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마리앤과 코넬의 사랑과 갈등을 따라가는 성장기 소설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두 사람이 주저하고 오해하면서 여러번 비켜나가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그러다 이런 저런 사건에서 서로를 보듬지만 그래도 못 내어 보이는 자신의 속내, "난 이상한 사람이야. 난 노멀 하지 않아" 라는 생각을 계속 품고 있다. 그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각자의 틀, 혹은 경제적 족쇄나 가정폭력 트라우마를 서로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고 독자의 복장도 터지고.


마리앤의 자기 학대적 성향과 그것이 발현되는 상황이 너무나 위험해서 화가 났다. 이 아이는 왜 이런 식으로만 도망가는 건가. 인터넷 시대에! 너 N번방이라는 거 모르지? 얘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코넬의 자기 비하 역시 짜증이 난다. 그냥 말을 해, 자식아! 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약점만 파고들어 더 나쁜 결과로만 향하는지. 하지만..... 읽으면서 실은 나도 그렇다, 고 깨달았다. 나 역시 불확실한 매일 매일의 상황에서 타인들, 노멀 피플과 다른 나 자신이 부끄럽고 싫다. 나의 진짜 모습이 들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나이 먹도록. 그런데, 뭐가 노멀, 보통, 정상인가요?


두 아이의 가정 환경이 전형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점 (폭력적 부잣집, 사랑 넘치는 싱글맘) 이나 성적인 모험을 감행하는 마리앤, 과묵한 청년 코넬, 모두 클리셰 투성이다. 쉬는 시간에 프루스트를 읽는 여고생이라니, 남몰래 혼자 소설을 쓰는 남학생까지. 결말도 그렇고 마리앤은 끝까지 주체적이지 못하다. 그래도 덤덤하게 상황과 인물을 그려내는 문장과 이야기 서술 만큼은 인물들 보다 솔직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작가 샐리 루니를 칭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랑스와즈 사강이나 샐린저에 비하기도 한다고. 10월에 발표될 올해의 부커상 후보작. bbc에서 드라마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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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니우스: 평민들이 그자의 속셈을 알았으면 좋겠군요.

             자신이 바라는 걸 평민들이 줄 수 있다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오. 멸시하면서도

             그들의 표를 얻길 바라는 속셈이지요. (22)

 

 

코리올라누스: 어머니, 용기를 내세요.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만약 어머니가 헤라클레스의 아내였다면

                열두 가지 난제 가운데 여섯 가지를 도와서

                남편의 수고를 덜어 주었을 거라고..... (41)

 

 

하인1: 나로 말하자면 전쟁이 터지는 게 더 좋아

        평화가 밤이라면 전쟁은 낮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밤보다 낮이 더 좋듯이 평화보다 전쟁이 더 좋아.

        전쟁은 사냥개처럼 달리고, 시끄럽고,

        피냄새가 진동하게 만들어. 반명 평화가 오면

        마비가 오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멍청이가 되고 벙어리가 되고 무감각해져. (45)

 

 

아우피디우스: 권력자들은 쉽게 권력에 취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자화자찬하면서, 공적으로

                드러내면 이는 곧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야.

                하나의 불이 다른 불을 몰아내고

                영예와 권력은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야.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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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는 평민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제도가 있었다. 귀족 출신 맹장으로 여러번 로마를 구하고 코리올리를 정복한 후엔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마르쿠스는 집정관이 되기 전에 평민들의 동의를 얻어야했다. 그는 평민들을 멸시했지만 이 단순한 통과의례를 누더기를 입고 해낸다.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나가 어묵을 열심히 먹는 금수저 후보들이 떠오르고) 하지만 호민관들의 설득에 돌아선 평민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실은 그 개인 뿐 아니라 귀족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현실의 고달픔 때문이다. 평민에 대한 코리올라누스의 적의는 노골적이다. 귀족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맹장은 추방당한다. 그리고 적이었던 아우피디우스와 손을 잡고 로마를 향해 칼을 간다. 하지만 아우피디우스와 코리올라누스 사이에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로마 진격을 앞둔 문턱에서 코리올라누스는 옛 귀족 친구, 옛 상관, 어머니와 부인, 어린 아들을 차례로 만난다. (어머니와 부인이 매달리며, 널 낳아준 로마와 어머니의 자궁 어쩌고 운운) 그리고 그의 결정은... 그의 또 다른 파멸, 이번엔 복수나 재기가 없는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이 희곡이 놀라운 것은 기원전 5세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로마의 공화정을 17세기 초의 영국 극작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품 배경엔 당시 제임스1세와 의회의 갈등이 있다.) 비록 평민들과 호민관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고 평민들의 판단력이나 지력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지만 능력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천하의 맹장 코리올라누스를 로마에서 내쫓았다.


그의 어머니 볼룸니아, 자존심과 오만함의 그녀는 독하고 강한 말로 아들을 휘두른다. 그녀는 자신, 가문, 로마의 명예를 최우선에 두고 그 목적을 위한 그녀의 '말 잘 듣고 명예로운 아들'을 갖고 싶어한다. 자기편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코리올라누스, 그에게 위기는 늘 급작스럽게 닥쳐 그가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를 잡아먹어버리고 만다. '배신자'라는 말에 뒤집어지는 사람, 하지만 자신이 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전형적인 영웅.


요즘 보는 삼국지 드라마의 호걸들도 겹치는 캐릭터다. 칼과 자신, 그리고 이름이 중요한 사람. 주군을 바꿀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코리올라누스. 


NT live의 톰 히들스턴은 이 인물을 아주 멋지고 역동적이며 승질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지만 속정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희곡과는 매우 다른 그의 죽음. 순교자 처럼 매달린 그의 시신 주위에는 조용한 찬송가 풍의 노래가 흐른다. 웰컴, 웰컴. 코리올라누스, 코리올리의 정복자 영웅은 이제 죽어서야 고향 로마에서 환영 받는다. (희곡에선 죽었지만 NT 공연으로 부활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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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마 책을 읽다보면 기원전 수세기에 저런 제도와 문화를 만든 이 로마와 로마인은 뭔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돼요@_@;;; 게다가 이천몇백년 전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셰익스피어@_@;;;
톰 히들스턴 멋져요♡(로 마무리^^;;)

유부만두 2020-06-12 12:38   좋아요 0 | URL
그쵸?!!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 흘려 들었던 로마의 정치제도가 새삼 놀라워요. 이천몇백년 전에 이미 다 해놨더라고요?! 그러고도 망했으니 더 씁쓸한건가요, 아니면 인간에겐 희망은 없는 걸까요. 셰익스피어의 간간이 씁쓸한 유머도 들어간 이 희곡은 톰 히들스턴이 화려하게 살려냈어요. 하지만 좀 과한 느낌도 있고요. 코리올리누스가 멋져보인다는 단점이 ....
저 이참에 로마사를 읽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참고로 삼국지 드라마는 2/3 정도 진행중이에요. 유비가 황충을 얻었어요.
 

남자 화가들이 그린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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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reads에서 소개글을 읽고 궁금했던 만화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검색하면 함께 뜨지는 않지만 영어판을 먼저 알게 되었는데 저자 부부가 부산에 살고 있다니 영어판과 우리말 책을 함께 작업했을지도 모르겠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임꺽정>(홍명희),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공산당 선언>(마르크스, 엥겔스), <영혼의 죽음>(사르트르) 등 지금은 '고전'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금지됐던 책들과 故김대중 대통령의 글을 '비밀 독서 동아리'에서 함께 읽으며 세상에 맞선다.  (책 소개글)


80년대 대학에서 금서를 읽었다니 나보다 윗 연배의 저자다. 하지만 미리보기로 본 첫 챕터의 장면은 낯설지 않다. 대학 등교 첫날, 교문에서 한참이나 먼 정류장에서 버스는 막혔고 어색한 구두에 교양국어책을 껴안고 (표지의 그림처럼) 언덕을 걸어서 학교로 향했다. 투구와 방패를 갖춘 전경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생해서 강의실에 갔더니 당연히 휴강이었고. 학교 정문쪽에서 시위대와 전경이 충돌해서 학교 안으로도 전경들이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학교 선배들이 알려주는 뒷문 쪽으로 나와서 집에 갔다. 발뒷꿈치가 빨갛게 까졌고 맵싸한 최루탄 냄새는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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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06-09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국에서 뉴스보면서 옛날 대학때 생각이 많이 났는데...미국은 어찌 되려는지 ㅜㅜ

유부만두 2020-06-10 15:29   좋아요 0 | URL
미국 뉴스를 접하면 온갖 생각이 다 들어요. 달라질까, 과연, 하지만 어떻게?
아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 가늠하기가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