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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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니것은 확실히 미국 천재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내 취향에 보니것에 필적할 만한 미국 작가는 토머스 핀천 뿐이다. 근거를 대보라고? 왜 이러셔? 기껏해야 아마추어 독자 나부랭이가 두 미국 작가를 좋아한다는데 근거는 무슨 근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보니것은 이 책도 “텔레파시 능력자이자 건달들의 친구인 앨빈 데이비스에게” 바친다고 딱 써놓았다. 앨빈 데이비스? 누군지 궁금해 못 견뎌서 얼른 위키피디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1960년생 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뜬다. 이이는 아닌 거 같은데…. 누굴까?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작가니까, 그럴 줄도 모른다. 이런 헌사를 능가하는 단 하나는?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고매한 술꾼과 고귀한 매독환자 여러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사람 이야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보니것은 말한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형광등이다. 이 문장을 읽고도 책의 주인공 로즈워터 씨, 이이가 당대 미국의 10대 백만장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걸 눈치도 채지 못했다니 말이지. 그저 보니것의 작품 주인공이 항용 그러하듯이 ①전쟁에 반대하고, ②미국적 자본주의를 경멸하며, ③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 있겠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을 했을 뿐이니. 뭐 ①~③까지의 내용도 틀리는 건 아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엘리엇 로즈워터 대위는 SS부대가 점령하고 있다고 알려진 바이에른의 클라리넷 공장에 접근했다. 시가전이라 기관단총을 사용하면 좁은 공간에서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대검을 장착한 라이플을 든 채, 먼저 창문에다 수류탄을 몇 방 던진 다음, 꽈과광, 모두 터진 걸 확인하고 포연이 꽉 찬 건물 속으로 돌진했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거나 심하게 다친 독일군이 널부러져 있었고, 시신에 발이 걸려 잠깐 쓰러졌다가 일어났는데 바로 코앞에 가스마스크와 철모를 쓴 독일인이 서 있었다. 엘리엇은 용감한 군인, 그것도 장교답게 당황하지 않고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대검으로 목을 푹 쑤셨다가 뺀 다음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바로 이때 미군 하사관이 즉각 “사격중지, 사격중지! 빌어먹을,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소방관들이다!”라고 외쳤다. 정말로 늙은 남자 두 명과 기껏해야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엘리엇이 대검으로 목을 찔러 죽인 건 열네 살 꼬마였던 거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던 엘리엇은 10분이 지나자 달려오는 트럭 앞에 침착하게 걸어가 반듯하게 누웠고, 트럭의 바퀴가 대위의 몸에 살짝 닿은 순간 기겁한 부하들이 그를 일으켜 세워, 야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이것도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엘리엇의 남은 평생 동안 보통사람들이 그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건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경우이고, 이제 돈에 관해 말해보자.

  1964년 6월 1일 현재 가치로 미화 89,472,033.61달러. 약 60년 전이니까 미국 국채 수익률 5%로 계산하면 현재가치로 미화1,671,264,748.13달러. 오늘 환율 1,391원/달러로 환산해서 2조3,247억2,926만5천원. 앗,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이게 당시 미국 10대 백만장자 가운데 한 명인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리스터 에임스 로즈워터 씨가 자기 재산의 9할을 쏟아부어 만든 로즈워터 자선문화재단의 기금총액이다. 당시엔 돈 값이 지금보다 훨씬 귀했으니 요새 2조원하고 수평 비교해도 조금 억울하기는 하겠지. 하여간 저 돈으로 1964년에는 1년에 350만 달러의 연간수입을 올렸다 하니 일요일도 포함해서 하루에 1만 달러의 돈이 저절로 생기는 규모였다. 생각보다 수익률이 좋지 않네 그려.

  상원의원이 뭐가 아쉬워 자선문화재단을 만들었느냐 하면, 자기 돈 9할을 퍼 놓고, 재단의 이사장 자리에 자기 외아들, 그러니까 엘리엇 예비역 대위를 올려 놓으면 사실상 자기 전 재산을 아들한테,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물려줄 수 있는 거였다. 기금을 출연한 해가 1947년이었는데, 이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각종 무공 훈장과 상이병사에게 주는 퍼플 무슨 훈장까지 수집해 돌아와 다 마치지 못한 명문대 졸업장까지 딴 시기였는데, 상원의원 리스터 로즈워터 씨가 그러했듯이 뭐하러 골치 아프게 사업을 시키느냐 싶어서 재단을 만듦과 동시에, 재단의 설립 강령을 법무법인 “매컬리스터, 롭젠트, 리드, 맥기”사의 대표 변호사 메컬리스터와 상의 끝에 재단의 이사장 직은 영국 왕관과 같은 방법으로 세습하는 것으로 탁 못을 박아 놓았다. 강령에 의하면 이사장의 형제들은 21세가 되면 재단 임원이 될 수 있으며, 정신이상 판정이 나지 않는 한 평생 임원 자리를 깔고 앉아, 죽을 때까지 풍족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지 않고, 손가락에 물방울 하나 묻히지 않은 채 평생 즐기면서 죽을 수 있었다. 대단한 돈 이야기지?


  그런데 돈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넬 대학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제 막 “매켈리스터, 롭젠트, 리드, 맥기” 법무법인에 입사해 수석변호사 매컬리스터의 새끼 변호사가 된 레바논계 러그 상인의 아들 노먼 무샤리가 등장한다. 5피트 3인치로 사무실에서 가장 작은 키지만 엄청나게 큰 궁둥이를 가지고 있었고, 만일 바지와 팬티를 벗으면 허여멀건 궁둥이가 정말 볼만하다고 보니것은 주장했다. 이 머리 좋은 신삥 변호사가 상원의원과 문화재단의 고문 변호사인 메켈리스터의 새끼 변호사로 재단에 관한 비밀 문서를 열람하다가 눈에 꽂히는 것이 있었으니:

  “정신이상 판정이 나지 않는 한…”

  즉, 재단의 초대 이사장이자 현 이사장인 엘리엇 로즈워터 씨가 기금을 낸 상원의원의 외아들이며, 다른 친척이 없는 관계로 만일 엘리엇이 누가 봐도, 여기서 ‘누가’라는 뜻은 법정에서 법적인 시각으로 판정의 의무를 지닌 인간의 시각을 말하는 것으로, 엘리엇이 미친놈이기만 하면, 책에서는 6촌이라고 했지만 사실 증조부의 형의 자손이니까 8촌 형제 하나가 저 로드아일랜드의 부촌 피스콴투잇에서 가장 가난한 보험판매원으로 살고 있어서 연 350만 달러가 보험판매원의 손에 떨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짱구를 굴린다.

  로스쿨의 존경하는 레너드 리치 교수가 가르침을 주시기를, “훌륭한 조종사가 항상 착륙할 장소를 눈여겨 보듯, 변호사는 뭉칫돈이 손바꿈 하려는 상황을 찾아야” 한다고. 이때 빈 틈이 생겨 변호사 역시 한 방에 팔자가 피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말을 신주단지처럼 여겨 늘 마음에 고였던 악덕변호사 노먼 무샤리는 전쟁 당시 사건으로 PTSD를 진하게 겪어, 귀국 후에도 뉴욕 대신 인디애나 주의 인디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거대도시 인디애나폴리스도 아니고, 저 멀고 먼 고향, 알고보면 고향도 아니지만 고조, 증조 할아버지가 거대 부자의 기틀을 마련한 로즈워터 군郡에 머물며 의용소방대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 노먼 무샤리는 엘리엇의 기밀 서류 전부를 보았고, 아마도 복사본 정도는 가지고 있을 듯. 프랑스인 아내 실비아에게 보낸 편지 53통은 원본으로 가지고 있으니 나름대로 승산이 큰 싸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쯤에서 독후감을 끝내려 하는데, 사실 내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연설 몇 가지다. 그는 공상과학 소설 말고는 어떤 예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백년 전에 네덜란드의 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수십만 달러를 주고 사서, 응접실에 걸어놓고 보다가, 공공 박물관을 기증하는 행위? 그게 뭐? 돈이 어디서 난 건데? 결국 로즈워터 군에 사는 가난한 군민들의 노동으로 만든 돈을 한 줌도 되지 않는 부자들이 독식한 거 아니냐는 말이지. 다분히 공산주의적 사고일 수 있으나 엘리엇은 살다보면 “우연히” 공산주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우연히” 절대 믿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와 정확하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게 사람 사는 일이란다.

  예술을 싫어하는 엘리엇은 그러나 열 살 남짓 할 때 아버지와 여행을 하다가 들른 허름한 남자 화장실 벽에 쓰인 이행시는 마흔이 넘어서도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행시, 짧으니까 전문을 소개한다. 제목은 없다.


  우리는 당신의 재떨이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우리의 소변기에 담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문학적으로도 자질이 있는 인간인 것도 같은데 하여간 그의 신념은 공상과학 소설가는 글을 잘 쓰는 어느 작가보다도 중요한 변화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시인이나 매한가지라고 하면서 “단 한 번의 생애에서 참새 방귀만큼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일들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잘난 글쟁이들은 죄다 무시해버립시다. 우리의 주제는 은하, 영겁, 앞으로 태어날 무수한 영혼이니까요.” (p.29) 라고 주장한다.

  이것 말고도 지금 읽어도 참신한 구절이 무수하게 등장하지만 역시 백미는 제일 마지막 결론부에 아주 죽여주는 위치에서, 아주아주 죽여주는 “말씀”을 슬쩍 내밀지만, 아이고, 여지없이 이게 최고의 클라이맥스라서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통촉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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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8-28 0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 책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전에 샀는데 아직 읽지도 않았어요ㅠㅠ 폴스타프님 이 리뷰 읽고 책장에서 찾아놨어요 제 기억을 깨워 주셔서 감사한 리뷰입니다😆

Falstaff 2025-08-28 05:46   좋아요 1 | URL
윽, 그러면 스토리를 넘 자세하게 소개한 거 아닌가요?
근데 제가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왜 그럴까요? ㅎㅎㅎㅎ

망고 2025-08-28 05:51   좋아요 1 | URL
보네거트 매력은 스토리에 있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ㅎㅎㅎ게다가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 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 궁금해서 얼른 읽고 싶은걸요😁
 
레퀴엠 - 어떤 환각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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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실 장엄미사곡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모차르트, 베르디와 포레의 장엄미사 말고는 기억나는 것도 없다. 올 6월에 내가 사는 도시 시향에서 모차르트 장엄미사를 연주한다 해서 안 갔다. 아무리 호국보훈의 달이라 해도 그렇지 멀쩡한 초여름날 하필이면 장엄미사를 듣겠느냐고, 귀신나오게시리. 차라리 모차르트의 <다단조 미사>였으면 갔겠다. 문학동네의 타부키 선집 4번. <페레이라가 주장한다>는 여태 읽었는 줄 알았는데 읽지 않았더라.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만 읽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판 타부키 두 권 다 읽은 줄 알았다. <…잃어버린 머리>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페레이라…>까지 읽은 줄 알았던 게지? 거 참. 이번에 <레퀴엠>을 읽어보니 혹시 <…잃어버린 머리>에 관한 내 기억이 부정확한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생겼다. 거 참.


  이 책 <레퀴엠>의 앞날개에 적힌 것을 읽고 이번에 알았는데, 안토니오 타부키가 포르투갈 최고의 작가이자 시인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그의 대표작 <불안의 책>을 번역해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심지어 <레퀴엠>의 경우 작품 자체가 페소아와 그의 조국인 포르투갈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을 정도. 작품을 읽어보면 정말로 그렇다. 통째로 페소아와 포르투갈에 바치는 헌정 작품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읽어봤다. 쉽지 않다. 10년 정도 지났는데도 솔직하게 말해 지금 내 머리 속에 있는 작품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불안의 책>인지,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의 <밤 끝으로의 여행>인지 가물가물하다. 둘 다 읽었는데 서로 교차 혼돈이 일어나는 바람에 멀미가 날 정도다.

  그런데 안토니오 타부키가 페소아에 헌정한 작품 <레퀴엠>을 그리 인상깊게 읽었다고? 그렇다. 장엄미사 자체가 이미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된 사람을 위하여 지내는 제사. 따라서 작품에는 이미 죽은 자와 산 자, 타부키 자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화자 ‘나’의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시절의 기억 속 인물과 장소들, 페소아의 다양한 가명 가운데 하나를 가진 인물, 페소아가 자주 다닌 카페 등이 배경 또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레퀴엠>은 작가 스스로 말했듯 “산 자와 죽은 자를 같은 차원에서 만나는 하나의 소나타이면서 한 편의 꿈”일 수 있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7월 말은 그늘에서도 40도를 기록하는 극강의 더위가 덮치는 날이다. 바로 어젯밤까지는 아제이탕의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화를 만끽했지만 오늘, 무지하게 더운 날 아침, 리스본의 산토스에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그, 위대한 시인,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일 지도 모르고, 평생 존경하며 완전히 복종했지만 이제 염증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는 시인, “나의 손님”을 항구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자정 즈음 다시 아제이탕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하루를 쓴 책이 <레퀴엠―어떤 환각>이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날 하루동안 처음 향한 공원에서 ‘나’는 젊은 마약중독자를 만난다. 오늘 ‘나’가 만나는 스물세 명 중에서 처음 만난 인물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20대 청년. 청년이 말한다. “이틀 동안 먹지 못했어요.” 마약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는 대답한다. “원칙적으로 나는 약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편이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싫어한다오. 나는 편견이 심한 부르주아 지식인이라서, 길거리가 아니라 당신 집에서 깨인 친구들과 어울려 모차르트와 에릭 사티를 들으며 약을 하는 건 찬성할 수 있소.” 이렇게 말해도 청년은 페소아의 초상이 그려진 백 에스쿠두짜리 지폐 두 장만 달라고 구걸하며 ‘나’에게 묻는다. “페소아를 좋아하세요?”

  두번째로 만나는 사람이 로토 가게 절름발이. 70대의 작은 체구를 지닌 노인이다. 로토 가게 절름발이 노인을 만난 ‘나’는 노인에 대해 기시감이 생기는 걸 알아챈다. 어디서 봤을까? 노인의 정식 이름은 프란시스쿠 마리아 페레이라 데 멜루. 스피노자 철학의 의미에서 영혼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가톨릭 신자는 아니란다. 생각났다.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 등장했던, 페소아를 괴롭히던 로토 가게 젊은이가 그 사이에 나이가 들었던 거다.


  다시 강조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7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래서 시작하자마나 화자이자 작가 타부키 본인인 것이 확실한 ‘나’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스폰지를 꾹 누른 것처럼 땀을 줄줄 흘린다. 머리와 얼굴, 가슴과 복부, 그리고 등. 새벽에 입고 나온 셔츠는 이미 푹 젖어버려 어디 가서 새 셔츠를 적어도 두 장은 사고 싶은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에 문을 여는 옷가게는 리스본에 없다. 페드라스 네그라스가街로 가기 위하여 택시를 탄 ‘나’는 택시 운전수에게 일요일에 옷을 파는 가게를 혹시 알고 있으면 그곳에 좀 들렀다 가자고 말한다. 이 택시 운전수가 세번째 만나는 사람. 이이는 상토메 출신으로 리스본에서 한달 전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서 리스본 지리를 이탈리아 사람인 ‘나’만큼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가 깜박, 운전수의 머리에 전등불이 들어온다. 프라제르스 묘지 입구에 집시들이 들어왔는데 집시들이 자기네 캠프에서 일요일하고 관계없이 장터를 열었단다. 그래서 집시 장터로 가 라코스테 폴로 셔츠 두 장을 사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집시 본 김에 손금도 본다. 이래서 집시 여인이 네번째 만나는 사람이다. 집시 장터가 어디? 프라제르스 묘지 입구. 신기하다. ‘나’가 택시에 올라 출발하자마자 술집에 잠깐 들르자 해서, 시원하게 냉장한 샴페인을 한 병 샀다. 술집에서 샴페인 판 점원은 오늘 만난 사람 리스트에 오르지 못한다. 그 샴페인이 한여름에 시간이 좀 지나서 미적지근하게 됐을 때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프라제르스 묘지에 들어가 묘지 관리인한테 물어물어 ‘나’의 절친이자 이미 죽은 타데우스의 묘까지 들고 가서, 타데우스와 나누어 마신다.

  묘지관리인이 다섯번째 만난 사람. 이미 죽은 타데우스가 여섯번째. 늙은 집시가 말하기를 ‘나’의 친구가 이 묘지 안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묘지관리인한테 참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옛날 친구 타데우스 바츨라프의 묘를 찾아달라 했고, 친구의 묘지 앞에서 친구 타데우스와 술잔을 기울이게 될 것을 미리 알아 샴페인을 샀을까? 이런 현상을 ‘나’의 환각이나 환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단다. 대신 ‘무의식’이라는 말로 바꾸어 달라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이미지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 무의식이 발현될까? 작품 초반에 무지하게 아픈 질병인 대상포진의 예를 든다. 갑자기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여 신체 부위에 물집 형태의 병변이 일어나면서 해당 부위에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 속에 들어와 있던 수두 포진 바이러스가 몸의 저항력이 약해지면 그 틈을 타 신체의 한 부분에서 크게 발현해 숙주를 괴롭히다가 놀 만큼 논 다음 다시 잠복 상태로 돌아간다. 이것처럼 ‘나’의 무의식도 언제든지 무의식에 빠질 수 있는 상태이지만 늘 발생하는 건 아니고 비정기적으로 불쑥불쑥 무의식 상태에 이르게 하니, 작품 속에서는 아예 ‘무의식 바이러스’라고 일컫기도 한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본문이 128페이지에 끝나는 짧은 작품이지만 당연히 속도는 빨리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각 단계에서 만나는 사람과 배경을 이루는 허물어지는 집, 등대, 거리, 고장의 이름 같은 장치들이 어떻게 ‘나’의 무의식과 연결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도 예상외로 근사한 일이었다.

  읽으면서 이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유혹도 생겼다. 그러나 10년 전에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선뜻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 처분하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책이 책장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얼마든지 댈 수는 있겠지. 그래도 미친 척하고 다시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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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8-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Falstaff 2025-08-27 05:29   좋아요 0 | URL
크...

stella.K 2025-08-26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불안의 책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그럼 저는 못 읽겠군요. ㅠ

Falstaff 2025-08-27 05:30   좋아요 1 | URL
아휴, 하여간 저는 어려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요 뭐.

yamoo 2025-08-2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책 시리즈 전집은 아니지만 타부키 책은 다 사서 갖고 있습니다. 레퀴엠...요것두 읽었죠..ㅎㅎ 간만에 별5개 출현인데, 이미 갖고 있는 책이라 안심했습니다..ㅎㅎ
이 참에 걍 저 타부키 시리즈 다 읽을까 봅니다..ㅎㅎ

Falstaff 2025-08-27 05:30   좋아요 0 | URL
아하, 가지고 계시는군요. 얼른 읽으셔요. 생각보다 많이 좋더라고요! ㅎㅎ
 
봇로스 리포트 위픽
최정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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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인천에서 충청도 남자와 서울 여자의 딸로 태어나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옆구리 언덕바지 인성여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도 하필이면 취직하기 힘드는 국문과를 나왔다. 노무법인 사무보조, 편의점 알바, 백화점 캐셔, 논술강사, 환경잡지 사무보조 등 생계형 잡일을 하며 틈틈이 습작시절 10년을 지내다 창비신인소설상을 타 등단한 작가. <봇로스 리포트>를 읽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다. 미안하다.

  고등학교 시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해 <난쏘공>이 그러했듯이 노동자, 여성, 소수자, 그리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주로 사회적 약자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는 작가. 음. 그렇군.


  <봇로스 리포트>는? 인조인간 로보트를 말하는 ‘봇’. 때는 2030년대. 인간은 다양한 분야의 로봇을 개발하여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시절을 맞았다. 유소년 돌보미 봇을 필두로 사람이 마지막 길을 갈 때 24시간 노령 환자 곁에서 운신을 도와주고 배변과 배뇨를 아무런 불만도, 피로도 없이 보살피는 봇까지. 그러니까 미래형 “요람에서 무덤까지.”

  2030년대에도 시절은 여전히 후기 천민자본주의 시대. 봇 메이커 주식회사 에니매이트는 초창기 봇 제조사로 주로 애완, 요즘에는 애완 대신 ‘반려’라는 말을 쓰는 거 같은데 하여간 애완 동물의 냄새, 털 알러지, 분뇨 등 거추장스러운 일 없이 편리한 건식 애완 동물 봇을 생산, 판매한다. 애완/반려 봇은 말 그대로 기본이 기계이기 때문에 못 만드는 동물이 없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고슴도치, 타조, 당연히 한센병 원인균을 보유하지 않는 아르마딜로에서 독 없는 코브라와 코모도 도마뱀, COVID 매개와는 관계없는 박쥐, 악어, 대형 고양이과 동물까지 못 만드는 봇이 없다. 죽여주지? 다만 이 애완/반려 봇의 수명이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 몇 달에 국한하는 아주 짧은 보증기간이 지나면 어떤 경우라도 제조사는 수리해주지 않으며, 만일 누군가 야매로 이 봇을 수리할 경우에 무지막지한 벌금 또는 징역형을 받도록 입법조치까지 되어 있다. 그렇게 막강한 봇 회사들이었다.

  시작은 이런 애완/반려 동물봇이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앞에서 말한 생활 도우미형 봇이 탄생한다. 최정화는 온갖 봇들을 다 구현했으나, 유감스럽게 섹스봇, 2010년대 한때 ‘리얼돌’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 주드 로가 배역을 한 섹스봇이나 건설현장의 어렵고 덜 좋은 환경에서의 작업을 전담하는 노가다봇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나중 두 가지 경우에 더 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근데 육아봇 또는 과외공부봇 같은 (청)소년용 봇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심하고, 가사도우미봇이나 말동무 벗의 주된 소비자인 중장년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데,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수명이 문제다. 인간이라서 기껏 정을 붙이고 이제 흠뻑 빠져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봇이 오작동을 해, 심각한 경우엔 주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날이 오면, 법에 의하여 수리해 사용할 수도 없고, 고쳐봤자 사실 언제 다시 오작동을 할 줄 모르니까 불안한 심정을 여전할 거 같기도 하고, 이젠 주식회사 애니메이트가 아니라 인간봇 전문 메이커 “엘리봇”에 전화를 해봐도 전화상담 전문봇이 하는 얘기는 새로운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하라는 것 말고는 없다.


  이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정든 봇과의 이별을 감당해야 하는 진짜 인간들. 기르던 개가 죽어도 상실감이 보통이 아니던데 하물며 나하고 똑같이 생긴 사람 모습의 봇이 순식간에 사라지면 그걸 어째? 한 순간에 넋이 나가버릴 수밖에 없겠지? 이 신드롬을 “봇로스 증후군”이라 했다. “봇과의 분리에서 연유한 우울 증상.” 여덟 가지의 이런 예를 쓴 것이 이 책이자 단편소설인 <봇로스 리포트>이다.

  저 앞에서 최정화가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다 했는데, 여기서 약자, 수명이 기껏해야 2년밖에 안 되고 수리할 수도 없으며, 수명이 다하면 마치 “사람을 빈 박스에 접듯 접어”놓아 폐기물 처리를 하는 봇은, 내 생각에, 아파트 한 레인당 여섯 마리 이상 짖어대는 개와 여섯 마리에 조금 못 미치는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빗댄 거 아닌가 싶다. 그나마 비록 봇이기는 하지만 인간봇과 비교를 하니 조금 우상향 한 것인지는 몰라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 어제 읽었는데 오늘 벌써 별로 생각나는 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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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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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매체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한 거 같은데”라고 썼으니, ‘전적으로 그렇다’고 주장하기엔 뭔가 애매하다와 비슷한 수준으로 받아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말해자면, 출판사들이 더 이상 최영미의 시집을 찍어주지 않아서, 혹은 찍지 않을 거 같아서, 최영미가 아예 자기 출판사, 흔히 말하기를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자기 책을 내게 됐다는 걸 본 것도 같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도 같고 뭐 그렇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2024년 4월 17일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


  “최 시인은 2019년 1인 출판사(이미출판사)를 설립해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이후 주요 문학 전문 잡지의 원고 청탁이 끊기면서 시를 발표할 창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에도 문단의 '왕따'긴 했지만, 이젠 확실히 왕따가 된 느낌’이라며 웃었다.”

  최영미가 문단 내 최고급 괴물을 건드렸거든. 누군지 아시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 같다고, 매년 가을이 되면 입 가진 자들이 떠들고 다니던 전직 중이자 꼰대. 최가 En의 개판무인지경 손버릇을 까발린 것이 2018년. 그해 2월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하 좍 붙여넣기 했다가 싹 지웠다. 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여간 “이미출판사”의 사장이자 영업담당 상무이자, 홍보이사, 재무이사, 총무부장, 사환, 청소부를 겸하는 최영미는 2019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자신이 쓴 한 두 권의 시집과 소설책을 출판했다. 내 책꽂이에 꽤 오래 꽂혀 있던 <청동정원>은 은행나무에서 찍은 것이었고, <서른, 잔치…>도 창비시선이었다가, 계약기간이 지나가도 출판사들이 정말로 중판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몽땅 다 이미출판사에서 다시 냈다. 하긴 뭐 시 청탁을 받지 못하는 시인 신세였으니. 최영미의 왕따는 아직도 지속중인 거 같다. 전적으로 최영미 개인사정이니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겠다. 차라리 그게 도와주는 일인 거 같아서. 독자는 시나 읽자.

  이 시집은 한 편 빼고 모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쓴 시를 모았다. 이 기간 동안 문단 내 성추행, 소위 En 사건이 터졌고, 비슷한 시기에 생활보조금 신청대상자 최영미가 유명 호텔에 1년간 무료 숙박을 요청했다는 소식도 매스컴에 크게 소개되었으며, 이것저것 합쳐서 최영미가 최고 왕따로 등극했던 시기 아닐까 싶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써야 했겠지. 평생의 업이니 할 수 없지 뭐. 이미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는 조금 알만 했던 때라, 시집의 첫 노래는 이랬다.



  밥을 지으며



  밥물은 대강 부어요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전문. p.11)



  읽는 순간 뭘 이야기하는지 탁, 알아챌 수 있어서 좋다. 원래 사는 게 그렇지. 힘들지 않으면 그건 사는 일도 아닌 걸 뭐. 밥 지어먹는 일을 대충 했다는 건 사는 일도 비슷하게 대충 살았다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인 자신의 말대로 개나 소나 다 따는 박사학위가 없어서 대학 강사 노릇도 못하고, 개나 소나 다 듣는 교육학 학점을 따지 않아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도 못하니 차라리 서울대 나온 게 밑지는 장사 같고, 열라 시 써서 시집 내 봤자 인세 받는 걸로 먹고 사는 건 애초에 포기해서 그나마 돈 좀 될까 싶어 소설도 써봤건만 그것도 별로 팔리지 않는다. 도무지 되는 게 없는 팔자. 이런 팔자를 타고난 인간을 아마 ‘슐레밀’이라고 할 걸? 토머스 핀천의 책에는 확실하게 나오고,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도 나오던데 그 책 제목과 작가는 벌써 잊었네. 그래서 대충대충 살았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 이 시에 큰 불만이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전쟁만큼 힘들”었다고? 전쟁, 전쟁, 전쟁?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이란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에는 “시작 메모”라는 글이 붙어 있다. 전문을 옮긴다.



  엄마의 병실에서 돌아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를 읽으며 여름을 보냈다. 어느 가수가 실비아에게 바치는 노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를 듣는데 가슴 속에 뭔가 꿈틀댔다. 익숙한 쓰라림,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왔다. 가슴에 불이 켜져도 시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사는 게 피곤해서인가. 너무 피곤해도 시가 달아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시가 도망간다. 생각하지 않고, 만들지 말고, 받아 적어야 좋은 시가 나오는데, 만들어지면 그래도 다행이다. 언젠가 아무것도 끄적거리고 싶지 않은 날이 올 것이니.    『시인수첩』 2016년 겨울호   (p.17)



  “시작 메모”를 시인은 무슨 생각으로 붙였을까? 차라리 소설을 쓰지. 헛되이 벽을 때렸다는 시를 썼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뭐가 아쉬워 본문 정도의 분량으로 사족을 달았는지, 최영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조금 이상하다. 이것도 현대 자유시의 한 표현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시 한 수로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시작 메모”를 써야 했다면 어째 곱게 보이지 않는다. 밥 지어먹는 것도 힘들고, 사는 게 피곤해서 시가 써지지 않을 정도라면 잠깐 쉬어야지 그걸 어떻게 하겠어? 물론 시인의 가오가 있어서 식당에 가 설거지 알바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딱 자기 입으로 사는 게 피곤하다는 걸 노래가 아니라 문자로 밝혀야겠느냐는 말이다. 오히려 이게 더 가오 죽는 일 아닌가 싶다.

  시로, 노래로 하자면 아무리 궁상스러운 삶을 토해내도 읽는다. 독자에 따라 시인과 함께 흑흑 흐느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내버려둬



  시인을 그냥 내버려둬

  혼자 울게 내버려둬


  가난이 지겹다 투덜거려도

  달을 쳐다보며 낭만이나 먹고살게 내버려둬

  무슨무슨 보험에 들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건강검진 왜 안 하냐고 잔소리하지 말고

  누구누구에게 잘 보이라고 훈계일랑 말고

  저 혼자 잘난 맛에 까칠해지게 내버려둬

  사교의 테이블에 앉혀 억지로 박수치게 하지 말고

  편리한 앱을 깔아주겠다,

  대출이자가 싸니 어서 집 사라,

  헛되이 부추기지 말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게 내버려둬

  헤매다 길가에 고꾸라지게

  제발 그냥 내버려둬  (전문. P.21)



  시인이 까칠한 건 맞는 거 같다. 시를 읽어보니 여러가지로 왕따 당할 짓만 골라 한 시인. 전투력 95, 그러나 사회성 17. 그렇게 사는 일도 좋기는 한데, 그러려면 인생이 외로운 걸 우짜나. 하긴 뭐 어쩔 수 없다. 팔자가 그런데 어떻게 고쳐. 다 업이지, 업. 시집을 냈을 때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아서 57세. 우리 나이로 하자면 59세. 윤석열 정권에서 딱 하나 잘한 일이 나이를 만으로 세게 한 거다. 57세와 59세는 불과 2년 차이지만 느낌이 어마어마하잖아? 그럼에도 벌써 아쉬운 게 있으니, 최영미의 시에서 늙음을 숨기지 못했다는 거. 예컨대.



  지하철 유감



  내 앞에 앉은 일곱 사람 중에

  청바지를 발견할 수 없다면

  청바지를 앉히지 않은 의자가 있다면,


  내 앞에 앉은 일곱 남녀 가운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나는 이 스마트한 문명을 용서해줄 수 있다  (전문. p.63)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쳐다보느라 일상에 거치적거리는 인간을 싫어하는 족속의 일원으로, 최영미의 시에, 좋은 시라고 하긴 어색하지만, 동감 또는 공감하는 바이건만, 대개 이런 공감 또는 동감은 꼰대들만 이 비슷하게 생각하더라고. 하다못해 남자 화장실 가면 소변기 위에다 휴대전화 올려놓고, 한 손으로는 물건 지탱하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열나게 스마트폰 조종하는 것들도 있다니까? 도서관 복도를 정상속도로 걷다가 갑자기 우뚝 서서 뒤 따라오는 나하고 우당탕 부딪히면, 이 아가씨한테 어쨌든 몸이 부딪혔으니 남자인 내가 미안해다 해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 갑자기 서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를 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하고. 이런 마음 가지면 그건 꼰대라니까. 영미씨, 사느라 애썼다. 이렇게 사는 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닌 거 같다.



  예정에 없던 음주



  위로받고 싶을 때만

  누군가를 찾아가,

  위로하는 척했다  (전문.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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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8-23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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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김인순이 쓴 해설을 보면, 이 책 《저지대》가 원래 1982년에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출판된 헤르타 뮐러의 첫번째 작품집이었는데, 정작 책이 나오기 전까지 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공산 루마니아 정권이 이 작품집을 검열하는 데만 4년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시간을 써버린 거다. 그래도 뭔가 일을 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하여 루마니아 당국은 모두 열아홉 편 가운데 네 편을 삭제해버리고 나머지 열다섯 편도 대폭적인 가위질과 수정을 한 다음에 출간을 허락했다고 하니 차우세스쿠가 우정을 돈독히 했던 김일성하고 막상막하였던 모양이다. 책이 나오고 2년이 흐른 1984년에 동독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제출간 되었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더 세월이 흘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헤르타 뮐러가 200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을 보고, 소비에트는 벌써 무너졌건만 그제서야 통일 독일 출판계는 어마 뜨거라 싶어 서둘러 개정판을 냈는데, 애초 삭제 당한 네 편을 원상 복귀하고, 나머지 가위질과 수정을 가한 것도 작가가 직접 가필해 원작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다시 책을 만들었다. 뭐든지 번개만 쳤다하면 그 새에 콩이라도 구워먹는 습관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즉각 작가에 의한 최종 교정본을 가져다 번역해 이듬해인 2010년에 책으로 만들었다.


  나는 이이의 작품은 겨우 두 권, <숨그네>와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만 읽어보아 뮐러의 1980년대 작품은 차우세스쿠 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독재와, 독재정권에 항용 따라다니는 인민의 정서상 봉건잔재로의 부정부패를 희화적으로 고발하는 성향인 줄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던 걸? 《저지대》를 읽어보니까 루마니아의 바나트 슈바벤 지역에서 유소년 시대를 보낸 기억을 적어 나갔다. 뮐러가 1953년생이니 《저지대》 속의 바나트 슈바벤 농장 역시 50년대의 루마니아 시골지역으로 생각하면 얼추 맞을 터이고, 그래도 우리나라의 70년대 초중반보다 나은 환경의 농장일 듯하다. 작품 속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경찰이나 관서에 근무하는 약간 명을 제외하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독일계 루마니아인들. 자기들끼리 독일어로 대화하고, 독일인들과 혼인하고, 같은 민족끼리 바람 피워, 삼각, 사각, 오각, 하여간 무지하게 복잡한 다중각 연애를 불사하는 바람에 어떤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 동네마다 소문이 파다한 커뮤니티.

  1차, 2차 세계대전 때마다 독일군으로 징집되어 주로 러시아와 소련 전선에서 싸우다 코피 터지고, 몸의 일부분을 잃고, 간혹 PTSD 증상을 겪기도 하는 남자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 부근으로 강제적 노력봉사에 끌려갔다가 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음 직전의 굶주림을 견디면서 기어이 죽음이라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하여 여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명 보전을 해 걸어걸어 다시 바나트 슈바벤 농장으로 돌아온 여자들. 이들은 사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적인 영웅들이다. 시대의 폭풍 한 가운데서 살아 남았으면 그걸로 영웅이지 더 뭐가 필요한가.

  귀환한 영웅들은 그러나 그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죽어야 영웅의 딸더러, 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러시아 사람을 총을 쏴 죽였는지 아니? 몇 명의 러시아 여자를 겁탈했는지 모르지? 이렇게 물음으로 해서 귀환 영웅들의 뇌 속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과거의 동료들이자 죽기 바로 전까지의 연적이자, 어쩌면 이렇게 묻는 망자의 딸의 진짜 아버지일 수 있는 남자들. 20세기를 산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이들이 미친 것이 아니라 세기가 미쳤던 거라는 걸.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강박적으로 못을 수집한다. 길 가다가 휜 못 하나를 보더라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아무 의미 없이 벽에 박인 못을 보면 얼른 뽑아 곧게 펴 주머니에 넣고, 어쩌면 남의 작업장에 가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하얗게 반짝이는 못을 한 주먹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몇 개 슬쩍 주워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어, 화자 소녀 ‘나’의 집에는 작은 못상자가 몇 개 씩이나 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늘 망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벽이나 선반에 탁탁탁탁 못질을 해댔다. 할머니는 제라늄을 수프 냄비에 넣어 키우는 일에 몰두한다. 다른 식물도 잘 키우지만 특히 제라늄을 좋아하는 할머니. 집안 곳곳에 찌그러지고, 주워 온 고물 수준이고, 주둥이가 우그러진, 그러나 때가 새까맣게 묻은 수프 냄비는 하나도 없었는데, 이 모든 수프 냄비마다 가득 제라늄이, 가득, 말 그대로 가득,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순식간에 시들어버리고 다시는 제라늄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결혼 첫날부터 술을 잔뜩 퍼 마시고 신혼의 침상에서 뛰쳐나와 화장실로 쳐들어가 먹은 걸 몽땅 게워버린다. 그러니까 화자 소녀 ‘나’를 임신시키기는커녕 신부였던 ‘나’의 어머니의 어떤 부위의 살갗도 만지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몇 년 후 긴급하게 루마니아 의사가 불려왔을 때, 아버지는 의사 앞에서 통째로 자기 간을 토해버렸고, 그래도 죽는 데엔 실패해 질기게 살아남았다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작품을 염두에 두면 아마 뇌물을 써서 동독으로 이사까지 했을 걸? 어머니는 이들 속에서, 그리고 우크라이나 수용소에서의 생존 경험이라는 절망적 기억으로, 더 나은 삶을 향한 가망 없는 희망, 그리고 진정으로 수용해본 적 없는 사랑의 결핍을 가지고 평생을 살며, 재재거리고 활발한 하나 있는 딸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야멸차게 자신의 손바닥 도장을 딸의 오른쪽 왼쪽 뺨에 찍어주고는 했다.

  이렇게 사람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동안 농장 지역의 수시로 변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짐승들. 너무 많이 출산하는 개와 고양이들의 처분. 그리고 쥐. 개구리. 나비와 파리. 새들. 사용하지 않지만 절대 철거하지도 않는 굴뚝 속을 터전으로 하는 올빼미 가족. 여기에 뱀까지. 바람과 비와 눈과 안개. 이런 것들이 가난하지만 아슴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을 쓰자면 마치 전원일기처럼 엷은 톤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헤르타 뮐러는 이이의 첫 작품집 《저지대》에서 수사법도 쓴다.

  이런 판화들을 수록한 문자적 판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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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1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만의 시대 살아남은 인간들의 생존방식인가요? 문자적 판화집이라니까 이런 저런 판화들이 떠오르면서 소설의 분위기가 확 느껴집니다.

Falstaff 2025-08-22 03:28   좋아요 1 | URL
이 시대 동유럽 지역에 살던 독일인이 거의 비슷하더군요.
외국 내 독일인으로 살고, 1차, 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징집, 패전 후 다시 살던 동유럽으로 가서, 소비에트의 위성국가로 독재에 신음하다가 운 좋은 사람들은 동독으로 귀국하고, 상당수는 현지에 남아 아직도 독일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그러나 시절이 더 괴로웠지않나 싶습니다.
책은 바람돌이 님이 생각하시는 딱 그대로일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