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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맞는 죽음
한스 팔라다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1893년 독일제국의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에서 치안판사의 아들, ‘루돌프 빌헬름 디첸’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한스 팔라다. 아버지는 치안판사에서 시작해 나중에 최고법정 판사까지 지냈다. 전형적인 중류 집안 출신으로 음악에 열정적이었으며, 문학애도 흥미가 있던 어머니. 팔라다는 이들 사이의 아들이었는데,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주목하시라, 내 생각이 아니라 60여 년 동안 아동 도서관 사서를 역임한 프랑스의 빠뜨 여사가 강조에 강조를 한 바를 그대로 일러드리니, 한스 팔라다의 법관 아버지는 한스, 당시 이름으로 루돌프가 어렸을 때부터 셰익스피어와 실러 등의 작품을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을 해주었단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는 일이 아니고, “어른들의 목소리로 듣는” 일이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진지하게 책을 읽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즈느비에브 빠뜨, <사서 빠뜨> 재미마주, 2017) 한스 팔라다의 법관 아버지는 아이들 교육 하나는 제대로 시킨 것이니, 어린 아이를 키우거나 주위에 어린 조카들 있는 분들은 유념하시기 바란다.
16세 때인 1909년에 말이 끄는 짐차에 치었을 때, 설상가상으로 말이 한스의 얼굴을 걷어차는 사고를 당한다. 1년 후 17세 때는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는데, 이 두 번의 장기 입원 당시 오랜 시간에 걸쳐 강한 마약성분의 진통제를 다량 투여한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 한스 팔라다는 자기 인생의 작지 않은 동안을 정신병원과 감옥, 요양소에서 흘려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이이는 나치 치하에서도 독일을 벗어나지 않고 독일에 남아 집필을 계속했다는데, 그 와중에 폭격 맞아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다행. 그래서일까, <홀로 맞는 죽음>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은 비록 정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게슈타포에 체포된 이후 변호사로부터 정신이상의 핑계를 대라는 권유도 받고, 베를린 폭격의 와중에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의사는 스스로 자신의 팔뚝에 약한 모르핀을 주사하는 걸 낙으로 삼기도 하고.
이 작품 <Jeder stirbt fuer sich allein: 누구나 혼자 죽는다>는 빽빽한 편집으로 770쪽을 넘어간다. 실제로 나치에 저항했던 함펠 부부의 기록을 모델로 해서 한스 팔라다가 불과 4주에 걸쳐 1947년에 완성을 했지만, 작가는 작품의 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2월에 베를린에서 죽고 만다. <소시민, 이제 어쩌나>와 더불어 한스 팔라다의 대표작으로 일컫는다고 한다.
책은 4부로 되어 있다. 크방엘 부부, 게슈타포, 역풍, 종말.
제3제국의 노동계급인 오토와 엘리제 함펠 부부는 1935년에 결혼을 해서, 1940년 엘리제의 남동생이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전사하는 바람에 반 나치 저항운동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 방법으로는 우편엽서에 반 나치 구호와 내용을 손으로 써서 우체통이나 공공장소의 계단 같은 곳에 놓아두어 베를린 시민들을 향해 나치에 협력하지 말 것을 선동한다. 이들은 1940년 9월부터 1942년 가을까지 모두 287통의 우편엽서를 써서 살포했으나, 나치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거의 모든 엽서들은 즉각 신고와 함께 게슈타포의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다. 이들은 결국 2년만인 1942년에 체포되었고, 오토 함펠은 히틀러와 제3제국에 저항할 수 있어서 그동안 행복했다고 발언한다. 나치의 국민재판에서 부부는 국가전복 예비음모로 사형을 선고받아 1943년 4월 8일 한날한시에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다.
한스 팔라다는 남편 이름은 그대로 오토, 라 하고, 아내의 이름만 ‘안나’로 해서 크방엘Quangel 부부를 만들었다. 나이도 오토 크방엘이 오토 함펠보다 열 살 정도 많게 했는데, 이는 아내의 동생, 오토의 처남 대신 크방엘 부부의 아들 오토헨의 전사를 이들 부부가 나치에 저항하기로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각색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남의 죽음보다는 아들의 죽음이 행동변화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당연할 터이다. 여기에 픽션이니만큼 다양한 에피소드를 첨가한다. 먼저 이들이 거주하는 5층 아파트의 구성원들을 보자.
2층엔 전직 최고재판관 프롬 씨. 한스 팔라다의 아버지가 최고재판관 출신임을 기억하리라. 전쟁이 끝나기 전에 지하실에서 고통스럽게 죽기는 하지만 무뚝뚝하게 친절하고 정의를 신봉하는 키 작은 노인. 최선을 다해 주위에 있는 약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돕는데 위험을 무릅쓴다.
3층은 전직 선술집 주인이었다가 본인이 술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술 때문에 파산 직전에 몰렸던 페어지케 씨 댁. 아들 셋 있는 건, 위에서 둘은 SS, 나치친위대, 막내 발두르는 HJ 히틀러 소년단을 거쳐 최고의 나치 지도자 양성기관인 나폴라에 재학중이며, 딱 하나 있는 딸 역시 여성 수용소에서 곱게 살아 노동능력이 없는 나이 든 여성 죄수에게 복잡다양한 고통을 주는 걸 취미로 여기는 골수 나치 집안이다.
4층에 크방엘 부부가 살고, 5층엔 여성 내의 전문점을 수십년 해온 로젠탈 부부가 살았다가, 2주 전에 로젠탈 씨가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가 소식이 없고, 내의 가게에서 비싼 제품들을 모두 집에 가져온 로젠탈 부인 혼자, 불운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이를 가엽게 여긴 크방엘 부부는, 자신들 역시 보통의 독일인이라 유대인을 그리 곱게 보지는 않지만 로젠탈 부부가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받고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아서, 로젠탈 부인을 보석, 귀금속, 현금 등과 함께 밤 동안 자기네 집에서 머무르게 한다.
여기에 기생충 같은 두 명의 독일인이자 염탐꾼이자 게슈타포의 밀정이자 노동거부자인 에밀 바르크하우젠과 에노 클루게도 등장시킨다. (아오, 난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Die Kluge: 재치부인>을 무척 좋아해서 ‘클루게’라는 인물의 등장에 관심이 무척, 무척, 또 무척 컸다가, 팍 실망했다.)
5층 로젠탈 부인의 집에 바르크하우젠과 클루게가 들어와 도둑질을 하려다 정작 하라는 도둑질은 하지 않고 생전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술을 퍼마시고 세상 모르게 취했다가 2층의 전직 최고판사와 오토 크방엘의 방해로 곤욕만 치루는데, 이 일을 기점으로 선한 판사 프롬 씨는 로젠탈 부인을 자신의 집과 방에서 거의 감금수준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부인은 프롬 씨를 친절하지만 냉정한 사람, 정의 때문에 의무감으로 선한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로젠탈 부인은 소외를 견디지 못해 나흘만에 수면제를 한 움큼 삼킨 다음 몽롱한 상태가 되어 프롬 씨의 집을 나와 5층 자기집으로 올라갔다가 악당 발두르 페어지케와 게슈타포에 잡히지만, 창문으로 몸을 던져 죽고 만다.
4층의 크방엘 부부는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유일하게 해피엔드를 쟁취하는 우편 집배원이자 현명한 재치부인, 에바 클루게로부터 타자로 작성한 군사우편을 받은 순간,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 라디오 조립을 좋아하여 대단한 실력을 갖게 된 오토헨. 그래 여러 라디오 회사에서 영입제의를 받기도 한 어린 친구는 입대하기 싫어 엉엉 운 적이 있음에도, 군사우편은 “총통과 민족을 위하여 장렬히 전사”했다고 주장하고, 이게 뻔한 허위라는 게 너무도 원통한 엄마 안나 크방엘은 히틀러와 나치에게 극도의 악감정을 품게 된다. 이 순간을 맞춰 아래층 페이지케의 집에서는 파리 함락을 기념하기 위한 건배소리가 시끄러운데, 아내는 화를 참지 못해,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에겐가 화풀이를 해야 해서, 남편에게 “당신과 당신의 총통”이 아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퍼붓는다.
가구예술가이자, 목재가공회사의 작업반장이자 구두쇠로 널리 알려진 오토 크방엘 씨는 “당신과 당신의 총통”이란 말을 도무지 수용할 수 없어 궁리에 궁리를 하다가 좁은 책상에 앉아 쓴다.
“어머니,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어요.”
그리하여 오토는 아내에게 엽서를 통한 나치 저항행위를 설명하고, 겨우 엽서 나부랭이란 걸 듣고 히틀러 암살 정도를 생각했던 안나가 실망한 모습을 보이자 이렇게 대답한다.
“미흡하건 지나치건 간에, 안나, 그들에게 걸리는 날엔 우린 목숨을 잃게 돼……. 만약 내가 목을 내놓아야 한다면 남들의 어떤 멍청한 짓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에 목을 걸고 싶어. 내가 어떤 짓을 하겠다면, 오직 당신과 하지. 이게 옳다고 하지 않겠어.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어. 난 그런 사람이야. 변하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 오직 홀로 할 수 있는 저항은 이것 뿐이었다고 오토는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나치 치하에서도 저항은 있었다. 아무리 미미했다 할지라도.
7백 쪽을 훌쩍 넘어가는 장편이지만 잘 읽힌다. 나는 얼마나 바보인지. 같은 작가인데 제목이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쓴 다른 작품이겠구나, 싶어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누구나 홀로 죽는다>도 샀다. 그건 편집에 좀 여유를 두었다. 둘 다 괜찮지만 읽기는 이 책만 읽기로 했다.
이와 비슷한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잉에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한스 숄과 누이동생 조피 숄이 뮌헨 대학의 학생과 교수를 규합해 반 나치 전단을 뿌리고 20대 초반의 나이에 사형을 당한 사건. 읽을 때는 훅훅 속도감 있게 지나가지만 읽고 나서는 개운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그저 체제에 쓸려가는 소시민이라서 그럴까?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