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진실

 

 

 

 

 

 

 

 2012년을 여는 첫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올해 같은 경우는 유독 부산스러운 느낌이 든다. 임진년(壬辰年), 그것도 그냥 단순한 용이 아닌 60년 만에 온 흑룡의 해라고 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길하면서도 특별한 해임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용이라는 동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십이지신 중에서 가장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구름과 비를 만들고 물과 바다를 다스리며 자유자제로 자신을 숨기고 또 변신할 줄 아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이나 최상의 비상을 염원하는 고시 준비생들에게 “용꿈 꾸었지?”라며 용기와 희망이 담긴 격려의 메세지를 던져준다. 처지가 어렵다거나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 크게 성공하여 걸출한 인물이 되었을 경우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용꿈 그리고 용의 상징은 진정 좋은 의미의 상스러운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하도 '흑룡의 해'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흑룡'이라는 게 정말 좋은 줄 알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기업들은 흑룡을 이용한 마케팅을 펼쳐 고객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있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용은 '흑룡'뿐만 아니라 백룡, 청룡, 황룡, 적룡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황룡, 청룡과 백룡이야말로 길한 의미를 지닌 반면에 흑룡과 적룡은 불운을 몰고 올 수 있는 '폭룡'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적룡은 반란을 주도하는 역신(逆臣)이라면 흑룡은 백룡도 이기지 못하는 반란을 도모하는 역장(逆將)이라고 한다.

 흑룡의 길한 상징만 부각되는 각종 언론과 기업 마케팅의 홍보 때문에 임진년 흑룡의 무서운(?) 진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다.

 흑룡은 우리 말로 하면 검은 용이다. 검정색에서 발하는 어두움은 부정, 불행과 연관되는 색이다. 그래서 언론과 기업 광고에서 홍보하고 있는 길운을 불러일으키는 흑룡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흑룡이 반란을 일으키는 역장을 의미한다고 했으니 길한 상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임진년에 일어난 역사적 변고

 

 실제로 과거에 흑룡의 임진년에는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다고 한다. 1232년에는 몽골의 제1차 침입으로 인해 고려의 도읍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고려는 또 한 번 몽골의 침입을 받게 되어 몽골와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2012년 종말설까지 다시한 번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2011년 말, 북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남북 관계 그리고 전쟁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어서 2012년의 남북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르놀트 뵈클린 <페스트> 1898년

 

 

 

 

 그런데 임진년은 과연 우리나라에만 역사적인 변고가 많았던 것일까?  필자는 그것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세계사 연표를 통해 임진년에 일어난 세계사적인 변고가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봤다.

 사실 오랜 세계사에 임진년에 일어난 변고가 일어난 해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임진년의 불운과 관련해서 눈길이 가는 흥미로운 연도가 있다면 바로 1352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760년 전인 1351년에는 전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한 해이기도 하다.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의 사회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약 2천 5백만 명 정도의 유럽 인구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갔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거지,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실제로는 흑사병 기간동안 일어난 학살들은 마녀사냥처럼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었다.

 흑사병은 유럽인들의 종교적인 사고에도 영향을 주어,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흑사병으로 심판하니 고행을 함으로써 죄를 씻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당시만해도 흑사병은 세계를 멸망하게 이를 수 있는 '신이 내려주신 무서운 형벌'이었다.

 

 

 

 

 새해 새희망 용솟음치는 해가 되기를... 

 

 요즘 흑룡의 해라고 떠들석하길래 '한 때'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용띠라고 여겨졌던 '88년 용띠'인 필자가 임진년의 흑룡에 대해서 글을 써보게 되었다.

 새해가 시작하는 마당에 2012년 첫 해의 글을 흑룡에 대한 불길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서 글을 보는 분들에게는 내용에 대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은 용기와 희망을 상징하며 힘차게 비상하는 동물로 믿어왔다. 용은 십이지신의 동물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활기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흑룡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들만 일어난다는 법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례들은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는 호사가들이 좋아할 법한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용띠의 해에 역사적으로 큰 획을 긋는 의미있고 좋은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1952년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고 해서 흑룡 임진년과 관련된 역사적 재난으로 보고 있는데, 1952년이 아니라 1950년에 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6.25 전쟁 발발 연도를 모르거나 착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내용과는 반대로 1952년에는 비록 휴전선이지만 2년동안 진행된 6.25 전쟁이 휴전할 수 있는 물꼬를 텄으며 필자가 태어난 1988년에는 6.29 민주화선언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렸으며 동시에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이다. 그리고 2000년에는 15년 만에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으며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글에 다룬 내용만 가지고 벌써부터 2012년에 대한 쓸데없는 기우(杞憂)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진년 올 한해는 모든 사람들이 잦은 용꿈으로 건강하고 늘 행운이 함께하는 다복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8년이 용띠해였군요^^
전 그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ㅎㅎㅎㅎ
cyrus님의 해인만큼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랄께요!!

cyrus 2012-01-03 23:51   좋아요 0 | URL
현맘님도 건강하시고 좋을 일만 가득하길 바라요 ^^

이진 2012-01-0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룡이 그냥 이름만으로도 멋있고, 또 이미지화 하면 포스가 장난아니라서 그러는게 아닐까요 ㅎㅎㅎ 그런데 페스트라... 무섭습니다. 페스트 무척 흥미있어하는 사람인데 저 그 림은 무척 마음에 들어요

cyrus 2012-01-03 23:5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도 맨처음에 흑룡이 길한 상징이라고 해서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답니다. ^^;;

검색창에 '뵈클린'이라고 쳐보시면 제가 소개한 것 이외에도 멋진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이 화가는 '죽음', '환상'을 주제로 한
어두운 표현이 강한 그림을 그려서 유명합니다.

비로그인 2012-01-0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밤에 아놀드 뵈클린의 그림을 보게 되는군요.
어떤 음반 표지에 나와 있던 그림이 생각납니다.

얘기하신 것처럼 흑룡하니, 좀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올해는 좋은 일이 좀 많았음 좋겠네요~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뵈클린의 그림을 표지로 쓴 음반이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레퀴엠 혹은 미사곡의 표지로
사용했을거 같아요 ^^;;

차트랑 2012-01-03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입니다. 더불어 추천도 한 방^^

cyrus 2012-01-03 23:54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

stella.K 2012-01-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내 큰 조카하고 나이가 같은 것 같아.
조카의 정확한 나이도 가물가물 하지만.ㅠ
그렇지 않아도 임진왜란을 생각했는데
올해가 참 의미가 많아 보이네.
잘 살게 되려나? 뿌잉뿌잉~ㅋㅋ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올해는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도 있고 올림픽도 있고요ㅎㅎ
벌써부터 2012년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요 ^^;;

맥거핀 2012-01-0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상이 불순해서 흑룡 하니까 조폭만 연상되는데..흑룡파..;

cyrus 2012-01-03 23:55   좋아요 0 | URL
ㅎㅎ 흑룡파라... 이름만 들어도 포스가 무시무시한데요 ^^
 

 

 

 베르테르의 외사랑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가슴 아픈 사랑은 겪어 봤을 법한 사람들에게도 사랑은 어렵다. 10대든, 40대든 사랑은 정답이 없어 보이는 미로이다. 인간은 미로 속에 펼쳐지는 길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런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용기를 무릅쓰고 미로 속으로 첫 발을 내딛어 본다. 하지만 복잡한 미로 속에 헤매게 되면 영영 탈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위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미로를 즐긴다.

 알지 못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싹 틔어 사랑의 감정으로 형성해보지만 자신의 반려자로 만들기에는 쉽지가 않다. 실연이라는 가슴 아픈 사랑이 낳은 결과를 경험했음에도 인간은 또 다른 상대로부터 사랑을 갈망한다. 미로 속에 갇히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로를 즐기듯이 사랑 역시 그런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정도 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이라는 것을 몇 번 했는지 측정하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겠다.

 UV'Who am I'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누군가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누가 사랑할 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애매하기도 하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몰랐는데 정말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대방에 대한 일편단심적인 애정의 감정만 쏟아 붓다가 실패하고 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런 애정의 감정을 키워나가면서 반려자로서의 관계의 결실을 맺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봐야할지...

 필자는 살면서 전자의 입장만 경험해봤는데 이것 역시 ‘사랑’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개인적인 입장으로 봐서는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외사랑’ 쪽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지만 받아주지 않는 것이 외사랑이다. 상대방이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둘 사이의 사랑이 아닌 일방통행적인 사랑이다. 외사랑으로 인한 실연 역시 짝사랑의 실패처럼 가슴 아픈 결과이지만 그걸 감수하고 극복하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십전팔기 끝에 성공하는 커플도 드물게나마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갈망하더라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가 쉽지 않다.

 

 

 

 

 

 

 

 

 

 

 

 

 

 

 

 

 

 

 

 

 

 외사랑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은 불운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샤를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일 것이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주인공 로테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실의와 좌절 끝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비극적인 젊은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리고 이 불행한 베르테르의 모습 속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젊은 시절의 괴테뿐만 아니라 역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또 다른 인물이 투영되어 있다.

 제3의 인물이란 괴테의 친구 예루살렘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야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괴테는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다시피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 예루살렘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선택하고 말았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베르테르의 모습이 젊은 괴테라면, 소설 결말부에 자살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듯이 오늘날에는 베르테르를 ‘사랑의 감정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무모하게 생을 마감해버린 사랑도 실패해버린 인생 실패자’라는 평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괴테가 살았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베르테르가 경험한 사랑은 젊은 시절 꼭 겪어야 하는 청춘의 일부분이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삶과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심지어 소설 속 베르테르가 입고 있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를 모방하는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베르테르에 대한 동경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퍼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애독했으며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 입을 정도였다. 이런 현상 덕분에 소위 ‘베르테르 효과’라는 자살과 관련된 사회학적 용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삽화 중에서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는 장면, 민음사판 pp 211)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내게 손수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pp 209~210)

 

 

 

 

 죽음의 철문을 두드리다니...  베르테르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편지 속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의 갈망에 허덕이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 그의 결단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괴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낭만주의자답게 사랑의 조건은 오직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간에 오히려 인간의 사랑을 제약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합리적인 규범, 인습적인 제도 그리고 이성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한 베르테르의 자살은 결코 나약한 인생의 실패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죽음으로 승화시켜 이성에 갇혀버린 감정을 해방시킨 진정한 ‘낭만주의자’인 것이다.

 

 

 

 

 

 하이네의 낭만적 아이러니

 

 

 

 

 

 

 

 

 

 

 

 

 

 

 

 

 

 

 

 

 

 그러나 괴테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역시 독일 출신의 시인이었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아픈 경험을 괴테와는 다르게 좀 더 다른 입장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이네라고 하면 간결하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애잔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사랑의 감정을 주제로 쓴 서정시로 유명하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문학을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 역시 독일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문학가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낭만주의적 분위기와 기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낭만주의에 대해서 문학적 갈등관계를 맺었다.

 하이네의 <노래의 책>을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하이네의 문학을 ‘낭만적 아이러니’로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의 전조에서부터는 환상, 감정 등이 포함된 낭만주의적 요소들로 표현하고 있지만 마지막에서는 낭만주의적 요소를 파괴해버리는 반전의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하이네는 아이러니를 통해 시를 구성함으로써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환상, 마술, 유령’ 등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미사여구의 허구적인 정체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매일 밤 꿈속에서 너를 본다.

다정히 인사하는 너를 본다.

그러면 난 엉엉 울면서 너의

사랑스런 발 앞에 쓰러진다.

 

 

너는 가엾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조그만 금발머리를 가로젓고,

너의 두 눈에서는 진주 같은

눈물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넌 살며시 내게 은밀한 말과 함께

측백나무 꽃다발을 건네준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꽃다발은 간데없고

네가 한 말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 하이네 『노래의 책』‘서정적 간주곡’ 중 No. 56 , pp 150 -

 

 

 

 

 ‘서정시인’으로서의 하이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이 시가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낭만적 아이러니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시적 화자는 처음에는 낭만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실패한 사랑에 대해서 슬퍼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이 곧 현실이라는 것을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김재혁 교수의 해설대로 하이네는 ‘낭만주의 세계의 허황됨을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눈을 돌려 현실을 직시할 것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상과 현실 속에 갈등했던 하이네

 

 하이네가 이런 역설적인 감정으로 축약된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 역시 괴테처럼 젊은 시절에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사촌누이인 아말리에라는 여인을 사랑했었는데 그녀는 하이네의 애정공세를 무시하고 하이네보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하이네의 첫 번째 사랑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연이 남긴 정신적인 상처가 아물기 전에 하이네는 이번에 아말리에의 여동생인 테레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실패로 끝남으로써 다시 한 번 불행한 사랑의 실패를 겪는다. 두 번의 실연은 하이네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으며 그러한 심리적 태도는 그의 시에 반영되어 있다.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실패한 사랑의 현실을 인식하여 일종의 환멸과 증오심으로 전환되는 결말을 택하기 위해서 아이러니를 구사했던 것이다.

 <노래의 책>은 1817년부터 1826년까지 하이네가 젊은 시절에 발표했던 시들을 모은 시집인데 여러 시 곳곳에서 젋은 시절에 겪었던 실패한 사랑가 남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밤은 고요하고, 골목엔 인적이 끊겼다.

이 집에 그 옛날 나의 사랑이 살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녀는 이 도시를 떠났지만,

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 그대로 있다.

 

 

거기 한 남자가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밀려드는 고통에 두 손을 비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두려움이 앞선다.

달빛에 드러난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에.

 

 

이 도플갱어야! 너 창백한 친구야!

너는 무엇 때문에 그 옛날 많은 밤을

바로 이 자리에서 나를 괴롭혔던

내 사랑의 고통을 흉내 내려 하느냐?

 

 

 

- 같은 책, ‘귀향’ 중 No. 20, pp 181 -

 

 

 

 

 

 

이 외로운 눈물은 무얼 바라는가?

나의 시선을 흐리게 하는 이 눈물은.

옛날부터 나의 두 눈에

남아 있는 이 눈물은.

 

 

이 눈물에게도 한때 반짝이는

자매들이 있었지, 나의 고통과

기쁨과 함께 어둠과 바람으로

모두 흘러가버린 자매들이.

 

 

푸른 별들도 마치 안개처럼

흘러가버렸네, 그 옛날 내게

기쁨과 고통의 미소를 가슴에

선사해주었던 그 작은 별들도.

 

 

아, 나의 사랑마저도

덧없는 바람처럼 사라졌네!

너, 지난날의 외로운 눈물아,

너도 이제는 사라지거라!

 

 

- 같은 책, ‘귀향’ 중 No. 27, pp 186~187 -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그의 시 속에는 유독 여인 또는 자매가 등장하는데 자신에게 실연을 안겨준 아말리에와 테레제, 두 자매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하이네를 ‘연애시인’, ‘사랑의 감정을 읊조릴 줄 아는 서정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네에게 문학은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치유 수단이었다. 사랑 앞에서 순수한 감정을 두 번 죽어야했던 이 시인의 말 못하는 고통을 아는 독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이네는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부터 감성으로 치우친 낭만주의로부터 탈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은 곧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理想)이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하이네의 시 시계는 현실을 지향했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독일의 정치, 사회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견지된 참여시의 창작으로 전환하게 된다.

 하지만 태생이 낭만주의자였던 하이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이 내적 갈등을 겪은 듯하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는 지나간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과 동시에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서글픈 감정이 묻어나 있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대는 문학 속에서 언제나 젊게, 거의 매우 젊게 움직여온 작가에게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채겠는가?  어느 한 작가가 우리의 눈앞에서, 모든 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점점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같은 책, 머리말 중에서(1837년), pp 11 -

 

 

 

 

 

 머리숱에 흰 머리카락이 늘어날수록 하이네는 사랑다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했다. 반면 자신의 문학적 대선배인 괴테는 죽을 때까지 ‘사랑은 열정’이라는 모토를 실천했다. (그는 평생 9명의 여성들과 애정 관계를 맺었다)  <노래의 책> 머리말에서 하이네는 괴테를 ‘영원한 청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사랑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가에 대한 존경과 선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시간의 법칙에 순종하면서도 여전히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하이네의 역설적인(irony) 감정이 함축된 경구는 이제 막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이라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애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태양은 아직은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지만 결국에는 질 수밖에 없겠지!  (pp 11)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2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청춘의 사랑>....왜 이 구절이 맘에 콕~박히죠? ㅎㅎㅎ
잘 지내고 계세요? 공부는 시작하셨나요? 방학인데 공부를 시작하시려니...여러모로 부담이 되는건 아니신지.

뭐. 저야 지나간 청춘의 사랑을 곱씹고 있을 겨울이지만, cyrus님은 청춘의 사랑을 시작하셔야 하는 시절이 아닐까요? 공부도 좋지만요..^^

cyrus 2011-12-30 21:55   좋아요 0 | URL
아직 구체적은 계획은 없고요, 일단은 가볍게 컴퓨터 자격증 공부는
하고 있는 중이에요, 방학동안은 영어를 공부하려고 해요^^
그런데 공부만 하기에는 사는게 너무 지루하고 답답할거 같아요,
현맘님 말씀대로 청춘의 사랑을 시작해봐야하는데 말이죠^^;;

stella.K 2011-12-3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천일의 약속을 다 봤는데,
남자 주인공 나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멋있긴 한데
결론은 사랑은 부서지는 거로구나 싶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겠는가 였다.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건강, 조건 뭐 이런 거 다 따지고 하는 사랑이잖아.
그거 없으면 말짱꽝이고. 그것 역시 사랑은 아닌데
부서져도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ㅎ

cyrus 2011-12-30 22:00   좋아요 0 | URL
<천일의 약속>, 저는 그 드라마 보지는 않았는데 호응이 꽤 좋은가봐요.
여주인공인 수애가 불치병이라면서요, 제가 알기로는 새드엔딩이라는데
결국 김래원은 수애 죽는 날까지 사랑의 신의를 지켰는가 보군요.
그런 상황의 사랑이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네요 ^^

stella.K 2011-12-31 11: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드라마 보고 말해.
처음에 그들도 뭐 어려울까 싶어 결혼했지.
그래서 사랑은 역시 어려운 거구나 겪어보지 않아도 절절히 다가와.
내가 드라마 많이 보진 않지만 올해 최고의 드라마란 생각이 들어.
김수현 작가 아무리 욕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손들었다.
뒷마무리만 잘 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뒤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그래도 100점 만점이 96점은 주겠다 싶어. 기회되면 함 봐. 수애가 참!^^
 

 

 

 '풍요 속의 빈곤', 2011년

 

 2011년도 이제 3일 밖에 안 남았다. 항상 느꼈던 것이지만 시간 한 번, 참 빠르게 지나간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나름 개인적인 시간이 많았던 휴학생 신분으로 한 해를 보냈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복학을 하게 되면서 워낙에 바쁜 대학 생활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올해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느껴진다.

 2011년 한 해를 개인적으로 평가해보라고 한다면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대학생활은 이전에 비해 학습활동 부분에 있어서 많은 진전의 성과가 있었다. 군 입대 이후 복학한 터라 행정학이라는 전공과목을 공부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들기도 했지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좋은 학업성적을 얻게 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토론 및 발표 형식의 수업을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소심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만 해도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한 횟수만 해도 5번이다. 많이 해봤자 평균 세, 네 번하게 되는데 이보다 더 많이 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전달하는 것이 서재나 인터넷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학업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은 없지만 과 생활을 하지 않다보니 인맥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한정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과 후배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다. 과 생활은 안 해도 선배들과의 교류는 군 입대 전부터 만나기 시작했으니 별로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보다 세, 네 살 어린 후배들에게는 친해지고 싶은 정이 샘솟지 않았다. 친한 과 동기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우리 과 후배들은 나이가 점점 어린 학번일수록 소위 ‘개념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학번이 낮을수록 여자 학생들이 많아지다 보니 학교생활 오래한 남자 선배라도 여학생들의 입김(?)에 휘둘린다고 한다. 또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잘 노는 편이란다. 그 대신에 성적은 뭐... 그저 그런 것이다.

 솔직히 올해 복학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필자처럼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마음씨 착한 여자 후배를 만나기를 내심 바랬다. 그런 후배들과 친하게 지내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의욕도 불끈 생기게 될 것이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웃긴 일지만) 잘만 하면 캠퍼스 커플로 성사되는 결과까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한낱 ‘희망고문’이었을 뿐 현실은 그런 여자 후배 한 명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그런 기회마저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누굴 탓하랴. 과 생활을 하지 않는 필자의 잘못이다. 올해도 여자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지만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번 학기 수업에서 수많은 조별 활동을 하게 되면서 내가 속한 조원들 중에 단 한 명의 여자 학생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가 캠퍼스 내에서만큼은 여학생들과의 인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보니 이런 불운한 조 편성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수업 내 과제를 위해서 조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게 결정적인 폐인이었다. 이제는 과 동기라는 녀석들이 필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는 필자에게 있어서는 군 생활을 제외한 여복이 없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정말로 빈곤의 해인 것 같다.

 빈곤의 해와 관련해서 인간관계도 있었지만 올해를 보내면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작년에 비해 독서의 시간이 줄어들었고 서재 블로그 관리를 소홀히 한 점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없더라도 종종 블로그에 들렸던 서재 이웃 분들에게 안부 인사를 남겼어야 하는 것이 예의인데 항상 머릿속만 염두에 두었을 뿐 막상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지금 필자가 즐겨 찾는 서재의 이웃 분들만 해도 20명 족히 넘는데 일일이 직접 들러서 방명록에 안부 인사를 하지 못한 점, 이 글에서나마 송구스러운 감정을 전하고 싶다.

 

 

 

 

 다시 읽은 책 그리고 올해의 책

 

 얼마 남지 않은 2011년에 있었던 일들 중에 나름 좋은 성과와 부족한 점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읊조려 봤다. 원래는 필자가 여기서 쓰고 싶은 것은 2011년의 독서의 일상 중에서 다시 읽었던 책, 내년에도 다시 읽을 책 그리고 올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올해의 책’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은 필자가 자주 들렸던 모 출판사 온라인 카페의 매니저님이 이 주제로 글을 써 보자고 제안했기에 오랜만에 카페에 글을 남길 겸해서 써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에 올해 읽었던 책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블로그를 통해서 확인을 해봤는데 가장 기억남을 만한, 인상 깊은 책이 없어서 조금은 난감했다. 작년에 비해 소설, 에세이 분야보다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독서를 많이 한 탓에 필자가 생각해봐도 사람들이 읽기 어려워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잘 읽지 않은 책들만을 골라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고심해서 선정을 해봤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올해의 책’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각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올해의 책’은 사람들이 많이 읽고, 많은 공감을 얻은 유명한 책보다는 잊히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기쁨, 슬픔, 감동, 영감을 제공해준 책,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 영향을 주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유독 재독한 책이 많았는데 이 두 권의 책이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인상 깊은 ‘올해의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2011년은 부당한 권력 앞에서 상처를 입고 희생을 당해야만 하는 약한 자들의 슬픔이 많았던 해이다. 씻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소연하지 못한 채 눈물을 삼켜야했던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이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 할 법이 아니라 대중들을 향한 문화의 파급력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실제로 일어난 비인간적인 성폭력 및 학대 사건의 진실은 영화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낱낱이 공개되었다. 영화 개봉 이후에 정신지체 장애아동뿐만 아니라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심각한 피해에 대해서 공론화되었고 솜방망이에 불과했던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다.

 필자는 올해 개봉한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원작은 올해 읽은 것만 해서 두 번째이다. 이 책이 필자가 군 복무 시절이었던 2009년에 출판되었는데 그 당시 군부대에 비치된 진중문고 중의 하나로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었다. 군부대 내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당시 이 책의 등장이 불어 닥친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책이 출간했을 때도 소설 내용의 실제 사건인 청각장애인학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여론 내에서 진상규명해 볼 것을 제기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올해 영화 개봉 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전에 비해서 아동 및 정신치제 장애아동의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서 크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다시는 ‘제2의 도가니’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면수심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강화하는 여론까지 조성되고 있다는 점은 크나큰 성과가 아닐 수가 없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아동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고발한 소설이라면 조세희의 <난쏘공>은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기는 철거민들의 애환과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사회 문제적 소설이다. 필자는 수업을 통해서 <난쏘공>과 관련한 철거민들에 대한 동영상을 보게 된 계기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2년 전에 발생한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때 <난쏘공>이 많이 읽혀진 걸로 알고 있다. <난쏘공>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거민들의 비극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하루 끼니도 때우지 못하는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그런 형편 속에서도 유일한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삶의 터전마저도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강제로 빼앗겨야만 하는 고통의 장면은 비단 30여 년 전에 쓰인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니다. 작가 조세희의 말대로 그의 대표작이 해가 갈수록 판매 부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아직도 철거민이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들을 위한 어떠한 법적 보호 및 보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아니, 30년의 세월동안 우리나라 사회는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문제를 제기하는 <난쏘공>의 문학적 위대함을 기려야 할까, 아니면 아직도 <난쏘공>이 읽히는 시대의 남루를 애도해야 하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그런 책을 2011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것 역시...

 

 

 

 

 

 내년부터 다시 읽을 책

 

 

 

 

 

 

 

 

 

 

 

 

 

 

 

 

 

(덧붙임: 이제 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초짜라서 행정학 공부하기에 좋은 내용을 갖춘 전공도서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전공도서는 내용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내용도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행정법과 같은 경우는 법의 조항이 해마다 바뀌고 정부 부처 역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통폐합되고 기능과 성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전공도서는 해마다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행정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최신 개정판일수록 공부하기에 알맞다. 

 

참고로 이 책(현재 3판까지 나왔음)은 출간된 지 내년으로 따지면 6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행정적인 제도와 관련된 내용에 있어서 이전 노무현 정부의 내용까지 담고 있다. 공무원 공부하는 도서로 추천하기에는 조금은 한계가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각종 고시(구 행정고시, 입법고시 등) 관련 기출문제들이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2006년까지 수록되어 있지만 약술형 및 논문형 주관식으로 문제가 출제되는 5, 7, 9급 공채시험(구 행정고시)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을 고르게 된다면 지금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서 행정학 관련 전공도서를 읽는 것이 우선이다. 아니, 읽는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암기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노량진 같은 수도권 지역에 위치하는 유명 강사가 배치된 학원에서 알려주는 강의내용만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면 합격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수도권 지역의 고시학원에서 수강을 한 고시생들이 고시 합격률이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학 과목이라는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면 아무리 비싼 돈을 내서라도 학원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합격을 보장할 수 없다. 공무원 관련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공부 비결을 보게 되면 행정학 대부분 행정학 관련 전공도서 한 권 쯤은 기본으로 독파했다.

 필자 역시 이번 방학만큼은 행정학 전공도서를 다시 읽어볼 계획이다. 필자가 다닌 행정학과 전공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기본적으로 행정학과 학생이라면 행정학 원론과 각론을 포함한 두꺼운 분량의 전공도서 한 권쯤은 7번 정도 읽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두 달 간의 겨울방학동안 많은 분량의 책을 7번 정도 완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지만 여러 번 읽고 복습하면서 광범위한 행정학의 내용에 대한 학습 감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을 전공도서로 고른 사람이 아마도 필자가 유일할 것이다. 좀 더 현실지향적인 관점에서 골라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사실이 우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딱히 한 권을 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진지하게 다시 읽을 책을 고르게 된다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인 조르바>다.

 지금까지 나오게 된 수많은 소설 속 주인공들 중에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비범하면서도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유별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런 인물들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영화, 드라마를 통해서 재구성될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다.

 그런 개성이 강한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 중에서 조르바를 제외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무척 센 조르바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실례이다. 조르바만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제약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자유로움을 누릴 줄 아는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는 조르바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할 뿐 ‘동의’할 수 없다. 조르바의 삶을 ‘동의’하기에는 필자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심한 시인과 같은 처지이니까.

 그러나 조르바가 내뿜는 자유와 긍정적인 생의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인 노회찬 씨뿐만 아니라 불혹을 넘은 사회적 공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이 바로 <그리스 인 조르바>다. 조르바처럼 똑같이 될 수는 없어도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서는 자유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먹고 사는 현실 속에서는 그런 자유와 행복감을 누리기는 어렵지만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구체적인 행복의 경험을 통해서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12-28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여자친구, 내년에는 꼭!!!!!!^^

cyrus 2011-12-29 20:06   좋아요 0 | URL
ㅎㅎ 내년에는 꼭 만들어보록 노력해볼께요 ^^

아이리시스 2011-12-2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안녕. 늘 응원하고 있어요. 정말 똑똑하고 욕심많은 남동생처럼 느껴지거든요. 여자친구, 내년에는 꼭!!!!2^^

cyrus 2011-12-29 20:06   좋아요 0 | URL
욕심은 많은데 똑똑하지는 않아요, 아이리시스님 ^^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1-12-2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시루스 정말 멋지다. 재독하기 쉽지 않은데
너의 글의 내공은 다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가 볼 때 넌 정말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아직 포기하지 말라구.ㅋ
나도 올해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없는 건지, 마음이 없는 건지
영 그러네.ㅋ
암튼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읽고, 공부도 쑥쑥 잘하고,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다. 홧팅!!

cyrus 2011-12-29 20:05   좋아요 0 | URL
누님이 먼저 좋은 사람 만나셔야 될 거 같은데요 ^^
고마워요, 이렇게 좋은 격려를 해주셔서요.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ㅎㅎ

마녀고양이 2011-12-2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이 글은 어디 연재하는 글인가요?
`필자` 라는 단어가 신기해서요. ^^. 여하튼, 올한해 너무 고생하셨고
항상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난쏘공>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는데, 너무 인상깊어서, 함께 도서관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내년,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세요.

cyrus 2011-12-29 20:08   좋아요 0 | URL
아니요, 그냥 한 번 써본 거에요. 제가 딱히 따로 연재하는 곳은 없고요^^;;
온라인상에서 글 써봤자 여기 알라딘이랑 출판사 카페 한 군데 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연재문 올리는 것도 아니고요ㅎㅎ

오히려 마고님이 올해 고생 많이 하신거 같아요.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땐 놀고, 코알라와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요 ^^
마고님도 내년에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 있기를 바랍니다.

blanca 2011-12-2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친구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꼭 학교에서 만들어 사회에 나가기를 권유합니다.^^그래서 공유가 군대에서 <도가니>를 읽은 거군요. 저는 행정학은 교양으로만 들었었는데 정말 저 책만 제대로 이해해도 전공자가 아니어도 사는 데에 있어 직간접으로 도움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여러가지로 올해 많은 결실이 있었군요. 내년에는 더욱더 많은 결실과 꿈을 꿀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cyrus 2011-12-29 20:11   좋아요 0 | URL
그래야겠죠ㅎㅎ 예전에느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가데 뭔가 초조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저도 얼른 여자친구
사귀어봐야 결혼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좋은 조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랑카님도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는 2012년의 해를
보내기를 바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2-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친구에게 "나는 조르바처럼 살겠다"고 선언하면 그 즉시 여자는 결별을 선언할 겁니다.

cyrus 2011-12-30 22:02   좋아요 0 | URL
하하~ 노자님 댓글 보고 한참 웃었네요ㅎㅎ
솔직히 남자라면 거리낄없이 아무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자유분방한
조르바의 삶을 동경해봤을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남자는 여자 입장에서는
싫어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어떤 여자는 조르바라는 인물을 모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요ㅎㅎ
 

 

 

 이고그램 (Ego Gram)   

이번 주 월요일에 이고그램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게 되었다. '이고그램'이란 개인의 성격을 알 수 있는지 심리학적인 검사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이고그램 검사를 하기 전에 먼저 이고그램의 탄생 및 배경부터 시작해서 이고그램 검사 내용을 뒷받참해주는 TA 성격이론까지 알고 있어야하는데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서론이 너무 길 우려가 있다. 이고그램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이고그램'이라고 쳐 볼 것. 한국이고그램연구소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데 이번에 필자가 한 검사도 그 연구소에서 만든 것이다.   

검사 과정은 간단하면서도 은근히(?) 까다로울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처음에는 지능검사르 하는 것처럼 수십 개의 문항을 읽고 그 문항에 맞는 답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문항은 이런 형식이다.  

   
 

1, 나는 항상 창의적인 발상을 잘 한다.        

(1) 매우 그렇다.  (2) 그렇다.  (3) 보통    (4) 그렇지 않은 편이다.    (5) 매우 그렇지 않다. 

 
   

이런 형식의 문항을 보고 체크한 다음, 체크한 문항에 매겨진 점수를 합산하여 자신의 성격 유형을 분석할 수 있다. (점수 합산 과정 역시 세부적으로 설명하기에는 길며, 계산하는 데 취약한 사람에게는 조금은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문항 점수를 합산한 수치를 여러가지 유형의 분석 결과 항목대로 적용할 수 있는데 먼저 구조에 따른 기능적 성격 유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출처: 한국이고그램연구소

  

 

 분석 결과, cyrus의 성격 유형은...? 

그래서 점수 합산 결과, 필자가 나온 성격 유형은 다음과 같다.    

 

CP: 20점, NP: 41점, A: 44점, FC: 36점, AC: 33점  

 

CP : 적당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위치에 따라 경우에 맞게 행동하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비판적, 통제적 성격이 한국인의 평균에 속하며 한국적인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평범한 위치에 있다.   

NP : 온정적이고 관용주의자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며 일방적이다. 타인이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기 때문에 자립심을 해치기 쉽다.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이용당하거나, 타인 중심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A : 현실적이며 철저한 합리주의자이다. 그러나 감정이나 감수성이 둔해 인간미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삶을 즐기지 못하고 정서가 결핍된 기계와 같은 사람으로 비춰 줄 있다.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일에 몰두하여 마음이 차갑고 사실에 입각한 대화로 재미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FC : 감정표현이 솔직하고, 재미와 재치로서 분위기를 주도하며 행동이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창조성이 풍부하다.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을 곧잘 행동으로 옮기고 명랑하며 적극성이 있다. 그러나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현실을 고려하는 신중성이 떨어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AC :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대해 민감하며,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고 따른다. 감정 조절력이 있고, 선한 이미지를 타인에게 심어준다. 순응적, 소극적, 비대결적인 성격이 한국인 평균에 속하는 위치에 있다.

 

이 검사에서는 TA 성격이론에 따라 인간의 마음 구조를 세 가지 자아 상태로 분류하고 있다. P, A, C로 구분하고 있다. 

P는 Parent의 역자로써 아버지의 자아상태, C는 Child, 어린이의 자아상태를 뜻한다. 필자는 A 구조결과가 나왔다.  

 

 A 구조편향  

 (여기서 A는 Adult, 즉 어른의 자아상태를 말함) 

 

일상생활에서 사실에 입각한 판단과 행동으로 논리적이며 이성적임.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여 행동하며, 계획을 세운 후 실행에 옮김.

냉정하고 사실이나 상황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탁월하지만,고민이 있어도 감정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뭄.

자타에 대한 엄격성이 부족하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목적지향적 사고를 지님.

합리적이긴 하나 지적편중으로 무미건조한 대화와 정감이 없는 대화 방식을 보임으로써 무감정적임.

기계적이어서 상대에게 차갑고 냉정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음.

어떠한 일이든 확실한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안심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음.

주위에는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인 태도를 취하는 A 구조편향인 사람이 많음

 

자아 형성 결과 분석 내용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이성적', '논리적'이라는 말이 눈에 띄기는 하는데, 특히 '기계적', '무감정적'이라는 단어만큼은 눈에 거슬렸다. 자아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단점적인 면을 알게 되어서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검사를 하고난 뒤에 친구들과 함께 서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대부분 친구들에게는 C 유형이 많이 나왔다. 나는 A 유형이 나왔다고 하자 C 유형, 즉 유아기 자아를 가진 자들은 나에게 부러운 눈치를 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자 혼자서 진지하게 검사 결과에 생각을 해봤다. '성격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고쳐나갈까?'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너무 합리적이며 기계적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는지 그들의 입장도 생각해봤다.  

사실 필자는 군 입대 전만 해도 사람들 만나는 곳에 가면 대화가 별로 없었다.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는 외모에 비해 행동이나 성격이 성숙하다라는 핀잔을 들을 때가 많았다.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기 전부터 먼저 생각을 하는 편이고 상대방에게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비판도 서슴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 이고그램 검사 결과를 본 후, 상대방에게는 나의 그런 모습이 피곤하고 까다롭게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런 모습이 오래 유지하게 되면 감정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무감정적이면서도 기계적이라는 점을 이고그램 검사하기 전부터 알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자아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지금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경상도 출신 남자에게는.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 만나보려고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면 많이 웃어보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서 비판을 하되 좀 더 온화하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만의 감수성 훈련  

 

 

 

  

 

 

 

 

몽테뉴의 <수상록> 중에 '슬픔에 대하여'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글의 말미에 테뉴는 자신의 자아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감수성이 둔하다. 그리고 날마다 생각으로 거적을 씌워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pp 24)

 

몽테뉴의 표현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그리고 독서 습관이나 글을 쓰는 특성을 되돌아본다면 나 역시 어쩌면 천성적으로 감수성이 둔한 경상도 남자일 수 있으며 1년 365일 이성의 생각으로 거적을 씌워 감수성을 무디게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몽테뉴는 본인 스스로 자아의 특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기 전까지 이성적인 감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다. 덕분에 후대 사람들은 그의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감수성 둔한 몽테뉴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소유한 성에서 평생 독신으로 독서와 명상 그리고 글쓰는 삶으로 선택해야했다. 

경영학, 특히 인사조직에 관한 분야에는 '감수성 훈련' 이라는 기법이 있다. 인간 관계의 개선이나 지도성을 양성하는 조직구성원을 위한 교육훈련 중의 하나이다. 이 훈련을 체험함으로써 자신들의 감정과 그 감정이 상대방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집단 상호작용 과정의 역학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어 결국 인간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아직 감수성이 죽었다고 볼 수 없다. 아직은 젊기에 얼마든지 감수성을 다시 되살릴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감수성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시집이나 에세이를 읽어보는 중이다.  그리고 평소에 좋아했던 많은 그림이 곁들인 예술 관련 책들도 읽고 있다. 

몽테뉴는 평생 독서와 명상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혼자서 '이성'이라는 성(城)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감수성'이라는 성은 세우지 못했다. 인간의 마음이 끝이 없는 광활한 영역의 지대라고 한다면 그 곳에는 '이성'이라는 성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라는 성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쌀쌀해진 지금, 우리륻 둘러싼 세상 역시 추운 날씨만큼 따뜻한 정이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각박해졌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감수성이 움츠려 들 수 밖에 없다.  이성이라는 적에 의해 감수성이 함락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12-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상도 남자들은 두 갈래 길에 서 있습니다.무뚝뚝함을 남성다움으로 여겨 계속 밀고 나갈 것이냐, 아니면 소통의 시대를 맞이하여 여성이나 어린이들과도 다정다감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남자로 변모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영남출신 연예인들도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과 마초 기질을 개성으로 내세우는 사람과, 이젠 경상도 남자도 바뀌어야 한다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더라고요.토크 쇼 같은 데 나와서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Cyrus 님은 어느 쪽인가요?

cyrus 2011-12-02 13:33   좋아요 0 | URL
저는 남성다움과 여성의 감수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성격으로 지니고
싶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남자도 너무 무뚝뚝한 것도 좋지 않다고 봐요.
시대 분위기의 흐름에 맞게 성격이나 행동에 대한 생각도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
 

 

  

  과제 준비의 어려움  

항상 학기중은 언제나 바빴지만, 이번 주 같은 경우에는 조별 과제가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시기였다. 조별 과제는 여러 명의 조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 과제보다는 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조별 과제는 어떤 조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작업하는 데 편할 수도 있거나 아니면 본인이 힘들어 질 수 있다. 조원 중에는 전혀 친하지도 않는, 타 과 학생이 한 두 명 있는데 조별 과제를 준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면 본인뿐만 아나리 다른 조원들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렇다면 친한 친구들이 나와 같은 조원이라면?  많은 학생들이 조별 편성할 때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다. 과제를 준비하는 데 서먹한 기분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도 믿을게 못 된다. 아무래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름 열심히 참여하려고 하지만, 꼭 한 명은 슬쩍 눈치를 보면서 참여하는 척만 하는 친구 녀석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학 과제는 혼자를 하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든...  결론은 쉬운 게 없다. -_-;;   

  

 

  상금에 눈이 멀다

과제 타령은 여기까지만 하고, 사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과제라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는 '리포트'(Report)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포트를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리포트의 정의를 논문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논문'이라고 하면 자신이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 또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작성하는 글이다. 평소에 글쓰기에 대한 훈련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리포트 한 개 쓰는 데 고역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필자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리포트를 작성하는 방법을 습득했으며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리포트 쓰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올해 2학년 1학기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3학기를 수학(修學)했는데 단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리포트 점수는 상위권에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리포트 작성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가진 상태라서 최근에 학교에서 주최한 리포트 공모전에 참가해보려고 했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하여 가장 잘 쓴 리포트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는 대회이다. 1등이 30만원이었다! 

며칠 전부터 리포트 공모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이번 학기 때 쓴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역사'라는 주제로 쓴 리포트를 제출해보려고 했다. (리포트 속 내용의 일부는 지난 달에 페이퍼 형식으로 쓴 적이 있었다) 당시 리포트를 본 교수님도 좋은 평가를 주셨고, 내용의 일부를 쓴 페이퍼 역시 나름 반응이 좋아서(^^;;) 솔직히 공모전 수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감이 너무 지나쳤던 것일까? 기존에 쓴 리포트 내용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보완하면 좋았을 것을, 다른 과목 과제 준비하느라 소홀하게 준비를 했다. 준비할 수 있었던 많은 기간동안에 어영부영하다가 제출 마감날 3일 전이 되어서야 드디어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한 리포트의 내용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준비해야 할 과제가 많은 상태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작성한 과제를 보완하는 데 열중해야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과제의 내용이 어떻게 보완해야 되는지 염두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잘 써서 리포트 공모전에 상금을 타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 결국에는 주말에는 잠을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좀 더 새로운 내용으로 다듬었다.  

이제 작성한 과제를 담당교수님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다 된 것이었다. 교수님은 필자가 쓴 과제를 보고 대회추천서에 과제 내용에 대한 평가를 기록해야만 했다. 리포트 대회에 교수 추천서도 같이 제출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교수님께서 추천서만 작성해주신다면 모든 게 끝인줄만 알았다.  

공모전 마감 기간이 전날에 교수님에게 교수 추천서를 받으려고 연구실에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하늘 높이 찌를 것만 같았던 공모전에 대한 자신감은 하루만에 한 풀 꺾이고 말았다.  

교수님은 리포트 내용이 예전보다 더 못했다고 제대로 된 지적을 하셨다. 문장 중에 간혹 주어가 빠져 있었고, 내용 결론과 느낀점이 너무 진보적인 관점으로 치우쳐서 균형적이지 않다는 등 하나하나 문제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을 들으면서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답시고 웃는 얼굴로 대답했지만,,,  실상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리포트가 지적당한 사실이 부끄럽다기보다는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을 내일 제출 마감날까지 보완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막상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에 무척 난감하였다. 교수님은 제출 마감날까지라도 꼭 다시 보완해서 제출하려고 당부하셨다.  

한 시간동안 교수님의 지적을 듣고 난 뒤에서야 연구실에 나오는 순간, 온 몸의 기운이 한꺼번에 쭉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정작 해야 될 과제는 많은 상황에 이미 작성한 과제를 또 수정해야 하는, 힘든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점이 혼자 감당하기가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공모전 상금' 과 '학점' 사이에서의 갈등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서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공모전 제출용 과제를 수정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학기 학점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이제 막 시작도 해보지 않은 수많은 과제들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한 공모전을 위한 과제를 포기하면 공모전 상금이 아깝게 느껴졌고, 반대로 공모전을 위한 과제에만 열심히 하다보면 정작 해야 할 과제들을 준비하는 데 지체할 수 있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공모전 과제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공모전은 내년에도 개최하기 때문에 그 때를 기약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구상도 하지 못한 다른 과제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1월이 끝나가기 전에 과제들을 마무리 짓게 되면 12월부터 기말고사 공부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수 있다. 꼭 다가올 상황, 즉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하는 목표를 위해서 공모전이라는 기회 비용을 포기한 것이다.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던 리포트 공모전의 상금에 얽매였던 집착이 사라진 탓일까? 

그 이후로 다른 과목 과제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준비할 수 있고, 거의 완성이 다 되어가는 상태이다. 과제가 완전히 작성되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다시 고쳐야하겠지만, 공모전 상금에 대한 욕심이 만들어 낸 집착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일이 수월하게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크게 버릴수록 크게 얻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는 난초에 대한 스님의 집착과 관련된 일화가 잘 알려진 너무나도 유명한 수필이다. 스님은 한 때 난초에 집착하다가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알고 친구에게 난초를 돌려주고 나면서부터 무소유의 역리를 깨닫게 되었다.  

스님은 난초가 없어진 이후부터 서운하고 허전함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셨고 그 이후로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필자는 스님과 같은 삶의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리포트 공모전 포기 이후로 리포트라는 글을 쓰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만약에 공모전에 교수님의 추천서 없이 개별적으로 제출했다고 상상해보자. 운이 좋게도 대회에 당선되면 좋겠지만 결과는 꼭 좋은 쪽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공모전에 당선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한 상태에서 입선마저도 하지 못한다면 실패에 대한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이 무척 컸을 것이다.   

마음 속에 생긴 소유욕과 집착을 버리면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며칠동안 나의 정신과 육체를 괴롭혔던 집착에서 스스로 벗어난 후 뒤의 느낌은 정말 '자유'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무소유'의 마지막 문장 중에는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올해 리포트 공모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단지 대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수학하면서 꼭 해야 될 과제, 리포트 작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미래의 발전이라는 2보 전진을 위해 잠시 1보 후퇴한 것뿐이다. 크게 버린만큼 언젠가는 크게 얻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찾아 올 것이라고 믿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1-11-2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배워가는 거겠죠. 무슨 공모전이든 '순수한' 마음이어야 결과가 좋더라구요. 상금이 욕심나지만 열심히만으로 상금 보장이 없잖아요. 가만보면 시루스님은 되게 부지런하고 욕심도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쪽으로!^^

학기 끝나가요, 힘내요.

cyrus 2011-11-30 23: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회는 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번 일을 계기로 부족한 것도
모른채 자만했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어요. 내년이면 3힉년인데
논문 쓰는 방법이나 따로 공부해야겠어요.

몇 분 뒤면 곧 12월 1일이네요, 정말 이번 학기, 아니 2011년도
얼마 안 남았네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