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
브리기테 슈바이거 지음, 박광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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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브리기테 슈바이거의 내력을 읽어보니 <소금은 왜 바다에 있지>와 딱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상당한 부분이 섞여 있다. 이 책이 슈바이거의 첫번째 작품이어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포함시켰겠지. 브리기테 슈바이거는 1949년에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슈타트에서 출생했다. 우리가 아는 오스트리아의 대도시 빈과 짤스부르크 사이에 있는데, 직선 코스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두 도시와 거의 비슷하게 떨어진 곳이다.

  책의 내용과 비슷한 건, 아버지가 소도시의 유지였던 의사라는 것과,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 독문학, 영문학 등을 공부했지만 다음 해인 1968년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때려 치웠고, 4년 만에 이혼했다는 거. <소금이 왜 바다에 있지>는 주인공 화자인 ‘나’의 결혼 당시부터 이혼이 종결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실제의 슈바이거는 1968년부터 72년까지 스페인 출신의 남편을 따라 마요르카 섬과 마드리드에서 살다가 73년 이혼하자마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반면에, 작품 속의 ‘나’는 결혼 이후에 줄곧 린츠에서 살다 이혼한다. 린츠? 출신지인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주도이자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이며, 아름답기로 이름이 높아 모차르트가 자신의 서른여섯 번째 교향곡의 표제를 붙인 도시.

  나는 린츠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 린츠를 발음하면 어딘지 밝은 기운이 나는 것 같아서, 좀 산뜻한 작품 아닐까 하는 기대도 했으나, 슈바이거는 생전에 책 속의 ‘나’처럼 우울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쪽으로 질병이 있어서 2010년, 61세의 나이에 빈의 도나우 강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단다. 투신 자살로 판정해 종결한 걸로 보인다. 책에서도 ‘나’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 확실하고,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을 권유할 정도는 아닌 약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나’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란 건 위에서 이야기했다. 첫 장면을 결혼식 날 아침에 시작한다.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나’. 이렇게 4인 가족. 의사이자 동네 유지인 아버지는 어제 이발소에 가서 이발도 하고 면도도 깔끔하게 했다. 대개 남자들이 그렇듯이 벌써 식장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지 한참이건만 엄마는 오래 시간을 끌면서 꽉 끼는 드레스의 지퍼를 올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간신히 잠글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시실리 화산에 관광을 다녀온 이후에 관절염이 심해져 이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비스듬히 발을 디뎌야 한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새신부인 ‘나’는 여전히 2층 ‘나’의 방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침대에 발랑 자빠져버렸다.

  남편 롤프. 아버지는 롤프가 참하고 괜찮은 녀석이라 하고, 어머니는 폴프를 보면 자랑스럽다는데, 할머니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얌전한 혼인이라고 말한다. 근데, 할머니의 삶의 지표인 얌전함과, 이 ‘얌전한 혼인’은 얌전한 결혼식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얌전한 ‘결혼생활’을 말하는 걸까?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생각해보면 좀 헛갈린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나’는 확실하게 얌전한 결혼식에 임하려 한다. 놀랍게도 1960년대 후반에 벌써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는데, ‘나’는 말 그대로 남편이 될 롤프 외에는 성교를 해본 경험이 없다. 그러니 적어도 이쪽 방면으로만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가 바라는 대로 얌전한 신부인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결혼에서 독자가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 ‘나’가 결혼식 하는 날 출발할 시간에 웨딩드레스까지 입은 상태에서 그냥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는 거. 결혼식장에 가기 싫다는 말이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대부분 인생에 많아야 서너 번 밖에 없을 결혼식날, 웨딩드레스가 혹시라도 구겨질까봐 애달캐달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절대로 하느님을 믿지 않지만 혼례미사 때 신부神父한테 거짓말을 해버린다. 신부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또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뭐 이런 질문이었겠지, 대답을 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예”라고 말해 버렸던 거다. 속마음은 “아니요”였음에도 그렇게 말했으니 틀림없이 거짓말, 십계명을 어긴 거다.


  롤프와 ‘나’의 친구 가운데 두 명을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먼저 카를. ‘나’의 부모가 롤프에 대한 평가를 할 당시에 ‘나’가 전하는 부모의 의견을 말했더니 카를은 이렇게 말했다.

  “너네 부모님하고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결혼을 앞둔 너한테는) 노 코멘트.”

  카를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인권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인권 관련해서 실제로 지역에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예로 들었더니 아이고 이런, 그날 이후부터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있던 일까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직계가족이 생존해 있는 사람의 실명을 거론했으니 뭐 그럴 수도 있기는 하겠다. 카를은 시인. 자주 ‘나’에게 편지도 보내고 그러지만 그걸로 끝인 나이 많은 친구.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있어도 집안 반대가 심해 부부가 되지 못하니 그건 전적으로 카를이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작품이 끝날 때쯤 자진해 알코올 치료 병동에 입원하고, 퇴원 후 2년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으면 애인과 애인 가족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다른 한 명은 알베르트. 예전에 카를이 말하기를, 알베르트야말로 한 교실에 있는 게 창피하지 않은 유일한 친구, 라고 평가했다. ‘나’의 고종사촌, 고모의 딸 힐데와 연애를 했다. 힐데는 TV 아나운서를 꿈꾸었지만 그것도 딴따라라고 (1960년대니까) 집안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대신 크지 않은 집과 알베르트를 구입했다. 정말로 알베르트를 “구입했다”라고 슈바이거가 썼다.

  그런데 문제는 ‘나’가 롤프보다 알베르트를 훨씬 전부터 더 마음에 들었다는 점.


  왜 ‘나’가 롤프와 멀어졌을까? 롤프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 롤프의 마음이 그런 거란 말은 아니다. 롤프는 꽉 짜인 인생을 사는 인간형이다. 규격이 있으면 규격에 맞춰 자신의 삶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 이것도 나쁜 삶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나’하고는 극적으로 맞지 않는 취향인 걸 너무 늦게 알았겠지.

  롤프는 공대를 졸업했다. 1학기를 다니다가 자신이 의학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았지만 끝내 공과대학을 졸업한 걸로도 모자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며, 그것도 아쉬워 디플롬 엔지니어 Diplom-Ingenieur학위까지 얻어, 오스트리아의 국책 철강회사에 다닌다. 그러면서 몇 년 후에 어느 직급으로 승진하고, 또다시 몇 년 후에 임원, 중역이 되고 등등의 계획이 다 있다. 하지만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한 날 ‘나’는 괜히 썰렁한 기분이 들어 이제는 화요일 저녁엔 더 이상 그와 잘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니 애초에 결혼을 하지 않아야 했던 것일 수도.

  결혼 전에 어느 날, 롤프의 팬티가 심히 거슬려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제 마법이 풀린 순간이었다.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어떻게 되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마법이 사라지면 사랑은 삶이 되고, 더 곰삭아서 정이 되는 거지. 원래 사랑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잖아? 사랑만 파먹고 살 수는 없어 다시 먹고 사는 삶이 이어지는 거고, 시간의 이끼가 부드럽게 껴서 “사랑보다 더 슬픈” 정이 돈독해져 평생 그걸로 사는 거지.

  그러나 아직 19세, 너무 젊거나 어렸던 ‘나’는 몰랐다. 스무살이 되고, 스물한 살이 되고 더 나이를 먹어도 롤프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남자일 뿐. 반면에 ‘나’는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한 남자의 살림 도우미, 즉 식모이면서 벌어오는 돈을 사용하는 창녀. 근데 창녀한테는 포주가 있어야 하는 법. 좋다, 포주는 롤프, 네가 해라. ‘나’는 의사가 된 알베르트와 정신없이 외도를 시현하기에 이른다.

  이 장면에서 ‘나’가 가사도우미와 창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롤프에게 따지고 드는 일로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는 독자가 무척 많아 데뷔작임에도 출간과 더불어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큰 선풍을 일으켰다는데, 그건 1970년대에 그랬다는 것이지,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힐까? 내가 읽기로는 그저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망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인 것 같다. 롤프 입장에서는 애초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해 결혼하고, 어쨌거나 돈을 벌어와 복지를 주면서 결혼 초부터 계속 삐걱거린 여자를 만나 이마에 뿔이 돋는 결과만 얻은 남자. 이를 전적으로 주인공 화자 ‘나’의 시각으로 보니까 원래 밴댕이 소갈딱지를 가진 속 좁은 남자로 보이는 불운한 사람이다. 이이가 정말 불운한 이유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차마 밝힐 수 없어 아쉽다.

  작품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그냥 그런 소설, 별점을 잘 주어도 셋 정도로 여겼다가, 후반을 읽기 시작했는데, 확 느낄 수 있던 것은 건조하면서도 공감을 전해주는 문장이 매력적이라는 거. 신경이 서서히 몰락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 등등, 명작은 아닐지언정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드릴 말씀은, 한 번 읽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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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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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읽는 <일리아스>일 듯하다. 중학생 때 처음 읽은 건 당시 수준으로는 꽤 두꺼운 책으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목동 파리스한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묻는 것부터 시작해 트로이 목마 사건에 이은 멸망까지 망라했으니 호메로스가 아니고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을 소년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물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밤을 꼴딱 세우지는 못해도 늦은 밤까지 책을 들고 앉았던 것이 기억날 정도이니 처음부터 나는 <일리아스>에 폭 빠졌던 것이 틀림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천병희와 유영의 번역서를 거쳐, 지금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방송통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준석의 번역으로 다시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일리아스>라고 해도 족히 10년은 넘어, 이제 이 책의 스토리는 삼천만의 기본상식이 되었을지언정 사실 정작 읽으려고 하면 무수하게 등장하는 신과 사람과, 특히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지독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터인데, 다행스럽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그리스의 다른 고전, 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해 각종 버전의 트로이 전쟁 전후사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마련해 두어, 이번 이준석의 번역서를 읽으면서는 여간해서 각주를 읽지 않아도 무리가 별로 없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일 수밖에. 이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히려 장면, 단락,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게 되어, 24권 754쪽을 읽는데 사흘 반을 사용했다. 문장마다 이 문장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인물의 어떤 전사, 또는 후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음미할 수 있는 것, 이건 일종의 자잘한 기쁨이었을까?


  책을 읽자마자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을 기록한 건, 일개 하찮은 독자에 불과한 내가 서양 문학의 고전 가운데 고전인 위대한 호메로스의 작품을 별 하나라도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창작물, 그리하여 이후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작품의 영혼의 기원이 되어왔던 이야기라는 측면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쟁소설’ 또는 ‘전쟁 서사시’라면, 즉 호메로스라는 이름값을 빼고, 완전히 근현대인 입장에서 작품으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궁리했다는 뜻이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지만 <일리아스>에서 신화를 제거하고 오직 인간들이 만드는 피 터지는 전쟁으로 본다면, <일리아스>는 오직 힘세고, 빠르고, 칼과 활을 잘 쏘는 영웅들의 싸움으로 일관한다. 갈등의 가장 큰 축은 그리스 군과 트로이아 군 사이의 다툼에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작은 전투의 전리품이기도 했던 여자 포로를 빼앗아가고 뺏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사이에 있다. 10년을 끌어온 전쟁의 명분 역시 트로이아의 왕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한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다스리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꼬드겨 데려감으로써 그리스 연방에게 수치를 주었다는 거다. 즉 전쟁 발발부터 이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명분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쪽에는 헤라, 포세이돈, 이 막강한 신들을 포함해 아테네와 헤파이스토스가 붙고, 막강한 헤라, 포세이돈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레스 등 A자로 시작하는 신들이 합세한다. 그리고 신들의 신 제우스. 이 양반은 겉으로 보면 트로이아를 슬쩍 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킬레우스의 엄마이자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인 테티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 은근히 그리스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신들을 언급하느냐 하면, 작품 속에서 신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 트로이아 군을 함빡 이끌고 그리스 선단 바로 앞까지 진출해 끝이 휘어진 그리스 배를 향해 횃불을 던지며 화공을 도모하는 트로이아 최고의 영웅 헥토르. 그가 쏟아지는 화살과 창날 속에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선봉에 서서 숱한 그리스의 소영웅들을 도륙낼 수 있었던 건, 전쟁의 신 아레스가 활기를 부어 넣어주었기 때문이고, 부상을 입어 여차하면 마지막 치명적 일격을 당할 순간에는 아폴론이 짙은 안개를 부어 넣어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하는 식으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어가기에 가장 편한 장치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전매특허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하고 비슷하지?

  작품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쟁에 나온 파트로클레스의 죽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부여잡고 슬피 울다가 천추의 원수가 된 헥토르를 죽이기 위하여 잠도 안 자고, 밥도 한 그릇 안 먹고, 물이나 포도주 한 잔도 안 마신 상태에서 엄마 테티스 여신이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한테 부탁해 가져온 투구와 갑옷을 떨쳐 입고 죽음을 모르는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 오른다. 근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잠도 안 잔 필멸의 인간이 이런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겠어? 이때 제우스가 등장한다. 모든 신의 아버지 제우스는 전령을 통해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 등의 즙을 짜 아킬레우스의 입에 흘려 넣는다. 그러니 아무리 끼니를 걸러도 사기 충천해 단칼에 트로이아의 영웅들을 도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던 동아시아의 소설이 있었으니 호메로스보다는 1천8백년 이후 사람인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월탄 박종화 번역의 <삼국지>를 읽은 것이 우연하게 첫 <일리아스>를 읽은 해 여름방학 때였다. 이후 <삼국지> 번역본도 꽤 읽었다. 최근 번역은 민음사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다가 지금은 판권계약이 해제된 이문열 평역. 번역과 평역은 많이 다르다. 월탄 번역에서는 황건적의 두령 장각이 환술, 요술 같은 것을 사용해 숱한 야수들을 불러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반면, 이문열 평역은 해당 부분을 적절하게 자신의 시각으로 바꾸어 원본과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

  아울러 월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장면도 속출한다. 도교? 맞다. 아니, 맞는 거 같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 장면이 <일리아스>에서 신들의 출현과 뭐가 다르냐,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삼국지>에서 환술, 요술과 도교적 상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조미료 수준이다. <일리아스>에서 신들이 하는 역할을 <삼국지>에서는 누가 할까?

  놀랍게도 군사軍師라고 일컫는 전략가의 몫이다. 조조한테 탈출한 유비가 관우, 장비를 만나 유표한테 몸의 의탁하자, 유표는 작은 신야성을 맡겼는데 여기서 만난 거의 최초의 전략가가 서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조조군의 대군이 짓쳐오니 서서는 긴 장대에 낫 비슷한 것을 매달아 유비군을 갈대밭 속에 숨겨 놓았다가 조조군이 행군할 때 적군의 발목을, 발목만 끊어 놓는다. 이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죽지 않고 번히 살아 있으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전우를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그리하여 어쨌거나 승리 또는 조조군의 진격을 조금 멈춘 유비군은, 조조의 계략에 의하여 서서를 조조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조조의 땅에 사는 늙은 서서의 엄마가 아들한테 자신을 보살피러 오라고 당부하는 거짓 편지를 보낸 거다. 덕의 사나이라고 지칭하는 유비가 어찌 안 보낼 수 있느냐는 말이지. (서서의 모친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달려온 아들의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서서는 길을 떠나며, 죽어도 조조를 위하여 꾀를 내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 다음에 걸출한 전략가를 추천하니 그 사람이 바로 제갈량. 이후 <삼국지>는 유비, 조조, 손권 또는 유비, 관우, 장비의 무대에서 제갈량 1인 주인공의 극으로 완벽하게 전환한다. 진짜 제갈량의 독무대. 실제로 제갈량이 죽은 이후 <삼국지>는 무지 지루해진다. <삼국지>의 진짜 영웅은 힘세고, 칼과 창, 활에 능숙하며, 적장의 머리를 단칼에 베는 장수들이 아니라 전략가들이라는 점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전략가들의 지략 대결을 전혀 볼 수 없다. 조조 측에서는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유비 측의 제갈량, 방통, 마량. 손권 측의 주유, 노숙, 육손. 이런 인물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도, 불쌍한 프리아모스 왕의 수하에서도 딱 한 명씩 밖에 없다. 그리스 군의 네스토르와 트로이아 군의 플뤼다마스. 하지만 이들은 전력가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깝다. 그나마 그리스 군은 네스토르의 조언에 귀를 기울리건만, 트로이아는 현명한 예언자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호메로스는 이것이 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순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리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멸의 인간이 맞을 운명. 이건 신의 뜻도 아니다. 신조차 이 운명을 어길 도리가 없었으니, 이 그리스 신들의 전통은 수백년이 지나고 등장할 기독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걸?

  하여간 전략이 없는 전쟁소설을 읽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직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과 깡통 머리통만 가진 영웅들의 난투극. 저 앞에서 말했듯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서 별 넷을 준 이유, 즉 별 하나를 제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전쟁에서의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매복도 없고, 화공도 없고, 협공도 없고, 동맹군 간의 이간도 없는 전쟁극.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을 이렇게 볼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일리아스> 역시 딱 한 번 읽고 내버려 둘 작품도 아니다. 이 책 한 권을, 특히 동양의 독자가 한 번 읽고 그걸 기념할 수 없을뿐더러, 만일 나처럼 소년을 위해 읽히기 편하게 편역한 책이 아니고, 천병희나 이준석의 원본 번역을 처음 접했다면, 7백쪽이 넘는 분량을 한 방에 읽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읽는 게 훨씬 좋다. 이후 독서량이 늘어감에 따라 저절로 트로이아 전쟁 앞뒤 이야기를 보탤 수 있게 될 것. 그럴 때 다시 읽으면 첫번째보다 훨씬 맛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없는 명작.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지금 읽은 것이 인생의 마지막 <일리아스>도 아닐 필생의 책일 수도 있는, 책 중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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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9-14 0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별 10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날들이 ‘‘니가 뭐라고?‘해도 어쩔 수 없고요. 동서양을 넘나들며 두 작품을 비교하는 능력에 감탄하고 그 내용에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이번에 오뒷세이아 삼독하면서 그리스 고전을 계속 읽은 보람이 있었다는 걸 느꼈거든요.
조만간 일리아스도 재독해봐야겠어요.

Falstaff 2026-09-14 19:20   좋아요 1 | URL
아이쿠.... 낮술에 까무러쳐서 지금에야 깼습니다. 큰일이네... 밤 잠은 어쩌지요?
페넬로페 님 댓글을 읽으니까 어깨가 으쓱으쓱, 별 10점이 아무나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고맙습니다. ㅎㅎㅎ
근데 이번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진짜 아쉽더라고요. 물론 결국 목마라는 전략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그건 책에 나오는 분량이 아니라서 말입죠. 그리스 이야기가 늘 그렇더라고요. 사건의 중간부터 툭 떨어져 나와서 끝까지도 아니고 얼핏 마무리되기 전까지 딱 잘라서 작품을 쓰는 거. 오이디푸스도 그랬고, 안티고네도 그렇고... ㅎㅎㅎ

호시우행 2026-09-15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읽더라도 그때마다 느낌이 다를 유익한 고전이지요.

Falstaff 2026-09-15 17:54   좋아요 0 | URL
아휴, 그럼요.

잠자냥 2026-09-15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 시절에 축약본으로 읽은 거 빼고) <일리아스>를 지금까지는 두 번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매력을 딱히 모르겠더라고요. 이건 <오디세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들의 놀이터에서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인간이란 존재....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맥락상 폴스타프 님이 별 넷 주신 이유랑 비슷하네요) 아무튼 그런 정도로밖에는 읽히지 않아서 그냥 제가 아직 부족한가보다 하고 있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9-15 17:58   좋아요 0 | URL
아무리 세계 명작이라도 싫으면 싫은 것이지요 뭐.
전 일리아스, 중딩 때 읽었을 때는 정말 껌벅 죽어 넘어갔는데요, 점점 나이 들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다 인생입지요.
 
무덤의 천사 - 이디스 워튼 기담집
이디스 워튼 지음, 김지혜.정윤희 옮김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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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를 달리던 영미 여성 작가들 가운데 고딕 작품을 쓴 사람이 무척 많다. 이디스 워튼도 마찬가지. 전에도 워튼의 고딕 소설을 읽은 거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무덤의 천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기담奇談이라기보다 고딕이 어울릴 정도의 작품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고, 이디스 워튼이 괜히 이디스 워튼이 아니라서 우리말로 읽는 문장도 물론 역자의 개입이 필연적이겠지만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독후감을 쓰려는 지금, 작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단편을 모은 소설집은 가끔 장편으로 읽는 도중에 곁다리로 읽는 수가 있다는 점. 특히 이번 책처럼 기담이나 장르 단편일 경우엔 여지없이 그렇다. 날은 갈수록 더워지고 집에서 메모까지 해가면서 책 읽다가 마나님한테 걸리면 “영차, 조금만 더해, 하바드 가야지!” 놀림이나 당할 거 같아, 장편은 도서관에서 읽고 집에서는 독후감을 쓰고 남는 시간에 (장르) 소설집을 읽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도 술 한 잔 마시는 날이면 독후감이고 소설집이고 간에 하루 이틀 미루어지는 게 또한 문제다.

  《무덤의 천사》도 읽기 시작해 닷새 만에 마지막 작품을 다 읽었는데, 독후감을 쓰려니, 읽을 때는 분명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건만, 막상 감상을 쓰려고 하니 쓸 게 읎네, 읎어.

  이거 마음먹고 오랜만에 읽은 이디스 워튼이건만 참 면목이 없다. 그렇더라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같은 걸 가져올 수는 없으니 차라리 애초에 이쯤에서 별점 4, 라고 간단히 말을 마치는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핑계지,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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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lee_73 2026-09-1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충분히 공감합니다 ㅎㅎ

Falstaff 2026-09-11 15:20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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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얇은 장편소설. 문학동네가 신공을 펼쳐 널럴하게 편집하고도 240여 쪽에 불과하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예전 독재체제 하의 알바니아에서 사는 일. 여기에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다시 한 번 우정 출연한다.

  먼저 죽은 아내를 다시 살려내기 위하여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오 이야기. 둘이 깨를 볶으면서 살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가 너무 금슬이 좋아 저 올림푸스에 사는 신들 기분이 조금 언짢을 정도였나 보다. 질투의 신이 이를 배 아파해서 뱀 한 마리한테 주문을 걸어 에우리디케의 발뒤꿈치를 칵 깨물게 시킨다. 당연히 에우리디케는 30분도 넘기지 못하고 하데스의 나라로 떨어지고 말았지. 슬픔에 겨운 오르페오는 온 종일 수금만 켜고 세상을 돌아다니니 온갖 짐승과 신들도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바람에, 좋아, 한 번 기회를 주지, 오르페오로 하여금 땅 아래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수 있게 딱 한 번의 배려를 해준다.

  오르페오가 그 깜깜한 지하세계로 어떻게 내려가? 그때 수금과 함께 가져간 것이 겨우살이. 겨우살이 가지 끝에서 빛이 반짝거렸다나, 뭐라나. 하여간 이때 오르페오의 전기를 읽은 서양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성탄절에 현관을 이 겨우살이로 장식을 하는 거란다. J.G 프레이저가 쓴 <황금가지>에 나오는 이야기.

  하여간 지옥문까지 내려갔더니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짐승이 대가리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 헤라클레스가 아닌 이상 케르베로스 뒷다리에 된장을 바를 힘이 있는 인간은 없는지라, 오르페오는 현명하게도 자기 주특기를 살려 수금을 연주해 깊은 잠에 들게 해놓고 드디어 하데스를 만나 여차저차하니 에우리디케를 내 놓으슈, 단판을 지었다. 그랬더니 이제 전형적인 그리스 신화에서의 신들의 장난을 시작한다.

  좋다. 데리고 땅 위로 올라가라.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천 개가 조금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너 오르페오는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를 쳐다보지 말아라. 만일 뒤돌아보면 네 아내는 다시 지하 세계로 거꾸로 떨어져 박힐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 아시지? 이제 결말. 계단 기어오르면서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오한테 “넌 나 안 보고 싶었니? 여기까지 쳐 내려와서 어떻게 네 마누라 얼굴 한 번을 바라보지 않는 거니?” 바가지 득득 긁는다. 아내의 바가지 반,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반. 그래서 기껏 다 올라가놓고 막바지에 이르러 오르페오가 고개를 휙, 돌리고,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목뼈, 경추가 비틀리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부로 똑 떨어진다는 얘기.

  근데 내가 좋아하는 건 이탈리아의 소설가 체사레 파베세의 이야기.

에우리디케가 바가지를 팍팍 긁으니, 이것 참,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바가지를 계속 긁히며 살아? 에우리디케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다시 생명을 얻는다 해도 어차피 또 죽어야 할 텐데 죽을 때의 고통을 한 번 더 겪으라는 말이심?

  오르페오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여기서 끝내자!”

  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여자>에 출연하는 에우리디케 정도의 여성은 작품의 부제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에서 이름을 밝힌 린다. 린다가 극작가이자 주인공인 루디안 스테파를 흠모하는 건 틀림없다. 처음에는 작가와 팬 수준 정도였다가, 점점 루디안의 여자가 되는데, 아니다. 작품의 스토리와 보조를 맞추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첫 장면. 주인공이자 화자 ‘나’ 루디안 스테파가 당 위원회의 소환 명령을 받아 출석하러 간다. 그가 생각하기를 아마도 공연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희곡 작품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또는 어린 연인 마제나와의 관계 때문 아닐까 싶다. 때는 1980년대, 40년이 넘게 통치한 알바니아의 독재자 앤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땅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일이라도 정부가 모르는 게 없던 시절. 그래서 연인 마제나와 싸운 것도 영 께름칙하다. 모든 커플이 그렇듯이 도무지 말로 따져 마제나를 이길 수는 없고, 가뜩이나 급한 성질에 뭐라 표현을 하긴 해야겠어서 그냥 한 방 콱 쥐어박았으면 좋겠는데 차마 그럴 수 없어 일단 머리채를 휘어잡았다가, 이봐, 정신차려, 손찌검은 절대 안 돼, 하는 정언명령이 들리는지라, “넌 정신분열증 환자야! 아니면 스파이든지!”라고 한 것이 언짢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마제나가 경찰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루디안이 나한테 스파이라고 했어요, 고발을 하면, 이거, 농담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큰일 날 수도 있는 거다.

  게다가 진짜 연인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여자 의사하고 비혼으로 살고 있었는데, 여자가 오스트리아 학회에서 수면기술, 의학용어로 하자면 마취기술 개선을 위한 워크샵에 참석하러 떠나는 걸 루디안이 극구 반대했다면 결혼까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아, 이 의사가 다시는 책에 등장하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오스트리아나 서유럽의 한 나라로 망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이런 여자 관계 때문 말고도 공연을 기다리는 희곡 속에 유령이 등장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심스럽다. 알바니아는 엄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행해지는 자유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심해질수록 인민들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는 진리를 세계에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나라, 알바니아. 근데 이런 자유의 나라에서 감히 극중에 유령이 등장해? 유물론의 나라에서 말이지? 그런 같은 맥락에서 루디안, 너 혹시 신도 믿는 거 아냐? 이렇게 따지면 루디안이 비록 완벽하게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변명할 마땅한 거리가 없을 수도 있다. 심문관이 우기면 말인데.

  인민의 모든 행위를 알고 있는 정부가 불렀으니 분명 곱게 보내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잘 나가는 극작가거든.


  이러저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당 위원회.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저 까마득한 시절, 지금부터 4~50년 전 알바니아가 군주제였던 때 옛 왕실 측근 집안 출신의 아가씨가 자살을 해버렸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라의 유서 깊은 가문 아가씨가. 이 집안 모든 가족들은 오랜 세월 지방도시에서 유배중이다. 유배? 좀 센 단어구나. 소련에서의 유배와는 달리 그냥 한 지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정시키는 상태. 군인들 위수구역 이탈금지 정도로 생각하면 딱이다. 근데 자살한 젊은 아가씨의 책, 최근에 공연을 마친 루디안 스테파의 희곡 작품을 실은 책에, 공연을 했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가지도 않았음에도 그 책에 작가 루디안의 자필 서명이 쓰여 있다. “린다 B에게.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고 쓴 헌사와 함께.

  서명을 해 줄 수 있고 당연히 팬 미팅하면 습관적으로 해주는 헌사도 써줄 수 있건만, 문제는 “저자의 추억을 담아”라는 글귀. 헌사를 읽어보면 누구나 루디안과 자살한 린다 B 사이에 공통의 “추억”이 개입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당 위원회, 일종의 정보국에서는 옛 군주제 정권의 핵심 가문의 일원과 인기 극작가와의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봐야 마땅하다, 라고 당 위원회의 판사 등 당의 사람들은 주장한다.

  어떻게 루디안의 책이 린다 B의 손에 들어갔을까? 린다가 루디안의 팬이라는 건 앞에 얘기했고, 그이 공연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은 린다는 고등학교 동창한테 연극도 보고, 책도 사서 사인까지 받아 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한 거다. 이 와중에 그 염병한 친구년이 루디안한테 접근해 안다리후리기를 걸어 자빠뜨렸으니 친구가 누군고 하니 지금껏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침대에 오르는 어린 미제나.

  그러니까 미제나는 린다가 보기에 자신과 루디안 사이의 매개인이다. 당장은 아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말하게 되었으니, 미제나와 루디안 사이의 몸 접촉 모두를 이야기한 건 아니고, 키스했다, 정도. 린다와 미제나 둘 모두 레즈비언 성향이 1도 없지만 루디안의 입술이 닿은 미제나의 입술에 린다는 입을 맞춘다. 루디안이 린다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고 하니까 린다도 미제나의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져보고, 자기 단추를 풀어 미제나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본다. 이런 방식으로 미제나를 통해 루디안과의 접촉을 상상해보는 거겠지.

  린다는 미제나가 건강검진을 하러 갈 때 함께 따라가서 유방 촬영을 한다. 유방암이 걱정스러워서? 아니다. 유방암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으면 좋을 거 같아서. 그 정도 되어야 지방도시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해 루디안이 사는 수도 티라나로 갈 수 있으니까. 이런 린다 B가 죽었다. 자살해버렸다.

  그러면 하데스가 통치하는 하계下界로 들어가버린 린다 B를 위하여 누군가가 수금을 켜면서 케르베도스를 잠재우며 땅 아래로 내려가야 하겠지? 이런 방식으로 지난 엔베르 호자 정권 시절의 알바니아를 비틀어버리는 이스마일 카다레. 근데 읽는 내내 의아했던 건, 카다레가 그리스 신화를 자주 가져다 쓰는 건 알겠는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는 조금 무리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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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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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에 접어든 이해미는 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안드레 케르테스의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한달 전까지 만해도 제법 알려진 신문사의 기자로 재직하던 해미는 저널리즘이 정체가 어떤 모습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염증을 견디지 못하고 일단 다음 직업에 대한 준비 없이 무턱대고 신문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버린 것. 우연히 이 때 안드레 케르테스의 사진전이 열린다는 걸 알고 거의 한 달째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근 도장 찍듯 전시관에 가서 폐관시간까지 똑 같은 사진을 관람하던 차였다.

  이곳에서 우연히 우재를 닮은 뒷모습 하나를 발견했다. 해미한테 케르테스의 사진을 처음 소개해준 대학 동기생. 해미는 사회학과를 다니고, 우재는 약학과를 다녔을 때 문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이십대 초반. 서로 들뜨고 갈급했던 시기. 그러나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우재는 2학년 겨울방학 때 입대했고, 연상의 연인에게 실연을 당했으며 제대해 복학할 당시 해미는 모든 학부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눈 앞에 둔 상태였다. 함께 캠퍼스에 있을 때에도 둘은 서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거나, 적어도 두 명 가운데 하나는 연애를 하고 있어서 그저 인연이 안 되는 괜찮은 애 정도로 여기고 말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게 벌써 근 20년 전이다.

  오랜 세월 만나지 않았으면 사실 아는 척을 하더라도 짧은 인사 후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는 서먹함이 뒤따르는 법. 미해도 우재도 벌써 이 정도는 이해할 나이. 미해는 전시장에서 나온다. 근 한 달 동안 매일 들른 전시관 현관 앞에서 오늘따라 전시회 포스터를 오래 바라보고 있던 이미해. 작품에는 안 나오지만 왜 하필이면 우재를 만난 오늘 늦은 오후에 그동한 숱하게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포스터를 유심히 보고 서 있었을까? 벌써 서먹서먹한 사이가 됐고, 연락도 거의 없었던 젊은 시절 조금 가까이 지낸 동아리 친구 우재와의 시간을 만들어볼 속셈이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 하여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재가 전시관에서 나오고, 미해를 발견하고, 혹시 이해미? 아는 척에 이어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My Funny Valentine”을 들으며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 S의 결혼식이었나?”로 시작해서 “아, 너는 결혼했어? 소식을 들은 게 없어서 못 갔는데, 혹시 했다면 미안.”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둘 다 공히 마흔 살에 접어들도록 아직 미혼 상태인 것을 확인한다.

  마흔살이 되면 고향에 가서 약국을 열겠다는 어릴 때부터 우재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곧 제주로 내려가 약국을 개업하겠다는 말은 이 모든 일상적 이야기의 뒤에야 할 수 있었겠지. 미해도 제주에 있는 우재의 집에 가 보았다. 기말시험이 끝난 학기 말에 동아리 선배들이 MT 겸해서, 매번 가던 대성리나 새터 같은 곳에 질렸다고 돌발적으로 제주에 있는 우재의 집으로 가보자고, 돌발적인 결정을 내렸고, 그 기회에 미해 역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 보았다. 그때 알았다. 제주의 이국적인 야자수 가로수들이 사실은 원산지가 제주가 아니고, 제주를 관광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저 민주공화당 시절의 정치인이 야자수 묘목을 도입해 제주에 심은 것이라는 것을.

  독자는 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한다. 외국의 나무가 제주도에 입식되어 그곳에서 몇 십년 터를 잡고 제주의 한 모습으로 고착했으니 이제는 외래 야자수도 제주의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는 점을. 그저 마흔 살의 해미와 우재가 늦게나마 만나서 관계를 이루어갈 수도 있겠다는 느낌만 받을 정도로 프롤로그는 끝난다.

  그럼 여태까지, 독후감의 반 정도를 프롤로그 이야기하느라 소비한 건가? 그렇다.


  해미의 가족은 이제 부모와 해미, 해미의 동생 해나, 이렇게 네 명 남았다.

  해미가 열한 살이었을 적에 가족은 부천에서 서울로 이사했고, 아이들도 당연히 전학을 해야 했다. 이때는 해미한테도 언니 해리가 있었다. 해리는 해미한테 전학 왔다고 쫄지 말라고, 턱을 수평 이상으로 들고 다니라는 의미로 말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해미가 애들 사이의 기준이 될 거라면서. 정작 언니는 벌써 중학교에 다니지만. 언니 해리는 공부도 잘하는 범생이. 학교에 결석하면 안 된다는 엉뚱한 집념에 싸인 20세기형 모범생 언니한테 해미는 종종 “아파도 조퇴하겠다는 말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때가 아마 1994년 12월 7일이었고, 가족이 이사와 살던 곳이 아현동 근처였던 모양이다. 학교 수업 도중 교사에게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말한 모범생 해리한테 담임은 얼마나 아프면 모범생 해리가 조퇴를 신청할까, 안쓰럽게 생각해 곧장 이를 허락했고, 학교를 나온 해리가 오후 두시 50분경 도시가스 저장고 부근을 지나던 때 갑자기 굉음과 함께 저장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부근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50명 가운데 한 명이 돼 버리고 말았다.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곱고, 집안에서도 좋은 맏이였던 딸이 갑작스럽게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 후부터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균열이 발생했다. 이건 어떤 면에서 정상적인 결과인데,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고, 사고와 상실을 당한 가족들 사이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책임 전가가 부부 사이의 끊이지 않는 격렬한 싸움으로 변질된다는 뜻이다. 숱하게 많은 부부가 이 비슷한 일 때문에 갈라서고, 그보다 더 많은 가정이 오랜 시간의 고통 속에서 어찌어찌 지내다가 세월과 함께 기억이 흐려질 때까지 질긴 삶을 이어간다.

  해미네 가족도 그랬다. 엄마와 아빠는 극렬하게 부부싸움을 벌이기 시작했고, 둘 사이의 크레바스는 도무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부부는 헤어지기 직전에 이혼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청에 부임 신청을 해 받아들여졌고, 독어교육을 전공한 엄마는 신학 석사 학위 취득을 목표로 이제 둘 남은 딸들과 독일의 대학도시인 G시로 떠나 2년 동안 지내기로 했다. 물론 해미 친가에서는 말도 많았다. 죽은 맏딸의 보상금으로 엄마가 딸들 데리고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가족을 해체시키려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친척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아빠가 나쁜 남편은 아니라서 이런 말이 쑥 들어가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비록 대학도시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소도시 G시를 고른 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엄마의 큰언니 오행자 박사, 해미한테는 큰 이모가 G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형제는 나이 순서대로 이모, 쌍둥이 외삼촌 둘, 그리고 막내로 엄마가 있었다. 전라남도에서는 아쉽지 않게 먹고 살던 외갓집의 맏딸, 엄마는 언니가 한 명이라 그냥 언니라고 부르면 될 텐데 꼭 큰언니라고 불러 해미 역시 큰이모라 하는 것이 입에 붙은 이모. 전남 지역에서는 손꼽히게 공부를 잘해 수재라고 불렸던 이모는 오래 전부터 독일에서 (독자가 보기에 아마도) 작은 내과 의원의 개업의인 듯했다.

  그러나 시작은 미미했으니, 오행자 큰이모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갑자기 외할머니가 중병에 들어 전라남도 강진 부근의 넓고 넓은 들이, 외할머니의 병원비로 다 날아가버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집에 오래 가는 병자가 한 명 생겼다 하면 집구석 거덜나는 건 오직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우리 집구석도 이런 집 가운데 하나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렇게 망가진 집안은 아주 회복할 수 없거나, 비슷한 수준에 다시 오르기 위하여 적어도 두세 세대가 필요한 거 같다.

  한 순간에 거덜난 집구석에서 맏이로 큰이모가 선택한 것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서독 파견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되어 비행기를 타는 일. 큰이모는 독일에서 거구의 독일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직무 관련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아 간호조무사에서 정식 간호사를 거쳐 계속 의학공부에 몰두, 드디어 내과 의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마도 1995년, 미해가 열세살 겨울부터 열다섯 살 겨울이 될 때까지 미해는 독일 G시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절반 이상이 이 시절 독일 G시에서의 일이며, 특히 독일 파견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출신 여사님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로 꾸몄다.


  해미와 동생 해나는 독일에서 자연스럽게 마리아 이모의 딸이자 반half독반한 혼혈 레아, 한 살 위 한국계 독일인 한수와 친구가 되고, 해미와 해나도 독일어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지만, 스토리의 핵심은 뇌종양 전력이 있는 간호사 선자 이모의 첫 애인 KH를 찾는 일이다. 언제 뇌종양이 재발해 생을 마쳐야 할 지 모르는 말수 없는 억척어멈 선자이모의 아들 한수는,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떠난 파독 광부 출신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십대 시절 사랑했던 KH라는 이니셜의 연인을 찾아, 가능하다면 독일로 초청해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다. 착한 아들 답게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한수와 레아, 그리고 미해가 일종의 탐정 놀이 비슷하게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여정은 해미가 열세 살이었던 1994년부터 시작해 마흔 살인 2020년 경까지 계속된다. 20여 년 동안 찾았다니까 결국 문제의 KH, 이미 고인이 된 선자이모의 첫사랑이자 벌써 노인이 된 KH를 찾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다. 독자는 이제 해미가 거동마저 불편한 KH를 만나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까지 모두 본 다음에, 프롤로그에 이어 다시 에필로그에서 각본대로 해미가 우제를 만나는 장면으로 책을 덮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작품을 진전시키는데, 아오, 백수린의 거미줄 또는 실핏줄 같은 문장이라니. 그렇게 섬세하고 깔끔하고 사색적인 문장이 아주 제대로 감성을 폭발시켜, 독자는 간질간질한 섬세함과 사색과 고독 속에 질려서 까무러쳐 버리기를 몇 차례인지도 모른다. 질리고 질려서 책의 중간도 오지 않아, 무지하게 지루한 난관까지 만나는데, 애초 이런 작품들로 독서생활을 시작한 독자들은 연신 감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나, 꽃노래도 삼세번이건만 같은 또는 비슷한 귀절을 매끄럽지 않은 둔주법, 푸가로 연주해대고 있으니, 귀 밝지 않은 절대 음치더러 도무지 뭘 하라고 하는 말이고 문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감이 잡히시지? 하여간 아마추어가 읽기에 그랬다는 거니까, 백수린의 많은 팬들이 읽기에 기분 나쁜 독후감이라도, 세상에 같은 의견만 있어도 좋지 않은 법이라는 선에서 이해해주시기를 앙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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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09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실핏줄같은 문장이라니... 너무 적절해서 진짜 오늘 깜짝 놀랐잖아요. ㅎㅎ 전 거미줄보다는 실핏줄에 한표입니다. 거미줄은 좀 끈적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백수린 작가는 실핏줄. ㅎㅎ 물론 이런 문장을 좋아하고 말고는 독자의 몫일뿐이고요. 저는 이런 문장을 안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백수린 작가는 또 좋아요. 실핏줄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호불호가 달라질듯요.

Falstaff 2026-09-09 08:55   좋아요 1 | URL
아침 햇살에 비치는 영롱한 거미줄, 그거 참 미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