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6년(1406), 조선의 기틀은 아직 마련되는 중이라 어수선하고 두 차례나 왕자들끼리의 피바람으로 보위에 오른 왕은 정당성에 집착하고 있다. 조강지처인 원경왕후는 친정 식구들이 숙청된 후 교태전에서 가택연금 상태이다. 억울하게 죽은 신덕왕후의 원한이 서려있는 궁 안은 새나라의 기운 보다는 삶과 죽음 사이의 긴장감이 팽배하다. 이런 궁에 열 살이 채 되지 않아 들어온 생각시와 궁녀들은 보고 들은 것을 삼키며 인생을 궁 안에서 그저 웃전을 모시며, 그러다 어쩌면 승은을 입기도 하고, 죽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 그들은 깊은 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모여 앉아 자기들끼리 궁내에 떠도는, 실제로 보았던 적이 있던가 없던가 기괴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자리에는 그들 또래 (열세 살) 경안공주도 스스럼 없는 자태로 (다리를 쩍 벌리고) 함께 하여 괴담/기담을 듣고 또 들려준다.
그 첫 이야기는 그야말로 엄청난데 바로 궁궐 터가 '도깨비 집'이었다는 것. 이어지는 기담은 표면적으로는 괴물이나 기이한 생명체, 원혼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어수선한 궁궐 내의 권력 관계를 빗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공주도 후궁들도 그 기담 모임이나 소문의 흐름을 통제하지는 못한다. 소문은 그 자체로 기이한 괴물이 되어 궁 안을 휘젓고 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기담을 나눈다는 것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번엔 기담을 말하고 듣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청자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하여 기담은 힘을 얻고 괴생명체는 이야기의 경계를 찢고 현실로 나온다. 이미 현실은 이야기 만큼이나 폭력적이고 괴이한 나날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함께 듣고 나누는 십대 소녀들은 뒷간에 가기가, 우물가에 가기가, 고인 물에 어린 달을 쳐다보기가, 미래를 상상하기가 두렵다. 이들을 묶어주는 공포는 여고괴담 분위기이기도 한데 이는 저자도 후기에 적어두었다. 재미있었다. 나는 이야기의 이쪽 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쩍 저쪽 편을 더 들여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