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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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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읽는 <일리아스>일 듯하다. 중학생 때 처음 읽은 건 당시 수준으로는 꽤 두꺼운 책으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목동 파리스한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묻는 것부터 시작해 트로이 목마 사건에 이은 멸망까지 망라했으니 호메로스가 아니고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신화 같은 것을 소년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획물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이야기가 재미 있어서 밤을 꼴딱 세우지는 못해도 늦은 밤까지 책을 들고 앉았던 것이 기억날 정도이니 처음부터 나는 <일리아스>에 폭 빠졌던 것이 틀림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천병희와 유영의 번역서를 거쳐, 지금 호메로스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 현재 방송통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준석의 번역으로 다시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일리아스>라고 해도 족히 10년은 넘어, 이제 이 책의 스토리는 삼천만의 기본상식이 되었을지언정 사실 정작 읽으려고 하면 무수하게 등장하는 신과 사람과, 특히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에 관한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지독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을 터인데, 다행스럽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그리스의 다른 고전, 예를 들어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해 각종 버전의 트로이 전쟁 전후사에 대해 조금의 이해를 마련해 두어, 이번 이준석의 번역서를 읽으면서는 여간해서 각주를 읽지 않아도 무리가 별로 없었다. 이건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일 수밖에. 이 기분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히려 장면, 단락,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게 되어, 24권 754쪽을 읽는데 사흘 반을 사용했다. 문장마다 이 문장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인물의 어떤 전사, 또는 후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음미할 수 있는 것, 이건 일종의 자잘한 기쁨이었을까?
책을 읽자마자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 별 넷을 기록한 건, 일개 하찮은 독자에 불과한 내가 서양 문학의 고전 가운데 고전인 위대한 호메로스의 작품을 별 하나라도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창작물, 그리하여 이후 2천년 이상 수많은 예술작품의 영혼의 기원이 되어왔던 이야기라는 측면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쟁소설’ 또는 ‘전쟁 서사시’라면, 즉 호메로스라는 이름값을 빼고, 완전히 근현대인 입장에서 작품으로 읽었으면 어땠을까, 궁리했다는 뜻이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지만 <일리아스>에서 신화를 제거하고 오직 인간들이 만드는 피 터지는 전쟁으로 본다면, <일리아스>는 오직 힘세고, 빠르고, 칼과 활을 잘 쏘는 영웅들의 싸움으로 일관한다. 갈등의 가장 큰 축은 그리스 군과 트로이아 군 사이의 다툼에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작은 전투의 전리품이기도 했던 여자 포로를 빼앗아가고 뺏긴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사이에 있다. 10년을 끌어온 전쟁의 명분 역시 트로이아의 왕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한 파리스가 스파르타를 다스리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꼬드겨 데려감으로써 그리스 연방에게 수치를 주었다는 거다. 즉 전쟁 발발부터 이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명분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신들이 개입한다. 그리스 쪽에는 헤라, 포세이돈, 이 막강한 신들을 포함해 아테네와 헤파이스토스가 붙고, 막강한 헤라, 포세이돈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중량감이 떨어지는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레스 등 A자로 시작하는 신들이 합세한다. 그리고 신들의 신 제우스. 이 양반은 겉으로 보면 트로이아를 슬쩍 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킬레우스의 엄마이자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인 테티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 은근히 그리스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신들을 언급하느냐 하면, 작품 속에서 신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 트로이아 군을 함빡 이끌고 그리스 선단 바로 앞까지 진출해 끝이 휘어진 그리스 배를 향해 횃불을 던지며 화공을 도모하는 트로이아 최고의 영웅 헥토르. 그가 쏟아지는 화살과 창날 속에서도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선봉에 서서 숱한 그리스의 소영웅들을 도륙낼 수 있었던 건, 전쟁의 신 아레스가 활기를 부어 넣어주었기 때문이고, 부상을 입어 여차하면 마지막 치명적 일격을 당할 순간에는 아폴론이 짙은 안개를 부어 넣어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하는 식으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어가기에 가장 편한 장치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전매특허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하고 비슷하지?
작품의 대전환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쟁에 나온 파트로클레스의 죽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을 부여잡고 슬피 울다가 천추의 원수가 된 헥토르를 죽이기 위하여 잠도 안 자고, 밥도 한 그릇 안 먹고, 물이나 포도주 한 잔도 안 마신 상태에서 엄마 테티스 여신이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한테 부탁해 가져온 투구와 갑옷을 떨쳐 입고 죽음을 모르는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 오른다. 근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며 잠도 안 잔 필멸의 인간이 이런 상태로 전투를 할 수 있겠어? 이때 제우스가 등장한다. 모든 신의 아버지 제우스는 전령을 통해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 등의 즙을 짜 아킬레우스의 입에 흘려 넣는다. 그러니 아무리 끼니를 걸러도 사기 충천해 단칼에 트로이아의 영웅들을 도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내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던 동아시아의 소설이 있었으니 호메로스보다는 1천8백년 이후 사람인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월탄 박종화 번역의 <삼국지>를 읽은 것이 우연하게 첫 <일리아스>를 읽은 해 여름방학 때였다. 이후 <삼국지> 번역본도 꽤 읽었다. 최근 번역은 민음사에서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다가 지금은 판권계약이 해제된 이문열 평역. 번역과 평역은 많이 다르다. 월탄 번역에서는 황건적의 두령 장각이 환술, 요술 같은 것을 사용해 숱한 야수들을 불러 적진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반면, 이문열 평역은 해당 부분을 적절하게 자신의 시각으로 바꾸어 원본과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
아울러 월탄 번역에서는 다분히 도교적 장면도 속출한다. 도교? 맞다. 아니, 맞는 거 같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듯하다. 이런 장면이 <일리아스>에서 신들의 출현과 뭐가 다르냐,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삼국지>에서 환술, 요술과 도교적 상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조미료 수준이다. <일리아스>에서 신들이 하는 역할을 <삼국지>에서는 누가 할까?
놀랍게도 군사軍師라고 일컫는 전략가의 몫이다. 조조한테 탈출한 유비가 관우, 장비를 만나 유표한테 몸의 의탁하자, 유표는 작은 신야성을 맡겼는데 여기서 만난 거의 최초의 전략가가 서서.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조조군의 대군이 짓쳐오니 서서는 긴 장대에 낫 비슷한 것을 매달아 유비군을 갈대밭 속에 숨겨 놓았다가 조조군이 행군할 때 적군의 발목을, 발목만 끊어 놓는다. 이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죽지 않고 번히 살아 있으면서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전우를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그리하여 어쨌거나 승리 또는 조조군의 진격을 조금 멈춘 유비군은, 조조의 계략에 의하여 서서를 조조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른다. 조조의 땅에 사는 늙은 서서의 엄마가 아들한테 자신을 보살피러 오라고 당부하는 거짓 편지를 보낸 거다. 덕의 사나이라고 지칭하는 유비가 어찌 안 보낼 수 있느냐는 말이지. (서서의 모친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달려온 아들의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한다.) 서서는 길을 떠나며, 죽어도 조조를 위하여 꾀를 내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 다음에 걸출한 전략가를 추천하니 그 사람이 바로 제갈량. 이후 <삼국지>는 유비, 조조, 손권 또는 유비, 관우, 장비의 무대에서 제갈량 1인 주인공의 극으로 완벽하게 전환한다. 진짜 제갈량의 독무대. 실제로 제갈량이 죽은 이후 <삼국지>는 무지 지루해진다. <삼국지>의 진짜 영웅은 힘세고, 칼과 창, 활에 능숙하며, 적장의 머리를 단칼에 베는 장수들이 아니라 전략가들이라는 점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전략가들의 지략 대결을 전혀 볼 수 없다. 조조 측에서는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유비 측의 제갈량, 방통, 마량. 손권 측의 주유, 노숙, 육손. 이런 인물들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에서도, 불쌍한 프리아모스 왕의 수하에서도 딱 한 명씩 밖에 없다. 그리스 군의 네스토르와 트로이아 군의 플뤼다마스. 하지만 이들은 전력가라기보다 예언자에 가깝다. 그나마 그리스 군은 네스토르의 조언에 귀를 기울리건만, 트로이아는 현명한 예언자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호메로스는 이것이 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순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리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멸의 인간이 맞을 운명. 이건 신의 뜻도 아니다. 신조차 이 운명을 어길 도리가 없었으니, 이 그리스 신들의 전통은 수백년이 지나고 등장할 기독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을 걸?
하여간 전략이 없는 전쟁소설을 읽는 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오직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주먹과 깡통 머리통만 가진 영웅들의 난투극. 저 앞에서 말했듯 스마트폰 앱 북적북적에서 별 넷을 준 이유, 즉 별 하나를 제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전쟁에서의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매복도 없고, 화공도 없고, 협공도 없고, 동맹군 간의 이간도 없는 전쟁극.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을 이렇게 볼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일리아스> 역시 딱 한 번 읽고 내버려 둘 작품도 아니다. 이 책 한 권을, 특히 동양의 독자가 한 번 읽고 그걸 기념할 수 없을뿐더러, 만일 나처럼 소년을 위해 읽히기 편하게 편역한 책이 아니고, 천병희나 이준석의 원본 번역을 처음 접했다면, 7백쪽이 넘는 분량을 한 방에 읽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읽는 게 훨씬 좋다. 이후 독서량이 늘어감에 따라 저절로 트로이아 전쟁 앞뒤 이야기를 보탤 수 있게 될 것. 그럴 때 다시 읽으면 첫번째보다 훨씬 맛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 필요없는 명작.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지금 읽은 것이 인생의 마지막 <일리아스>도 아닐 필생의 책일 수도 있는, 책 중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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