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장면부터 심야에 월담하고 활극도 마다 않는 여인이, 심지어 소복차림!이라 이하늬 주연 드라마 ˝밤에 피는 꽃˝ 생각도 나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조선시대 여성 주인공에 무당 동생이 나와서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도 떠오른다. 그런데 이 둘 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여성 시체를 검시하던 비정규 인력, 산파를 하며 범죄의 흔적과 증거를 찾고 추리하는 젊은 여성 아란. 그녀가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칼을 가는 상황과 연쇄 살인극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하루를 함께 뛰었더니 어깨도 아프고 등 뒤가 서늘하기도 하다. 아란 주위에 이런 저런 남성 인물들도 많이 나오지만 특히 그녀의 의붓 언니인 연희가 흥미롭... 아니, 낯익다.˝이렇게 쌓아놓으면 무슨 책이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해?˝˝당연하지. 그게 혼돈처럼 보여도 사실 나름의 규칙이 있거든.˝ (255)˝이제껏 나한테 들어온 혼담 말이야. 부친이 왜 끊어내신 건지 알아? 내가 어디 내놓기에 창피한 딸이라서 그래. 종일 별당에 처박혀 서책만 읽으니까.˝ (258)서책에게 제 방을 내어준 연희는 제 한 몸 누일 곳만 겨우 마련했고, 방 안의 온도와 습도도 자기 몸이 아닌 서책에 맞춰 살았다. (339)연희는 심지어 책만 쌓아두는 개인용 서고를 집 밖에 만들어 두었다. 연희는 검시 기록과 범죄 수사물을 주석을 달아가며 필사해 동생을 가르치고 읽는다. 이런 연희가 동생을 위해 책을 던진다. (어흑) 소설 마지막엔 연희가 드디어 집 밖으로 나가 그간 쌓아왔던 (덕후에 가까운 범죄 관련) 지식을 펼칠 기회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