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혼자서 외롭게. 할머니의 딸이 급하게 달려와서 빈소를 차리고 트럭 운전 일을 하는 막내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막내는 시골의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만난다.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고양이들도. 고양이들은 '은혜를 모르면 그게 인간이지 짐승이냐'며 할머니 생전에 입은 은혜를 아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한다. 그중 한 고양이인 '에옹이'의 시점으로 쓰여진 할머니와의 인연, 그리고 힘든 고양이의 삶 이야기가 이어진다. 길고양이로 태어나 엄마 고양이를 잃고 개울 건너의 이웃 고양이의 입양으로 함께 고생하다 할머니에게 구조되어 어느 자매를 집사로 거느리게 된 행운의 에옹이. 동네 고양이들이 모두 '짐승의 시간' 축시에 모여 인시에 열리는 '호랑이의 길'을 따라 빈소에 간다.

 

 

귀엽고 따뜻한 그림의 '어린이 책'으로 분류되지만 이 책은 꽤 어둡다. 막내가 어린이가 아니라 당황했다. 전쟁 후유증을 겪다 자살한 아버지, 힘들게 삼남매를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 사후 재산이며 집을 빼앗고 내쳐버린 친가의 큰아버지, 독하게 공부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더이상 연락이 없는 큰 아들, 이혼후 자녀들을 키우느라 고생하는 딸,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밤길에 위험한 장거리 트럭 운전을 하는 막내. 썰렁한 시골 마을의 묘지 아래에서 혼자 살다 가신 어머니. 밝은 그림과 대조적으로 사연들은 어둡고 춥다. 이런 사연들이 포장되지 않고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있다. 

 

매정한 세상에서 돈과 성공을 가족보다 우선으로 여기는 인간들. 이 험한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낸 할머니도 길고양이였는지 모른다. 다치고 멸시 당하지만 내 새끼 뿐 아니라 다른 고양이의 새끼도 챙기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보다 나은 은혜 갚는 고양이'. 할머니의 빈소에서 막내와 누나는 어린시절을, 어머니의 사랑을 추억한다. 그리고 '잠시 쉬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새삼 깨닫는다. 삼일장이니 날이 밝으면 장례를 치르고 막내와 누나는 각자의 팍팍한 삶으로 돌아가겠지. 사는 중간 중간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따뜻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

 

여행에서 만난 길고양이들 사진 몇장

 

얘들은 박물관 고양이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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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1-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혜를 모르면 그게 인간이지 짐승이냐‘에서 고개를 숙입니다ㅠㅠ;

유부만두 2018-01-22 11:43   좋아요 0 | URL
은혜를 아는 짐....아니, 사람이 됩시다. 우린. ^^

라로 2018-01-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은혜를 모르면 인간이지 짐승이냐니,,어쩜 그런 문장을 생각해 낼수가요!!!ㅠㅠ
근데,,,대만 고양이뒤에 한자는 대두미인 인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1-23 07:12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 뱃살이 많으면 미인인거죠!
좋은말~

psyche 2018-01-22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고양이 키우고 싶.....

유부만두 2018-01-23 07:12   좋아요 0 | URL
언니님, 제 맘도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