

 

 

 

 

 

 

 

 

출판사를 먹여 살린 작가로서 장 자크 상뻬가 둘째가라면 서럽다. 상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출판사가 자랑하는 특급 에이스다. 그런데 특급 에이스로서 받는 출판사의 대우가 영 시원찮다. 에세이 여행의 책(2002)를 제외한 베르베르의 책들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지만, 상뻬의 책들 대부분은 절판 크리를 맞았다. 2015년에 나온 돌풍과 소강품절이다. ‘절판’, ‘품절판정에 벗어나지 않는 한 상뻬의 책은 엄청 비싼 중고가로 거래될 것이다. 이러면 상뻬의 책은 귀해서 몸값이 오른 특급 에이스로 비유할 수 있겠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의 원저는 1987년에 나왔다. 열린책들 & 미메시스 출판사 관계자님들. 이 책 출간 30주년 기념으로 특별판 한 번 만들 생각 없으신지요?

 

 

]

 

 

 

 

 

 

‘19금 구독 불가판정을 받은 책을 모으는 별난 취미가 있다. 카트린 M의 성생활은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카트린 밀레가 열여덟 살부터 겪은 자신의 성생활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세욱 씨는 번역하느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책 속에 묘사된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 직접 저자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저자는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기 위해 이 씨에게 공개할 수 없는 사진을 보내왔다고…‥

 

(출처 : [지루한 번역 논쟁은 그만!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프레시안, 201372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2&aid=0001993974

  

 

 

 

 

 

 

 

 

90년대 초의 열린책들 출판사는 러시아 문학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던 곳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푸시킨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국내에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까지 소개했다. 러시아 현대소설 선집1권은 러시아 작가 열두 명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아는 작가는 솔제니친 단 한 명뿐이다. 열린책들 출판사 초창기에 나온 책들, 특히 러시아 문학 작품 번역본들은 구하기 힘든 희귀템이다.

 

 

 

 

 

 

 

 

아작 출판사가 부활시킨 코니 윌리스의 명성을 지켜보는 열린책들 출판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솔직히 말해서 배가 좀 아팠겠지. 2015년에 화재 감시원(아작)에 나오기 전만 해도 개는 말할 것도 없고둠즈데이 북SF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하던 절판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편 화재 감시원’, 둠즈데이 북, 개는 말할 것도 없고순으로 이어진 옥스퍼드 시간여행시리즈가 모두 나오길 간절히 원했던 SF 마니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 이제 남은 건 개는 말할 것도 없고둠즈데이 북이다. 아작 출판사가 이 두 작품을 복간할 계획이 있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려보자. 기다리는 자에게 복, 아니 북(book)이 오나니.

 

(출처 : [선생님, 코니 윌리스 믿으세요] 아이즈, 20166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465&aid=0000002231

  

 

 

 

 

 

 

 

 

 

 

책의 주제와 가격, 판형, 디자인 등 이 책은 모든 면에서 특별하기 때문에 1위로 선정했다. 누드사진 : 예술과 기법은 누드사진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다. 누드사진의 역사, 누드사진을 촬영하는 데 이용하는 기법 그리고 누드사진을 촬영할 때 알아두면 좋은 사소한 팁(Tip) 등이 소개되어 있다. 누드사진 촬영이 궁금하거나 처음인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참고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당연히 크고 아름다운 누드 사진들이 수록되어있다.

 

이 책은 알라딘 직배송 중고로 구입했다. 중고가는 17,100. 이 책의 정가는 38,000원인데, 절판되기 전에는 60% 할인된 15,200원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중고책 판매자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책정한 책들이 알라딘 직배송 중고로 판매되면 착한 가격이 된다. 그런데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이 책을 샀을까? 굳이 내가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다 짐작하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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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2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3 15:13   좋아요 1 | URL
제일 찍기 힘든 사진이 누드사진일 것 같습니다. ‘예술‘을 위한 누드사진이 ‘음란‘한 사진으로 오해받는 일이 종종 생겨요.

hellas 2017-07-0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을 한번도 못읽은 레몬 테이블;ㅂ;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7-07-03 15:14   좋아요 0 | URL
소설의 주제가 ‘죽음‘입니다. 단편소설집인데 모든 작품에 죽음을 앞둔 노인들이 등장합니다.

stella.K 2017-07-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프랑스 중위의 여자 중고샵에 팔까 생각 중이었는데
고려해 봐야겠군.
카트린 M은 결국 절판이구나.
은근 보고 싶었는데...ㅋ

ㅎㅎ 옛말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던데
공짜도 아닌데 싸면 왜 그렇게 손이 후달리는지...
그래서 난 지지난달 박종호의 오페라 책 샀다는 거 아니니.
백과사전 같은 책을 그것도 두 권씩이나.
물론 박종호 책 사서 후회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사 놓고 보니 이걸 왜 샀지?
좀 아찔하더군.ㅋㅋ

cyrus 2017-07-03 15:18   좋아요 0 | URL
카트린 밀레의 남편이 부부의 성생활을 기록한 책을 썼어요. 그 책도 열린책들에서 나왔습니다.

백과사전 형태의 책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아요. 글을 쓸 때 참고할 수 있는 요긴한 자료가 되거든요. ^^

나와같다면 2017-07-0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UDE PHOTOGRAPHY 스튜디오 아래쪽 조명.. 드라마틱 하고 풍부한데요

cyrus 2017-07-04 17:50   좋아요 0 | URL
사진 찍을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조절하기 힘든 것이 조명입니다. ^^

곰토낑 2017-07-04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 사진을 죽 슬라이딩하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오옷 하고 본문을 들어왔는데.. 그렇네요 손위치가 절묘하네요 (조금실망) 하하하

cyrus 2017-07-04 17:52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찾아오는 분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판단해서 수위가 낮은 누드 사진이 있는 페이지를 공개했습니다. 리뷰를 쓰게 된다면 더 많은 사진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
 

 

 

 

 

 

19세기 영국에 실제로 일었던 이야기입니다. 에드워드 모드레이크(Edward Mordrake)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 태어난 자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족 청년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 뒤에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던 거죠.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청년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청년의 증언에 의하면 밤이 되면 뒤에 붙은 얼굴이 음흉하게 웃거나 무시무시한 내용의 말을 속삭였다고 합니다. 청년은 의사에게 찾아가 악마 같은 머리를 제거해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의사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결국,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청년은 23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모드레이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호사가들은 모드레이크를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불렀으며 머리 뒤에 달린 얼굴을 악마의 얼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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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모드레이크 이야기는 영미권에서 유명한 도시 전설(urban legend)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도시 전설의 출처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1895128, 보스턴 포스트(Boston Post)라는 신문에 모드레이크 이야기가 처음 소개됐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찰스 로틴 힐드레이(Charles Lotin Hildreth)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시인이다.

 

 

 

 

 

힐드레이는 괴물 같은 사람(human freaks)’이라고 알려진 기이한 사례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모드레이크다. 힐드레이는 모드레이크 이야기가 ‘Royal Scientific Society’라는 보고서에 나온 것이라고 출처를 밝혔지만, ‘Royal Scientific Society’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구글에 ‘The Wonders of Modern Science, Boston Post’를 검색하면 모드레이크 이야기가 실린 신문 전문이 나온다. 그리고 괴물체를 묘사한 신문 삽화도 볼 수 있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형 인간을 구경하는 쇼가 유행했고, 구경꾼들은 기형 인간을 괴물혹은 괴상한 동물로 취급했다. 힐드레이의 글은 괴물이 있다고 믿는 호사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모드레이크라고 알려진 기묘한 사진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짜다. 모드레이크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모습을 상상해서 만든 밀랍 인형이다. 흑백사진으로 찍은 탓에 밀랍 인형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질 테고, 여기에 꾸며진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악마의 얼굴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 게르트 호르스트 슈마허 신화와 예술로 본 기형의 역사(도서출판 자작, 2001)

* 낸시 헤서웨이 세계 신화 사전(세종서적, 2004)

* 게르하르트 핑크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예경, 2012)

* 오비디우스 로마의 축제들(도서출판 숲, 2010) 

 

 

 

기형학에서는 한 개의 몸에서 2개의 얼굴을 가진 현상을 안면중복 기형(diprosopus)’이라고 말한다. 일란성 쌍생아의 분리가 불완전할 때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안면중복 기형의 사례가 30여 건에 불과하다.

 

안면중복 기형의 원조(?)야누스(Janus).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만 등장하는 문()의 신이다. 야누스는 문을 뜻하는 ‘Ianua’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오비디우스(Ovidius)로마의 축제들(도서출판 숲, 2010)에 야누스가 등장하며 그를 숭배하는 의식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166~290, 번역본 31~39쪽 참조) 로마인들은 야누스를 신들 중에서 유일하기 자기 등을 볼 수 있는 존재로 생각했다. 고대 로마에는 야누스를 모시는 신전이 많았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 시에는 그 신전의 문이 항상 열려 있었으며, 평화 시에는 문이 닫혀 있었다. 로마 역사상 그 문이 닫힌 적은 딱 한번 있었다고 한다. (로마는 항상 전쟁 중…‥)

 

야누스는 전쟁과 평화’,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이다. 1월을 뜻하는 ‘January’는 야누스에서 파생한 말이다. 한 해의 문을 여는 달이라는 의미와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의미하는 두 얼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말이다. (게르하르트 핑크1월을 뜻하는 단어의 유래가 야누스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257쪽 참조)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그림에 야누스와 유사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제작한 판화 결혼의 어리석음에 나오는 기형 인간은 등이 딱 붙어버린 부부의 모습이다. 남편은 기고만장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 혹은 과부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비웃는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은 절망적이다.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철없는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혼란스러워서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다.

 

야누스의 옛 이름은 카오스(chaos)’였다. 카오스는 원래 입을 벌리다’, ‘하품하다를 의미하는 ‘chaskein’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비디우스, 33) 어쩌면 고야는 오비디우스의 책에 나온 야누스를 모티프로 하여 부부를 묘사했을 수 있다. 그러면 부인이 입을 벌린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이 혼란스러운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상징일 수 있고, 아니면 결혼 생활이 지루해서 하품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남편이 사랑에 빠진 연인의 감정 상태, 아내는 절망적인 이별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모드레이크 도시 전설관련 출처 :

 

1. https://en.wikipedia.org/wiki/Edward_Mordake

 

2. [Edward MordakeA Mystery Solved]

http://hoaxes.org/weblog/comments/edward_mord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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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1211 2017-07-0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글은 항상 잘 연구된 한 편의 짧은 논문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정리되고 깊이가 있습니다.^*

cyrus 2017-07-01 20:32   좋아요 1 | URL
제 글의 특징이자 단점을 잘 알고 계십니다. ^^

2017-07-0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01 20:3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상황에 따라 태세 전환하는 사람들이 무서워요. ^^;;

stella.K 2017-07-0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23살에 자살했다는 것도 지어낸 얘긴가?
한 몸에 얼굴이 둘인 사람 가끔 소개되긴 하던데 분리에 성공했다고 하던데 그거 보면 이상했어.
몸은 하난데 어떻게 분리에 성공했다는 건지? 그럼 둘 중 한 사람은 죽는 거 아닌가?
지금도 인돈가 파키스탄의 어떤 여자 머리가 둘이라던데 분리 안하고 잘 살고 있다던데...

cyrus 2017-07-01 20:37   좋아요 0 | URL
네. 모드레이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인터넷에 저 가짜 사진이 떠돌아 다녀요.. ㅎㅎㅎ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 100%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거예요. 분리 수술이 성공해도 그 이후의 경과를 지켜봐야 해요.

이하라 2017-07-01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담소설 같은 기사라 사람들을 흡인하는 힘이 있었던가 봅니다. 뭔가 아닌데 싶으면 더 믿고보는 인간심리를 이용한 기사인듯 하네요

cyrus 2017-07-02 12:51   좋아요 0 | URL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곰토낑 2017-07-02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진짜인줄 깜박 속았네요! 강병융작가님 소설이 이리 쓰일줄은 ㅎㅎㅎㅎ

cyrus 2017-07-02 12:52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강 작가님의 책 표지를 재미있는 짤로 쓸려하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