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차토를 쫓아서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베트남 참전용사 팀 오브라이언은 작품을 통해 베트남의 기억을 쏟아낸다. 그곳에서 자신이 보았던 다양한 참상, 동료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신체가 분리되고 내장이 나뭇가지에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손끝 하나 어찌할 수 없었던 속수무책. 다시 미국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음에도 이런 그림들이 머리속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는 공황의 상황으로 여전히 되살아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 이 지옥 같은 환영들. 오브라이언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선택했다. 정말로 자신이 그곳에서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스트레스장애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스트레스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안간힘이기 때문에.

  내가 이이의 작품을 집중해 읽은 건 아니다. 5년여 전에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들> 한 권을 읽었을 뿐. 그 책이 흥미로웠다. 내가 읽은 베트남전 소설과 조금 맥을 달리해서 미국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갖고 다니던 다양한 소지품이 재미있었다. 읽을 때는 거의 다 인상 깊었지만 지금 딱 하나 기억나는 건 마치 부적처럼 (열대 밀림에서) 목에 두르고 다니던 애인의 팬티 스타킹. <카차토를 쫓아서>를 읽으며 기억났던 건 잘라진 다리를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에게 진통제 대신 M&M 초콜릿을 입에 물려주는 병사.

  베트남 전쟁에 1년 동안 참전해 그 안에서 벌어진 참경으로 인해 스트레스장애를 겪어야 할 정도였으니 병사들은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했을 것이다.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바로 옆에서 먹고, 자고, 싸고, 박박 기고, 주먹질했던, 어쩌면 또다른 나였을 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푹푹 죽어 나가는 걸 그저 습관적으로 보는, 또는 보게 되는 일. 그리하여 작품마다 중첩해 묘사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다른 작가들보다 많겠지. 물론 집중해서 경험한 일들이 “거의 비슷한 광경을 집중해서 경험”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참혹의 장면이었겠지만 최하 신체 절단이 기본인 부상과 죽음, 아니면 생존이라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독후감을 읽는 분 가운데 정말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양해를 구한다. 당신들의 희생과 노고와 지금도 겪고 있을 지 모르는 고통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조금도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1968년 10월말이 가까울 무렵. 부대에서 카차토가 사라졌다. ‘카차토.’ 이탈리아 말로 ‘쫓기다’ ‘포획당하다’라는 뜻이라고 각주에 적혀 있다. 근데 어떤 부모가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지어 주었을까? 끔찍하게 멍청한 병사. 순진하고 포동포동한 얼굴이 원과 거의 비슷하게 둥글기는 한데 뭔가 미완성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마디로 모호하고 개성이 없다. 도무지 뭘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멍청했지만 때로는 용감한 짓도 했다. 참호에서 여자 베트콩을 꺼낼 때, 꼬마 녀석을 쏘아 죽여야 했을 때. 이제 생각해보니 멍청하고 모호한 표정이 꼬마 베트콩을 쏘아 죽인 다음부터 그랬는지 원래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카차토가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걸 고참이자 의무병인 닥 페럿에게 보고하고, 닥 페럿이 나이 많은 소대장 코슨 중위에게 보고했다. 코슨 중위. 이 양반도 조금 골치 아픈 인간이다. 직업군인 20년. 이 가운데 14년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보냈다. 막 소령 진급심사가 있기 바로 전에 뭔지 모를 사고를 쳐서 대위에서 중위로 한 계급 강등당해 지금 말단 보병부대의 소대장으로 새로 왔다. 전임 소대장 시드니 마틴 중위였는데 지금 막 전입해 온 실질상 주인공 폴 벌린 만큼 신참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신참의 특징? FM Field Manual 야전교범에 충실한 골통. 그래서 죽었다. 세계 전쟁사에 빛나는 베트남 전쟁의 땅굴에 기어들어갔다가 지옥으로 기어들어갔다.


  늙다리 코슨 중위는 마틴 같이 바보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땅굴 속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거길 기어 들어가? 내가 아니고 졸병들이라도 그렇지. 안 그래? 하면서 늙은 소대장은 야전교범을 애초에 깡그리 무시하고 수류탄이면 수류탄, 화염방사기면 화염방사기를 땅굴에다 쏟아 붓거나 화염을 방사해 깡그리 태워버린다.

  작전 중에 지휘관인 소대장이 직접 땅굴에 들어갔다고?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등장인물이 많이 나온다. 그들 전부 이름을 쓰면 서로 헛갈리니까 이렇게 하자. 거구의 A병사한테 시드니 마틴 중위가 땅굴을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안 내려가면 명령불복종 처분하겠단다. 적을 직접 대면한 상황이 아니니 즉결처분은 아니지만 귀대하면 군사재판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군화와 양말을 벗고, 군복도 벗어 팬티 바람으로 꾸역꾸역 좁은 땅굴 속으로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후, 그리 크지 않은 폭발음과 진동을 느낄 수 있었고 이후 아무 흔적이 나지 않았다. 소대장은 (재수없이 지목당한) B에게 가서 A의 시신을 가져오라 시켰다. 에잇 빌어먹을. B가 내려갔다. 이때 총소리 딱 한 방. 총알이 엎드린 B의 몸통을 위에서 아래로 관통했는데, 불행하게도 B의 숨이 붙어 있다. 그래서 아플만큼, 충분히 아플만큼 고통스러워하다가, 비명도 지르다가, 모르핀도 맞고, M&M 초콜릿도 먹어봤지만 너무 아파서, 비명도 지를만큼 지르다가 죽었다.

  그런데도 시드니 마틴 중위는 며칠 혹은 몇 주 지나 또다른 땅굴을 발견했을 때 병사들한테 그 안으로 들어가 수색하라 명령하니 그걸 들을 수 있겠어? 병사들이 죽어도 안 들어가겠다고 개기는 바람에 자진해서 들어간 거다. 들어갔다가, 죽었다. 소대장이 직접 들어가기 전에 소대원 전부에게 네가 들어가, 일일이 명령했고, 한 명도 따르지 않아 전원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대장이 졸병들 보는데 군화와 양말 벗고, 군복도 벗고, 빤쓰 바람으로 내려간 거다. 세상에, 근데 아무 문제없이 살아서 그냥 나오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병사들 고민 많게 생겼다. 그리하여 이들 가운데 한 명 스팅크가 세열수류탄을 꺼내 부대원 모두에게 한 번씩 만지라고 하고는, 본문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소대장이 땅굴에서 나오기 전에 그 안으로 집어넣은 거 같다. 그래서 시드니 마틴 중위는 죽었다. 각주에는 이런 상급자 살인이 드물지 않았다고 쓰여 있는데 믿을 만하다. 어쨌건 병사들이 보기에 새로 온 늙은 코슨 중위가 얼마나 존경스럽겠느냐는 뜻이다. 병사들도 그런 짓 하기가 얼마나 싫겠어.


  카차토가 튀었다. 폴 벌린에게 자기는 파리로 떠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보고 받은 코슨 중위는 지금 컨디션이 제로다. 만성 설사병에 걸려 골골거린다. 뭐라고? 파리? 프랑스 파리?

  “빠아리? 즐거운 그 빠아리?”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전쟁중인 베트남 전선. 사실 베트남전에는 전선이 따로 없다. 밀림 속 어디에나 적들이 있다. 그러니 미국군이 익숙한 전선 밀어 올리기와 전선 사수하기 같은 개념이 없다. 카차토가 아무리 멍청한 병사라도 이럴 때 자기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무기와 식량도 가져가야 하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아군이라도 만나면 서로 총질할 수 있는 매우 높은 가능성을 포함한다. 이것을 충분히 아는 늙다리 코슨 중위는 카차토가 속한 3분대원과 함께 카차토 수색 및 체포에 나선다. 아직 카차토는 탈영병이 아니다. 곧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까지는 무단이탈병이다. 탈영 처리가 되기 전에 잡아 원대복귀 시키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도 완전무장하고 카차토를 쫓기 시작한다.

  첫날 야영. 폴 벌린은 생각한다. 그냥 녀석이 그대로 나아갔으면 좋겠어. 녀석이 계속 가기만 하면 우리가 못 잡을 텐데. 폴은 카차토가 무사히 파리까지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긋지긋한 전장에서 해방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날 멀리 바위 위에서 쫓는 자들과 쫓기는 자가 서로 발견했다. 카차토가 멀리서 뭐라 외치고 있다. 너무 멀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쌍안경으로 그를 확대해서 입모양으로 짐작해보건대 “잘 있어!” 한다. 그리고 사라졌다. 가파른 지대를 지나 더 깊숙한 산맥 너머로 직진, 마침내 파리에 다다르면 진짜 그럴싸하겠다.

  추적 나흘째 전방 멀리서 카차토의 방탄조끼, 총검, 탄낭, 야전삽, 신분증을 발견했다. 버리고 간 것. 왜 그랬을까?

  엿새째, 2백미터 앞 아담한 언덕 꼭대기에서 이제는 민간인 티가 나는 카차토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서 있다. 스팅크 해리스가 그를 향해 전진한다. 당연히 소총을 들고. 점점 가까이, 그러나 조금 빠른 걸음으로. 순간, 다리에 뭔가가 걸린다. 가는 줄이다. 이른바 부비트랩에 걸린 거다. 수류탄이라면 레버가 떨어질 때 나는 것 같은 소리가 약하게 나고 이어서 뇌관 타는 소리가 들린다. 부대원 전원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갑자기 아드레날린을 폭발적으로 분비하기 시작하는 스팅크.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아드레날린 스팅크에게는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터졌다. 연.막.탄. 우리의 주인공 폴 벌린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저리고 말았다.

  오스카 존슨이 백기를 들고 전령 노릇을 하러 카차토에게 가서 그의 말을 듣고 왔다. 자기는 잘 지내고 있으며, 연막탄은 미안하게 됐다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하고 상냥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다시 날라버렸다. 라오스, 방글라데시, 인도의 델리, 이란, 터키, 그리스, 독일을 거쳐 파리까지. 장장 8,600마일. 13,840km. 그걸 걸어서? 아니, 걷기도 하고,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다시 기차 타고.

  라오스 국경에서 병사들은 투표한다. 여기서 그냥 복귀할 것인가, 파리까지라도 가서 무슨 수를 쓰든지 카차토를 잡아올 것인가. 다수결로 끝까지 쫓기로 했고, 놀랍게도 정말 한 명을 뺀 나머지 모두가 파리까지 쫓아갔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책을 중간까지 읽으면 알아챈다. 너무 황당해서. 바로 옆 밀림지대니까 라오스는 어떻게 이해하더라도 방글라데시를 거쳐 델리? 이건 폴 벌린, 해안 초소에서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경계하는 밤근무 중에 그가 하는 공상이겠지. 그런 거 있잖아? 만일 당신한테 1조 달러 정도의 현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비슷한 헛되고 헛된 공상. 그러면 아예 힐튼 호텔 로열 스위트 룸으로 옮겨 나보코프처럼 살아봐? 뭐 이런 거.

  끝까지 풀리지 않는 것. 팀 오브라이언은 그래서 ‘카차토’라는 별명의 병사가 탈영을 했는데, 정말 파리에 도착해 (탈영병이 행복하면 안 되는 법이니까) 그럭저럭 살았는지, 가다가 밀림 속에서 베트콩한테 사로잡혀 영화 <람보>에서 나오는 대나무 감옥에 갇혀 고문당해 죽었는지, 아니면 폴 벌린이 바지에 오줌 쌀 때 연막탄이 터지자마자 자기편 병사들의 기총소사를 받아 절명했는지 결코 밝히지 않았다. 결말의 선택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는 것인데, 뭐 그럴 필요 있나?

  끝까지 읽으면 그냥저냥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파리까지 가는 여정이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 맘대로 휴대폰 북적북적 앱에 별 셋 반 달았다. 도서관에 이이의 <미국 환상곡>을 희망도서 신청한 기념으로 읽은 책.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틴 에덴 1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런던은 11년 전에 중편 <야성의 부름> 꼴랑 하나 읽고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니 더 읽어볼 마음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특히 미국 소설을 읽으면 드물지 않게 이이의 작품을 짧게 인용하는 장면들이 있어 언젠가 한 번 읽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22년 가을에 <마틴 에덴>이 출간되고, 출판계를 선도하는 녹색광선이 책값 인상의 기치도 드높이 들고 있는지라 분량도 많지 않은 책을 두 권으로 분책한 다음에 표지만 딱딱하게 양장으로 분식하고는 한 권에 정가를 2만2천원을 책정하는 바람에, 내 돈 주고는 안 사겠다, 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었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먼저 신청한 이용자가 있어 책이 입고되자마자 읽지 못했다. 그후 예약, 예약, 상호대차 신청 등 온갖 이용자의 손을 거치더니 세상에나, 한 빌런이 이 책 1권만 빌려놓고 1년이 넘도록 반납을 하지 않아 사람의 헛심만 빼놓았다가 이제야 겨우 손에 들어 읽게 되었으니, 그동안 책방 독자 리뷰란에 열화와 같은 성원의 글을 읽어 마음 속에 작품에 대한 기대만 커지고, 커지고 또 커지고 있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 다섯 군데를 고를 때마다 거기 한 자리를 꿰차지 않으면 성질내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 도시, 범죄자들의 마음의 고향 오클랜드. 만을 가운데 두고 대륙쪽 도시가 오클랜드, 태평양쪽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원래 가까운 도시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 눈을 부릅뜨는 법이지만 아직 1차 세계대전이 터지지도 않은 20세기 초의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피아라고 불릴 본격적인 갱단 말고 동네 젊은 건달 패거리들은 지역에 따라 몇 집단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리에서 전혀 이상한 짓도 하지 않은 부잣집 도련님이 패거리한테 둘러 싸여 있었다. 워낙 곱게 자라 굳은 살 한 군데 박인데 없는 샌님이 설마 험악한 양아치하고 눈이라도 마주쳤겠느냐고. 그냥 몇 양아치들이 되도 않는 시비를 걸고 있었던 것이겠지. 지나가다가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 정의의 건달, 젊은 뱃사람이자 한 양아치 무리의 대표 고수 마틴 에덴. 마트가 보기에 그냥 가난한 양아치들이 귀한 집안 아들 하나를 심심해서 두드려 패려 하는 것 같다. 심심해서. 흠. 그러면 안 되지. 마틴이, 어이, 형제, 그러지 말고 그냥 가, 응? 귀찮은 듯이 손등을 휘휘 내저었는데, 네가 마틴 에덴이냐? 마틴이면 마틴이지, 우리 나와바리에 와서 눈에 힘주면 안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1대 몇으로 와다다닥 주먹싸움이 벌어져, 물론 마틴도 몇 대 얻어 터지기는 했지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몇 놈은 똥을 지렸고, 넋을 잃은 것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으며, 팔 다리 부러진 것들은 추풍령 낙엽만큼이더라고. 하이고, 덕분에 목숨까지는 아니고, 어디 한 군데 다친 곳 없이, 주머니와 지갑도 털리지 않고, 입고 있는 최고급 정장과 외투, 구두도 뺏기지 않은 귀한 집 자제는 너무도 고마워 자기 이름이 아서 모스인 걸 밝히고, 은인을 며칠 후 자기 집에 와서 만찬을 즐기자고 초대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마틴 에덴>의 첫 장면은 으리으리한 모스 저택을 방문하는 씬. 아서가 앞장서고 양아치와 뱃사람 특유의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뒤를 따르는 스무살의 마틴 에덴. 교육을 잘 받은 아서는 집에 가서 아버지, 형, 누나, 그리고 엄마한테 침을 튀며 마틴 에덴이 자신을 구해줄 당시가 얼마나 급박한 상태였으며, 양아치들을 제압한 마틴의 무공이 얼마나 절륜했는지 흉내까지 내가면서 설명을 해두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을 구해주었으니 부모, 누나, 형 입장에서 아무리 하찮은 출신의 양아치라도 밥 한끼 근사하게 먹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야 한다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어릴 때부터 받은 좋은 교육 덕택에 몸에 밴 예절이니까.


  이렇게 해서 저 밑바닥, 완전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도 하빠리 인생만 전전하던 마틴 에덴은 대도시 오클랜드에서도 크게 방귀 깨나 뀌는 법률가 모스 집안을 난생 처음 구경하는 기회를 얻는데, 세상에나, 계급 차이라니. 계급 간의 차이는 사람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멀어서, 의자에 앉는 방식, 말하는 문법, 발성하는 목소리의 크기, 대화를 이어가는 순서 기타 등등이 전부 다르다는 걸 마틴은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아, 저들과 나는 아예 다른 인간들이로구나. 그래, 그래. 이제 스무살. 뭘 알겠니.

  몇 마디를 하다가 이제는 회합의 메인 테이블, 식당에 들어 턱 앉은 자리가 자신보다 서너살이 많은 루스, 가느다란 가지에 핀 옅은 황금색 꽃이며 정령이고, 거룩한 존재이며 여신처럼 지상의 것이 아닌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 무지렁이 마틴이 그래도 천성적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있어서 루스에게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해, 루스를 위해 자신의 나머지 삶을 살 만한, 자신을 내던질 만한, 싸울만한, 죽음을 무릅쓸만한 어떤 것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때 마틴을 본 루스의 속마음도 분량이 만만치 않다. 그걸 다 쓸 수는 없고, 손목 위로 남자의 몸을 만져본 적 없고, 자기 손목 말고는 남자의 손이 거친 적 없는 스물세 살 숫처녀 루스는 상처투성이 손과 빳빳한 칼라에 익숙하지 못해 빨갛게 스친 목, 거친 생활로 얼룩지고 더렵혀진 젊은이의 거친 힘이 눈에 보이면서, 파바박, 찌르르, 전류가 시각을 통해 목구멍의 갈증을 유발하고 신경줄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아랫배까지 내려가 간질간질한 조그만 요동을 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장 두 손으로 마틴의 목을 잡고 그의 정열을 자신이 받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는 했지만 잘 배운 구중궁궐의 규수가 어찌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있었으랴.


  여기까지 읽으면 노동자, 노동자 계급 가운데서도 (당시 시각, 출연진 가운데 모스 가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듯) 더러운 동성애를 밥 먹듯 저지르고 기항지마다 현지처를 두는 천하디 천한 선원 출신의 무식한 남자와, 법률가 가문의 톱 클래스 부르주아 여성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희비극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그랬다.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이 그런 이야기 말고 또 뭘 쓰겠나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나처럼 무식한 것들이나 한다는 걸 모르는 채.

  마틴과 루스가 서로 사랑을 시작하면서, 작가의 방점은 이들의 사랑에 있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문학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제를 만들었다는 데 찍힌다. 루스가 책을 빌려주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IQ가 한 300 수준인 것처럼 보이는 마틴한테 문학과 철학, 자연과학 가운데서 특히 진화에 관한 독특한 관념을 세울 기회를 마련해준다. 모스 저택을 나서면서 마틴은 루스가 빌려준 책에서 시작해 공립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온갖 어려운 책을 섭렵해가며 자신의 주관을 정립해 나간다.

  다음에 수백 페이지를 할애해 전개되는 이러저러한 과정, 며칠씩 밥을 굶으며 글을 쓰는 마틴 에덴. 자전거와 정장을 팔고, 임대해 쓰는 타자기를 회수당하는데도 야박한 매부들은 상종도 하지 않는 고독한 천재작가. 오직 같은 노동자계급의 하숙치는 문맹 아줌마 마리아와 빨래방 전문가 조 같은 이들만 조금씩 돌보는 가운데, 후에 나타나는 천재 폐결핵 환자 시인의 등장과 죽음. 그리고 루스와의 약혼과 파혼 같은 건 다 생략하자.

  드디어 마틴 에덴은 한 시절 찬란한 별이 된다. 천재 작가. 혜성처럼 등장한 상식을 깨는 소설가, 단편작가, 에세이스트, 철학자. 세상은 마틴 에덴에 열광한다.


  그런데 독자의 눈에는 서걱거린다. 이건 처음부터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다. 루스와의 연애와 약혼, 파혼은 마틴 에덴의 천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중요한 포장길에 지나지 않았던 거다.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한 가난하고 무식한 천재가 눈을 떠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초기의 일천한 과정도 조속하게 마쳐, 극악의 상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작 몇 작품을 생산하고, 결국에는 성공하는 과정이다. 불쌍한 루스는 아차, 더 말하면 스포일러다.

  나는 이 책, 특히 2권을 읽으면서 에인 랜드가 쓴 <파운틴 헤드>의 눈부신 주인공 하워드 로크를 떠올렸다. 물론 마틴 에덴은 스무살부터 스물두셋까지인 반면에 하워드 로크는 20대에서 시작해 40대까지 올라가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사람들한테 나이가 무슨 소용. 오히려 철학적 사고만 놓고 보면 마틴이 하워드보다 몇 길이나 위인 것을.

  이 둘의 공통점은 개인주의자라는 것. 다른 점은 마틴의 경우, 변하지 않는 신념은 세상은 강한 자들이 이끌어야 하고, 나아가 강한 자들만 살아 남는다는 약육강식 법칙의 신봉자라는 점.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 천재적인 마틴 에덴이니까 이런 생각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속이 별로 좋지 않다. 어쨌거나 전지전능한 마틴 에덴은 그리하여 신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여성작가 에인 랜드가 창조한 개인주의자 하워드 로크가 남성작가 잭 런던이 창조한 마틴 에덴보다 57배쯤 더 좋다. 그러니 당신도 시간 있으면 <마틴 에덴> 말고 <파운틴 헤드>를 읽으시라.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 아니다. 한 천재의 궤적을 통해 문학 또는 예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유도하는 미끼 소설이다. 별로 잘 쓰지도 못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둘기 재앙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처음 어드리크를 읽고나서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도 마음에 들어 다음 작품을 골랐으니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었다. 근데 그게 대박. 이후 어드리크를 더 파 봐야겠다 싶어 한 편을 더 읽에 삼세권을 만든 후, 한꺼번에 어드리크만 꽈과광 연달아 읽기도 뭣해서 좀 있다가 읽자, 그랬는데 그만 잊고 해를 넘겼다.

  <비둘기 재앙>, 재미있다.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만큼 대박은 아닐지언정 책 뒤표지에 박여 있는 필립 로스의 주례사처럼 “상상력의 자유로움”이 놀랄 만하다.


  사건은 노스다코타주 원주민 보호구역 근처의 작은 도시 플푸토 외곽지역에서 발생한다.

  1911년 한 가정에서 부모와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다. 그러면 누군가가 죽인 ①살인범이 있을 건 당연지사. 플루토 시에서는 와일드스트랜드 가문과 부켄도르프 가문이 시가 생길 때부터 결정적 공헌을 한 권력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백인 가족의 집단 살인을 조사도 하기 전에 틀림없이 인디언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살인 현장을 좀 더 세심하게 조사했더라면 결코 그들의 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었을 터이나, 사실 이들은 아직 범행 현장을 가보지도 않았지만 ②두 가문의 수장들 생각은 확고했다.

  피해자 가족이 몰살한 건 아니다. 난 지 ③일곱 달 된 아기가 침대 모서리에 끼어 있는 것을 살인자가 발견하지 못해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아기는 선한 부부에게 입양되어 극진한 사랑을 받아 좋은 교육을 거쳐 동부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플루토 시에 돌아와 중요한 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주지 않겠다.

  선량한 인디언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년, 그리고 다른 인디언 커스버트와 ④세라프 밀크 이렇게 네 명이 우연히 만나 아시지낙과 홀리 트랙이 만든 수공예품 바구니를 팔러 가다가 하필이면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다. 이들이 보니까 사람들은 다 죽어 있고, 침대 모서리에 낀 아기만 살아 있어서 ③아기를 안고 젖이 잔뜩 불어 고통스러워하는 암소에게 가 젖을 빨게 해준다. 이래서 ③은 생명을 구한 것.

  하지만 이때 ②들이 이 현장에 도착해 인디언 네 명이 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법칙, 살인범은 범행 현장에 반드시 다시 와본다, 이들을 붙잡아 즉각 범인들로 확정해버린다. 그리하여 이들을 총으로 위협해 팔과 다리를 꽁꽁 묶어 수레에 태운 다음 숲을 돌아다니며 튼튼한 가지가 달린 나무를 찾아 여지없이 목매달아 버렸다. 거의 죽어갈 즈음 ② 가운데 유진 와일드스트랜드가 ④세라프의 목을 당기는 줄을 끊어 ④만 살려준다. 왜 그랬을까? 당연히 안 알려줌.


  그럼 ①은 누구지? 누구기는 누구야, 백인이지. 지금 내가 1911년에 있었던 백인에 의한 “부당한 정의” 사건을 먼저 써서 그렇지 작품의 시작은 1896년에 이어 1960년대의 한 시절이 나온 후에, 60년대 화자의 주인공 열네 살 먹은 에블리나가 (원주민 미치프족의 말로 ‘무슘’) 외할아버지 세라프 밀크가 해주는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진실이 아니라 1911년에 목에 밧줄을 걸었다가 살아난 유일한 한 명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진술한 것. 물론 독자는 이 사실을 저 뒤편에 가서야 알게 되지만. 그래서 이이가 살아난 진짜 이유를 내가 말하지 않는 거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무슘이 교수형 현장에 있었고 집행에 직접 참여했던 유진 와일드스트랜드의 친아들이라는 설도 있고 뭐 그렇다. 궁금하시라고 조금만 일러드리는 것.

  훗날, 아마도 1980년대 정도 될 걸로 보이는데 ①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다. 이것도 내 말을 믿지는 마시고. 딱 쓰여 있지 않지만 전사한 인물은 진짜 살인범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위의 범죄 사실을 정의에 입각해서 밝히는 것, 흠,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하여간 내가 읽기로는 그 사건을 앞뒤로 해서, 앞으로는 플루토 시를 만들기 위한 극한 조건에서의 탐험, 훗날 플루토 시의 유지 가문으로 말뚝을 박을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가 차파웨족과 프랑스 혼혈인 앙리와 라파예트 피스 형제의 인도로 목숨을 건 서부 개척부터, 개척 당시엔 합류했다가 다시 동부로 돌아가 공부를 더 해 플루토로 온 판사/변호사 가문, 그리고 무엇보다 목 매달렸다가 살아난 세라프의 손녀까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실꾸리를 푸는 재미에 있다. 위에서 말한 가문의 후손들이 전부 등장한다. 등장하는 선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지지고 볶다가, 이혼(당)하고, 납치도 하고, 사제의 연도 맺으며, 옛 시절의 진짜 사연에도 불구하고 후손이 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한도 끝도 없는 인연의 뒤엉킴. 뒤엉킨 세상이 뭐야? 그게 바로 사는 일이지, 사는 게 별거냐?


  게다가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주인공 격인 에블리나와 무슘. 목 매달렸다가 살아남은 ④세라프 할아버지 말야, 이 두 사람이 독자를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 특히 무슘이 자기 친동생 샤멩과, 어렸을 때 소 뒷발에 채여 왼팔이 부러져, 부러진대로 뼈가 비틀렸어도 소도시 수준으로 최상의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는 새멩과와 더불어 플루토 시의 주임신부 캐시디를 놀려 먹는 대목이, 정말, 죽여준다.

  캐시디 신부라고 얌전히 가만 있을 수 있나? 세월이 흘러 바이올리니스트 샤멩과가 죽어 진혼미사를 집전하는데,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고인의 친형 세라프를 추도하는 강론만 드립다 해대는 거다. 조금 정리해서 본문을 앞뒤로 다시 배열해 보자면:

  “세라프 밀크, 원죄 없는 잉태와 동정 출산에 의심을 표해 그의 영혼이 어쩌면 지옥에 갔을지 모르지만 동정녀 마리아가 그를 돌봐주고 계실 겁니다. 비록 ‘나는 마리아가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오.’라고 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세라프는 지옥이 무한하지도 아주 뜨겁지도 않다는 믿음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남동생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악마의 불꽃을 싹 틔우는 바이올린을 켜고 그 활에서 거룩한 고통을 쥐어짜면서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루이스 어드리크가 희극적인 묘사도 이렇게 잘 할 줄은 내 미쳐 몰랐다. 그래, 이건 알려드리지. 술을 워낙 좋아하는 캐시디 플루토 성당 주임신부는 세월이 조금 흐르면 그깟 사제직 때려치우고 큰 도시로 진출해 미국산 와인이던가 뭔가를 일본 등지에 수출하는 일을 해 큰 부자가 된다. 술 하나는 실컷 마셨겠지? 지방간을 넘어 간경화나 안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둘기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의 뒤쪽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뒤편의 비둘기 재앙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지는 직접 궁리하시는 걸로 하고, 진짜 19세기 말, 1896년에 있었던 비둘기 재앙.

  이때의 비둘기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흔히 보는 유해조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지금은 거의 멸종됐다고 하는 비둘기 떼를 가리킨다. 마치 메뚜기떼처럼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노스다코타주의 농장마다 밀 모종, 호밀, 옥수수를 먹어 치우고, 과수 꽃송이는 물론이고 왕겨까지 하여간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고갈시켰다고 한다. 노스다코타 지역의 인디언과 백인 농장주는 시즌이 되면 이 비둘기 떼를 없애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획해,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고, 비둘기 볶음탕도 해먹고, 백숙, 전골, 매운탕, 하여간 먹다, 먹다, 먹다가 지칠지언정 전체 개체수로 치면 새발의 피, 티도 나지 않았단다. 그리하여 나중에 먹지도 않고 보이는대로 다 잡아 죽였는데, 그러면 뭐해, 널브러진 비둘기 시체는 또다른 비둘기가 포식, 영양보충을 한 비둘기들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을 할 정도였다니. 그리하여 1896년에는 무슘의 의붓형이 주임신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교구민 전부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미사할 때 입는 의례복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미사경본을 챙겨 성요셉 성당에 모이라고 해서, 형제자매들을 총동원해 벌판으로 나가 하느님께 열심 기도를 할 정도였다는 거다. 이 장면이 책의 제일 앞에 나온다. 비둘기 재앙이 무슨 계시록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계시록적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백인에 의한 원주민 살해, 즉 부당한 정의를 계시록적 비극이라고 판단하면.

  결말은 어떻게 될까? 당연하지. 어떤 형태로든지 1911년의 비극은 해소되어야 한다. 그럼, 근 70년 이상이 지나 와일드스트랜드와 부켄도르프 가문의 후손들이 인디언 후예들에게 무릎 팍 꿇고 사과라고 해야 하나? 흠. 책에서는 아니다. 그걸 해결해주는 건….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6-02-17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뒀는데 평이 좋아서 기대가 됩니다 배고파질 때까지 웃게 만든다니😄 배부를때 읽겠습니당ㅋㅋㅋㅋ

Falstaff 2026-02-17 21:1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이 책 좋았는데요,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 클럽>이 좀 더 좋더라고요.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최측의농간 시집선 3
심재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63 토끼띠 문예콘텐츠 창작학과 교수 심재휘의 시집. 2002년 문학세계사에서 나온 책을 2017년에 복간한 시집이다.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시집선 시리즈를 모두 일곱 권 찍었는데 처음 세 권은 이 시집처럼 이미 절판된 시집을 복간한 것으로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판사가 마지막으로 출간한 책이 2020년에 찍은 책이다. 짐작하건대 좀 어려운 처지를 당한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심재휘는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시들이 전위를 향해 용맹돌진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 시쓰기를 고수하는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대표적 한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한테 익숙한 서정시인이라는 의미겠지. 이런 의미에서 제일 앞 순서로 실린 시 전문을 읽어보자.



  남쪽 마을을 지나며



  서러움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참나무 숲을 지나자 가을 저녁은

  목화밭 너머의 봉분들과 참

  다정해 보였습니다

  마을은 낡은 그림자들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이었습니다

  엉겁결에 전생 하나를 밟고

  신발이 더러워지기도 했습니다만

  무덤 같은 신발로 오래 걷다 보면

  낯선 곳에서도 겨울은 맞을 만합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탐욕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과처럼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조금 서러웠습니다  (전문. p.13)



  시를 척, 읽으면 탁, 하고 알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국한해 말하자면 문제가 있다. “오늘과 나는 서로 이복형제 같아서 / 조금 서러웠습니다” 제목이 남쪽 마을이라고 해서 참나무 숲이 있는 산골 지나 초행길 마을로 여길 수도 있고, 그걸 팍 확장해서 그냥 사람 사는 판이라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다. 근데 왜 오늘과 내가 이복형제 같았을까? 그게 왜 서러웠을까? 이복異腹이라니까 오늘을 낳은 엄마하고 내 엄마가 달라서? 그걸 앞에서 수식하는 절節이 있다. “단지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에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처럼” 나의 또다른 고민은 이 절 앞에 “단지”는 왜 썼을까, 하는 것인데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러면 [오늘 = 잎 다 진 키 작은 나무] 그리고 [나 = 탐욕스럽게 매달린 모과]라고 볼 수 있을까, 없을까? 만일 이 등식이 참이라면 바야흐로 시가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절 또는 시간 혹은 63년 토끼띠가 지내온 현대사와 오늘의 간극이 존재해버릴 수도 있다는 거. 에이, 물론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쓸데없는 고민만 열라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없는 머리 숱만 더 듬성듬성해지지.

  학교 졸업한지 몇 년인데 아직도 이렇게 시를 읽어야 하느냐고 타박하지 마시라. 이 화두를 깨지 못하면 시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나? 물론 내 경우겠지만 시 한 수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병맛이라고? 그럼 할 수 없고.


  독자들이 이 시집에서 제일 인용을 많이 하는 시가 <편지, 여관, 그리고 한평생>인 것 같은데 전문을 인용하려면 좀 길다. 모두 7연으로 되어 있는 시. 이 가운데 처음 세 연만 가져와보자.



  후회는 한평생 너무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

  시장 입구에서는 우체통이 선 채로 낡아갔고

  사랑한다는 말들은 시장을 기웃거렸다


  새벽이 되어도 비릿한 냄새는 커튼에서 묻어났는데

  바람 속에 손을 넣어 보면 단단한 것들은 모두 안으로 잠겨 있었다


  편지들은 용케 여관으로 되돌아와 오랫동안 벽을 보며 울고는 하였다  (부분. p.18)



  시를 읽는 건 독자 마음인데, 그렇다고 다 마음대로 느끼라는 건 아니지 싶다. 1연에서 “세월이 더러운 여관방을 전전하는 동안”이 어느 동안일까, 나는 모르겠다. 이 시에서 여관방의 이미지는? 피곤한 나그네의 심신을 쉴 수 있는 여관방이라기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머물 수밖에 없는 누추하고 슬픈 장소의 분위기가 풍긴다. 그러니 이 방에 머물며 많은 편지를 썼지만 편지들이 수신인한테 제대로 가는 대신 다시 시인이 머문 여관방으로 회송된 것. 이 시도 읽으면서 독자가 감지할 수 있는 건 이미지, 여관과 편지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일 뿐이다. 서정시의 외피를 입은 반half구상시라고나 할까? 물론 시를 읽으면서 메시지를 얻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미지만 포착할 수 있어도 그게 어디냐. 다만 시의 무대인 여관이 아주 오래 전에 신경림이든가 정호승이 즐겨 쓰던 시어 “여관잠”하고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던 건 왜 그랬을까?

  독자마다 시를 읽으며 느끼는 것이 다른 이유는 시인이나 독자나 다 개별적이기 때문이겠지. 그게 어떻게 교집합을 이루면 시인하고 궁합이 맞는 거고, 아니면 마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이 시는 읽으며 꼭 인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들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스는 잠그고 나왔을까 또

  난로는 켜 둔 것이 아닐까 병이

  더 깊어지면 말입니다

  발로 비벼 끈 담뱃불이나 이별 같은 것들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데요 그게 말입니다

  달아오른 난로나 끓어 넘친 가스레인지

  한동안 외로움에 지지직거리던 TV의 마음에도

  요새는 안전장치가 있어서 제풀에 꺼지더라

  이 말입니다 새카맣게 타버리지는 않더란 말입니다

  꼭 죽지 않을 만큼만 죽고 싶다가도

  금방 멀쩡하더란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다시 불이 붙더란 말입니다

  세상 도처에 깔린 안전장치들

  너무 안심이란 말입니다  (전문. p.69)



  이 양반이 훗날 낼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에서 그러듯이 이 시집에서도 구질구질하게 첫사랑 이야기를 제법 한다. 왜 구질구질하냐고? 첫사랑. 그런 거 오래 기억하지 말라. 우연이라도 만나지 말고, 꿈에서도 마주치지 않는 게 신상에 편하다. 잠꼬대라도 했다가 옆에서 침흘리고 자던 마누라 들으면 곡소리난다. 정말로 다시 만나 사고치면 그거 보통 일 아니다. 농담이라도 입에 올리지도 말고 살아라. 근데 심재휘는 그러지 못하겠던 모양이다.



  첫사랑



  장충동에 비가 온다

  꽃잎들이 서둘러 지던 그날

  그녀와 함께 뛰어든 태극당 문 앞에서

  비를 그으며 담배를 빼물었지만

  예감처럼 자꾸만 성냥은 엇나가기만 하고

  샴푸향기 잊혀지듯 그렇게 세월은 갔다

  여름은 대체로 견딜 만하였는데

  여름 위에 여름 또 여름 새로운 듯

  새롭지 않게 여름 오면

  급히 비를 피해 내 한 몸 겨우 가릴 때마다

  비에 젖은 성냥갑만 늘었다 그래도

  훨씬 많은 것은 비가 오지 않은 날들이었고

  나뭇가지들은 가늘어지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늘어지기는 여름날 저녁의 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후로 많은 저녁들이 나를 지나갔지만

  발아래 쌓인 세월은 귀갓길의 느린 걸음에도

  낡은 간판처럼 가끔 벗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른 꽃잎에게 묻는 안부처럼


  들춰 보는 그 여름 저녁에는 여전히

  버스만 무심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별도 그대로였다

  비가 오는 장충동 네거리 내 스물두 살이

  여태껏 그 자리에 서 있던 거였다  (전문. p.100~101)



  스물두 살의 비 내리는 장충동 공원 바로 옆 태극당의 첫사랑 그녀. 이 첫사랑이 정말 첫사랑 그녀를 향한 것인가? 이렇게 묻지 말자. 그냥 스물두 살의 첫사랑이라도 충분히 좋으니까. 괜히 시인의 22세 시절, 재수없게 혁명과 투쟁의 구호와 분신 시위의 시대에 살던 책무 같은 걸로 포장하지 않아도 얼마나 어여쁘냐, 그렇지?

  근데 그렇게 생각해도 좀 문제가 있다. 심재휘는 첫사랑도 참 여러 번 한다.

  <자작나무 흰 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위하여 서울로 버스타고 올라갈 때 “그때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이를테면 / 눈 맞으며 손 흔들어주던 사랑도 이제는 / 쌓이고 녹고 하여 또 내일처럼 낡아갔는데”라고 노래하고, <나무 계단에 관한 오래전 이야기>에서도 “내가 손을 잡았던 사진관집 딸이 다만 어디쯤에서 홀로 늙어가듯”이라 노래했는데, 그것들은 사랑 아니었나?

  하긴, 시인들한테는 다정도 병이니까.

  심재휘를 읽으며 다시 느낀다. 시 읽는 게 쉽지 않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2020년 작품. 김희선은 두 권의 소설집 2019년 《골든 에이지》와 2021년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사이에 이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냈다. 김희선의 단행본은 챙겨 읽는 편이다. 2019년부터 2021년, 이 시기에 김희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금 이르게 찾아온 갱년기? COVID-19 감염? 아쉬울 만큼 이 3년간의 결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긴 일개 독자가 아쉬워해봤자 중요하지 않겠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쩌면 역작 <무한의 책>을 낸 이후 그에 필적하는 다음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 수도 있고, 장편을 썼으니 좀 쉬는 의미에서 가벼운 것들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됐을 수도 있겠지. 뭐 내가 아나,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지.


  작품은 모종의 죽음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의 사무실에서 시작한다. 책상, 의자, 집기, 캐비닛 등 모든 비품과 사무실의 색깔까지 전부 회색인 곳. 이곳에 비가 내리고 회색 레인코트를 입은 책임자(처럼 보이는 인물)이 회색의자에 앉아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이 죽음에 관한 사업을 하는 책임자(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사실 시를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해서 사무실에 한 짝에 5백만원 하는 앤올롭슨사의 하이엔드 스피커를 갖춰 놓았다.

  그가 신봉하는 말: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백만 명을 죽이면 혁명이 된다.”

  또 이런 표현들.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하라.”

  이런 문장이 첫 세 페이지 안에 몰려 있다. 독자가 읽기에, 세상에, 클리셰 만땅이네.


  큰 호수, 아마도 소양호나 충주호 같은 곳을 연상하면 비슷한 가상의 월상호. 월상시도 좋고 월상읍도 좋은데, 이곳에서 월상호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 다섯 곳의 마을이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두 곳은 출생 없이 사망이나 전출만 발생해 마을이 소멸됐고 이제 세 곳이 남았는데 이 가운데 여덟 호, 열 명의 주민만 남은 팔곡마을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벌어진다. 이걸 제일 먼저 눈치 챈 사람은 연락선을 타고 우편물 배달을 하는 우체부 김씨.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평소엔 우편물을 선착장에 자신이 설치한 우편함에 넣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했지만 이날은 직접 팔곡마을에서 내려 마을 이장 피 노인 집으로 향한다. 우편함에 주민들이 찾아간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문이 잠겨 있지 않아 곧바로 마당에 들어갔지만 인기척이 없다. 그래서, 워낙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 집안에 험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염치불고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봤다. 그랬더니 피 노인이 잠들어 있는 듯 이부자리가 두둑하게 솟아 있어, 이크 정말 큰일인지 모르겠군, 하면서 이불을 들춰보니까 옥수숫대를 마치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거였다. 이불 속에 왜 옥수숫대가 들어 있다고 했을까? 안 해도 좋을 것 같은 묘사를 앞으로도 자주 읽을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

  기겁을 해서 집 밖으로 나온 우체부는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에도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거 수상한데 싶은 우체부 김씨. 그는 월상읍에 돌아와 파출소 소장 박경위에게 신고하고, 일단 민원을 접수했으니,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 박경위는 자기 생각에 무슨 일이야 생겼겠느냐만 그냥 지나쳐버리면 또 인터넷에 의견 달고 지지고 볶을 지도 몰라 시간이 남으면 뒷산에라도 올라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직접 팔곡마을로 향한다. 퉁퉁한 몸집에 손목에는 의자 모양과 영어로 “New Generation”이라는 문신을 한 연락선 선장한테 특별히 부탁을 해서.

  팔곡마을로 가는 길에 선장은 우체부 김씨와 박경위에게 가는 동안 재미는 없지만 비디오라도 보라고 하나 틀어주는데 제목이 “죽음을 이기는 법”에다가 월다잉 협회에서 그냥 틀어달라 부탁한 거란다. 비디오에는 쉬운 얘기로 자살을 선택한 중환자나 노인들이 자유 의사로 죽을 수 있는 암스테르담이 나오고, 이어서 우리나라 종로3가 탑골공원쯤 되는 노인 밀집 지역을 대비시킨다. 이걸 보면서 독자들도 쉽게 알 정도로 박경위는 일종의 최면에 걸려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우체부 김씨가 막아서고, 드디어 이들은 팔곡마을에 발을 딛는데, 때를 맞춰 먹구름이 밀려와 시간이 아직 이르건만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범죄와 국가 수준의 음모론으로 확장한다. 구성은 다분히 김희선 답지만 문제는 문장이다. 어째 읽는데 문장이 입 속에서 버벅거린다. 여태 일곱 권의 김희선을 읽었고 이번이 여덟 번째. 이 책의 문장이 제일 아쉽다. 2019년에 잡지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서 책으로 엮은 건데도. “무엇보다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바램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