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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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라뇨의 초기작. 이전에 시집은 몇 권 출간했지만 이 작품 이전의 소설은 친구 안토니 가르시아 포르타와 함께 쓴 것 하나만 볼라뇨의 연표에 나와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이 내가 읽은 몇 번째 볼라노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꽤 읽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눈에 힘주고 이이의 연표를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내가 이전에 읽은 책을 보면 작품의 주인공들이 멕시코시티에서 10대 후반의 나이로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전위 문학, 특히 시 장르에 깊이 빠져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멕시코시티를 벗어나 북아메리카와 유럽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범죄에 연루되는 스토리가 이이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명이 길어 라틴 아메리카에 잠입해 살아남은 나치 잔당과 하여간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이 되는 작품들.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설킨 것도 있었겠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볼라뇨는1953년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이이의 작품 속에서 칠레 출신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작가 또래의 칠레 사람들이 항용 그러했듯이 피노체트에 의한 쿠데타 전후로 멕시코를 거쳐 유럽 각지에서 살다가 같은 언어를 쓰는 스페인에 정착한 작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968년, 열다섯 살 때 가족 전부 멕시코시티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후 다시는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는 한편 이 또래들이 왕왕 그러하듯이 입에서 젖내가 가시지 않은 전위시를 지었나 보다. 1973년에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하기 위하여 조국 칠레에 갔다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발생하는 바람에 체포되어 빵에 들어갔는데 어릴 적 친구를 만나 74년에 풀려났다고. 이후 멕시코시티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아방가르드 문학운동에 가담했다. 이런 경험들이 볼라뇨의 책 속에 다 들어가 있다. 책을 웬만큼 읽은 다음에 연보를 읽는 것도 재미있구나. 아, 볼라뇨가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야만스러운 탐정들>, <칠레의 밤> 같은 걸 썼구나, 이런 걸 알아채는 재미.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를 어느 정도 읽은 후에 첫번째 작품 <루공가의 치부>를 읽을 때 각 등장인물의 족보가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것과 유사한 잔재미가 있다.


  <아이스링크>는 한 건의 살인사건을 놓고 세 명의 화자 ‘나’가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플롯이다. ‘나’의 서술이 아니라 ‘나’의 내레이션.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나’가 아니라 ‘저’이고 따라서 존칭을 사용한다.

  레오 모란, 가스파르 에레디아, 그리고 엔리크 로스켈리스.

  레오 모란과 가스파르 에레디아는 각각 열아홉 살과 스무 살 때 멕시코시티 부카렐리가街에서 패기 넘치는 시인들이 상주하던 모호하고 수상쩍은 청춘의 공간에서 처음 만난 사이로, 전위 시를 써서 서로 돌려 읽고 비평하는, 요새 말로 합평이란 걸 했던 동아리 멤버였다. 모두 새파란 청춘이었고 겁 없는 십대 시인이었으며 전부 자기들이 천재인 줄 알았던 시기.

  레오는 일찌감치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시작해 스페인으로 건너와 팜플로나, 사라고사, 바르셀로나에서 노점상으로 푼돈을 벌다가 우연찮게 Z시로 굴러왔다. 해변 관광도시 Z시에서 장신구 가게를 열고 수완을 발휘해 돈을 조금 모아, 이어서 ‘카르타고’라는 옥호의 술집을 인수하고, ‘델 마르’ 호텔,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 그리고 다섯 개에 이르는 상점도 접수하는 수완을 보여, Z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성과 불 같은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3년만에 점잖게, 여전히 우정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갈라섰다.

  레오가 사업차 바르셀로나에 가서 피로를 풀려고 불타는 돼지 껍데기에 쐬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 우연히 노점상을 하는 칠레 여자 모니카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에 같이 전위시를 쓰던 가스파르 에레디아가 바르셀로나에서 거지꼴을 못 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Z시로 와서 자기를 찾으라고 말하고는 잊어버렸다. 근데 정말로 모니카가 가스파르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 Z시에 도착해, 사람 사이에 척지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업가답게 가르시아에게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5월부터 9월까지 일하라고 했다. 반년 일하면 멕시코시티로 돌아가 몇 달 버틸 수 있게 괜찮은 급여를 주고 밥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게 해줄 터이라고. 가스파르는 만족한다. 스페인 체류 허가증도, 취업 허가서도 없는 외국인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다.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 이건 실제로 로베르토 볼라뇨가 야간 경비원으로 일했던 캠핑장 “에스트레야 델 마르”의 라틴어 식 이름이라고 역자해설에 쓰여 있다.


  세번째 화자 엔리크 로스켈러스는 163센티미터의 키에 뚱뚱한 몸집의 카탈루냐 남자이며 사회주의자다. 노동과 정의와 진보를 믿는다. 이렇게 말하면 노동, 정의, 진보가 한 뭉텅이로 다 옳은 거 같지? 착시 현상이다. 이에 관해서는 길게 쓰지 않겠다. 세상에 “다 옳은 건 하나도 없는 법이다.”라는 한 마디로 넘어가자. 전직 사회당 Z 시장 필라르 빌라마르 여사의 최측근으로 Z시의 사실상 최고 권한을 휘둘렀다. 22세에 대학에서 심리학 학위를 취득하고 한때 부적응 아동시설에서 심리상담원으로 일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사회당 동지 필라르가 불러 진취적 열정과 야망,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위하여 Z시로 와서 지난 2년 동안 시청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근육이요 두뇌였다고 자부한다. 이런 인간이 꼭 당하는 것이 있다. 다른 직원들의 질투와 원한을 샀다.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알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마르고 비관적인 인간이 된 것 같다. 이이의 사무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수료증 액자의 종류를 쓰려 해도 A4 반 장은 너끈히 채울 듯하여 여기에 옮기지 못할 정도.

  그런데 한 행사에서 누리아를 만난 것이 사달을 만들었다. 누리아 마르티. 코펜하겐에서 열린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스페인의 위상을 높인 스타. 스타인 것도 모자라 여태 엔리크가 본 여자 가운데 난생 처음 보는 미인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엔리크는 누리아를 만나서 친분을 쌓기 위하여 시청 관광축제과에 작업을 해 낙농업 박람회에 홍보대사직을 만들고 초대 홍보대사로 누리아 마르티를 위촉하려 시도했다. 당연히 거절할 것임을 알면서도. 예상대로 누리아는 난색을 표했고, 그래도 홍보대사 건을 계기로 저녁 식사를 갖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간혹 만나 식사를 하고, 점점 가까운 사이로 발전해 엄마와 여동생이 사는 누리아의 집에도 자주 들르는 관계로 발전했다. 당연히 엔리크는 누리아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랑의 정도도 점점 증가했다. 사랑이란 것이 점점 증가해? 웃기네. 사랑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폭발적으로 사랑의 농도가 커져버렸다. 카탈루냐 지역에 대한 불평등이랄 수도 있을까, 싶게 누리아는 어처구니없게 국가대표에 포함되지 않는 불상사를 만났고, 따라서 코치와 연습장 및 장비 대여 같은 온갖 혜택이 하루 아침에 물 건너 가버렸다. 누리아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걸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엔리크 로스켈레스.

  Z시에는 몇 십년 전 미국에 이민가서 떼돈을 벌고 돌아온 거부가 저택을 짓고 산 적이 있다. 이제는 시의 재산으로 편입되어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로 변해버린 괴상하게 생긴 저택을 눈여겨보던 엔리크, 그는 실제로 저택에 가보고, 거대하게 지은 실내 수영장을 유심히 살피더니 시청으로 돌아가 엽기적 기안을 쓰기에 이른다. 이 저택을 대대적으로 수선해 관광시설로 쓰자는 제안. Z시의 실력자요 시장의 최측근에 정말로 능력도 막강한 인간이 하는 일이라 일사천리로 작업을 시작했고, 엉뚱하게 지하실의 실내 수영장을 아이스링크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제목이 <아이스링크>가 되는 것. 그리고 공사는 1~2년 후에야 끝난다고 보고한다. 그동안 누리아가 연습에 매진하면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누리아의 키스 한 번 받지도 못하는 엔리크는 그렇게 불법을 저지른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여전히 폐허이며, 유령이 나올 거 같은 삭막한 장소의 깊고 깊은 곳. 그곳의 아이스링크. 거기에도 두 발 달린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다. 다만 엔리크와 누리아가 모를 뿐이지. 누군가가 피겨 스케이팅을 연습하고, 다른 누군가는 음악이 든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주고 동시에 자기 업무를 위해 서류를 검토하는 장면. 그것을 보는 눈이 있는 것.

  날들이 지난 어느 날 밤. 우연히 전처의 심부름으로 저택에 가서 사람을 찾으러 건 레오 모란은, 그날따라 찾는 사람이 없어 아직 포장 박스가 널려 있는 저택을 훑다가, 아이스링크를 발견하고, 아이스링크 위에 백여 군데 칼에 찔린 여인의 시체를 발견해 단박에 일이 커지는데….

  죽은 여인이 누구냐 하면, 안 알려줌. 그러면 누가 죽였냐고? 그것도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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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5-15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죽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누가 죽였는지는 기억이 날랑말랑.. 엔리크 다시
보니 참 안쓰럽군요.

Falstaff 2025-05-15 16:02   좋아요 1 | URL
살인범은 본문에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시면서.... ㅋㅋㅋㅋ
 
사이버리아드 - 심너울의 사이버리아드 다시 쓰기 FoP Classic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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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두 권의 스타니스와프 렘을 읽었다. <솔라리스>와 <우주 순양함 무적호>. 내가 SF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읽지 않는 편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솔라리스>를 읽고 뻑, 넘어갔다. 그리고 <우주 순양함 무적호>로 이어진다. 짧은 독서력에 한정해 말하면, 렘은 외계 생명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존재”에 대한 인간식 사고방식의 진지한 전환을 요구하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제시하는 작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진지한 작가. 이런 등식이 고정관념 비슷하게, 두 권밖에 읽지 않았으니까 아직 정식 고정관념이 아니고 고정관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상태에서 <사이버리아드>를 읽었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또 한 번, 뒤집어졌다. 행성의 거대 바다가 통째로 한 생명체이며 이 생명체가 우주선에 탑승한 인간의 뇌에 환상이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솔라리스>, 인간이 아닌 유기물 생명체가 한 행성에 두고 온 기계의 부품들이 자체 번식을 통해 진화한다는 <우주 순양함 무적호>, 이런 발상을 한 1960년대의 폴란드의 천재가 이런 코미디 메들리, 희극 연속작품도 썼다는 말이지?

  아주 오래 전에 오페라 좋아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순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러시아 오페라는 무겁기만 하고 코미디도 재미없어.”라고 썼다가 (지금은 오페라 평론가 또는 연출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 모 씨한테 심각한 유감의 글을 받은 이후 찍소리도 못한 적이 있는데(앗다, 드럽게 지랄하데), 이 기억이 불쑥 되살아났다. 정말 SF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진지한 작가”라는 내가 그동안 품고 있던 유사 고정관념을 들었으면 그 양반처럼 나하고 온라인 상에서 절교했을 수도 있겠다. 당시엔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수도원에서의 약혼>을 듣고 보기 전이었고, 지금은 <사이버리아드>를 읽기 전이었으니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불쌍한 어린이들은 조금 어엿비 봐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긴 뭐,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


  스타니슬라프 렘이 보는 세상은 인간보다 기계로 이루어진 세상이 훨씬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 그의 세계관에 입각한 인간과 기계의 탄생을 알아보자. 이오니드 왕좌의 계승자 펠릭스 왕자에게 이오니드 왕이 말한다. 이오니드는 금속 이온의 세계를 뜻하고, 펠릭스는 행운Felix가 아니라 철Fe, ferric을 변형시킨 고유명사이다.

  “우주의 종족 창백얼굴(인간)은 역겨운 만큼이나 신비로운 방식으로 시작되었으니, 어떤 천체가 통째로 오염된 결과 그 종이 생겨난 까닭이니라. 유독한 휘발성 기체와 고약한 이상 생성물이 생겨났고, 여기에서 창백얼굴이라 알려진 종이 나왔다. 태초에 그들은 태양에서 육지로 주르륵 올라온 기어 다니는 흙덩어리였고,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살아갔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잡아먹을수록 더 늘어났고, 그런 다음 질척한 삶(살)을 석회질 골격(뼈)으로 받치며 일어났으며, 마침내 기계를 만들었다. 이 원형原型 기계로부터 지능이 있는 기계가 나왔고, 그것을 지적 기계를 낳았는데, 지적 기계는 완벽한 기계를 고안했다.” (p.468~469)

  이오니드 왕은 아들 펠릭스한테 지구상 생명체의 기원에서 시작해 수중생물의 육지 상륙에 이어 인간까지 진화를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에, 인간이 만든 기계가 최상의 생명체라고 단언한다. 이 기계는 급기야 지능을 갖게 발전하고, 이후 기계적 진화를 거쳐 완벽한 기계 상태가 등장하니 이를 “가가발단” 족이라 한다. “가능한 한 가장 발전한 단계.” 이 가가발단의 구성원들이 뭐할 거 같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모래밭처럼 보이는 곳에 누워 몸을 긁거나 코를 후빌 뿐. 그러나 사실 이들은 신의 경지까지 도달한 ‘생명체’이다. 이들은 안다. 다른 지성체 로봇을 억압하는 불행과 불운을 사라지게 하여 모든 로봇을 행복하게 만들어봤자 아무 간섭을 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100배에서 많게는 800배까지 더 큰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을. (p.441)

  하기야 인간 등의 유기물을 만든 조물주가 특히 에덴 동산에 인간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놓자마자 곧바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들들 볶아댈 뿐이었지 않은가. 그것 보다 그냥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코나 후비고 있는 것이 훨씬 낫기는 낫다.


  어쨌거나 <우주 순양함 무적호>에서 한 번 소개했던 기계의 진화가 이 책에 와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의 첫번째 주인공은 트루를, 트루를보다 등장 횟수가 약간 못미치는 또다른 주인공이 클라파우치우시. 이들은 로봇이다.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우주 전체로 봐도 막강한 지능을 소유한 라이벌 ‘제작자’이다. 항성과 행성을 재배치해 우주 광고판을 만드는 일도 밥 먹듯 해치우고, N으로 시작하는 것은 뭐든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지만 이것 때문에 세계를 파멸시키기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 있는 정보를 그러모으는 ‘제2종 악마’를 창조해내고, 적국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 왕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슈퍼 에로티즘 증폭기 ‘팜므파탈라트론’을 만들기도 한다. (p.7 “들어가기에 앞서” 요약) 이런 능력이 있는 우주 최고의 AI를 장착한 로봇을 ‘제작자’라고 칭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AI는 어쩌면 사람보다 더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서, 둘이 서로에게 귀여운 수준으로 실패를 맛보게 하기 위해 예민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만 소개한다. 앞 문단에서 소개한 N 기계.

  제작자 트루를이 어느 날 N으로 시작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 바늘needle, 난징산産 무명바지nankeens와 네글리제를 만들라고 명령하니까 기계는 탁, 만들어냈다. 이어서 좀 더 어려운 과제로 주문하기를 “슬픔을 잊게 하는 약nepenthe, 다른 마취제narcotics들로 채운 물담뱃대narghile에 그 물건들을 전부 처넣고 못질해버리라고nail 했다.” (p.42) 나는 이게 잘 해석이 되지 않는데, 물담뱃대의 작은 사이펀 같은 곳에 바늘과 무명바지를 다른 것과 함께 쑤셔 넣으란 얘기인가 싶다.

  하여간 명령을 착실하게 다 완수하니까 이번엔 후광nimbuses, 국수noodles, 핵nuclei, 중성자neutrons, 나프타naphtha, 코nose, 님프nymph, 물의 요정naiad, 나트륨을 만들게 했더니, 다 만들어내고 마지막 나트륨은 만들지 못하겠다고 딱 거절을 해버렸던 거다. 열을 받은 트루를은 왜 소금을 못 만드느냐고 타박을 하니, 기계가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나트륨은 모르고 소듐sodium만 아는데, 하여간 자기 기준으로 영어로 N에 화학기호 Na, Sodium은 능력 밖이란다. 그냥 넘어간 트루를. 그럼 밤night을 만들어보라고 하니 정말 세상에 밤이 깔리는 거 아닌가 말이지.

  기분이 좋아진 트루를은 친구이지만 경쟁자인 클라파우치우시를 부른다. 트루를이 친구 앞에서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은근히 심통이 나버린 클라파우치우시가 허락을 받아 기계한테 명령을 하기를, 자연nature을 만들어봐. 스타니스와프 렘이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기계가 만들어 낸 것은? 순식간에 자연사학자naturalists들로 가득 차서 자기가 출판한 책을 흔들며 남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먼 곳에서는 불타는 장작더미가 보이는데 그 위에는 조물주Nature에 대한 순교자들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천둥이 치고, 이상한 버섯구름 기둥이 피어올랐다. 모두 동시에 떠들어대고 아무도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온갖 계약서, 항소장, 소환장 같은 문서들이 날아다니는데 이런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한다.

  열받은 클라파우치우시. 이제 또 명령을 하기를 부정negative를 만들어보란다. 그러니까 기계는 반전자, 반중성자, 반중성미자 등등을 만들었다. 이제 꼭지가 돈 클라파우치우시는 그러면 무nothing을 만들어 보란다. 어, 좀 이상한 생각이 드는 트루를. 도대체 뭘 만들라는 거야? 말 그대로 무無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모든 것을 지워야 하는 것. 그리하여 기계는 세상의 것들을 차근차근 사라지게, 멸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없어진 것들이 곤심, 포각, 타갈뱀, 슈뻥, 타타품, 이거뜰, 쇗불과 냥자 등등. 도대체 이것들이 뭐냐고? 없어진 것이니 내가 알 수 있나. 그러나 트루를과 클라파우치우시는 없어진 것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온화했던 것인지 안다. 그런 것들이 없어져버렸다.

  이들은 N으로 시작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기계에게 더 이상 작동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는 이미 없어진 것들을 통탄하게 아쉬워하고, 그렇게 넋이 나가 서 있는 동안 먼저 정신이 슬며시 돌아온 클라파우치우시는 슬쩍 트루를의 집을 나와 그길로 뺑소니 쳐버린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스타니슬라프 렘은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5년 동안 썼다. 모두 15 편으로 되어 있으며, 전부 독립적이라 단편집/작품집 읽는 기분으로 한 편씩 즐길 수 있다. 책 소개에는 ‘사이버’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합쳐 <사이버리아드>라고 제목을 지었다고 했으나, 읽어보니 ‘사이버리아드’보다는 <사이버라자드> 즉 ‘사이버’에 ‘세헤라자드’를 합친 것에 더 가깝다.

  하여간 스타니스와프 렘은 천재 맞다. 머리 속의 뇌활동이 인간과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 공간과 모든 생명 그리고 생명 수준에 근접하거나 초월한 기계까지 확장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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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5-14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에스에프 안 좋아하는데 백작님 영업에 넘어가서 그 연두색 책 솔라리스 손 닿는 회전 책장에 소장중이란 말이지요...(살아있다면 팔백작님 연세되어 읽을지도?!?!ㅋㅋㅋㅋ)

Falstaff 2025-05-15 05:19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셔요. 언젠가는 읽으실 겁니다. ㅋㅋㅋ
 
파란 눈 검은 머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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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후기작을 읽으려면 일단 긴장을 좀 해야 한다. 그럴 필요 있다. 내가 읽은 뒤라스, 그러니까 취미로 책을 읽는 일반 독자 수준에서 말하자면 1950년대 말에 출간한 <모데라토 칸타빌레> 이후 작품은 뒤라스가 누보 로망 작가군에 합류하면서 말한 대로 독자가 직접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말이 쉽지, 이제 작품 속에 서사는 사라지고 피상적이라서 애매모호한 이미지만 툭 던져 놓는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작품에 대한 해석도 독자가 개별적으로 알아서 해야 한다. 드디어 골 아픈 뒤라스 시대를 맞는데, 웃기게도 이때부터 뒤라스는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라 소설이면 소설, 영화(연극)이면 영화(연극)에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우리나라에서도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발표한 작품으로 점점 성가를 높이다가 1980년 작품 <연인>이 92년에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단박에 ‘뒤라스’는 대중적인 이름이 된다. <연인>은 1980년에 단편집에 실렸다가 84년에 단행본으로 다시 찍어 공쿠르상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근데 위의 말을 믿지 마시라. 문단 속에 말했듯이 완전히 아마추어 입장에서 쓴 글일 뿐이다. 우리나라 전문가들, 특히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소위 프로방스 학파들의 말마따나 나는 “오독을 마다하지 않는 다양한 독자층”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다. 뒤라스가 우리나라 책가게에 풀릴 때부터 읽어온 오랜 독자라서 이이의 후기작품부터 읽기 시작은 했지만 정작 전기 작품을 더 좋아하는, 문학적 시야가 트이지 않아 기껏해봤자 딜레탕트에 머무는 수준이다. 다 알면서 오늘도 뒤라스의 독후감을 쓴다. 어쩌랴, 잘난 척하는 게 재미있는 걸. 조금만 더 봐주시라.


  뒤라스는 일흔 살에 <고통>을, 일흔두 살에 <파란 눈 검은 머리>, 그리고 일흔여섯 살 때 <여름 비>를 출간한다. 물론 이전에도 그랬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늙은 뒤라스가 말하는 고통은 사랑의 고통이고, 일흔 살 때의 고통은 일흔두 살의 <파란 눈 검은 머리>에서도 이하동문이다. 다만 다른 것은 2년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호출하는 전화벨을 울려주기를 기다리는 고통이고, 이 책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를 옆에 두는 고통이다.

  1944년에 뒤라스와 함께 레지스탕 활동을 하던 남편 로베르 앙텔므가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감금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45년 6월에 다하우에서 돌아오는데, 딱 12개월만에 우리보다 체격이 큰 유럽 성인 남자가 38킬로그램의 몸무게였단다. 뼈에 피부를 살짝 코팅한 수준이었겠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뒤라스는 전남편으로 대표하는 레지스탕 포로의 고통 대신 작품 속에 2차 세계대전을 동시대에 겪었으면서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파란 눈 검은 머리>도 예외가 아니지만 <여름 비>에서는 이게 심화 확대하여 일견 엉뚱하다, 뒤라스가 혹시 망령이 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마추어인 내가 읽기에 그랬다는 것이니 신경쓰지 마시라.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고통>과 <여름 비> 딱 그 사이에 있어서, 사랑의 고통과 개연성을 의심할 만큼 난데없이 유대인 또는 유대 정서가 등장한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떠들어댄 거다. 쓸데없이 말 길게 하는 거, 이거 쉽게 고쳐지지 않네 그려.


  장소는 프랑스 북부 해변. 시간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해는 넘기지 않는다.

  여름 어느 저녁녘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딱 금을 긋고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저녁, 석양 무렵이 주요 시간대이다. 등장인물은 그와 그녀. 첫 장소. 호텔 데로슈의 로비. 호텔 안에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여 있고, 밖에는 테라스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며 몰려 있다. 이들은 여름 저녁 북부 해변의 예외적인 아름다움에 관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가 호텔 창가에 도착했다. 여자는 이미 그곳에 있다. 창에서 몇 미터 떨어져 다른 여자들 사이에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흰 운동화를 신은 젊은 여자. 길고 유연한 몸. 하얀 피부. 흰 반바지. 허리에 검은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이 검정 실크 스카프는 책을 덮을 때까지 중요한 소도구로 계속 사용한다. 나중에 그와 함께 밤을 보내는 방에서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그리고 파란 눈.

  여기에 젊은 외국인 남자가 들어온다. 주인공 ‘그’가 아니다. 막 로비에 발을 딛은 그는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이며, 키가 크고 피부가 희다. 그녀처럼. 앞 문단에서 말했듯이 후에 유대인이라고 정해진다. 근데 탁 읽는 순간부터 외모에 관한 묘사가 여자, 그녀와 매우 유사하다. 큰 키와 흰 피부, 파란 눈에 검정 머리카락. 뒤라스는 이 유대인 청년과 그녀의 경계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녀가 유대인 남자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독자는 그러나 아닌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잠깐 독자는 헛갈린다. 여기서 등장하는 3인칭 대명사 ‘그.’ 그녀는 그가 놓쳤던 사람이란다. 그녀를 되찾았다는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다시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절망에 빠져 있다. 잠시 긴장을 놓은 사이에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의 유대인 남자와 그의 장면이 휙 지나갔을까? 그랬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작가가 그렇게 유도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도 우아하고, 마르고, 키가 큰 남자이다. 값비싸고 예쁘장한 옷차림을 했다. 탁 떠오르는 것이 동성애자 같다. 조금 후에 추리가 맞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동성애자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한다.

  그는 호텔에서 나와 카페로 간다. 카페에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벌써 와 있다. 여기에 특징적인 문장이 있다.

  “그녀가 파란 눈 검은 머리의 젊은 외국인과 함께 이 카페에 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도 파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을 한 키 큰 유대인을 찾고 있는 거다. 먼저 젊은 외국인이 눈에 들어오고 이후에 그녀도 카페에 있으면 알아차린다는 거니까. 그는 게이가 맞다. 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가 그의 테이블로 가 마주 앉는다. 그녀는 누구일까? 혹시 매춘부? 그럴 듯하다. 이들은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머물다가 도시 깊숙한 곳의 술집으로 향한다. 동이 틀 때까지.

  그는 그녀에게 자기 방으로 오라고, 그러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녀는 응한다. 침대도 없는 방. 방의 한 가운데 흰 시트가 깔려 있고 그녀는 거기 눕는다. 그는 그녀와 거리를 두고 누워 몸의 어떤 부위도 닿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이렇게. 날들이 지나면 둘 다 옷을 다 벗고. 그럼에도 피부의 접촉은 없다. 그가 게이라서? 어쨌거나 그녀는 욕망한다. 그녀가 그에게 키스한다.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지금 그에게 키스하는 거라고. 그 사람. 그 모르는 사람에게. 누구일까? 그녀의 가슴과 팔과 허벅지에 멍을 들게 난폭한 섹스를 하는 남자. 유대인 청년?

  겨울이 오고 테라스에 선 그는 유대인 청년이 흰 크루즈를 타고 해변을 떠나는 모습을 본다.


  이런 것들을 뒤라스는 마치 연극으로 만들 때 출연자와의 토론으로도 읽히기 바란다. 그래서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다.

  “여름 어느 저녁녘이, 배우가 말한다,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해볼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연극이라면 드라마투르그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보다, 우리말 문장이다. 많이 과장해서 말하면 작품 속 전체 음절의 15퍼센트는 ‘그’이다. 3인칭대명사 ‘그’와 ‘그’녀, 지시대명사 ‘그’가 많아도 너무 많다. 짜증나는 건 당연하고 책을 읽는데 많이 지장을 받을 정도. 나중에는 문장을 읽으며 어느 ‘그’를 빼고 읽으면 더 자연스러울까, 이걸 생각하면서, ‘그’자를 빼는 걸 재미로 생각하니까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역자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지. 그러나 글쓰기 교본 2장 1절에도 나오듯이 ‘그’는 좋은 문장 쓰기로 가는 지옥의 길이다. 읽는 사람은 멀미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었으니 나도 참 독종이다. 이 책이 역자의 첫 번역서인 것 같은데, 건필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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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5-05-13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와 ”그녀“ ”그들“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 검은머리에 초록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했던 어떤 사람이 떠오르네요.

Falstaff 2025-05-13 15:51   좋아요 0 | URL
제가 과민형이 아니군요! 근데 이상형이 누구였을지 궁금합니다. ㅎㅎㅎ
 
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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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 김지연은 “거제도에서 조선노동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은 (가족이 이사를 했는지 혼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애초 시를 쓰려다가 소설로 바꾸어 2008년에 단편 <작정기>로 등단,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그리고 70회 현대문학상을 받아 상금 천만원, 세금 제하고 989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이 정도면 잘 나가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도, 오, 우리나라의 출판 문학이여, 아직 (지금부터 석 달 전까지) 집도 없고 차도 없었단다. 하기는, 적수공권으로 서울에서 시작했으면 마흔둘에 집 사기 쉽지 않지. 뭐 요즘 사는 게 다 그렇다. 마음 넓은 김지연 씨가 이해하고 지나가자.

  2008년 데뷔 치고는 출간한 책 권수가 적다. 그동안 소설집 두 권, 중편 한 권, 장편 한 권. 이렇게 네 권이다. 단편 꼴랑 하나 실은 <새해 연습>은 책으로 세지 않으면 그렇다. 나는 <새해 연습>이 처음 읽은 김지연이다. 근데 마음에 든다. 내가 좀 까다롭다. 특히 단편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차분해서 좋다. 튀려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쓸 거 같은 자극적인 장면도 없고 따라서 과장도 없다. 맛이 없어서 좋다. 아니, 맛이 약하고 순해서 좋다. 당연히 할 말은 다 한다. 새해면 제일 추운 겨울인데도 춥지 않아서 좋다. 날이 안 추운 게 아니고 글이 안 춥다.

  홍미의 부모는 일찌감치 갈라섰다.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과 다시 결혼해 살았다. 홍미는 이쪽 저쪽을 오가며 살았다. 이쪽에 씨다른 형제, 저쪽엔 배다른 형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숙사 있는 공장에 취직해 들어갔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어머니는 폐암으로 갔다. 홍미는 누구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가봤자 찬밥이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작가 김지연은 하지 않는다. 대신 거기 갔더라면 혹시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을까, 라고 잠깐 생각한다. 싸구려 작가들의 경우, 장례식장에 나타난 전남편, 전처 소생이 찬밥이란 말을 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독자는 거기까지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김지연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

  할머니가 죽었다. 목을 맸고, 죽고 일주일이 지나 독거노인 관리 담당 공무원이 발견했다. 세상에 오롯이 홍미 혼자 남았다. 올 사람도 없어 빈소 없이 장례를 치뤘다. 할머니가 살던 집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낡은 집. 이제 그 집은 홍미 것이 될까? 아니다. 왜 아닌지는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 소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집이 이제 자기 것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세상에 나서 뭔가 제대로 된 걸 가져본 적이 없으니 뭐 그런가 보다 했다. 외로우면 빨리 깨는 법이라서.

  할머니 이름은 ‘양지.’ 이름처럼 바닷가 언덕바라지라서 바람은 많아도 햇빛 또한 많은 곳에서 살다 갔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1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일기장 더미만 빼고. 18년치의 일기장이 이불장에 차곡차곡 재여 있었다.

  “그냥 버리셔도 돼요. 이제 전적으로 임홍미 님 소유니까요. 마음대로 하시면 돼요. 종이니까 그냥 밖에 내다 놔도 다 수거해 갈 거예요.”

  홍미는 그럴 수 없다. 누가 볼까봐. 일기니까. 그래서 담배도 한 대 피울 겸 옥상에 올라간 김에 조금 태워본다. 근데 유일한 친구 민석에게 전화가 온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옥상에서 무엇을 태우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홍미는 불법을 저지르기 싫다.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은 홍미.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홍미는 발로 밟아 불을 끄고, 태우는 대신 조금씩, 한두 권씩 회사에 가지고 가 파쇄하기로 하고, 그렇게 한다. 순백의 파쇄지 사이에 누렇게 변색한 할머니의 일기. 그 작은 파편들.

  할머니 양지의 일기가 보통 수준을 넘는다.


  “덥지도 않은데 선풍기를 틀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서 화장대 앞에 있는 휴지가 팔랑팔랑 움직인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갑갑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무언가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느껴진다. (후략)”  (p.15)


  이처럼 쓰기 쉬울 것 같지? 결코. 홍미가 할머니를 닮았으면, 유전자 좀 물려받았으면 소설가가 될 뻔했는데, 엉뚱하게도 DNA는 홍미 대신 김지연에게 가버렸다.

  홍미는 유일한 친구 민석과 함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할머니 옛집에 들러본다. 철대문은 누가 떼어갔고 마당의 시멘트 갈라진 땅에서 잡초가 돋았다. 방과 부엌에는 갖은 쓰레기가 넘쳐있다. 이거나마 내 집이었으면. 잠깐 생각한다.

  할머니가 죽어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홍미가 법을 지켜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지금 경리로 일하는 작은 기념품 회사의 사장 경식은 홍미에게 터치하며 일종의 연애를 제안하고 홍미는 당연히 거절한다. 사장 경식은 유부남이며, 아내가 아닌 여자와 연애 경험이 있다. 홍미가 거절하고 며칠 후, 경식은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져 인원을 줄여야 하니 퇴사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하는 홍미. 하지만 곧 구인광고를 발견한다. 세상은 그렇게 흐른다. 여차하면 나올 거 같은 202X년의 성추행 장면을 김지연은 묘사하지 않는다. 경식의 차 안에서 홍미는 말을 듣지 못한 듯 “내일 뵐게요.”하고 내리는 것으로 마감한다. 세상을 둘러봐도 자기 혼자인 홍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 그날도 그랬다.” (p.60)

  반지하에 살고 있는 빌라도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 되돌려 받기가 쉽지는 않을 거 같다. 꼭 없는 사람들한테만 일은 엎친 데 덮친다. 홍미는 덤덤하다. 덤덤하게 세상에서 유일한 친구 민석에게 말한다.

  “민석아, 우리 결혼할래?”

  저번에 먼저 결혼하자고 했던 민석은 안 된다고 대답한다.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친구가 한 명은 결혼식에 와야 할 것 같아서. 너 말고는 친구가 없거든.”

  민석도 부모가 다 돌아가고 세상천지에 자기 혼자다. 사는 게 다 그렇다.

  그래도 이들은 꿀꿀하지 않다. 속으로 곪아도 겉으로만 그러는지, 아니면 속도 정작 얹힌 것이 별로 없는지 이들은 어쨌거나 나쁘지 않게 인사한다.

  “해피 뉴 이어!”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끝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은 새해가 되면 아주 잘 살아보고 싶다.

  이게 끝은 아니다.

  김지연의 책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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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2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3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5-14 2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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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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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쿳시는 읽으면서 하여간 뭔가 좀 불편했다.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쓰는 사람이건만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하여간 뭔가 불편한지 거 참. 이게 나름대로 쿳시의 매력이고 한 번 쿳시를 좋아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일지 몰라도, 에잇, 나는 그게 불편했다는 말씀. 특히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 장교가 어린 여자 아이의 눈동자, 홍채 가까이 뜨겁게 달군 쇠붙이를 가져가서 시력을 거의 상실하게 만드는 장면을 읽은 다음부터 꽤 오래 쿳시 작품을 멀리 하기까지 했다. 세상에 이런 종간나가 또 있을까 싶더라고. 근데 그의 자전적 소설 <서머타임>을 읽고 겨우 반년만에 또 쿳시를 골랐다. 이건 전적으로 도서관 신간 코너 올려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책 좀 읽는 사람은 전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책, 이른바 쌔삥인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랬다. 그래서 얼씨구나, 얼른 집어 들었더니, 편집도 참 널럴해 본문이 223 페이지까지인 것을 단숨에 읽어 치울 수 있었다.

  제목의 폴란드인이 누구냐 하면, 이름 비톨트 발치키예비치. 1943년생. 당시 72세. 작품은 이이가 죽어야 끝난다. 쇼팽 전문 연주자로 알려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낭만적이지 않고 엄숙한 쇼팽으로 해석한다고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악보대로 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쇼팽은 시대가 변하면서 여러 해석으로 교차 연주되었는데, 심지어 한 때는 피아노를 타악기로 규정해 (사실 햄머로 현을 때리는 타악기가 맞기는 맞잖아!) 강하고 힘차게, 마치 프로코피예프를 연주하는 것처럼 두드려 패던 시대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자들 가운데 아마도, 쇤네가 틀림없이 말씀드리는데, 아.마.도. 가장 인기가 없는 쇼팽이 이 비톨트 발치키예비치 스타일일 듯하다. 앗, 그러고 보니 프레데릭 쇼팽도 폴란드인이다. 그럼 뭔가 만들어지겠지?


​  쿳시가 서양 고전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건 알겠다. <서머타임>에서도 한 유부녀의 부부 침대 속에서 홀랑 벗고 줄리아 몸 위에 올라가더니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D.956 2악장을 틀어놓고, 줄리아, 아다지오 속에서 섹스를 느껴봐, 이랬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말이 좋아 고전음악에 일가견이다. 솔직히 말해 이쯤이면 변태 아냐?

  변태 쿳시가 <폴란드인>에서 피아니스트를 호출한 것은 그래도 일견 타당하다. 차차 이야기하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부르주아 유한계급들이 서클, 동아리를 구성해 고딕 지구地區에 있는 연주홀 살라 몸푸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열었다. 게다가 부르주아들의 가오가 있어서 그래도 세계 음악계에 이름이 난 연주자를 초빙해 당연히 입장료가 어마어마, 없는 사람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이었다고. 이 동아리 이사회 임원으로 1967년생, 사십대 후반의 베아트리스 여사가 있었으니 한 눈에 보이는 걸로 설명하자면 키가 크고 우아하지만 일반적 척도로 미녀는 아닌 한 남자의 아내요, 두 아들의 엄마이며, 몇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였다. 이사회에서 비톨트를 초청했고, 연주회를 했으며, 뒤풀이는 원래 베아트리스의 친구인 마가리타 부부 전담이었는데 이 부부가 싸웠는지 어땠는지 몸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호소를 하는 바람에 여사가 대신 (나이 많은 레진스키 부부와 동행해) 비톨트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호텔(당연히 로비)까지 동행하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

  독자는 슬그머니 눈치챈다. 나이 차이가 좀 있다. 1943년생과 67년생, 두 바퀴 돌아 띠동갑. 그럼에도 남녀가 만났으니 불꽃이 튀겠지? 튄다. 다만 예술을 하고, 예술을 업으로 하며, 예술에 목을 매는 비톨트가 일방적으로. 그는 책의 상당부분 진행될 때까지 끊임없이 넘어가지 않는 나무를 찍어댄다. 베아트리스 여사는 혼인 후에 한 번도 남편 외의 다른 남자에게 마음과 몸을 제공한 적이 없는 정숙한 여성. 눈치로 보아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며, 아내가 만일 바람을 피운다 해도 질투가 나서 속은 많이 상하겠지만 이제 와서 그것 가지고 죽네 사네 따따부따 하지 않고 아내의 사생활을 존중은 못하더라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의향이 있다. 독자가 보기에 의향이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아직 50도 되지 않아 남편의 아랫도리 사정과 별개로 거의 섹스리스 부부로 지내고 당연하게 각방을 사용한다. 그게 편하거든. 특히 수면의 질 측면에서 훨씬 바람직하다.


​  다음 문제는 작품의 첫 문장에 힌트가 있다.

  “여자가 먼저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이어서 곧 남자가 그렇게 한다.”

  딱 이 한 문장에서 “그”는 작가이자 화자인 J.M. 쿳시 본인이다. 이후에 나오는 ‘그’는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을 지칭하는 3인칭 대명사이며, 대부분은 비톨트 발치키예비치이다.

  뭐가 문제인가 하면, 여자, 즉 베아트리스는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바르셀로나 사람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비톨트는 유럽의 변방, 변방 가운데 변방이며 말 그대로 시골 촌구석 취급을 당하는 폴란드 사람으로 당연히 폴란드어와 문자를 사용해 언어생활과 시를 짓는다. 외국어로 영어를 하지만 능숙하지는 않아서 단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혼동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반면에 J.M. 쿳시는 아프리카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로 이 둘 간의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끼어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는 뜻이다. 쿳시는 평소에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져 이 <폴란드인>도 지역적 배경인 스페인에서 먼저 번역 출판한 다음에 영어판을 냈다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런 작가를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참 배가 불렀다. 여봐 쿳시 선생, 힘주지 마, 터진다.

  이리하여 베아트리스와 비톨트의 대화 또는 의사소통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뜰하게 삐걱거린다. 베아트리스 역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비톨트의 영어를 수정해주고, (normal과 ordinary 같은)단어의 뉘앙스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훗날 비톨트의 시 80여 편을 받아 이를 다시 카탈루냐어로 해석하느라 곤욕을 겪기도 한다. 비톨트는 자신의 구원의 여신, 단테한테 베아트리체가 있었듯이 자기한테 나타난 베아트리스에게 감정을 전하기 위하여 편지 대신 오직 단 한 명인 베아트리스를 위해 연주한 녹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문제는 베아트리스가 자기 하나 만을 위한 연주를 듣고 비톨트 이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거.

  정말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책 속에 나오냐고? 적어도 인용은 한다. 그러나 인용하는 횟수는 덜할지 몰라도 정말 중요한 비유는 폴란드인 프레데릭 쇼팽과 조르주 상드. 1838년 둘은 쇼팽의 건강이 나빠지자 사철 날씨가 온화하고 맑은 스페인 동쪽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 섬으로 가 1년을 보낸다. 작품 속에서 비톨트는 마요르카 섬의 쇼예르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이 소식을 전하니 베아트리스는 마음에 별로 없는 것 같음에도 남편과 함께 마요르카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남편은 업무 일정 때문에 일주일 후에 돌아가고, 가자마자 비톨트가 별장에 와, 한 지붕 아래 함께 묵는 건 아니고 별채 건물에서 따로 생활하는데, 결론만, 아니면 당신이 궁금한 것만 말씀드리자면, 결국에, 했다.

  이때 비톨트 나이가 아마 74세쯤 됐을 걸? 베아트리스는 50 정도. 베아트리스는 내가 모르겠고, 비톨트 선생은, 나 참. 사랑하는 여자 앞에 초라하고 늙은 몸을 드러내는 수치심을 견디면서까지 해야겠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 같으면 애초에 이런 가능성도 만들지 않았을 거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하여간 비톨트 선생은 베아트리스와 했고, 해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몇날 며칠을 했는데, 이제는 발기 유지에 당연히 문제가 있어서(잠깐이라도 딴 생각해도 그냥 죽고 말 걸?) 할 때마다 베아트리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며, 이 관계를 지속하다가는 나중에 큰일나겠다고 판단한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이만 가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이렇게 작품도, 둘의 인생도 끝나는 건 아니다. 세월은 계속 흐르고, 영어의 세계정복은 여전히 현재진행이고, 비톨트는 단지 속 하얀 뼛가루로 남기 바로 전까지 죽도록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반면, 베아트리스는 머리 속에서 비톨트를 지워버린 거 같은데도 여전히 저 속에 명주실만큼 가느다랗고 질긴 끈이 있었으며, 이들 사이에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의사소통이 안개처럼 막membrane을 이루고 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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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5-09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좋게 읽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모국어가 다른채로 사랑하는 이야기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오는 어떤 불편함 같은 것들이 잘 나타나서 말이지요.
이 리뷰 읽으니 제가 아직 읽지 못한 변태 소설 서머타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훗.

Falstaff 2025-05-09 16:22   좋아요 0 | URL
변태 소설 거 뭐라 말씀을 드리지 못할 거 같고 참 ㅎㅎㅎ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