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펭귄 출판사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2015.3)을 또 출판? 하늘색 심플한 표지 완전 맘에 듦! 진작 이렇게 내시지! 하지만 나는 사지 않을 것임-_-)~ 예전 거 이미 샀단 말이야ㅜㅜ

 

 

 

 

 

 

 

p64~65   전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누구도 원망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회 초년병인 이 젊은이는 말할 것이다. 뭐라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창 딸린 사무실 책상 뒤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라고? 승진 발표 전날 희망에 들떠 가슴 졸이라고? 계산적이 되어 술책을 부리고, 화를 꾹 참아내라고? 시를 꿈꾸고, 야간 열차와 따뜻한 모래사장을 상상하는 내가? 젊은이는 마음을 달래며 할부 판매의 덫에 걸려든다. 그 이후로 그는 제대로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에게는 인내로 무장하는 일만 남는다. 아,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이면, 청년은 더 이상 젊지 않고 불행에 가득 차서, 인생이 저 멀리 사라져버렸음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 삶은 목적이 아닌 고생일 뿐이다. 느린 승진이 가르쳐준 값진 경험으로, 몸을 사릴 만큼 현명해지고 신중해져서 더 이상 이러저러한 발언을 삼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섰다는 것과 노동에 할애하지 않는 알량한 시간을 채워줄 집과 별장, 아이들 교육뿐이리라‥‥‥.

 

제롬과 실비의 생각에 조바심이야말로 20세기의 특징인 것 같았다. 나이 스물에, 삶이란 감춰진 행복들의 총합, 삶이 허락하는 한 끝없이 계속될 성취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봤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들에게 기다릴 힘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

일요일이었다. 귤을 사러 갔다가 새로 오픈한 마트를 발견한다. 할인 행사 품목인 오렌지를 집어 든다. 탐스러운 딸기는 내게 아직도 비싸므로 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입구 가득 쌓여 있는 딸기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판매원이 딸기 박스에 랩을 씌우는 포장을 쉴 새 없이 하고 있다. 매장 안은 어떤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은, 막 도착한 상품의 환상섬(島)에 사러 온 목적을 잃고 어리둥절한 채 방황하는 듯이 보인다. 상품들은 모두 새 것이며, 호감가는 빛을 낸다. 그들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생각지 않았던 상품을 향해 급하게 손을 뻗는다. 아이들은 더 빠르게 다가가고, 소리를 지르며 맹렬하게 탐을 낸다. 서로 의논을 하고 만류하고 해도 그들이 이곳을 나갈 땐 어떤 상품이든 선택하고야 말 것이다. 계산대는, 할인 품목이 아닌 상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항의를 하거나 물건을 다시 가지러 가거나 하는 통에 물건들은 계산이 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계산이 끝났더라도 아직 끝이 아니다. 뒷사람의 계산이 끝나기 전에, 계산을 치르고 이제 자신의 물건이 된 것들을 쓰레기 치우듯 어서 챙겨 담아야 한다. 장바구니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지 않고 나온 나는 여분의 쇼핑거리가 더 생긴 채 계산대에 도착한다. 봉투값이 아까워 양손에 꾸러미를 든다. 시장에 오면 늘 이런 자잘한 치사함을 목도하고 감수하게 된다.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 딸기를 도로 갖다 놓고 있다. 내 손에도 정작 귤은 없다. 그런 것이다.

 

1+1 해서 산 물을 마신다. 20년 전에는 없던 상품이었다. 50년 전에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1965)이 등장했다. 24년 전에는 신해철이 《 Myself 》(2집, 1991.03.20)를 발매해서 "50년 후의 내 모습"이란 곡을 선보였다. 우리 현재의 곤궁함과 우리 미래의 곤궁함을 동시에 말했던 이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해나가야 하는지 각각 글로, 음악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수집했던 이들, 이제 그들은 없다.

 

나도 당신들 만큼 잘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이 삶만큼이라도.

당신들의 글과 음악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듣는다.

분명한 것은 50년 후에 나도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신)상품에 열광하고 예속될까.

 

 

§§§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의 사물들은 발화점(진실)을 향해 누워있다고.
게오르그 짐멜은 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과 사물이 함께 있는 삶의 풍부함은, 서로에게 속하는 방식의 다양성과 서로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즉 인간과 사물은 결합과 융합, 분리를 거듭하며 서로를 대비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상대와 다른 사물들과 또다시 접촉한다. 인간과 사물은 끊임없이 서로를 설명하며 서로에게 귀속된다.

 

조르주 페렉의 이 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들을 찔끔찔끔 읽다가 만 것이 아쉽다. 10년 전에『사물들』(세계사, 1996)을 읽었으면 관련 공부 좀 열심히 했었어야지!!! 별수 없이 나를 닦달;;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도 읽다가 말았고; 다행히 이 책은 얇으니까 그리 무리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 『사물의 체계』(1968)부터 읽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소비의 사회』(1970)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읽고 이런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죽겠군;

어쨌거나 이 책이 말하고 내포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할 때 이 소설 하나만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건 아쉬운 일이기에.

 

 

하지만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한 것은 발터 벤야민 ... 프랑스, 사물과 공간 속 황홀경에 빠져 있던 인간 군상을 가장 먼저이자 심층적으로 탐지한 이 였으니까.

 

 

 

ㅡAgalma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ㅡ카를 마르크스
《조르주 페렉 『사물들』에필로그 中》

한번 시험삼아 지상의 온갖 행복을 인간의 머리 위에다가 한꺼번에 퍼부어 행복 속에 풍덩 가라앉아버리게 하여, 그 행복의 표면에 물거품 같은 것이 꾸럭꾸럭 떠오르도록 해보라. 아니면, 인간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경제적 만족을 주어 실컷 잠이나 자고 꿀떡이나 먹고 세계사의 영속이나 걱정하는 따위의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처지에 놓아보라.
ㅡ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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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의 결과...하는데 왜..나는 수단 ㅡ 이라는 나라의 지명을 생각하며 웃는지..
얼마전..IT...하는 책이 나왔을 때도..
그르치~^^;울 나라가..아이티 (IT)강국이긴 하지..(응?!) 이럼서...(해외에선 핸드폰을 통칭 아이폰이라 한단다.삼성폰은 통칭 갤럭시이고..우리나라만 스마트폰이다.아이폰은 애플것만 아이폰으로 구분 되는데..이번 삼성의 신품이 아이폰 디자인과 매우 흡사함은..꽤나 흥미로운 ..재미를 나에게 주었더랬다)
말놀이..일 뿐이다..
유치하여 죄송하다.
Agalma 님의 글은 늘 이렇듯 부족한 자의 생각없는 자의 책읽기를 콕 쑤시는 뭔가가
있다. 더많이 읽고 써야 한다.


AgalmA 2015-03-09 03:05   좋아요 1 | URL
페렉도 본문에서 밝힌 바대로 `조바심`이란 것이 많은 기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또한 제 사유가 우물 안 같아 한계를 거듭 느끼고 있답니다. 더불어 일요일 하루 쉬는데, 너무 많은 것을 못했다 아쉬워 하고 있어요ㅜㅜ 그럼에도 자책 보다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좋은 책과 사유 놓지 않는 것, 그런 다짐에서 또 출발하는 거지요. 이미 그러시고 있잖습니까 :)

수이 2015-03-09 10:46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 말씀대로 여유를 갖고 다시 사유_ 다시 읽기 :) 힘내자구요 그장소님 :)

[그장소] 2015-03-09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책보다는..에 밑줄을 그으며..^^♥

수이 2015-03-09 10:46   좋아요 1 | URL
찌찌뽕~~~

수이 2015-03-09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렉 아주 좋았어요. 아 그러니까 사물들_ 읽고 막 좋아서 미친듯 팔딱팔딱 뛰어다녔는데_ 옛날 펭클 버전으로 읽었을 때요. 지금 읽고 있는 이재룡 교수 책에도 때마침 페렉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했더니 아갈마님이 이렇게 리뷰를 써놓으셨을 줄이야 ^^ 하지만 딱 사물들_만 읽었네요, 그 이후 책은 한 권도 읽지 못했;; 쿨럭_

딸기는 저도 사지 못하겠더라구요. 킁킁_ 귤 살까 하니 귤은 이제 들어갈 때라서 다 시든 것뿐이고_ 아니면 하우스 탱탱한 귤이라고 해도 아놔 왜 이렇게 비싼지 킁킁_ 그래서 바나나 한 덩이 사들고 왔는데 바나나도 다 먹었고 음 과일 가게로 달려가고 싶게끔 만드는 글입니다(결론은 언제나 엉뚱하게;;)

AgalmA 2015-03-09 18:39   좋아요 1 | URL
페렉 재출간 봇물이 터져 정말 좋아했어요. 그간 절판된 책 찾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하나둘씩 모았는데 <임금 인상...>은 여유부리다가 또 품절...으흑. 저도 페렉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전작 완독을 못했어요 ㅎ; <인생사용법>은 반절밖에 못봤지만 이 책을 처음 읽던 충격을 생각하면 언제나 제 인생의 책에 넣을만큼 멋진 책이죠.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저는 별점 5개 만점입니다. 야나님과 제 찌찌뽕을 생각하건대ㅎ 이 책 읽고나서 야나님 분명 울걸요?ㅎ 제가 그랬거든요...
<잠자는 남자>는 읽다가 거의 잠 속으로-_- 이 책은 침실에서는 결코 읽어서는 안되는 책;
하여간 페렉 책도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사놓았으니 완독 좀 하자! 하면서ㅎㅎ;;
사회학도였던 조르주 페렉을 생각하면 <사물들>은 사회학 공부와 함께 보면 더 시너지가 생길 것 같았어요^^

귤 한창일 때 많이 먹어둘 걸 그랬어요ㅜ

[그장소] 2015-03-09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며칠 만에 좀 자는데 과일 차가 와서 딸기를 외치며 한참을 확성기에 대고 한 박스를 외치는데..잠과 딸기 사이에서 갈등하다..딸기를 포기..

AgalmA 2015-03-09 11:13   좋아요 1 | URL
잠과 딸기...뭔가 시가 나올듯도 한 제목~ 전 서정시 말고 초현실주의 시로다가 ㅎ

[그장소] 2015-03-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현실주의 시로..한 수 부탁드려요.
이중 삼중의미가 복층 구조인 시.
너무 좋아하는데.
갈수록 단순화 되는것 같아요.
저는.. 머릿 속이 복잡해 그런지..

AgalmA 2015-03-09 11:26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의 괴리를 우린 늘 느끼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는 특히나 잘 쓰고 싶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타협없는 우라늄벽이 있죠...그래도 저는 거기 머리를 찧고 죽는 오스카 와일드의 참새가 되고 싶더라는...~_~;

[그장소] 2015-03-0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우라늄벽에서..뽱~^^ 터져 배를 흔들리게 웃었네요.
오늘 여러가지로 즐거워요.
시덥잖은 농담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괴리..라~
Agalma님 글이 좀 전체적으로 보면
긴 초현실주의 시 같은데.
그건 잘하는 거라고 봐요.
경제쪽 비교 해서 올려주실때도 물론 좋지만
이런 글도 좋거든요.
사실..이쪽이 더 좋아요.개인적으론 ..ㅎㅎㅎ

AgalmA 2015-03-10 03:24   좋아요 1 | URL
과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도 긴 세월이 걸린 걸 생각하면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요....
분석 글이 공부로서는 좋지만, 저도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운 글을 더 좋아합니다.

돌궐 2015-03-0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독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체는 존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책을 읽으면 책이 따라오고, 목록은 쌓여만 가고... 깊이 공감하다가 갑니다. 말씀하신 책들은 알지 못한 채로 살고 싶네요.ㅋ

AgalmA 2015-03-09 23:06   좋아요 0 | URL
돌궐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존재의 태어남도 홀로이지 않듯이, 어떠한 선택도 홀로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보니까요.
돌궐님 서재 목록도 제겐 숙제입니다ㅎ
 
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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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훌륭하나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액자식 구성에, 세 명의 화자(월튼 선장, 프랑켄슈타인, 피조물)라 소설 작법(화법 전환)에 능숙하지 않은 번역자의 한계가 많이 보였다. 이 작품이 1818년도 번역본이고, 메리 셸리가 1931년 공을 들여 1부 도입부를 수정했다 해도 구성과 화법이 아닌 문체였단 걸 감안하면 초반 내용 전개가 덜그럭거리는 건 번역의 문제 같아 안타까웠다(가장 중요한 도입부인데 독서 승차감이 좋지 않다니ㅜ)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이 버전은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가 좋아?져서 번역본이 꽤 많아졌으니 개정을 기다리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메리 셸리가 여성인 관계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데, 글쎄... 굳이 여성작가로서 해석해 나가기 보다 당시를 산 한 작가가 시대를 소설 속에 녹여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여성주의 문학이라 표방하는 작품도 아닌데 페미니즘 해석을 하려 드는 것은, 작품을 오히려 가두는 과도한 비평주의 시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작가가, 그 시대에 과학소설을! 할 게 아니라, 만 20세에 이렇게 진지한 인간탐구가 엿보이는 작품을 썼다는 것에 놀라야 할 것이다. 과학은 작가가 이 소설을 표현해내기 위한 도구적 소재로 보는 편이... 과학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메리 셀리는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빅터라는 남성이 피조물을 창조하게 했고 결국 파멸을 블라블라~~ 이런 식이면 또 끝도 없는 논쟁이... 생각해보라. 남성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빅터-피조물의 상황과 그 주제에 대해 우리는 더 집중했을 것이다. 메리 셸리가 처음에 익명으로 이 글을 발표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피하려 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비평계에선 이미 그렇게도 보고 있다. 어쨌거나 최대한의 종합적 고찰을 담보한 결과들을 도출하길 바란다.

1818년에 발표된 이후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작품 속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빅터와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로고스와 파토스의 스며듦과 결합 - 행위와 복수를 통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닮은 쌍둥이가 된다. 괴물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혼동할 만도...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 자연을 만나고 언어를 익히며 인간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괴물의 탄생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까지도!
(여성, 피조물을 통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 고찰 - 페미니즘 주요 관점이 여기 해당될 테지?
이었다.
최근에 본 대니 보일 연출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나의 불만을 불식시킬 만큼 멋지게 재해석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부분은 특히나. 대니 보일은 공포성과 페미니즘 해석 경향성을 덜어내고 메리 셸리 이 작품의 가장 골조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의식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해석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극이라는 장르 효과도 한몫했다. 거장은 장르 불문하고 멋진 창조를 보여주는구나, 또다시 절감! 대니 보일 씨, 언제나 팬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이 책은 작품 외에도 좋은 모범 하나를 더 담고 있다. 다른 출판사에도 수록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메리 셸리가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1831년도에 정식 출간하며 쓴 저자 서문이 그것이다. 짧지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서문 중 몇 문장을 밑줄긋기로 남긴다.

(한가롭지 않아 원래 200자 평만 쓸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졌군... 흠)

 

ㅡAgalma

 

 

 

...여가이면 소일거리로 `이야기를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즐거웠던 일은 허공에 성을 짓는 것, 즉 백일몽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주제에 따라 이어지는 일련의 상상 속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꿈꾼 상상들이 내가 쓴 글보다 더 환상적이고 그럴듯했다. 글 쓸 때 나는 거의 모방자에 가까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모방했던 것이다. 내가 썼던 글은 적어도 다른 한 사람 ㅡ 내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ㅡ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상상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내게 그 상상들은 내가 속이 상할 때는 도피처였고 한가로울 때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산초(돈키호테의 그 산초)가 말한 대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앞서 존재했던 무언가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힌두교도들은 세상을 코끼리가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발명이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물질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발명은 어둡고 형체가 없는 재료에 형체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재료 그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발견과 발명에 관한 한, 심지어 그것이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콜럼버스와 그의 달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발명은 대상의 잠재력을 포착하는 능력과 그 대상에서 연상되는 아이디어를 빚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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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3-0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못 읽었는데, 언젠가는 <드라큘라>와 함께 원서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시간은 열 배가 걸리겠죠.ㅋ

AgalmA 2015-03-07 13:08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완벽한 <프랑켄슈타인>을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 저로선 돌궐님 입장이 부러운데요ㅎ 원서까지?! 저는 다른 번역본 마저 언제 보게 될 지 알 수 없네요; 책 사령관이 빨리빨리 도촉중이라;

돌궐 2015-03-07 14:40   좋아요 1 | URL
그저 희망할 뿐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이제 겨우 리딩레벨 5~6점대 책 읽는 수준인데 프랑켄슈타인은 10점이 넘어가요. 읽다가 사리 나올 겁니다. 실력을 좀더 쌓은 다음에 읽으려구요.ㅎㅎ
찾아봤는데 12.4 라네요.

AgalmA 2015-03-07 15:50   좋아요 0 | URL
프랑켄슈타인이 리딩레벨이 그리 높은가요@@ 번역물로 본 걸 운이 좋다고 해야 되나요ㅎ 괴테 <파우스트>는 한 30레벨 나오겠네요; 파우스트도 읽을 타이밍을 놓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만병통치약 2015-03-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작가였네요. 이래서 어릴때 명작을 읽어야 되나 회의가 듭니다. 어릴때 아동용으로 읽고 ˝읽었다는˝ 착각에 빠져 제대로 읽지 않네요 ^^;;;; 우리 선생님들은 이 책을 19세기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AgalmA 2015-03-08 01:34   좋아요 0 | URL
셸리라는 성 때문에 아마 남성으로 생각하셨을 듯. 그녀의 남편 퍼시 비쉬 셸리가 유명한 시인이였으니까요.
어렸을 때 명작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기억이 안나요-_-; 그래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정말 헷갈릴 때가 많아요... <적과 흑> <좁은 문> 그런 작품...단 한 문장도 안 남아 있다는ㅜ...어렸을 때부터 독서일기를 썼더라면 좋았을걸 많이 아쉬운 일...
19세기 후반에 마르크스가 혁명하자 할 정도였으니 서민들의 삶이 이만저만 했겠습니까마는,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 심리학 등 학문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다이나믹했던 거 같아요.

cyrus 2015-03-0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프랑켄슈타인>이 1818년 판본을 개정해서 나온 1831년 판본,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문학동네의 <프랑켄슈타인>도 1818년 판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책 정보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에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1831년 판본을 주 텍스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황금가지 출판사의 <프랑켄슈타인>을 가지고 있는데 초판 서문과 1831년 서문을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AgalmA 2015-03-07 23:53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도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읽은 문예출판사 판본도 1818년 판본이더군요. 서문도 앞에는 남편 셸리 시인의 것, 뒤에는 메리 셸리의 것 이렇게요. 황금가지가 1831년도 번역본이면 비교해보기 좋겠군요

에르고숨 2015-03-07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본 영화로는 그냥 `공포`였는데 문학으로 접한 작품은 웬걸, `우울`이더군요. 저는 황금가지 판으로 읽었는데 저자 서문이 31년, 17년 것이 다 실려 있어요. 발췌문만 보아도 황금가지 판과 꽤 다르네요. 3별은 `덜그럭`거리는 번역 때문이지요? 흙, 위로를- 대니 보일 연출 연극을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AgalmA 2015-03-08 01: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영화나 어린이용 공포물로 접한 작품들이 실제 원작으로 접하면 대개 우울의 정조가 강하더군요. 작가가 1831년 정식 출간 시 1818년 판본의 문체만 거의 수정했다고 밝혔으니 이 화법 전환의 덜그럭거림은 명확히 번역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 대니 보일 연극 좋았어요. 전 컴버배치-피조물 버전(분장도 분장이지만, 생김이나 몸짓 싱크로율이 완벽!)봤는데, 진심 멋지더라능! 음...대니 보일 <프랑켄슈타인> 자막까지 어둠의 경로로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합니다...(쿨럭;)
 

 

 

 

 

 

 

 

 

 

 

 

 

 

 

 

 

§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눈물에 젖어 꿈에서 깨며, 왜 내가 죽는 자가 아니고 내 소중한 사람이 살해되는 것을 보는 자여야 했는지를 하루 종일 생각했다. 문득 카뮈의 이방인이 또 다르게 이해되었다. 까뮈는 사실 어머니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었지만, 또한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해서 아랍인을 죽였다고. 그렇다. 뫼르소의 살인은 달빛이 아닌 반드시 태양 아래에서 여야 했다. 카뮈에 의해서. 프로이트는 어떤가. 아버지에 대한 주눅과 강박이 그토록 강렬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세울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우리의 증오는 모든 가정과 모든 검증을 거쳐야 한다. 앎의 통과의례를. 더불어 우리는 매일 밤의 통과의례를 치른다. 내일을 위해 반드시 꿈을 거친다. , 한밤의 저주여.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신은 세 번째 인간을 손수 만들지 않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두 번째 인간으로 여자를 만들 때 진저리 쳤듯이 두 번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세 번째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모양새는 어떠했을까. 존재했다면 이 세계에서 분명한 것은 여자보다도 더한 노예 취급을 받았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오카스테여, 그래서 당신은 고통보다 자살을 택했지. 시간의 봉인이 풀리자마자 우리는 그렇게 죽었고 번식했다. 막을 수 없는 잠처럼 그렇게. 눈을 뜨면 온통 시야 가득 사람이다. 시간을 알기 전에 나는 미쳤어야 옳았다, 좋았다, 울었다, 그쳤다. 시간이여, 내게 제발 나를 팔지 마시라. 나를 주고 나를 사게 마시라. 나는 온통 내 냄새로 가득하다.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이라는 게 대개 이런 것이다. 나는 미친 자의 시간을 사고 싶다. 간절히. 반쯤은 미쳐있는 걸까. 시간처럼.

 

 

 

착, 착, 착 …… 도착하여 쌓여가는 책들을 모로 바라보며, 오르지 않은 산은 만만해 보이는 것이지, 그런 생각을 했다. 롤랑 바르트는 자신을, ‘예민하고 탐욕스러우며 말이 없는자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문장에서 내게는 뭐가 더 넘치고 모자라는 지 종종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에게도, 나에게도 말이 없는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말하고, 무엇을 그토록 말하지 않는 걸까. 꿈에서 소중한 이를 죽이듯이 현실에서는 무엇을 죽이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이토록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온갖 변명과 생각과 치기를 펼쳐 놓으면서 무엇을, 혹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장하고 있단 말인가. 삶이 부끄러워 매일 얼굴을 가리는 이가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나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가릴 수 없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한다. 벤야민이 책을 창녀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부끄러웠다. 어떠한 지성도 어떤 부분의 치졸함은 가릴 수가 없다. 인간이니까. 그리고 전쟁. 1차 세계 대전 때보다 2차 세계 대전 때 자살률이 더 높았을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사람이었다면 2차 세계 대전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옥문이었을 테니까. 3차 세계 대전이 펼쳐진다면 2차 세계 대전 때보다 더한 차별적 박해가 가해질 것이다. 우리의 태어남은 우리의 외양이 증명해 줄 테니 너는 무엇을 믿느냐, 가 신분증이 될지도 모르지. 끝없는 발걸음들. 벤야민은 스페인 국경 앞에서 자살했다. 그는 탈출을 위해 정말 선원으로 변장을 시도했던 걸까. 그리고 바다에 내던져졌을까. 삶은 죽음을 추적한다. 나는 가끔 내가 엉터리 추적자라는 생각을 한다. 마침내 다다랐을 때는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는데도.

 

 

 

척, 척, 척 …… 귓바퀴로 찰랑이던 바닷물이 나를 삼킬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누군가는 그리 쉽게 죽고 나는 혼자였는데 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일까. 삶의 집착이 문손잡이를 다시금 돌릴 때, 복도를 빠져나간 바람은 초침소리보다 가늘고 적막하다. 그 실낱같은 바람은 바다로, 꿈으로, 음악으로, 태양으로 사정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안다.

 

 

 

생각은 착, , 착 잘도 도착하고 잘도 떠난다. 인사도 미소도 마지막도 없이.

 

 

 

 

Agalma

 

 

 

 

 

 

 

 

 

 

 

단상으로 구성된 책에는 진실과 변덕이 동시에 등장한다. 어떻게 둘을 체로 가를 것인가? 무엇이 신념이고 무엇이 일시적 상념인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 결정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적어도 한 가지 경우 이상에 저자 자신이 편들기를 유보했기 때문이다. 잠언은 당혹함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질문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 해답을 구할 수는 없다. 도대체 해답이 있을 수 있는가? 해답이 있었다면, 모두 알다시피, 의식 상실자의 열광이라는 해악이 따랐을 뿐이다.

사람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산다. 언어야말로 조국이다.

ㅡ 에밀 시오랑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

"나도 자아가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그래서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어. 하지만 자아가 환상이라고 해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인걸……"

1974년 7월의 어느날 밤, 아나벨은 바로 그런 정황에서 자신이 하나의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인간이 하나의 동물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자각하는 것은 먼저 고통을 통해서다.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완전하게 자각하는 것은 <거짓말>을 매개로 할 때이다.

사고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그들의 내면에 있고 그들 자신의 정신이 지어낸 것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그 공간 속에서 사는 법과 죽는 법을 배운다. 그들의 정신이 지어내는 공간 속에서 분리와 거리와 고통이 생겨난다. …… 분리란 거짓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고 거대하고 상호적인 얽힘뿐이기 때문이다.

ㅡ 미셸 우엘벡 『소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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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1 - 잃어버릴 수 없는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from 공 음 미 문 2015-06-01 02:53 
    § 자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의 어느 지식인이 자유는 서양에서 전해진 관념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의 자유를 의심했다. 자유를 위해 싸우고 죽었으며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모욕 같기도 했다. 나는 지나친 단정을 경계한다. 단정 속에서는 어떤 진실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걸 무수히 봐왔다. 오히려 진실은 매우 모호하고 유동적이지 않았던가.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는 더 불완전했다. 츠바이크는, ‘인간
 
 
[그장소] 2015-03-05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까지...잘들었어요.
글..좋은데요..^^
언제나 좋았지만.
역시 나는 이쪽이 취향이야...
먹고 사니즘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다면 최소한의 것만 취하고 싶고...지식을 배우기보다는 구름을 잡는 허황된 이상세계가 옷이기를 바라죠.. 그게 나의 치부를 가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말예요.
진정한 배고픔을 몰라 그런다고 누구는 그러기도 하더라만...
그건..모를 일이고.ㅎㅎㅎ

사나운 꿈들을 꾸었나..봅니다.
책들을 정리하신 모양이고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말하고 싶은 걸까요?
오늘의 시간을 사고 꿈을 팔아 사는 당신이
비참하다..여기지 마시기를..
살면서 무얼 위해 사는가 모르며 사는 이들조차 있으니..아직 당신은 괜찮은 거라고..

AgalmA 2015-03-05 22:47   좋아요 1 | URL
책은 무엇보다 위안이 최우선인 피난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속의 풍랑도 있는 것이어서...
책정리보다 책도착이 더 많아 곤란을 겪고 있지요.
그장소님도 기운내시길...
봄이 오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어지럽더군요.

비로그인 2015-03-05 0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합 예술의 아우라를 발하는 글들이 이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5-03-05 22:50   좋아요 0 | URL
추구하면 할수록 제 글은 사형선고를 담은 코미디 같아 곧장 침울해집니다. 좋은 말씀 늘 감사드립니다.

[그장소] 2015-03-0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이 더 추가되었네요.시오랑과 미셸의 박스글.. ^^ 완벽 추구!!

AgalmA 2015-03-05 22:52   좋아요 1 | URL
시오랑이 그러더군요. 머리에서 말고 창자에서 나온 생각을 말하라고요. 감정적 분출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지만 늘 실패인 듯.

오쌩 2015-03-0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시네요ㅎ
미셜 우엘벡의 책,아직읽어보진 못했지만 읽어보고 싶네요^^

AgalmA 2015-03-05 22: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오쌩님.
의식의 흐름이 여의치 않습니다;
미셸 우엘벡 제 짐작으론 오쌩님이 아주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건조하면서도 단단한 철학이 소설 내용보다 더 강렬하거든요.

[그장소] 2015-03-05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말고 창자에서...감정적..분출이 되지 않게.
글 속의 풍랑..
Agalma님. 맘에 아지랑이 먼저 피는 모양 입니다.
봄이 피기전에..꽃도 피기 전에..
우울이 너무 가라앉아 멀미가 깊어진지 오래인 것을 방치한 모양 .
사형선고가..다 뭐예요.
정말 아픈 사람이 들으면 버럭 할거예요..ㅎㅎㅎ
그 모든 것을 덮을 만한 글이니..그만
우울의 실체를 거두시길.
힘은 되려 님이 내야겠어요.
비타민 좀 챙겨 먹기를 권해요.
봄나물도 좋은데 ...^^

AgalmA 2015-03-05 23:36   좋아요 0 | URL
저는 혼날 만 해요 ~_~

[그장소] 2015-03-0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날게 아니라 뭔갈 좀 챙겨 먹어야 할것 같아요..일도 있고 이렇게 똑똑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아.Agalma님은 인류애..랄까.
박애 라고할까..그게 너무 큰지도 몰라요.
세상 자체가 근심인지도..
어쩔 수없는 철학자 타입..
따듯한 스프가 아니라면 철분 제..라도.
봄엔..뭐든 결핍되기 쉬워요.
다운되는 기분이 자꾸 오고요..
겨울 나느라..몸도 겨웠고.
그러니 잘 챙겨먹었으면 놓겠어요.
혼나야..한다..그런 뜻 아닌거 아시죠?!^^

AgalmA 2015-03-05 23:54   좋아요 1 | URL
저도 농담이죠~ 그장소님이 저 혼내는 거보다 제가 그장소님 혼내는 게 더 쉬울 걸요ㅎ 그장소님이 저보다 더 여리시면 여리시지 덜하진 않...
대보름이라고 해서 캐슈넛트와....맥주를...네, 음주댓글 중입니다. 노동자로 다시 돌아가니 연일 이 지경...
철학자라뇨; 노동자요 노동자! 근심많은 노동자.

[그장소] 2015-03-05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좋다. 맥주 한잔에 캐슈넛츠.
과음하진 말고요.
귀밝이 술인 셈..쳐요..
ㅎㅎㅎ 철학하는 노동자여...그대의 이름은
Agalma...
저 석고상은 어디서 찍은거예요?
재료상..화구사? 일하는 곳...?? ^^
첨 볼 때 이거..물어야지..했는데.

AgalmA 2015-03-06 02:19   좋아요 1 | URL
그 장소는 비밀입니다ㅎ 화실 다닐 땐 석고상, 머리통만 있는 괴물들이라고 투덜댔는데, 세월이 한참 흐르니 그곳의 정적과 향이 그립네요. 이사하면 작은 놈으로다가 몇 개 사다놔야 할 듯~

[그장소] 2015-03-06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아그리파가..그리울 정도니 말 다한거죠..석고의 감촉이 늘 싫었는데..
그..작가 때문에 노리즈키 린타로.
이번에 녹스머신 인가..냈죠.
그 작가의 책이 감각을 돌려 놨어요.
그리움으로..책이란..대단한 힘을 지녔어요.
 

 

 

 

 

 

 

 

 

 

 

 

 

 

 

 

 

 

 §

 오늘은 음악으로 만든 마법의 방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주세요.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울적해지는 와중에 이 글을 올립니다.

 

 

 

우울

 

 

우울한 성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기쁨이 없어 어두운 우울 속에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감각이 어떤 한도 너머까지 확장되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어, 다른 정신의 상태보다 훨씬 쉽게 닻을 내릴 수 있는, 영혼의 쓸쓸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울의 지배적인 특징은 숭고의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민감하게 느끼는 미 역시 그를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경탄의 감정을 불어넣어 그를 감동시킨다. 그가 내부에서 향유하는 기쁨은 아주 복잡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숭고에 의해 생겨난 감정은 매혹적인 미의 유혹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ㅡ 임마누엘 칸트 『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고찰』, Ⅱ, 1764

 

 

 

 

 

 

★ Library Tapes ★

 

 미니멀한 앨범 커버와 사진의 초점 흔들림이 그들 음악의 특색을 반영하는 듯하죠.

 

 Library Tapes [Höstluft] (2007)

 

 

음악이라기보다 음향에 가까운 Library Tapes의 투닥투닥 빗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당신에겐 어떤 상념이 지나갔나요?

 

 

 

 

 

 

 

 

★ Pearls Before Swine ★

 

 Pearls Before Swine 미국의 싸이키델릭 포크밴드로, 60년대 후반~70년대 초 활동했는데요.

 알라딘에도 그들의 음반이 다수 있더군요.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멋진 앨범 커버를 좀더 감상해 보실까요?

 

 

 

 

 

 

 

 

[히에로니무스 보슈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 지옥편 이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One Nation Underground](1967)

저기 중앙에 모자를 쓴 사람 모습의 얼굴이 보슈의 얼굴이라고 하죠.  자신의 얼굴을 그림 속에 넣는 건 화가의 특권 같은...

 

 

 

Pearls Before Swine [Complete Esp-Disk Recordings] (2006)

 

 

 

[피터 브뤼겔 <죽음의 승리> 가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Balaklava](1968)

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는 앨범 커버로 자주 이용되죠.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의 죽음>이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Beautiful Lies You Could Live In] (1971)

 

 

 

 

[자크 다비드 <마라의 죽음>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Constructive Melancholy: 30 Years of Pearls Before](1999)

이 그림은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초판본 북커버로 쓰여서 제겐 그걸로 더 인상적...

얼마 전에 중고도서로 팔았는데, 소장용으로 갖고 있을 걸 그랬나 좀 아쉽기도?

 

 

 

 

 

 

 

 

 

 

 

 

 

Sopor Aeternus & the Ensemble of Shadows

 

 Sopor Aeternus는 라틴어로 "Eternal Sleep"(영원한 잠)이란 뜻입니다.

 커버 속 인물은 이 원맨밴드의 주인공  Anna-Varney Cantodea 안나 바니 칸토디아 입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등 기행(奇行)의 신비에 싸인 뮤지션

 알라딘에 앨범이 제법 있어서 놀랐습니다.

 기괴한 곡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이곳 정서상 선곡은 차분한 걸로 골라 봤습니다.

 

 

 

 

 

 

 

 

 

 

Sopor Aeternus [Dead Lovers Saranbande: Face One] (2000)

 

 

 

 

 

 

 

 

 

 

 

정차식

 

 국내 1세대 인디밴드 레이니선(RainySun)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정차식의 솔로앨범.

 국내에서 그로테스크 뮤지션으로 1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뮤지션!

 

 

 

 

 

 

 

 

 

 

 

 

 

 

 

 

 

 

 

 

Rene Aubry ★

 

원래 예정은 Rene Aubry [Derives](1989)에서 Le Festin De L'ogresse (식인귀들의 향연)을 들려 드리고 싶었는데 유튜브에 음원이 없는 관계로, Rene Aubry [Steppe] (1990)에서 The Dark Wind를 선곡했습니다. 
Rene Aubry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아래 웹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www.kangnmusic.com/rene_aubry.php

 

 

 

 

 

 

 

 

 

 

 

Rene Aubry [Steppe] (1990)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예술은 미제라빌리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ㅡ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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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잘 모르더라도 보스와 브뤼헐의 그림을 표지로 한 앨범은 소장하고 싶어요. 명화 표지로 만든 앨범 커버가 제가 좋아하는 취향입니다. ^^

AgalmA 2015-03-03 20: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커버 땜에 엄청 소장하고 싶어했는데, 국내 구매는 어려워 아마존에서 해외구매까지 해야하나 고민하다 여러날 지나고 그래요^^;

에르고숨 2015-03-0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 황금가지 판이 섭섭하겠어요.ㅎㅎ 그로테스크-우울-상처(자코메티)에 이어 내심 괴물(베이컨)까지도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이힝, 이렇게 제 취향을 은근히 밝히면셔, 크릉. 찬찬히 음악을 듣다가- 칸트의 저 문장을 갖기 위해 <아름다움과 숭고...>를 찾아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AgalmA 2015-03-04 03:00   좋아요 0 | URL
! 황금가지 깜빡했네요. 좋은 지적 감사~ 도서관에 문예출판사 밖에 없어 이걸로 읽고 있자니 마구 화가 나네요ㅜ ... 이 좋은 작품이 이렇게밖에 번역이 안되다니...어휴.
베이컨까지는ㅎ; 그로테스크가 공포로 심화되지 않도록 나름 안배를...
언젠가 추의 미학으로 베이컨을 초빙해 볼까 합니다만. 뭐라고? 우리 베이컨씨를 그렇게 써먹다니! 할 수도 있겠죠;;; 베이컨씨야 숭고고 법이고 써먹을 데가 어디 한 두군데라야 말이죠. 이번에 출간된 베이컨 인터뷰집 읽어보고 싶더군요
칸트씨도 참 여기저기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 꼭 완독하고픈 독서군이죠...고달픈 독서가들 신세여!

양철나무꾼 2015-03-04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완전 제가 좋아하는 성찬이군요. 마이클코넬리의 보슈로부터 시작해서 정차식에 르네 오브리까지...르네 오브리는 지금부터 26년전 수.작.때 B.G.로 썼었어요. 감회가 새롭네요~^^

AgalmA 2015-03-04 02:4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요즘 안 보이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걱정했잖습니까(걱정을 버럭으로;)! 코넬리 작품은 <시인>, 취재수첩 <범죄의 탄생> 밖에 안 읽어서 코넬리의 보슈 매력은 잘 모르겠어요ㅎ
르네 오브리...네, 예전에 은근 인기 많았죠. 프랑스 음악 경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아멜리에> 음악담당 얀 띠에르상도 그렇고...아무리 생각해도 전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야 했어요ㅜㅜ!

수이 2015-03-05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코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듣는 걸로~
 

 

1.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

 

입을 여는 순간 '상대'는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에 취한 입들.   

그에 따라오는 코멘트에 답할 수밖에 없는 我 비련이여.

소통이란 너와 나 대화의 조율을 통한 긍정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간극과 침묵을 수긍하는 평행에서 실현된다.  

입을 여는 나와 너의 추함을 견디는 것 자체가 삶이다.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사랑에 올인시키는 통속 또한 인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다

내 발화에 즉각 발생할 어떠한 부정도, 긍정도 나는 말릴 생각도, 수도 없다

자신의 환상에 이렇게 끝없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생물체가 또 있을까.

생존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죽음의 선고』의 방 안에서 그와 그녀는 다가가면서 멀어지는 무한함이 된다. 조르주 바타유가 사망했을 때 모리스 블랑쇼는 「우정」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한 모든 말들은 단 하나를 긍정하는 데로 나아간다. 즉 모든 것이 지워져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 있으면서 모든 기억을 거부하는 어떤 것이 이미 따라가고 있는 이 움직임에, 지워져 가는 이 움직임에 주목함으로써만 우리가 충실한 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워짐으로써만 남을 수 있는 사태, 그것이 나다.

NADA(스페인어 : 無)

 

그녀는 하나의 생각처럼 자유롭게 내 앞에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있었으나 이 세상에서 내가 여전히 그녀를 만나는 것은 그녀가 나의 생각이기 때문일 뿐이었다.

 

 

​- 모리스 블랑쇼『죽음의 선고』 

 

 

 

 

 

2.   3 · 월 · 이 ·  ·  ·  · 온 · 다

 

2012년 2월에 나는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도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3월이 왔다.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짧아졌고, 여러 해가 바뀌고, 그래서 소통은 어찌 되었더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오늘은 ​데라야마 슈지의 詩를 다시 찾아 읽으며 사라지려는 자의 기억을 본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는  데라야마 슈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 원고다. 그는 3월에 죽었다. 수많은 그, 그녀가 3월에 죽었다. 4월에도 죽었다. 5월에는 더많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내일은 2015년의 3월이 시작된다.  사라진 그들은 더더 말이 없고 아름답고 나만 혼자 남은 기분,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묘를 파는 사람과 묻히는 사람
누가 말했는지 잊었지만 그런 영화의 대사가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빙긋이 웃었다.
하라다 요시오는 ‘묘를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묘를 판다는 건 이미지로는 어둡다. 허무하다.
그러나 노동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웃통을 벗어젖힌 가슴에 땀이 배어나고,
맨발로 묘를 팔 때의 하라다는 제법 섹시하다.
그럴 때 하라다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땅끝까지 자고 다닌 남자.
잠이 깨면 그곳은 ‘슬픈 열대’다.

 

게으름과 성실, 지골로와 무정부주의자,
일꾼과 가난뱅이 시인, …다양한 대립을 하나의
인격 안에서 대립한 채 방치해 둘 때, 하라다는 배우가 된다.
정체를 감춘 ‘군중 속의 한 얼굴’.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살아 있는 하라다를 나는 사랑한다.
존 포드의 ‘남자의 적’ ‘끝없는 항로’ ‘분노의 포도’와 같은,
기막힌 남자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하라다밖에 없지 않을까.

 

하라다를 위해 쓴 시가 있다
하라다가 콘서트에서 불러준 노래다.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가을바람에

 

그래도 때로는 생각난다
같은 날 형무소를 나온 녀석
지금은 어쩌고 있을까
여동생을 찾아가고는 뚝

 

‘사과 가르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혼자서 노래했다
그러다가 나도 외웠다
아직 보지 못한 즈가루를
동경하며
동경하며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그런 녀석

 

하라다의 ‘사과 가르기’는 절품이다. 세상에는 역시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그 시를 쓰는 사람.

 

그런데 나는 몸이 망가져 도박만 하고 있다
어차피 ‘묻히는 자’에게는 앞이 보인다
바닥 모르게 한없이 밝은 기분이지만
일주일에 닷새는 병상에서, 나머지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은
선물할 꽃을 생각하는 정도다.
들으러 갈 수는 없지만, 정말로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분열'은 그의 형편없는 기억력이 궁색하게 숨기는 어떤 재난의 이름이다.

 

잠과 죽음을 서로 연결해 주는 것은, 둘 다 손님들에게 1인실만 갖춰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3.   더 · 멀 · 리 · · · · 가 · 줘

오 늘 은  잠 과  죽 음 을  분 간 할  수  없 을  정 도 로  내 내  졸 렸 고,  가 끔  살 아 있 다 는  신 호 로  농 담 을  했 다.  이  정 도 면  이  하 루 도  괜 찮 은  거  아 닌 가 요 ?  블 랑 쇼 씨 ?   슈 지 씨 ? 

우 · 리 · 는 ·  ·  ·  · 그 · 렇 · 게 ·  ·  평 · 행 · 하 · 게 ·  ·  ·  ·  서 · 로 · 에 · 게 ·  ·  점점 ·  ·  멀 · 어 · 지 · 면 · 서  ·  ·  ·  · 가 · 까 · 워 · 지 · 고 ·  ·  있 · 다 · 고 ·  ·  ·  · 더더  ·  · 다 · 가 · 가 · 고 ·  · 더더 ·  · 멀 · 어 · 지 · 고 ·  ·  싶 · 어 · 진 · 다 · 고 ·  ·  3 · 월 · 이 · 면 ·  ·  좀더 ·  ·  가 · 능 · 할 · 까  ·  ·  ·  · 이 · 것 · 은  ·   ·    ·  환 · 상 · 을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실 · 재 · 를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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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감성이라니 4월도 기대하겠습니다. / 요즘만큼 소통 소통하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AgalmA 2015-03-01 00:52   좋아요 0 | URL
으헉, 4월...또 금방이겠죠? 그러게요. 소통, 소통...저도 알라딘 와서 참 많이 외쳐댄 거 같은데, 왜 자꾸 한밤중의 숲속에 있는 기분이 드나 모르겠어요. 현실에서든, 어디든.
만병통치약님의 세상사 책 이야기가 내일도 있으려니 하며 또 잠을 청해야 겠네요ㅎ?
좋은 밤, 좋은 꿈 꾸세요.

수이 2015-03-0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확히 딱 제 마음_ 그러고 보면 아갈마님께는 번번이 마음을 들켜버려요. 정확히는 아니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 아갈마님 마음이잖아! 근데 왜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고 아뿔싸! 하는 걸까요_

AgalmA 2015-03-02 00:23   좋아요 0 | URL
같은 시대를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 마음이 대개 그런가 봅니다...한국의 특수성이란 거도 있고요. 저도 이웃분들 글 보며 그런 생각 종종 하니까요~_~

AgalmA 2015-03-0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3일 사망한 조르주 페렉을 깜빡한 게 아쉽다...굳이 선택한 건 아니었겠지만, 치열한 배치로 유명한 그다운 날짜 아닌가...3월3일... 그의 첫소설 <사물들>(1965)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다. 절판된 세계사 버전과 펭귄클래식은 무엇이 다를까. 옮긴이도 다르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으니 번역의 정서도 달라졌을 것이다. 첫 책이 <인생사용법>이 아니라 어찌나 고마운지ㅎ;;

에르고숨 2015-03-02 1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인생사용법>은 좀 길...죠? 봄과, 댓글에서 페렉을 언급해주시니 3월에는 저도 <인생사용법>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이성과 감성이 팽팽하게 아름다운 글. 오. 감동이. `살아있다는 신호로 농담을` 이런 표현은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막 좋습니다, 아갈마 님.

AgalmA 2015-03-02 16:27   좋아요 0 | URL
네, 도전 마구 부탁드립니다ㅎㅎ 페렉을 같이 읽는 친구를 아직 가져보지 못해서요.
전 인생사용법 몇번째 시도했지만 다 읽지 못해 매번 다시 시작요^^;;;
에르고숨님 자주 뵈니 좋아요. 봄볕같은 친구세요 :)
넉넉히 주신 과찬은 냠냠 할께요.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