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초대 풍월주 '위화'를 중심으로, 마복칠성의 맏이 원종(법흥왕), 벽화 오도 옥진 등 여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역시 김정산!'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삶의 교훈'이라,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상의 가치를 갖는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권력의 흐름, 사랑, 좌절등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히 고승 '법화'를 주목해야 한다. 법화와 그의 제자들은 여러 일화를 돌아보고 의미를 논하는데, 마치 공자와 그의 제자를 보는 듯하다. (수상쩍은 부제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은 바로 이 점에서 정당화 된다.)

한 상황을 보자. 딸 벽화를 비처제에게 바쳤던 섬신은 그가 죽자, 지증제에게 다시 바치려고 한다. 벽화는 "저는 싫습니다. 당연히 싫지요. 이제는 저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색을 바쳐 지위를 사는 추하고 천박한 일을 제발 그만두었으면 좋겠어요!"(p.84)라 하지만 아버지의 엄명에 답답하기만 하다. 이에 오빠 위화는 '멋진 조언'(p.84,84 직접 읽어보시길.)을 해주고 벽화가 자신의 인생을 살게 돕는다. 나중에 법화와 위화는 대화를 나눈다. "이미 황실에 들어간 여인으로 황가에 색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어찌 한사코 이를 막았는가?" / "저는 오직 제 누이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 "하면 날이에서는(처음 벽화가 비처제에 바쳐질 때 살던 지역명)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 그때는 저도 보고 배운 바가 일천하여 세상 사는 묘리를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벽화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섬신과 위화는 같은 실수를 범했으나, 위화는 한 번 실수에 그쳤고 섬신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이처럼 사람은 같은 일을 겪고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다 다르고, 같은 구덩이에 빠졌지만 헤쳐 나오는 길도 제각각이다. 위화처럼 한 번 실수로 대오의 경지에 이른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열 냥을 얻은 셈이지만, 섬신처럼 꼭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다시 열냥을 잃는 격이다."(p.87) 이어 한 제자가 질문한다. "그럼 처음부터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의 셈은 어떻게 됩니까?" 벽화가 답하길, "평생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먼저 한 냥을 잃지도 않겠지만 뒤에 열 냥을 얻을 까닭도 없다."

목차만 보면,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단편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야기가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다. 예를 들어, [옳은 인생도 없고 그른 인생도 없다](p.203)는 오도의 두 딸(즉, 위화의 딸) 옥진과 금진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어지는 [먼저 겪은 일은 뒷일에 편견이 되기 쉽다](p.214)에선 옥진과 영실의 결혼이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고, [새옹지마](p.224)에선 옥진과 영실의 불화와 옥진을 취하는 원종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옥진 금진 -> 옥진 영실 -> 옥진 원종' 식으로 이어지는 것. 이런 절묘한 구성은 터키의 국민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와도 접점이 있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의 핵심인물 위화는 한평생 풍류를 즐기던 괘남아였다. 온 백성이 그를 사랑했고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오늘날로 따진다면 인기스타, 국민배우와 같지 않았을까? 그는 비처제에게 후궁으로 들어간 누이 벽화덕에 권력의 심층에 다가 간다. 그 후 마복칠성과 어울리며 승승장구하지만, 오도를 둘러싸고 원종의 질투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지소와 삼맥종(진흥왕), 옥진과 비대가 차기 왕위다툼을 벌이자, 자기 딸이 아닌 지소를 지지하는 놀라운 모습(p.281)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삼맥종을 섭정한 지소태후는 위화를 우두머리 삼아 화랑제도의 기틀을 만든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명작중의 명작 <삼한지>의 감동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역사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김정산 작가님을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정말 멋진 작품.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이란 부제는 후속편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후속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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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9-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사 시름잊고 싶을때 역사속으로 빠져들어 위화의 풍류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여전히 건재하신 쥬베이님!

쥬베이 2008-09-16 22:59   좋아요 0 | URL
우와 칼리님!! 오래간만이에요^^
추석은 잘 보내셨죠? 이 책 강추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