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을 맡은 친근한 얼굴 폴 러드의 코믹 시리즈물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이야기다. 나는 세포의 총합, 혹은 기억의 주체성, 그도 아니라면? 나는 둘이나 그 이상일 수 있을까, 클론이 생긴다면 나/그/너가 진짜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지? 심지어 그 클론이 더 '나은' 나/그/너 자신이라면. (여기서 궁금하시다면, 아니 폴 러드의 팬이시라면 넷플릭스로 가십쇼. 그런데 금요일 밤에 가시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아직 목요일입니다. 버텨!) 


얼마전 읽은 <30일의 밤>도 비슷한 문제를 다룬다. 여러 멀티버스의 '나' 들이 서로 어느 특정한 인생/우주를 차지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진짜 '나'인가. 


나는 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안 청소를 해줄 나, 고등학생 아이의 짜증을 듣고 화내지 않을 나, 훌쩍 집을 나서 기차에 오를 나, 철학 책(가령 푸코 라든가?)을 읽고 서재 친구들의 어려운 글에 댓을 멋지게 달 나, 어려운 문학 책(가령 골드문트님과 잠자냥님이 올리는 책리뷰들 라든가?)에 아, 저도 읽었는데요, 라면서 댓을 달 나, 를 상상해 본다. 다 진짜 나라면 할 수 없을 일들.   


나라는 정체성에는 얼굴과 머리, 특히 뇌가 열쇠를 (아니라면 자물쇠를) 쥐고 있다. 2킬로그램이 채 안되는 젤로같다는 신체 기관. 온갖 신비로운 반응과 결정이 벌어지는 곳. 하지만 나의 뇌는 이제 예전 같지 않아 가물가물한 기억력으로 자신감을 잃은지 오래다. 과거의 내가 읽은 책을 오늘의 나는 모른다. 읽었는데 새롭다. 


서설이 길었다. 이래저래해서 베스트셀러 책이라 건너뛰었던 (알죠, 그런 마음.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에도 나오는 그런 마음) 뇌과학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위로를 받았다. 그 위로와 감상은 다음 페이퍼로 써야겠다. 일단 현재의 나는 작은 놈 등교 후에 커피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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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9-14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흐 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진짜 나인가. 제가 넘나 좋아하는 물음인 것입니다.
후속편 기다립니다. 쿠키는 같이 안 드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09-15 18:41   좋아요 1 | URL
아침 밥을 많이 먹은 후라 쿠키 없이 커피만 마셨어요. ^^

공쟝쟝 2023-09-15 20:34   좋아요 0 | URL
가령 푸코라든가… ㅋㅋㅋㅋㅋ 유부만두님 푸코 좋아하는 거 나 안다 ㅋㅋㅋ

유부만두 2023-09-16 06:58   좋아요 1 | URL
얘기 했잖아요, 미셸은 나의 기억 속의 사람이라고. 물론 그는 글만 보라고, 자기 얼굴이나 인생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어요. 자크가 죽던 날도 기억 납니다. 다들 갔어...

공쟝쟝 2023-09-16 10:22   좋아요 0 | URL
저는 그가 바스에서 한 일을… (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