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의 날개 1 대산세계문학총서 198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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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2년 만에 다시 헨리 제임스를 읽었다. 제임스를 읽을 때마다 늘 그렇듯이 그의 장황한 상세묘사에 아예 넋이 나가버렸다. 1권, 2권, 서문과 해설을 합해서 꼴랑 860페이지를 읽느라 무려 일주일을 다 소비했다. 상세묘사도 상세묘사 나름. 이번에는 인물이나 주요 장소인 베네치아의 명소 등 외관에 관한 상세묘사 대신 사람의 심리를 샅샅이 해부했다. 심리적 실핏줄까지 전부 언어로 써 놓았으니 그의 노고가 “정말로” 대단하지만, 그걸 읽는 독자는 콱 질려버린다. 누군가 말했지. 진짜 잘 쓴 소설은 전부 심리소설이라고. 여태 그 말에 동의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젠 그만. 심리 소설도 심리 소설 나름.

  영국 젠트리 계급의 속물성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

  초간이 1902년이니까 헨리 제임스가 미국인으로 살 때이다. 하지만 무대는 런던. 벨 에포크 시대가 절정을 달하던 때.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귀족, 부르주아 종족들은 사치와 계급 유지와 일 하지 않는 미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나는 이런 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던 헨리 제임스가 애초 영국 젠트리와 미국 부르주아의 속물성을 까발리기 위하여 작품을 썼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유치한 사람들이 펼치는 사랑 놀음과 나름대로의 진정한 사랑을 읊느라고 읊은 것을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시각으로 읽으니 눈꼴 신 속물성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길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스물다섯 살 먹은 케이트 크로이 양. 위로 두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오빠 둘은 죽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로 말하자면 한 시절에 가히 영국 최고의 미남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훤하게 잘 생겼던 남자. 생긴 꼴을 하느라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안 살림을 망쳐 놓는데 전력을 다했음에도 아직 완전히 망자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독자가 보기엔 망가진 인물이고 망가진 집안이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방을 얻어 아버지 혼자 산다. 인간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지만 완벽한 외모와 몸에 박힌 신사의 품행을 가진 빈틈없는 영국 신사. 속 마음과 달리 악의를 찾을 수 없는 상냥한 눈과 또렷하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기꾼.

  언니 메리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교회 목사한테 시집 가더니 결국 아이 넷 달린 과부 신세가 됐다. 아빠를 닮아 수려한 외모를 가졌으나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는 여인. 죽은 남편의 누이 두 명과 여태 친분을 쌓고 있다. 일찍 죽은 어머니가 메리언과 케이트, 두 딸한테 각각 2백 파운드의 연금을 남겼으나,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착하고 정의로운 케이트가 네 아이를 키우는 언니한테 1백 파운드를 양보했다. 그게 아버지의 불만이다. 젊은 메리언한테 줘 봤자 시누이들 비스킷 값으로 다 넘어갈 테니 차라리 자기한테 쓰라고 하면 오죽 좋았겠느냐는 거겠지.

  하여간 메리언 언니에 대하여 헨리 제임스는 조금도 좋은 방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읽기에 주인공이자 정의로운 사랑꾼인 동생 케이트보다 훨씬 진정한 인물이다. 적어도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게 산다.

  케이트는 이모 모드 러더 부인 집에서 이모와 함께 산다. 다만 조건이 있다. 아버지 라이어널 크로이 씨와 어떤 이유라도 왕래하지 말 것.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아버지한테 찾아가 함께 살자고 제안했지만 깨끗하게 거절당했다. 라이어널이 미쳤니? 자기 한 입 먹고 살기도 힘든데 노동하지 않을 것이 뻔한 막내딸을 들이게?

  모드 러더 부인은 전형적인 영국의 부르주아. 랭커스터게이트의 부촌에 저택을 짓고 산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위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인물. 조카들을 가끔 찾았지만 극도의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름대로 돌보느라 애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런 이모가 케이트와 함께 살고 있으니 조카의 거의 모든 일 역시 이모의 관심 속에, 관리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애정 문제도 마찬가지.


  케이트의 연인이 머튼 덴셔. 아쉽게도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할 정도로 돈이 없는 청년이다. 모드 러더 부인 눈에 찰 턱이 없다. 아무리 잘 생기고 몸가짐 바르고 성격도 좋지만 돈 없으면 꽝이다. 케이트 역시 이를 알아 덴셔가 자기 애인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던셔도 마찬가지. 이모가 꼽는 케이트의 신랑감 가운데 한 명이 마크 경. 경卿. 영어로 Sir. 마크한테 시집을 보내면 잘 하면 공작부인이 될 지 그걸 누가 알아? 많지는 않지만 돈도 꽤 있는 양반인데. 하지만 틀렸다. 돈은 이모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신 나이가 많다. 벌써 머리가 훌렁 벗겨진 늙은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이 많은 남자가 그리 큰 흉이 아니어서 웬만하면 그냥 밀어붙이고 싶다. 케이트야 질색을 하건 말건.

  머튼 덴셔가 일을 꽤 잘한 모양이다. 이 시절 영국의 목면 사업의 최대 파트너는 미국. 이 가운데서도 뉴욕. 그리로 몇 달간 출장을 가게 됐다. 그래서 잠깐 무대가 미국으로 바뀐다. 뉴욕에서 만나 사랑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 정도로 좋은 감정을 나눈 아가씨가 밀리 실. 덴셔를 출장보낸 회사의 파트너 기업 최대 주주. 아버지가 일찌감치 죽으면서 졸지에 젊고 아름답고, 예절 바르기도 하고, 생각하는 것도 건전한 아가씨 손에 무지막지한 돈벼락이 떨어졌다. 자상한 헨리 제임스가 밀리 아가씨를 이런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하여 친척 나부랭이들이 한 명도 없고, 형제 자매도 하나 없는 완벽하게 외로운 젊은 여성으로 설정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

  밀리 실 양이 가진 부는 영국 섬나라의 부르주아 모드 로더 부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헨리 제임스가 설정한 여러 미국인들은 대개 무지무지하게 부자인 것과 마찬가지. 밀리가 알프스에 쉬러 갔다. 부잣집 아가씨가 여행을 혼자 떠나지는 않았겠지? 샤프롱 자격으로 함께 길을 나선 이가 수전 셰퍼드 스트링엄 부인. 보스턴 사람 스트링엄 부인이 젊은 시절에 어찌저찌 해서 모드 매닝엄을 알게 되어 아직 주소를 가지고 있다. 이래서 밀리와 스트링엄 부인이 다음 행선지로 이탈리아가 아닌 런던을 택하게 된 것.

  여기서 주목할 가장 중요한 반전 상황.

  케이트의 런던 행에는 사실 다른 목적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수술 집도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루크 스트랫 박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던 점.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린다. 케이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1권 256페이지에 스트링엄 여사를 향한 밀리의 대사가 나온다.


  “겉보기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보장해주는 즐거움조차 훌륭한 묘비에 적힐 정도가 못 되는 그날 내가 그럴 테지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죽은 것처럼 살았으니까, 틀림없이 죽을 때는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을 거예요. 그게 아마 아줌마가 바라는 모습일 테고요.”


  “복선?” 나는 위 문장을 읽고 이렇게 메모해 놓았다.

  런던에서 자연스럽게 밀리 양은 모드 러더 부인과 일당들인 케이트, 마크 경을 만나 알게 되고, 케이트와는 우정까지 돈독하게 또는 겉으로만 돈독하고 속으로는 던셔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자일 수도 있게 되겠지? 뉴욕에서부터 던셔를 만나 속으로 평한 밀리의 생각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여서, 훗날 알게 되는 사실, “개인적인 재산이라고는 없고, 생길 가능성도 없”는 건 밀리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애초에 던셔가 가난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정말 가난한 무산 계급 사람이 들으면 완전 허파 뒤집어질 이야기다. 몇 달씩 휴가 내고 베네치아에 갈 수 있는 청년이 개인적 재산이 “없다”고? 욕 나오겠지? 내 입에선 욕 나왔다. 더러운 속물 젠트리들.


  밀리는 무지막지한 부자. 그러나 곧 죽을 수도 있다. 1권에서 보면. 이때 내 머리 속에서 번쩍 떠오른 미쿡 사람 한 명. <한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이사벨 아처의 이모부. 이사벨이 문병을 와 이모부한테 얼른 쾌차하셔야지요? 라고 의례적으로 묻자, “싫다. 나중에 죽으려면 또 이만큼 아파야할 거 아니겠니?”라고 대답해 나를 감격시켰던 인물. 이이가 진짜로 죽으면서 현금 7만 달러, 2017년 현재가치로 251억원을 상속해주었다.

  혹시 밀리 역시 죽으면서 이 불행한 연인, 현 상황이라면 절대 결혼에 성공할 수 없는 케이트와 덴셔에게 당연히 전 재산은 아니지만 거액을 물려주는 거 아냐?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 다시는 헨리 제임스를 읽지 않겠다.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한테 했다.

  어떻게 되느냐고? 안 알려드린다.

  이건 말할 수 있겠지. 벨 에포크 시절 귀족 부르주아 사회의 속물성, 지저분한 사고방식, 위선이 온갖 말빨과 수사와 눈치에 섞여 있다는 거. 등장인물 가운데 자기 생각을 드러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불쌍한 네 아이의 엄마이자 과부인 가난한 메리언 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사람이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니?” 자기 본심은 꽁꽁 숨긴 채, 뜻대로 되지 않으면 꼭 그걸 꺼내 비틀어버리는 인간들. 이런 사람들 구경 한 번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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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종려나무 - 예루살렘이여, 만약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5
윌리엄 포크너 지음, 권지은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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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 쓰려 워드 열어 놓고 몇 십 분 멍 때리고 있다. 도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이 책은 <야생 종려나무>와 <노인> 두 작품을 교체로 번갈아 실었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결국 어느 한 점에서 만나는 결말을 늘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는 알려드리지 않겠다.


  먼저 <야생 종려나무>.

  책을 열면 바닷가 이층 오두막집과 그 옆집. 집 주인은 48세의 통통한 의사. 이곳에서 사는 건 아니고 여기에서 6km 떨어진 시내에 전기가 들어오는 회반죽으로 벽을 바른 집에서 살면서 이곳을 별장 비슷하게 여긴다. 의사는 주립대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인턴생활 2년을 제외하고 나면서부터 줄곧 한적한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는 20세기 초반의 잘 큰 시골 범생이답게 의사 면허를 따 고향에 돌아온 다음 해 아버지가 골라준 배필과 결혼해서 아직까지 아이 없이 살고 있다. 아내가 이재에 밝아 결혼 10년 후에 바닷가에 이층 오두막과 옆집을 사서 휴가객에게 주 단위로 이른바 팬션업을 하는데 이게 의외로 쏠쏠하다.

  이 두 오두막 집 옆에 종려나무가 서 있다. 바닷가라서 바람이 불면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는 것이 인상 깊다. 제목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 야생 종려나무가 야생 종려나무이려면 반드시 조금은 거센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래야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가 날 터이니.

  독자는 처음부터 헛갈릴 수도 있다. 포크너가 의사 부부, 특히 의사에 대해 조금 과하게 정보를 주어, 중년의 의사가 작품의 주인공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아니다. 나흘 전에 남녀 한 쌍이 별장 옆 건물에 두 주일 일정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진짜 주인공들.

  여자는 어딘가 두려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노란 눈동자를 하고, 자크가 옆구리에 달린 여성용 바지가 아니라 격식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다리에 달라붙는 남성용 바지를 입은 여자는 쾡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의사가 척 보니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척한 모습이다. 분명히 병든 모습. 1기 아니면 2기. 어쩌면 3기일 수도 있지만 심장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직 독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이이의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돌팔이 비슷한 지는 모를 단계라서.

  작가 포크너가 묘사하기를, 여자의 증오에 찬 시선은 인류 전체를 향한 증오, 인류 전체가 아니라 남자들을 향한 혐오로 보인다. 의사 부부는 이미 알고 있거나 적어도 눈치채고 있었다. 이들이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라는 것을. 숱한 사람들을 겪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틀림없다고 귀띔을 해준 상태. 그러나 부부는 이 사실이 매우 불쾌하지만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만일 말이 나왔다 하면, 그 순간에 의사가 이들을 내보낼 것이란 걸 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2주치 집세를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서. 그리고 따져 보니 그들, 숙박객의 전 재산이 20달러뿐이고 그것도 3일 전 이야기이며 여자 상태가 좋지 않아 인정상 내보내기가 껄끄러워서.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남자 해리 윌본이 의사가 머무는 2층 오두막집의 현관을 두드린다. 강한 바닷바람이 예의 종려나무 잎사귀에서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한 밤중, 윌본은 집주인에게 급하게 의사의 왕진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야 하겠다고 하고, 그는 자신이 의사라고 밝힌다. 해리 윌본과 함께 묵고 있는 여자 샬럿 리튼마이어가 피를 흘리고 있단다. 의사는 생각한다. 아하, 폐의 문제였구나. 심한 각혈을 하고 있다니.


  해리 윌본. 나이 많은 의사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막내 아들. 두 살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아들의 의대 수업료와 재학중 생활비로 사용하라고 2천 달러를 상속했다. 자신이 어렵게 돈을 벌어가며 의사가 됐던 시절에 필요했던 2백달러의 열 배에 달하는 돈이니 충분하리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19세기 말의 관점이었을 뿐이라서 해리는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1년 인턴 생활하는 동안 지독하게 근면해야 했기 때문에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딱지도 떼지 못했다.

  그러던 하루, 절친이 강압하다시피 파티에 함께 가자고 재촉해 그의 정장을 빌려 입고 참석한 파티에서 필생의 여인을 만난다. 이이가 바로 샬럿 리튼마이어. 천생 신사이자 부르주아인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 둘은 만나자마자 확 불이 붙는다. 물론 한 번도 사랑은커냥 딱지도 때지 않은 윌본은 그게 사랑의 불인 줄 그때는 몰랐다. 샬럿은 윌본을 자기 집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또 초대하고, 밖에서 만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화염에 휩쓸려버린다. 불 같은 여성. 사랑에 관한 한 절제도, 한계도,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화염 그 자체. 샬럿은 남편에게 애인이 생겼으며, 그의 이름이 해리 윌본인데 이제 둘이 떠나야겠다고 통보한다. 가톨릭 신자인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서 혼인의 청산은 바라지 않는다며.

  쥐, 랫Rat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편 프랜시스는 해리 윌본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3백달러 수표를 건네며, 해리가 샬럿을 책임질 수 없는 때가 오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샬럿을 다시 돌려보내라고 한다. 만일 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반드시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임을 통보하면서. 독자가 주인공 입장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야말로 내가 보기에 신사 중의 신사, 부처님 가운데 토막 중에서도 가운데 토막의 사나이. 그러나 구습에 얽매인 조금 막힌 사내라서 자유분방하고 사랑 하나에 목숨 거는 샬럿한테는 맞지 않는 불운의 사나이다.

  이래서 집 나가는 샬럿과 의대 졸업하고 2년을 채워야 하는 인턴 기간을 절반 밖에 수료하지 않은 해리 윌본. 일찍이 우리나라 탤런트 변우민이 말한 바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사랑은 좋지만 이들 앞에 닥친 것은 대공황과 아무 쓸모없는 의대 졸업장. 그리하여 우물 밖의 정글 속에 이들은 세월의 사나운 발톱질을 견디다, 견디다 무너져야 할 일만 남았으리.


  다음은 <노인>.

  때는 1927년 5월. 미시시피주에 대홍수가 있던 시절. 두 죄수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한 명은 25세 정도. 키가 크고 마른 몸매에 그을린 얼굴. 분노로 들끓는 눈매를 가지고 있다. 이 분노는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막은 사람들을 향한 분노라 아니라 작가들을 향한 분노이며, 싸구려 소설에 등장하는 무형의 이름의 주인공들, 다이아몬드 딕이나 제시 제임스 같은 부류를 향한 분노였다. 특히 작가들이야말로 그를 현재의 곤경에 빠뜨린 주범이라 할 만했다.

  이 키 큰 죄수가 범죄를 저지른 건 18세 때. 싸구려 소설에서 하도 많이 다이아몬드 딕과 제시 제임스 같은 서부의 무법자를 많이 읽어 그들을 흉내 냈다. 그리하여 다이아몬드가 했던 그대로 복면을 하고 (발포되지도 않는 고물 또는 가짜) 권총을 들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소설에 의하면)금고가 실린 칸에 들어가 총을 뽑기도 전에 경비원들에게 두드려 맞고 현장에서 붙잡힌 강도 미수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러니 싸구려 소설과 주인공들과, 무엇보다 형편없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큰 분노를 갖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두번째 죄수는 키가 작고 통통한 몸집에 매우 흰 피부, 그리고 알 대머리의 남자. 아무도 이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 지 모른다. 다만 형기가 199년에 이른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범죄이길래? 그래서 독자는 이이의 범죄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짐작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이는 1927년에 미시시피강 홍수 때 키 큰 죄수와 함께 고립된 두 사람을 구하러 조각배를 타고 나섰다가 홀로 구조되는 인물일 뿐이다. 엑스트라와 조연 사이 정도의 무게감.

  하여간 두 죄수는 미시시피 강이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져 큰 난리가 나, 나무 꼭대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여성과 건물 옥상에 고립된 남성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고 떠난다. 키 작은 죄수는 심지어 노를 저을 줄도 모르지만 하여간 키 큰 죄수를 따라 나섰다. 거대한 강에서 홍수가 나면 물길이 하나로 일관되게 흐르는 게 아니어서 애초에 나룻배 수준의 작은 배를 노 저어 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 그리하여 소용돌이에 갇히는 일이 생겼고, 이때 헤엄도 치지 못하는 키 작은 죄수가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큰 나무 아래라서 꼭대기에 올라 겨우 구조될 수 있었다. 이이가 나무에 올라 사방을 보니 이미 조각배와 다른 죄수는 시야에서 사라져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 교도소장과 부소장에게 그렇게 보고하여 키 큰 죄수는 법적으로 익사 처리됐다.

  그러나 키 큰 죄수는 하잘것없는 조각배를 기어이 노 저어 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여성을 구해냈고, 그 여성이 만삭이 임산부였는데 하여간 그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예정일이 남았지만 무사하게 출산하게 해주었으며 몇 주 동안 배를 곯지 않게 돌보았다. 독자는 이 죄수가 하는 행동을 읽으며 저절로 <야생 종려나무>의 주인공 해리 윌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는 짓이 비슷하다. 생각하는 것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리하여 죄수가 어설픈 열차 강도 미수범이란 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민망해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두 작품을 책 한 권에 교차 편집한 것도 나 같은 독자를 위해 그리 했으리라.

  플롯은 두 작품 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도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이라니. 별로 길지 않은 책을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었다. 이런 “책 읽는 즐거움”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즐기는 일. 참 근사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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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8-03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밀도가 높은 소설이라 진작에 다 읽고도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어요.
미국이란 나라는 워낙 넓어 이런 소재의 글이 나오는 것 같아 부러웠습니다.
제발 알려주세요.
야생 종려나무와 노인의 접점이 무엇인지요?

Falstaff 2026-08-03 12: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접점은요 뭘. 그냥 소설 두 편이더라고요. 괜히 뭔가 있는 것처럼 독후감 써본 겁니다. ^^;;
며칠 전에 연작소설 <내려가라, 모세여> 읽었는데요, 그것도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놓치지 마세요!!

그레이스 2026-08-03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샀습니다.
아직 못읽었지만 ㅎㅎ

Falstaff 2026-08-04 04:36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후딱 읽으셔요! ㅎㅎ
 
지금, 그리고 그때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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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레 킨케이드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까 재미있는 가족사가 나온다.


  “킨케이드는 1979년에 작곡가이자 베닝턴 컬리지 교수인 앨런 숀과 결혼했는데, 그는 (킨케이드가 1976년부터 전속작가로 일하고 있던) 뉴요커의 오랜 편집자 윌리엄 숀의 아들이며, 극작가 월리스 숀과 형제이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어쩌구저쩌구… 킨케이드와 숀은 2002년에 갈라섰다.”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루시>에서 뉴욕 근처에 입주 보모, 오페어로 들어간 이야기를 한 바 있고, <미스터 포터>는 생물학적 아버지, <내 어머니의 자서전>은 좀 냉정한 어머니에 대하여 말했다. 이제 <지금, 그리고 그때>를 쓰면서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이 2013년에 나오면서 앞에 인용한 위키피디아 내용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조금 구설에 올랐던 모양이다. 작중 부부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가 누가 보더라도 앨런 숀하고 너무 닮았기 때문에.

  앨런 숀이 작곡가이자 컬리지 교수. 미스터 스위트는 집에 부속한 차고 위에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를 둔 작업실에서 음악에 전념하는 작곡가. 뉴욕주의 주도 올버니에서 관객 스물 댓 명을 모시고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도 연주하는 모양이다. 듀크 앨링턴의 재즈와 현대 음악, 주로 안톤 베베른, 아널드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류의 음악을 연결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장르를 불문해 교향곡, 성악, 현악, 피아노곡 등을 망라하지만, 현대음악이 거의 다 그렇듯 대중의 호응이 거의 없는 불운한 작곡가. 무대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로 보이는데 집안이 뻑적지근하고,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와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는 결국 성대한 결혼식을 끝내고 저지 맨해튼 건물의 옥상에서 자유낙하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물론 이 불행한 죽음은 앨런 숀의 경우와 다르리라 믿는다. 하여간 이런 맥락으로 보아 아프리카계 이민자인 미시즈 스위트의 남편 미스터 스위트는 백인 인텔리겐치아일 것이다.


  처음엔 미시즈 & 미스터 스위트도 좋아서 죽고 못 살았겠지. 하는 짓마다 예뻐 보이고, 잘나 보였을 테지. 그렇게 살다가, 사실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가 투신자살 해버렸으니 사랑과 행복의 시기가 지극히 짧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맏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낳을 때까지는 다른 부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다음에 어린 헤라클레스를 낳았을 때, 미스터 스위트는 벌써 아내를 몹시 미워하는 상태였고, 미움을 넘어 그녀가 얼른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때가 허다했다. 아내가 미우면 아내가 낳은 아들도 미울까? 미스터 스위트가 갓난 헤라클레스의 탯줄을 끊자마자 품 안에 안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헤라클레스를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도끼다시”한 시멘트 바닥에 거꾸로 떨어져 두개골이 박살이 나 죽어버리는 광경을 머리 속에서 그리기도 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이혼한지 10년이 넘은 전 남편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렇게까지 악담을 서슴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전작에 비해 유달리 입이 험하다.

  “신생아인 아들을 바라보았는데 아기를 품에 꼭 안기가 두려웠다. 품에서 놓쳐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더없이 강렬한 열망이, 몸은 멀쩡하지만 머리가 깨져, (중략) 분만실 바닥 사방에 아이의 뇌가 흩뿌려지는 걸 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p.77)

  미스터 스위트가 본 미시즈 스위트는 출신부터 바나나보트를 타고 미국에 들어온 유민. 바나나보트? 칼립소의 황제이자 내 우상이기도 한 해리 벨라폰테의 노래 중에 <Banana Boat Song>이 있는데 이 바나나보트가 아니다. 미스터 스위트가 말하는 건, 서인도제도에서 거렁뱅이들이 사람이 타는 여객선이 아니라 바나나 수송용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밀입국한 불법 행위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자기는 마누라하고 씨가 다르다는 건데, 이런 혼인은 시한폭탄 하나를 품에 안고 시작하는 꼴이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폭탄.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

  그러면 미스터 스위트는 여태 왜 살았느냐고? 킨케이드 가라사대, “미움은 사랑의 정반대이고 그래서 사랑과 가장 유사한 형태”란다. 그러니 미움을 사랑이라 오해하면서 살 수 있었다는 뜻이겠지.

  웃기네. 웃기지?

  처음엔 자기와 다른 피부색도 좋아 보였고, 계급이 다른 것도 오히려 그래서 매력적이고, 부모가 특히 엄마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것도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이것 저것 다 합해 남들 앞에서 후까시 잡기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살면서 보니까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가 너무나 많이 서로 다르니까 처음에 싫다가 결국 미워졌겠지. 이러다 보면 결국 사고 친다. 그리하여 저 뒤로 가면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와 어린 헤라클레스를 앞에 두고 미스터 스위트가 고백을 해버린다. 자기한테 진정한 사랑이 찾아 왔노라고. 꼴값하는 거지 뭐.


  그래서 결국 미시즈 & 미스터 스위트는 혼인의 불행한 종말을 맞는데, 이게 주된 내용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은 이런 문장이다.

  “현재는 그때이자 지금이고, 과거도 그때이자 지금이며, 미래도 그때이자 지금이 될 것.”

  쉬운 이야기로 하자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지금 벌어지는 모든 것도 영원히 남을 거란 뜻이다.

  이 정도면 미시즈 스위트도 깔끔하게 자기 이름에서 “스위트”를 싹 지워버리고 당연히 위자료 넉넉하게 챙겨 아이들하고 오붓하게 살면 될 것을, 서인도제도 사람들의 정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지난 이야기, 심지어 자기 모국 엔티카 바부다의 인정머리 없는 어머니와 얼굴만 아는 아버지 생각까지, 그것만 딱 끄집어 내기 뭐하니까, 괜히 지구가 탄생한 40억년 전부터 무슨 대, 무슨 기, 무슨 세 등을 망라하면서 독자들 해골 흔들리게 만드느라 열심이다.

  이 작품 속 최근 미시즈 스위트의 나이가 52세. 만일 미시즈 스위트가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분신이라면 이혼 과정이 완료되기 1년 전이다. 사는 곳은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 셜리 잭슨 하우스. 즉 이혼 소송을 하면서 위자료 명분으로 집은 미시즈 스위트 혹은 킨케이드 소유로 한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그거면 됐지 무슨 감정이 남아서. 어차피 처음부터 시한폭탄을 가지고 시작한 결혼이었으니 말이지.



4별은 좀 과한 기분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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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인의 노래 1 - 서부의 목소리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7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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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메일러. 소설가인 건 확실한데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게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저널리즘 기사인지 헛갈린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세 번째 메일러의 작품인데, 다른 것들의 소감도 마찬가지였다. 1923년생인 메일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기에 딱 좋은 나이였다. 하버드를 우등졸업해 애초 장교 임관이 가능했으나, 전쟁에 관한 실화 같은 소설을 쓰기 위하여 스스로 사병 입대를 지원해 태평양 전쟁에 참전, 수십 차례 작전에 투입된 바 있고, 승전 후 일정 기간 동안 일본에 주둔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이이의 초기 대표작 <나자裸者 와 사자死者> 즉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이때 메일러의 나이 스물다섯. 이 책이 뉴욕의 종잇값을 치솟게 만들 정도로 히트를 치는 바람에 젊은 메일러는 일찌감치 돈벼락을 맞아 버렸다. 그래서 평생 여섯 번 장가드는 게 가능했을까?

  1968년, 마흔다섯 살 때에는 1967년에 있었던 반 베트남전 시위, 펜타곤까지 행진을 다룬 책을 써서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79년 쉰여섯 살에 오늘 독후감을 쓰는 <처형인의 노래>로 두번째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게 내가 읽은 메일러의 전작인데, 이것 말고도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와장창 있지만, 이 세 편을 읽을 소감으로 말씀드리자면, 소위 저널리즘 픽션 또는 논픽션 소설이란 장르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제 메일러는 그만 읽기로 결정했다. 다큐멘터리면 다큐멘터리고, 소설이면 소설이지, 논픽션 소설이 뭐 말라빠진 장르야? 대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

  근데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한 의견일 뿐, 당신 입맛에 맞으면 메일러 만큼 현장 취재를 실감나게 소설 형식으로 쓰는 작가도 별로 없으니 그냥 꾸준히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메일러가 “게이 탈레즈, 트루먼 카포티, 헌터 S. 톰슨, 조안 디디언, 톰 울프와 함께 사실 저널리즘에서 문학 소설의 스타일과 장치를 사용하는 장르인 '창작 논픽션' 또는 '신저널리즘'의 혁신가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다른 작가들은 별개로 하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은 ‘톰 울프’를 예의 주시하시압.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소설은 <허영의 불꽃> 한 편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절판. 하지만 아휴, 진짜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재미있는 B급 대중소설이니 우연히 눈에 띄면 주저하지 마시라.


  작품의 주인공은 개리 마틴 길모어. 역시 실재 인물이었다. 포틀랜드에서 출생해 유타 주 프로보 시에 살았다. 길게 말고 짧게. 개리는 어디에서도 길게 살아본 적이 없다. 한 군데 빼고. 교도소. 열세 살 때, 이땐 엄마 베시 길모어와 함께 포틀랜드에 있을 때였는데, 처음 소년원에 들어가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은 이후 그의 주민등록초본은 주 소년원에서 오리건 주립 교도소와 일리노이 메리언 교도소 주소로 진화,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사촌 여동생 브렌다. 브렌다가 여섯 살 때 사과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때 나무 아래에서 일곱 살 게리 오빠가 떨어지는 브렌다를 붙잡아 무사한 적이 있어 가까이 지냈다. 브렌다가 매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대는 성격이었던 반면, 게리는 조용하고, 정중했고 이후에도 사촌 누이가 곤경에 처하면 기꺼이 도와주었다는데 어떤 일로 어떻게 도와주었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게리가 오리건 교도소에 있을 때 브렌다가 편지를 썼다. 답장에서 게리가 말하기를, 자기 때문에 가족이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며, 출소하면 조직 폭력배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자기 꿈이라고 했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이지만 교도소 안에서 상당한 독서를 한 듯 어려운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편지지 여백에 작은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다. 사실 게리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지만 아빠도 교도소를 이웃집 다니듯 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의 소질을 계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게리한테 편지가 왔다. 이번에 가석방이 있을 예정인데 브렌다하고 다른 한 명이 연대보증을 서 주면 자기도 가석방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게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온 브렌다는 자기 친동생 토니도 설득해 연대보증을 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인감도장을 찍어준 후에야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30년 가까이 만난 적 없는 남자의 보증인이 되었다는 것.

  그러나 때는 늦었다. 게리는 악명높은 일리노어의 메리언 교도소에서 나와, 예정대로라면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솔트레이크를 거쳐 프로보로 와야 하건만, 그간의 오랜 교도소 생활을 벌충이라도 하듯 비싼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술을 약간 마신 상태로.

  일단 교도소라는 우물 안에서 나왔으니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다. 김선우의 “폴짝인” 운운하는 시에서 내가 말한 적 있다. 개구락지가 우물에서 뛰쳐나와 넓은 세상을 보고 “빌어먹을, 하늘이 저렇게 커다랬어?” 놀라면서 세상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을 때, 황새, 너구리, 뱀 같은 포식동물이 그걸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지 몰랐느냐고. 머리통이 커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바람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아주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하거늘,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게리 역시 일일이 《공통수학의 정석》 첫 장부터 열어볼 생각도 없다.

  하여간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기껍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흔쾌하게 손을 내민 사람이 제화점을 하는 큰이모부 벅. 구개파열 수술 자국이 남아 있는 강골의 사나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서 오히려 늘 온화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구개 수술 흉터를 놀리는 아이하고는 무한 싸움을 불사했다. 벅이 게리한테 자기 제화점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일단 자신의 집에서 아내이자 게리의 큰이모인 아이다와 함께 셋이서 살자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

  게리의 교도소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상적이 아니고, 일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한 절제와 조심 같은 것이 전혀 몸에 익숙하지 않다. 주급을 받으면 거의 전부 맥주 마시는 데 사용하고, 벅 이모부한테 따로 돈을 요구하여 냉장고에 맥주를 쟁여 놓고 상습적으로 들이켠다. 벅의 제화점이 말이 제화점이지 구두수선을 주업으로 하는 작은 점포에 불과하여 게리의 식대와 용돈을 대기가 힘든다. 게다가 술이라는 것이 비록 크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로를 치게 만든다. 절제를 모르는 게리가 치는 사고는 좀 더 크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기초공통수학의 정석부터 풀 수밖에.


  게리에게 애인이 생겼다. 아이 둘이 있는 이혼녀 니콜. 어린 시절에 아빠 친구한테 성폭행 당한 상처가 있어 그게 살면서 마음의 흉터로 남은 것처럼 보이는 스무 살 미인. 게리는 서른 다섯. 둘은 서로에게 빠진다. 빠져도 심각하게 빠진다. 게리가 숙소를 번의 집에서 니콜의 집으로 옮긴다. 화르륵 타버리는 사랑. 니콜이 견디지 못하고 엄마 집으로 간 사이, 여러가지로 갈등에 싸인 게리는 정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니콜의 여동생 에이프릴과 함께 무리를 해서 산 소형 중고 트럭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주유소에 가서, 별 생각 없이 총을 들고 사무실에 진입해 현금 수납기를 털고, 당번 중인 20대 건실한 유부남을 화장실로 끌고 가 엎드리게 한 다음, 뒤통수에 대고 두 발을 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

  신발과 바지에 피를 묻힌 상태로 차를 몰고 에이프릴과 함께 모텔로 가서, 다시 모텔을 지키고 있던 또다른 20대 건실한 유부남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다. 현장을 빠져나오다 권총을 풀숲에 던져 버렸는데, 워낙 예민한 자동권총이라 관목에 걸렸는지 격발이 되어 게리 역시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총을 맞는다. 이 살인강도 행위의 직접적 원인은 중고 소형트럭의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방법 말고는 게리의 생각으로 돈이 생길 구멍이 없으니까. 트럭을 사지 않으면 되는데 그것 역시 생각이 닿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근데 직원 두 명은 왜 죽였을까? 돈만 가져 나오고 그들을 꽁꽁 묶어 두면 안 됐을까? 그냥 죽인 거다. 정말로 이렇게 진술한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다른 사람, 죽은 자와 죽은 자의 가족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닿지 않으니까 별 생각 없이 죽일 수 있었겠지.

  게리는 당연히 체포당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여기까지가 1부. “서부의 목소리들.”


  나는 2부 “동부의 목소리들”에서는 다른 사건이 등장해서 서로 먼 연결고리가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2부로 접어들면 이제 미국내 사형제도와 사형집행을 둘러싼 법정 다툼과 10년 만에 재현하는 사형집행을 두고 저널리즘 사이의 추한 비즈니스 다툼, 사법부 내의 복잡한 의사결정 같은 것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상세해도 너무 상세하게. 그래서 읽는 독자는 숨 넘어갈 정도로 지루하게 만든다. 두 권 합해서 1,760쪽이 넘어가는 길고 긴 장편 소설. 노먼 메일러는 그의 주특기 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별의 별 등장인물을, 거의 전부 실명이라고 하는데 그건 뭐 알 거 없고, 다 등장시켜 인터뷰하고, 녹음한 거 타이프하고,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 사람을 콱 질리게 한다.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 읽다가 지루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과하게 상세하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고 써 놓았으면 아예 읽을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을. 다큐면 다큐고 픽션이면 픽션이지 이게 뭐람.

  이 책에 관해 할 말이 많다. 아직 반도 안 했다. 사형 집행 반대의 대의를 외치다 보니, 사이코패스가 틀림없는 게리 길모어를 어쩌면 당연히 과하게 분식시킨 것, 피해 가족이 순식간에 작품에서 실종되는 일 등등.

  그리고 생명권.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자기 목숨. 맞지? 게리 길모어는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항소를 포기하고 법적으로 명시한 시일 내에 사형이 집행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형 반대 집단은 집행을 멈추기 위하여 갖은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방해한다. 법적으로 사형을 받은 사형수가 법적 하자 없이 죽겠다는데 왜 그걸 말려? 목숨보다 온전히 사적인 것이 어디 있다고? 사형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별적 사람을 뜻하는 자유인들의 생명 포기권, 즉 자살한 권리는 왜 정당하게 취급받지 못하는지 나는 조금 의아하다. 임신중단이 당연히 임신한 사람의 권리이듯, 자기 생명의 포기 권리도 인간의 천부 권리 아닌가 싶다.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마감할 수 있도록... 그만 하자. 조금 더 하면 정말 오지게 얻어 터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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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리마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76
바를람 샬라모프 지음, 이종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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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를람 티호노비치 샬라모프는 1907년에 러시아 블로그다에서 러시아정교 세습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에 나름대로 유명한 도시 야로슬라브가 있다. 거기서 정북 방향으로 모스크바에서 온 만큼 더 가면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도시가 블로그다. 이곳에서 세습 사제를 했다니까 팔자 좋은 집안이었다고 생각하지? 조금은 맞는다. 하지만 1907년생 샬라모프가 열 살이 되자마자 러시아 혁명이 터져, 채 3년이 지나기도 전에 볼셰비키들이 모스크바에 있던 대성당을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을 만큼 인민의 적인 종교를 거덜내기 시작했으니 이이의 팔자는 일찌감치 찌그러졌을 수밖에.

  1920년이면 샬라모프의 나이 열세 살 때. 그는 과감하게 신앙을 잃고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정교 사제인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을 거 같지? 그러지 않았단다. 이 사제님도 직업이 사제일 뿐 속마음은 왼쪽으로 팍 치우쳐 심지어 10월 혁명도 지지했다니까 말 다 한 거다.

  그러나 혁명으로 집권한 소비에트는 이제 전세계 공산주의의 어머니로 우뚝 서서, 무엇을 했느냐 하면 세상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권력투쟁에 돌입, 70년 후, 실패한 건 공산주의요, 성공한 건 1인 독재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열세 살에 무신론자를 주장한 샬라모프는 아빠가 교회 사제라서 국가로부터 교육지원을 받지 못해 모스크바 근교의 가죽공장에서 2년 동안 무두장이 일을 배우기도 했고, 이후 드디어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 법학을 공부했다. 이 와중에 틈 나는 대로 시도 쓰고 러시아와 유럽, 미국 등의 문학작품도 탐독했다.

  좀 자세하게 말하는 이유는, 《콜리마 이야기》에서 작중 주인공급 등장인물이 콜리마의 산악지역에 있는 금광에서 채굴 작업자로 강제노동을 하는 먹물 출신 법학도 정치범이며, 굳이 법을 공부했다고 고백해 차별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을 지경을 만났을 때 하필이면 둘러대는 전 직업으로 무두장이를 선택한 일과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건 절대 우연이 아닐 걸?


  그런데 샬라모프가 기껏 고른 정파가 하필이면 트로츠키파. 이러니 뭐 되는 게 있겠어? 급기야 소련혁명 10주년 기념 연설회에서 “스탈린 타도”를 외치다 잡혀 3년형을 받았는데, 스무 살의 젊디젊은 청년 샬라모프는 끝내 판사의 판결문을 인정한다고 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에 석방되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콜리마에 가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았을 때, 배포 좋게 호송인들에게 강제로 호위를 받지 않는 한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입이 방정이지, 그래 결국 1937년 자기가 말한 대로 그대로 됐다.

  1937년이면 1년여에 걸친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 기간. 여기에 용코 없이 걸려들었다. 하물며 천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조차 거의 언제나 한밤중에 체포하는 관행이 자신한테 닥쳤을 때 잠옷바람으로 달려가는 걸 바라지 않아 늘 외투 차림으로 침대에 들었을 때, 샬라모프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죄목은 당연하게도 반혁명 트로츠키주의자. 그나마 사실상 처형을 의미하는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10년 유배형”이 아닌 5년 유형이었지만, 아뿔싸, 호송인들에 의하여 콜리마에 끌려가 금광에 투입되었던 것.

  그런데 《콜리마 이야기》를 읽어보면 모든 단편이 그의 두번째 투옥 때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용소에서 나온 후에 아직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은 상태에서 1943년에 소련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을 “위대한 러시아의 작가”라고 했다가 스탈린 정부에 의해 다시 한 번 10년 교화형을 받아 다시 금광의 채굴꾼으로 끌려가 죽기 일보직전, 염라대왕 전에 들렀다 온 것까지를 망라한다. 영양실조와 발진티푸스가 겹쳐 샬라모프 본인은 깨어날 때까지 자기가 쓰러진 줄도 몰랐다고 하니 그것 참, 세상에 그런 일도.


  콜리마가 러시아의 어느 동네인가 하면, 일단 극동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 캄차카 반도보다 더 높은 위도에서 시작해 북극해까지 잇는 콜리마 강과 콜리마 산맥 지역을 통틀어 말하는데, 이 지역은 몇 개의 코뮌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을 만큼 넓다. 게다가 강제노동을 한 산악 지역은 평야 지대보다 섭씨 몇 십 도 정도 낮은 기온을 기록, 1년에 아홉 달이 겨울인데, 보통 영하 40도, 호흡하기 좀 거시기하면 영하 45도, 침 뱉으면 땅에 닿기도 전에 얼음으로 변했다 하면 영하 50도, 현지 사람들은 온도계가 없어도 거의 정확하게 현재 기온을 맞춘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가장 조심할 것은? 졸면 죽는다. 근데 추우면 잠의 침략은 더욱 매섭다.

  열량 확보를 위하여 잘 먹어야 하지만, 기본으로 제공하는 부식이 워낙 하찮을뿐더러, 죄수 입에 들어가야 하는 정량의 대부분을 이놈이 떼 먹고, 저놈이 떼먹고, 다른 놈이 훔쳐가 거의 대부분은 아사 일보직전이다. 죽은 사람의 고기도 먹고, 덜 자란 병아리도 산 채로 뜯어먹는다. 그런 것이 다 용인되는 사회. 수감자들끼리 별 다툼도 없이 그냥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은 집단. 하물며 호송원이나 관리병들은 그러지 않기 망정이지 여차하면 살인을 취미생활로 할 수도 있는 곳.

  하지만 제일 중요한 수용자 살해는 수용자들 집단에서 자동적으로 지배 계급으로 떠오른 깡패 수감자들. 샬라모프의 유배지는 도스토옙스키 시대의 유배지가 아니다. 표도르 D. 선생이나, 네흘류도프가 졸졸 따라간 카추샤의 유배처와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 우두머리 깡패 집단은 숙소에서 카드 도박을 하며, 최상위의 두목 깡패는 곧 숱한 무지렁이 수용자들의 생사여탈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에게 도착한 소포 등의 소유권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둘째 손가락으로 지목하기만 하면 지목당한 죄수가 누구든지 간에 얼른 달려와 발뒤꿈치 각질을 살살 긁어주면서 감언이설을 속삭여야 한다. 소리 한 마당 해보라 하면 또 거절하지 못하고 쑥~대머리, 한 곡조 뽑아야 명을 보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무소불위.


  이런 모든 광경이 적나라하게, 그러나 이런 비인간의 벌판에서 그곳에 떨어진 한 지식인의 감정은 모두 배제한 채 그냥 그런 광경을 드라이하게 묘사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또 같은 세대인 유형자의 아버지 솔제니친과도 다르다.

  혹시 이런 이야기에 흥미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실 만하지만, 이제 지난 시절의 큰 슬픔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이 그리 탐탁하지 않다. 동상과 괴혈병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고름, 솔기마다 득실거리는 이, 닫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동안 문이 열리기 전에 죽지도 않은 어린 닭을 산채로 뜯어먹는 배고픈 죄수 이야기 같은 건, 거대 비극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으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드는 솔직한 심정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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