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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출판사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2015.3)을 또 출판? 하늘색 심플한 표지 완전 맘에 듦! 진작 이렇게 내시지! 하지만 나는 사지 않을 것임-_-)~ 예전 거 이미 샀단 말이야ㅜㅜ
p64~65 전망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누구도 원망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회 초년병인 이 젊은이는 말할 것이다. 뭐라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거니는 대신 창 딸린 사무실 책상 뒤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내라고? 승진 발표 전날 희망에 들떠 가슴 졸이라고? 계산적이 되어 술책을 부리고, 화를 꾹 참아내라고? 시를 꿈꾸고, 야간 열차와 따뜻한 모래사장을 상상하는 내가? 젊은이는 마음을 달래며 할부 판매의 덫에 걸려든다. 그 이후로 그는 제대로 걸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에게는 인내로 무장하는 일만 남는다. 아, 마침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쯤이면, 청년은 더 이상 젊지 않고 불행에 가득 차서, 인생이 저 멀리 사라져버렸음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 삶은 목적이 아닌 고생일 뿐이다. 느린 승진이 가르쳐준 값진 경험으로, 몸을 사릴 만큼 현명해지고 신중해져서 더 이상 이러저러한 발언을 삼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섰다는 것과 노동에 할애하지 않는 알량한 시간을 채워줄 집과 별장, 아이들 교육뿐이리라‥‥‥.
제롬과 실비의 생각에 조바심이야말로 20세기의 특징인 것 같았다. 나이 스물에, 삶이란 감춰진 행복들의 총합, 삶이 허락하는 한 끝없이 계속될 성취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봤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들에게 기다릴 힘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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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다. 귤을 사러 갔다가 새로 오픈한 마트를 발견한다. 할인 행사 품목인 오렌지를 집어 든다. 탐스러운 딸기는 내게 아직도 비싸므로 사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입구 가득 쌓여 있는 딸기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판매원이 딸기 박스에 랩을 씌우는 포장을 쉴 새 없이 하고 있다. 매장 안은 어떤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은, 막 도착한 상품의 환상섬(島)에 사러 온 목적을 잃고 어리둥절한 채 방황하는 듯이 보인다. 상품들은 모두 새 것이며, 호감가는 빛을 낸다. 그들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생각지 않았던 상품을 향해 급하게 손을 뻗는다. 아이들은 더 빠르게 다가가고, 소리를 지르며 맹렬하게 탐을 낸다. 서로 의논을 하고 만류하고 해도 그들이 이곳을 나갈 땐 어떤 상품이든 선택하고야 말 것이다. 계산대는, 할인 품목이 아닌 상품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항의를 하거나 물건을 다시 가지러 가거나 하는 통에 물건들은 계산이 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계산이 끝났더라도 아직 끝이 아니다. 뒷사람의 계산이 끝나기 전에, 계산을 치르고 이제 자신의 물건이 된 것들을 쓰레기 치우듯 어서 챙겨 담아야 한다. 장바구니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지 않고 나온 나는 여분의 쇼핑거리가 더 생긴 채 계산대에 도착한다. 봉투값이 아까워 양손에 꾸러미를 든다. 시장에 오면 늘 이런 자잘한 치사함을 목도하고 감수하게 된다. 밖으로 나오는데 누군가 딸기를 도로 갖다 놓고 있다. 내 손에도 정작 귤은 없다. 그런 것이다.
1+1 해서 산 물을 마신다. 20년 전에는 없던 상품이었다. 50년 전에는 조르주 페렉 『사물들』(1965)이 등장했다. 24년 전에는 신해철이 《 Myself 》(2집, 1991.03.20)를 발매해서 "50년 후의 내 모습"이란 곡을 선보였다. 우리 현재의 곤궁함과 우리 미래의 곤궁함을 동시에 말했던 이들,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해나가야 하는지 각각 글로, 음악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수집했던 이들, 이제 그들은 없다.
나도 당신들 만큼 잘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게 주어진 이 삶만큼이라도.
당신들의 글과 음악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읽고 듣는다.
분명한 것은 50년 후에 나도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어떤 (신)상품에 열광하고 예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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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의 사물들은 발화점(진실)을 향해 누워있다고.
게오르그 짐멜은 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과 사물이 함께 있는 삶의 풍부함은, 서로에게 속하는 방식의 다양성과 서로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즉 인간과 사물은 결합과 융합, 분리를 거듭하며 서로를 대비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상대와 다른 사물들과 또다시 접촉한다. 인간과 사물은 끊임없이 서로를 설명하며 서로에게 귀속된다.
조르주 페렉의 이 책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들을 찔끔찔끔 읽다가 만 것이 아쉽다. 10년 전에『사물들』(세계사, 1996)을 읽었으면 관련 공부 좀 열심히 했었어야지!!! 별수 없이 나를 닦달;;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도 읽다가 말았고; 다행히 이 책은 얇으니까 그리 무리는 없다.
장 보드리야르 『사물의 체계』(1968)부터 읽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은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소비의 사회』(1970)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조르주 페렉 『사물들』 읽고 이런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죽겠군;
어쨌거나 이 책이 말하고 내포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할 때 이 소설 하나만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건 아쉬운 일이기에.
하지만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한 것은 발터 벤야민 ... 프랑스, 사물과 공간 속 황홀경에 빠져 있던 인간 군상을 가장 먼저이자 심층적으로 탐지한 이 였으니까.
ㅡAgalma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ㅡ카를 마르크스 《조르주 페렉 『사물들』에필로그 中》
한번 시험삼아 지상의 온갖 행복을 인간의 머리 위에다가 한꺼번에 퍼부어 행복 속에 풍덩 가라앉아버리게 하여, 그 행복의 표면에 물거품 같은 것이 꾸럭꾸럭 떠오르도록 해보라. 아니면, 인간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경제적 만족을 주어 실컷 잠이나 자고 꿀떡이나 먹고 세계사의 영속이나 걱정하는 따위의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처지에 놓아보라. ㅡ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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