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연 기자질을 하던 시절의 기백이 엿보이는 소설인지 르포르타주인지 모를 그런 책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2020년 최저임금이 발표되었는데, 경기 침체의 주범으로 최저임금을 지목하고 총공세를 편 보수 언론과 도무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어느 당의 리더가 시대를 역행하는 기괴한 발언을 해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지금이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인가 싶었다.

 

이제 곧 인구절벽의 시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될 시절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동안 노동력 과잉으로 기업들은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경영방식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최저임금을 무기로 다른 사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들을 강제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구 사회의 인건비가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 비싸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일에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시절이 바뀌면 사고도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무료배달의 추억이 우리의 윤리적 소비라는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싶다.

 

장강명 작가는 모두 열 꼭지의 이야기들로 2019년 대한민국 노동시장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레알인가 아니면 픽션인가? 난 아무래도 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알바생 자르기>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유휴 인력을 줄이고,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는 꼰대들을 저격한다. 나도 모르게 관행이라는 적폐에 젖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상대방의 권리를 무시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보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로 노동자 처지에 왜 사용자 입장에 서 있던 걸까. 그만큼 관행이 무섭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난번에 읽다만 <제인스빌 이야기>에서 이미 나는 양질의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이 겪게 된 자존감의 상실과 수입 감소 그리고 가정의 붕괴라는 삼박자의 정교한 회로도를 체험한 바 있기에 <공장 밖에서>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를 생존과 직결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처럼 일하면서 고작 1/3 밖에 안되는 급여를 받는다는 문제 제기는 또다른 빙산의 일각일 따름이다. 왜 빈번하게 억대의 연봉을 받는 무능한 경영진의 경영실패로 일한 뒷책임을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몸빵을 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때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산 자들죽은 자들로 나뉘어 노노갈등을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 같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산 자들은 자기들이라도 살기 위해 죽은 자들을 공격한다.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는 동료들이었지만 이제는 자기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일 뿐이다. 죽은 자들이 끝까지 버텨서 공장이 폐쇄된다면, 산 자들 역시 죽은 자들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폐쇄될 공장의 운명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제인스빌 이야기>를 통해 깨달았다. 다시 한 번 각자도생의 시대에 벌어지는 비극의 원형을 읽을 수가 있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한국은 이미 그들의 세계전략에서 아웃되었다. 아무리 정부가 공장과 직원들을 볼모로 잡은 그들에게 지원을 해봐야 깨진 독에 물붓기일 따름이다. 다만 타이밍의 문제일 뿐.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 이만희 빵집이라는 동네 빵집을 비롯한 서너곳의 빵집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시내 곳곳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면서 동네빵집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만희 빵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동네 빵집 몰락기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다. , 왜 작가는 치킨공화국을 다루지 않았을까? 직장에서 내몰린 퇴직자들이 너나 없이 차린다는 치킨집이야말로 자극적이면서도 그야말로 MSG 같은 이야기들을 토해냈을 텐데 말이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대기업화된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선 이후, 빵값이 모두 올랐다. 이제 이천원대 식빵은 아예 팔지도 않는다. 이럴 줄 몰랐나?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사라지게 되면, 독야청청 시장을 주무르게 된 독과점기업의 횡포가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시장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경쟁의 비밀은 바로 독과점이었다. 힐스테이크 베이커리 주인장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에 나섰지만, 온갖 현란한 마케팅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빵집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싸도, 사람들은 소비욕구를 거둔다. 시장에서 정상적인 가격에 대한 가늠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천명이 넘는 경쟁자를 제치고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전설을 쫓은 <카메라 테스트>도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경쟁자였다. 이번 여름휴가 때, 강릉MBC를 지나치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아나운서 도전기가 연상됐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보는 방송의 아나운서 자리가 그렇게 선망의 자리인 줄 누가 알았을까. 단 한 번의 실수로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해 수개월간의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도 튀어 나오더라.

 

<대외 활동의 신>에서는 열정 페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미래의 취업자들을 착취하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리포트를 만나볼 수 있었다. 견고한 학벌과 인맥 그리고 스펙이라는 삼위일체가 빚어내는 치열한 취업경쟁을 뚫고 입사한 이들의 30%1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직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만큼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는 것일까. 구하는 자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또 기업에서는 일할 만하면 이직하니 가르치면 뭘 하냐는 넋두리가 허공에서 충돌한다.

 

나도 그 좋아하는 책의 당일배송이 되지 않는다고 허구헌 날 불평을 토로하곤 했었는데 반성한다. 사실 그렇게 당일배송이 되도, 바로 읽지 않고 중고서점에서 읽지 않은 책을 만났을 때 얼마나 속이 아렸던가. 그냥 여기저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요즘에는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개선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업체에 전화를 걸 때마다, 전화 상담하는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수시로 등장한다. 내 안의 분노를 자제하고, 다스리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음악의 가격>에서도 역시나 창작이라는 각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음악이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적확하게 타격한다. 은글슬쩍 자신의 밥그릇인 책에 대한 이야기도 끼워 넣으면서 말이다. 역시나 업자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책은 낫다고 했던가. 내가 처음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만도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 판이 대세였다. 그 뒤에 CD가 등장했고 그 다음에는 MP3 파일이 나왔다. 고정적인 형태의 미디엄만 생각하도 세대에게 냅스터로 다운 받은 파일로 음악을 듣는다는 건 혁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트리밍의 시대가 됐다. 메탈리카가 자신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냅스터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이제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시대에 아무런 의미 없는 싸움이 되었다. 그래서 메탈리카는 음원 수입 대신 돈이 되는 콘서트에 열을 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쪽에서도 티켓매스터라는 괴물이 수익을 독심하고 있다고 들었다.

 

<산 자들>을 읽는 동안, 현실이 정말로 고통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 생존을 위해 꾸준하게 소비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그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노동이라도 팔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책을 사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토바이어스 울프의 자전적 소설이 나왔다던데, 그렇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소비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노동도 해야 한다. 에라, 그지 같은 결론이네. 산 자들이여,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벌어라. 참으로 슬픈 현실이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d 2019-07-15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레삭메냐 님, 정말 박진감 있게 읽히네요. 윗글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행간에 묻어나는 배려하는 마음도요. 한데 오늘 아침 08시 05분부터 류현진 선수가 보스턴 상대로 던지는군요. 레삭메냐 님은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미묘하시겠네요. 아무튼 즐겜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레삭매냐 2019-07-15 11: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전 레드삭스 팬인지라 레드삭스가 이기길
응원했지만 다저스가 타력으로 압도하네요 :>

마인드님도 즐거운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일부터 휴가인데 비가 온다고 한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말이다. 회사에 쌓아 놓은 책들을 집으로 운반하던 중에 우연히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 세 권을 발견했다. 이건 뭐 거의 팜플렛 수준의 책이다. 요즘처럼 책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두 읽었다.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타부키는 페소아가 알바루 드 캄푸스라는 다른 이름[異名]으로 발표한 <담배 가게>라는 시를 보고서 평생을 페소아 연구에 바칠 생각을 한 모양이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에 포르투갈 말을 배우고,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나도 얼마 전부터 페소아의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페소아가 느꼈던 것 만큼의 강렬한 그 무엇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마 언어 탓을 해야 할까. 청년 페소아는 그럴 만한 의지와 시간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그저 페소아와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남긴 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 유럽을 생각하면 스페인에는 가보고 싶지만, 포르투갈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점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솔솔 든다.

 

소설의 시간은 19351128일부터 3일 뒤 페소아가 아케론 강을 건너는 30일까지 3일 간의 여정을 그린다. 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 자신과 또다른 자아(alter ego)가 필수적인 것일까? 결국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글을 내가 아닌 타자가 읽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면서, 또 타자가 읽어 주기를 바란다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점도 궁금하다.

 

옆구리에 찌릿한 통증을 느낀 페소아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앞으로 그는 자신이자 타자인 방문객들과 만나게 된다. 페소아 전문가인 타부키는 사실에 허구를 뒤섞은 퓨전 스타일의 글을 선보인다. 아무래도 우매한 독자는 페소아에게도 그리고 타부키에게도 아는 바가 없어서 어쩔 도리 없이 역자라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마 좀 더 그들을 읽게 된다면 이런 생경함이 줄어들 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나친 알콜 섭취가 초래한 간부전이 페소아의 사망 원인이었을 거라는 추정이 등장한다. 고독한 작가 페소아에게 알콜이 해방구였다는 추론에서 기묘한 위로를 느끼기도 했다. 어려서는 음악이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알콜이 내 해방구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책인 모양이다. 책을 통해 내가 가볼 수 없는 리스본으로 그리고 만날 수 없는 페소아와 타부키를 이렇게 대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평생을 소박하게 살면서 오펠리아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소망했던 페소아는 이십대에 요절한 알바르투 카에이루를 스승으로 모신다. 우리는 삶을 해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타부키 선생은 과감하게 해독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아 말한다. 이유는,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어떻게 상상 속의 인물들이 병상에서 죽어가는 대가를 방문해서 이러한 대화를 나눴을 거라는 것을 유추해냈을까? 그만큼 페소아의 삶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방대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놀랍기만 하다.

 

죽음을 코 앞에 둔 자신을 찾아 자신의 저작 <불안의 책>(물론 이 책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에 최대의 찬사를 보내는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나 튜닉 옷을 입고 저승에서 찾아온 안토니우 모라의 경우는 또 어떤가. 처음 들어보는 포르투갈식 투우에 대한 이야기, 바다를 마시는 것 같다는 굴 요리에 이야기는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공략한다. 리스본, 세비야 그리고 환상 같은 사마르칸트가 주는 매혹은 정말 기대이상이었다. 이런 방문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쩌면 페소아는 죽음에 대해 잠시 잊었을 지도 모르겠다.

 

타부키 선생은 이 책의 부제로 <어떤 정신착란>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생의 마지막 순간, 이런 식의 정신착란이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책의 어딘가에서 만나 소박하고 장엄한 지평선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페소아와 타부키를 읽어야지 싶다. 이미 <집시와 르네상스>를 읽기 시작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7-09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휴가를 일찍 정하셨네요. 올해 휴가는 여행보다는 책을 읽거나 책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

레삭매냐 2019-07-09 11:3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걸 싫어해서요...

보통 늦게 가거나 하는데 늦게 가니
그동안 시달릴 자신이 없어서 ㅋㅋㅋ

여행 가서 현지 서점 구경하는 재미
도 있더군요. 이번엔 강릉 고래서점
에 가보려구요 :>

2019-07-09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7-09 13: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비가 오지 말아야 하는디...
비 구경이나 실컷 할 듯 싶습니다 ㅠㅠ

뒷북소녀 2019-07-09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휴가! 잘 다녀오세요. 매냐님.

레삭매냐 2019-07-09 13:39   좋아요 0 | URL
바닷가 가는데 그동안 좋던
날씨가 낼부터 구리구리해진다니
그것 참...

캄솨 -

서니데이 2019-07-09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휴가시작하시는군요. 잘 다녀오세요.^^
비 소식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더위는 조금 나을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19-07-09 19:33   좋아요 1 | URL
비가 왕창 온다고 하여,
OTL 이랍니다. 이럴 수가 ~!

그래도 뭐 잘 다녀 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tella.K 2019-07-09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매냐님 평점은 좀 짠데요?ㅋ

날씨가 지금부터 구리구리 하지만 작년에 비하면
적어도 아직은 많이 덥지 않으니 다행이지 싶습니다.
이 구리구리한 날 병원에 다녀야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나참...
암튼 잘 다녀오십시오.^^

레삭매냐 2019-07-09 19:36   좋아요 2 | URL
그거슨... 첨엔 세 개반을 생각했으나 -
전적으로 무식한 독자의 지극히 주관
적인 별이오니 가비얍게 무시해 주시길.

새로 읽기 시작한 <집시와 르네상스>
는 더 좋네요.

오늘 중고서점에 달려가 <수평선 자락>
을 업어 왔습니다. 이러다 타부키빠가
되겠네요 ^^

감사하고 모쪼록 건강하시길.

AgalmA 2019-07-12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인에 대한 기묘한 박대나 은둔적인 면모, 포르투칼에 돌아온 이후 일생을 그 땅에서만 글을 쓴 것, 작품 색깔 등등...카프카와 비슷한 듯도요.
 
한성 프리메이슨 - 서양인 연쇄 살인사건
정명섭 지음 / 마카롱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번 소설의 배경이 병자호란이었다면, 이번에는 구한말이다. 역사 스릴러 장르를 개척 중인 정명섭 작가의 신작 <한성 프리메이슨>은 제목 그대로 1906년 일본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던 시절, 한국에 상륙한 비밀 결사 프리메이슨 그리고 그와 연관된 연쇄살인을 다룬다. 어때 이 정도만 해도 벌서 염통이 쫄깃해 질 정도의 그런 재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소설은 한미전기에 다니던 미리견(미국) 사람 마크와 제니 트래비스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유명한 평리원 검사 이준과 실존 인물은 호머 헐버트 박사가 등장해서 팩션의 재미를 더한다. 헐버트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으로 사회장을 치른 분이시며 지금은 양화진 묘역에 안장되셨다고 한다. 이거 놀라운 사실이군 그래.

 

이준은 러일전쟁 당시 늑대처럼 한반도를 집어 삼키려는 아라사(러시아)와 맞서 싸운 승냥이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켜 주리라 생각하고 부상당한 일본군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곧 식민지배의 날카로운 야욕을 드러낸 일본의 본색을 알고 반일주의자로 거듭나게 된다. 어쨌든 이준 검사는 양인척살 사건의 배후를 캐고, 대한제국의 군주 고종은 군부대신 이용익과 합의해서 제물포에서 일본 낭인을 상대로 그야말로 슈퍼히어로급 활약을 펼친 통신원 7호에게 특명을 전달한다. 물론 소설 초반에 그게 무슨 일인지 밝히면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이 떨어지기에 작가는 적당한 선에서 밀당을 시도한다. 통신원 7호의 과거를 슬쩍 밝히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떡밥 투척도 등장한다.

 

번사창에서 통신원 7호를 맞이하는 백발노인의 모습은 스파이물 007의 Q와 너무 유사해서 웃음이 났다. Q 할아버지도 더블오쎄븐에게 맞춤형 무기를 제공해 주지 않았던가. 덕국에서 십년 전에 개발된 최신형 무기 마우저 C96가 조선 땅에 흘러 들어왔다는 점도 신박하게 다가왔다. 개머리판을 달 수가 있어서, 당시 조선 사람들은 목갑총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더라.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통신원 7호는 훗날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일단의 특수요원들에 버금가는 훈련을 강화도 모처에 극비리에 마련한 장소에서 받는다. 어라, 어느 장면에서는 또 영화 <니키타>가 연상되기도 하네. 통신원 7호의 본명은 고종욱, 거의 슈퍼히어로급에 버금가는 혹은 제이슨 본을 능가하는 실력으로 고종의 밀명을 받고 사건 해결에 나선다. 진고개 아편굴을 습격하는 장면과 응봉산 일대에서 일본 사무라이를 상대로 펼친 활약을 스크린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싶을 정도의 재미를 선사한다.

 

살인사건을 배후에서 꾸민 제물포 대아해운의 사장 하야시는 조선에 침투한 프리메이슨 세력이 조선을 집어 삼키려고 한다는 음모론을 제시하는데, 그 부분이 아무래도 소설적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한성에 일단의 프리메이슨 세력이 침투했다는 점은 소설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유래하고, 예루살렘 성전 건설 책임자(히람 뭐라더라), 중세 성전 기사단을 거쳐 석공조합(메이슨!) 그리고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전쟁 등등을 압축한 음모론은 그야말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놀랍다 놀라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발전할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지난달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오늘 아침에 잡은 <한성 프리메이슨>으로 말끔하게 슬럼프에서 탈출선언을 할 수 있게 되었지 싶다. 양인척살 사건 과정에서 고종의 신임을 얻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애국역사 이준이 군주에게 발탁되어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도 일품이었다. 일본에서 프리메이슨 지부인 롯지가 존재했고, 정한론의 주창자도 프리메이슨이었다나 어쨌다나. 세이난 전쟁과 의화단의 난에서 활약했다는 하야시의 존재감이 통신원 7호의 그것에 비해 너무 작은 것도 좀 아쉬웠다.

 

다른 건 몰라도 읽는 재미 하나는 끝내줬다. 이제 노동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장강명의 신간을 사러 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리커버 특별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계에서 저주 받은 걸작으로 알려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미국 출신의 SF 작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968)를 그 원전으로 하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SF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너무나 많은 철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책을 읽으면서 과연 원전과는 어떻게 달랐는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었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주인공 릭 데커드(경찰 소속의 현상금 사냥꾼)가 화성 식민지를 탈출한 (영화에서는 레플리컨트로 불리는) 안드로이드들을 ‘은퇴’(retire)시키는 과정과 다른 하나는 “특별자”로 전쟁 후 방사능 낙진이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을 침묵시키는 지구에 남아 가짜 동물 수리점에서 일하는 “닭대가리” 존 이지도어가 자신이 대면한 데커드가 찾는 안드로이드들을 돕는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두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마치 현대사회에서 자동차가 개인이 가진 권력과 부의 상징인 것처럼, 핵전쟁으로 거의 모든 동물들이 멸종된 지구에선 남들이 가지지 못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큰 특권으로 치부된다. 주인공 데커드 역시, 자신이 기르고 있는 ‘전기양’(electric sheep)의 존재를 타인이 눈치 채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사냥을 통해, 언젠간 진짜 동물을 사겠다는 꿈을 꾼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마저도 ‘펜필드 기분 전환기’라는 기기를 통해 조작해내는 미래상은 유토피아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 게다가 하루 23시간 방송되는 인기 쇼프로그램에 중독되어 사람들의 모습은 미래에 미디어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저자 필립 K. 딕의 무언의 경고처럼 다가온다. 감정 이입기를 통해 지구에 남겨진 자들은 갈 수 없는 외계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의 병폐인 양극화 현상의 극단화로 인한 자본의 유무에 따른 사회계급화에 대한 묵시록처럼 보인다. 돈이 없는 자들은, 그저 미디어가 보여주는 신기루에 만족하라는.

 

한편 화성식민지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을 지구에서 이주해온 이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해주고, 화성에서의 식민 사업에 이용한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의 완벽한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진 복제물인 안드로이드들은 자신의 처지에 분개해서, 지구로 탈출을 해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려고 한다. 물론 안드로이드들의 지구유입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바로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화성으로 가려하고, 반면에 화성에 있는 안드로이드들은 지구로 오고 싶어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간의 중요한 갈등의 근원이다.

 

릭 데커드는 동료 현상금 사냥꾼 데이브 홀든이 처치하지 못한 나머지 6명의 넥서스6 모델, 가장 인간처럼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의 사냥에 나선다. 그전에 앞서, 그는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의 제조사인 로젠 연합으로 가서 안드로이드 식별을 위한 보이그트 캄프 테스트를 샘플에게 시도하게 된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바로 로젠 연합의 총수 엘던 로젠의 조카딸이라는 레이첼 로젠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기업인 로젠 연합은 안드로이드에게 기억마저 이식해서 정말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를 생산해낸다. 물질생산에 기반을 둔 포디즘(Fordism)의 세계에서, 인간 고유의 영혼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기억마저 이식해낸다는 작가적 상상력은 몸서리쳐지게 두려운 사실의 현현이었다.

 

휴머니즘과 몰개성화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데커드는 레이첼의 정체를 밝혀낸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필연적으로 감정의 전이 그리고 이입을 경험하게 되는 인간으로써 데커드는 레이첼과 만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다시 말해서 안드로이드의 은퇴에 회의를 품게 된다. 러시아에서 온 경찰로 위장한 폴로코프, 경찰조직의 수장으로 꾸민 갈란드 그리고 오페라 가수 역을 훌륭하게 해내던 루바 루프트는 차례로 은퇴 당한다.

 

이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인정사정없는 필 레시를 안드로이드라고 단정하지만, 그는 인간 현상금 사냥꾼이다. 레이첼과의 만남을 통해 촉발된 데커드의 갈등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증폭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도저히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굳이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이론을 도입하지 않고서도, 복제가 만들어낸 복제의 덫에 걸려 버리게 된다.

 

이지도르가 홀로 사는 아파트 건물 군에 숨어든 나머지 세 명의 안드로이드들인 로이 배티, 임가드 배티 그리고 프리스 스트래튼은 데커드와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꿈을 꾸는가?>는 필연적으로 영화로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와 필연적인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유명한 CF감독 출신의 리들리 스콧이 영화에서 창조해낸 미래상은 소설에서 보다 더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게다가 영화음악을 받은 반젤리스의 신비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전자음향은 필립 K. 딕이 소설을 통해 보여 주려고 했던 것 이상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릭 데커드와 레플리컨트(안드로이드)들과의 대결은 더욱 박진감 넘치는 각색과정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유니콘의 판타지가 결부된 데커드와 레이첼의 관계는 판타지 그 자체다. 소설에서 윌버 머서가 맡았던 판타지는 거세되고, 데커드를 귀신같이 따라다니는 동료 형사 개프가 만들어 놓는 기호학적 오리가미(origam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 모두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질문들은 모두가 의미심장하다. 도대체 무엇이 현실인가? 그리고 인간과 안드로이드들을(이데아와 복제 혹은 복제의 복제)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에서 거의 신적 존재로 등장하는 윌버 머서가 말하는 대로, 살인자들이 죽어야 한다면 양이나 염소 같은 동물보다도 못한 처우를 받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는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킨 현상금 사냥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의 후반부에서 머서가 주장한 인간을 안드로이드와 구분하는 감정의 융합이라는 것이 모두 조작한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머서의 선언들은 모두 무효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데커드의 전기양은 진짜 양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전기양은 진짜 양의 본질을 가리고 변질시킨다. 그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것들의 실재는 허상이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인 알고리즘의 순환 속에서, 데커드가(그런데 그가 만약에 안드로이드라면?) 그 사실을 구분해내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오히려, 그가 차례로 은퇴시키는 안드로이드들은 정신적으로 인간보다 자유롭고,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갖게 자체진화하게 된다.

 

필립 K. 딕은 선사시대 이래 인류의 직업인 사냥꾼 릭 데커드라는 다양성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암울한 미래상의 가능성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 주었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 동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유보한 채, 진짜인 인간이 가짜인 안드로이드들을 은퇴시키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가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해도 되는걸까? 그리고 머서의 정체가 폭로되었을 때,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도 작가는 슬쩍 가짜 두꺼비를 등장시켜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은 독자들 각자에게 맡겨 두었으리라.

 

필립 K. 딕의 ‘전기양’은 오늘도 무사한지 궁금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19-07-05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ㅎ 저 며칠 전 이 책 샀어요. 근데 멋진 표지가 다 찢어져서 와서 교환했었죠. 저도 읽을거라 매냐님 서평을 띄엄띄엄 읽었지만 이렇게 보니 반가운 마음에 글 남깁니다.

레삭매냐 2019-07-05 13:28   좋아요 3 | URL
그러고 보니 저는 스포일러?
그나저나 책이 찢어져서 오는 정말...

너무 디테일하게 서평을 쓰면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되네요.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정말 최고의 SF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9-07-23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2019-08-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는 <캄포 산토>에서 독일 문학의 각성을 촉구했다. 시류에 영합한 문학이 아닌 진정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문학적 증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문학은 기억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폐허문학을 실천에 옮기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하인리히 뵐을 꼽았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지만, 우리에게 소개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제발트는 나를 뵐의 <천사는 침묵했다>로 인도했다.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미발표 원고로 발표된 <천사는 침묵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탈영병이다. 독일 민족은 물론이고 수많은 유럽의 생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지만 한스는 도망자 신세다. 적어도 한스에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짜 신분증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의사는 한스에게 가짜 신분증을 주는 대신 돈을 바란다.

 

히틀러와 나치 일당이 통치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좀 더 엄혹한 시절이 도래했다. 무엇보다 살아남기 위해 빵과 담배가 필요하다. 전자가 삶의 직접적인 실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릴 수 있는 욕망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까. 하인리히 뵐이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구사하는 폐허문학의 정수는 전쟁 자체가 제공한 참혹함이라기 보다, 살아남은 이들의 이런 실상을 세상에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모든 게 자신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으로 환산되는 전후 독일에 대한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야말로 당시를 체험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레기나 웅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보유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판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삶의 공간에 스며든 한스 슈니츨러를 위해 귀한 카메라를 판 돈으로 신분증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한스는 5월의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석탄을 훔친다. 생존 앞에 수치심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다. 아마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5월의 베를린 날씨가 어떤지 모를 것이다. 너무 추워서 아무 매장에나 들어가 5유로하는 싸구려 스웨터를 사 입고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레기나는 매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때 세계를 제패하던 게르만 민족의 자긍심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자국을 점령한 연합군의 호의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묘사가 넘쳐나는 소설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종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신도 막을 수 없었던 전쟁이 끝난 뒤, 뒤치다꺼리를 맡은 이들이 신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들이었다. 신부와 수녀들이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보살피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나온 <천사는 침묵했다>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24년 전에 나온 판본에 같이 실린 단편 <하얀 천사>와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해 보자. 뻔히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상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순간에 대해 고민하는 장군의 모습을 보라. 그 명령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장군의 목숨이 위태롭다. 그럴 바에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스스로 뛰어 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어떤 의미도 없이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쟁의 부속품 같은 존재인 병사들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인리히 뵐은 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말미에 패퇴하는 병사들 앞에 흰옷을 입고 등장해서 포도주와 빵을 나눠주던 여성이야말로 ‘하얀 천사’가 아니냐는 서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천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 <창녀를 위한 세일즈맨 야크>에서는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봐도 포주인 신병 야크가 등장한다. 병사들을 집어삼키는 참호전에 투입된 야크는 베테랑 후베르트의 총탄이 빗발치는 청음초에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선에 투입된 신병의 최후는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사는 침묵했다>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는 전쟁 전에 서점직원이었다고 하는데, 야크란 친구는 세 명의 창녀에게 손님들을 끌어 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그런 남자였다. 그런 포주조차 전장에 투입할 정도로 제3제국의 처지가 곤궁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야크가 전쟁터에서 병사로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의미 없이 소모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저자가 구사하는 생생한 반전 메시지는 탁월하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폐허문학의 리얼리즘에는 좀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스는 전쟁 기간 중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에게, 독일 민족에게 과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표현일까? 과거와 폐허를 딛고, 생존과 번영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완수해야 하나라는 현실적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명징하지 않고 모호한 전개에 대해서는 대가가 되기 전인, 아직 삼십대 초반에 쓴 글(1949년/1950년으로 추정)이라 그런 지도 모르겠다. 그가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1949년이니 거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천사는 침묵했다>는 하인리히 뵐이 죽은 뒤, 1992년에 발표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