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2
앨리 스미스 지음, 이예원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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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브스 가족을 소개한다. 가장 클리브스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잉글랜드 콘월 지방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그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전쟁을 겪은 다음에 클리브스 선생은 독일의 G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총을 들고 전투를 경험한 사람의 80퍼센트 이상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PTSD가 이런 방식으로 발현된 거였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선량한 잉글랜드 시골 사람다운 무뚝뚝한 친절함을 가진 따뜻한 이웃으로 기억될 예정이다.


  선생은 예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철 발 벗은 아내와의 사이에 딸 둘을 두었다. 맏이 아이리스는 머리통이 점점 커져가며 삶의 방식이 자유분방해졌다. 학업은 일찌감치 작파한 것처럼 보이고, 10대 후반부터 핵무장 반대자로 나서서 원폭, 수폭에 반대하는 행진 시위에 참가하기 위하여 표어가 큼지막하게 적힌 더플코트를 구입해 아버지의 복장을 뒤집어 놓더니, 직장 동료들을 초대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아빠한테 “살해하지 말지어다!” 예수님 말씀을 풀었다가 급기야 손찌검을 당하고 다음 날 아침에 보따리 싸서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아버지를 본 것은 매장을 앞두고 관에 누워있는 모습이었고. 동네에서도 평판이 빤했을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워낙 성격이 좋고 활발하여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진짜 오랜만에 고향집에 왔을 때, 거의 모든 이웃사람들이 아이리스 곁에 모여서 즐겁게 이들 가족과 고인을 추모했을 정도이다. 이후 아버지의 집을 동생 소피아가 구입하기 전까지 방이 열 몇 개가 있는 저택에 뜻을 같이하는 반전 반핵운동 동료, 쉬운 얘기로 히피들을 끌어들여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똑 소리 나는 동생 소피아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도 잘해, 사회성도 좋아, 생기기도 예쁜 엄친딸 성향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여자가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면 그걸 눈꼴 시어 하는 인간들이 많았음에도 성인이 되었을 때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는 작지 않은 규모의 회사를 차려 제법 돈도 벌었다. 그래서 아버지 사후 언니와 공동으로 소유하던 큰 집도 자신이 구입해, 그 넓은 집에 혼자 살며 노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젊은 시절 콘월에서 휴가를 보내러 온 나이든 유부남이자 미술 애호가와 두 번째 만나 크롬웰가에 있는 그의 집에서 섹스를 하고 아들 아서를 임신한다. 당연히 이에 대하여 소피아는 한 번도 후회해본 적도 없고, 임신마저 당연한 일, 아니면 적어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잘 생긴 희극배우 고드프리 게이블을 만나 결혼한다. 고드프리는 예명이고 본명이 레이먼드 폰즈. 그러면 소피아의 이름은 소피아 게이블이나 소피아 폰즈가 되어야 하건만, 소피아는 아버지의 성 클리브스를 그대로 유지한다. 작가 앨리 스미스가 동성애자이듯, 소피아의 법적 남편 고드프리도 동성애자였는지, 적어도 그가 법적 아내 소피아와의 사이에선 성스러운 동정남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단 한 번도 성적 결합을 해본 적 없고, 서로 등짝을 밀어준 적도 없다. 오직 하나, 혼자 아이를 키울 소피아가 안 되어 보여서 고마운 고드프리가 사해동포의 이념으로 결혼을 해주었던 거다. 곧 둘은 헤어지지만 소피아는 남은 생애 내내 고드프리 또는 레이먼드에게 고마움을 품고 산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소피아의 아들인 자연생태학자 아서. 애칭 아트. 자신의 블로그 ‘아트 인 네이처’로도 돈을 벌지만 역시 가장 큰 수입원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 SA4A의 저작권 콘솔리데이터를 하면서 받는 돈이다. 아트는 세계 각지의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SA4A가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컨텐츠가 법적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그것을 회사에 신고하는 일이 주업무다. 자연생태학자라고 해도 요즘에 자리 하나 얻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것만 팔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 돈 되는 일이면 해야 하는 법이다. 젊은 아트는 당연히 3년 전부터 연인 샬럿과 반려자 자격으로 지내고 있다가 요즘 대판 싸우고 샬럿이 일단 집에서 나가버렸다. 물론 그것이 이별을 뜻하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좀 갑갑하게 됐다. 왜냐하면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 소피아의 집에 샬럿과 함께 가서 즐거운 연휴를 보내기로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샬럿은 아서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샬럿이 현관을 박차고 나간 날에는 북아프리카의 레몬 혁명 당시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이 다툼의 주제였는데, 과밀한 승객을 태운 쪽배가 전복하여 사망하는 일 등을 아서가 그들이 선택한 결과라고 말하자, 샬럿이 이렇게 반박했었다.

  “저번이랑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거야? 전쟁으로부터 도망치느라고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사람들, 집이 불타고 폭파당하는 와중에 도망친 것도 그 사람들 선택이고 침몰할 배에 탄 것도 그 사람들 선택이니까 우리가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필요 없다고 했던 때처럼?”

  샬럿의 의견이 아서의 이모 아이리스와 같다. 아이리스는 심지어 북아프리카 난민 수용소가 밀집해 있는 그리스에서 그들을 위해 민간단체에서 열일 중이다.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샬럿까지 없어진 마당에 엄마한테 애인 또는 반려자와 함께 집에 가겠다고 큰소리 뻥뻥 쳐 놓았으니 아서 또한 급하게 됐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바늘 구멍 만한 틈이 있는 법, 아서는 도서관 옆 버스 정류장에서 뭔가를 읽고 있는 아가씨를 발견한다. 나이도 조금 어리고, 얼굴에 고리, 걸이 그리고 막대 모양의 다양한 피어싱을 한 이국적인 여자애. 나중에 알고 보니까 크로아티아 출신 유학생이고, 런던에 와서 공부를 하다가 학비 지원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바람에 중도에 작파 해 버렸고, 잠 잘 곳을 얻기도 쉽지 않아 일하는 곳에서 숙박도 해치워야 하는 조금 딱한 신세의 일종의 유랑민이다. 그래도 캐나다 등지의 도서관에 있는 셰익스피어 책도 제법 알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솔직하고, 담백한 화법이 사람에게 진솔한 면목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도 있다. 이 아가씨한테 아서는 3일간 ‘샬럿’이란 이름으로 자기 반려 역할을 해주면 1천 파운드를 주겠노라고 제의를 했고, 이를 받아들여 둘은 함께 기차를 타고 콘월, 어머니 집으로 간다.

  엄마 소피아는 좀 괴팍하게 늙었다. 아서가 도착하기 닷새 전에 “눈 안에 청록색 점, 시야 측면에 청록색 점이 보이면서 점점 커질 때”를 검색해보더니, 이 점 모양의 부유물이며 눈 앞을 하루살이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조막만한 스푸트니크 위성에 불과한 점에 말을 건넸고, 그러자 점은 핀볼 머신 옆구리에 붙은 쇠막대에 한 방 얻어맞고 튀어나온 쇠공처럼 눈에서 튀어나와 지금은 진짜 어린 아이의 머리통 만해졌다. 몸통을 잃어버린 머리. 잘린 부문에 살덩이가 흐물흐물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한 머리통과 소피아가 이야기하고, 마치 쿠션이라도 되는 듯 몸을 기대고, 함께 외출도 하는 장면으로 작품을 시작하니, 이거야말로 전에 읽었던 매력적인 앨리 스미스, <호텔 월드>에서 음식 운반용 승강기에 몸을 구기고 들어갔다가 떨어져 죽은 알바 아가씨의 귀신 같은 것이 생각나서 흥미진진 했었다. 물론 조금 엽기적이기도 했지만. 근데 이 책에서 문제의 머리통은 조금 지나면 흐지부지 없어져 출판사 책소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아쉽다.

  하여간 이렇게 어렵게 콘월 엄마 집에 아서와 샬럿이 도착해 고프다 못해 배가 쓰린 수준까지 되어 냉장고를 벌컥 열어 보았지만 버터도 없고, 딱 두 알 남은 달걀은 사온 지 두 달이 넘어 이걸 삼킨 사람은 응급실행을 진지하게 각오해야 할 수준이며, 생수 한 통도 없는 건 물론이고, 하여간 목구멍 넘길 것도 없었다. 따듯한 부엌 의자에 앉은 엄마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헛간에서 자는 편이 좋을 거라 말하고 자기는 방에 들어가 잔다. 이 할머니가 아서의 진짜 엄마 맞다.

  이제 어이가 없어져버린 아들 아서. 어떻게 할까? 넋이 거의 나가 샬럿이란 거짓 이름의 럭스를 쳐다보고 있자, 결정적일 때 단호하고, 현명하며, 사람의 기분을 제대로 맞출 줄 아는 가난한 아가씨는 단칼에 해법을 제시한다.

  “이모를 불러.”

  아서는,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이모에게 문자를 보내고, 즉각 아이리스 이모한테 답장이 왔으며 “즉각 갈게!”, 옆에서 보고 있던 럭스는 한 마디 더 보태라고 한다.

  “여기 먹을 것이 없어요. 음식물 좀 넉넉하게 사 오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번 더 옆구리를 지른다.

  “크리스마스 축하용 와인도요.”


  그래. 크리스마스. 잉글랜드에서 크리스마스, 라면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를 뺄 수 없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영혼. 이 작품 속에서도 몸통 없는 머리와 지내는 소피아는 자기가 기억하는 예전 시절부터 결국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귀결하는 장면을 소환한다.

  과거를 소환하는 일은 자주 현재와 타협을 이룬다. 스크루지도 결국 그렇게 했다. 이제 이 가족, 맏이 아이리스와 둘째 소피아, 그리고 아들 아서. 이들도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다시 그리스의 섬과 런던으로 갈 때, 샬럿 럭스에게 1천 파운드를 주고 돌려보낼 즈음엔 온 세상 감화 감동 가득하듯, 화해를 이룰 수 있을까? 읽어보시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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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위픽
천희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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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절대로 돈 주고 사서 읽지 않는 시리즈가 위즈덤하우스에서 내고 있는 위픽 시리즈다. 근데 도서관에서 보이면 아무 부담 갖지 않고 빌려 읽는다. 이 책도 단편 하나 달랑 실어놓고 정가 1만3천원, 10퍼센트 할인가 11,700원 받는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별 영양가 없이 길기만 한 ‘작가의 말’까지 포함해서 1백쪽 분량. 손바닥 만한 크기에 글자도 널럴하게 박여 있어 시작하면 순식간에 다 읽어 치운다. 인터넷 쇼핑의 매력 가운데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한 권 주문했다가 열폭하는 거. 이런 독후감 전체 공개로 쓰면 누군가 왕림하셔서, “독자님은 문학을 돈으로만 생각하시네요.”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는 한다. 예전에는 “저는 문학보다 돈이 훨씬 더 좋은데 당신은 아닌가요?” 이렇게 답글을 썼는데, 이제 또 비슷한 댓글이 달리면 “당신도 백수 되어 봐!” 라고 쓸 예정이다.

  천희란은 1984년에 출생해 저 한 시절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문학의 산실이었던 서라벌 예술대학의 맥을 잇는 중앙대학 문예창작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현대문학에 추천 완료인지, 신인 추천인지로 데뷔한 소설가다. 첫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과 경장편 (나는 이놈의 ‘경장편’이 뭘 말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경장편) <자동 피아노>를 가장 애정하는 거 같다. 소설집은 모르겠고, <자동 피아노>의 독자 서평을 읽어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자동 피아노>의 책소개를 보면 “자기 자신에 갇힌 인물의 끝없이 분열하는 목소리가 죽음을 음악처럼 연주하는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욕망과 충동, 이에 맞서는 삶에 대한 열망을 집요하게 그려낸다.”라고 했다. (알라딘 책 소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 속에 다양한 죽음/자살의 방식이 묘사되어 있고, 죽음/자살에 대한 욕망과 시도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그러면 오늘 읽은 <작가의 말>의 독후감은 대단히 조심해야 할 듯하다. 천희란은 <자동 피아노>에 달린 백자평을 <작가의 말> 속에서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독자서평”에 달린 글 속에서도 인용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확인하느라 무려 58개의 독자가 쓴 서평을 읽어볼 마음은 없다.

  “누군가는 그 책이 ‘작가의 말’과 함께 읽어야 완성된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그 책을 이해했다고 했다.” (p.68)

  읽어보지 않아서 짐작으로 말하자면 이런 의미로 <작가의 말>은 <자동 피아노>의 같은 악장 속 변주 주제거나 카덴차일 텐데 문제는 이걸 연주하는 작가의 상태가 우울과 자살, 죽음의 충동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기 작품의 독자 서평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스스로 고백했으니 독자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확 까발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 책을 읽어가면서, 오랜만에 도서관이 아닌 집에서 읽는 관계로 페이지마다 태그까지 붙여가며 집중을 하다가, 독자서평 운운하자마자 다시 태그 다 뗐다. 함부로 주둥이 털지 말아야지. 미리 자기 습성을 이야기해준 작가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근데 이건 이야기해도 되겠지. <작가의 말> 뒤에 따라붙은 ‘작가의 말’을 왜 그리 길게 쓸까? <자동 피아노>에서도 그랬다는데 글 쓰는 사람이 적어도 책 한 권에서 말할 건 본문에 다 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여기서도 피아노 이야기.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D.960 소나타. 작가 자신, 개인한테는 김선욱의 D.960이 기념할 만할 수 있지만 그 후에 따라붙은 몇 줄의 결말을 쓰자고 그리 많은 분량을 쓰는건 오버 같다. 그렇다고 음악과 연주에 관한 천희란 만의 특색있는 묘사도 없다. 당연하지. 음악이란 것이 원래부터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connotation 예술형식”이니까. 악보와 디테일을 짚어주지 않은 채 지금 들은 음악이 왜 아름다운가를 설명하다 보면 결국 시인 김정환이 쓴 <내 영혼의 음악> 꼴 나는 법이다.

  천희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작가가 좋아하는 피아노 소나타 장르 기준으로, 즉 세상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의 연주시간을 인간의 수명으로 쳐서, 작가가 제일 좋아한다는 D.960의 연주시간 만큼 살다 갔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아니 조금만 아프고 덜 불행하게, 축약 연주 말고 원래 악보 연주 기준으로.

  나는 내가 읽은 천희란의 작품에 대한 내 솔직한 심정을 (작품 속에서이기는 하지만)우울과 죽음과 자살에 천착하는 천희란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다. 별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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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2-03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시리즈 책값 무지 아깝던데요... 사고서 후회했어요. 아무튼 얇은 책은 다 따져보게 돼요.
독자(이자 소비자) 입장에서는 책값 보면서 페이지 따지고 양장인지 아닌지 따지고 특히 읽고 나서 작품이 책값을 하는지 따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도 백수 된 지 수 삼년이라... 책값이 정말 무서워요.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희망도서 신청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사고 후회되는 책이 한둘이 아니예요.
작가 무서워서 평도 못쓰겠네요!

Falstaff 2025-02-03 12:05   좋아요 1 | URL
아휴, 제 집 상수도가 새는 바람에 아랫집 누수가 생겼답니다. 하필이면 책장 바로 아래 파이프에 실금이 나서 책장 하나를 드러내야 했는데요, 아이고.... 이 시리즈뿐 아니라 두 번 읽지 않을 책을, 나이 들면 한 번 더 읽겠다고 구입하는 행위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확실하게 알았답니다.
책.... 마음 속에서 책이지, 삶에서는 그냥 고물 덩어리더라고요. 흑흑흑.... 사서 읽지 마세요. 흑흑흑... 이런 발언하다가 알라딘에서 강퇴 당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흑흑...

하이드 2025-02-03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픽 처음 보고 기막혔어요. 도서관에서 계속 빌려 읽다 보니, 사두고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긴 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소설 잘 안 읽었는데, 한국 소설 좀 더 가깝게 느껴지고, 많은 작가들 알게 되는 마중물 되어주기도 했고요. 위픽의 소설들은 다 일정 기간 위픽 사이트에서 연재 형태로 무료 공개 하고 있지만, 온라인으로 읽는 건 또 잘 안 읽혀서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하고, 예쁘고, 가벼운 책으로 가볍게 읽습니다.

제가 사야지 찜해둔 책들은 구병모 <파쇄>, 현찬양 <인현왕후의 회빙환을 위하여>, 현호정 <삼색도>, 그 외 좋았던 책들은 김원영 <우리의 클라이밍>, 최현숙 <창신동 여자들> 입니다.

요새 위픽 말고 트리플 시리즈나 그 외 이렇게 단편이나 중편으로 나오는 경우 많더라고요.
주문할 때 잘 봐야해요. 100쪽이라도 같은 100쪽이 아니에요 ㅎㅎ

Falstaff 2025-02-03 12:15   좋아요 2 | URL
이 시리즈엔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의도야 좋았겠지만 ˝독자의 마음은 염두에 두지 않은˝ 참신한 기획....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출판사가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특정 작가에게 단편 한 편을 의뢰하고 그걸 책으로 만들어서 심사가 더 뒤틀렸는 지도 모릅니다. 코를 풀듯, 설사를 하듯 찍 갈겨 쓴 작품도 작가의 이름값 덕택에 한 권으로 만들어져 나왔을 지도 모른다는..... 나왔을 거라는.... 얼토당토 않은 짐작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당연히 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깨갱!) ㅎㅎㅎ 그걸 돈 주고 사서 읽는다? 저는 안 할렵니다.
 
9시에서 9시 사이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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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에만 세 권의 페루츠를 읽는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1920년대 유대계 폴란드 소설가들이 만든 황금시대. 내가 말하는 이들은 스타니슬라프 비트키에비치, 비톨트 곰브로비치, 그리고 브루노 슐츠를 가리키는데, 난데없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던 페루츠를 왜 이 무리와 같이 엮으려고 했을까? 페루츠도 아방가르드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덜 아방가르드한데 말이지. 폴란드 작가들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수준인 것을. 잠깐 오해를 한 게 틀림없다. 레오 페루츠를 비트키에비치, 슐츠, 곰브로비치를 읽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할 뻔했다. 암만해도 내가 독후감을 너무 자주 쓰는 모양이다.

  페루츠는 한 마디로 말해서, 환상 소설가이다. 요즘 유행하는 뉘앙스로 환상적인 작품을 생산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설의 내용이 사실보다는 환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은 걸 다룬다는 뜻이다. 이미 죽은 아버지가 창문을 두드리는 <스웨덴 기병>, 읽는 사람마다 자살에 이르게 하는 책 이야기 <심판의 날의 거장>, 실제가 아니라 서로의 꿈속에서 만나 짙은 사랑을 해 보헤미아에 페스트를 창궐하게 한 커플 <밤에 돌다리 밑에서> 모두 그랬다. 그러니 페루츠를 훗날 라틴아메리카에서 유행하게 될 환상문학의 범주와 비슷하게 엮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그러면서도 서유럽에서 유행하던 고딕 문학과는 좀 차별을 두는. <9시에서 9시 사이>도 마찬가지로 환상 문학이다. 앞에서 <밤에 돌다리 밑에서>가 왜 환상문학이라 하는가를 언급한 건 스포일러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9시에서 9시 사이>가 왜 환상문학인지 알려드리는 것도 확실한 스포일러이다. 따라서 그건 피해갈 수밖에.


  주인공은 스타니슬라우 뎀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짧고 불그스레한 콧수염을 한 철학박사 수료생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지금 논문을 써서 통과만 하면 학위를 얻을 수 있는 과정이 아닐까 짐작한다. 덩치와 생김새하고 어울리지 않게 마치 먼 길을 갔다 온 듯 지저분한 장화를 신고, 바지에도 얼룩덜룩하게 진흙이 묻어 있다. 이런 모습으로 첫 장에 등장한다. 빈 시내 비저 골목의 식료품 가게에.

  뎀바는 가게 주인 요한나 퓌흘 여사한테 버터빵과 (재고가 떨어진)크라카우어 소시지를 주문했다가 소시지만 대신 엑스트라부어스트로 다시 주문을 한다. 근데 이 다음부터 좀 이상하다. 음식값 64헬러를 내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으면서 퓌흘 여사와 종업원에게 자꾸 엉뚱한 요구를 늘어놓으면서 신경질을 낼 뿐이다. 그러다가 우유를 찾는다. 퓌흘 여사는 자기가 마시려고 조금 남겨놓은 화주를 퍼뜩 떠올리고 그거라도 좋을까요, 묻는다. 예, 당연하지요. 치통엔 화주 만한 것이 없지요, 그래서 여사는 화주를 가지러 갔고, 딱 한 잔을 따르면서 생각해보니 이제 카운터에 저 남자손님 한 명만 남았는데, 서랍엔 14크로네와, 산호 목걸이와 터키옥 반지 두 개, 카테를의 저금통장, 그리고 마리아첼산 성화 두 점이 들어있는 것을 기억했고, 갑자기 수상한 생각이 들어 객장으로 뛰쳐나갔더니, 아뿔싸, 뎀바는 벌써 보이지 않는 거다. 여사가 현금보관통을 열어보니까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 이상하게도 돈과 보석, 저금통장, 기타 등등이 그대로 있었으므로, 도둑놈이 비록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가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할 찰라, 카운터 위에 놓인 20헬러짜리 동전 세 개와 크로이처 두 개, 합해서 64헬러가 놓여 있었던 거다.


  다음 장면은 버터빵과 엑스트라부어스트를 들고 그걸 아침식사로 먹으려 리히텐슈타인 공원의 한적한 벤치에 앉은 스타니슬라우 뎀바. 하필이면 개 키루스와 함께 아침 산책을 나선 궁정고문관 클레멘티 선생과 동행인 트룩사 폰 리터 교수가, 원래부터 아침마다 원고나 교정지를 검토하는 장소인 후미진 벤치에 도착하니, 바로 뎀바가 앉은 벤치. 뎀바는 그들을 보자 빵과 순대를 벤치에 올려 놓은 채 그저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클레멘티 고문관이 데려온, 암만해도 잡종견 같은데 하여튼 키루스가 빵과 순대를 다 먹어치우는 걸, 분명히 얼굴만 보면 분노에 차서 이글거리건만 그저 째려보고만 있는 거다. 궁정고문관과 교수는 오늘 아침 토론의 주제가 마리화나, 대마초였는데, 뎀바가 처음엔 개를 달려려고 하다가 나중엔 결국 키루스의 옆구리를 발로 뻥 차버리고, 그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가버리는 뒷모습을 보더니,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이자 철학 및 역사분과 외교 아카데미 강사인 폰 리터 교수는, 뎀바가 오늘의 화재였던 대마초를 흡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득달같이 쫓아갔으나 이미 뎀바는 사라진 후였다. 이때가 한 아홉시 반 정도 됐으려나?

  아침을 먹지 못한 뎀바는 멀리 가지 않았다. 같은 공원의 다른 장소. 이제 주인들은 출근을 하고, 여사님들은 외출을 위한 준비에 바쁜 시간. 공원에는 쁘띠 부르주아의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가정교사 아가씨들과 베이비시터 할머니들로 가득하다. 빨간 브로치 두 개가 달린 새 보일 블라우스를 입고 작은 남자애, 여자애 각 한 명씩 데리고 나온 아름다운 아가씨 알리스 라이트너로 말할 것 같으면, 척 보면 새침하고 얌전할 것 같은데 사실은 내숭 덩어리로 도발적인 주제로 은근하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는 걸 어느 정도 즐기는 성향이다. 알리스는 특히 숱한 남자들로부터 엽서나 편지를 통해 보낸 사랑의 고백을 읽는 걸 최상의 취미로 생각한다. 이 알리스를 뎀바가 우연히 만났다. 아가씨 쪽에서는 인연이 되려는지, 원래 잘 차려 입은 남자를 선호하건만 오늘은 지저분한 장화와 바지의 뎀바를 보고 낭만적인 보헤미안을 떠올리는 거다. 게다가 순전히 폼으로 들고나온 책을 슬쩍 보더니, 입센 책이군요, 그렇죠? 한 번에 알아맞추는 것까지 반할 요소는 많았다. 알리스 아가씨는 뎀바가 마음에 들어 본격적으로 꼬드길 심사로 우산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건 남녀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꼬리치는 일로, 여성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 하여간 남자가 주워 주는 것이 삼천만의 일반상식이건만, 뎀바는 꼼짝도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알리사 본인이 주워들었다. 그래도 뎀바가 싫은 기척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알리사가 자기 주소를 알려주며 편지나 엽서를 보내라 주문하면서 주소를 불러주었는데, 뎀바는 도통 그걸 받아 적지 않는다. 기억할 수 있다면서. 더 재촉을 하니 이젠 글을 읽지 못한다나?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 놓더니, 나중엔 사실 자기가 유레카 공장에 기계 협착 사고를 당해 두 팔을 잃은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뎀바를 불쌍히 여긴 알리스는 벤치 위에 1크로네 10헬레의 동전을 놓고 자리를 뜨고, 이걸 발견한 뎀바는 그걸 집어 땅바닥에 내팽개쳐 버린다.


  여기까지 읽으면 주인공 스타니슬라우 뎀바가 너무 찌질해 보인다. 세상에 이리 궁상맞을 수가. 외견상 괜찮은 신체조건에 어디 빠지지 않는 외모, 다만 가난한 학생 신분이라 그게 한 가지 허들인 인생을 사는 뎀바가 처음부터 이런 찌질이는 아니었겠지? 맞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엄청 똑똑해서 모르는 게 없는 모든 분야의 척척박사라 불렸다. 망가지는 사람은 틀림없이 어느 계기가 있는 법인데, 뎀바의 경우에는 피끓는 20대 청년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듯이 연애문제였다.

  패션 조끼용 천 도매상을 하는 오스카 글레빈터사社에서 일하는 조냐 하르트만 양. 스타니와 조냐는 둘이 짧지 않은 시간동안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 였던 걸로 뎀바는 오해했다. 항상 더 나은 환경이나 권력 또는 힘을 가진 수컷을 좇는 암컷의 본능으로 조냐는 그러나 자기 앞에서 활짝 구애의 날개를 펼치며 바르르 떠는 숫공작 게오르크 바이너를 선택했다. 게오르크는 대학생이고, 아빠가 겁나게 부자라서 이번에 학점을 잘 받아 게오르크에게 3백크로네를 선뜻 하사를 했다. 여기에 조냐가 가지고 있는 90크로네를 합쳐 약 4백크로네로 베네치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를 3주에 걸쳐, 2주는 휴가를 내고 둘째 주 금요일에 병이 나서 한 주일 더 머물러야 한다는 거짓 전보를 보내는 걸 전제로 3주 여행을 계획, 벌써 열차표 일습을 예매해둔 터이다.

  세상에 이런 비밀을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 소식이 뎀바의 귀에도 “어제” 들어갔고, 눈알이 훽 뒤집어진 뎀바는 곧바로 오스카 글레빈터사에 쫓아가 조냐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빌고 빈다. 그러나 조냐는 뎀바가 그럴수록 더 정나미가 떨어졌고, 둘의 감정을 더욱 틀어져만 갔는데, 나중에 뎀바가 말하기를, 내가 내일 오전 9시까지 4백크로네를 가져오면 게오르크말고 나하고 여행을 떠나겠어? 묻는 단계까지 왔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한 번 떠난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안 넘어가는 나무는 백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법. 웃기고 있네. 콧방귀를 핑, 뀌는 순간, 조냐는 뎀바의 손에서 반짝이는 크롬 도금 쇠뭉치를 발견한다. 틀림없이 리볼버 권총이다. 순간 조냐는 위기를 넘기기 위하여 진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원래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뿐이었다고, 일단 진정을 시키는데 성공했고, 곧바로 뎀바는 문제의 4백크로네를 마련하기 위해 도매상을 뛰쳐나간다.

  여기가 차원이 바뀌는 지점이고 순간이다.

  뎀바는 전에 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수십년 간 아무도 대출한 흔적이 없는 고서 세 권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해, 결국 세 권을 훔쳐 내온 적이 있다. 가져다 놓아야지 말뿐이고 생각뿐, 시간이 흘렀으며, 살다 보니 돈에 궁색해질 때가 있어서 고서 두 권은 책의 가치를 그나마 알아보는 유대인에게 팔아먹었다. 이제 남은 한 권을 가지고 다시 그 유대인을 찾아가 감정을 하고, 흥정 끝에 240크로네로 결정을 했다. 돈을 지불하려 방에 들어간 유대인은 열쇠를 가진 조카가 뭘 사러 밖에 나가 있어서, 점원에게 그를 데려오라 시켰고, 점원이 데려온 사람은 조카가 아니라 두 명의 형사였는데, 이들은 유대인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뎀버의 손에 은팔찌, 수갑을 채워버렸다. 순간 덩치 좋은 뎀버는 몸부림을 쳐 이들을 떨쳐내고 집 3층 다락방으로 올라가 문을 걸었지만 그게 오래갈 일이 없을 터, 결국엔 두 팔에 수갑을 채운 채 그곳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데 성공한 거다. 그러니까 여태 뎀버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면 수갑을 채운 손목이 드러날 터이고, 즉시 사람들은 뎀버를 경찰에 고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돈이 생기면 바로 두 손을 사용하지 못하고, 손을 노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돈을 잃어야 하는 상태가 계속된다. 독자는 읽는 내내 뎀버의 상황이 너무도 갑갑해 숨이 턱턱 막히지만, 나중에 결말 부분에 가면 허, 참. 왕년에 TV에서 수십년 간 <가족 오락관>을 진행하던 허참 씨의 이름을 한 번 되뇌면서, 세상에 이렇게 된 거였어? 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된다.

  이제 페루츠의 책은 한 권 남았는데, 그건 그냥 내버려두어야겠다. 뭐든지 약간 부족한 게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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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1-31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천희란, <작가의 말>
화요일. 앨리 스미스, <겨울>
목요일. 천쓰홍, <67번째 천산갑>
금요일.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타임 셸터>
 
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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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카르추크의 단편집은 처음 읽는다. 그래도 낯설지 않다. <방랑자들>과 <태고의 시간들> 모두 장편소설이기는 하지만 짧은 단편이 촘촘하게 서로 이야기를 엮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토카르추크를 읽은 것이 벌써 4, 5년 전이라 큰 줄거리 정도와 작가 특유의 문법과 문장 같은 것들만 기억하는 수준이기는 하다. 이이의 작품을 딱 끊은 계기는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읽고나서 과한 동물주의, 자기가 기르던 개 두 마리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것 때문에 지역의 명사 네 명을 차례차례 연쇄 살인하며 시신 훼손과 비웃음까지 저지르는 장면을,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정당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죽은 이들의…>가 2009년 작품이고 《기묘한 이야기들》은 9년 후인 2018년에 발표했다. 《기묘한 이야기들》를 읽어보니 <죽은 이들의…>를 쓸 수 있었던 채식주의자 올가 토카르추크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토카르추크는 1998년부터 폴란드 남서부, 실레지아 주와 보헤미아의 국경 근처인 크라야노프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알프스에 비해 크지 않은 산들도 이어지는 산맥 지역으로 구릉지대에 울창한 숲이 접한 곳이 아닐까 싶다. 지역적으로는 가깝지 않아도 이이와 비슷한 환경에 살고 있는 프랑스 소설가가 한 명 생각난다. <내 식탁 위의 개>를 쓴 클로디 윈징게르. 두 명이 쌍벽을 이루는 동물주의자인 건 맞는 듯. 토카르추크는 동물주의에서 한 발 더 진화해 인공적인 것, 사람살이에 유독한 물질을 만드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즉 21세기 식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런 식으로,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현재 인간의 미래형을 제시한다. 이 과정을 그리기 위하여 인간종이 다른 생명종보다 우월할 것이 없는 증거를 보여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살고 있는 미래의 인간을 설정하기도 한다. 당연히 17세기 30년 전쟁 직후의 폴란드 왕국을 묘사하기도 한다.


  작품집의 제목이 “기묘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묘한 이야기, 아마 이런 “기묘함”은 주로 유럽의 고딕문학이나 일본 민속문학의 영향으로 유령이나 엽기 잔혹이 나와야 할 듯한 생각이 들겠지만, 토카르추크의 기묘함은 이들과 달리 공포를 유발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이이의 작품은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간혹 인류의 영속성을 위한 자연친화의 추구 또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으로 읽힌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인간의 축일력>은 작품 가운데 제일 분량이 많은데, 인간이 대량 배양한 플라스틱 포식 박테리아가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 처리한 후에도 개체수가 줄지 않아 육지에 상륙해, 당장 필요한 플라스틱까지 몽땅 포식한 후의 미래 인간세계를 그렸다.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 당연히 나일론도 포함한다. 즉, 인간생활의 필수조건인 의식주가 몽땅 수백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인류는 여전히 TV방송을 송출하여 국민들이 절대자 모노디코스의 죽음과 부활과 현시 행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당연히 매년 다시 살아나는 절대자 모노디코스를 유지시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치 중세 시대의 종교처럼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교정분리 이전 시대의 왕, 천기를 움직여 필요할 때 비를 부를 수 있는 힘이 떨어지면 대중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주술사 비슷한 지배자일 수도 있다. 당연히 사회 속 젊은이들의 한 패거리는 주술사 왕일 수도 있고, 주술사 또는 왕을 내세워 정권을 유지하려는 권력에 반대하기 위하여 모노디코스라는 우상을 파괴하기 위한 세력도 있다. 또는 이를 인류의 죽음과 부활, 소멸과 탄생의 연속을 통한 영생과, 과연 인간이 영생할 필요가 있을까, 사이의 고민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터.


  반면에 30년 전쟁이 끝나고 8년이 흐른 1656년의 폴란드를 무대로 쓴 두번째로 실린 작품 <녹색 아이들>은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윌리엄 데이비슨이 폴란드 왕과 함께 국가의 상황을 점검하고 지방 호족들과의 연합을 다지기 위한 여행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폴란드왕은 데이비슨이 딱 꼬집어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에게 수은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매독 환자였을 것이다. 하여튼 여행을 떠난 와중에도 스웨덴과 모스크바 군대가 여전히 폴란드 영토에 침범해 약탈과 점령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왕의 일행이 예전에 타타르 족이 2년 여 동안 지배하고 있다가 숲에 불을 싸지르고 물러난 음습한 숲 근처 영주의 저택에 도착해 머물렀다. 왕이 통풍 때문에 꼼짝하지 못하고 나날을 허비하고 있던 중, 사냥꾼 무리가 숲에서 옷, 누더기도 그런 누더기가 없다시피한 그런 누더기를 걸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 하나씩을 잡아왔다. 이들을 보니까 온몸에 마치 엽록소가 든 듯 푸릇한 기색이 나는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반점 같기도 한 자잘한 알갱이가 피부 바로 밑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는데, 이들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 태양빛/볕을 받으며 양분을 흡수해서 실제로 음식물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며,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처럼 짐승의 고기는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 가운데 남자 아이와 얽혀 크게 사고를 당한 데이비슨은 왕은 떠나보내고 청년 리치볼스키와 함께 영지에 남는데 결국 리치볼스키도 숲 속의 아이들과 함께 사라져버린다는 이야기.

  이런 스토리를 쓰기 위하여 결코 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을 훼손했고, 당장은 필요하겠지만 멀리 보면 결국 그것 때문에 인류의 큰 위기를 봉착할 수밖에 없는 폐기물 등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류의 행위를 진짜 행위보다 더 지독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을 터이다. 게다가 소설이란 명백히 픽션, 허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과장은 허용될 수 있다. 그러다가 일이 좀 커지는 것이지. 전작 <죽은 이들의…>도 그랬고, 클로디 윈징게르의 <내 식탁 위의 개>도 그랬듯이.


  근데 올가 토카르추크의 이번 책 《기묘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참 글 하나는 잘 쓴다, 라는 생각을 곳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문장의 능란함은 작가니까 밑에 깔아놓고 생각해도, 사고의 깊이와 지식의 넓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가 바르샤바 대학 대학원에서 학위를 딴 임상심리학자로 다년간 심리치료사 일을 해서 그런지 다양한 이야기거리도 준비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난 주 월요일(12월 16일)에 페루츠의 <밤에 돌다리 밑에서> 독후감을 쓰다가 어떻게 이상한 의문이 문득 들어 그걸 그대로 썼다가, 암만해도 건전한 양식을 지닌 분들이 읽으면 욕을 한 바가지 먹을 정도로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지워버린 적이 있다. 정말로 궁금해서 썼던 것이기는 하지만. 근데 난데없이 이 책 《기묘한 이야기들》의 아홉번째로 실린 작품 <모든 성인의 산山>에 해답이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랐다. 스위스 산중에 있는, 한 시절의 폐쇄수녀원이었지만 지금은 네 명이었다가 몇 십 년만에 한 명이 늘어 다섯 명의 수녀만 살고 있는 수녀원에 성인의 유골이 치장,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고 중세 시절부터 유럽 곳곳에 유행했던 성유물 매매에 관해 심리학자인 주인공이 이렇게 생각을 보탠다.


  “(성인의) 손가락과 발목뼈, 머리카락 뭉치, 몸통에서 꺼낸 심장, 잘려 나간 머리통에 대한 숭배, 사등분으로 조각난 성 아달베르트의 유해는 교회와 수도원에 성물로 배포되었고,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는 주기적으로 신비한 화학적 변화를 겪으며 상태와 형질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성스러운 시신의 도난사건, 유해를 쪼개어 성유물로 만드는 과정, 기적적으로 늘어나는 심장과 손, 라틴어로 ‘사크룸 프레푸티움(sacrum preputium)’이라 불리는 아기 예수의 포피까지.” (p.212)




  * 신성모독의 위험이 있음. 조심하실 사!


  위에 적은 것이 성유물의 종류들이다. 이걸 읽자마자 내 의문이 개운하게 풀려버렸다. 페루츠의 <밤에 돌다리 밑에서>는 16세기 말, 30년 전쟁이 터지기 바로 직전 신성로마제국 보헤미아의 유대인 게토에서 한 부자 유대인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2세가 주인공이다. 이때 제국의 가장 강력한 적은 투르크. 지금의 튀르키예. 제국과 투르크 사이의 국지전이 (독후감을 쓰던 내 머리 속에서)십자군 전쟁으로 확장하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로 갔다가, 예수를 믿는 기독교도들은 할례를 하지 않았고, 이슬람과 유대인들은 할례를 하는데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까지 갔다. 사실 이것도 너무 많이 간 거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v.s. 이슬람교의 십자군 전쟁은 “자연산과 깐 놈” 간의, “포피와 귀두”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리스도의 호적상 아버지 성 요셉은 호적상 아들에게 할례를 해주었을까, 아니었을까? 이게 갑자기 궁금하더란 것. 고민을 하다 하다가 거실에서 드라마 보고 있던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단칼에, 남의 조껍데기에 신경 꺼, 라고 앙칼진 대답이 돌아왔고, 나는, 고마워, 하고 말았다. 친구 가운데 신부가 한 명 있다. 그 친구한테 직접 물어보긴 좀 뭐해서 최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한교수한테 전화할까, 싶었던 찰나에 한교수한테 전화가 왔다. 다른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내 생각나서 전화 했다나?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얘도 영세 받은 신자잖아? 성 요셉이 그리스도 소년 시절에 포경수술을 해줬을까, 안 해줬을까? 모르겠단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 이교수가 내 말을 듣더니 한 마디 했다. 그런 생각하는 니가 미친 놈이다. 얘도 그새 소위 종교에 귀의한 모양이다. 네미럴, 교수들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말세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단번에 가르쳐주었다. 성 요셉은 호적상 아들 예수한테 할례를 해주었다. 심지어 할례 후, 예수의 포피 또한 무진장 잘 보관했다. 책 속에 뭐든 다 있다니까! 올가, 땡큐. 오늘은 2024번째 크리스마스. 실제로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이겠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올해 행운이 쏟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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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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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작 <헌등사>를 포함해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실은 작품집. <헌등사>는 185쪽 분량이라 우리나라 출판계의 분류에 따르면 장편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긴 분량으로 따져서 장, 중, 단편으로 구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는 이 《헌등사》에 나오는 작품들을 읽고나서 2018년에 시작하는 다와다 요코의 소위 Hiruko 3부작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Hiruko 3부작”은 일본 열도가 태평양 상에서 사라졌는지, 침몰했는지 하여간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진 상태에서 모어mother tongue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일본인 여성 Hiruko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체류하며 같은 모어를 쓰는 Susanoo를 찾는 이야기가 1부 <지구에 아로새겨진>이고, Hiruko와 친구들이 Sunanoo의 실어증을 치료하는 것을 돕다가 이미 침몰해 없어졌을 지도 모르는 Hiruko와 Sunanoo의 고향으로 떠나는 <별에 어른거리는>이 2부, 아직 번역 출간해 나오지 않은 <태양제도>가 3부로 되어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강의 지진(강도 9.0~9.1)이 발생한다. 이어 평균 10미터, 최대 소상 높이 40.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지진해일이 닥쳐 도호쿠와 간초 지방의 태평양 연안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이로 인해 1만8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4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이것 외에도 도호쿠 지역의 원전 29기 가운데 11기가 운전 중단이 되었으며, 이 가운데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1호기부터 3호기에 멜트 다운이 일어나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레벨인 7단계 사고로 분류되었으며 2012년부터 “귀환곤란지역” “거주제한구역”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오에 겐자부로를 위시한 사회, 문화 등 각계의 인물들은 1945년에 원자폭탄 피폭을 직접 경험한 기억이 남아 있어 1만 8천명의 사망/실종보다 방사능 오염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 대규모 반핵 시위에 접어들게 된다. 다와다 요코는 당시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위에 참가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이 역시 경제적(싼 값)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대형 재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공황에 접어든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헌등사》의 단편들을 보면, 일본 공군 자위대의 전투기가 (당연히) 폭탄을 싣고 비행하다가 기체 결함으로 추락을 하는데, 하필이면 그게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꼭대기로 정확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일본 전역이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방사능에 오염되어, 이에 피폭된 사람들이 강이나 개울 같은 하천을 찾아가 몸을 담구는 장면까지 묘사한다. 피폭자들의 하천행은 분명히 오타 요코가 1945년 히로시마 피폭을 직접 당하고 쓴 소설 <시체의 거리>에 나오는 장면을 리메이크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자로 파괴에 의한 방사능 유출의 피해를 원자폭탄으로 인한 타격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정도로 여긴 셈이다. 또는 또다시 대형 지진이 발생해 원자력 발전소가 여기저기에서 파괴되어 일본의 거의 모든 지역의 토지는 물론이고 인근해 해수까지 전부 방사능에 오염되었거나, 지진의 여파로 지금의 위치에서 더 동쪽으로 밀려나가 유라시아 대륙과 아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상태가 《헌등사》 출간 4년 후에 나올(나오기 시작할) Hiruko 3부작의 기본 개념이 되는 거였다.


  그런데 한자어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多和田葉子, 다와다 요코 여사는 위 문단에서 길게 쓴 다분히 디스토피아 적 미래관을 소설로 쓰면서도 일본어와 한자어를 오가며 현란한 문자 또는 언어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한자어와 일본어, 가끔은 영어와 일본어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것들을 깔고 간다. <헌등사>을 보면, 일본은 국토가 유라시아 대륙과 완전히 분리된, 즉 쿠릴열도와 이어진 대륙과의 연결 끈에서 완전히 떨어진 이후, 오염되어 야생동물이 거의 몽땅 멸종한 토지와 해양수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쇄국정책을 벌이고 있어서, 외국어 사용조차 금지했거나 금지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못쓰게 된 전자제품에 영어로 쓰인 Made in Japan이란 글씨를 보고, Made? 마데? 재팬, 일본까지? 라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Made를 ‘마데’라 읽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A부터 B까지”를 일본어로 하면 “AからBまで” 즉 ‘A가라B마데’로 읽는다는 걸 알아야 웃을 수 있다. 한자어와 일본어로 하는 언어유희는 생략한다. 이런 식이다. 일본어도 할 줄 아느냐고? 조또. 우리말로 ‘조금’이란 뜻이다. 라떼 일본어 독해를 못하면 마르크스를 읽을 방법이 없어서 시쳇말로 얻어 터지면서 배웠다.

  원래 쉽지 않게 소설을 쓰는 다와다 요코가 이런 언어 유희까지 벌이고 있으니 정말로 《헌등사》를 읽으실 분은, 구간이 절판이라 틀림없이 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번으로 나온 책을 읽으실 터인데, 신중하게 결정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기준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심각한 고려사항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이야기했으니 됐다.




  근데 "현혹" 또는 "선동"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자. 아, 먼저 전제로 깔아야 할 것이 있다.

  1 > 0.9999999999999……

  이 부등식이 맞다고 생각하시면 안 읽으셔도 된다. 괜히 오해만 불러올지 모르니까.


  원자력 발전을 포기한다면? 그러면 남은 것은 화석연료, 수력, 태양광, 풍력 등이다. 화석원료를 이용한 전기발전은 필연적으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어서 적어도 2차 함수 곡선을 타고 급격화할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경제성 문제가 걸림돌이고. 게다가 우리나라 같은 지형은 지독하게 태양광과 친하지 못하다. 일본도 마찬가지. 이 두 나라가 원자력 발전소의 문을 닫고, 앞으로 원전을 더 짓지 않기 위하여는 그래도 태양광의 효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과학적, 산업기술적 발전에 박차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 의견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그렇다. 당장 내일부터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고 치자. 그러면 전기료는 지금보다 적어도 3배 이상으로 오르지 않을까? 3배가 뭐야, 최소한 그렇다는 것이지. 거리는 어두워지고, 점포는 해 떨어지면 문을 닫아야 하며, 부잣집 청소년들도 대학입학을 위한 학원 순례를 멈추어야 한다. 왜? 전기 없는 어둠 속에 틀림없이 범죄가 도사리고 있을 터이니. 앞으로 더욱 뜨거워질 것이 분명한 여름 밤의 열대야도 에어컨 없이 지낼 각오를 해야 하고, TV 사이즈도 작은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지 모른다. 나머지 집에 있는 필수 가전제품은 전부 신제품, 작은 사이즈로 개비해야 할 터이고, 적지 않게 내다 버려야 할 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농담 같지? 천만의 말씀. 30년 넘게 밥 먹고 살던 직장이 태양광 근처 산업이다. 그래서 전기산업에 관해 좀 안다. 말로만 원자력 발전 반대 집회 가서 투쟁, 투쟁, 투쟁, 목이 터지게 외치고나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빵빵 돌리시는 분들은 정말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이용한 전기 생산이 지금보다 훨씬 효용이 좋아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참아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일 뿐. 지금은 전기 없이 또는 비싼 전기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편함을 맛본 후에는 불편을 견디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특히 해 진 다음의 범죄를 또다시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면 원자력 발전을 당장 멈추어도 설마 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참고로, 나는 원전 중단보다 화력발전 중단에 의한 지구온난화 예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1인이다. 원전사고는 국지적 피폐화이고, 지구온난화는 전지구적 멸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가비얍게 탈퇴한 트럼프, 거 참.

  원전 오염수 방출에 관한 진보적 과학자가 TV에 나와서 문제없다고 한 적 있다. 그 양반 말이 맞다. 몇 백만 톤의 오염수가 해발 몇 백 미터 아래의 파이프 라인을 통해 곧바로 해류에 합류한 다음 태평양을 한 바퀴 돌고, 남극해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을 기점으로 일부는 대서양으로 빠져나가고, 일부를 뺀 좀 더 많은 나머지가 인도양을 통과해 다시 태평양으로 와서 우리나라 황해에 머물기도 하고, 동해로 빠지기도 하고, 다시 일본 동쪽 태평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무려 몇 백만 톤의 오염수가. 그럼 바닷물 속에 오염 성분이 들어 있겠지? 맞다 들어 있다. 얼마만큼이냐 하면 0.000000…퍼센트. 이게 TV에 출연한 진보성향 과학자가 한 말이다. 한 TV 방송에서 그래픽으로 설명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하, 거참, 그런 현혹이라니. 바닷속 파이프라인 배출구의 직경이 한 100미터 이상이다. 그러니 그래픽을 보는 시청자는 당장 “오염수가 저렇게 많이 배출되는 거구나!” 경악을 할 수밖에 없지. 오에 겐자부로도 그랬고, 오늘 《헌등사》를 쓴 다와다 요코도 그랬다. 그들이 하는 말이 0.000000…퍼센트도 오염은 오염이지 않느냐, 하는 것. 다시 부등식 하나.

  0.000000…퍼센트 > 0

  이 부등식은 틀렸다. 수학적으로 0.000000…퍼센트 = 0. 통계학적으로 0.000000…퍼센트와 0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TV에 나왔던 진보 성향의 과학자가 한 말이 바로 이거다. 통계학적으로,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몇백만 톤의 오염수 방출은 그것만으로 바다를 오염시킬 수 없는 거다. 수학적으로 어떻게 저 부등식이 틀렸는지 설명해드릴 수 있는데, 너무 길어진다. 정 궁금하면 개별적으로 연락주시라. 과녁에 절대 도달하지 못하는 화살의 패러독스도 깨 드리겠다. 이해하건 못하건 그건 내 책임이 아니고.

  다와다 요코는 독일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니면 이중국적자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태생의 일본인으로 태생적 원자폭탄과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사고가 외골수로 치닫고 말았다. 공군 자위대 전투기가 추락을 하는데 그게 일본에 10기밖에 남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 지붕 위로 정확하게 떨어져 폭발한다고?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다만 확률이 0.000000…퍼센트 = 0 이라서 그렇지. 이건 소설이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전혀 가능하지 않은 전제를 깔 수도 있다. 그게 작가의 권리이니까. 불만은 없는데 책 한 권을 몽땅 같은 주제로 해 놔서 내가 심통이 좀 났던 거 같다.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진복자가 진짜, 진짜 많다. 그걸 신념처럼 믿는 진복자들. 진짜로 복받은 이들. 좋겠다. 그저 1찍이나, 2찍이나, 정치가 과학적 진리 위에 있다니까. 신도들을 보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복, 진복 많이 받으시라.



  지난 초봄에 건강검진 받고 근 30년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지방간이 싹 없어졌다는 결과를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아 다시 만날 쐬주를 장복했다가, 12월 들어 또다시 절주 중이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나는 바람에 요즘 독후감이 길어지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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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1-28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지방간 탈출하신 거와 쐬주 가끔은 드실 수 있으시다니 말입니다^^
저도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궁금했는데 쓰신 글을 읽고 나니 조금 감이 오네요.
아직은 원자력 발전을 해야한다는 것을 수긍하지만 다른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저흰 태양열 발전을 하고 있는데.... 대규모 발전이 우리나라 지형상 어렵단 단점이 있군요.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명절 되세요.


Falstaff 2025-01-28 11: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지방간. 꽤 오래 고생했습니다만 이젠 남의 이야기입니다. 몸무게만 빼면 될 것을... 근데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ㅋㅋㅋ
현재 태양광 기술 가지고는 거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혁신적인 태양광, 풍력, 조수 발전 등 자연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전기생성에 획기적이고 또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어야할 거 같습니다.
저는 원자력발전 말고, 화석연료 발전을 더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올해 여름이 작년 여름보다 얼마나 더 더울지 벌써 걱정이 된답니다. 이제 백수거든요. 전기요금 부담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화력발전을 더 하면 할수록 지구온난화는 2차 함수적으로 급상승할 것 아니겠습니까.

stella.K 2025-01-28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밤이 너무 밝잖아요. 거 좀 약간 줄이고, 몇년 전에 전등 10촌가? 몇초 끄기 만으로도 에너지를 줄였다는데 예전에 민반공훈련도 했던 저력있는 나라에서 가전제품 사이즈 안 줄여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전쟁나 폭격 맞기 전까지는 옛날로 절대 못 돌아가죠. 우리 때 에어컨 있는 집이나 틀 수 있는 건데 요즘 아이들 그거 절대 이해 못 하잖아요. ㅠ
암튼 간 회복하신 거 축하합니다!^^

Falstaff 2025-01-29 09:50   좋아요 1 | URL
10초 끄기 가지고는 택도 없을 겁니다. ㅎㅎㅎ 편의성을 맛본 사람들이 과연 후퇴할 수 있을지, 이거 어려운 문제 아닐까요?

우끼 2025-01-29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혹과 선동에 넘어간 전복자의 신념..ㅎㅎ 시니컬하네요.
이미 본문에도 언급하셨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1차적으로 인근 지역에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고 있어요.
대형사고가 나지 않은 발전소 인근 주민들도 방사능 질환인 갑상선암 확률이 높은 상황인데요. 때문에 탈핵을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노동자들과 인근주민들은 피폭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원자력 발전소로 생산된 전기는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게 아니라서, 송전을 해야 해요. 송전과정에서 많은 전력이 유실되지요. 그걸 송전하기 위해 송전탑도 세웁니다. 때문에 송전탑 인근 주민의 암 발생률도 높아요.
내 안전과 편리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다면, 다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말하려면 다른 존재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혹과 선동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대형 사고날 위험은 확률싸움일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피폭되면 피해는 100%인걸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3세들은, 피폭때문에 피해를 입은 상태인데도 아직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내부피폭은 대물림된다고 하지요..
1980년대에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의 아이가 2회 무뇌아가 탄생한 적이 있었어요. 그 후 한수원은 핵발전소가 원인이 아니라고 말을 했지요. 그 사건 이후로도, 대형사고는 아니더라도 사고는 있었고, 심지어 부품을 빠뜨린 경우도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밝혀낸 바가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는, 심지어 관리된 오염수도 아니므로 어떤 핵종이 어떤 농도로 들어있어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몰라요. 도쿄전력이 핵오염수 방출 전에 낸 보고서에 IAEA는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다고 말했지요.
지구온난화 가능성을 과학자들이 언급한 건 1970년대로 알고 있어요. 그당시엔 지구온난화는 가설 중 하나였어요. 오히려 태양과 멀어지기에 추워질 것이다. 빙하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이렇게 지구가 넓고 대기가 큰데, 인간이 내보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여겼을 수 있어요. 지금은 기후재앙을 당연한 상황으로 받아들이지요. 방사능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면 이미 늦으니, 지금부터라도 사용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구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방안을 어떻게든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늦었다고도 생각합니다만, 이 이상 늦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이 와중에 포스코는 작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기어이 완공하여 가동도 한걸로 알고 있으나……

Falstaff 2025-01-29 09:58   좋아요 0 | URL
아이쿠, 긴 댓글을 써주셨군요.
원자력발전과 화석연료화력의 단점은 많이 학습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전은... 태양발전, 풍력발전도 송전이 필요하니 특별하지 않고요.
포스코의 화력발전은, 철강과 반도체만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도 별로 없는데,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기업 입장에서 발전소를 짓는 건 당연합니다. 짓지 말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겨야 하고요. 여기서 실업율 증가 운운은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인간종만큼 오래 번창한 포유류도 없습니다. 실컷 즐기다가 자기들이 만든 핵이든지, 이상기온이든지, AI든지 하여간 끝까지 즐기다가 이제쯤 멸종하는 것도 아쉽지 않을 듯합니다.
전기 사용량의 대량 감축은... 가능하겠어요?
독일을 봐라! 이런 의견도 있는데, 이웃 프랑스에서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사서 쓴다는 겁니다. 국가간 님비 같아서 좀 웃깁니다.

우끼 2025-01-2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 짓든 다른 나라에 짓든, 화석연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량은 같지 않겠습니까? 누가 가까이서 피해입고 황폐화되느냐의 차이이지요.. 물론 배출된 이산화탄소 총량을 생각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만 피해입는 것은 아니겠지요. 철강, 반도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필요한 산업이냐고까지 물을 수밖에 없겠네요.. 기업에 의존해야하는 지금의 일자리 시스템도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구요. 그와중에 많은 땅을 적은 농업인이 농사지어서 먹여살리는 문제도 있구요. 그렇게 농사지으면 또 땅이 황폐화되어 오래 농사짓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지요...
한편으론 해마다 쏟아지는 산업폐기물 량이 어마어마한데, 그걸 빈땅처럼 보이는 농촌마을에서 구매하여 땅에 묻는다더라구요. 겉보기엔 아무문제 없어보이지만 인근 농사짓는곳까지 유독성물질이 흘러들어오면 아무리 해도 농사짓긴 어려워지는 거구요. 그걸 막으려 애쓰지만, 산업폐기물이 계속 생산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이대로 가다간, 가까운 미래에 식량문제가 걱정이기도 합니다. 안그래도 기후변화로 농산물 수확량이 줄었다고 9월 기후정의행진에서 발언하는 농민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는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제로 정책이든 의사결정이든 진행되는데, 그걸 결정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삼아 가열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외지인들이고요. 어차피 결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피해가 오지 않는 사람들요.
이미 에너지나 주거권 이동권에서 배제된 존재들도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있구요.
이대로는 괜찮지 않으니 어떤 생존방식이 가능한지, 자연이든 지역이든 대상화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행위자로서 대우하여 함께 의사결정하는 방도는 무엇일지 고민하는게 광장에서건 다른곳에서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어떤 것이 민주주의일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기업은 돈이 많으니, 어떤 상황에서건 답을 찾겠지요. 그 결과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기업의 전환도 필요하고 의견을 들어야겠지만, 그게 그들의 논리를 온전히 수용해야한다는 의미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2024년에 한국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사고 13주기에 열린 에너지 전환 대회에 온 독일분들이 있었어요. 독일에서 탈원전 해놓고 이웃 원자력 생산전기 사다 대부분 전력 충당한다는 이야기 거짓뉴스라고 말한걸 들은기억이 있어서요.
기사로 나온 내용을 찾아보니 2024년 시사인 기사에, 우크라이나 전쟁등의 이유로 2023년에 독일이 2.5%전력을 수입했고 그중 35%가 원자력이라 하네요. 2023년 기준 2.5%의 35%수입도 국가간 님비라고 보지 못할 바는 없겠으나..
21년,22년의경우 프랑스에 독일이 에너지 수출했다는 기사도 있네요.
독일의 사례가 참조점이 될 수는 있겠으나, 한국과 독일의 상황이 다르기도 하구요. 독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국민들이 탈핵을 주장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참고로 태양광은 대량송전보다는, 그지역에서 생산 그지역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전력생산량도 들쑥날쑥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