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2 - 피에 물든 백합
파트릭 페노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주말, 간만에 대학시절 지기들을 만나게 되어 부천 나들이 나섰다. 워낙 촌에 살다 보니 어디 한 번 나들이하기가 쉽지 않다. 가는 길에 부천 알라딘에 들러 파트릭 페노의 <메디치> 시리즈 중에 두 번째 권을 샀다. 그리고 보니 왜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이 시리즈가 없는지. 천상 사서 보던가 해야지 싶다. 그리고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후원한 바로 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1권부터 읽어야 하지만, 중고책방에는 2권만 덜렁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능가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할 만하지 않을까 싶더라.

 

일 마니피코 시절이 가고 난 다음, 다시 한 번 공화정의 뜨거운 열기와 그리고 사보나롤라로 대표되는 개혁의 시절이 폭풍처럼 피렌체를 휩쓸고 간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포폴라니라고 하여 차남 계열의 메디치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이탈리아에서 최고가는 용병대장 조반니 달레 반데 네레가 등장해서 용맹을 떨친다.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스페인/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는 이탈리아에서 각축전을 벌였다. 도시국가 피렌체는 사실 독자적으로 유럽을 좌지우지하는 두 강력한 국가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줄타기 외교전을 펼쳐야 했다. 피렌체는 그 때마다 말을 갈아타며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약소국 신세였다. 메디치 가문 출신 두 번째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칼 5세와 대립하다가 로마 약탈이라는 전무후무한 치욕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근거지였던 피렌체에는 자신의 서자 알레산드로를 파견해서 지배자로 삼았다. 그리고 알레산드로의 유력한 경쟁자 용병대장 조반니는 전장에서 죽게 만들어 버렸다. 조반니의 아내였던 마리아는 유일한 아들 코시모를 데리고 피신하는데 성공한다. 인기 없는 군주였던 알레산드로가 암살당하자 마키아벨리의 세례를 받은 호랑이 새끼 코시모가 피렌체의 독재자로 나서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2권의 표지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훗날 토스카나 대공이 되는 코시모 1세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브론치오가 그린 초상화는 교활하고 영명한 군주라기 보다 왠지 전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돌아온 권력을 코시모는 누구와도 나눌 생각이 없었다. 당시 피렌체가 속해 있던 이탈리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일단 코시모는 자신을 가장 든든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칼 5세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스스로를 합스부르크 가문의 봉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가신들을 동원한 공포정치를 가동해서 우선 피렌체의 지배를 확보한 다음 토스카나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해 가기 시작한다.

 

일 마니피코 시절부터 왕관 없는 제후라는 가문의 약점을 지워내기 위해 코시모는 철저하게 마키아벨리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마저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냉철한 권력의 화신으로 변하게 될 줄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자신의 아내도, 자식들도 모두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권세가 강화될수록, 개인사는 비극으로 얼룩져 간다. 파트릭 페노 작가는 권력의 정점에서 예술애호가 코시모가 키마이라라는 조각을 얻기 시작하면서 잇달아 벌어지기 시작한 비극을 소설적 코드로 다루는데 성공한다.

 

사랑하는 아내 엘레오노라의 아버지이자 장인 돈 페드로가 출정을 앞두고 사망하고, 많은 자식들 역시 차례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장남 프란체스코보다 더 유망했던 차남 추기경 조반니가 삼남 가르시아와 사냥 중에 다툼을 벌이다 죽고, 다른 아들을 카인이라 부르며 아버지가 직접 처벌에 나선다. 자신의 반대파를 없애기 위해 코시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백합의 도시, 피렌체는 피로 물들어 갔다.

 

냉철한 군주 코시모는 피렌체 사람들에게 계속된 번영만 약속해 준다면,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정적들에게는 가차 없는 지도자였지만, 자신의 기반이 되는 백성들과 자기가 다스리는 국가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능수능란한 줄타기 외교를 구사하면서 프랑스-신성로마제국-교황 사이에서 실리로 대표되는 국익과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일 마니피코가 왕관 없는 제후로서 중세를 주름잡은 메디치 가문의 기틀을 닦았다면, 마키아벨리주의자 코시모는 조상들이 결코 이루지 못했던 토스카나 대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물론 대공의 왕관을 쓰기까지 많은 희생과 우여곡절이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교황의 눈 밖에 난 개신교도 자문이자 대공의 친구였던 피에르 카네르스키였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걸 위해, 코시모는 결국 카네르스키를 교황의 손에 넘기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카네르스키는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파트릭 페노는 코시모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과연 그가 그랬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피렌체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던 코시모 역시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코시모의 뒤를 이은 장남 프란체스코는 후사를 남기지 못해 로마에서 추기경 생활을 하던 페르디난도가 메디치 가문의 당주가 되는 것으로 메디치 두 번째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파트릭 페노의 <메디치>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권력 무상을 느꼈다. 소설에 묘사되는 대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확실히 민심과 당대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한 뛰어난 군주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자신의 국정 운영이 자식의 치세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좋은 후계자를 세우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가문의 영속을 위해 아무리 노력했어도, 아버지를 능가하지 못한 자식들 덕분에 메디치가의 영화는 존속되지 못하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02-07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 뵈러 부천 ...
의왕에서 멀지도 않은 그 거리를 가시는 ˝김에˝ 또 책 겟하셔서 읽어내시는...게다가 리뷰 쓰기 (저는 솔직히 귀찮아서 읽고만 말 때가 많은데...)까지 다 하시는 매냐님^^ 존경합니다

레삭매냐 2023-02-07 15:37   좋아요 1 | URL
여전히 부족한 독서인으로
책읽기의 완성은 리뷰? 독후감
쓰기라고 생각한답니다.

다른 거는 귀차니즘에 포기해
버리지만, 독후감은 꾸역꾸역
쓰는 제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넵.

술 퍼먹고 복귀하려니 넘 힘들
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02-07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저도 요즘에요...˝~~한 나를 칭찬해˝ 그 말이 그렇게 귀엽게(?) 들리더라고요. 쑥스럽지만 제 스스로에게 선물하듯 그 말을 쓰는데, 레삭매냐님께서도 ˝리뷰를 꼬박꼬박 쓰는 나를 칭찬해˝하셔도 좋겠어요^^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3-02-07 18:35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헷 -

책 읽고 나서 바로
바로 리뷰를 쓰지
않으면 그 때의 기
분이 모두 날아가
버려서 나중에는 쓰
지 않게 되더라구요.

밀리지 않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감사합
니다.

새파랑 2023-02-0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부천 알라딘 단골입니다 ㅋ
저도 어디가면 꼭 알라딘 우주점이 있는지 확인하게 되더라구~!!

레삭매냐 2023-02-08 15:5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

저는 오늘 송도 가서
제프 다이어의 <그러
나 아름다운> 신판
땡겨 왔답니다 ^^

서니데이 2023-03-1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3-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샥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가필드 2023-03-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
 
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바람돌이님의 <골리앗> 리뷰를 봤다. 분명 예전에 그래픽 노블로 만난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럴 땐 다시 읽어야 한다. 어제 도서관에 들러서 <골리앗><달과 경찰>을 내리 읽었다. 전자도, 스산한 느낌이 드는 달나라 이야기도 다 마음에 들었다.

 

골리앗은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대공병기의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맞서 싸운 블레셋 출신의 거인 전사에서 유래되었다. 거대한 사이즈로 완전 무장을 한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발한다. 놋쇠투구에, 단창 그리고 방패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전사에 맞서 싸울 이스라엘 병사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 목동 출신의 애송이 다윗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불세출의 블레셋 출신 전사는 다윗 전설을 위한 불쏘시개가 아니었을까.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전쟁 영웅이 된 다윗은 결국 사울 왕에 이어 유대왕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유대인) 사이는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들레헴을 기점으로 유대 왕국을 둘로 나누려던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엘라 계곡에서 대치하게 된다. 너튜브의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니 골리앗은 45kg이나 나가는 전신갑주를 입은 중보병이었고, 그에 대항하는 다윗은 투석병이었다는 분석이 등장한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일기토 대결 방식이 전쟁에서 선호된 모양이다. 근거리 전투에서 다윗을 박살내고 싶었던 골리앗은 내게로 오라고 적에게 외친다. 후대 연구자들은 골리앗이 성장 호르몬 과다분비로 말단비대증(Acromegaly)을 겪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합병증으로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증이 있었을 거라고도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골리앗은 보이는 게 없었다. 그래서 골리앗의 방패지기 소년은 적의 이동을 구분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 그래픽 노블에서 골리앗의 눈 역할을 해주던 방패지기 소년이 골리앗의 곁을 떠났을 때, 이미 승부는 정해졌던 게 아닐까.

 

갑옷을 입지 않은 다윗은 골리앗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는 다년간의 목동 생활을 통해 훈련된 투석병이었던 다윗이 던진 돌팔매의 위력은 현대에 있어 권총의 살상능력에 가까웠다고 한다. 일격필살의 위력으로 다윗은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도전장을 냈다. 그런 다윗이 여러 제약을 지닌 골리앗을 일기토 대결에서 이기는 게 아주 허황된 전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톰 골드가 그린 <골리앗>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성경에서는 다윗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시무시한 전사로 묘사되지만, 가드 사람 골리앗은 사실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 그리고 심지어 행정병 출신의 거인이었다. 이스라엘군과의 지루한 교착상태(40여일)를 타파하기 위해 블레셋 사령관은 골리앗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런 걸 보면, 그는 전장에서 비밀병기의 중요성을 잘 알던 지휘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딱히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최전선에 나선 골리앗은 할 일이 없다. 그저 매일 같이 사령관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읽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시 병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가 다윗의 등장으로 전선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골리앗은 허무하게 죽고 만다.

 

톰 골드의 <골리앗>을 읽으면서 오랜 전설/신화의 실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오랜 과거의 진실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즘처럼 동영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목격한 소수가 남긴 구전에 기반한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목동 출신의 소년 다윗이 어마무시한 능력과 신체적 조건을 가진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이게 신념의 문제로 간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사후약방문처럼 나중에 갖다 붙인 정밀한 분석들을 보면 아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아닌 것처럼 포장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기존의 사고 대신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톰 골드의 <골리앗>은 의미 있는 독서였다. 상당히 많은 여백을 각자의 상상에 맡긴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1-30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어제 그 책은 없고ㅠ
이 책은 있더군요. 조만간 저도!!

레삭매냐님 스타 하시나봐요ㅋㅋㅋㅋ
웬지 저그 하실듯 합니다.
저는 테란^^*

레삭매냐 2023-01-30 16:10   좋아요 3 | URL
어제 알았으면 더 빌렸을
텐데, 톰 골드 아재의 책이
좀 더 있더라구요.

주말에는 내내 그래픽 노블
만 봤네요. 저도 밀린 리뷰
가 늘어서 팍팍 써볼랍니다.

저도 테란했습니다. 그냥
솔플 하는 정도로 헷
실력은 미천하지요.

stella.K 2023-01-30 16:21   좋아요 3 | URL
아니 스타는 뭐고 테란은 또 뭡니까?
요즘 말은 당췌...ㅠㅎㅎㅎ

거리의화가 2023-01-30 16:22   좋아요 3 | URL
스타는 하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저그, 테란 알아먹는 저^^;;;

stella.K 2023-01-30 16:42   좋아요 2 | URL
아, 게임 이름인가요?
와, 두 분들 대단하시네요.^^

coolcat329 2023-01-30 19:37   좋아요 2 | URL
하하 저도 테란 ㅋㅋ
아 제 20대 추억의 게임 ㅠㅠ

그레이스 2023-01-30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전에 소개받은 적 있어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기를 한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레삭매냐 2023-01-30 17:3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

이 참에 골리앗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네요.

책으로 촉발된 지혜의
탐구에 너튜브가 또
한 도움 주네요.

거리의화가 2023-01-30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바람돌이님께서 소개해주실 때 마음에 남았어요.
골리앗이 말단비대증과 복시증을 겪었을 거라는 분석이 재밌습니다^^ 어쩌면 이런 전설은 메타포가 담긴 이야기에 포장 전술을 그럴싸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로 해석하기보다는 다양한 방향의 해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01-30 17:39   좋아요 3 | URL
예전에 만난 <골리앗> 기억
이 나지 않아 부러 도서관에서
다시 읽었답니다 :>

언급해 주신 대로 예전 전설/
신화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싸인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우리
책쟁이들이 책을 읽는 이유
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coolcat329 2023-01-30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1-31 07:42   좋아요 1 | URL
톰 골드의 책들, 추천합니다.

새파랑 2023-01-31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쟈는 프로토스 아닌가요? ㅋ 신화의 골리앗과는 다르게 스타의 골리앗은 좀... ㅋ

골리앗에게 저런 사연이 있다니 첨알았습니다~!!

레삭매냐 2023-01-31 17:12   좋아요 1 | URL
프토 질럿의 공격력은 정말 ~
스타 골리앗은 정말 허접하지요 :>

저도 어디선가 얼핏 듣고 나서
이번에 너튜브로 정주행하고
알게 되었네요. 신화의 재해석
재밌었습니다.

서니데이 2023-02-01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리앗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군요.
다윗의 돌에 맞는 역할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괜않은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2-02 10:0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가
새로운 해석을 접하게 되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
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달과 경찰 Mooncop
톰 골드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일에는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피곤하고, 또 주말에는 주말대로 힘들고 피곤하구나. 오늘은 도서관을 두 곳이나 들렀다. 누가 보면 책에 미친 사람인 줄 알겠다고.

 

알라딘 서재/북플은 책읽기를 강제(?)하는 무언가가 숨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투비 어쩌구까지 생겨서 더더욱 사람을 붙들어 두게 생겼다. 알라딘 동지분의 서재에서 본 톰 골드의 그래픽 노블 두 편을 도서관에서, 앉은 자리에서 순삭의 속도로 읽었다. 먼저 만난 <골리앗>은 분명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리뷰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냥 읽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모양이다. 이래서 기록으로서의 리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때 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와 비교해 볼 때 책읽는 즐거움이 배가가 되지 않나 그런 착각에 빠져 보기도 한다. 모든 게 다 일장춘몽이다. 심지어 책읽기까지 말이다.

 

<골리앗>을 다 읽고 나서 13분 만에 <달과 경찰>을 쓱싹 읽었다. 점심으로 고등어구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다른 일행들이 나를 재촉한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빨랑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조급해진다.

 

문캅은 달에 거주하는 경찰이다. 당시 아마 대략 12명 정도의 달주민이 살았지 아마. 그러다가 달에 사는 게 지루해지는지 하나둘씩 달을 떠나기 시작한다. 달에는 경찰을 필요로 하는 사건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어제와 같고 조용하고 무료해 보인다. 그래도 그런 곳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공간이 되지 않은 달의 모습은 왠지 사람들이 점점 떠난다는 시골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그 사람들을 상대할 상점이나 서비스가 같이 사라지면서 시골 아니 달의 황폐화는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 다시 경찰 업무 이야기로 돌아가서 달에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해결률 역시 100%. 참 이상한 통계수치가 아닐 수 없다. 아예 사건이 없으니 사건해결률이 100%...

 

문캅은 아침마다 도너츠 가게에 들러 커피와 도넛 한 개를 주문한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이 사라지니, 도너츠 가게 마저 문을 닫을 판이다. 그나마, 루나도너츠에 새로 부임한 점원이 생기면서 문캅의 위로가 되어 준다. 그렇기 우리 닝겡들은 자고로 그런 위로가 필요한 존재들이었지. 참 기묘하다.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건 싫은데, 그의 부산물로 발생하게 되는 의료나 각종 서비스는 또 아쉽다. 어쩌란 말인가 그래.

 

문캅이 살던 아파트에는 모두 12명이 살았다. 그러다가 8명이 떠나고 꼴랑 4명만 남게 된다. 달에는 무언가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집 나간 댕댕이를 찾는 일 정도랄까. 문득 그렇게 황량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런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달로 떠나지만, 결국 그곳 역시 지구별처럼 그다지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생각에 다시 지구별로 귀환하게 되는 모양이다.

 

문캅 역시 서장에게 전근을 요청하지만, 대체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된다. 그러니까 나의 의지와는 1도 상관없이 이제부터 나는 달에 머무르게 생겼다. 왠지 마음이 답답해진다.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노동을 팔아야 하는 숙명이 엇비슷하게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나.

 

그래도 뭐 딱히 문캅은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루나 도너츠의 우수점원과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하고, 나름대로 달에 사는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다. 삶에 어떤 이유를 만들어 내는 거야말로 삶의 큰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딱히 무엇이 좋다고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냥 마음에 들었다. 디테일보다 심플하게 구성된 캐릭터들을 묘사한 그림이며 달 분위기들이 물 흘러가듯 마음을 적셨다고나 할까. 이렇게 간단한 설계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거면 됐지 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1-29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3분만에 읽으셨다니 저희 도서관에 이 책 제발 있음 좋겠네요. ^^

일장춘몽... 너무나 공감되는 요즘입니다.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져 슬퍼요.

레삭매냐 2023-01-30 10:35   좋아요 1 | URL
기억력의 부재...

제가 요즘 그러하답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있는데 머리
에서는 빙빙 도는데 말로 나오지
않더라는. 이것 참 -

그래서 메모가 중요한가 봅니다.

부디 미미님 근처 도서관에서 문
캅과 만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파랑 2023-01-29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에 사람이 없어서인지 줄거리도 엄청 심심하네요 ㅋ 문캅의 취미가 독서였다면 덜답답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레삭매냐 2023-01-30 11:15   좋아요 1 | URL
뭐랄까... 달에서의
심심파적이 주를 이루고
있답니다.

그렇죠!!! 문캅 씨가 책
쟁이였다면 아마 달에서
의 생활도 그닥 ㅋㅋㅋ
 
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재와 광인의 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을 접하는 순간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검은 바이올린>의 주인공 요하네스 카렐스키의 영혼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179531세의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대혁명의 와중에 서 있었다. 5살 때, 처음 집시로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요하네스는 2년 만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거듭나게 된다. 천재란 것인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마치 유년 시절의 모차르트처럼 타고난 재능을 그저 악보에 옮기면 되는 것이었던가. 대장금처럼 홍시맛을 기가 막히게 구별해내는 그런 능력의 보유자는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여행에 돌입한다.

 

우리는 이런 천재 탄생 전설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순간, 천재는 적당한 광고와 어느 정도의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무언가(음악 같은 특별한 재능에, 어린 나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를 지닌 누군가의 퍼포먼스에 신기해하고 기꺼이 비용과 시간을 지불한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서 18세기 말, 그것도 대혁명기의 근대적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단초를 엿보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정상의 순간에서 요하네스는 지극히 외로웠다. 이것 또한 그보다 앞선 천재들의 숙명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다. 이십대의 나이에 페르시아와 이집트, 인도(당시까지 알려진 세계의 전부)까지 정복하면서 모든 것을 이룬 청년 알렉산더가 결국 회의에 빠져 계속된 정복전쟁과 폭음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았던가. 글렌 굴드가 그랬던 것처럼 연주여행 대신 요하네스 역시 다른 것이 하고 싶었다. 그것은 오페라 작곡이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자 그는 보통의 연주자가 되고 말았다. 비범한 재능이 어떻게 소멸되는가에 대한 막상스 페르민식 고찰이라고나 할까.

 

여기까지가 천재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일반론이라면, 다음 무대는 보다 극적이다. 프랑스에 대적하는 반혁명전쟁 와중에 31세의 요하네스에게 징집통지서가 날아든다. 혁명과 전쟁은 요하네스 같은 예술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요하네스는 툴롱 포위전과 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에서 두각을 드러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지휘 아래 이탈리아 원정에 참가한다.

 

정말 놀라운 변신이 아니던가. 예술가에서 당시 유럽 최강이라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를 상대로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의 기치를 내세운 그랑 아르메의 일원으로 한니발 이래 알프스를 넘은 전설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페르민 작가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연주자 요하네스의 극적인 변신을 유도한 걸까?

 

그것은 자연스레 다음 무대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소설적 장치였다고 판단된다. 알프스를 넘은 나폴레옹 원정대는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천년 공화국 베네치아를 점령한다. 그리고 그 전에 벌어진 전투에서 요하네스를 치명상을 입고 전사의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는 검은 천사를 만난다. 검은색 그러니까 느와르는 요하네스 삶의 후반부를 장식하게 될 숙명이었다고나 할까.

 

부상당해 베네치아에 남게 된 요하네스는 그곳에 크레모아 출신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를 만난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는 말처럼, 소싯적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네스와 그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린 노장인 에라스무스의 만남은 새로운 서사의 진행을 위한 예비가 아니었을까.

 

요하네스가 자신의 오페라의 천상계의 목소리를 담고 싶어 했다면, 장인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에 그 소망을 이루고자 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지닌 천재들은 각자 다른 영역에서 인간 소망의 기쁨이라는 유사 이래 우리 인류가 추구해온 이상의 구현을 위해 돌진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천재적 열정에서 한 번 삐끗하면 광기로 추락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약관의 나이였던 에라스무스(르네상스 시대 최고 지식인의 이름과 같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베네치아 페렌치 공작의 주문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능가하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에 도전한다. 그것은 마치 신의 영역을 도전하는 미약한 피조물 인간의 부질없는 노력의 산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페렌치 공작의 딸이자 프리마돈나 카를라가 등장하게 되고, 점점 느와르로 채색되어 가던 서사는 비극으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검은 바이올린>은 탐미적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짧은 단락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이 지닌 흡입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강렬한 빛에서 출발해서 그라데이션이라는 삶의 과정을 통해 죽음을 상징하는 느와르(black)로 행진해 가는 서사가 보여주는 힘에 매료되어 버렸다. 에라스무스가 검은 바이올린을 만들어내는 순간에서는 메리 셸리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창조해내는 그 순간이 연상되기도 했다. 신의 영역인 창조에 도전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읽힐 수도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색채삼부작 가운데 두 번째인 <검은 바이올린>을 읽기 전에 마지막인 <꿀벌 키우는 사람>을 먼저 읽었는데, 과연 막상스 페르민은 색채의 주술사라고 평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룰 수 없는 꿈에서 우리를 끌어 내어 다시 현실 세계의 제 자리로 환원시키는 기술도 탁월했다. 환상과 꿈 그리고 광기라는 불협화음에 가까운 삼박자를 절묘하게 조율하면서 색채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그런 재주에 감탄할 수 밖에. 이제 색채 삼부작의 마지막 <>을 읽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1-27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군요. 저는 책 소개를 보고는 좀 취향이 아니다 싶어서 제쳐두었었는데 레삭매냐님때문에 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거 어떡하실거예요. 관심가는 책만 자꾸 늘어서 감당이 안돼....ㅠ.ㅠ

레삭매냐 2023-01-27 10:32   좋아요 2 | URL
그 또한 책읽기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의 콘텐츠에 대해 모
두가 같은 생각을 가진다
면 그 또한 이상한 현상
이 아닐까요 :>

물론 자신의 스타일과 맞
지 않을 순 있겠지만 한
번 도전해 볼만하지 싶습니다.

잠자냥 2023-01-27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 님은 별 다섯! ㅋㅋㅋ 전 어제 꿀벌 읽기 시작했다가 일단 내려놨습니다..........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3-01-27 11:14   좋아요 0 | URL
눈이 좀 그렇다 하셔서
눈은 일단 맨 끝으로 디밀어
놓았답니다.

왠지 색채 3부작 가운데
깜장 바이올린이 젤 갠춘
치 않나 싶네요.

미미 2023-01-27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렇게 써주시니 읽고 싶어지네요!!
검은 바이올린의 비극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합니다.
게다가 164페이지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니 그점도 매력^^*

레삭매냐 2023-01-27 11:20   좋아요 2 | URL
인스타에서 이 책에 대한
피드를 찾아 봤다가 첫줄
에 스포를 보고는 그만...

사실 엑기스는 에라스무스
아재의 서사에 담겨 있죠.
고거는 애써 리뷰에서 뺐습
니다. 너무 다 까면 그러니
깐요.

짧고 강렬한 소설이었습니다.
다만 여성의 객체화는 좀 불
편하지 않았나 싶네요.

자목련 2023-01-27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탐미적인 소설은 맞을 것 같아요. 별5이라니, <눈>을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네요^^

레삭매냐 2023-01-27 17:43   좋아요 0 | URL
<눈>은 지금 읽기 시작했답니다.
분량이 적어서 금방 다 읽지 않
을까 싶습니다.

라로 2023-01-29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은 뭔가요!! 색채 삼부작이라니,, 아~~~
매냐님 늘 넘사벽인 책들을 읽으시는 분!!
그런데도 읽고 싶게 만드시죠!!흑

레삭매냐 2023-01-29 16:37   좋아요 0 | URL
책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답니다.

쉽게쉽게 읽을 수 있지요.
<눈>과 <꿀벌 키우는 사람> 모두
읽긴 했는데 리뷰 쓰기가 쉽지 않
네요.
 
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초부터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읽는다. <세피아빛 초상>으로 워밍업을 한 다음, 작년 말에 사둔 <바다의 긴 꽃잎>도 내쳐 읽었다. 다음 주자는 <영혼의 집>이다. 이래서 책을 미리미리 사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구나 싶다. 이런 날들을 대비해서 미리 책들을 사둔 나를 칭찬한다.

 

책의 제목 <바다의 긴 꽃잎>은 소설의 두 번째 무대가 되는 칠레 국가를 상징한다. 북쪽으로는 아타카마 사막,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남쪽으로는 남극 그리고 서쪽에는 태평양 너른 바다가 버티고 있는 칠레는 라틴 아메리카의 섬 같은 나라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나라의 형상을 보면, ‘바다의 긴 꽃잎이라는 시적 표현이 바로 이해가 된다.

 

1938년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 노르테역에서 심장은 멎은 어린 병사 라사로를 주인공 빅토르 달마우가 살려내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것은 죽은 라사로를 살려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인가. 의대생 출신 빅토르는 음대 교수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와 교사 출신 어머니 카르메의 영향을 받아 공화군 진영에 서서 지난 3년 동안 현장에서 인턴으로 활동해왔다. 빅토르와 다른 기질의 동생 기옘은 처음부터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프랑코가 지휘하는 국민전선 반군과 맞서 싸웠다.

 

테루엘 전투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빅토르는 후방으로 이송된다. 테루엘 전투와 에브로 강 전투에서 패배한 공화군은 내전에서 지고 있었다. 아버지 마르셀은 죽기 전에 장남 빅토르에게 어머니 카르메와 동생과 동생의 연인 로세르 브루게라를 데리고 국민전선의 보복을 피해 해외로 망명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공화국은 모로코 출신 식민지 병사들을 앞세운 국민전선 일파의 만행을 선전했다. 하지만, 공화군 역시 거점 지역들이 국민전선 반란군에게 함락될 위기가 되면, 국민전선 포로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서로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이 벌인 비극의 현장이 바로 스페인 내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공화파 역시 프랑코 군대가 승리했을 때, 벌어질 보복을 예상하고 자진해서 망명길에 나섰다. 기옘은 전선에서 전사했고, 기옘의 아이를 가진 로세르는 추위와 기아를 딛고 노쇠한 시어머니 카르메와 함께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길에 나선다.

 

여기서 잠깐 스페인 내전의 실상에 대해 살펴 봐야할 점이 하나 있다. 작년말부터 읽기 시작한 앤토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에 따르면 1936년 초에 있었던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했더라도, 내전은 피할 수가 없었을 거라는 예상을 읽은 기억이 난다. 좌우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무력 충돌은 기정사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화국에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의 국민전선을 악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을 선으로 규정하는 단순한 이분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정든 고향 땅을 떠난 스페인 아니 카탈루냐 사람들인 로세르와 빅토르는 프랑스 땅에서 마침내 무사히 재회하는데 성공한다. 좌파라는 낙인을 찍힌 패배자들은 이웃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부에서도 말이다. 84년 전에도 여전히 난민이란 존재는 이방인이었고, 불청객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스페인 난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는데 그건 라틴 아메리카의 섬으로 불리는 바다의 긴 꽃잎인 칠레였다.

 

물론 칠레에서도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칠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파블로 네루다가 특별 영사로 등장해서 칠레에 필요한 이들만 선발하라는 본국의 훈령을 어기고 다수의 스페인 난민들을 받아 들였다. 그렇게 해서 선택받은 인원들은 위니펙호를 타고 대서양 바다를 건너 발파라이소 항구에 도착한다. 그나마 망명 스페인 사람들에게 유리했던 조건은 칠레 역시 같은 스페인어권 국가였다는 점이다. 오랜 타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언어가 얼마나 그 사회에 동화되는데 필요한 요소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 그전에 빅토르는 난민 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제수였던 로세르와 위장결혼을 한다. 의대 출신 청년이었던 빅토르는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칠레 사회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로세르 역시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서 초기에는 빅토르보다 더 달마우-브루게라 집안에 공헌한다.

 

소설의 두 번째 공간의 무대가 되는 칠레를 대표하는 집안으로 델 솔라르가 선택됐다. 가장 이시드로는 오로지 돈과 성공을 밝히는 전형적인 사업가로 등장한다. 도냐 라우라는 보수적인 칠레 가정을 수호하는 인물로 그리고 조력자이자 델 솔라르 집안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인디오 출신 후아나 낭쿠체오가 차례로 등장해서 서사를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집안의 장남 펠리페는 댄디 스타일의 청년으로 칠레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중에는 우파 진영으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딸 오펠리아는 위장결혼한 빅토르와 불장난을 벌이다가 파국적 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작가 이사벨 아옌데가 달마우 가족들을 칠레로 보내는 순간부터, 1973911일 선배 독재자 프랑코를 존경하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세계에서 최초로 선거 혁명으로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뒤엎은 쿠데타 시절에 과연 달마우 가족들의 생존기가 궁금해졌다. 더군다나 원래 조국이었던 스페인에서보다 칠레에서 보낸 시절이 더 많아진 빅토르 달마우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 버렸다. 어머니 카르메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달마우 가족은 재회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옌데의 체스 파트너일 정도로 전직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을 밀고한 사람은 바로 이웃집 여자였다. 그 결과, 예순의 나이에 가까운 빅토르 달마우는 군부에 의해 연행되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청년 시절에는 공화군 의사로 활동했던 빅토르가 노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잃고 수용소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로세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석방되고, 결국 다시 한 번 베네수엘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피노체트 군부 독재의 끝이 다가오면서 빅토르와 로세르는 칠레로 귀국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빅토르는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로세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때 가서는 진정한 사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남편이 심장전문 의사였지만, 정작 자기 아내의 병을 진단하지 못했다는 역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말기암으로 죽어가는 로세르가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세계사적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계속되는 간난신고를 이겨낸 빅토르와 로세르의 인생역경 서사의 빌드업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사벨 아옌데가 치밀하게 구상해서 한 방에 터뜨린 서사의 힘이 느껴졌다.

 

마지막에는 궁금해 하던 마지막 퍼즐(???)까지 맞춰주는 서비스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그렇지, 바로 이 맛에 우리가 소설 읽기를 끊지 못하는 거지.

 

빅토르와 로세르의 진보적 목소리만큼이나 그 대척점에 서 있던 이시드로/펠리페와 오펠리아의 보수적 입장에도 작가는 균형감을 발휘한다. 칠레 선거혁명 당시 모든 칠레 국민들이 인민연합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칭 입헌 군주주의자라는 펠리페 델 솔라르를 과거에서 온 혈거인이라고 풍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들 마르셀처럼 아예 정치하고는 담과 쌓고 산 이들도 많았다. 글을 아는 모든 이들은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교육 투사였던 카르메 여사의 불굴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몸으로 보여준 멋진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이사벨 아옌데가 <세피아빛 초상>에서 19세기 칠레 근대사를 다루었다면, 이번의 <바다의 긴 꽃잎>에서는 20세기 스페인과 칠레 현대사를 연결하는 서사시에 문학적 방점을 찍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빅토르, 로세르, 펠리페나 오펠리아 같은 캐릭터들이 모두 불세출의 영웅은 아니다. 그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삶과 욕망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한 치 앞의 미래조차 보이지 않던 순간을 살아낸 이들에 대해 이사벨 아옌데는 경의를 표한다.

 

<바다의 긴 꽃잎>은 나에게 여러 의미에서 참 멋지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새해 벽두에 만난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3-01-17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옌데 그 삼부작을 중고로 드뎌 다 모았습니다.
이젠 읽기만 하면 되네요.
고수님들이 다 칭찬을 하시는 작품이라 참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3-01-18 17:39   좋아요 1 | URL
오오 다 모으셨군요 !!!

전 아직 <운명의 딸>은 못 샀네요.

<영혼의 집>은 중고서점에서 잘
사서 쟁여 두고 있답니다.

독서괭 2023-01-23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리미리 사두신 선견지명을 칭찬합니다!ㅎㅎ 아옌데 쭉쭉 읽어나가시겠군요. 역사 배경을 좀 알고 읽으면 더 재미날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1-24 23:48   좋아요 2 | URL
연휴 대비, 아니 꼭 특정 시기를 대비하지 않으셔도 미리미리 사두셔서 연휴가 즐거우신 레삭매냐님을 칭찬해. ‘미리 책들을 사둔 나를 칭찬한다‘눈 레삭매냐님의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아져서 웃고 갑니다. ^^

얄라알라 2023-01-24 23:50   좋아요 2 | URL
칠레를 지도에서 보면 길쭉하다는 것만 알지, ˝바다의 긴 꽃잎˝이라니! 괭님 말씀처럼, 역사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도 있겠지만 큰 공부도 될 것 같습니다^^ 연휴 끝나가지 폭풍 책 욕심!

레삭매냐 2023-01-26 13:56   좋아요 2 | URL
아이고 연휴가 다 지나가서야
댓글을 달게 되네요.

너무 추버서 책도 제대로 못
읽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1-2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스페인에 빠지셨나보네요ㅎ

소설이 주는 감동, 서사의 힘. 이 맛에 소설읽기를 멈출 수가 없지요^^

레삭매냐 2023-01-26 13:57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그러합니다.

오래 전에 바르셀로나에
가보겠다고 티켓값 알아
보던 시절 생각이 문득
나네요 ^^

소설읽기, 심각한 중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