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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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이게 뭐야?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이제 '카프카를 읽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이란 아직 읽지 않았다고 해서 비굴해질 것이 아니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읽고 나면 그 순간부터 그것을 읽은 사람과 똑같아 지기 때문이다. -138-139쪽

소설 집필이라는 작업은 어찌 보면 마라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거리 달리기의 반복이다. 지속 가능하도록 힘을 조절하며 써나가도 긴장감 있는 작품이 되기 힘들다. 숨쉬는 것도 잊을 만큼 집중해서 도전했다가 쉬고 또다시 도전했다가 쉰다. 그런 반복만이 진정으로 작품을 연마하여 충실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작가가 그렇기 때문에, 독자 역시 읽다가 지쳤을 때는 당연히 책을 덮어야 한다. 억지로 읽으려고 해봤자 절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기는커녕, 피로와 불쾌감은 내용 자체를 왜곡시켜버릴 것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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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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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문에 루쉰의 미술적 재능과 예술론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래서 초반부를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이 책은 그의 대단한 그림 실력이나 대단한 예술론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늦잠을 자느라 학교에 지각하고 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면서 책상에 이를 조早를 칼로 새겨넣는 학생의 머리통이 있었다.  

1920-30년대에는 중국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의 조언을 위해 중국의 옛 문 모양, 손오공의 몽둥이, 무인들의 화창을 원고지나 편지글 한켠에 빠른 펜으로 그려 넣어 설명하는 중국 소설의 애호가가 있었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연인에게 멍청한 간식이나 건네는 숫기없는 청년이 서 있다.  

유럽의 목판화나 삽화 도안들을 섬세하게 베껴내어 수채화로 색을 입혀 수집하던 그는, 아름다운 책을 '중국인들을 위해서' 만들고자 했다. 새로운 시대에서 군중들을 이끈다는 자의식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의 자의식이 별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좋은 러시아나 독일의 소설을 꼼꼼히 번역하여 중국의 독자들과 나누길 원했고, 좌익 문인들의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는 없는 죄를 만들어 무고한 이를 법의 테두리에 가둘 리 없다. (234)'고 하면서 자신의 '한가함에 대한 글'을 설명했다.  우리 역사 못지 않게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그는 책을 만들 때면, 값을 낮추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자 했고, 강렬하면서 간단한 표지를 선호했고, 목판화의 소개를 위해 체홉의 소설을 이용할만큼 융통성도 있었다. 그림이나 글 어느 하나가 우월한 위치에 있기 보다는 책으로 묶여 독자를 만날 때면 하나로 녹아 조화를 이루게 했다.  

그의 책들이 금서가 되고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금지된 제목인 '위자유서'는 라틴어로 표기하고 그 아래 '불삼불사서'(不三不四書 - 얼토당토않는 글이라는 비판)라고 써서 책을 묶어내기도한, 그는 대인배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답답한 외침' 과 '한담'들을 미리 알지 못해 겉표지 도안으로만으로 만나면서도 그의 짧은 인생(56세에 병사했다)동안 남은 숱한 글에대해 존경이 샘솟게 된다. 이래서, 책은 표지로도 판단하게 되는가보다. 그의 순한듯, 하지만 뼈있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달이 밝고 바람이 맑으니 이렇게 좋은 밤이 또 어디 있을까?" 좋다. 우아한 풍류의 극치이니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하지만 역시 풍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달은 어두워 사람들의 밤을 죽이고, 바람은 높아 하늘에 불을 지르네"라고 노래한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다? 역시 한 수의 고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풍월을 논하는 것도 결국은 혼란을 얘기하려는 것이지만, 결코 '살인과 방화'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풍월을 많이 얘기한다'는 것을 '국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분명한 오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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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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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 하지만 아이들 눈으로 보기엔 그저 덤덤한 하루 하루.  

육이오 동란 후, 아이들은 어른들 눈치를 보며, 가난한 날들을 산다. 여름이면 피난길 가에서 썩어나가는 시체들 냄새에 찡그리면서도,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동산을 뛰논다. 그 아이들 눈에 상이군인들, 식구를 잃고 넋을 놓아버린 사람들, 부모를 잃고 서로 기대 사는 어린 남매들이 들어온다. 해석하지 않고 그들의 힘겨운 삶을 그대로 풀어놓기에 '몽실언니' 만큼이나 애절하고 처절하지만 매끄러운 문장이라 읽기엔 더 수월하다. 

하지만 내 아이는 이렇게 힘든 세월이 불과 육십 년 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다. 어떻게 이렇게 불쌍하게 살 수가 있는거냐고, 묻는다. 지금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힘든 삶들이 널렸는데. 온실 속 화초라 그런지 저 녀석은 너무 속이 편한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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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노트 에버그린북스 1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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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단지 우리가 어리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결정과 열정을 다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얼까, 집을 나가서 우리 힘으로 살아 내는 것, 아니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 ...너무 다른 두 소년 다니엘과 자크는 '데미안' 의 듀오 만큼이나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힘겨운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이 빠리지안 소년들, 그들의 불행한 가정사, 다니엘 어머니의 결단을 그려내는 묘사는 더 생생하고, 우아하다. 이제 나는 소년들의 입장이 아닌 그 어머니의 입장에서 읽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 나도 일기장에 이들 처럼 터져나오는 순수와 열정의 단어들을 적어내려 가기도 했었는데!  

그렇게도 젊은 너, 오오, 사랑하는 벗이여, 그렇게도 젊은 너에게 인생을 저주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잘못된 생각이다. 뭐라고? 너의 넋은 지상에 얽매여 있다고? 공부하라! 희망을 가지라! 사랑하라! 독서하라! (84)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을 선언할 것! (106)

두발을 현실에서 십오 센티미터 쯤 떨어진 곳에다 놓고 이 세상의 모든 거짓과 더러움을 나 혼자만 꿰뚫어 본다는 착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더랬다. 마르세이유와 바닷가 벼랑을 걷는 두 소년을 따라가다 보면, 젊은 날의 추억 말고도 지금 내가 살아내는 오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을 책 한 쪽에서 힘있게 버무려 보여주는 건, 역시나 대작가의 힘이겠지. 

다시 한 번, 격동의 사춘기가 이미 지나갔음에 감사하고, 내 아들이 지낼 그 끔찍한 시간에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래서인지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다니엘과 그 어머니의 재회였다. 

 다니엘은 빵을 다시 내려 놓았다. 눈을 여전히 내리깐 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학교에선 어머니께 뭐라고 했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어!"
다니엘의 이마가 마침내 펴졌다. 그는 눈을 들어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확실히 신뢰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묻고 있었으며 자신의 신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시선이었다. (145)

적잖이 놀라운 반전이 있는 마지막 쪽을 읽으면서, 역시나 시리즈물인 <티보가의 사람들>을 마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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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품절


나를 빼먹은 잔치에 삐쳐서
삐친 고집으로 숲속에서
앙심먹고 타죽었다고들 하는데
돌아가며 벼슬자리나 나눠 먹는
그런 잔치에 섞이고 싶지 않았을 뿐
내 겪은 당당한 세월을 무엇으로도
맞바꾸고 싶지 않았을뿐
결코 삐치거나 앙심먹은 일은 없다
비록 불길에 휩싸여 숯이 되어 식어버렸지만
이 세상에 맞바꿀 수 없는 것들을
손가락질로 숨 막히는 불길로
몸부림으로도 다 태우지 못한 것들을
한 그릇 식은 밥과 해마다 맞바꾸잔 말이냐
맞바꾸다 맞바꾸다 식어버린 세상일들이
식은 밥보다 더 꺽정스럽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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