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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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벤저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를 마침내 다 읽었다. 책의 절반가량을 호기롭게 읽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그 이유가 뭘까하고 말이다.

 

내 나름대로 분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계속된 14년 동안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대략적으로 당시 독일 국내 정치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는 점 그리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과 수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해서 결국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집권했다는 정도의 지식이 전부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출범시킨 사회민주당을 필두로 한 독일 국내 정치에 대해 몰랐고, 그레고어 슈트라서-쿠르트 폰 슐라이허-프란츠 폰 파펜 등등의 정치 플레이어에 대한 무지 때문에 잠시 쉬게 되지 않았나 싶다.

 

벤저민 카터 헷이 저술한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분석에서 출발한다. 19148, 독일 제국은 발칸에서 시작된 전쟁에 하나가 된 상태로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4년 뒤인 191811월 전쟁에 진 것도 아닌데 결국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쓰게 되었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그것은 독일 민족정신에 그어진 하나의 생채기였다. 21번이나 내각이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의 원죄는 그런 패배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게다가 1919년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탄생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파멸과 창조는 한 끝 차이라는 걸까. 저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독일 민중이 어떻게 해서 히틀러라는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야만적 지도자를 선택하게 되었고, 훗날 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재난 속으로 뛰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꼽은 키워드는 두 가지다. 오판과 과소평가. 파펜이나 슐라이허 같은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히틀러와 나치당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오판했다. 192311월 뮌헨의 비어홀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보헤미아 졸병출신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에는 애송이였지만, 혼란스러운 정치판에서 체급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치기 어린 비어홀 폭동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독재자는 군대와 관료의 조력 없이 권력을 찬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후 독일 내부의 정치 혼란과 경제 위기는 나치즘이 독버섯처럼 퍼질 수 있는 기가 막힌 환경이었다. 나치는 농촌 중심의 신교도에게 인기를 끌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이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계열 노동자들의 요새였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1925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전쟁 영웅 힌덴부르크는 우파 중심의 국가 통합을 꿈꾸었다.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귀족 출신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정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육군 원수가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독일 정치에 분노와 증오의 싹을 뿌린 나치가 두 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집단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프로파간다의 전문가였다. 당시 유명한 상업광고를 능가하는 정치 선전으로 괴벨스는 히틀러를 독일 국가의 마지막 희망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편에 그런 선전이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철모단과 돌격대라는 무력집단을 동원한 정치 폭력이 존재했다. 나치 집단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1931-32년 내란 위기는 절정이었다. 문득 수년 뒤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앞서 독일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다른 하나의 키워드인 과소평가를 살펴보자. 당시 독일의 다수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히틀러 일당에 베팅을 걸었다. 그들은 히틀러와 수하들의 권력욕과 야망을 과소평가했다. 1933130, 힌덴부르크가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 끝에 어쩔 수 없이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자 나치들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의회 다수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을 모두 불법화시키고, 게슈타포를 동원한 정적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괴벨스도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서 언론을 통제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매체였던 라디오를 동원하고, 포스터를 이용한 여론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그전에 자본을 동원한 이게파르벤 같은 대기업이 언론을 순치시키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지금 현재 차례로 건설기업에 넘어간 언론의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반대파들이 히틀러 집권 초기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12년 독재와 전쟁 그리고 패전과 분단을 피할 수가 없었다. 히틀러의 전횡을 막기 위한 부총리 프란츠 폰 파펜과 에트가어 율리우스 융, 프리츠 귄터 폰 치어슈키, 헤르베르트 폰 보제 같이 양심적 인사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1934630<장검의 밤> 사건으로 일소되면서 히틀러와 나치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반대파 뿐 아니라, 자신의 집권에 정치 폭력을 행사하면서 지대한 공을 세운 돌격대와 한 때 동지이자 돌격대 지도자 에른스트 룀마저 숙청해 버렸다.

 

저자는 독일 중심주의가 독일 정치에서 우선시 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유럽 공동체 건설의 아이디어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이미 태동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민주주의가 번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와 협력할 때, 독일이 번영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역사가 보여준다. 유럽 통합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가 독일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신호들이 잇달아 들어왔을 때, 오판과 과소평가로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결과는 독일 민족을 파멸로 인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의 독일 사람들은 민주 시민 양성을 국가적 목표로 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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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3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3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2-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읽어야 할듯요

레삭매냐 2023-02-15 17:28   좋아요 1 | URL
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보람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