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차근차근, 목욕탕이지만 가릴 것은 가리고 예의를 지키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 읽은 후에는 개운한 마음도 들고 어쩐지 등을 밀고 싶어진다. (오이 맛사지 까지는 아님)


일전에 읽었던 과하게 질척 우울한 엣세이와 다르게, 국어 선생님 저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목욕탕 역사를 들려준다. 한참을 읽을 때 까지 저자의 남편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었다. 저자는 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마트에 들러 찬거리를 사서 급하게 저녁상을 준비해서 세 아이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그후 쓰러지듯 잠드는 일상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 그는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나 주위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대신 혼자 목욕탕에서 뜨끈한 물에서 뭉친 몸과 엉어리를 푸는 저자의 등이 쓸쓸하지만 공감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엄마나 할머니와 함께 찾았던 공중 목욕탕, 여행지의 온천장들, 시댁 어른들과의 강요된 목욕 경험, 세신 경험, 나이들어가는 내 몸을 확인하고 내 아이를 씻기던 목욕의 시간들. RG RG. 


재작년 운동을 배우느라 스포츠 센터에 다니면서 사우나에 재미를 붙였더랬다. 나도 저자처럼 작은 지퍼백에 샘플만 몇 개 넣어 다녔는데 이내 지정 라커도 만들어서 목욕가방도 비치해 두었다. 여행지에서 모아둔 작고 호화로운 어매너티 아이템들은 물론 여러 비누와 로션을 사용했다. 열심히 운동한 후 땀을 씻어내고 사우나실에 잠시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정은 나만의 호사였다. 좋은 시절이었지. 


올해 초 스포츠센터 환불을 받고, 운동화와 목욕가방을 찾아온 후엔 집에서 샤워만 하는데 씻는 과정이 이젠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뜨거운 물 아래서 비누를 목욕수건에 문질러 거품을 내는 순간은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애정하는 은방울꽃향 비누 말고 하얀색 차* 사우나 비누로도 충분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목욕탕 관련 책들도 내가 재밌게 읽은 것들이라 반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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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12 0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난 목욕탕 싫어하는데. 뜨거운 거 싫어해서 사우나도 싫어하고
하지만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나이 들어서 사우나나 찜질방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시댁어른과의 목욕 경험?. 내가 시어머니면 며느리랑 목욕하기 싫을 거 같은데. 솔직히 딸들하고도 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유부만두 2020-12-12 09:42   좋아요 2 | URL
시이모님께서 온천 목욕장을 하셨어요. 그래서 하아....
시어머님, 시이모님 세 분, 시외할머님, 시누이, 시조카 어린이 .... 하아.... 다 함께 올 투게더 그해 겨울 하아....

psyche 2020-12-12 10:05   좋아요 1 | URL
헐 시어머니 뿐아니라 시이모, 시외할머니에 시누이까지!!!!

라로 2020-12-13 18:4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도 뜨거운 거 싫어해서 욕탕 안에 들어가서 몸 불리지 않는다고 많이 혼났는데 이제는 여기 살아서 그런가 뜨겁지는 않더라도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푹 불린 후 때 밀고 싶어요!!!😅😢

유부만두 2020-12-14 14:09   좋아요 0 | URL
라로님댁 자쿠지 하나 만드세요~

라로 2020-12-17 06:24   좋아요 1 | URL
저희집에 자쿠지 있어요.ㅎㅎㅎㅎ 그런데 거기서 때를 불릴 수는 없잖아요??ㅋ

유부만두 2020-12-17 09:43   좋아요 0 | URL
그쵸. ㅋㅋㅋ 자쿠지랑 욕탕은 비슷하지만 다른것!

scott 2020-12-12 1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 트라우마가 있어서 기피했는데 ㅋㅋ
운동하고 다치고 교통사고 휴우증으로 물리치료받을때 온천욕을 권해서 효과받어요.
게르마늄-유황 쵝오!

유부만두 2020-12-13 07:43   좋아요 1 | URL
어린 나이엔 목욕탕을 좋아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아요.
scott님은 트라우마 까지 갖고 계셨군요. 이런...

다치고 뭉친 몸엔 온천/사우나 가 좋다고 들었어요. 저도 어깨가 아파서 탕에 자주 들어가려 하는데 집에선 아무래도 힘들고 귀찮아요. 온천 분위기를 위해서 온천향 비누까지 사둔 건 자랑 혹은 고백입니다. ^^

나중에 혹시나 돈이 많아지면 (?????? ) 건식 사우나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만 이젠 사우나에 가는 것도 꿈이 되어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