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의 납치 소재 때문에 '마이 리틀 자이언트'가 불편했는데 동화 빨간 모자’야말로 취약자를 대상으로한 범죄 이야기다. 도서관에는 여러 버전의 '빨간 모자' 이야기 책이 있었다. 늑대의 시점을 차용해서 실은 내가 그러려던 건 아닌데알고보면 나도 힘드러요라는 목소리는 그리 새롭지는 않다. 피해자에게 책임감을 지우는 이런 태도는 이야기 비틀기일 수도 있지만 약자보다는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게 한다.

 

 

 

천사가 된 늑대는 그런 예다. 늑대가 천사가 되었다는 건, 늑대가 개과천선해서 어린이 편에 섰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냥꾼을 통한 벌을 받았다는 뜻이다. 늑대의 사후 변명. , 실은 먹으려던 게 아니라 걔 할머니 머리가 내 입 안에 들어오드라구요? 그 얘 머리가 제 입 안에 들어왔죠. 그 예쁜 아이가 친절했죠, .

 

특이하달까, 뾰족하다못해 길게 늘인 모자의 끝은 늑대의 말처럼 총대를 닮아 길고 높아서 빨간 모자를 쓴 아이는 키가 큰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초록색 풀숲에 몸은 가려지고 얼굴 표정도 잘 보이지 않는 요정 같은 어린 아이. 늑대는 날름 할머니와 아이를 삼켰고, 후에 사냥꾼의 총에 맞아 뜨겁고 빨간 얼룩을 남기며 천사가 되었다. 뱃속에 들었던 할머니도, 여자 아이도 꺼낸 다음 너무 배가 고픈 늑대. 아직도 배고프고,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고있다. 그림은 예쁜데 빨간색은 매우 불편하다. 늑대의 뻔뻔함에 면박을 주고 싶은데, 늑대는 천사가 되었다니? 사냥꾼이라는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의 폭력성과 더 가깝게 연결되어있는 인물을 통해서 응징이 되는 구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미스트랄의 빨간 모자 는 단순한 도형으로 그린 빨간 모자와 늑대에 집중한다. 그 잔인한 폭력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아이는 존대말로, 늑대는 반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몸의 크기도 차이가 난다. 늑대는 몸을 길게 늘여 뱀처럼 할머니 댁에 간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으면서 상황을 통제하는 유비쿼터스 늑대. 할머니를 먹은 후 빨간 모자 아이를 기다렸다가, 마저 먹어버린다. 사건이 벌어지는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에 글은 왼쪽에 실려있는데 글 아래엔 걱정하는 표정의 숲속 동물들이 하나씩 그려 있다. 말은 못해도, 이미 이들은 증인이 되어 벌어지는 사건을 막지 못한 채 얼어있다. 잔인한 결말. '버찌와 같은 심장의 즙'을 먹어버리는 늑대. 사냥꾼도, 늑대의 죽음도 없다. 빨간 모자가 죽으면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

 

 

 

 

로베르트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도 비극을 강조한 그림책이다. 배경이 현대의 도시이고 숲 대신 위험한 인물들이 숨어 사는 도시의 슬럼가, 그리고 현란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쇼핑몰이 등장한다. 빨간 모자는 이름을 가졌다. 소피아. ('마이 리틀 자이언트' 주인공 아이도 소피 였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한 모자 달린 빨간 겉옷을 달린 옷을 입은 소피아는 '꼭 큰길로만 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할머니 댁을 향한다. 하지만 어지럽고 화려한 쇼핑몰에서 길을 잃고 골목으로 나와 걸어가다 검은옷의 오토바이 타는 '아저씨'를 만난다. 그리고...그 아저씨가 할머니의 트레일러에서 어떤 짓을 저지르고 비열하게 웃으며 나오는지 그림으로 보여준다.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소피아를 기다리는 엄마. 이 무서운 범죄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 이야기는 다른 가능성이 있다며, 서둘러 에필로그 처럼 경찰이 범죄자를 잡고 빨간 모자를 구해 엄마와 다시 만나게 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피 엔딩은 현실에 없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18-05-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 ㅠㅠ
난 범죄 드라마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데 그림책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네

유부만두 2018-05-07 07:33   좋아요 1 | URL
무서웠어요. 특히 미스트랄의 빨간 모자가요. 예쁜 아이가 예쁘게 죽는 것으로 그리는데 이건 어린이 도서일까, 아닐까, 고민도 되고요. 어쩌면 아이들 눈에는 그리 잔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은근하게 사람 끄는 매력이 이 ‘빨간 모자‘에 있긴 한가봐요. 그러니 많은 작가들이 다시 쓰고 있죠. 하지만....아이가 죽는 이야기는 무서워요.

서곡 2022-11-07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노첸티의 것 궁금했는데 소개해주신 내용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유부만두 2022-11-08 17:46   좋아요 1 | URL
매우 강렬했어요. 그림과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독자를 이끄는 듯하고요. 직접 경험하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