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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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재와 이슈의 마법사라고 부를 만하다. 이언 매큐언의 부커상 수상작(1998년 수상)으로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암스테르담>다시읽었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다. 그전에도 한 번 읽었지만 리뷰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나 보다.

 

소설 <암스테르담>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설에 나오지도 않는 망자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 모인 네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고인의 남편 조지 레인은 죽은 부인의 애인들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우중충하고 이미지의 돈 많은 출판업자 조지가 어떻게 해서 자유로운 영혼인 몰리를 아내로 삼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처음부터 작가는 망자에 대한 정보 없이 산 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인에 대한 이미지를 빌드업하기 시작한다.

 

먼저 클라이브 린리가 있다. 중년 남자로 유산상속을 받아 젊어서부터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정부에서 의뢰받은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교향곡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크고 작은 성공을 체험했다고 해야 할까. 아티스트답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산행을 즐긴다. 산행 중에 떠오른 악상이야말로 클라이브의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자는 <더 저지>의 편집국장으로 맹활약 중인 버넌 핼리데이다. 나중에 조지가 제공한 사진을 대중에 공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 내각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도 빠질 수 없는 몰리의 애인이다.

 

매큐언 선생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은 작품의 길이에 상관없이 5개의 챕터로 소설을 구성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소설 <암스테르담>도 예외는 아니다. 이언 매큐언 선생은 등장인물들이 종사하는 직업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하나씩 밝혀 나간다.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클라이브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문기자, 출판업자 그리고 정치인보다(그리고 보니 거의 사회를 이끄는 모든 직업군을 망라한 느낌이다) 지식인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곡가라는 직업이 갖는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에게 일종의 뮤즈로서 영감을 주었던 여신이었던 몰리 레인에 대한 이미지를 재창조해낸다. 누군가에게는 작업의 영감을, 삶의 의미였고 혹은 무한한 쾌락을 주었던 인물이 이제는 한 줌의 재로 남게 되었다는 허망함이 압도적이다. 중세 이래 인간에게 무한반복 중인 메멘토 모리는 매큐언 선생의 소설에서도 변주되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몰리를 사이에 둔 연적이자, 수십 년 지기였던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조지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몰리의 마지막 남자였던 조지가 만든 음모의 희생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흙탕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고상한 지위와 직책을 가진 사람들 역시 욕망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외무장관 가머니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크로스드레싱에 캣워크 포즈를 취하며 잘 나가는 보수정치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겉으로는 강력한 이민규제 법안을 밀어 붙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정치인의 사생활이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거기에 양념처럼 곁들여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저명한 정치인의 평판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선정적인 가십성 기사를 게재하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언론매체의 본성에 대해서도 작가는 일침을 가한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오래 전부터 횡행해 왔고,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심각해졌다는 정도의 차이 정도랄까.

 

등장인물들의 개인사 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절부터 브렉시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 왔다는 것을 이언 매큐언 소설의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미래를 위한 하나의 유럽인가? 아니면 위대한 대영제국의 부활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통합 이전부터 영국의 국가적 이슈였다는 점을 매큐언 소설의 읽으면서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과거냐 미래냐, 청년세대와 노인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추체험의 발현이 브렉시트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로 나왔을 뿐이다. 문학을 통해 그런 정치적 가능성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흥미를 돋우는 요망한 상상은 접어 두고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관계가 언제나 그렇듯, 상호간의 호혜적 관계 유지는 지난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로 작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손익분기점의 설명을 시도한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내가 아닌 타자의 이익을 위해 내가 언제까지 손해볼 수 있을까? 결론은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했듯이, “우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상세한 재정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클라이브와 버넌이 암스테르담에 간 결정적 이유다. 얄궂은 두 개의 초대장이 서로에게 발부되었다고 해야 할까나.

 

소설 <암스테르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세상사에 지친 클라이브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찾아 산행하는 장면이다. 필생의 역작을 위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필요악이지 않을까. 다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조차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다른 하나는, 결정적 순간에 버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로즈 가머니의 여사의 정치적 쇼다. 아무리 사전에 연출된 것이라고 하지만, 로즈 가머니 여사처럼 천연덕스럽게 궁지에 몰린 남편의 위기탈출을 돕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뭐 이언 매큐언 정도 되는 작가라면 이 정도의 반전 정도는 당연히 준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으로 인간관계의 저변을 파고들어, 이렇게 멋진 소설을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의 이언 매큐언을 찾는 여정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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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은데 참 좋았던 기억이에요. 다른 긴 소설보다 이게 특히 좋았는데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다시 나왔네요 :)

레삭매냐 2023-02-28 11:40   좋아요 1 | URL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온 건
환영하지만, 가격 인상이 된
건 슬픕니다.

번역도 새로 했으면 하는 바
람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네요.

자목련 2023-02-28 1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읽고 리뷰까지 썼으나 기억엔 없고요.
말씀처럼 개정판은 환영하지만 가격 인상과 택배비를 생각하면 선뜻 구매가 어렵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02-28 13:41   좋아요 0 | URL
물가 압력이 이 정도일 줄
미처 몰랐네요.

책도 이제는 당분간은 도서
관 희망도서와 구간을 읽어
야지 싶습니다.

책 사기에 이렇게 신중하게
될 줄이야 ㅠㅠ

blanca 2023-02-28 13:42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책 팔려고 쌓아 놓았어요. 중고 팔고 사려고요.

blanca 2023-02-28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안 그래도 이 책 배송 기다리고 있어요. 레삭매냐님 글 읽으니 더욱 더 기대되네요.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2-28 14:57   좋아요 0 | URL
아 - 저도 이참에 다시 책팔기
책 정리하기 프로젝트 돌려야
하나 싶네요.

당장 팔 책부터 봐야지 싶습
니다.

이언 매큐언 작가가 한창 때
쓴 작품이니 만큼 마음에 드
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3-02-28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예전 번역판으로 읽었었는데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서 고생햇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도 이언 매큐언답게 아픈데를 콕 쑤시는 그런 긴장감이 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습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요. ㅠ.ㅠ

레삭매냐 2023-02-28 19:27   좋아요 1 | URL
역자가 같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개정판으로 낼 때에는 가격이 오
르는 만큼 새로운 역자를 기용해서
번역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읽고 잊어 버리고 또 읽는 게 우리
책쟁이들의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moonnight 2023-02-2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책으로 분명히-_- 읽었으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요ㅜㅜ 장례식에 모였다 정도만-_-;;;; 왜 읽는 걸까요-_ㅠ

레삭매냐 2023-02-28 19:29   좋아요 1 | URL
클래식은 다시 읽는다
라는 말을 예전에 이탈로
칼비노 선생이 말했었죠.

책은 한 번 읽는 게 아니라
다시 읽는 게 디폴트가 아
닐까요. 저도 읽고서도 다
잊어 버린답니다.
 
중세 3 :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 중세를 지배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12
올리비에 보비노 지음, 파스칼 마냐 그림, 이정은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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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중세> 만화로 배우는 서양사 시리즈 3권을 빌렸다. 생각보다 글밥이 많아서인지 금방 읽을 줄 알았던 그래픽 노블들을 다 읽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보니 1권과 2권 리뷰는 쓰지도 못했네.

 

3권은 중세의 두 축 가운데 봉건제도와 핵심이었던 기독교(가톨릭)를 다룬다. 로마 시대에 소아시아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기독교 문명은 서구 문명의 핵심 요체의 자리에 오른다.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 시대에 기독교가 유입될 때만 하더라도,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는 다수 로마 민중들에게 배척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기도 했다. 유구한 기독교 역사에서 박해와 순교는 교세를 누그러뜨리는 기제가 아닌 오히려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훗날 일본의 위정자들은 그런 기독교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지막지한 탄압 대신 교묘하게 사제와 신도들의 배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전파를 억압하는데 성공했다. 아마 고대 시대에는 이런 정치적 방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기독교인들을 십자가형이나 사자굴에 던져 넣는 방식이 유효할 거라는 판단착오가 그 반대 효과를 불러 오기도 했다.

 

기존의 로마 중심의 세계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고 노바 로마라 부르기 시작하며, 세계의 중심을 동쪽으로 이동시킨 콘스탄티누스 시절에 비로소 기독교는 제국의 유일한 종교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그 후 천년 이상 중세 시대를 지배한 기독교 세상이 열리게 됐다.

 

로마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중심으로 서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이끄는 동로마교회의 분열은 1054년 결정적인 분기점을 만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도로 꼽히는 베드로의 대리인으로 자청하던 교황이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도의 대리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사도의 대리인의 위치와 성자의 대리인의 위치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의 수직적 체계는 필연적으로 세속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였다. 야심적인 교황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교권이 세속권을 능가하게 되었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교황에게는 제후들을 파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파문당한 제후나 세속군주는 봉건 질서 시스템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기 마련이었다. 권위가 사라진 군주에게 계속해서 충성을 맹세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로마 교황들은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연옥을 발명해서 면죄부를 발행하고, 그리스어로 쓰인 니케아 신경에는 원래 없었던 필리오케를 삽입해서 위격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등 동방교회와 점점 멀어지는 길을 택하기 시작했다.

 

필리오케(filioque:그리고 아들로부터도) 논쟁은 초기 기독교 신학 논쟁에서 유래되었다. 27편의 신약성경들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라틴어와 달리 그리스어는 추상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언어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과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기독교 교리에서 핵심을 이루는 삼위일체 개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가, 인간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논쟁이 선행했다. 논쟁을 즐기는 그리스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주제는 없었다. 게다가 신성과 인성을 각각 강조하는 이단까지 가세하면서 논쟁에 기름을 끼얹게 되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에 입각한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면서 위격에 대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서방교회에서 당시 에스파냐에서 널리 퍼져 있던 아리우스파를 배제하기 위해 니케아 신경에 원래 그리스어 버전에는 없던 필리오케를 슬쩍 끼워 넣으면서 동서교회의 갈등이 폭발해 버렸다.

 

2차전은 성상파괴 문제였다. 군인 출신 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726년 성상파괴 명령을 내리면서 동서교회 갈등이 다시 분출했다. 당시 무슬림과 대치하고 있던 레오 3세는 일절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 세력의 영향을 받아 동로마 교회에서 유행하던 성상을 모조리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로마 교회는 황제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황의 통제 아래 있었던 서로마교회의 상황은 동로마의 그것과는 달랐다. 로마에서 교황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세속권을 강화해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이 동로마 황제의 일방적 명령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117년에 걸친 성상파괴 논쟁(Iconoclast Controversy)은 기존의 전례를 따르는 것으로 유야무야되고 만다.

 

1054년 교황의 특사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파문하고, 대주교 역시 특사를 파문하는 사태로 교회는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4차 십자군원정 당시 콘스탄티노플이 십자군에게 약탈당하는 사태로 동서교회는 분열을 넘어 서로 적대의 관계로 돌입하게 된다.

 

중세 교회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신앙이나 구원의 문제를 등한시하고 대형 교회 건축에 집중하게 되면서 결국 몰락하게 되는 과정은 21세기 한국 교회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즐겨보는 종리스찬 JDSN이 너튜브에서 언급한 대로, 외형적으로 거대한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가 더 이상 청년 세대에 매력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기존의 성도들조차 가나안 성도들이 되는 현상에 소위 교계 지도자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염불보다 젯밥이 눈이 먼 사이비 목사들이 정치판을 휘젓는 모습도 기가 차다. 종교 권력이 세속화되었을 때, 중세 가톨릭교회는 권력의 정점에서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붕괴가 시작되었을 때, 그들만 모르고 있었다. 21세기 어느 나라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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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2-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분이네요 ^^
종리스찬 tv 보고 왔어요

레삭매냐 2023-02-15 17:27   좋아요 1 | URL
인스타로 알게 된 분인데
콘텐츠가 인상적이어서
자주 보고 있답니다.

가필드 2023-02-17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메냐님 얼마전에 봤던 난처한 미술이야기 중세편을 다룬 4-5편도 생각나게 하네요
성상 파괴로 남아 있는 유물들이 많이 없다 하셨거든요 ㅠㅠ 교회들이 세속화되어 있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이럴때일수록 초대 교회들의 갈급했던마음들이 생각나게 합니다

레삭매냐 2023-02-17 14:37   좋아요 1 | URL
논쟁이라는 게 막상 당시에는
죽어라고 싸우지만 나중에 지
나고 나면 왜 싸웠는지도 모르
기가 다반사인 것 같습니다.

성상 파괴논쟁도 발발할 시점
에는 뜨거웠지만, 나중에 결
국 유야무야되고 말았지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라는
캐치 프레이즈는 500년 전 종
교개혁 당시부터 있었던 표현
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는 게
참...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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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벤저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를 마침내 다 읽었다. 책의 절반가량을 호기롭게 읽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그 이유가 뭘까하고 말이다.

 

내 나름대로 분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계속된 14년 동안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대략적으로 당시 독일 국내 정치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는 점 그리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과 수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해서 결국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했다는 정도의 지식이 전부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출범시킨 사회민주당을 필두로 한 독일 국내 정치에 대해 몰랐고, 그레고어 슈트라서-쿠르트 폰 슐라이허-프란츠 폰 파펜 등등의 정치 플레이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잠시 쉬게 되지 않았나 싶다.

 

벤저민 카터 헷이 저술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분석에서 출발한다. 19148, 독일 제국은 발칸에서 시작된 전쟁에 하나가 된 상태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4년 뒤인 191811월 전쟁에 진 것도 아닌데 결국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그것은 독일 민족정신에 그어진 하나의 생채기였다. 21번이나 내각이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의 원죄는 그런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게다가 1919년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파멸과 창조는 한 끝 차이라는 걸까. 저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독일 민중이 어떻게 해서 히틀러라는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야만적 지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훗날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재난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꼽은 키워드는 두 가지다. 오판과 과소평가. 파펜이나 슐라이허 같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히틀러와 나치당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오판했다. 192311월 뮌헨의 비어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보헤미아 졸병출신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에는 애송이였지만, 혼란스러운 정치판에서 체급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치기 어린 비어홀 폭동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독재자는 군대와 관료의 조력 없이 권력을 찬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후 독일 내부의 정치 혼란과 경제 위기는 나치즘이 독버섯처럼 퍼질 수 있는 기가 막힌 환경이었다. 나치는 농촌 중심의 신교도에게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계열 노동자들의 요새였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1925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전쟁 영웅 힌덴부르크는 우파 중심의 국가 통합을 꿈꾸었다.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귀족 출신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정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육군 원수가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독일 정치에 분노와 증오의 싹을 뿌린 나치가 두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집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프로파간다의 전문가였다. 당시 유명한 상업광고를 능가하는 정치 선전으로 괴벨스는 히틀러를 독일 국가의 마지막 희망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편에 그런 선전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철모단과 돌격대라는 무력집단을 동원한 정치 폭력이 존재했다. 나치 집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1931-32년 내란 위기는 절정이었다. 문득 수년 뒤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앞서 독일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의 키워드인 과소평가를 살펴보자. 당시 독일의 다수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히틀러 일당에 베팅을 걸었다. 그들은 히틀러와 수하들의 권력욕과 야망을 과소평가했다. 1933130, 힌덴부르크가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어쩔 수 없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자 나치들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의회 다수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을 모두 불법화시키고, 게슈타포를 동원한 정적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괴벨스도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언론을 통제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매체였던 라디오를 동원하고, 포스터를 이용한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그전에 자본을 동원한 이게파르벤 같은 대기업이 언론을 순치시키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지금 현재 차례로 건설기업에 넘어간 언론의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반대파들이 히틀러 집권 초기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12년 독재와 전쟁 그리고 패전과 분단을 피할 수가 없었다. 히틀러의 전횡을 막기 위한 부총리 프란츠 폰 파펜과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 프리츠 귄터 폰 치어슈키, 헤르베르트 폰 보제 같이 양심적 인사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1934630<장검의 밤> 사건으로 일소되면서 히틀러와 나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반대파 뿐 아니라, 자신의 집권에 정치 폭력을 행사하면서 지대한 공을 세운 돌격대와 한 때 동지이자 돌격대 지도자 에른스트 룀마저 숙청해 버렸다.

 

저자는 독일 중심주의가 독일 정치에서 우선시 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럽 공동체 건설의 아이디어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이미 태동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민주주의가 번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와 협력할 때, 독일이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역사가 보여준다. 유럽 통합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가 독일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신호들이 잇달아 들어왔을 때, 오판과 과소평가로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결과는 독일 민족을 파멸로 인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의 독일 사람들은 민주 시민 양성을 국가적 목표로 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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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3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3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2-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읽어야 할듯요

레삭매냐 2023-02-15 17:28   좋아요 1 | URL
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보람찼습니다.
 
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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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부터 읽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던 책이 있었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이었다. , 다른 책도 하나 있었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전자는 사지 않았고, 후자는 사서 읽었다. <해방일지>는 이번 달궁 독서모임의 책이기도 해서, 다음달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을 계획이다. 김훈 작가의 책들은 개인적으로 정한 어떤 이유 때문에 사서 읽지는 않고, 빌려서 읽는다.

 

고등학교 시절 왜 이렇게 한국 근대사가 싫었는지 모르겠다. 결국 국사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물론 어렵기도 했었지만.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다 보니 역사적 사건들 간의 상호작용을 몰랐고, 억지로 외운 것들을 쉽게 까먹기 마련이었다. 이번에 <하얼빈>을 읽으면서 한국 근대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게다가 침략자 일본의 개항 이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다 보니 유기적 관계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그리고 너뷰트로 그전에 봐둔 러일전쟁에 대한 개관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청일전투에서 일본군이 육전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던 성환 전투에 대한 작가의 단상에서는 무릎을 쳤다. 이런 거지, 하고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소설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전에 서설이 길었다. 역사적 사건에 기반한 소설 <하얼빈>은 두 가지 시선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조슈 번사 출신으로 조선 침략에 선봉에 서 있던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다른 캐릭터는 그를 사냥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황해도 신천 출신의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다. 전혀 서로 다른 두 캐릭터의 심리를 오가며 서사를 이끌어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독자의 의구심을 작가는 단박에 뽀개 버린다.

 

우선 이토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해에서 조선 침략에 나섰다. 그는 을사늑약부터 시작해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방식으로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는 선봉장이었다. 군대해산 후, 조선 팔도에서 일제에 대항하는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서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서 소요를 진압하고 민중을 학살했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폭압적 방식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시킨다는 자신들만의 논리를 구사했다.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소위 탈아시아해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자신의 실력에 비해 과대망상에 가까운 헛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토는 무력이 아닌 도장으로 조선을 집어 삼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던 건, 이른바 국가 조선의 운영을 맡았던 사대부들이 이런 일본의 침탈에 대항하지 못하고 국운이 쇠락하는 왕조 국가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깨닫고 앞장서서 친일에 나섰다는 점이다. 대대손손 누려온 지극의 복락을 연장하기 위해 그들은 양심이나 체면 혹은 배알도 없이 일제에 협력했다. 오히려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은 것도 없이 항상 수탈만 당하던 백성들이 나서서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의 기관총 앞에 농장기로 무장하고 항거했다. 많이 보던 모습이 아니던가. 역사는 비극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목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소설의 한 축에 빌런 이토가 있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그를 사냥해야 하는 포수 신천 출신 도마 안중근이 있었다. 19세에 교구 사제 빌렘에게 세례를 받은 안중근은 순흥 안씨 집안의 가장이었다. 어려서부터 리더십이 있었고 하는 식의 영웅 신화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노루 사냥을 즐기던 그에게 총알은 한 발이면 충분했다. 서두에 등장하는 그의 사냥에 묘사는 결국 이어질 대사에 대한 명징한 암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안중근은 이토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왜 그가 이토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무엇이 방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주인공을 운명의 시간과 장소에 데려다 놓기 마련이다.

 

, 순서가 좀 어긋나긴 했지만 이토는 근대화의 부산물인 시간에 국가 조선과 민중을 적용시키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어쩌면 서양 근대화의 기본은 노동을 측정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물자와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는 가장 유요한 수단인 쇠비린내나는 철도의 부설이지 싶다. 사적 시간에 얽매인 민중들을 교화해서 공적 시간의 개념으로 유도해내서, 하나의 동일한 일체감과 유대감을 만드는데 성공해서 병영국가로 나가기 시작한 국가 일본을 건설한 자신감에서 초대 통감 이토는 조선을 통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향에서 후대 교육에 매진하기도 했던 안중근은 사랑하는 처자와 정든 땅을 버리고 국권 침탈의 수괴로 자신이 정한 이토를 저격하기로 결심한다. 그 와중에 스며든 빌렘 신부나 뮈텔 주교와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십계명에도 나오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유로 사제들은 안중근의 거사에 반대한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안중근이 이토 저격에 성공한 다음, 정치적 이유로 안중근과 선긋기에 나섰다. 안중근의 의거가 독립전쟁의 일환이자 정당방위였다는 점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런 부분들은 소설만으로는 알 수 없기에 결국 추가로 공부해야 했다. 일개 독자로 이럴진대, 글 쓰는 작가들은 도대체 이런 서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고 정확한 사전 조사가 필요한 걸까.

 

작가에 대한 개인의 호오와 상관없이 <하얼빈>은 김훈의 스타일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문장은 언제나처럼 간결했고, 힘이 넘쳤다. 예를 들어 안중근은 깊이 잠들었다라는 문장을 보자. 이토라는 거물의 저격을 앞두고, 청년 안중근의 심리상태를 이보다 더 조준사격하듯 표현할 방법이 없지 않을까. 일본과 러시아 관헌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타겟을 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역사가 말해 주지만, 그에게 필요한 건 단 세 발의 총알뿐이었다. 불안한 사냥꾼의 심리처럼, 총구는 늘 흔들렸다.

 

그리고 이토가 죽었다고 해서, 무너져 가는 조선이 다시 기적처럼 부활할 수도 없는 그런 형국이었다. 이토가 죽었어도, 이토의 후계자들은 조선을 통한 대륙 진출이라는 고래 일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숱한 청춘들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영악한 책사였던 이토의 모든 행동은 자국의 조선 침략을 위한 방편이었다. 순종의 남행부터 시작해서, 볼모로 황태자 이은의 태사를 자처하며 일본으로 잡아간 것까지. 고려 왕조의 폐허 앞에 망해가는 나라의 군주 순종 일행을 배치해서 촬영한 사진은 프로파간다와 정치쇼의 극치였다. 러일전쟁 당시, 그들이 군신이라 일컫는 노기 마레스케의 멍청한 전술로 러시아군의 토치카와 기관총 앞에 숱한 일본군이 갈려 나간 백옥산 참배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토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살다가 총에 맞았다.

 

이토의 저격까지 직전까지 밀도를 압축해 가던 서사는 저격 성공으로 긴장이 완화된다. 그리고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 다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는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자신에게서 정치적 정당성을 제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검찰관 미조부치의 예리한 심문을 유연하게 맞받아친다. 사실 안중근 재판 역시 자신들이 그나마 문명국이라는 점을 열방에 과시하고 싶은 하나의 정치쇼였다. 이미 결론은 나 있었으며,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안중근의 묘역이 사후, 성역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제는 유해를 가족들에게 인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독립된 조국에 자신을 묻어 달라는 안중근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점이 통탄할 심정이다.

 

다음 달이면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순국 113주기다. 마음이 처연하다.


[뱀다리]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 프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251).”

 

안중근이 사형 언도를 받은 1910214일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인데, 프랑스에 왕이 있었나? 50대 뮈텔 주교에게 치매라도 온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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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2-10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하얼빈> 재밌을 거 같네요^^

레삭매냐 2023-02-15 17:34   좋아요 1 | URL
다른 건 몰라도 가독성 하나
는 끝내 줍니다.

간결하면서도 힘찬 서사의 힘!
 
카프카와 함께 빵을 에프 그래픽 컬렉션
톰 골드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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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도서관에 가서 톰 골드 작가의 <골리앗><달과 경찰>을 읽었다. 집에 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더 찾아 보니, 톰 골드의 다른 그래픽 노블도 있는 게 아닌가. 아뿔싸! 그 책을 만나기까지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바로 <카프카와 함께 빵을>이다. 읽은 지 이틀이 지났는데, 기억을 되살려 가며 리뷰쓰기에 돌입해 본다.

 

아무래도 톰 골드가 작가다 보니 그 업계(도서 출판업)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 그리고 분석을 그려 넣은 컷들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한 권의 시집이 나오기 위해서는 참 많은 비용들이 필요하다. 출판하기 위해 인쇄소에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무엇보다 최근 비용이 급상승하고 있는 마케팅 비용은 덤이겠지. 그 외에도 파티에 소용되는 샴페인 비용이 들어 있다는 점이 참. 그리고 작가의 몫으로 돌아가는 인세는 정말 쥐꼬리만하다. 그러니까 전업 작가로 먹고 살기가 참 어렵다는 표현을 이렇게 돌려치기로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세부 인세 내용에 다시 샴페인 비용이 등장한다. 그네들은 참 샴페인을 좋아하는갑다. 그리고 보니 나도 샴페인이 먹고 싶어졌다. 오래전 어느 출판사 연말 파티에서 신나게 마신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 벨리니 생각이 나네 그래. 그땐 참 좋았지.

 

미래의 글쓰기에 대한 단상도 마음에 들었다. 최신 전자 장비가 동원되어 플롯 설정을 위한 아이디어 개발부터 시작해서 자료 조사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을 인간이 아닌 A.I.가 대신하는 장면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니 반면에 그만큼 글쓰기라는 창작이 쉽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나의 그림을 보고도, 참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존재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어쩌면 창작의 기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설 <맥베스>, <로빈슨 크루소> 또는 <프랑켄슈타인>이 발표되던 시절에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면? 맥베스는 세 마녀로 메시지를 받고 수락과 거절 사이에서 고민하고,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는 신호가 끊어져 고뇌한다. 드라큘라 백작는 메시지로 피를 요구한다. 아 그렇게 해서 현대판으로 재탄생한 클래식 캐릭터를 이용한 퓨전 소설로 다시 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변주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겠지만 말이지.

 

책을 산더미처럼 보관하고서도 킨들을 찾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사실 나도 가끔 생각나는 책들을 책더미에서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지 않았던가. 그만큼 편리한 전자책이 내 곁에 와 있지만, 나는 애써 전자책을 외면하고 종이책만을 고집하는 올드 스쿨 스타일이다. 아니 도대체 왜 전자책을 사는 거지? 아무런 소장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책만큼 편하게 읽지도 못하는데 말이지. 소장하는 재미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종이책 사기를 자기합리화시키면서 어제도 중고 서점에서 네 권의 책들을 사지 않았던가, 하하하.

 

기억의 한계다. 톰 골드가 소개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절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책이라도 곁에 있다면 슬쩍슬쩍 되짚어 보겠지만 아쉽게도 오늘 책을 들고 집을 나서지 못했다. 그 바람에 이미 휘발해 버린 기억들을 아쉬워 할 뿐이다. 이래서 핸드폰으로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 나중에 집에 가서 보고 더 추가해야 할지도.

 

<카프카와 함께 빵을>에서 톰 골드 작가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책과 독서의 미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이 가진 효용과 기능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여전히 글쓰기를 해내는 생산자들과 그들이 생산한 책들을 소비하는 독자들의 선순환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너무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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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07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이 직접 그리신 겁니까?!!
자녀분이?
인상이 참 좋네요ㅎㅎㅎ

<카프카와 함께 빵을>아껴 읽는 중이지만 아직까지
버릴게 없는, 매 페이지 마다 웃음이 자동으로 흘러나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3-02-07 18:34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인터넷에 떠도는
작가의 캐리커처를 보고
뚝딱 그려 봤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격공
하는 바입니다.
다른 책들도 만나 보고
싶은데, 안나오네요 -

독서괭 2023-02-08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 마지막 그림이 너무.. ㅋㅋㅋㅋㅋㅋ 양심을 찌릅니다!!
오 매냐님이 직접 그리신 그림이라니, 느낌있게 잘 그리셨습니다!! 종이책이 없어 다 담아내지 못하셨다고 하니, 그 점이 전자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네요. 어디서든 다시 훑어볼 수 있다 ㅋㅋ 하지만 저도 전자책은 별로입니다.. 종이책만큼 정이 가지를 않네요. 쩝

레삭매냐 2023-02-08 17:08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예전에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
받았다고 해서, 바로 뛰쳐 나가서
책을 샀는데 그 때 산 책을 여적
읽지 않고 있지 뭡니까 그래 ㅠㅠ

저두요! 저두요!
전자책 리더도 큰 맘 먹고 샀거만,
도통 손이 가질 않더라구요. 어디
에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고양이라디오 2023-02-10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자책 리더기 있지만 안 쓰고 있네요ㅎ 종이책이 훨씬 정감가고 좋습니다^^

톰 골드 만나보고 싶은 작가네요ㅎ

그림 잘 그리시네요ㅎ

레삭매냐 2023-02-10 16:39   좋아요 1 | URL
제 그림 실력은 그저
일천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자책 리더기가 종이책
의 매력을 대체할 수 없
다고 생각합니다.

톰 골드, 갠춘한 작가라
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