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아이들은 죽었고 피의자 보모 루이즈는 자해 후 병원에 누워 있다. 여성 경감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었고 루이즈 대신 현장검증에 설 예정이다. 피의자의 마음 속, 그 의도를 들여다 보려 애쓰는 경감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역자 후기에서도 '나는 루이즈를 모른다' 라는 솔직한 문장이 놓여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 검게 굳은 심장의 여인을.

 

소설 내내 바쁘게 '미래를 계획하는' 미리암과 폴 부부 대신 루이즈는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내몰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루이즈. 그녀가 딱히 미리암의 처지를, 옛 자신의 고용주들의 집과 가정을 시기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바쁘게 매일 갈 곳과 자신을 기다릴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 살뜰한 보살핌 뒤에 반짝이는 집안의 모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늙어갔다. 아당의 동생을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이유를 만들기 보다는 다른 새 가정에서 새로운 아이 돌봄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종결'을 향해 걷는다. 이제 은퇴를 생각하는 키 작은 남자, 루이즈에겐 성에 차지 않는 남자를 소개 받아서 꾸역꾸역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밤엔 넋을 놓고 가게 윈도우를 구경하며 한없이 걷고, 다른 보모들 (주로 프랑스인이 아닌 유색 외국인들)과는 말을 섞지 않고 '가르치려 드는' 에너지도 서서히 잃어가는 루이즈. 아이들을 해하고 나서 그녀 자신도 정말 죽으려 했을까. 루이즈가 정말 미워한 대상은 누굴까. 끈적한 빗바람을 맞으며 읽자니 갑갑하기도 하다. 빨래도 안마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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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23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시나요?

유부만두 2018-08-23 08:0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추리 스릴러 쪽도 아니고요, 좀 애매해요.
 

아치디, 에서도 첫 문장의 엘레인에서도, 나는 화자의 성별과 국적 그리고 언어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었다. 조금씩 그가 한국인이 아님은 물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브라질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찰흙이나 지점토를 빚어서 만들듯 조금씩 상상의 얼굴을 만들...다가 말았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 아치디라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하민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민은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권여선 작가의 '이모' 생각도 났고, 속없이 고생만 했다던 먼 친척 고모님 댁 큰언니 같기도 했다. 다들 떠나는 방식은 달랐고 살아내는 식도 달랐지만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랄도,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이런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를 여러 겹의 언어와 시간, 더해서 국적을 바꿔 포장해 놓은 것을 읽으려니 피곤하다. 최은영 작가의 전작 '한지와 영주'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인가. 왜 이 나이 먹도록 젊은 작가와 그들의 젊은, 너무나 어리고 풋풋한 이야기에 이리 매달려 집착하는가. 아치디에서, 먼 이국에서 다른 언어로 지내다 보면 인생의 고민은 매듭을 풀고 새로운 삶을 살아낼 용기와 기회가 생긴다고, 그 때는 믿었었지. 만. 위안을 얻지 못하고 책을 덮는 내 늙은 마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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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0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엌 이야기보다 지루했다. 개인마다 소품과 인테리어가 조금씩 달랐지만 한번에 모아 보려니 특이한 개성이 눈에 덜 띄고 각 집의 전체 분위기를 느낄만한 큰 아웃라인이 없는 게 아쉬웠다. 아, 우리집은 청소부터 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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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23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서 언뜻 보이는 모습과, 예전에 보았던 유부만두의 집과, 평소 유부만두의 성격으로 보면 집이 아주 깔끔할 듯.

유부만두 2018-08-23 08:04   좋아요 0 | URL
언니님...... 예전에도 언니 오실 적엔 대청소하고 맞았다우~
 

소설 시작에 펼쳐진 살인 현장이 중반을 넘도록 계속 떠오른다. 이 비극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까. 완벽하다고 표현한 루이자의 첫날, 그녀의 짙은 화장은 백인 피부와 작은 체구에 덜 눈에 띄었을까. 68세대 부모의 교육으로 폴은 루이자에게 주인 행세를 안 한, 아니 어쩌면 너무 했을까. 이토록 불안한 여자, 하지만 제대로 자신의 처지를 꾸밀 악의(!)도 지능도 없는 이 여자가 ‘덤으로’ 해주는 집안일에 미리암은 경계심을 풀었을까. 경제 차이, 교육 차이, 인종 차이를 조금씩 비틀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래도 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공포와 불안함을 묘사하는 방식은 산만하다. 그만큼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 혹은 동정을 주고싶지 않았다. 아이가 죽었는데... 이제 루이자의 기이함이 극에 달하는 ‘닭뼈’ 장면이 나온다. 아 무서워. 책에 자주 나오는 무화과를 하나 씻어 껍질까지 먹었다.

‘나의 빛나는 친구’ 에서 처럼 ‘사랑’으로 포장했지만 아이들은 이 소설에서 어른들의 갈등을 위해 용이한 장치로만 쓰인다. 경단녀 엄마 미리암의 좌절도 루이자의 극도의 고독도 피상적이다. 프랑스 보육시스템을 칭송한 목수정 작가 책( 이 소설과는 영 다른 ‘완벽한’ 프랑스 이야기를 한다)과 아이를 구한 불법체류자 청년이 프랑스 영주권을 받은 뉴스가 생각났다. 성경 속의 미리암이 얼마나 슬기롭게 죽을뻔한 동생 모세를 위해 친어머니를 보모로 추천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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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시작하려던 책을 덮고 밤산책을 나섰다. 시원한 바람은 달콤하고 조금 불안했다. 매미 비명 대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막내 손을 잡고 걸었다. 동네 저쪽 편의점까지.

아침엔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불 빨래를 해 널고 카페로 나와 책을 펼쳤다. 아.... 첫 쪽부터 화창한 내 기분은 와장창 .... 피범벅 ... 아이가 죽는 소설 정말 싫다. 달콤하지 않고 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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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1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게
되는 그런 책이더라구요.

유부만두 2018-08-18 22:29   좋아요 0 | URL
첫 장면 부터 잔인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저자가 욕심을 부려서 많은 점을 파고들면서 직설적으로 빠르게 이야기를 펼칩니다. 마구 달린다는 느낌도 들어요.

목나무 2018-08-1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표지와는 영~ 다른 분의기의 소설이지만 한 여자의 처절한 고독에는 저도 모르게 공감이 가더라구요.

유부만두 2018-08-18 22:30   좋아요 0 | URL
고독에 공감을 하셨군요. 전 육아를 둘러싼 겉 다르고 속 다른 현실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무섭고....괴로운 소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