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에서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었다. 그녀의 사진 230여점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지만 이 책은 꼭 소장하고 싶다. 미혼으로 보모로 일하며 50여년 묵묵히 수십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은 숨은 예술가. 지나친 비유가 아니라면 어떤 사진에선 나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고, 경매 시장에서 그녀의 필름을 발견한 존 말루프만 횡재한 격이지만, 비비안 마이어가 이렇게라도 알려진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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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만이 내게 완전한 타향”(블랑쇼, IC 60)

내가 라고 말할 때 그 단어, 그 개념 속에 나는 얼마나 들어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일상언어로 쓰는 ’, ‘죽음’, ‘는 우리가 돈을 주고받듯이 매개이다. 언어는 대상과 사물을 대체함으로써 그것을 지워버린다.

네가 아프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아픈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정확히는 모른다.

이런 경우도 있다. “당신은 인정머리가 없군요.”, “당신은 천사입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자기 안의 반대 성향을 되짚어보게 된다(맞아, 나는 천사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선 할 말이 없으므로 생략). 이처럼 나와 너에 대해 아무리 많은 특징들을 가져온다 해도 부정확하며,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익명화되며, 개체성을 상실한다. 같지 않으면서 같아지는 우리.

도대체 나는 어디 있는가. 있다고 굳게 믿어야 할 문제인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가능한 친구이다. 친구와의 관계는 언제나 불가능성과 함께 한다. 이 속에서 사람은 무력해지며, 이때의 소통이란 아주 먼 미래에는 서로 구별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개별 존재들의 소통이 더 이상 아니다. , 소통은 개개인들을 욕망의 깊숙한 관계 속으로 끌어들여 한데 뭉치게 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소통은 융합을 확인하는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거부하는 운동으로, 어떠한 보증도 확실함도 없는 운동으로서 홀로 나타난다.(F 96) (p 228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 “인간을 이름없는 존재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소, 문학

 

당신은 당신을 대신해 말해주고 행동하는 주체를 문학 속에서 찾는가. 블랑쇼는 고개를 젓는다. 우리 모두는 그 속에서 사라지는 자이다. 인간에게 언어와 마찬가지로 죽음도 익명성’, ‘부정성’, ‘부재에 핵심기제이다. 언어와 죽음이 함께 소용돌이 치며 말하고 있는 장소, 문학. 인간은 사는 내내,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사유하는 이상한 생물이다. 지식과 밥과 자식과 타인과 자연과 문학, 세상의 모든 것이 죽음 사유의 연료로 쓰인다 

■  194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블랑쇼가 쓴 모든 글은 우리가 죽음과 맺는 관계를 계속해서 반성하고 이 문제로 되돌아간다. 어찌 보면 우리는 문학이 요구하는 바를 따를 때 죽음을 경험한다. 물론 이때의 죽음은 누군가의 소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무의미성'이나 주체성의 한계를 묻는 질문으로서의 죽음이다. 글을 쓰는 것은 언어의 익명성에 노출되는 것이니, 인간 주체의 파멸과 소멸은 문학의 조건이다.〔언어의 익명성이란, 언어는 누군가에게 속하지 않으며 어떤 주체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없으므로 특정한 이름 아래 귀속될 수 없다는 뜻이다. 현대 대중 사회의 한 특질을 가리키는 사회학적 용어인 익명성과는 다르다. 블랑쇼는 언어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해도 문학도, 죽음 앞에 처한 인간도 익명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성찰로 나아갔다. 그가 언어, 죽음, 문학이 갖는 공통적인 특성으로 제시한 익명성, 비인칭, 중성성은 블랑쇼가 일찍부터 탈주체적 시각을 앞세워 사유해 왔음을 보여 준다. 특히 문법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비인칭과 중성성이라는 용어는 언어의 본성에 관한 성찰을 중요시한 블랑쇼의 사유를 잘 반영하고 있다.〕(p22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현실에서는 는 죽지 않으며, ‘어느 누군가가 죽는다.’(SL 241)

죽어가는 일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 각자가 개별적인 존재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익명적이고 비인칭적인 존재로 만들어 나 자신과 나를 갈라놓는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달리 말하자면, 죽어간다는 불가능성과 맞닥뜨릴 때 나는 나를 가리켜 라고 말하는 힘을 빼앗긴다. (p102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니체에게서 물려받은 화두이자 블랑쇼가 글 전체에 걸쳐서 고민해 온 것은, 생소하며 이물스럽고 겉보기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실존의 유한성이었다. 우리의 실존은 세계를 의미 있게 만드는 힘 있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이름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인간 존재이다. (p230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 공동체 없는 이들의 공동체

내가 아플 때 더 아픈 사람 앞에서, 내가 행복할 때 더 환한 사람 앞에서 겸양을 배운다.

바닷가 물결들의 흔들림과 시장 사람들의 오고감은 그래서 닮았다.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파도소리와 말소리는 그래서 닮았다.

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왔다가 사라진다. 너는 네가 아닌 채 말하고 써야 한다고.

주체라는 추상적 보편 관념으로 축소되지 않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공동체가 추구한다면 또 다른 언어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를 모두 동일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이방인의 진실에 다가가는 비변증법적 글쓰기가 그것이다.(IC36) 이 언어는 정치적 참여의 언어가 아니라, 문학적 참여의 언어이다. , 언제나 세상 속 인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려고 하는 것이지 오락거리가 아니다.

세계의 바깥과 잇닿는 것이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이 세계가 반성적인 인간 행위의 총체로 이해되는 한, 나아가 일어나는 모든 일이라고 이해되는 한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1921) 1장에서 세계는 일어나는 일들의 총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세계의 바깥이란 완전히 세계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한계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실존의 의미를 소모해 버리지 않고 세계 안에 살아 있는 존재라는 우리 자신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게끔, 문학은 우리를 인도하면서 참여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뤽 낭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글쓰기의 소통 속에서, 개별적 존재는 무엇이 되는가? 개별적 존재는 앞서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별 존재는 그 자체의 진실, 그저 진실이 된다. (ICN 78)

(p209~210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참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블랑쇼와 동시대를 함께한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 속 '참여문학' 를 떠올린다. 두 사람의 자유’, ‘혁명의 기본 논지는 비슷하나 그들이 문학을 보는 입장과 방향 모색은 판이하다. 사르트르는 문학의 직접적 정치 개입을 논하며 문학을 정치에 종속시켰다. 블랑쇼는 나의 세계에 불쑥 등장한 타인은 내가 이 관계를 지배할 힘이 없다는 경험을 ”(p221) 필연적으로 낳으므로, 문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간접적 참여와 비참여를 통한 정치 개입을 논했다.

이러한 입장 차는 아직도 건재하다. 당신은 어떤가.

나와 다른 존재인 타자와 관계 맺는 것을 뜻하는 공산주의는 정치 경제를 지키거나 현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과 대립한다. …… 공산주의는 약화된 영구한 혁명이다. ‘약화된이 붙은 것은 완벽한 상태를 가져오는 영광스러운 혁명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공산주의는 정치제도들이 제도화되려고 하는 것을 계속 중단시키는 정치체제를 지향한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기존 공동체에서 내쫓긴 정치성을 사유하며, 조금 난해한 표현이긴 하지만 블랑쇼가 바타유를 따라 주장한 바에 따르면, 공동체 없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 신화로 회귀하지 않는 정치체제의 수립. 바타유와 블랑쇼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최종적인 구원을 약속하지도, 사람들의 어깨에서 정치의 무게를 벗겨 주지도 않는다. …… 문학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으며 어떤 순간에도 혁명적이다. (p218~219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나는 어떤 나라, 어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든 중요하지 않다. 문학이, 작가가 유명세문고본으로 재단된 상품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기원한다나는 최소한의 입장으로 작품을 순수히 만나길 바란다. 그때 나는 오성과 이성을 총동원하여 작품과 친교를 나눌 것이다. 문학은 내게 영원히 열려있는 우정을 허락하는 타인이다.

내가 왜 그간 카프카, 말라르메, 바타유, 들뢰즈, 바르트, 레비나스, 푸코, 데리다, 낭시, 아감벤의 글을 접하며 즉각적인 공명을 느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 없는 공동체로서 서로에게 말하고 쓰고 있었던 것이다.

  

 

§§§§ 모리스 블랑쇼 저작에 대한 접근에 대해서

나는 모리스 블랑쇼의 비평집 문학의 공간, 도래할 책과 소설 기다림 망각, 죽음의 선고등을 읽었다. 문학의 공간은 몇 해마다 한 번씩 다시 읽는 책 중 하나다.

그의 저작 독서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책은 문학의 공간, 카오스의 글쓰기, 무한한 대화일 거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대화(1969)는 미출간 중인데, 카프카, 파스칼, 니체, 브레히트, 카뮈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으며, 레비나스의 윤리학에 대한 화답이라고 한다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속에서 논의된 '죽음', 죽음과 타자의 관계를 다르게 해석해 들어간 저서이기도 해서 국내에 반드시 출판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난해한 주제라 국내 출판이 언제 될지 알 수 없으나 , 그린비 출판사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 기획에 이 책도 꼭 넣어주길 바란다.카오스의 글쓰기보다 형식상의 실험이 더 확대되었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어질어질...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에서는 이 책이 출간된 2008년 당시까지 국내에 소개되었던 모리스 블랑쇼의 작품들을 짚어주고 있어 도움이 된다.  카프카와 베케트를 떠올리게 하는  「또마, 알 수 없는 사람」 , 「목가」도 놓치지 말아야 할 소설이다 

내 생각에는 블랑쇼 소설부터 접근하기보다 모리스 블랑쇼의 주요 비평집부터 읽고, 그 시기의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자는 게 아니라, 저자가 사라지는 딜레마를 이해하고 나 자신의 부재함도 인정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의 사상 변화나 정치적 행동들 등등.

이후는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느끼면서 알아가야 할 책임임을 밝힌다. 모리스 블랑쇼를 읽고자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故 모리스 블랑쇼(1907~2003)

 

Agalma

 

 

 

블랑쇼와 레비나스. 그의 은둔적 성격 탓에 남겨진 사진이 없어 희귀 사진이라고 한다. 이 책의 표지사진으로 쓰였다.

 

 

오, 은둔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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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18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여긴 비옵니다.
비가와서 더 좋은...
울적한 일 뿐인데..
빗소리 하나로..좋답니다.단순하긴...

AgalmA 2015-03-18 19:05   좋아요 1 | URL
네, 여기도 비요.
때론 많은 걸 공유하면서 때론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

양철나무꾼 2015-03-18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짐작만 할뿐이지 모른다~라는 구절에 찔려서...ㅋ~.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받기 위해서, 좀더 정확하게 헤아림을 받기 위해서,
적어도 아프면 아프다고 명확하게 자신의 통증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할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너는 아니기 때문에, 이해한다는 건 머리로의 얘기일뿐~, 통증을 느끼는 부분은 머리 끝에, 내지는 가슴 어딘가에서부터 뻗쳐나오는 더듬이 한자락일 뿐이니까요~.
비가 오네요~, 이 비 하나를 놓고도 누군가는 있으라고 오는 이슬비요, 누군가는 가라고 오는 가랑비로, 이름을 달리하니까 말예요~.
내 삶의 주인공은 나예요. 소리내어 아프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공유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세상이랍니다~^^

AgalmA 2015-03-19 04:2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지레 찔리셨네요ㅎ 전 의도한 바 전혀 없습니다^^
그게 문제인게요. 1007개의 눈과 537개의 비를 얘기해도 더많은 눈과 더많은 비가 또 있을 거란 말이죠. 결코 정확할 수 없고 우리의 최대치는 짐작과 공감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라는 주체로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 할 때 상대는 축소되죠. 블랑쇼는 그래서 타자 앞에 우리는 전적으로 수동적이고 일 수밖에 없다 말한 거겠죠.
나라는 주체는 환상일 뿐이라는 블랑쇼에 저는 공감할 뿐이고요...
이슬비, 가랑비은 무슨 동시 같네요. 이 말은 좋다는 뜻입니다! 요즘 워낙 말 오해가 잦아 부연설명이 길어져서 휴, 힘드네요;

수이 2015-03-18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갈마님 서재 출입을 끊어야겠어요. 읽고싶은 책도 사고싶은 책도 너무 많아요. 흑 ㅠㅠ 근...데 레비나스가 제 상상 속 인물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고말았습니다;;;;

AgalmA 2015-03-18 21:22   좋아요 0 | URL
히히.. 그래서 저도 고민이 많아요.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는 게 이 부분에서는 좋은 듯ㅎ; 요즘은 메모도 잘 안 해요. 머리속에 계속 맴돌며 떠나지 않으면 결국 읽게 되니까요.
노년의 레비나스는 레비나스 같이 생겼던데요ㅎ; 블랑쇼와 레비나스의 우정은 참 특별한 듯. 블랑쇼는 처음엔 우익쪽이었는데,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생각의 전환을 많이 해갔죠. 2차세계 대전 땐 유태인이었던 레비나스와 가족들을 숨겨주기도 하고 말이죠. 서로 분명히 다른 생각 차가 있었음에도 우정을 잃지 않았던 모습은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야나님과 저도 그런 친구가 되어 보아요~ 서로 논쟁할 여지는 없어 보여 극적인 우정은 안될 거 같지만요ㅎ;;

수이 2015-03-19 10:04   좋아요 0 | URL
극적인 우정_ 은 싫어요 호호호호호_ 그냥 저는 오롯하게 팬심으로만 :)

[그장소] 2015-03-18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어~ 어쩌면 자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은 안다..알고있다는 것의 경계를..다시 짚어야 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그장소] 2015-03-18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제 장바구니 갔다가 깜놀했어요.
블랑쇼가..들어앉아있는겁니다.
언제 넣었지?원래 보려고 했나? 아님..우리 통했나...? 순간..진저리같이
소름이 스윽~... 아마도 무심결에 Agalma 님 책 보고 제목에서 확 끌렸고 내용도 더없이..그랬을 테죠..작용 반작용..마냥..
넣은 기억도 없이..있는 책.
암튼 . 데자뷰같기도하고 묘했어요.
ㅎㅎㅎ

AgalmA 2015-03-18 21:47   좋아요 1 | URL
제가 블랑쇼 관련 글을 몇 개 올리긴 했죠^^ 헌데 블랑쇼는 문학 분야에서 거의 전설이라 그장소님도 읽어야 할 생각은 늘 가지고 계셨을 겁니다.
저도 가끔 읽었던 책 또 사는 일명 서재병이 있어서 일단 책을 사기 전에 여러 모로 살펴볼 일이 많아졌어요. 요즘 개정판이 유행이니 제목만 바뀌어서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죠;;

[그장소] 2015-03-1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이름은 아니고 요즘은 병같아요..^^
아는책도 가서 책장을 몇장 넘겨봐야..
아..언제 쯤 읽었구나..기억이 나요.
몇 권은 희미하게 기억하니까..얼굴을 알겠죠..최근엔 이 이름을 꺼낸 적 없다는..Agalma 님 방에서..?! 그 생각은 또 못한...뭐든 기원이라면..님이..원인일거라고..^^!

AgalmA 2015-03-19 04:01   좋아요 0 | URL
모두 흥미로운 신간 얘기들인데, 저는 옛날 책들 찾아 읽으니 웬만한 서재가들은 식상할지도요 ㅎ

오쌩 2015-03-1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죽음이라는 주제가 철학적 성찰에 대한 충동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는것 같아요.
음악 잘들었어요,비오는날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는것 같네요ㅎ

AgalmA 2015-03-19 13:41   좋아요 0 | URL
네. 인간인 이상 철학자든 작가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산맥이죠. 프로이트도 마지막까지 죽음충동-성충동에 천착했잖습니까...
헌데, 블랑쇼는 기존의 철학들이 죽음을 해석하고 지배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죠. 소크라테스의 죽음 등 많은 사례들을 거론하며 철학자들이 죽음을 마치 잘아는 듯이 말하는 관념적인 죽음의 앎에 대해...

바벨의도서관 2015-03-19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비나스가 하이데거를 계승하면서도 강력히 반발했던 부분이 죽음에 관한 것이었죠. 내 안에 있는 전부를 다 빛 아래 드러낼 수 없듯이,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도 없고 다가설 수도 없는 미래의 사건을 마치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끌어와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죽음을 선취해 자기 삶을 기획 투사한다는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블랑쇼와 레비나스는 그런 점에서 닿아 있군요. 저도 그린비의 책들 참 좋아합니다. 이해 여부는 둘째치고(ㅡ,.ㅡ) 표지를 비롯 만듦새가 썩 튼튼하고 기품있잖습니까. ㅎㅎ 어쨌거나 Agalma 님 굿모닝~ !

AgalmA 2015-03-19 13: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바벨의 도서관님/ 말씀하신 부분이 레비나스와 블랑쇼가 공유하는 윤리 문제죠. 그 속에서 또 레비나스와 갈라지던 블랑쇼...미로 속 미로 속 미로... 끝도 없는 듯한, 그러나 분명 그런 길이 있다는 걸 발견하는 신기한 체험들의 연속입니다ㅎ
그린비 출판사 표지도 좋은 거 같아요. 블랑쇼 표지 컨셉도 적절한 거 같고요.

2015-03-19 2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9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돌이킬 수 없는.

어딘가에서 불이 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한 채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너무 뒤늦게 알게 된다. 유나[*]는 죽었다. 나는 아프게 밥을 먹었다. 배는 부른데 아픔은 가시지 않는다.

 

 

[*] <그것이 알고 싶다>(976, 열아홉 소녀의 사라진 7, 2015. 3.14)

 

   

 

§§ 우리의 인격은 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 싸우고 난 뒤에 드러난다.

언제나 나는 내 의견의 관철이 아니라 다른 시각과 풍부한 관점이 모이길 바랐다. 나는 의견 충돌 정도로 생각했지만 상대는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이후 내가 좋아요나 댓글을 달면 글을 바로 삭제하고 다시 올렸다. 내 마음 상함 보다 상대의 마음 상했음을 존중해주고자 시일을 기다렸다. 어느 날 그가 새 이웃으로 등록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 모르는 새 그는 이웃을 취소했다가 다시 이웃 추가를 한 모양이었다. 무엇을 위해 다시? 상황이 어찌 되었든 이제 서로 잘 지내보자는 건가 싶어, 나는 싸움이 되지 않도록 의례적인 댓글이나 좋아요로 동조와 관심을 보였다. 그의 분노는 여전했다. 내 좋아요가 달리자마자 그 글은 사라지고 다시 새 글이 등록되었다. 나중에 안 일인데, 간발의 차로 다른 이웃의 좋아요가 같이 달리면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다른 이웃과 덕담을 나누는 그의 모습은 ……. 인간 사회에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위신을 위해 이웃 취소 부탁드린다는 비밀댓글을 남겼다. 일말에는 내 오해이길 바랐건만, 그는 내 비밀댓글을 시원스레 지우고 나도 지웠다. 상대가 끝까지 괘씸하게 굴어서, 비밀댓글로 달지 말 걸 그랬나 뒤늦게 생각했다.

안타까운 건, 그가 격찬하는 예술과 문화가 그의 인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하필 13일의 금요일에 절정이었다.

 

 

   

§§§ 자화상의 무용성.

 

좋건 싫건 나는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림의 추구를 놓아버린 뒤 나는 색이 사라진 내 세계를 바라보는 천형을 겪는다. 20년 전의 그림들은 집안 구석에서 곰팡이의 안락한 거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림들 속에 숨겨놓은 숨은그림찾기 목록을 나조차 잊어가고 있다. 내가 붙인 제목도 생각나지 않다니!

 

 

 

요즘 컬러링북이 유행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무엇을 마주하고 찾게 될까 궁금하다. 단지 잡념을 잊거나 작은 성취, 자랑을 하기 위해서라면 아쉬운 일이다.

스케치의 구도와 데생력도 그렇지만, 색에서도 그 사람의 중요한 심상이 바로 드러난다. 색의 변환을 시도할 때조차 문체처럼 색의 구조성은 따라다닌다. 그것은 그의 전 작품에 드러나며, 그러므로 그림은 그의 말할 수 없는 부분의 현현이다.

어제는 그림을 그리며 손과 어깨가 하나로 뭉쳐 보였던 게 충격이었다. 색도 잃고, 선의 구분도 잃고, 마지막에 남는 것을 과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이 나일까. 세상엔 무수한 추상이 있지만, 내가 바란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음에도.  

 

 

 

 

에피쿠로스 학파는 내 절망에 대한 것을, 이 사회가 왜 이미지와 사물을 탐식하는 스펙타클의 사회일 수밖에 없는가를, 이미 기원전부터 말하고 있었다.

영상들은 항상 자신과 꼭 맞는 허공의 길을 찾는다.”

 

우리는 그렇게 계속 바라보고 말한다. 별자리가 거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이름붙이고 바라보듯이.

현재 스펙타클 사회를 논하며 비판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 시장경제 체계는 외적 발화점일 뿐이다. 앞으로 어떤 또다른 체계로 바뀌든 우리 의식의 메커니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은 우리 개개가 공동체와 선(善)의 의지를 부단히 세워나갈 때, 이 의식의 무소불위와 대적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조화와 파괴의 각축...

내 실패와 좌절을 바라보듯이 세상 또한 그렇다.

 

 

 

Agalma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다"고 할 때, 이 말은, 우리를 잘 모르거나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ㅡ 에피쿠로스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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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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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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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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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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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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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0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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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5-03-1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댓글을 달고 갑니다. 공감합니다. `당신에게는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누군가들에게는 대단히 `쿨`해 보이는지 몰라도 그것만큼 무식하고 무례한 짓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잘 추스르시고 좋은 글 계속 써주세요, `친구` 님. 그리신 작품들도 더 많이 보고 싶네요.^^

AgalmA 2015-03-22 22:49   좋아요 0 | URL
에르고숨님처럼 TTB로 빠질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의견나눔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논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게 너무 괴로워요. 상황이 어쩔 수 없으면 최대한 인신 공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일단 의견이 다르다 싶으면 무시무시하게 돌변하는 분들이 있어서. 참...
너랑 이웃하기 싫어 그 한마디도 싫을 정도였다면 왜 이웃추가를 다시 했단 말입니까.
사람 참 겪을수록 새로워요.

cyrus 2015-03-16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북에는 상대방의 의견(특히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대놓고 페북 타임라인에 친구 관계를 단절한다고 공지문처럼 올려요. 그런 거 보면 어이가 없어요. 아갈마님처럼 상대방과 단 둘이서만 대화를 나눠서 해결할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조용히 친구 설정을 해제하면 됩니다. 사람 한 명 단절시키는데 굳이 악의적으로 몰아세워서 페북에 알리는 거 보면 진상이에요.

AgalmA 2015-03-16 21:24   좋아요 0 | URL
너무 피곤해질 거 같아 페북, 트윗 저는 다 폭파해버렸습니다;
위의 상황을 알리는 이 글이 뒷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식의 행동은 하지 말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이곳도 소통 네트워크니까요.

다른 서재에서 저도 나름 재고를 하고 의견을 밝히는데, 앞으로 남의 서재 가서 의견을 밝히는 건 참 한정될 거 같아요. 날씨 얘기나 우스개 소리로 모두가 즐거운 그런 화법을 개발해야 하는 건지; 제가 개그는 참 젬병이라.
이웃 신청이나 수락도 생각이 많아지네요.
cyrus님 같이 알라딘 서재 오래 상주하신 분들은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2015-03-16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2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6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3-1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훌훌 털어버리시고...기운내시길~!

전 언제나 agalma님의 리뷰나 페이퍼도 그렇고,
댓글 하나, 좋아요 한방에 완전 날라갈듯이 되는 1인이걸랑요.

근데, 저기 저 그림 말이죠, 님의 자작~?@@
완전 좋아요~^_________^

2015-03-18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호. 나는 조연호의 두 번째 시집 『저녁의 기원』(랜덤하우스, 2007)이 황병승『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 2005), 김경주『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6)와 함께 놓여야 할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랜덤하우스에서 절판된 황병승과 김경주의 이 시집들이 문학과 지성 시인선 R로 재출간된 것에 반해 조연호의 『저녁의 기원』은 고려되지 않는 것 같아 매우 유감이다. 절판되었던 신영배 『기억이동장치』(문학판, 2006), 이민하 『환상수족』(문학판, 2005)도 재출간하면서 조연호 『저녁의 기원』은 왜 재출간되지 않는지? 단지 대중성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나는 또 한 번 문단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장삿속으로 변질되긴 했지만, 이 시집의 가치를 아는 알라딘 중고샵의 어느 판매자는 십일만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책정하고 있다.

 

조연호 시가 사람들이 공감하기 쉬운 접근점을 제시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장르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지만 시는 특히나 "뭐 이렇게 어렵게 썼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하며 쉽게 말하고 던져 버린다. 언어의 특수성으로 인해 철학이 모호하듯이, 시 언어는 하나의 창조로서 더 어려운 지점에 있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쉬어가는 의자나 따뜻한 아랫목 정도로 시의 영역을 축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가 말했듯이 시인은 "언어에 대한 위반",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키며, 말을 원초적 상태로 복귀"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처럼 나 또한, 시는 독자를 이해시키려거나 동조를 바라며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세속의 온갖 잡다한 것을 시에게까지 강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런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하나의 시를 내보내기 위해 산통을 겪은 시인을 위해, 울면서 태어난 시를 위해, 독자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내 짧은 글이, 조연호의 시와 마법사가 사라진 이 사회에 작은 친교 역할이 되길 바라며...

 

 

 ㅡAgalma

 

 

※ 16 페이지에 달하는 '근친의 집'은 시집이란 형태로 꼭 봐야 한다.

 

 

 

 

 

 단 한 계단

 

 

 

 거울은 나에게로 떠난다. 물에서 물로, 내가 숨기듯 조금씩 떼어 모았던 방. 그 방에서 나는 여러 개의 칫솔모를 닳게 하고 헬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제 지평선과 수평선으로 가득 찬 눈알을 아무에게도 안 보여줘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헬마, 술래잡기는 그늘이 없어서 따분했고, 지금쯤이면 얼음땡이 더 즐거울까? 작은 것과 함께하는 산책이면 8월은 충분하다. 난 헬마의 하루가 긴 다리라고 생각한다. 전생보다 더 깨끗해지고, 더 많은 식물로 달이 우거지고, 껌 한 통을 다 씹을 때까지 헬마의 긴 다리는 아직도 달을 향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UFO를 찾으러 가자, 마당엔 콩이 우거졌고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의 말투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7월이 맞다. 8월은 너무 짧았고 6월은 사위들이 들이닥치면 도망쳤으니까. 달의 분화구까지 단 한 번 여행한 적은 있지만 거긴 빈 뼛속의 음악만 행복한 곳이었다. 처음 장난감을 대하던 마음으로, 죽은 새를 대한다.

 

 

 

 헬마의 긴 다리는 아직 자신의 길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쁜 날씨는 아니지만, 물 밖으로 걸어나온 태양은 끌어안고 잠들기에는 너무 더러웠다. 고작해야 7, 8월에 수많은 영혼들을 담기 위해 묘지는 얼마나 깊이 땅밑을 걸어갈 수 있었겠니? 물소와 사슴은 모른 척 얼마나 많이 포식자 앞을 걸었겠니?

 

 

 

 내 눈은 사라져야 한다.

 

 

 

 휘파람 같은 헬마, 부서져 내리는 붉은 산에는 단지 아름다우니까 가는 것이다. 신세 지는 건 아니지만, 다음엔 좀 더 가까이에서 손발이 많은 바람을 즐기고 싶다. 안 그러니? 태어나 단 한 번만 허락되는 여행을 난 길고 긴 아홉 살로만 배웅할 거니까.

 

 

 

조연호 『저녁의 기원』 p56~57

 

 

 

 

 

 

 

 

  변신 이야기

 

 

 

 서로를 향하는 동안만 구름에겐 이별이 생긴다. 사랑한 후에는 작은 꺾쇠로. 차별받은 후에는 농담의 사전으로. 넌 제비를 뽑았다.

 향기 많은 꽃들이 네 머리만큼 자라 벌들을 통에서 꺼내기 시작하면 주방 아줌마는 물이 가득한 욕조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첨벙거리며 후회 없이 바닥을 다 훑고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동물로 숲이 가득 채워지는 날. 여름은 당근의 붉은 뿌리처럼 하나씩 뽑히며 사라지고 있었다. 구석에 서서 작은 귀를 흔드는 것으로 나의 은신술은 완성된다. 여기까지는 내 몸이 기생식물이었을 때의 길. 이제부터의 길은 내가 숙주(宿主)일 때를 향해 열린 곳.

 아이들은 분말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렸다. 색종이접기를 가르쳐주었지만 그애들은 이제야 겨우 시든 튤립을 접기 시작한다. 8자놀이하는 아이들의 7시, 술래는 강을 건너지 못한다. 여자애는 흡혈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자기 피를 빠는 단꿈을 꾸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 나 혼자서 바람에게 그렇게 말해본다. 그날은 왼손잡이용 글러브처럼 오른쪽으로 날아오는 것들과 마주하던 일요일. 우월의 표시로, 연대의 표시로 너는 모자를 벗고 세계관이 없는 제비를 하나 뽑았다. 겨울의 지하에서 여름의 지상으로. 수레처럼.

 

 

 

 

 

 

 

조연호 『저녁의 기원』 p58~59

 

 

 

 

 

 

 

  행복한 난청

 

 

 

 

 엄마가 누나에게 죽을 떠먹일 때, 11월이 왔을 때, 누나의 쌍둥이 딸년들보다 아름다운 책은 없었다. 푸른 단풍나무 붉은 가지가 시린 혈청의 구름을 부른다. 오늘 내가 버린 수첩의 가장 가까운 미래부터 인과가 하나 둘 사라졌다. 왜 별자리 이름엔 식물이 없을까, 중얼거리며 단풍의 붉은가지좌(座)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태양이 지기 전까진 부끄러움도 숨기 좋은 방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많은 것 때문에 아이들의 주사위는 기뻤다. 붉은 물을 토하고 누나가 쌍둥이 딸년의 운명선에 머리를 베고 손금처럼 얇게 잠든다. 모두 먼 길을 걸어왔을 때, 11월이 왔을 때, 오지 않은 12월보다 완벽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연호 『저녁의 기원』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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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3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궐 2015-03-1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뭐랄까... 뭔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시어들의 조합이 관념과 이미지와 리듬이 뒤섞인 모습이랄까요.
시에서 꼭 의미나 줄거리를 찾을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AgalmA 2015-03-14 05:52   좋아요 0 | URL
돌궐님은 무심히 알고 계시는 게 많아 멋지십니다~

에르고숨 2015-03-13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부분만 봐도 매우 집중하여 읽게 되네요. 글에 긴장하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한 후에는 작은 꺾쇠로. 차별받은 후에는 농담의 사전으로.`에 눈이 한참 머물렀습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R이 `호명`되어 뜨끔하겠네요, 저도 함께 재출간을 기다려봅니다. `근친의 집`도 무척 궁금하고요. (오랜만에 댓글 달려고 하니 알라딘 서버가 투 비지... 제대로 올라갈지;)

AgalmA 2015-03-14 05:54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볼 땐 그리 인상깊게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에르고숨님 말씀하신 부분을 오래 반복해 보게 되더군요. 알라딘 서재와서 제가 참 별거별거 다 한다 싶어요ㅎㅎ
 
백남준 이야기
이경희 지음 / 열화당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 뉴욕에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동(洞) 이름을 알았던 사람

장률 감독 <경주>(2014)에 이런 장면이 있다. 술자리에서 플로리스트가 동북아 세계 연구로 저명한 북경대 교수(박해일)에게 친근하게 말도 붙일 겸 자신의 관심사이기도 한, 북경시의 대표 꽃은 뭐냐고 묻는다. 박해일이 미안해하며 모르겠다고 답하자 동석해 있던 북한학 교수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그게 뭐가 중요해! 북한의 국화(國花)는 알기나 해? 모르지?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를걸. 그건 바로 (탕탕, 탁자를 내리치며) 진달래꽃!”

나도 몰랐고 관심도 없던 사실이라,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이 이 소재를 쓴 것에 내심 부끄러움을 느꼈다. 헌데 이 정보에도 틀린 점이 있었다. 원래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꽃이긴 했지만 91년 김일성 주석에 의해 목란(남한:함박꽃나무)으로 바뀌었다. 장률 감독은 이 사실을 알고서 북한학 교수를 비꼬기 위해 이 장면을 넣은 걸까, 그도 놓친 걸까?

이 장면이 내게 남긴 것은, 자신의 관심사에 시종 몰두해 있다 해도 인간은 여타의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백남준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고 한 예술가였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라는 백남준의 세계적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예술세계에 큰 흥미가 없었다. 백남준이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던 아방가르드 시대를 한참 지나 도착한 그의 모니터와 VCR 예술은 내게 혁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움과 충격을 최고로 치는 문화 수용자도 아니어서, 내게 그의 작품은 어떻게 받아 들일까 늘 찜찜한 여지가 있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갈 때마다 중앙 홀에서 마주치는 백남준 《다다익선》 작품을 그래서 머뭇대며 지나쳤다. 이 작품은 건축가 김원 씨와 공동으로 2년 넘게 걸려 만들어졌다. 백남준 작품 중 가장 큰데, 개천절 10월 3일을 뜻하는 1003대의 모니터로 만들어졌고 1988년 설치되었다.

1992년 그의 회갑 년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비디오 예술 삼십 년 회고전을 준비할 때 일화가 있다. 백남준이 유치원 친구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경희 씨에게 국립현대미술관에 전하는 Fax(그 당시 가장 빠른 통신수단)를 보내며, 굳이 “막계동”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의 면밀한 성품을 살필 수 있다. 이경희 씨는 서울에 사는 본인도 모르던 “막계동”이란 주소지를, 중학생 이후 계속 해외에서만 거주한 그가 명시한 것에 신기해했다.(p103) 잡지와 신문을 가장 빠른 정보 매체로 여겨 집착하다시피 탐독한 백남준이 허투루 첨가한 것은 아니었다.

 

백남준 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먼지 쌓여가는 모니터 기념탑을 떠올리던 나는, 여러 전시장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두루 접하면서 그동안 내 편견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홀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예술에 대해 한국인이 다분히 정적이고 심미만을 편애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찰도 하게 됐다.

개념미술의 창시자이기도 한 뒤샹이 1917년 레디메이드(외부 세계에서 가져온 사물이 미술로 주장, 제시되는 미술 개념)로서 소변기 《샘》을 ‘전시’가 아닌 ‘진술’로서 예술화했듯이, 백남준의 예술작업들도 그 연대였다고 생각한다. 뒤샹의 그 시도가 당시 조롱과 논란거리였듯이 백남준의 다양한 예술 작업들도 국내에서 수용하기 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실질적으로는 그의 세계적 유명세 덕이 컸으리라 본다. 뛰어난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부숴버리고, 첼리스트 샤롯 무어맨과의 행위예술 《TV Bra》, 《TV Cello》, 바이올린을 줄에 묶어 질질 끌고 다니는 등 그의 초기 아방가르드 작업이나 이후 다양한 비디오 아트 작업들을 살펴보며, 최근 한국 예술계 작업이 그보다 더 뛰어난 성취들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글쎄...

 

 

 

 

 

 

 

§§ 백남준을 알아본 사람 & 백남준의 말

우리에게는 번역가로도 유명한 김화영 교수가 ‘비엔날레 드 파리’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접하고 해외의 평가와 함께 그의 말들을 기사로 써 서울에 알렸다고 한다. 김화영 교수는 백남준이 1984년 귀국 시 국내 TV 첫 출연 때 대담자 중 한 사람으로 출연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프로는 대중의 혹평을 받았다. 자신의 예술만큼이나 자유롭고 자 하는 백남준과 예술을 일종의 엄숙주의로 생각하는 한국 지식인들 사이의 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의 신문 기고 글 《백남준의 말하는 방식》은 그런 점을 잘 짚고 있다.

 

“나는 그의 비디오 예술을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그의 말하는 방식만은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은 솔직하고 억압적이지 않다. 때로 그의 말은 해학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억압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백남준은 그의 비디오 예술을 스스로 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쇼는 구경거리라는 뜻이다. 구경거리라는 말을 그는 별다른 부끄럼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의 구경거리는 위락적이며 소비적인 구경거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반성적인 구경거리다 … 나는 할리우드에서 재미있는 쇼를 만들면 재미없는 쇼를 만든다는 그의 말은 그의 쇼가 비판적 쇼임을 입증하는 것인데 그런 말을 할 때도 억압적이 않고 진솔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하다.

예술을 엄숙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그는 아무 부끄럼 없이 예술이란 지루한 삶을 맛나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서구 부르주아의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이므로 예술은 양념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성립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백남준의 말에서 감동한 것은 말하는 방법의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이다.

그의 말에 찬성하건 안 하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거나 보고 있으면 즐겁다. 그 즐거움은 그가 비억압적으로 말하고 있는 데서 생겨나는 즐거움이다. 내 의견에 대해 뭐라고 말해도 좋다. 나는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할 따름이라는 것을 그의 말은 드러낸다. … 그는 옳은 소리를 억압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다. 옳은 소리를 목청 높여 말하는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은 억압적이다. 다시 말해 위선적이다. …

나는 누구나 비억압적으로 말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다시 말해 백남준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꾸는 예술의 꿈이다.”(p44~46) 

 

 

 

김현 평론가가 격찬한 백남준의 생각과 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백남준 회고전 《비디오 때, 비디오 땅》 카탈로그에 실은 그의 '비디오 예술론에 해당하는' 글이다.

 

 

“비디오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말[馬]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

약 삼천만 년 전, 유인원들은 야행동물이기를 그치고, 그들의 숲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부터, 가장 빠른 통신수단은 가장 빠른 운송수단만큼 빨랐다. 이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텔렉스와 초음속 콩코드기가 같은 속도라고 상상해 보면 될 것이다. 실제로 말은 텔렉스와 콩코드의 기능을 겸하였다. 오늘날 우리들 결정의 90% 이상이 당사자 간의 직접 접촉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전화는 약 백 년간을 존속해 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대학의 카스 칼바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이 중요한 물건에 대한 논서가 단지 네 편만 저술되었을 뿐인 반면, 마야 어나 바빌로니아 어와 같은 사장(死藏) 언어에 관하여는 수없이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기원전 700년, 한 중국의 황제는 한 대신에게 백만 불을 주면서 하루에 1000마일을 달릴 수 있는 말을 구해 오라고 하였다. 그 대신은 온 왕국을 3개월 동안 뒤졌으나 헛일이었다. 마침내 그가 원했던 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말은 그 전날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은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닦았다. 그는 오십만 달러를 죽은 말값으로 지불하고 시체를 대궐로 가져왔다. 당연히, 황제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한 배반행위라면 중국 대신은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은 황제에게 극도로 침착하게 말하였다. ‘전하, 사람들은 말할 것이고, 소문은 바람처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들은 만약 전하가 죽은 말값으로 오십만 달러를 치렀다면, 살아 있는 말에는 얼마를 낼 것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생각했던 대로, 즉시 황제는 그가 원하던 1000마일을 달리는 말을 얻었다. 실제로,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기원전 290년 디앙 쿠오 추의 이야기에서)

정보기술이 개선됨에 따라 오보(誤報)의 기술도 보조를 맞추어 개선되고 있다. 거짓이란 항상 진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며, 살인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덕담(德談)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다. 가짜 예술품의 발견은 새로운 천재 예술가의 발견보다 더 좋은 일면 기사가 된다. … 영혼의 신비로운 새(鳥)인 소문(所聞)은 호모 사피엔스가 발명해낸 최초의 라디오였다. 왜, 어떤 소문은 다른 소문보다 빨리 퍼지는가를 결정하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마찬가지로 선전의 세계를 통치하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소문은 신진대사의 제2의 작업을 구성하며, 거기에서는 신기함이 진실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것은 단순히 작은 놀라움에 달려 있다. …

몽고 역사의 전문가인 일본인 이와무라 씨의 견해에 따르면 말은 기원전 100년경에 처음으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기원전 1000년경 인간이 갑작스럽게 진보한 이유를 말(馬)을 ‘발명’한 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말은 전쟁과 수송의 기본사항을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통신도 변화시켰다. 나는 청동기시대의 발전은 말의 길들이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

어쨌든 지금 우리는 비디오(Video) - 비다(Vida) - 비디올로지(Videology) - 비디오광(Vidiots)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 것인가. 가장 강렬한 통신력 PSI(Psychic Power), 즉 심령력이다. 자국의 목표를 위해 이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은 석탄의 힘을 이용한 최초의 국가였고, 미국은 원자력의 경우에 그러했다.) … (p99~102) 

 

 

백남준은 1990년 이어령 문화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서양인에게 한국 문화를 팔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활동을 옮기다 보니 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고, 결국 백남준이가 하니까 한국의 것으로 여길 게 아닌가. 한국에서 민족 예술이란 말이 유행인데, 좋은 예술을 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민족 예술이란 말까지 넣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민족이란 뜻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 하는 작업은 민족 예술인 것이다. 피카소는 스페인 민족의 미술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선 스페인의 혼과 역사가 절로 배어 나온다.”(p213~p214)

 

 

 

§§§ 그리고 나는 ‥‥‥

내가 간과한 단점들과 오류도 분명 있겠지만, 최소한 백남준은 그의 말과 동등한 예술과 행동을 보여줬던 것 같다.

누나가 손뜨개로 만들어준 니트 바지의 무릎을 ‘어찌 되나 보려고’ 일부러 가위로 잘라봤던 아이.(p86)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학교를 안 가는 그에게, 너는 종이로 만든 아이냐, 가족들에게 놀림을 받아도(p96) 제 스스로 결정했던 학생.

귀국 때 첫 인터뷰에서 “…… 내 유치원 친구 이경희를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던 자유로운 사람.

미술관으로는 악평 받았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바보상자와 기계들을 ‘빛의 정원’으로 바꾸었던 예술가.

작품명을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예술, 교육, 민족주의, 영혼성, 통신, 건강, 교통, 건강, 교통, 연구와 개발, 자서전…’(p106) 등 딱딱하게 표현했지만, 인간 사회를 끝없이 살피던 휴머니스트.

그리고 우리들의 사유와 행동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레이저빔을 쏘며 묻고 있는 자.

故 백남준(1932~2006)

 

 

 ㅡAgalma

 

 

 

 

 

 

 

 

 

※ 이 책은 이경희씨의 술회적인 부분이 많아 백남준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책을 찾아보니 터무니없이 적어 놀랐다.   

    절판 책도 너무 많고… 앤디 워홀과 비견되는 예술가가 자국에서 이런 지경이라니.

    백남준 사망 이후 출판된, 부인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과 이경희 씨 최근작 <백남준, 나의 유치원친구>는 가장 측근으로서 어떻게 다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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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1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김소월의 시며..진달래꽃을 너무 애송하기에..벌어진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했어요. 한 때 경주는 저도 봤는데..왜..몰라.알지..하다가.헉~ 했어요.분명 Aglma님 말처럼 90년대 초 책엔 진달래로..그때문에 격는일들이..있었다는걸..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나와요.이 후 남북 회담등 90년후반엔 모란 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안다면 아는데..어...랏 싶은..뜨끔했네요.
아르코를 정기구독하는데..안그래도 이번 과천
현대미술관서 백남준의 작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무엇이 그의 의지를 잇는것인가..하는
ㅡㅎㅎㅎ

AgalmA 2015-03-11 22:09   좋아요 1 | URL
그 소재로 소설도 있었군요. 목란(함박꽃나무)도 유의할 게 있더군요. 함박꽃이면 작약, 모란을 가리키고, 함박꽃나무는 산목련ㆍ개목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확히는 모란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권 전시만 살피다보니 저는 용인에 백남준 아트센타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장소] 2015-03-1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가나뉘어 그렇지..목란과 모란 ..이러는게 아닐까요? 작약과 모란은 다릅니다만..같은 과이긴 하죠.. 종의 문제 같네요.
아.네..갑자기.제목 생각이 안나서.ㅎㅎ 인상적인 내용여서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너무 한번에 이것저것 읽고 썼나봐요. 줄거리는 기억하는데...제목이..기억안나요.일어나기싫어서..이럼..ㅠㅠ

AgalmA 2015-03-11 22:40   좋아요 1 | URL
네, 둘다 쌍떡잎식물 강인 건 맞는데, 모란은 미나리아재비목, 함박꽃나무는 목련과네요.
알라딘서재에 식물 마니아 있으면 좋겠어요. 이웃하고 맨날 이것저것 물어보면 좋을텐데ㅎ

읽었던 이상문학상 정리하신다고 들은 거 같은데. 천천히^^...각 회차 별로 1등 뽑아주셔도 재밌을 듯? 수상작과 개인적 취향의 차도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그장소] 2015-03-1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정리중이고요. 열심히..
식물마니아 그러네요.대충 보면 이름만 알아도 어디냐 합니다. 모란이 미나리아재비목, 함박꽃나무..목련.
ㅎㅎㅎ풀이냐 나무냐..인데..ㅎㅎ
오늘따라 오타 심해서..계속 지우는 횟수가 더 많아요.

이상문학..ㅎㅎ 이미 대상작을 뽑아놓은걸..
제가 그럴 주제는 못되고요.취향은 극명하게 드러나겠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