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이어서 '잃어버린 시간/시절을 찾아서' 2권 (민음 번역서 4권)을 함께 읽고 있다. 마침 어제, 7월 10일은 프루스트의 생일 150주년이라 트위터에는 푹 꺼진 눈매의 작가 얼굴이 자주 올라왔다. 그의 (거의) 변태스러운 묘사와 상상은 위험수위에 가깝지만 주위 인물들 묘사는 풍경과 어울려 커다란 코메디를, 혹은 사회 분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2권 2부 (번역서 4권) <고장들의 명칭 - 고장>에선 이제 고등학생이 된 화자 (마르셀이라고 부르는 게 편한데 아직 이름이 안나옴)가 지병인 천식을 완화하고자 노르망디의 해변 휴양지 발벡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 고급 호텔에서 만나는 귀족, 브루주아, 호텔직원들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그들은 겉모습과 태도로 타인을,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잘못 판단하지만 (호텔비를 흥정하려고 드는 할머니가 너무 부끄러운 고딩, 차라리 사라지고 싶고요) 자신들만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하고 보호되는 것 처럼 군다. 왕족을 퇴물 창녀로, 지방 유지를 평범한 서민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작은 지위를 지닌 브루주아는 간혹 왕족과 만나기라도 하면 떠들석하게 자랑하느라 바쁘다. 상대는 만만한 호텔 직원. 단골의 빠워를 발휘한다. 그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는 화자는 그들 주변에 둘러진 나름대로의 '보호막'을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자는 다르다. 이 청(소)년은 남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래서 계속 관찰하고 상상하며)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길, (좋아해 주길) 함께 해변을 거닐기를 바란다. 귀부인과 친구인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사람들에게 특별대우를 받기를, 그래서 병약한 모습 보다 조금 멋져 보이길 원한다. (쉽지 않아) 


하지만 


외할머니는 셰비네 부인을 따라서 엄마와 매일 편지쓰기, 외손주 수발들기, 바닷바람 즐기기만 좋아하신다. 할머니의 친구분 그 귀족부인도 휴양지 호텔의 명성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왕족 부인은 자신을 마치 동물원의 동물, 조금 낫게는 어린아이 정도로 자애심과 너그러움으로 대하지만 저 아래의 부류로만 서툴게 쓰다듬는다. 억척스런 하녀 프랑스와즈는 여러 사람들을 사귀는데 호텔 직원들과 친해지자 이젠 그들의 노고를 이해하느라 화자와 할머니가 제대로된 서비스/대접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프랑스와즈의 으으리는 그녀의 기준대로 작동하고, 화자의 눈엔 그녀가 그저 '지성'이 없는 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하녀라는 사실에 한치 의심이 없다. 


기차에 올라 의사의 조언 대로 음주를! 하고 취한 상태로 검표인의 반짝이는 단추로 빨려들어가고, 밤기차를 타고 바라보는 산속 간이역의 일출과 우유 파는 소녀, 호텔 식당에서 만난/바라보는 귀족 아가씨, 두 명을 상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매일 그녀(들)과 함께 하며 연인이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만나는 (모르는) 여인에 대해 이런 뻘짓을 하는 건 델러웨이 부인의 전 애인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 화자, 작가를 욕하려는 찰나, 그의 묘사는 다시 천진난만하게 식탁에 오른 생선 요리를 먹은 후 남은 뼈, 그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처음에 발벡을 고대했던 이유, 발벡 성당의 성모상이 세속적인 환경, 온갖 가게와 관청, 부산스런 사람들 속에서 노파, 늙어버린 석상으로 변해버린 것을 바라보고, 멀리 떨어진 해변 호텔에선 낯선 방에 긴장과 공포를 (1권 서두의 그 복잡한 묘사) 못견뎌 숨이 막힐 것만 같다가..... 할머니 덕에, 아름다운 해변과 '재미있는' 사람들 덕에 이 휴양지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그의 방식으로, 치밀한 묘사와 멋대로의 비유와 상상으로, 그리고 한 페이지에 두 문장으로 주어 찾아 헤매는 독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끈끈한 2021년 서울의 주말에서 읽기는 딱이다. (뭐여??!!) 


하루 늦게 Bon Anniversaire, M. Proust. 백오십 살 잡수셨소.


유툽 Comedie francaise 채널에서는 한참 전부터 배우들이 이 작품을 낭독하고 있다. 배우들의 낭독은 아름답지만 역시나 졸음을, 뱅글뱅글 도는 늪같고 마약같은 묘사의 꿈을 불러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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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11 1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였군요! 생일 맞춰서 민음사 11권 나올줄 알았는데... 쩝. 저도 이제 이어서 읽어야겠네요!😊

유부만두 2021-07-15 00:16   좋아요 3 | URL
미미님께선 지금까지 나온 번역 10권 거의 다 읽으셨죠? 내년 완역이라던데 아마 사망 백주기 11월에 맞출 것 같아요. 전 프루스트 굿즈가 궁금해요. 당연히 마들렌느, 홍차 있겠죠. 노트랑 연필이랑 .... 벌써 두근두근. ^^

미미 2021-07-11 16:12   좋아요 3 | URL
10권부터 거꾸로 읽어서 이제 3권 읽을 차례예요. 1권 몇번이나 읽다가 숙면에 들었기 때문에 앞에서부터 읽는분들 넘 대단하신듯 느껴짐요. 아 굿즈 기대되네요!!😆

희선 2021-07-12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여름에 태어났군요 어느새 프루스트가 죽고 150년이나 지났다니, 그런데도 여전히 프루스트 책을 많은 사람이 만나는군요 프루스트는 그걸 좋아할지... 책 볼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쓴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으니 많은 사람이 보겠습니다 프랑스말 아는 사람은 유튜브에서 배우가 책 읽어주는 거 좋아하겠습니다


희선

유부만두 2021-07-12 06:09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는 자신의 소설을 출판하려 애를 썼으니 아마 좋아할 것 같아요. 이 관심에 치밀하고 자학/가학적인 묘사를 하겠지요. 150년, 정말 긴 세월인데 또 금방이구나 싶어집니다.

그레이스 2021-07-12 0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어로 읽고 계시군요
👏👏👏
코메디 프랑셰즈 구독버튼 눌렀어요.
언제 들어도 프랑스어는...!
👍

유부만두 2021-07-12 06:22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전 펭귄, 민음사 두 번역본을 함께 읽고 있고요, 원서는 몇 몇 구절들만 찾아보는 정도입니다. 우리말 번역서도 오래 많이는 읽기 힘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