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 발표된 최은영의 중단편 일곱 이야기가 소설집으로 나왔다. '그해 여름'은 이미 읽은 이야기라 목차의 그 다음 이야기 '601, 602'와 제일 긴 '모래로 지은 집'을 읽었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와 비슷하기도 또 다르기도 한 느낌이 든다. 쉬이 상처 받는 인물들 때문인지 책 제목 '내게 무해한 사람'은 '내게 무례한 사람'으로 읽혔다.

 

'601, 602'의 주영이는 옆집 친구 효진이와 친하게 지내지만 늘 어떤 벽을 사이에 두어 안전 거리를 지키고 있다. 그 벽이 허물어지면 주영이는 효진이가 되고, 그 아이가 겪던 모든 비극이 옮아올 것만 같다. 그 비극이 현실이 되고 자신을 에워싸는 것을 작가가 하나하나 다 늘어놓았다. 그대로 삶의 폭력과 억지들이 문장과 함께 내 속으로 밀고들어온다. 이리 저리 눈을 돌리거나 숨을 고르지도 않는다. 이런 무례한 인생 속에 우리는 매일 산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도 가족 내의 폭력을 겪는 또 다른 친구가 나온다. 그리고 다른 갸냘픈 친구까지 화자와 어울린다. 이 셋은 안정적으로 보이려 애쓰면서 '어설픈' 십대 후반 부터 이십대 초반 까지의 '다리'를 비틀거리며 건넌다. 세세한 감정의 흐름과 인물들 주위의 햇볕까지 상상 속에서 잡힐듯 가깝다. 표지의 따뜻하면서 거리를 두는 인물의 뒷모습 처럼, 화자는 이제 천천히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관계의 한쪽을 붙잡은 자신에 대해서 쓰고있다.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가 내안에 스며드는 것만 같다. 흔한 문장과 설정, 무던하고도 예상 가능한 결말인데도 마음이 아프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관계, 그리고 오해와 성장에 대해서 해답도 없이 고민해본다.

 

입대 후 보초를 서는 공무의 덤덤한 편지가 아들 녀석의 이야기와 많이 겹쳐서 힘들었다. '어른'이 되어서 돌아보니 그깟 이십일 개월, 맘 잘 다잡고 눈 꼭 감고, 할 것만 하고 견뎌라, 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스물두 살 아이에겐 가닿지 않겠지. 그 시절엔 군대에 가지 않더라도 비틀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나. 최은영의 이야기에선 여리고 젊은 인생의 끈들이 만나서 슬쩍 겹치고 또 제각각 떨어져 나간다. 상처 주지 않고 '해'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그냥 막 살아, 좀, 하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 책을 읽기에 나는 너무 무뎌졌거나 늙어버린 것만 같아서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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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6-2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넘 읽고 싶어요~

유부만두 2018-06-29 07:23   좋아요 1 | URL
읽으세요~ 조용조용 들려주는 이야기에 위안받으실겁니다~

다락방 2018-06-2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예약판매 한다는 메세지를 받았었는데 유부만두님 벌써 읽으셨군요!! >.<

유부만두 2018-06-29 07:24   좋아요 0 | URL
판매 시작인 날 땡! 해서 바로 주문하면 그날 옵니다. 예판 때 주문한 책은 아직임 ;;;; 이러면 예판의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