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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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가 나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창세기 13절이었구나. 프랑스 작가 장폴 뒤부아가 공쿠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중고서점에 가서 그의 책 두 권을 샀다. 요즘 나름 독서 슬럼프라 재밌게 읽을 만한 그런 책이 필요했고,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는 아주 적절한 책이었다.

 

프랑스 툴루즈에 사는 동물 다큐멘터리 PD 폴 타네 씨는 어느날, 숙부가 돌아가셨다는 공증인의 전언과 함께 대저택을 유산으로 물려 받게 된다. 문제는 동성애자였던 숙부가 남긴 대저택이 향후 1년 간 그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습기가 지배하던 대저택을 방문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마 타네 씨는 그 사실을 몰랐으리라.

 

잘 살던 안락한 집을 팔아 치우고 공사 자금을 마련한 타네 씨는 공사 견적서 적힌 금액을 보고는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지금까지는 모두 예고편에 불과하니 말이다. 처음부터 비싼 가격에 제대로 된 인력을 사용했으면 모르겠지만, 어디 싼 비용으로 대공사를 치르려다가 타네 씨는 비싼 교훈을 얻게 된다. 한국이나 프랑스 모두 해외에서 유입된 인력들이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상황은 국경 없는 자본시대,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시절에 낯익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오래 전, 포장이사를 하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 몽골 청년의 등장에 좀 놀라지 않았던가.

 

첫 번째 난관은 바로 피에르와 페드로 두 해적 악당들이었다. 사실 이 두 악당들이 초반 공사의 대부분을 망쳐 먹은 주범들이었다. 농땡이는 기본이고 대들보 세우는 일이며, 폭풍우가 몰려오는데 공사 현장에 방수포를 씌우지 않아 대홍수를 일으킨 장본인이 되시겠다. 게다가 가장 기본적인 보험도 들지 않아 발주자인 타네 씨의 뚜껑을 열리게 만들기 일쑤다. 아 참 타네 씨는 그들의 개에게 발모가지를 물리기도 했다.

 

그 뒤에 줄지어 등장하는 이들도 사실 타네 씨를 홀라당 벗겨 먹으려는 해적 악당 2인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참사 이후 뒷수습을 위해 제대로 된 긴급 인력을 수급받았지만, 비용 청구서를 보고 타네 씨는 입이 딱 벌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난관, 그리고 그에 대한 타네 씨의 투쟁이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게다가 탁탁 끊어지는 장 구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밌기까지 하다.

 

나는 내가 못하는 일은 외주를 주자는 입장이다. 비용을 들여서라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벽에 못 하나 박는 일도 버거워 하는 나로서는 어쩌면 그게 더 맞는 일이 아닐까 싶다. 대저택의 바닥 공사를 친 노인장은 경사를 잘못 잡아서 물이 건물로 밀려들자, 타네 씨에게 버럭하고 화를 내지 않던가! 그러니 아무리 공사를 발주한 전주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일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슬쩍 엿볼 수도 있다.

 

타네 씨에게 해고당한 악당 2인조가 앙심을 품고, 타네 씨가 애지중지하는 공구들을 훔쳐 갔을 때는 또 어떤가. 하지만 아무리 타네 씨가 그들에게 협박을 하더라도, 명백한 물증 없이는 그들을 심증적으로 범인으로 규정할 뿐 다른 대처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악당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뻔뻔하게 대들기까지 하지 않은가 말이다. 대저택의 전기 배전공사를 맡은 루스키 씨는 퓨즈를 홀라당 태워 먹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불꽃놀이, 하나비 같다고 했던가. 잇달아 벌어지는 대참사를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뒤부아 작가의 능수능란한 솜씨에 좀 반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타네 씨를 벗겨 먹으려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찬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들판에 고개를 쑥 내미는 들꽃처럼 수도 배관공 아랑그 영감도 있었다. 아랑그 영감이야말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마지막 기사도를 상징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물론 그 역시도 실수로 타네 씨의 참사 연대기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그것을 자신의 치욕이라고 생각하고 공사비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사비 청구도 뒤로 미룰 뿐이었다. 공사판을 누비는 고문관들과 미치광이들도 많지만, 아랑그 영감처럼 진정한 장인도 있다는 말을 뒤부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를 읽으면서 행여라도 미래에 집을 짓는다 뭐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주변에서 그렇게 자기 집을 지었다가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수십년 째 생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냥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뭘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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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건축가 2019-11-13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제가 타네씨 책을 꼭 읽어볼께요. 엄청 재미나고 공감할 것 같은 책이네요. ^^ 방금 중고책 구입 했어요.

레삭매냐 2019-11-13 16:55   좋아요 1 | URL
걸작이나 명작 수준은 아니고
기분 전환용으로 읽기에 그만
인 책이더군요 :>
 
고양이의 하루 - 어제처럼 오늘도, 알콩달콩 노닥노닥
미스캣 지음, 허유영 옮김 / 학고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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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그리고 쓴 저자의 이름은 미스캣, 한자를 보니 묘소저 우리말로 하면 고양이 아가씨 정도 되겠지 싶다. 책을 읽기 전에 고양이 관찰 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책을 펴보니 인간의 자리를 고양이가 대신하고 있더라. 특이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고양이의 하루>의 공간적 배경은 대만이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대만. 언젠가 가보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열렬하게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역사 전공자라 고궁박물관에는 가보고 싶다. 그걸 다 보려면 최소한 6개월은 걸린다고 하던데, 그럴 만한 시간도 금전적 여유도 없겠지만.

 

미스캣 씨가 그리는 고양이들 혹은 대만 사람들의 일상은 푸근해 보인다. 어디까지나 나는야 이방인, 아마 내가 대만에 가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 나의 고향을 떠나는 순간 나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니 말이다. 이제는 우리 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정겨운 풍경들이 <고양이의 하루>에는 오롯하게 담겨 있다. 살풍경한 시멘트로 만들어진 아파트 숲에서 이웃과 정겹게 자리를 하고 수박을 쪼개 먹는 일 따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된 지 이미 오래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나는 대로 학원에 내몰려 놀이터에 가봐도 한산하기만 하다. 대만의 고양이들은 거리를 누비고, 오래된 나무를 타며 아주 자유로운 삶을 즐긴다. 예전에 주전부리를 팔던 점빵 혹은 구멍가게들은 모두 마트 혹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아파트 언저리에는 자잘한 눈깔사탕이나 맛나 보이는 불량식품을 취급하는 구멍가게들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모두 24시간 편의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리병 속에 든 사탕을 빼먹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오래전 연탄불에 쫀드기를 구워 먹던 시절 생각이 나더라. 지금도 가끔 레트로를 표방하는 술집에 가면 그 시절 쫀드기를 서비스로 주던데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나이가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 책을 보면 볼수록 소소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고양이의 일상을 저격하는 게 미스캣 씨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대중목욕탕처럼 보이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씻고 닦고 몸을 지지고 물장난을 치고, 대가족들이 한 데 모여 생선요리를 해먹고, 거리의 국수가게에서 닭국수를 먹는 흥겨운 순간들을 고양이 아가씨는 절묘하게 잡아낸다. 생뚱맞게도 시원하게 닭육수를 우린 고양이들이 즐기는 닭국수가 먹고 싶구나.

 

예전에 카페의 빙수 장수 아저씨가 손으로 수동 빙수기계를 돌려 솨솨솨솨빙수를 갈아 만들어주시는 빙수를 맛본 적이 있다. 난 이상하세도 어려서부터 팥을 싫어해서 지금까지도 팥은 그냥 그런데 빙수에 들어가는 팥은 그나마 좀 먹는 편이다. 그리고 보니 이번 여름에는 빙수를 한 번도 못 먹은 것 같다. 인근에 무슨 도쿄 빙수인가하는 가게가 있던데 만날 그 앞을 지나가면서도 결국 못가봤다. 내년까지 그 가게가 있다면 빙수를 한 번 먹어 보리라. 그리고 대만에서도 길에서 오징어구이를 파나 보다. 내가 알기로 전 세계에서 오징어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이탈리아 사람(칼라마리) 정도라고 했는데 대만 사람들도 오징어를 즐기는 듯. 예전에는 아구가 다 나가도록 오징어를 뜯었는데 이제 이도 시원치 않아 말랑말랑한 반건조 오징어가 난 좋더라.

 

그나저나 바니안나무는 우리나라에도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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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11-07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별 걸 다 읽으십니다. 보기 좋네요.

레삭매냐 2019-11-07 17:39   좋아요 0 | URL
원래 잡식성 독서가라서요 :>

자기계발서 말고는 가리지 않습니다.
 
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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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정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위해 모두가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

 

내가 만난 실비 제르맹의 세 번째 소설은 <숨겨진 삶>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조금 읽었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읽은 다음에, <숨겨진 삶>을 읽고 싶었지만 새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모양이다. 1/3 지점을 넘긴 지점에서 <숨겨진 삶> 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숨겨진 삶>에서 왠지 모르게 <프라하>에서 울고 다닌다는 여자의 모습이 얼핏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중심에는 우르푀빌의 베랭스 군단이 자리 잡고 있다. 집안의 가장이자 독재자 샤를람이 일으킨 집안은 아들 대인 조르주가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한차례 폭풍에 휩싸이게 된다. 열일곱 살에 결혼해서 네 아이를 가진 사빈은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키우고 또 씩씩하게 사업도 이끌어 가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사빈이 프라하 여인처럼 심정정적으로 울고 다니다가만난 사람이 바로 어릿광대 피에르 제브뢰즈였다.

개인적으로 베랭스 군단에 얽힌 비밀이 이 소설의 중심이 아니라 피에르 집안의 숨겨진 삶이 소설의 정수가 아닐까 추론해 본다. 그냥 내 생각이다. 조르주와 쉿 왕고모 에디트의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비밀, 조르주가 당첨된 복권 때문에 사빈과 싸우고 홧김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그만 나무와 충돌하는 바람에 객사한 이야기. 그 차 안에 막내딸 마리가 타고 있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던 이야기 등등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일 없다는 말처럼 그런 사건 사고들이 끝없이 피고 진다.

 

그런데 사빈이 길거리에서 픽업한 피에르가 베랭스 군단에 샤를람의 주장처럼 밀렵꾼처럼 잠입하면서 역설적으로 베랭스 군단은 점점 안정을 찾아간다. 노인네 샤를람은 피에르가 자신의 죽은 아들 조르주를 직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대신하지 않을까 끝없이 경계한다. 그리고 손자들인 앙리와 쌍둥이 형제 엑토르와 르네 그리고 마리에게 그를 조심하라는 말을 전달하고 주입한다. 어떤 작전은 먹혀들었고, 별무소용이거나 혹은 마리에게처럼 참담한 실패로 끝나기도 했다지.

 

실비 제르맹의 다른 소설처럼 역사적 사건들이 특별나게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프랑스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 샤독 시리즈가 주는 감흥은 한 개도 없었다. 요즘 시대의 마블 같은 영향력을 지녔던 것일까,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해외 문학이 가지는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듯이 68혁명, 알제리전쟁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등에 대한 언급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는 무언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베랭스 군단의 일가를 위해 야회를 준비한 날, 샤를람의 모욕과 사빈-마리 모녀의 2연타에 충격을 먹은 피에르는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다. 숲 속에 옷도 남겨둔 채. 실종신고도 소용없이 그렇게 밀렵꾼은 베랭스 군단의 기억에서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피에르 없이도 베랭스들은 다들 커서 삶에서 자기 몫을 충실하게 해낸다. 유년 시절 조에라는 상상의 친구와 어울리던 마리에게 피에르는 자신만의 가상친구 젤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후반에 등장하는 피에르의 이야기 속에서 젤리가 실존했던 사람이라는 아는 순간, 약간의 전율이 일기도 했다. 마리는 피에르가 남긴 노트에서 영감을 얻은 젤리에 대한 이야기를 성년이 되어 세상에 내보내고 동화 그림 작가로 성공한다. 청소년 시절,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마리가 쏟아내는 분노와 좌절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자자, 이제 진짜가 등장할 차례다. 정신병원에서 소 예수로 거듭난 피에르의 과거가 등장할 차례다. 아니 왜 이렇게 기대가 되는 거지. 그렇다면 독자는 태생적으로 타인의 비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까. 피에르의 엄마 셀레스트 베르강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파콤과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가 피에르였다. 전중에 독일 병사 요한 뵘란트와 사랑에 빠져 그의 아이를 낳았으니 바로 그녀가 젤리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동안 소극적으로 나치 치하에서 조용하게 삶을 영위하던 이들이 돌변해서 어느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레지스탕스 행세를 하며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조국의 수치를 안겨준 여인네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진인 아이를 품고 삭발당하고 옷이 찢긴 채, 거리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여인이 바로 광대 피에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실비 제르맹이 묘사하는 장면을 내 기억 속에 있는 사진에 매치시키면서 그저 할 말을 잃었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역사는 폭력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필두로 해서, 혁명전쟁,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파리 코뮌, 두 번의 세계대전, 알제리와 베트남에서의 식민지 전쟁 그리고 68혁명까지 역사의 모든 순간에서 폭력 없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샤를람과 피에르 그리고 심지어 앙리는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는 (폭력의 현장을 카메라 앵글에 담는) 사진작가가 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결국 베랭스 군단의 명실상부한 안주인으로 격상한 루마는 돌아온 탕자피에르에게 돌아온 유령 혹은 망령에게 자리는 없다며 매몰차게 내쫓는다. 삶에서 숱하게 그런 거절을 당해온 피에르에게 한 때 동지였던 루마의 거절이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제 자기 것이 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미 구원 받은 피에르에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삶의 비밀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것들은 차라리 모르고 그냥 넘어 가는 게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느 나이 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을 흘러 보내보니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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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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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갈등을 줄이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법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최근 어느 조사에서는 미래에 없어질 직업군 중의 하나로 판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법률 조항에 근거해서 인간보다 더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지도 모르겠다. 피조물인 인간인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재판에 관련된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형사 소송 사건의 변호사로 활동해온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자신이 맡은 사건 중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12개의 이야기들을 추려 독자에게 소개한다.

 

우선 우리는 법에 대해 무지하다는 걸 고백한다. 내가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법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 일상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법률 용어는 사법 시스템의 기득권층이 일반인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 법률 용어들이 필요한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의 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한자가 아닌가.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빠졌다. 본론에 들어가 보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유년의 추억이 깃든 <호수집>에 사는 어느 얌전한 독일 아저씨는 자기 삶의 바운더리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위협받자, 상하이에 살던 할아버지가 남긴 무허가 총기로 무장하고 이웃집 아줌마에게 총을 난사한다. 선량했던 시민이 자기 삶의 공간이 타인에 의해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평쟁이로 그리고 더 나아가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 이웃을 공격하는 장면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의 판단에 의하면 이웃집 아줌마가 죽을 만한 죄를 지었단 말인가.

 

독일로 이민 온 터키계 가정에서 자란 셰이마는 고유의 종교와 문화 관습을 일체 부정하고 자력으로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범죄자의 변호를 자원에서 맡는다. 그녀가 변호를 맡은 인물은 베를린의 악랄한 포주였다. 루마니아에서 취업시켜 준다는 사탕발림으로 꾀어온 여성을 매춘부로 만들고 성적 착취를 서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변호사는 악당 포주의 변호를 포기하고 사임을 요청하지만 재판장은 법률적 근거를 들어 허락하지 않는다. 어렵게 증언에 나선 루마니아 여성을 실종되고, 악당의 재판은 파기 환송되고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된다. 과연 정의는 살아 있는가.

 

첫 에피소드에서도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다 재판에 넘겨진 남편이 그런 식으로 방면되었다가 결국 아내를 망치로 살해하고 만다. 정황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식의 기계적 재판이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온 것이다. 재판장이 남편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판결을 내렸다면 아마 부인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일단의 사건에서도 검찰이 보여준 기소편의주의 혹은 선택적 정의에 대해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출산 이후,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이 기괴한 방식으로 성적 판타지를 추구하다가 죽은 사건도 흥미롭다.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된 피고가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변호인은 자기 고용주의 주장에 따라 소송에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까.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게 정의로운 일인지 궁금했다. 이 장면에서는 전범으로 몰린 자신의 아버지의 변호에 나섰다가 진실을 알게 되는 변호사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뮤직 박스>가 연상됐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과 정의는 절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는가?>의 저자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보통 사람들에게 어려운 전문적인 법정 용어가 난무하는 복잡한 형사 소송을 재료로 한 법정 드라마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만들었다. 뻑뻑한 원재료를 무두질해서 부드럽게 만들고, 동정과 공감을 유발시키는 저자의 글쓰기는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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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칸토
앤 패칫 지음, 김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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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어느 나라 부통령 관저에서 즐거운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굴지의 기업 난세이 사의 회장 호소카와 가쓰미는 오페라광으로 자신의 사모하는 미국 출신 오페라 가수 록산 코스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말에 혹해서 그 나라에 대한 투자와는 상관 없이 파티에 참석한다. 원래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그놈의 마리아가 나온다는 드라마에 미쳐 참석을 취소한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즐거운 파티가 흥을 더해갈 무렵, 무장한 18명의 게릴라들이 출현해서 그들 모두를 인질로 잡는다.

 

앤 패칫의 소설 <벨 칸토>1997년 페루의 일본대사관에 난입한 무장 게릴라들이 700며명의 인질을 잡았던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우리나라 대사도 인질로 잡혔었다고 하는데, 궁금해서 동영상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페루의 대통령이었던 후지모리가 방탄조끼를 입고 구출된 인질들을 버스에 태워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 보였다. 자고로 위정자들의 쑈는 알아주어야 한다니까.

 

앤 패칫이 2001년에 발표한 그녀의 네 번째 소설 <벨 칸토>는 그렇게 인질로 잡힌 39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 오페라 가수 그리고 그들을 인질로 잡은 저항군의 이야기다. 처음에 세 명의 저항군 장군과 일당이 잡은 인질수는 더 많았으나, 그들이 관리하기에 너무 많다고 판단한 게릴라들은 다수를 석방하고 감옥에 갇힌 자신들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요구 조건을 내세운다. 대통령까지 인질로 잡았다면 협상이 쉬웠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치밀하게 인질극 계획은 대통령이 드라마 관람 때문에 큰 그림에서 빠지면서 실패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앤 패칫이 그리는 그림은 인질극 자체보다 그렇게 인질로 사로잡힌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각종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정무에 바빴던 부통령 루벤 이글레시아스 아저씨는 인질극 초반에 무장 게릴라들에게 대들었다가 얼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는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인질로 잡힌 이들이 모두 어쨌건 자신의 손님이라는 생각에 도달한 루벤 아저씨는 그들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기 시작한다. 집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다림질로 시간을 보낸다.

 

페루(아무리 봐도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페루다) 페루 인민을 사랑하는 아르게다스 신부는 자청해서 인질로 남는다고 고집을 부린다. 풋내기 신부는 인질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고 게릴라들에게 고해성사를 베풀고 무엇보다 록산 코스의 노래 연습에 필요한 노래 악보를 구하는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프랑스인 시몽 티보는 새삼스럽게 인질로 잡힌 뒤에 자신이 아내 에디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나중에 훌륭한 요리사로 변신해서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난세이 사의 중역 가토 씨는 코스의 반주자가 당뇨병으로 죽음 다음, 홀연히 등장해서 영롱한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넉 달 반 동안 진행된 인질극의 시간은 인질들에게 자신들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게릴라들이 언제 자신들을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인질들과 게릴라들 사이에 어느덧 상호신뢰가 쌓이기 시작한다.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록산 코스.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 오페라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감하고 사랑이 싹튼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감동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곧 그녀는 만인의 연인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선수는 바로 호소카와 회장의 통역인 와타나베 겐이다. 각국 언어에 정통한 청년은 사소한 인질들의 요구 사항에서부터 그들의 은밀한 요구까지 헌신적으로 받드는 그런 겸허한 자세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시작한다.

 

, 이제 사랑이라는 조미료가 빠져서는 안 되겠지. 첫 번째 로맨스는 록산 코스와 호소카와 회장이 그리고 다음 주자는 겐과 남자인 줄 알았던 게릴라 전사 카르멘이 주연을 맡는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했던가. 부통령 루벤 씨는 게릴라 이스마엘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놀라운 노래에 대한 재능을 가진 것이 드러난 세사르는 코스에게 지도를 받고, 카르멘은 연인 겐에게서 언어 공부를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인질극 대처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하나의 우연 혹은 소설적 장치라고 해야 할까.

 

게릴라들과 인질들 사이에 조성된 부드러운 해빙 무드는 정부군이 시작한 대테러 진압작전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동안의 느릿한 전개가 무색할 정도로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엔딩이었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그리고 이어지는 에필로그로 인질 드라마 대단원의 막이 조용히 내린다.

 

현실에서 벌어진 페루 일본대사관 인질사건과 달리 소설 <벨 칸토>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는 음악이라는 장치를 이용한 관계 설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인질 모두가 사랑하게 된 록산 코스라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절박한 순간에 포코 에스페란사를 찾게 마련이니 말이다. 메신저 메스너가 예고한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와, 게릴라들과 인질들의 생사를 갈라놓았던 것이다.

 

실제 사건을 극화하고 노래와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한 편의 멋진 오페라 드라마를 창조한 앤 패칫의 솜씨에 감탄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은 작가에게 창작을 위한 하나의 질료로 작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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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0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낮설지 않다 했더니 예전에 나왔었네요.
문동판이 훨씬 세련됐네요. 합본으로 나온 것도 마음에 들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 말씀에 동의합니다.^^

아, 근데 쓰신 제목의 뜻이 뭔가요?

레삭매냐 2019-11-01 20:06   좋아요 1 | URL
오옷 예전에 한 번 나왔던 책이로군요.
근데 그 때는 분권으로 나왔나 보네요.

좀 더 당시 역사에 대해 조사한 다음
에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특유의 게으
르니즘 플라스 귀차니즘으로 그만...

‘포코 에스페란사‘는 소설 중에 나오는
표현인데 소설에서는 희망이 없다로
번역했는데, 찾아 보니 ‘작은 희망‘라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