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썼다. 한 고독한 노년 여성과 한 고독한 소녀 사이에 오간 마음의 교류에 대하여, 그렇게 만들어진 소소하고 진실된 가치관에 대해서, 차밍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에세이다." 


하루키 신작의 그 소녀, 열여섯에 만나 열일곱을 채 보지 못한 그 '그림자' 소녀는 고독한 소녀와 노인의 우정에 대해서 글을 쓰고 상을 받았다. 


딸을 먼저 보내고 외손녀의 방문으로 잠시 활기를 얻는 그 소녀의 할머니는 고독하게 산다. 자신의 '가족'과는 속내를 나누지 못하는 이 소녀는 외할머니에게서 자신의 고독을 알아보았겠지. 그러나 그 교류와 차밍한 에세이는 오래 가지는 못한다. 그들의 관계는 계속 지금 여기에 없는 것, 없는 사람, 진짜를 상기시킨다.


소녀만큼 소년도 일상에서 고독한 존재다. 평범한 부모와 함께 외동으로 성장했다. 그가 '마음의 교류'를 하는 상대는 집에서 키우는 나이든 검은 고양이. (하지만 그것도 진심은 아닌것 같지. 고양이 이야기가 다시 안나오는걸 보면) 소년은 학교에서도 혼자서 책읽기에 몰두한다. 


"학교에서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소는 도서실이다.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고 공상하며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읽고 싶은 책은 대부분 학교 도서실에서 독파했다." 


소년의 세계는 도서실 안, 책과 함께 있다. 소년은 공상하며 현실에서 멀어진다. 고독한 소년과 소녀가 만났다. 이제 소년은 소녀와 "그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노트에 꼼꼼하게 디테일을 적는다. 그들은 '저 멀리 다른 세계'를 단단한 8미터 성벽을 둘러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세계는 그들에게만 존재하며 지금 여기의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 연결이 계속되지 못해서 비극은 시작되고 이 소설은 길어진다. 


여기 아닌 저기에 대한 책벌레 소년 이야기는 제발트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나는 그때까지 웨일스의 성경과 설교에 갇혀 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사방에서 다른 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나는 제멋대로 수집된 학교 도서관이 제공해 주는 모든 책을 읽었고, [...] 내 머릿속에는 점점 더 일종의 이상적인 풍경이 생겨났는데, [...] 나는 아무 때라도, 라틴어 시간이든 예배 시간이든 혹은 끝없는 주말이든 이 세계 속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에 [...] 많은 아이들이 시달린 절망감에 전혀 빠지지 않았어요."


머릿속에 이상세계를 만들어 두고 그곳으로 대피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었던 소년의 처지를 상상해본다. 오전에 벌써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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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05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 저 이제 시작햇는데 저는 아 둘이 노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이던걸요. 아 저도 도서관 좋아했는데 왜 저는 이런 연애를 못해봤을까 한탄하면서 보고 있어요. ㅎㅎ

유부만두 2023-10-06 09:00   좋아요 1 | URL
작가 시점이 남자 주인공이라 여자 아이에게 끌려가는 인상이었어요. 책임을 다 여자 아이에게 넘기고요. 아 이러니까 열일곱 때 만난 아이를 마흔 넘어서도 그리워하는구나 싶고 좀 징그러웠어요. 책은 천천히 읽으시는 게 나을거에요. 급하게 읽으면 저처럼 ... ㅎㅎㅎ

단발머리 2023-10-05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읽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기다려 보세요, 곧 대파가 나온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6 09:00   좋아요 2 | URL
대파 나오고요, 3부에는 보정속옷 나옵니다.

바람돌이 2023-10-06 09:09   좋아요 1 | URL
대파???? 보정속옷????
뭔가 쌔는 기분인데 아무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