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랑켄슈타인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작품은 훌륭하나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액자식 구성에, 세 명의 화자(월튼 선장, 프랑켄슈타인, 피조물)라 소설 작법(화법 전환)에 능숙하지 않은 번역자의 한계가 많이 보였다. 이 작품이 1818년도 번역본이고, 메리 셸리가 1931년 공을 들여 1부 도입부를 수정했다 해도 구성과 화법이 아닌 문체였단 걸 감안하면 초반 내용 전개가 덜그럭거리는 건 번역의 문제 같아 안타까웠다(가장 중요한 도입부인데 독서 승차감이 좋지 않다니ㅜ)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이 버전은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가 좋아?져서 번역본이 꽤 많아졌으니 개정을 기다리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메리 셸리가 여성인 관계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데, 글쎄... 굳이 여성작가로서 해석해 나가기 보다 당시를 산 한 작가가 시대를 소설 속에 녹여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여성주의 문학이라 표방하는 작품도 아닌데 페미니즘 해석을 하려 드는 것은, 작품을 오히려 가두는 과도한 비평주의 시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작가가, 그 시대에 과학소설을! 할 게 아니라, 만 20세에 이렇게 진지한 인간탐구가 엿보이는 작품을 썼다는 것에 놀라야 할 것이다. 과학은 작가가 이 소설을 표현해내기 위한 도구적 소재로 보는 편이... 과학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메리 셀리는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빅터라는 남성이 피조물을 창조하게 했고 결국 파멸을 블라블라~~ 이런 식이면 또 끝도 없는 논쟁이... 생각해보라. 남성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빅터-피조물의 상황과 그 주제에 대해 우리는 더 집중했을 것이다. 메리 셸리가 처음에 익명으로 이 글을 발표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피하려 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비평계에선 이미 그렇게도 보고 있다. 어쨌거나 최대한의 종합적 고찰을 담보한 결과들을 도출하길 바란다.
1818년에 발표된 이후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작품 속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빅터와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로고스와 파토스의 스며듦과 결합 - 행위와 복수를 통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닮은 쌍둥이가 된다. 괴물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혼동할 만도...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 자연을 만나고 언어를 익히며 인간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괴물의 탄생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까지도!
(여성, 피조물을 통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 고찰 - 페미니즘 주요 관점이 여기 해당될 테지?
이었다.
최근에 본 대니 보일 연출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나의 불만을 불식시킬 만큼 멋지게 재해석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부분은 특히나. 대니 보일은 공포성과 페미니즘 해석 경향성을 덜어내고 메리 셸리 이 작품의 가장 골조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의식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해석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극이라는 장르 효과도 한몫했다. 거장은 장르 불문하고 멋진 창조를 보여주는구나, 또다시 절감! 대니 보일 씨, 언제나 팬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이 책은 작품 외에도 좋은 모범 하나를 더 담고 있다. 다른 출판사에도 수록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메리 셸리가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1831년도에 정식 출간하며 쓴 저자 서문이 그것이다. 짧지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서문 중 몇 문장을 밑줄긋기로 남긴다.
(한가롭지 않아 원래 200자 평만 쓸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졌군... 흠)
ㅡAgalma
...여가이면 소일거리로 `이야기를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즐거웠던 일은 허공에 성을 짓는 것, 즉 백일몽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주제에 따라 이어지는 일련의 상상 속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꿈꾼 상상들이 내가 쓴 글보다 더 환상적이고 그럴듯했다. 글 쓸 때 나는 거의 모방자에 가까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모방했던 것이다. 내가 썼던 글은 적어도 다른 한 사람 ㅡ 내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ㅡ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상상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내게 그 상상들은 내가 속이 상할 때는 도피처였고 한가로울 때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산초(돈키호테의 그 산초)가 말한 대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앞서 존재했던 무언가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힌두교도들은 세상을 코끼리가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발명이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물질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발명은 어둡고 형체가 없는 재료에 형체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재료 그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발견과 발명에 관한 한, 심지어 그것이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콜럼버스와 그의 달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발명은 대상의 잠재력을 포착하는 능력과 그 대상에서 연상되는 아이디어를 빚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