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동기담 / 스미다 강 대산세계문학총서 140
나가이 가후 지음, 강윤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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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묵동기담.” 나는 제목이 싫어서 그동안 읽기를 미루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인 대산문학총서 140번 작품이었지만. 전쟁 전 일본 작가들이 자주 쓰는 귀신 나오는 ㅆㄴㄹ 소설일 것 같아서. 일본 어느 지역에 묵동이란 곳이 있었는데 그곳 수풀이나 음산한 절 또는 사당 같은 곳에 사는 3백살 넘은 노파나 중 혹은 귀신들이 창궐하는 이야기일까봐 그러니까 ‘묵동’이 문제가 아니라 뒤의 두 글자 ‘기담’이 문제였다. 기담奇譚. 이상하고 야릇한 이야기. 이런 거라면 그저께 읽은 정보라의 <저주 토끼>로 너무 충분했으니 새삼스레 또 읽을 필요가 없잖아? 근데 오직 대산세계문학총서라는 것 때문에 책을 꺼내 눈에 힘을 주고 (책등이 아니라) 표지를 봤더니 <묵동기담濹東綺譚>이라 쓰여 있더란 것. 기담의 ‘기綺’가 기괴하다 할 때의 기가 아니라, 비단, 문채, 고울 기. 그래서 더 알아봤더니, PC에서 프린트할 때 지원이 되는지 아닌지 모른다는 묵濹 자는 네이버 사전에 뜻이 없고 발음 ‘묵’만 내주는 단어인데, 일본 도쿄를 흐르는 스미다 강변을 노래할 때 자주 쓴 한자란다. 그냥 스미다 강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그럼 됐다. 스미다 강변은 아니고 스미다 강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의 기담, 비단 이야기. 비단으로 지은 옷은 누가 입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지은 예쁜 소설 <비단>에서 치명적으로 어여쁜 일본의 아가씨가 비단옷을 입잖아? 그 젊은 아가씨가 늙은 비단 패밀리 보스의 정식 아내는 아니고. 맞다. 일본의 화류계 아가씨들이 입는다. 그러면 제목 ‘묵동기담’이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

  1879년에 도쿄에서 내무성 엘리트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어린 시절 엄마한테 노래와 악기 연주 특히 샤미센에 재미를 붙였다. 위키피디아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데, 하이틴 시절에 병원에 입원해 몇 달을 보낸 후, 훗날 작가가 되는 친구와 함께 홍등가로 본격 진출한 모양이다. 이렇게 사는 바람에 당해년도에는 대학에 갈 수 없어서 아버지를 따라 상하이에 갔다가 돌아와 도쿄 외국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후 작품을 쓴다. 이 정도만 알면 되리라.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청소년이 홍등가를 드나들었으니 이게 공무원 집구석에서 가당한 일일 수가 없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가이는 그 시절의 즐거움이 나이가 들어도 그리웠던지 <묵동기담>에서 쉰여덟 살이 된 주인공 ‘나’ 오에 다다스로 하여금 스미다 강둑이 멀리 보이는 좁은 골목 속의 홍등가 여인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작품은 주인공 ‘나’의 일인칭으로 쓰였지만 독후감은 오에 다다스, 3인칭으로 쓰겠다.

  오에는 활동사진을 좋아하지 않아 1897년경 극장 간키칸에서 샌프란시스코 시가지 광경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관동지진이 있었던)1923년 이후에는 영화 말고 극장 간판을 유심히 보면 이미 영화의 스토리를 대강 다 알 거 같아서 간판 구경하는 것에 취미를 붙였는데,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도쿄 시내를 거닐다보니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유곽 진입로였다. 지진 전만 해도 유곽의 아가씨들과 삐끼들이 지나가는 행인의 모자를 빼앗아 손님을 거의 강제로 끌어오는 거친 행동도 했지만 이젠 순사 파출소에서 엄히 단속해 그런 경우는 없다. 그래도 삐끼는 여전하다. 이 동네에 유곽과 관련없는 유일한 곳이 헌책방. 오에의 단골집이기도 하다.

  그곳에 들러 오래 묵은 잡지 한 권을 둘러보고 있던 차, 예순 살은 먹어 보이는 사내가 보따리를 하나 가지고 들어오더니 무늬가 자잘하게 들어간 홑겹 옷과 소매와 몸통 부분을 서로 다른 천으로 만든 나가주반(전통 부인복에 사용하는 질기고 고운 비단)을 꺼내 보인다. 자, 기綺, 비단 나왔다. 오에는 별 생각없이 헌잡지 몇 권과 충동적으로 나가주반을 샀다. 통속소설의 표지를 싸면 좋을 것 같아서.

  헌책방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순사가 오에를 부르더니 파출소로 연행해간다. 불심검문. 군국주의 일본에서 순사의 취조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이를 위해 오에는 지갑 속에 인감증명과 호적초본을 가지고 다닌다. 이 두 개를 확인한 순사가 몇 시간에 걸친 취조를 마치고 방면하는데, 오에가 파출소를 나서며 하는 말이 “애초 헌 옷은 재수없는 물건이야.”


  오에가 순사들한테는 밝히지 않았지만 직업이 작가다. 쉰여덟 살. 메이지 12년 기묘생. <실종>이라고 제목을 붙인 소설을 구상했다. 다 쓰면 부족하지 않은 작품이 되리라는 약간의 자신감이 든다.

  극이라면 극중극이다. 소설이니까 작중작이라면 되겠다.

  주요인물은 다네다 준페이. 쉰 살 정도. 사립중학교 영어교사. 아내 죽고 3~4년 후에 미쓰코라는 여인과 재혼했다. 미쓰코는 정치인의 집에서 안주인의 몸종으로 지내다가 주인에게 속아 아이를 임신했다. 다네다의 친구이기도 한 집사 엔도가 일을 처리하기로 해서, 만일 미쓰코가 아이를 낳는다면 20년간 양육비조로 월 50엔을 줄 것이며, 다른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면 상당한 수준의 지참금까지 주겠노라, 단, 아이는 절대 이 집의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홀아비 친구 다네다한테 찾아가 아이 하나 달린 어여쁜 여자하고 결혼만 했다 하면 팔자가 핀다고 꼬드긴다.

  이렇게 혼인을 해 들어온 아들 다메토시에 이어 다네다의 딸 요시코, 아들 다메아키를 키우며 산다. 20년 후, 주인집에서 양육비를 딱 끊어버리자 이때부터 대학과 고등학교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의 학비며 생활비를 대기 위하여 다네다는 야간학교 두세 군데에 더 강의를 맡아야 할 지경이었다.

  다메야키는 운동선수가 되어 나중에 서양으로 나가 살고, 요시코는 배우 중에서 그냥 배우가 아니라 은막의 스타가 된다. 문제는 이렇게 성공하기 전에, 다네다가 피곤을 무릅쓰고 집에 들어가면, 그동안 일본 불교 특정 종파에 들어간 아내는 신도를 모아놓고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첫째 아이는 울퉁불퉁한 청년들을 모아 집이 들썩들썩하고, 요시코는 쭉쭉빵빵한 아이들을 데려와 날마다 파티를 여는지 도무지 시끄러워 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참다 못한 다네다는 쉰살이 되어 직장에서 퇴직하는 날 퇴직 보너스를 챙겨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잠적해버리고 만다. 전차에서 우연히 전에 자기집에서 하녀 일을 하던 현직 카페 접대원 스미코의 집에서.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되려는 건 아니었는데, 사정을 털어놓고 딱 하루만 신세를 짓자고 했다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여기까지 구상했고, 이후 어떻게 이야기의 결말을 지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


  작가 오에는 머리 속으로 별의별 구상을 해가며 초가을 저녁 산책에 나섰다. 근데 난데없이 소낙비가 우다다닥 내리친다. 일본의 초가을은 날씨가 사납다. 태풍도 겁나게 자주 오고, 소나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오에는 그래서 우산 없이 외출하는 법이 없다. 우산을 활짝 펴고 서 있는데, 이때 우산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전직 우츠노미아 게이샤 출신의 유녀 오유키. 오에는 시간도 많고, 어렸을 때부터 유녀 다루는 것도 익숙해서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유키를 폭포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그이의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오유키가 사는 곳? 다다미 몇 장짜리 작은 방 두개와 부엌 등이 있는 2층집. 당연히 영업집이다. 유곽.

  오에는 소낙비에 홀딱 젖었다. 미장원에서 방금 나온 오유키를 덜 젖게 하기 위해 우산을 그쪽으로 더 쓰게 했으니 완전 물에 빠진 꼴이었겠지. 오유키가 말한다. 옷을 좀 말려야 하겠으니 벗으시고 다른 걸로 갈아 입으세요. 오에? 당연히 유곽의 예법을 안다. 이 집에 있으면 있는 시간만큼 오유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오에는 오유키에게 돈을 건네며, 한 시간 정도로 치면 되겠지요?

  이후 오에는 처음엔 거의 매일 오후가 되면 이 집에 들러 밤이 될 때까지 쉰다. 말 그대로 쉬기만 했는지 쉰다는 핑계로 다른 것도 했는지, 전쟁 전의 소설이라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할 건 다 했다고 봐야겠다.

  나중에는 오유키가, 주인한테 빚 다 갚으면 나를 데리고 살아줘요, 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로 친해진다. 그러나 선수 오에는 이런 여성들이 진짜로 집안에 들어와 위협에서 벗어나면 갑자기 삶이 자유로워져서, 세상의 게으름뱅이에 나태한 주부가 되는 걸 자주 봐, 애초 그럴 마음은 없다.

  나이도 있고, 소설도 계속 써야겠고, 해서, 오에는 나중엔 3, 4일에 한 번 그러다가 한 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멀리하기 시작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처럼.

  오유키. 그저 낡은 비단, 나가주반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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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6-03-31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담이라고 냉큼 집었다가는 낭패였겠습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奇談 같기도 합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겠죠. 그런데... 가끔 궁금합니다만 지바고도 그렇고 오에도 그렇고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요?

Falstaff 2026-03-31 15:34   좋아요 0 | URL
맞앛요, 요정 님은 기담 좋아하시지요. ㅎㅎㅎ
지바고는 길기만 하고 재미도 없는 책이라고 읽었고요,
오에.. 오에가 오에 겐자부로라면... 작품의 구성이 벽돌 건물처럼 탄탄한 것이 놀라울 정도라서요. 게다가 사소설 적인 스토리에 일본 근대사, 반핵, 뇌 헤르니아 아들, 뭐 이것저것 다 합친 스토리가 또 괜찮아서요. 근데 제가 뭘 압니까, 그냥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
 
토볼트 이야기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최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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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발저는 1910년대에 자신의 도플갱어라고도 볼 수 있는 작중 등장인물 토볼트를 발견했다. 물론 아무나 도플갱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베르트 발저 가족 가운데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한 뒤에 우울증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보이고, 어머니는 정서적 문제로 장기 치료 후 사망, 남매들 가운데 첫째 카를은 화가, 둘째 에른스트는 정신병으로 갔고, 헤르만은 대학교수, 누이 리사가 학교 교사, 다른 누이 파니가 로베르트에게 권해서 로베르트도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다가 추운 날 산책 나갔다가 죽었다. 하필이면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니까 기질적으로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에 부모와 자식들은 그나마 조금의 지원은 받을 수 있었겠지만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야 했는데 유독 로베르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음은 당연히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자기만의 방도 없는 주제에 지금이나 그때나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써 언제 고료를 받을 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료만 바라보며 배를 곯고 있을 수도 없어서 스물일곱 살 먹었을 때 베를린에 가서 정말로 하인양성소에 들어가 하인 일을 배웠고, 진짜 하인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사실 이 시기에 하인으로만 일했던 건 아니다. 출판사 두 군데에서 사무직도 하고, 배우가 되려고 극단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며, 스위스로 돌아가 다른 사무직으로 일하면서 작품을 쓰는, 당시로는 드물게 월급을 받으며 글을 쓴 작가였다. 울프가 말했듯 문학은 돈 좀 있는 자재들이나 할 수 있는 리그였다는 뜻이다.

  이런 작가들은 자기의 삶 가운데 직업이 중요한 소재가 되겠지. 발저의 경우엔 그리 길게 일 하지 않았지만 상실레지아의 담브라우 성에서 귀족의 하인으로 잠깐 일한 전력이 상당한 문학적 재산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게 독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나도 여지껏 로베르트 발저, 하면 그의 장편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은 하인 말고 여러 (당시 사람으로서는)괜찮은 직장을 다니긴 했지만 견디지 못해서, 아마도 집안 내력인 정신질환의 불규칙적 발현 때문일 수도 있었겠는데 하여간,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여러 경우를 참아내지 못해 회사에 들어갔다가 곧장 때려치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너무 오버해서 읽는 지도 모르겠으나, 발저가 자신의 도플갱어 비슷한 인간 토볼트를 만들어낸 것이 이런 정신적 특이성에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걸 괜히 길게 써서 좀 보기 싫게 됐다.


  하여간 《토볼트 이야기》를 보면 1912년에 토볼트를 만난다.

  <낯선 사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일 수도 있고 산문일 수도 있는 픽션 속에서 발저는 고백한다.

  자신은 심각한 태만의 죄를 짓고 있고, 태만의 죄를 짓고 있어서 스스로가 자신한테 맞지 않는 엄청난 악당이란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한테 와 주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중이지만 한 사람이 고대하고 고대할수록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무엇인가를 찾는 듯 보이는 이상한 생면부지의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봐? 그렇다. ‘나’는 열린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를 차갑게 떠나 보내고 말았다. ‘나’는 ‘나’를 올려다보던 그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토볼트’라고. 짧은 산문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이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물음은 사라지지 않고 뒤에 다시 출현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마땅하겠다. 정말 영영 사라진다면 이런 말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이후 로베르트 발저의 분리된 의식은 ‘나’의 한 조각일 수 있는 악한, 버림받은 여인 혹은 지배자로 변용하여 토볼트와 지문 없는 희곡 형식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당연히 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논의가 아니라 다양한 관념과 관념이 이끄는 정신상 현상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으로 로베르트 발저의 책 세 권을 읽는데, 세 권 가운데 <타너 가의 남매>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어째 아직도 정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로베르트의 진가가 어떻든지 간에, 내 독서 생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로베르트 발저는 눈에 띄는 책이 있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가이다. 이번에도 도서관 책 치고는 거의 새 책이고, 본문도 76페이지에서 끝나지만 무려 다섯 소품이 들어있을 뿐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착각해 선택한 거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고, 부르주아의 파티 장면 같은 것도 색다르게 묘사해서 괜찮게 읽었는데, 이제 하루가 지나 독후감을 쓰려니 뭐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어제 앱 ‘북적북적’에다 왜 별점 4를 주었을까? 발저가 조금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작가 같고, 나도 포장 규모에 잠깐 현혹되었는지 모르지. 괜찮아, 괜찮아. 가끔 과대 포장된 사람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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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3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타너 가의 남매>가 발저의 대표작이 아닐까 싶어요..
<벤야멘타...>보다도 <타너 가>에 좀 더 발저의 생각이 여러 가지로 집약된 거 같아서요.

Falstaff 2026-03-30 15:26   좋아요 0 | URL
저도 <타너 가..>가 훨씬 좋습니다. 근데 우짰든 로베르트...는 이넘이건 저넘이건 그리 정이 안 가더라고요. ㅋㅋㅋ
 
저주토끼 (10만 부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양장)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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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라, 하면 괜히 빚을 진 거 같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을 수 있게 해준 것만 가지고도 그렇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이가 쓴 《저주 토끼》가 몇 년 전에 부커-인터내셔널 최종심까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가로서의 정보라가 SF 소설을 쓴다고 오해하고 있었고, 그 분야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동안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걸 누군가 도서관 이용객이 희망도서 신청을 해 새 책이 들어와 읽어볼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오, 괜히 읽었다. 꿈자리 사납겠다.

  SF? 천만의 말씀. 누가 SF 작가라고 그랬어? 맞다. 그렇게 들은 적 없다. 내가 괜히 혼자 그렇게 짐작했을 뿐. 이런.

  그동안 정보라, 하면 이이가 쓴 책이 《저주 토끼》인지 《엽기 토끼》인지 헛갈려 꼭 뭐였더라, 두 번 생각했다가 이번에 책 읽고 글 쓴 이에게는 안 된 말씀이지만 이젠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겠다. 꿈에 나올라…. 호러도 그냥 호러가 아니더라고.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는 특별하게 어린 아이 죽는 장면이 끔찍한데, 이이도 그런 모양이다. 독자한테 더 끔찍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그래서 어린 아이가 죽거나 초현상적인 이상 생명체 혹은 비생명체로 변신하는 장면이 다른 작가에 비해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끔찍한 상상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나처럼 선량한 마음씨로 평생 산 독자들로서는 이거 뭐 도무지 감당이 안 될 수준이라서, 거 참.

  표제작이자 소설집의 제일 앞에 실어 문패 역할을 한 <저주 토끼> 한 편만 그런 게 아니라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이다. <머리>, <차가운 손가락>, <몸하다> 등등. 도대체 이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이게 다 궁금하더라니까? 뭐 사는 거야 이이나 나나 별다른 게 있겠어? 하긴, 이러니까 사람의 곱창이 아스팔트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브로츠와프의 쥐들>을 그렇게 실감나게 번역했겠지만. 그것도 읽으면서 곱창으로 줄넘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야, 싶은 수준이었다.

  정보라님. 앞으로 작품은 읽지 않더라도 폴란드나 러시아 사람이 쓴 숨어있는 좋은 작품 열심히 우리말로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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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7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7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6-03-2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 최근 등단한(개인적으로 공선옥 작가를 마지노선이라 생각히나 요즘 등단작가로 인식될 수 있겠네요..ㅎㅎ) 작가들의 작품들은 읽을 수가 없고...읽다가 덮고...그렇습니다. 읽어야할 세계문학 작품이 넘칩니다.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의 작가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읽는 것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다 읽어가지만...명성보단 번역 때문에 진짜 짜증이 나긴 하는데, 이거 읽는게 최근 핫한 한국 여성 작가들 작품 읽는 것보다 저는 훨씬 만족도가 높습니다. 겉 표지 이쁘게 만드는 건 정말 요즘 출판사들 기가막히더라구요. 표지 보면 막 소장해서 읽고 싶게 만드는...디자인팀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Falstaff 2026-03-27 15:42   좋아요 0 | URL
뭔 말씀을... 그래도 공선옥 63년 엽기토끼띠 여사님 후배들이 세상에서 좋은 상은 다 받더구먼요 뭘. ㅋㅋㅋ

yamoo 2026-03-30 11:15   좋아요 0 | URL
흠...뽈님께서 보시기에 공선옥 작가와 비교해서 현재 정보라 김초엽 천선랑 등의 작가들이 읽을만한가요? 상을 받는 거하고 좋은 소설하고는 비례하지 않는 듯합니다. 뽈님은 한국 작가 소설도 많이 읽으시니 어떤가 싶네요. 저는 전경린 소설을 마지막으로 한국 작가 소설은 읽지 않고 있는데...표지가 너무 좋아서 몇 권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덮었습니다. 재밌었던 작가 작품 몇 권 추천해 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6-03-30 11:28   좋아요 0 | URL
저는 우리 작가들이 쓴 포스트모던 쪽을, 그쪽만? 하여간 게릴라, 파르티잔들에 관심 있습죠. 휴대폰으로 쓰는 게 영 적응이 안 설라무네.. 일단 여기까지만 하겄습니다. ㅎㅎ

2026-03-30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30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6-03-2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 딸이 읽고 무섭다고 해서 전 보류했어요 ㅎㅎ

Falstaff 2026-03-28 15: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따님이 효녀네요! 마음도 고운 거 같고요!!
 
사라진 모든 열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2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정소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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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년에 영국 켄트의 노울 하우스 Knole House에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방긋 웃으며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부르주아 귀족 따님. 아빠는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 색빌웨스트. 엄마는 외교관이었던 2대 색빌 남작이 스페인 무용수 페피타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서녀 빅토리아 색빌웨스트. 그러니까 적장자와 서녀 간의 결혼에서 출생한 무남독녀 외동따님이다. 위키피디아에서 비타의 부모가 4촌 사이라 했는데 그냥 편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복남매 간의 근친결혼이다.

  비타가 출생한 노울 하우스가 어떤 집인고 하면, 옛적에 대주교가 살던 궁전이다. 약 4백헥타아르 규모의 공원 속 5천평 규모의 건물이다. 전 잉글랜드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니까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었는지 감 잡히시지?


Knole House, Kent


  근데 딱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한사상속.” 딸에게 상속을 금하는 가문의 법칙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원과 저택과 남작 작위를 3대 색빌 남작 라이오넬이 자기 외동딸 비타한테 상속하지 못했으며, 색빌웨스트 가문 종친회가 모든 고정자산과 작위를 라이오넬의 동생 찰스가 이어받으라고 결정했다. 찰스 입장에서는 그려, 고기국물 떨어지기를 평생 기다렸는데, 당연히 넙죽 받아 자셔서 4대 색빌 남작 자리에 올랐다.

  이이의 생애를 소개할까 싶었다. 그러나 워낙 화려무비해서 짧게 써도 원고지 2백장 짧은 중편소설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 안타깝게 직접 위키피디아라도 검색해보십사, 권하는 수준에서 끝낸다. 아휴, 정말 웬만한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다. 딱 하나만 소개하자면 개방결혼을 했다는 것. 즉 혼인의 배우자 말고 서로 자유롭게 이성간, 동성간 연애를 배우자가 다 알게 비밀 없이 내놓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즐겼는데, 두 명의 아들은 과연 남편의 아이일까? 그것도 좀 궁금하다. 이이의 숱한 연인 가운데 역시 개방결혼 비슷한 결혼생활을 한 버지니아 울프도 들어 있다. 울프하고는 10년간 연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작품은 94세의 헨리 라이얼프 홀랜드 제1대 슬레인 백작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불멸의 존재로 인식할 만큼 오랜 세월 영국의 유력인사로 활약한 전설적 인물. 빛나는 대학시절, 매우 젊은 나이에 정부 내각에 참여해서 가터 작위와 바스 훈장, 인도의별 훈장, 인도제국훈장에 빛나는 쾌락주의자, 인문주의자, 운동 잘하는 사람, 철학자, 학자, 매력적이고 재치있는 인물, 진정 성숙한 정신의 보유자이며, 전직 인도 총독, 전진 총리를 역임했으며, 일체의 (알려진, 또는 발각난, 혹은 비밀스러운)스캔들도 없이 평생 사랑스런 아내와 금슬 좋은 사이를 유지하여, 순서대로 허버트(며느리 메이블), 캐리(사위 롤랜드), 찰스, 윌리엄(며느리 러비니어), 케이, 이디스, 여섯 남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손주, 증손주를 든 다복한 인간. 다복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것 가운데 왕만 빼고 안 해본 것이 하나도 없는 행운아. 진실한 귀족. 평생 검약해 그러나 가진 재산이라고는 런던의 저택과 약간의 현금과 은행 금고 안의 얼마 되지 않는 보석, 당시 귀족들이라면 그리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정도의 가공되지 않은 원석 수준의 보석이 전부였다.

  열여덟 살에 결혼해 여든여덟 살에 과부가 된 슬레인 백작부인이자 전 총독부인인 데러바 홀랜드는 남편과 전혀 달리 태생적으로 냉소와 거리가 멀었으나 백작과 70년을 살며 냉소의 얇은 막을 쓰는 법을 조금 배웠다. 여섯 자식이 보기에 부인은 자기 의견이라고는 없이 그저 남편이 이끄는대로 순종하며 남편의 지위, 세력에 따라 자신한테도 바쳐지는 자리에 지극히 어울리는 관례를 훌륭히 수행한 인물이다. 남편이 이제 죽었으니 부인이 얼마 남지는 않았겠지만 자기 생활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실행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게 여섯 자식들의 공통된 의문이다. 68세의 장남 허버트, 66세 참견쟁이 딸 캐리, 65세 불만쟁이 전직 육군 장군 찰스, 64세 최강의 인색꾼 윌리엄은 혼자 남은 어머니의 앞날이라는 문제에 무겁게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적인 의지가 없는 어머니. 어떻게 할꼬?

  저택은 세금 문제 때문에 틀림없이 처분해야 할 터. 작은 집에 혼자 사시게 하는 건 세상 사람들 보는 눈이 있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이들은 자식들이 순서대로 한 3개월 정도씩 모시는 걸로 하고, 모시지 않는 형제자매들은 월 2파운드 35실링을 추렴하자고 뜻을 모았다. 다섯째, 독신이자 천체天體,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전문가인 케이는 전혀 모실 마음이 없고, 역시 독신인 60세 이디스는 이제서야 자신 소유의 작은 아파트에서 하녀 한 명을 두고 벽난로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평생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이디스의 눈에는 여기 모인 친남매들이 시커멓고 늙은 까마귀처럼 보인다. 죽음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쿠, 독후감이 늘어진다. 빨리 가자.


  하여간 웨스트민스터 사원 지하에 남편 그리고 아버지인 헨리 홀랜드, 슬레인 백작을 묻고 저택으로 돌아온 가족들. 부인은 두 살 아래의 프랑스인 하녀 저누를 시켜 은행 금고에서 찾아온 보석을 가지고 오라 해놓고, 그걸 몽땅 2대 백작부인이 될 맏며느리 메이블에게 준다. 이걸 바라보는 맏딸 캐리하고 특별히 욕심이 많은 둘째 며느리 러비니어의 속이 어땠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부인은 얄짤없이 전부 다 맏며느리한테만 준다. 그게 가문의 전통이란다.

  이어서 2대 슬레인 백작이자 맏아들인 허버트가 앞으로 어렇게저렇게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 하고 설명하니까, 세상에 자기 주관대로 일을 만들거나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부인이 뭐라 하느냐면:

  “오, 잠깐만. 너무 앞서 나가는구나. 허버트, 내가 동의한 건 아니야. 난 혼자 살 생각이다. 햄프스테드에서. 봐 둔 집이 있단다. 30년 전에.”

  자녀들이 걱정하는 건 사람들의 시선. 평판 같은 거. 그걸 걱정하는 게 웃긴 막내 이디스. 뭐 그렇다.


  이리하여 백작부인은 하녀 저누만 데리고 무척 먼 거리는 아니지만 런던에서 당시 교통수준으로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쉽지 않은 햄프스테드의 호젓한 작은 집으로 옮겨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평생 처음 여유로운 시간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집주인 벅트라우트씨, 건축사 고셰런씨, 그리고 예술품 수집가 피츠조지씨, 이렇게 세 명의 늙은 남자들과 유쾌한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1부와 3부.

  2부에서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화가가 되지 못한 이야기. 다분히 버니지아 울프의 저작 <자기만의 방>과 흡사한 주장을 펼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나타난 헨리 홀랜드가, 자신이 헨리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가 선택해 결혼을 하게 된 것 같고, 여섯 아이들도 낳고, 사실 ‘키웠다’라고 주장하기엔 좀 그렇긴 하지만, 하여간 지켜봤고, 남편을 따라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총독부인의 지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와중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상한 헨리도 아내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고 신혼 시절에 말한 바 있고, 정말 그랬다.

  이런 생각을 “감정이 지글지글 끓으며 주조 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절, 복잡하고 모순된 욕망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런 (젊은)시절”이 아니라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단색의 풍경뿐이라 다 똑 같은 모양에 색채도 바래 흐려지고, 말 대신 동작만 남았을 뿐”(p.101)인 노년에 다시 생각해본들 뭣하리오.

  오히려 여든여덟, 그 나이를 먹도록 자신이 평생 남다른 은덕을 입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슬레인 백작부인이 거 참. 처음에는 헨리가 나타나 데버러 리, 이 촌 젠트리의 딸을 총독 부인으로, 정치 명망가의 부인으로 만들어주었으며, 노년에는 피츠조지가 등장해 금은보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물론 백작부인이 이런 걸 다 바라지는 않았다고 항변하건만, 유독 슬레인 백작부인에게만 이런 행운의 행성이 공전하는가 말이지.

  70년을 함께 산 절친한 하녀 저누의 삶도 부인은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의 열두번째 아이로 태어나 헐벗은 농장에서 헛간에 짚을 깔고 자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일을 제대로 못하면 매를 맞고, 자라면서 형제자매를 만날 수도 없었던 아이. 열여섯 살이 되자 갑자기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한 집안의 딸이 시집갈 때 몸종으로 따라가 평생을 모셔야 했던 여성.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슬레인 백작부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불만, 화가가 되지 못한 것만 한탄할 뿐, 자기 바로 옆에 있는 많고, 많고 엄청나게 많은 무산자들의 삶은 쳐다보지도 못한 생을 살았다. 부인이 어떻게 알아? 저누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런던 뒷골목에서 주머니칼을 쥐고 술 취한 자의 주머니를 터는 악동들 속에 마티스와 샤갈을 능가하는 예술혼을 가졌지만 자기들은 그런 줄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는지?

  비타 색빌웨스트가 노년을 바라보는 착 가라앉은 시각은 참 그럴 듯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자기만의 방? 그런 건 생각도 못해보는 당대의 다수, 21세기인 지금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무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심지어 내려다봐도 좋다!) 시각이 없는 건, 태생이 귀족 부르주아라서 그랬을 것이다. 슬레인 백작부인이 데버라 리였던 시절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뭐든지 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면, 그래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겠지. 있었겠지. 쉽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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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26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타 색빌웨스트....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작가네요..^^;;
궁금하긴한데, 찾아 읽고 싶지 않은....그런 작품입니다..ㅎㅎ 저는 뽈님의 리뷰로 대산할까 합니다..ㅎㅎ

Falstaff 2026-03-26 14:54   좋아요 0 | URL
이 책 제법 재미있습니다. 땡기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는 거지요. ㅋㅋㅋ
 
나의 칼이 되어줘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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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가 참 재미있었다. 처음 읽은 다비드 그로스만이었는데, 공감하는 것이 많아 꼭 다른 작품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고른 책이 <나의 칼이 되어줘>. 무엇을 고를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개가실의 이스라엘 작품 서가에 꽂힌 그로스만 가운데 ‘아무거나’ 한 권 골라 들고 나온 거였다. 속으로는 전에 읽은 <말 한 마리…>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겠지.

  열람실에 올라가 책을 펴니, 에그머니, 서간문이다.

  제일 싫어하는 형식의 소설이 바로 서간문. 다음이 일기체.

  서간문은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공유하는 특별한 것, 나와 너, 1인칭과 2인칭 사이의 내밀한 공간을 옅보는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일기체는 사실 더하다. 서간체나 일기체로 쓴 모든 것들, 소설은 물론이고 SNS까지ㅡ 그것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더러 보라고 쓰는 것일지언정, 마치 내가 관음증 환자라도 된 느낌이어서 거의 읽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읽더라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내 취향이 그런 걸 어쩌랴? 근데 이번에 제대로 걸렸다.


  문장 좋은 작가들이 형식만 서간체를 선택하고 편지 왕래가 계속될수록 작품의 스토리가 점점 무르익는 정상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도 읽기에 별로인데, 이 그로스만이 쓴 <나의 칼이 되어줘>는 470쪽 분량 가운데 적어도 100페이지 이상 넘기고 나서야 조금 읽을 만해지고, 약간 똘끼가 있는 주인공 야이르 아인호른이 자기 외아들 이도한테 볼거리가 옮아 (어디서 들었는지 성인이 볼거리에 걸리면 이후 발기부전 또는 불임에 걸린다는 확실한 믿음 때문에) 아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피신해서 ‘정신적인 연인’ 미리엄에게 보내는 길고, 길고, 길고, 긴 마지막 편지까지 와야 골을 파며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기 위해서는 대략 150페이지 정도까지 정말로 이를 악물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별점으로 이야기해볼까?

  처음엔 <말이 한 마리…> 정도의 기대를 하고 시작했다가, 곧바로 야이르가 쓴 편지들만 읽으면서, 편지라는 것이 서로 왕래를 해야 몇 백 통의 서간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야이르가 쓴 편지만 계속 읽게 되는 바람에, 편지를 받은 저쪽 미리암이 답신을 어떻게 했는 지 모른 상태에서 독자는 계속 야이르의 헛발질을 구경하게 된다. 도무지 오늘 쓴 것과 내일 쓴 것과, 일주일이 지나고 쓴 것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편지와 편지들이 엮여 하나나 둘 정도의 스토리를 꾸밀 생각도 하지 않으니 독자는 속으로 별점은커녕 책 읽는 걸 당장 집어치워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말이다. 그렇게 된다.

  그래도 여태 책 읽은 내공이 있지, 여기서 말 수 없다. 이런 똥고집 하나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가도 결론은 버킹검. 이젠 질려버리기 시작한다. 별 둘을 줄까, 하나를 줄까? 심지어 다비드 그로스만 이 작자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것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편지를 받을 여성 미리엄과 하도 “자유스러운 소통”을 하는 바람에 독자는 당장 이 책 읽는 걸 때려 치우라는 뇌 속 속삭임을 듣지 않을 방법이 없다. 속삭임, 속삭임. 때려 치워, 때려 치워, 때려 치워. 그래도 좀 더 견뎌보자.


  그렇다. 뭐든지 그렇듯이 힘든 덤불을 헤쳐야 뭔가가 있다. 드런 세상 사는 것도 다 그렇잖아? 이제 거의 다 겪은 거 같아 나름대로 위안을 받고 싶어 책을 읽었더니, 하, 책 읽는 것조차 삐죽삐죽한 모서리와 가끔 숨은 지뢰가 펑펑 터지는 골짜기를 건너고 나서야 뭔가 알 것 같은데, 우라질, 사람 사는 게 다 이렇지?

  견디다 못해 읽는 자리를 바꾸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 방으로. 아내가 만들어준 스탠딩 독서대에서 서서 읽는다. 아내도 눈치채고 옆에서 종알종알 말 시키며 방해하는 대신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열라 유튜브만 본다. 나는 점점 집중한다. 조금 지나니 찌질이 야이르가 드디어 예루살렘을 떠나 텔아비브의 러브호텔, 한 시절 전에는 무게있고 근사한 호텔이었지만 주인이 바뀐 다음에 러브호텔로 변해버린 숙소에 들어 미리엄을 향한 마지막 편지이자 마지막 주접을 떠는 장면을 시작한다. 의도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가 정말로 집중하게 되면서, 어라, 이게 무슨 일? 재미있어진다. 별 다섯 만점을 줄까? 하지만 앞부분에서의 만행을 감안하면 넷이 좋겠다.


  야이르 아인호른. 이름만 보면 동유럽에 살다가 전쟁 앞뒤로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유대인 가족처럼 보인다. 서유럽 쪽 유럽인이 쓴 소설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 동유럽이나 기타 지역의 유대인 집구석은 대단히 가부장적이다. 아인호른 집안도 그랬던 모양이다. 체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인호른 씨도, 지금은 요양원에 자기 발로 들어가 오직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젊은 시절에는 야이르가 사소한 잘못만 하더라도 얇은 허리띠를 휘리릭 풀어 마치 영웅 조로의 채찍처럼 휘두르기를 그리도 좋아했다고. 엄마는 아빠 하는 지랄이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선뜻 나서서 말리지도 못했고.

  그래서 야이르의 성격이 좀 이상해지기도 한 모양이다. 전형적인 찌질이이기는 한데 진짜 전형적인 찌질이의 형태, 자기 역시 심지어 외아들이기도 한 다섯살짜리 이도(하필이면 세종대왕의 진짜 이름하고 발음이 같은 ‘이도’)가 유치원 갈 시간을 맞추지 않고 늑장을 부린다는 이유로 비 철철 오는 12월 아침 내내 집 현관 밖으로 내 쫓아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놓았으면서도, 끝까지 이 잔인하기도 한 훈육을 아버지와 아들 간의 전쟁으로 인식한다니까? 아이가 폐렴에 걸리든 말든, 저체온으로 천천히 죽어가든 말든. 하여간 무지하게 꼴 사납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당한 폭행이 결국 야이르의 의식 속에 숨어 점점 자신을 망치고 있었던 것.  이게 470페이지 분량의 소설에서 말하는 것 전부는 아니다. 다른 것도 많고 많지만 그냥 말하기 편한 거 하나만 골랐을 뿐.


  4월 1일. 야이르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다. 동기동창회가 아니라 학교 동창회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야이르의 눈에는 오직 한 명만 눈에 들어왔다. 미리엄. 건장한 키와 당당한 태도를 가진 일곱살 연상의 부인. 야이르는 4월 3일에 미리엄에게 본명이 아니라 “야이르 윈드”라는 이름으로 첫 편지를 쓴다. 그러나 굳이 답장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러나 오직 자기 이야기와 미리엄의 이야기가 만나는 장을 만들고 싶단다.

  야이르는 서적, 희귀 도서 전문업을 한다. 그냥 책방 수준이 아니라 열 명의 종업원을 두고 전세계를 돌며 웬만한 사람은 구경도 못해본 책을 구입해 무지막지한 수수료를 붙여 다시 판다. 그래서 젊은 나이, 서른세 살에 크지는 않지만 예루살렘의 부르주아 동네에 집을 짓고 산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첫사랑 비슷한 아내 마야와의 사이에 아들 이도 딱 하나만 키운다. 마야 역시 커리어 우먼이다. 육아와 가사를 공평하게 나누어서 하니 얼핏 보면 괜찮은 남편이자 아빠. 그런데 왜 미리엄과 편지 왕래를 시작했을까?

  편지 왕래도 계속하면 정이 들고 급기야 사랑하게 될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야이르는 규칙을 정하자고 제안한다. 규칙이라기보다 편지왕래의 기한을 정하자고. 1년? 혹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워질 때까지. 말이 쉽지. 참을 수 없이 즐거울 때 그만둘 수 있겠어? 뇌에서는 주책없이 도파민이 쏟아질 텐데 그걸 멈춘다고? 그리하여 이들은 겨울이 되어 첫 비가 내릴 때까지의 기한을 정한다. 근데 나는 이 대목을 못 읽고 지나쳤다. 또는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이런 말이 나와, 그런가보다, 했다. 앞에서 비 내리는 집 현관문 앞의 부자지간 혈투를 소개했지? 그게 그 해에 내리는 첫 비였다. 괜히 그 장면을 소개한 게 아니지.


  앞에서 말했듯, 이왕 서간체면 이쪽과 저쪽의 편지를 다 볼 수 있어야 이야기 전개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로스만은 결코 미리엄의 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는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점점 야이르의 자기중심적 호소랄지, 허튼소리랄지, 달밤의 체조만 구경하는 식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은 엄연히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 다만 살갗과 살갗이 닿지 않고, 교통비와 음식값과 대실료가 들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는 서로를 무지하게 쓰다듬고, 주무르고, 액체를 교환하고, 엑스터시의 선을 넘는다. 이건 사랑 또는 불륜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당연히 야이르만 살면서 몸에 새긴 흉터가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미리엄도 마찬가지.

  그래서 처음부터 편지 왕래의 기한을 정한 거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재겠지만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서로 편지라는 형식이라 가능해서 편지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피처럼 흘리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정도는 알 나이다. 야이르가 서른세 살, 미리엄이 마흔이니까. 이들, 특히 야이르가 바라는 것도 진실을 피처럼 흘려 그걸 드러내고 누군가, 미리엄이 봐주는 일. 그래서 부탁한다.

  “나의 칼이 되어 주세요.”

  아오, 너무 길게 썼다. 너무 장황해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시겠지? 미안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의 문제점은, 앞부분의 골짜기를 인내하고 건널 수 있느냐, 하는 것. 건너기만 하면 좋은 경험을 하실 수 있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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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25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초장의 골짜기를 넘지 못해서 도서관에 다시 살포시 그대로 반납했습죠....

Falstaff 2026-03-25 16:17   좋아요 0 | URL
뭐 하루이틀 읽습니까, 다 그렇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