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지주인 클리퍼드는 모든 면에서 사냥터지기 멜러즈와 반대로 보여요. 나이는 열 살 쯤 클리퍼드가 젊지만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정신적인 활동인 소설을 써서 돈과 명예를 더 얻었고 친구들도 많은데요, 멜러즈는 개 한 마리만 데리고 숲을 누비고 밀렵꾼들을 잡으면서 혼자 살아요.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코니라는 여인에 대한 애정과 볼셰비키에 대한 증오(와 몰이해)에요. 둘 다 볼셰비키를 미워해요. 클리퍼드에게 이질적인 모든 것, 노동자나 코니는 볼셰비키죠. (하지만 볼턴 부인이 방탕한 젊은이들은 머리가 나빠서 볼셰비키 주의자가 못된다고 말하죠. 그녀만 조금 나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클리퍼드의 부자 친구들은 궤변을 늘어 놓아요.



"볼셰비키주의란 [...] 그저 소위 부르주아라는 것에 대한 지극한 증오에 불과한 것 같아. [...] 개인들, 특히 개별 인격체로서의 각 사람은 부르주아가 되고 마는 셈이지. 따라서 개개인은 억압해야만 하는 존재인거야. 보다 커다란 것, 즉 소비에트 사회와 같은 것에 개인은 함몰되어야 하는 거지.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조차 부르주아야.[...] 필수적인 것은 기계밖에 없으니  [...]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가 그 기계의 동력을 이루고 있는 것! 바로 그게, 내가 보기엔 볼셰비키 주의야." 

"우리는 모둔 환자처럼 싸늘하게 식어있고 백지처럼 아무런 열정도 없는 존재야. 우리는 모두 볼셰비키주의자인 거야" 



아... 좀 이상하죠. 그러니까, 부르주아, 개개인(의 개성), 생명력에 대한 증오가 볼셰비키주의다? 그러니까 상류층의 정신 활동입네, 하면서 말장난이나 일삼는 자기들은 생명력의 반대에 있으니 볼셰비키주의자다? 이 말은 멜레즈의 연설과 비슷해요. 


“사람들의 기(氣)는 다 죽어 없어져버렸소. 자동차니 영화니 비행기니 하는 따위가 사람들에게서 마지막 남은 기까지 다 빨아 없애버리고 있고. 분명히 말하건데, 새로 태어나는 세대마다 점점 더 토끼처럼 소심해지고 고무관으로 된 창자와 양철 다리와 양철 얼굴을 하고 있을거요. 양철 인간이란 거지! 그건 모두, 인간다운 것을 말살해 버리고 기계적인 것을 숭배하는 일종의 강고한 볼셰비키주의 같은 것이라오. 돈, 돈, 돈만이 절대적이지!”


노동자들도 소심하고 일상에 매몰되어 돈이나 물질적 쾌락에 매달리니까 또 볼셰비키주의자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거에요? 그러니 두 남자(와 그 무리들)는 생명력을 얻어야 한대요. 그 생명력이 찐 아이템이에요. 바로 성관계, 성별을 막론한 사람들 (로렌스의 동성애 성향이 여기에서 암시되요) 사이의 “부드러운 접촉”이요. 계급 차이나 예법, 표준어 같은 모든 가식을 벗고 자연스러운 상태여야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멜레즈는 힘주어 연인 코니에게 연설해요. 그것도 반말로 말이죠. 
     
물론 첫 만남, 그 숲속의 오두막에서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가 되었을 때, 멜레즈는 아직 높임말을 썼어요. “전 참 좋았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부인도 좋았나요?” 정말 참하죠? 그런데 두 번째 만남 이후 멜레즈는 슬쩍 말을 놓더니 세 번째 야외 합체로 두 사람 사이가 확실해지자 그는 반말을 대놓고 해요. (민음사에서요. 펭귄에서는 안 그랫슈) 이건 번역가가 나름 두 사람 관계의 진전을 표현한....거라지만 과한 해석의 개입이라고 봐요. 왜 코니가 계속 경어로 그를 대하는데 멜라즈가 저렇게 말하는 걸까요. 너무 싫잖아요. 
     
근데요, 두 사람의 밀회 장소 오두막이 주인이 찾지 않는(못하는) 숲속에 있고, 꿩 알을 부화시킨다는 (그것도 엄마 꿩이 아니라 암탉, 꿩대신 닭으로) 디테일로 그야말로 '자궁'이라는 거잖아요. 코니는 꿩 병아리들을 손에 안고, 더해서 이웃 농장에 들러 그 집 어린 아기를 안아주며 울컥합니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되버려요. 그러면 멜레즈 등장, 이런 순서가 거푸 나와요. 너무 노골적으로 생명력, 모성, 상남자 라는 공식으로 진행시키는 것 같았어요. 이런 단순함은 나중에 멜레즈의 "산업화 지옥에서 살아남기" 연설에도 표현되요. 인간이 생명력을 되찾고, 어떻게? 터치로! 소박하게 살면! 어떻게? 돈을 안 벌고 안 쓰면 됨! 이라며 그냥 자연으로! 를 외쳐요. 이미 1920년대 후반인데, 공산당 선언도 지났고 광부의 파업 등은 수가 늘어나고 옛 영국은 사라지고 새로운 역사가 해가 지지 않는 그 빌어먹을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어떤 역사적 책임 의식(이라기 보다는 나도 이때 한몫 챙겨보자)이 샘솟는데 말이에요. 클리퍼드는 그 의무가 자신의 몫이라며 비장해지거든요. 뭐 스포 터뜨리는 김에 다 쏟아냅시다. 볼셰비키적인 부인 코니가 떠나고 클리퍼드가 드디어 '뽀뽀해줘!'라며 볼턴 부인의 '젖가슴'에 매달려 변태적인 큰 아기처럼 굴 때, 그는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진짜 기가 막힌 전개지요? 근데 반대로 멜레즈는 자꾸 숨으려고 해요. 더 시골로, 아니면 해외 (영국의 식민지) 농장으로 떠나고 싶어하죠. 코니 그대와 함께. 역시나 클리퍼드와 멜레즈는 상극이에요. 


작가 로렌스가 폐병을 앓았고 광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멜레즈와 겹치게 보이지만 부인과의 성적 불화가 있었고 (그걸 또 다 sns에 올리고) 돈과 명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클리퍼드이기도 하죠. 로렌스가 쇠약해지고 최선을 다해 다듬은 이 스완송에서 곧 죽어 없어질 육신이 실은 생명의 원천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해설에 나와요. 절실해서 거듭 강조를 했겠지만 멜레즈의 쎅쓰 강조는 사실 지루합니다. 숲속에서 두 남녀가 랄랄라 나신으로 춤추고 꽃놀이를 할 땐 미드소마 영화 생각도 났고요. (영국의 6월초이기도) 그의 집에서, 런던에서 함께 하는 장면의 묘사와 대사는 많이 진부합디다. 
 
생명력을 강조한다고 멜레즈가 주위의 작은 생명체를 아끼는 사람도 아니고 좋은 아빠는 더더군다나 아니에요. 그의 어린 딸은 멜레즈의 어머니가 키우는데 자신은 거의 방임한 상태고요, 코니가 “아기가 있으면요?”라고 묻자, 그는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만 딸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안해요. 그는 자기 딸에게 윽박지르고 욕을하며 애 앞에서 고양이를 죽이기도 해요. 그의 딸은 코니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친엄마한텐 뺨을 맞은 이야기로만 나와요. 소설의 끝까지 이 아이는 멜레즈의 개 보다도 비중이 작죠. 이런 남자에게 뱃속의 아이를 (코니랑 멜레즈는 아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더만) 함께 갖고 여생을 함께 할 결심을 하다니 ... 실은 말리고 싶더라고요. 


영화에선 마지막에 두 사람이 잠시 헤어졌다가 재회하는 걸로 나옵니다. 아마도 코니의 고향일 스코틀랜드의 바람많은 들판에서요. 그런데 소설은 열린 결말이에요. 멜레즈가 가을날 편지를 보내요. 한결같은 생명력 찬사에 더해 실은 코니를 만나는 데 두려움과 떨림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너 싫으면 안 와도 돼 하는 느낌이 담겨 있어요. 실은 코니라고 단단한 믿음만 있겠어요? 동네 방네 소문 다 났는데 (멜레즈의 극성 맞은 (전)부인에 대해선 나중에 얘길 써보겠어요) 남편은 고집스레 그 '아이'를 자기 몫으로 내 놓으라지, 이 모든 사단을 다 알고 있는 기분 나쁜 눈빛의 볼턴 부인은 응원한다지. (실은 이 부인이 제일 끔찍하지만 흥미로웠어요) 코니는 걱정을 하죠. 멜레즈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 코니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 것은 열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간절한 흠모의 마음이었다. 자신이 항상 그것을 두려워해 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꼼짝없이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것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궁과 창자에 가득 찬 부드럽고 깊은 흠모의 열정과 싸워 그것을 짓밟아 물리칠 수 있는 굉장한 자기 의지가 그녀의 가슴속에는 있었다. [...] 아, 그렇다. 바코스를 섬기는 여사제처럼, 숲속을 질주하는 바코스의 신도처럼 정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찬란한 남근의 신 이아코스를 찾아가는 것이다."


멜레즈가 바코스는 아니에요. 코니가 2권에선 더 깊이 그를 ‘흠모’하며  간 쓸개 다 빼주지만 절대 그는 바코스가 아니에요. 그래도 코니는 여사제는커녕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코니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고 봐요. 생명력이 충만하다고 자랑 혹은 변명 삼아 언니 힐다에게 말하자 언니는 "모기들도 그렇다"고 쏘아버려요. 코니가 멜레즈와 재회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성기의 애칭을 서명 삼아 편지에 써 보낸 그 '과거 많은' 남자를 만나러 갈까요? 아니라는 데에 알리딘 적립금 500원을 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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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12-1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에서 악마화된 여성 캐릭터들을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바보 같은 코니만 빼고.

단발머리 2022-12-13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소설을 읽지 않아서 숨겨진 의미에 대한 유부만두님의 해석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적립금 500원을 내놓으시는 일이 절대 없으시기를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2-12-15 09:06   좋아요 1 | URL
전 이 열린 결말이 그나마 마음에 들었어요. 실은 코니는 세상 사람들의 적대적 평가에 직접 맞서진 않아요. 고작해야 남편, 아버지, 언니, 지인 한 명과 순차적으로 맞서며 멜레즈를 변호해요. 그리고 코니 아부지랑 멜레즈가 술 먹고 친해짐;;;;
근데 멜레즈는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란 걸 뻣뻣한 태도로만 증명하려 애쓰죠. 말도 계속 자연 어쩌고 생명력 이러는데 많이 모지리 같아요. 500원 지킬 수 있을 거 같아요.

공쟝쟝 2022-12-14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유부만두님 때문에 채털리 읽고 싶어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궁묘사에 빡쳤다가 ㅋㅋㅋㅋㅋ 여튼 앞으로도 남자 작가들의 여성에 대한 몰이해에 대한 부분들은 그대로 넘기지 않아야겠군요 ㅋㅋ 그런데 전 오늘 문득 나도 남자를 정말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림....... 아............ (골드문트님 페이퍼 댓글 참곸ㅋㅋ)
나는 왜 알고 싶어 하는 가.
알라딘 적립금 500원에 제 500원 추가해주세요. 독보적 걷기 열흘 열심히 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22-12-15 09:12   좋아요 3 | URL
채털리 읽지마요! 이렇게 여성 캐릭터 엉망이고 남자 주인공도 별로인데!

차라리 누군가 채털리 부인과 여성들, 이라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써주면 좋겠어요. 내가 능력만 되면 하겠어요. 여자들의 사연이 정말 재밌거든요. 욕만 먹는 멜레즈 부인도, 멜레즈 짝사랑했던 볼턴 부인도, 클리퍼드를 손에 넣은 볼턴 부인이 후에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요! 그 영지랑 탄광 다 먹어버려!!! 외치고 싶은데 유산 상속이 그리 쉽진 않겠지요.

이 소설의 어린이들, 차세대들이 다 딸이란 디테일이 재밌어요. 이혼한 언니 힐다도 아이가(딸이라고 안 나오지만 내 맘 속에선 딸들임) 둘, 볼턴 부인도 딸만 둘. 이웃 농장 아기도 딸, 멜레즈 전초 소생도 딸.

그러니까 남자들이 암만 입으로 ‘몸‘으로 생명력 외쳐봤자, 살아남는 건 딸이어유.

서곡 2022-12-26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넷플 신작 채털리부인 그거라도 볼까 싶어집니다 ㅎ

유부만두 2022-12-26 19:05   좋아요 1 | URL
영화는 새로운 해석과 밝은 결말을 보여줘요. ^^

서곡 2022-12-2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셨군요~ 안 산뜻할까봐 다소 망설여졌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