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
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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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집 《월영시장》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팬이 되어볼까 싶어 이이가 쓴 장편소설을 더 읽어보자 해서 고른 책이 <그 변기의 역학>과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 이 중에서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을 먼저 읽었다. 살인적 농담에 정말로 살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특목고 수학교사를 몇 년 하다가 대책없이 사표를 던진 후 글도 쓰고, 복싱도 하면서, 김포공항 근처 서울 서쪽의 맨 끄트머리에 낮은 청년지원 어쩌구저쩌구 아파트를 얻어 살며, 말을 최대로 줄인 채 음침하게 사람들을 염탐하며 사는 작가. 남들 눈에는 멋있어 보일 수 있다. 인생의 괜찮은 정규 코스라고 할 수 있는 명문대 졸업, 특목고 수학교사 때려 치우고 복싱을 하는 소설가. 그런데 딱 거기까지. <예술에 관한 살인적 농담>을 읽어보면, 문제는 소설을 쓰고, 복싱에 매진할 수 있기 위한 필요조건을 설재인은 갖고 있지 못했다. 아니지, 작가가 되려면 필요한 자질은 가지고 있어 보이니까 필요조건은 만족시켰지만, 충분조건을 못 갖췄다고 말해야겠다.


  저 경상남도 끄트머리, 오지 중에서도 오지, 가난하면 산과 물이라도 좋아야 할 터이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뭐 하나 그럴듯한 경치도 없어서 그저 허덕허덕 대는 깡촌 X면 당롱리. 여기 출신 여성 한 분이 혼인을 해서 딸 아람이를 낳았는데, 얼마 살지 못하고 갈라섰다. 요즘 이혼이야 선택 사항이니까 그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아람이의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도 도무지 아람이를 기를 마음이 없어서, 일단 양육비를 쓰고 싶으니 양육은 엄마가 하는 걸로 하고, 엄마는 어린 아람이를 당롱리에 사는 자기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한테 휙 던져두고 자기 살 길 찾아 사라졌다.

  가만 보면 엄마가 외할머니를 닮았던 것. 외할머니도 외손주한테 정이 1도 없어서 거의 방치하는 수준으로 밥만 먹여주었는데, 아람이가 그나마 똑똑해서 자기가 알아서 한글 깨치고, 책도 읽고,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까지 했다. 외할머니 속에 고등학교는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았는데, 당시 마을의 젊은, 그래봤자 환갑을 넘은 이장이,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할 극한의 경상도 사투리로, 아주머니, 요즘에 고등학교 안 보내면 크~은 일 나요, 협박을 하는 바람에 면에도 없어서 군에 있는 고등학교를 보내주어 다녔던 거다. 아람이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연극부에 들어 남의 인생을 원 없이 살아내는 배우가 하고 싶었고, 그리하여 연극, 영화 쪽으로 우리나라에서 캡을 먹는 A대학에 수시 합격했으나 당연히 외할머니가 아무리 알부자라 하더라도 등록금을 내줄 턱이 없어서, 날을 잡아 할머니 장롱 속 현금 서랍을 통째로 훔쳐 그 길로 인서울도 아니고 경기도 모처로 날아가 연극, 영화로는 우리나라 탑 급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바닥인 A대학 입학금과 동시에 등록금까지 내고, 시골 출신이며, 예술고등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며, 예체능 준비학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건 물론이며, 사방팔방으로 자기를 돌봐줄 부모 친척 한 명 없는 천애고아 바로 근처 수준이라는 열등감을 견뎌가며 친구가 딱 한 명뿐인 채로 하여간 졸업을 했지만, 수천번에 이르는 연극, 영화 배우 오디션에 바나나 껍데기만 밟아 결국 20대 꽃 청춘 시절을 C쇼핑 회사의 서비스 센터, 즉 콜 상담원을 하면서 먹고 사는 신세였다. 지금은 그렇게 어영부영 서른 살이 됐고.

  이 아람이가 대학 다닐 때, 원로 극작가이자 우파 정권에 부역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간이 학과장을 하고 있었는데, 돈 많고, 자식 농사 잘 지은 학과장님께서 강의 도중 직접, 예술가가 되기 위한 충분 조건에 대한 말씀을 하시었으니 그걸 요약하자면:


  대대로 예술가란 든든한 후원자를 뒤에 두고 있어야만 생존하여 걸작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날 때부터 대단한 천재를 가진 인물이 각 장르마다 한 명쯤 있었지만, 그들 마저 왕족, 귀족, 아니면 부르주아의 단단한 지원이 없으면 곤란했을 터인데, 하물며 그냥 조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야 어떠했겠느냐. 걸작은 천재들뿐 만 아니라 이런 보통 재능의 손에서도 나왔다. 보통 재능이 걸작을 만들기 위하여는 무지막지한 시간을 필요로 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오직 예술 창작에 투자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연 오백파운드의 수입이 없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예술가도 먹고 싸는 일은 보통 사람들과 같으니까. 그리하여 21세기의 예술가들도 돈. 돈이 없으면 예술이고 걸작이고 아예 처음부터 가능하지 아니하다.


  이 책을 쓴 설재인도 이 학과장님 말씀에 조금 공감을 했던 모양이다. 2019년에 데뷔하여 2026년 8월 말까지 모두 서른네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아마 설재인은 이노무 “든든한 후원자”를 두지 못한 거 같다. 그러니까 1년에 4.8권, 근 다섯 권의 책을 내는 엄청난 다작을 감행하고 있겠지.

  이렇게 심하게 창작 노동을 감행하고 있는 걸 보면, 사는 이유를 몰라 그냥 대책없이 사직서 던진 어딘지 모르지만 특목고 수학교사 자리를 괜히 때려치웠다는 후회도 아주 가끔을 할 듯하다.


  그건 그거고 작품의 주인공이자 C쇼핑의 콜서비스 직원인 아람이는 오늘 개 진상 고객과 전화면담 한 건을 치뤘다. 반려견 사료에 하자를 제기한 고객.

  “아 그러세요 고객님, 그럼 언제부터 ‘퍼피러브’ 사료를 반려견께 급여하시기 시작하셨어요?”

  “받고 나서부터요.”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오늘이 6월 30일이니 이미 일 년이 넘게 지났는데요, 개봉한 지 오래된 사료는 반려견들께서 선호하지 않을 위험성이…”

  “아니, 그런 거 생각하고 팔아야지 왜 내 탓을 해, 이년이, 장난해?”

  아무리 콜 서비스가 험한 일이라도 아람이 기분이 더럽겠지? 더구나 오늘이 자기 생일날인데. 저런. 그래도 이제 연차가 쌓여 이런 사소한 진상들 정도는 가뿐한 수준. 팀장의 꼬나보는 눈치도 깔끔하게 외면한 채 당연히 칼퇴근하는 아람이는 곧바로 중고등학생들의 입시 컨설팅을 하는 소을이를 만나러 술집으로 향한다. 휴대전화를 통해 듣는 소을이는 벌써 한 잔 하고 있는 중이다. 얼음 바스켓에 칠링한 사케 한 병 순삭. 약속한 일식집에 가서 보니, 깔린 메뉴가, 육사시미, 나가사키 짬뽕, 게살 고로케, 휘황찬란한 샐러드. 아오, 이 정도면 콜서비스 노동자가 즐길 만한 식탁이 아니다. 아휴, 몰라. 오늘은 생일이라고 돈 잘 버는 소을이가 쏜다니까.

  소을이는 A대학 연극영화과 동기동창. 처음엔 배우를 하기 위해 연기 전공으로 갔다가 나중에 극작으로 방향을 바꾼 친구인데, 졸업 후에 먹고 살 것이 없어지자, 아람이는 콜서비스, 물론 많고 많은 오디션에 떨어지고, 아무리 우리나라 탑급 영연과라고 해도, 대다수가 자기처럼 지원하는 오디션마다 떨어질 줄 모른 채 거의가 여전히 부모한테 빌붙어 사는 형편이지만, 빌붙은 부모 없는 아람이가 억지로 구한 직장이 쇼핑센터 콜 서비스였던 반면에, 역시 소녀시절부터 가난에 절어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소을이는, 연극 영화예술에 목을 매는 철부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 자신이 걸어온 연극 영화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가시덤불 속인지 컨설팅하여 예술인, 즉 딴따라의 길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국영수 공부에 매진해 특목고나 스카이에 갈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에 투신, 말 그대로 떼돈을 벌었고, 지금도 방 세 개짜리 오피스텔에 사신다. 그러니 유일한 친구 아람이 생일이라고 이정도 밥이야 한 끼 못 사겠는가.


  이날 둘은 완전히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퍼부었다. 아람이 정신을 차려보니까 역시나 소을이 오피스텔이었는데, 뭐 자주 있는 일이니 그건 아무렇지도 않건만, 진짜 문제는 어제 취중에 받았던 단톡방 메시지였고, 거기다 이람이가 다시 보낸 답글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진다. 원룸 건물에서 다섯 방을 소유한 시골 할아버지가 자택에서 백골이 된 채 발견되었는데, 다섯 방 가운데 한 명의 남자 세입자가 결혼을 앞두고 이사를 하기 위하여 보증금을 돌려달라 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 본인이 직접 그 시골로 운전까지 해 가서 알아낸 것으로, 이 죽은 방주인은 통장에 딱 2,390원만 들어있고, 자식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살아, 그까짓 시골 집 때문에 귀국할 마음이 1도 없어서, 재산은 전부 국가 귀속 예정이다. 국가 귀속에 이은 전세금 반환까지 가려면 그 세월이 얼마랴. 잔뜩 초조해진 세입자가 단톡을 연 건데, 문제는 그 남자를 제외한 네 세입자는 전부 월세. 아람이 경우엔 보증금 백에 월세 삼십.

  더 큰 문제는 나머지 네 명의 월세 세입자는 속으로, 그럼 삼개월 동안 월세를 안 내면 대강 보증금을 깔 수 있고, 이후에 정산이 끝날 때까지 월세 없이 공짜로 살 수 있겠네? 하는 거였는데, 그걸 누가 제일 먼저 이야기했느냐 하면, 완전히 꽐라가 되어 다음날 아침 정신이 들어서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우리의 아람이었는데, 그는 단톡에 이렇게 썼던 것이다.

  ‘저눈 저운데요 월세 안내두되닉가’

  ‘평샹 살검데’

  ‘이사안ㄱㅏ’

  ‘지상층ㄱ기리알아ㅅ 해여 번지하층은 ㅁ멀라’

  아람이가 총대를 메고 나는 좋다, 월세 안 내도 되니까, 평생 살 건데, 이사 안 가고, (아람이는 반지하에 사니까) 지상층에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하자마자, 단톡 개설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월세 세입자도 싹 안면몰수 한 거다. 이러니 새신랑 후보가 미치겠어, 안 미치겠어?

  그는 그 길로 반지하에 내려가 아람이 사는 방문 앞에 휘발유를 확 뿌리고 불을 싸질러버렸고, 기적 비슷하게 불길은 전 원룸 건물로 번지는 것 같다가 딱 반지하 아람이네 집만 까맣게 태워버렸고, 새신랑은 결국 예식장 대신 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되었으며, 이 소식이 전국 SNS를 통해 아람이의 실명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뺀 나머지 모든 SNS계정이 백일하에 드러나 거국적으로 망신을 당해야 해서, (사실 여기까지만 과연 설재인이야, 아무나 ‘재인’이란 이름을 함부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닌가비여, 코미디는 재인이가 해야 제 맛이지, 이렇게 감탄하도록 재미나게 읽힌다.) 입시 컨설팅 중에 고1짜리 특목고 학생을 꼬드겨 중퇴하게 만들고, 예술대학 대신 밑바닥 세계여행 유튜버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방 세 개짜리 오피스텔에서 동거까지 하는 바로 그 소을이네 집에서 두 달 동안 안면몰수한 채 머물게 되면서 사건은, 진짜 살인사건, 둔기로 해골바가지를 깨뜨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


  안타깝게도 후원자가 없어서 일년에 다섯 권의 책을 내야 했던 설재인의 비교적 최신작. 가지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참 알뜰하게 챙겨 책 한 권을 만들어, 《월영시장》으로 잔뜩 기대에 부풀게 한 내 마음도 뒤꿈치로 팍팍 잘도 조져 놓은 책. 좋다. 한 권만 더 읽어보겠다. 그게 마지막 설재인이 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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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10-2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뽈님의 독후감에서 별2개를 볼 줄이야!! ㅎㅎ 항상 후하게 평가하시는데, 별 2개면 뭐....ㅎㅎ

Falstaff 2026-10-29 19:11   좋아요 0 | URL
에휴, 그렇게 됐습니다. 한 권 더 읽고 나서 보태겠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6-10-2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부분까지만 자세히 적어두셔서 그런지 재밌어 보이는걸요 ㅋㅋㅋㅋ
 
모옌 기담집 - 기기괴괴한 열한 가지 이야기 ㅣ 글항아리 기담 시리즈 3
모옌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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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만에 모옌의 책을 읽었다.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우치다 햣켄, 나쓰메 소세키에 이어 세번째로 출간한 기담집이 《모옌 기담집》이다. 아직 우치다 햣켄과 나쓰메 소세키의 기담집은 안 읽어봤다. 우치다는 모르겠고, 나쓰메 소세키는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모옌과 나쓰메, 시대는 다르지만 동양 문학의 두 거장의 기담집이라. 모옌은 그의 전작을 감안하면 기담,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옛 이야기를 스스로 지은 것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 모옌의 기담집을 읽으면서 떠오른 나쓰메 소세키가 쓴 기담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조밀조밀한 인간의 내면의 묘사를 주특기로 하는 나쓰메 선생이 엽기발랄하고 간혹 참혹, 잔인하기도 한 기담을 어떻게 썼을 지 궁금해졌다. 그만큼 모옌의 기담 적 입담 읽기가 즐거웠다는 뜻이다. 하긴 모옌의 입담을 따라갈 소설가가 세상에서 몇 명이나 있겠어?

  모옌이 어린 시절, 배고픔과 외로움을 빼고 자신한테 제일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바로 두려움이었다고 서문 격으로 쓴 “두려움과 희망” 첫 머리에서 밝혔다. 모옌은 그의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산둥성 가오미시 둥베이향에서 나서 스물한 살까지 산 농촌 출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기는 산과병원에서 났지만 도시의 어둔 골목 안의 집에서 산 내 정서와 많이 닮았다. 희망은 모르겠고, 두려움이. 물과 산과 평야가 두루 펼쳐진 둥베이향과 오직 도로와 어둔 골목뿐인 서울의 고만고만한 동네라는 차이가 모옌에게는 희망이라는 깊은 인상을 갖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일 수 있고.

  모옌과 내가 자란 (전쟁 끝나고 10년도 되지 않았던)시절, 특히 유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 건 책도, TV도 아닌 이야기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리하여 쟤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그걸 빌미로 네가 옳으니, 내가 맞느니 어린 마음에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모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주로 다른 생명체, 범, 곰, 여우, 늑대, 닭, 멧돼지, 지네 등 다양한 벌레, 거북이, 남생이, 자라, 잉어, 붕어를 비롯한 수생동물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어둠이 내려와 지평 위에 깔리면, 사람살이의 경계를 넘어 들어와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고, 심지어 악행을 벌여, 인간의 여성을 임신시켜 자신의 후손은 남기기도 하고, 몸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외연을 가지고 사는 일도 있고, 우습게 생명을 앗아 가기도 하는 등, 별의 별 내용이 다 있는데, 이게 또 아이의 귀를 통해 대뇌에 입력이 되면, 들은 아이들마다 다시 머리속에서 이야기가 재생산되어 다양한 버전으로 이화, 다툼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야기의 핵심은 어둠과 다른 생명체의 인간으로의 갖가지 변용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이었다.


  농촌에서 스물한 살까지 산 모옌은 이런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도시에서 자란 내 경우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던가, 이모의 손을 잡고 무심코 극장에서 본 우리나라 불멸의 고전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병풍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도금봉 여사의 머리 위에서 길고 괴기스러워서 끔찍한 검정 손이 내려와 여사의 쪽진 머리를 왈칵 움켜잡는 장면이 얼마나 경악스러웠든지,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무서움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점점 더 자라면서 <드라큘라(1958년작 “괴인 드라큐라”)>. <엑소시스트>, <오멘> 같은 공포물도 마찬가지. 이런 영화를 보고 동무들과 영화관 옆의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과 물만두에 빼갈 한 도꾸리씩 마시고 (그땐 중고딩들이 술 달라고 해도 한 번 째려볼 뿐 얼마든지 가져다주던 시절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도, 짙은 어둠만 깔린 외등 없는 골목에서 머리통이 180도 회전하는 악마의 변신이나, 악마의 현현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스러움에 등골에서부터 척추를 따고 오소소 소름이 돋던 기억이 있다. 아마 지금도 거리가 어둡고 골목에서 산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 늙은 지금도 말이다. 이런 것이 기억이고, 추억이고, 어린 시절의 각인이라서.

  모옌도 이런 두려움을 서문에서 이야기하기에, 이 책은, 모옌이 어린 시절에 듣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중국 산둥성 지역의 기담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실었거나, 옛 기담에 자기가 가필을 조금 한 것이겠구나 싶었지만, 아니다. 1번으로 실린 <보물지도>와 2번 <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까지는 작가가 고른 옛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내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으나, 3번 이후로 넘어가면, 아이쿠, 아니구나, 이 책의 기담은 옛이야기 스타일로 모옌 스스로 새롭게 쓴 현대식 기담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린다. 그럼 모옌은 왜, 21세기에는 이미 그 효용을 TV나 SNS, 휴대폰, 게임에 넘겨준 옛 이야기 방식을 가져왔을까?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밥상 머리에 앉아 할머니한테 들은 요정과 귀신 이야기, 가장 대중적이며 효용이 크기도 한 즐기는 방법인 이야기가 더 이상 아래 세대로 전승되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다가, 이제는 이야기의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자기 원래 이름 관모예管謨業를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莫言” 즉 글로만 말한다는 의미의 모옌으로 고친 사람답게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쓰기에 이른 거다.

  모옌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지금 일흔한 살인데, 여전히 귀신 이야기와 동화 속 변용을 연상하면 두려움을 멈출 수 없다고 하며, 이런 요정과 변신 이야기 속의 두려움은 어둠 속의 불빛처럼 앞길을 비추고, 두려움과 싸울 용기를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전해지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전승이 거의 끊긴 지금, 모옌은 자기나마 새로운 기담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설마 호랑이 고기 자셔본 분 안 계시지? <보물 지도>에는 다싱안링 산맥에서 백두산 수컷 호랑이를 잡아먹은 사람의 허풍이 나온다. 고기는 먹고 발라낸 수호랑이의 성기 길이가 1미터는 넘었는데, 말린 뒤에도 80센티미터나 됐고, 그걸 가지고 술을 담가 먹으면, 비아그라를 꽈배기라고 하면 그 창바이산(장백산, 백두산) 호랑이의 성기는 쇠몽둥이라면서 말이야, 호랑이고기 만두를 의지가 약한 남자가 먹으면 백이면 백 사고를 치게 돼 있어. 난 사고는 안 쳤지만 온몸이 증기기관처럼 달아올라 할 수 없이 친구가 하라는 대로 헤이룽 강의 1미터 두께 얼음을 깨고 그 속에 알몸으로 뛰어들었어. 강 위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서 운운. (p.23)

  모옌의 입담은 경악 수준이다. 이게 두어 페이지 분량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인용한 것만 슬쩍 읽으면 진짜 입담의 맛을 알 수 없어 아쉽다. 두번째 작품 <살구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늑대>에서는 늑대 고기의 효용을 소개한다. 부위를 두루두루 소개하지만 여기선 내장 부분만 조금 옮겨본다.


  “늑대 소장은 부추랑 같이 볶으면 오장육부를 싹 청소해주고요, 시멘트 공장 노동자들이 그걸 한 그릇 먹고 싼 똥은 바람만 쐬면 돌덩어리처럼 굳어서 망치로 쳐도 안 깨진다니까요. 그리고 늑대 항문은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황주에 타서 먹으면 치질에 끝장입니다. 밖에 난 치질이든 안에 난 치질이든 아주 뿌리까지 치료해서 절대 재발하지 않아요. 늑대 방광은 또 어떻고요? 거기에 연밥을 넣고 고아서 먹으면 아무리 고질적인 요실금이라도 단박에 낫는답니다.” (p.108~109)


  이것도 이렇게 짧게 인용하면 진짜배기 맛의 1할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바라노니, 만일 모옌의 끝판까지 가는 입심을 제대로 즐기시려면, 그냥 팍 읽어버리시라. 세상에 둘도 없는 입심일 터이니. 물론 1번과 2번 작품이 재미로 치면 제일이지만, 이후 작품이야말로 모옌이 시도한 현대식, 도시형 기담이라서 오히려 앞의 작품보다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만일 이런 기담이 모옌이 서문에서 주장한대로 아직도 효용이 있다면. 그건 더 생각해볼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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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6-10-28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기담집 재밌어요!! 우치다도 읽을만합니다. 모옌 기담집은 읽으면서 역시 중국인들은 뻥이 심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ㅋㅋㅋㅋ 삼국지 보면 맨날 백만대군이잖아요 ㅋㅋㅋㅋ 말씀처럼 저 늑대고기 이야기 하는 거 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한 마디씩 얹는 게 갈수록 과대포장.... ㅋㅋㅋ 요재지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본, 한국, 중국 기담이 참 달라요. 정말 신기합니다. 그 분위기라는 것이.

Falstaff 2026-10-28 18:21   좋아요 1 | URL
앗, 그래요? 소세키 기담집 얼른 읽어야겠군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 국립극단 희곡선
이용훈.윤미현.김정윤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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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1957년부터 시작했다는데, 연도별로 수상작을 책으로 펴낸 것은 《2024 창작희곡공모 선정작》과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두 권인 것 같다. 이렇게 늦게나마 연도별 공모작 수상작을 책으로 남긴 일이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만시지탄도 감출 수 없다 2025년 희곡공모에는 모두 175편의 희곡이 응모하여 당선작 이용훈의 <모노텔>과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 윤미현의 <옥수수밭 땡볕이지>,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를 선정해, 2026년에 국립극단에서 책으로 발간했다. 국립극단은 전에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젊은 극작가들을 발굴해 《희곡우체통 낭독 희곡집》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2019 펜데믹 때문에 2020년 낭독회 자체가 무산되어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한다. 그저 짐작이다.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매년 희곡공모가 이어지고 결과를 남기는 일은 의미가 깊다. 아무쪼록 끊기지 않고 계속 희곡공모와 희곡선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당선작, 이용훈 작 <모노텔>.

  모노텔은 경기도 서북쪽 국도에서 살짝 들어간 은밀한 곳에 있는 모텔이다. 20년 전에 전국적으로 시골 땅값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업종 가운데 하나가 모텔이었다. 그동안 팬션이나 자연휴양림, 기타 게스트하우스 등의 발달로 이제 모텔은 사양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희곡의 무대가 되는 모노텔도 이젠 도로보수 외국 노동자 등이 장기숙박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내국인 손님이 찾지만 전처럼 연인이나 불륜 커플은 드물고, 알코올 중독자가 몇 날 며칠 동안 아무 신경 안 쓰고 술을 퍼 마시거나,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를 맞거나, 정신 장애가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방’을 훼손시키려는 진상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

  한때 호텔 못지 않은 시설과 청결 등을 자랑한 모텔이 서서히 낡은 숙박시설로 변하는 도중에 모텔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평면 TV, 5G 와이파이 같은 장비도 들여놓고, 결제 역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세상에 지는 해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모텔 이름이 모노텔. 등장인물은 야간청소 노동자, 프런트 안내인, 주간 청소 노동자 부부, 알코올 중독자, 형사 두 명. 그리고 에필로그로 가면 다수의 군인과 유령이 등장하는데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내 의견으로는 에필로그, 완전히 뱀다리다.

  모노텔. 다른 등장인물 중에 ‘당신’과 ‘나’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텔에 온 것이라기보다 혹시 이것들 동반자살하려고 온 거 아닌가 싶다.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린다. 하여간 이 두 명을 제외하고 작품은 거의 대부분 모노드라마 형식이다.

  바로 앞에서 얘기한 커플 말고는 각 씬마다 한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몇 페이지에 이르는 독백을 한다.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지금의 모노텔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진상들과 종업원들 사이의 마찰이나 상호 불신감 등등.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별의 별 손님을 경험한 프런트 안내인과 청소 노동자들. 아무래도 모텔업이 전반적으로 사양 모드로 들어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띌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난장판과 우울. 재미있지만 밝게 재미있지는 않다. 당선작으로 뽑은 것에 불만 없다. 만일 에필로그가 없었더라면.

  왜 에필로그?

  이런 에필로그는 사족. 진짜 사족 중에서도 사족. 앞에 길게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우수상 수상작인 윤미현 작 <옥수수밭 땡볕이지>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 작품 속에는 1980년대 초반에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 출신 가족인 반쪽짜리 대문 집 어머니 가족과 당시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던 녹슨 대문 집 어머니 가족, 그리고 동년배이지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 대상으로 화장품 외판을 하던 빨간 대문 집 어머니 가족이 등장한다.

  짧게 말해서, 40년 전에 구로공단에서 힘든 노동을 하던 부모,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노동자로 살며, 천안 부탄가스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아들, 수도꼭지 공장에서 오른 팔이 잘린 아들, 직장 내 상습적 성희롱으로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딸을 내세워, 가난의 세습, 힘든 노동이 대를 이어가는 절망의 현재를 그려낸다.

  정말 가난은 절대로 세습되는 것일까? 세월이 조금 바뀌어 지금은 지도층 계급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 계급을 세습해주기 위하여 제도조차 자기들 입맛에 맞추려고 하고 있고, 이것이 가난의 세습보다 더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인데. 202X년에는 극빈의 상태에 처한 최하 계층을 제외하면 어떻게 해서든 상위계층에 진입할 “바늘 구멍 만한” 기회가 있기는 있다. 윤미현은 그 바늘 구멍 만한 기회에는 관심이 없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자기들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지도층 계급의 비겁함 정도는 함께 말을 해주었어야지. 증거가 있냐고? 있지만 그만 하자.


  다른 우수상 수상작,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

  연애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작품. 연애는 연애인데 남성 동성애. 연애 이야기는 결국 이별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주인공 심진원의 직업이 요리 연구가이다. 어떻게 연구를 하느냐 하면, 특정 요리에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전에 먹었던, 먹어봤던 음식의 재현을 의뢰하면 요구한대로 그 음식을 재현해주는 일이다. 쉽지 않을 일. 어쩌면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먼저 의뢰인이, 자신이 다시 맛보고 싶어하는 음식의 맛을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 몇 가지와, 그것의 강약 정도로 미각을 설명하고, 그 미각을 띄게 만드는 이름을 모르는 재료까지 설명해야 할 터인데, 이건 음악이나 회화를 문자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더불어 진원의 연인 승주의 관계. 승주는 게임 프로그래머. 그래서 작품 내내 게임과 관련한 묘사가 나오는데, 나는 게임 동네 언어는 거의 백치 상태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헤어진 연인 승주에 대한 기억 또는 추억, 그리고 애정을 빌미로 한 친절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간섭. 읽어볼 만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희곡도 괜찮은 수준이다(아쭈? 지가 뭐라고.). 읽을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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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5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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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렌 크리스텐체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은 영어권에서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타니아 블릭센 등 여러 필명을 썼다고 한다. 이이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롱스테들룬트에서 출생해서, 지금도 이이의 “카를 블릭센 박물관”이 룽스테들룬트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모양이다. 아버지는 부르주아 지주가문 출신의 작가, 군인,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선주船主 가문 출신으로 부르주아 유니테리언 상인의 딸이었다.

  지적이고 보수적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위스콘신에서 치페와 원주만과 잠깐, 1년 반 정도 살기도 했다는데, 거기서 뭔 짓을 했는지 그 새에 딸을 하나 두었고, 귀국할 때는 맨손으로 올 수 없어서 몸 안 가득 매독균을 가져왔단다. 집에 와서는 하녀와의 사이에 혼외자 한 명을 낳아 세계 인구증가에 이바지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자신의 장모와 아내에 계속 충실하겠다고 다짐해서 충격을 주었다는데, 위키피디아에 영어로 쓰인 ‘mother-in-law’라고 썼으니,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 즉 이자크 디네센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하녀와 하녀의 엄마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한 내가 짱구였다. 나는 잠깐 헛갈렸지 뭐야? 하여튼 매독으로 인한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빠는 이자크, 즉 카렌이 아홉살이던 1895년에 쉰 살의 나이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숟가락 놨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아기 입에 은수저가 물려 있었던 이자크는 아빠가 죽은 후에 엄마하고 외갓집에 가서 확실한 유니테리언 정서 속에서 본격적인 부르주아 숙녀로 성장해가며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열세 살이던 1898년에는 스위스에서 1년 동안 프랑스말을 배웠고, 열일곱 살 때 코펜하겐에서 샬롯 소데 미술학교, 1903년부터 3년 동안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20대 중반에는 학문의 외연을 키우기 위하여 파리, 런던, 로마에서 공부했단다.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은 부계쪽으로 사촌의 가문이라고 나와있다. 유럽 종자들 족보는 좀 이상하다. 그러면 이자크 디네센도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튼 이자크가 사촌 한스를 좋아해 안달을 했지만, 한스가 눈길 한 번 안 주는 바람에 잔뜩 열을 받은 이자크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쌍둥이 형제 브로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한테 안다리 후리기, 진한 관계를 맺어 ‘닭 대신 꿩’을 낚았다.

  워낙 큰 부르주아 가문이라서 이 집안의 재산은 세상 곳곳을 통해 나날이 불었는데, 한스 대신 브로드와 결혼한 게 조금 걸렸는지, 연인은 덴마크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며, 일단 가문에서 커피 사업에 투자한 케냐 몸바사로 가서 1914년에 결혼신고를 해 카렌은 본격적으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의 자리에 올라, 이혼을 거쳐 남편이 재혼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남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즐겼다. 그러면 뭐해? 결혼 1년 후인 1915년 남편 블릭센 남작이 장인을 본받아 덜컥 매독을 옮아와 부부는 이후 수은치료에 이어 비소 치료를 받았고, 이 영향 때문에 이자크는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야 했던 것을.

  이후 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곤란한 개인사를 엮었더라도 당시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한 복지를 누렸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자. 하여튼 케냐에 살 때 경험한 건 우리나라에 이자크 디네센이 아니라 카렌 블릭센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써서 엮었다. 그렇게 한 세상 잘 살다 간 부르주아 소설가.


  《바베트의 만찬》은 중단편 다섯 작품이 실린 소설집.

  이자크 디네센은 당시 유럽 문학계가 알아주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던가 보다. 읽어보니 그럴 만하겠다. 진짜 재미있게 구성으로 그걸 또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단, 20세기 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읽으면 어떠냐고? 물론 재미있다. 근데 작품들이 성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초년생 정도가 읽으면 아주 딱일 듯하다는 말씀.

  이 이자크 디네센은 소설가로 나름대로 조금 불리한 입장이기도 했다는데,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몇 번인가 이이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던 “스칸디나비아 작가 우대” 또는 편향의 의심을 떨치기 위하여 최종 결정자를 뽑을 때는 디네센을 제외했다는 풍문이(겠)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몄다. 그러나 지금 읽어보면 중학생 수준으로.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걸 넘어서 화를 내는 분도 있을 터이지만 한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

  《바베트의 만찬》의 표제작 <바베트의 만찬>이 이자크 디네센의 대표작이라고 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나 이이가 죽고 34년이 지난 1996년이라 원작에 대한 저작권료는 누가 챙겼는지 몰라? 하여튼 그리하여 오늘 독후감은 중/단편 <바베트의 만찬>만 읽어보는 걸로 하겠다.


  작품의 무대는 노르웨이 작가들이라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숱하게 무대로 삼은 피오르 지형의 바닷가에 오종종한 집들이 원색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 이 동네를 ‘베를레보그’라고 하자. 이 가운데 노란색으로 단장한 제법 큰 집에 나이 많은 두 처녀 자매가 살았으니 둘 다 키 크고 늘씬한 몸매를 평생 회색과 검은색 드레스 속에 감추고 다녔다. 워낙 단정한 옷차림이어서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 이들 가운데 언니가 마르티네, 동생이 필리파. 적어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독실한 교파를 일군 목사이자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결혼해서 딸 둘을 두었더라도 두 딸은 남자한테 손목 한 번 잡혀보지 못할 삶을 살게 만든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했을 터. 그의 주장은,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해서 진정한 현실은 오직 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있다고 굳게 믿어, 세속의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 그럼 됐지, 뭐하러 늘그막에 결혼을 해 딸 둘을 두었느냐고? 이런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떴고, 숟가락 놓자마자 중심을 잃은 신도들은 서로 질시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고, 미워하고, 떼를 지어 무리끼리 대놓고 싸우면서 흐지부지 되었어도 그러나, 여전히 자매의 노란 집에 모여 계속 성경을 읽고 있기는 하다.

  12년 전, 비오는 깜깜한 밤. 노란 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을 열어보니 비탄과 공포에 떨며 갈 곳 없이 헤매는 도망자 여인이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이를 집에 들여 몸을 추스리게 한 다음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여자의 이름이 바베트. 분명 작은 노란 집에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큰 체격의 프랑스 식 미녀. 바베트는 자신이 요리를 좀 할 줄 아니까 하녀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 만하면 된다고. 자매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저 잡안의 잡일만 해오던 나이 어린 동네 꼬마를 집에 보내고 대신 바베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이렇게 산 것이 12년 세월이니 이젠 서로 알 건 다 알겠지? 이 가운데 하나가 바베트한테는 자동 발행되는 로또 복권이 한 계좌 있다는 것. 자주 말하기를, 언젠가 이 복권이 맞기만 하면 1만프랑 이상의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란 집의 늙은 자매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소설 처음 보나? 저 뒤에 가면 정말로 복권이 맞아 작품이 뒤집어지겠는 걸? 이런 꿍꿍이를 하기 시작한다. 권총이 나오면 언젠가는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듯이, 이자크 디네센이 괜히 복권 이야기를 한 건 아니잖아?


  자매가 젊은 시절에는 둘 다 미스 스칸디나비아 진 수준의 미녀였다. 하도 아름다워서 피오르 지역에서는 자매를 채 갈 남자는 없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그냥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 살면서 한 번도 인연을 만나지 못하기도 쉽지 않다.

  먼저 등장한 남자가 로렌스 로벤히엘름 중위. 바깥 세상에서 온 경기병 장교. 하도 골통짓을 해 빚더미에 올라 열받은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시집간 시골마을 포숭으로 보냈는데, 거기가 베르레보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것. 로벤히엘름 중위는 온갖 공을 들였지만 기어이 언니 마르티네한테 딱지를 맞고 정신을 바짝 차려, 군기도 바짝 오른 상태로 부대에 복귀한다. 이후 건실하고 용맹한 군인으로 변신해 줄기차게 승진을 거듭, 덴마크의 훌륭한 장군이었다가, 명예로운 퇴역장군으로 늙어간다.

  두번째 방문자는 당시 마흔 살이던 파리의 유명 오페라 가수 아실 파팽. 그가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1주 공연을 마치고 주위 권유로 노르웨이 해안가에서 쉴 목적으로 온 곳이 베르레보그. 여기 교회에 갔다가 둘째 필리파가 놀라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뽑아내는 성가를 듣는 순간, 사랑을 느끼면서 목사에게 특별 성악 레슨을 제안해 받아들여진다.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와 야생화, 북유럽의 백야가 담긴 여인의 음성이라니 최고의 수식은 다 모인 거다(키르스텐 프라그슈타트?). 그러나 아실 파팽 역시 평생 숫처녀로 지낼 각오로 충만한 필리파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남은 건 뭐? 그렇지! 바베트의 복권 당첨. 드디어 터졌다. 이제 자매는 바베트가 큰 돈을 얻었으니 틀림없이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바베트는 파리로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 돈으로 직접 만찬을 열어 그동안 보살펴준 자매와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겠다고 뜻을 전해 받아들여졌다.

  피오르 지역의 만찬이래봤자 대구 요리와 청양고추 넣고 끓인 대합탕 정도겠지. 이렇게 생각했을 터. 하지만 바베트는 전직이 파리에서도 최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부르주아 중에서도 최 상류 부르주아들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니 세상에나. 나폴레옹 3세 말기, 프랑스 코뮌 시절에 코뮌 그룹에 동조해 바리케이트에 올랐던 일 때문에 전국에 지명수배되어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까지 도망했지만 정작 직업은 정치적으로는 반대했던 부르주아의 혀를 위한 요리사였던 것. 이런 바베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뻑적지근한 만찬을 꾸몄어도, 노르웨이의 한적한 바닷가, 가옥이라고 백 채가 될까 말까 한 코딱지 만한 마을의 촌 사람들이, 바베트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든 고급 요리를 먹고 그게 좋은지 아닌지도 몰랐던 만찬.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날의 손님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포숭의 고모댁을 방문한 덴마크 장군이 있었으니, 누구나 존경해마지않는 로벤히헬름 장군이었던 것. 그는 식전주가 세상에서 제일 최고급이라는 것을, 수프 역시 파리에서도 쉽게 맛보기 어려운 바다거북으로 만든 것임을, 케비아가 덩어리 채 식탁에 놓였으면서도 색깔 때문인지 손님들의 포크가 여간해 닿지 않았다는 것 등등, 모든 음식을 이해하고, 먹어본 적이 있고, 심지어 파리의 어느 식당의 주방장 누가 만들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겸손한 어조로 고마움을 얹어 이야기한다. 마음 속에서 여전하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사랑하다가 죽을 첫사랑 마르티네에게.

  그러면 바베트는? 이튿날 덴마크를 거쳐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랐을까? 오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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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소설가
임현 지음 / 창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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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에 전남 순천에서 나서 전남대 국문과와 한예종 연극원을 다녔다. 2014년에 등단해 12년 동안 중편소설 1편과 단편소설집 세 권을 출간했고, 2017년에 문학동네가 주는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행복한 소설가》는 임현이 2021년부터 2026년 상순까지 쓴 단편을 모은 책.


  한예종 예술사(M.F.A.)를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이러네, 저러네 뭔 말이 많을 수 있을까? 오늘 독후감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쓰려 한다. 잘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는 임현처럼 쓰는 작가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영롱한 색의 거미줄처럼 섬세한 문장들이 대세를 이루어 이제는 단단하게 다진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글을 읽으면 반가울 정도다. 임현의 글도 그랬다. 반가웠다. 비록 글이 담은 서사가 예전 시절 같이 좀 큼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러나 나는 이 독후감에서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어쨌든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표제작품인 <행복한 소설가>에서 말한다. 작가에게 시간이 나면 하는 일: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목록을 확인하기도 하고, 몇해 전에 출간한 내 소설집에 혹시라도 새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나 찾아보며 실망하기도 했으며” (p.257)


  임현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낸 책의 독자 서평이나 댓글을 찾아보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작가들도 예외가 아닐 걸? 하지만 그걸 자기 스스로 찾아보고, 좋아하거나 실망한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솔직한 감상을 쓰지 않는다. 벌써 작가, 역자, 또 ‘엮은이’ 심지어 출판사 편집자나 직원한테 여러 차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괜히 피곤하게 신경쓰이는 피드백을 다시 받기 싫다.

  거기다가 임현의 작품은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간혹 심각하게 우울하고, 작품마다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자살에 실패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기가 낸 책의 독자 리뷰 같은 걸 꼼꼼하게 읽는다고 하면, 아이고, 거기다 대고 쥐뿔도 아는 게 없는 독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꾸 길어진다. 하여간 자기 글에 대한 평가를 찾아본다는 작가의 글에 대한 코멘트는 줄이는 게 상책이다.

  작품들이 마음에 든 편이다. 그렇다고 팍, 와서 꽂힌 정도는 아니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잘 생각한 거다. 임현은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반응한다.


  “누군가는 나의 문장들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게 또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혹스럽거나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딘가 답답한 마음에 혼자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릴 때도 많았다. (p.264)


  임선생도 쪼잔하게, 작품을 한 번 썼으면 그만이지, 그걸 독자가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는다고 별 생각을 다 하시네. 모든 독자가 자기 의도대로 읽어줄 걸 바랐나? 그걸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커지면, 독자리뷰에 비밀댓글 달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다. 그러지 마시라. 책 팔았으면 다음엔 책을 샀거나 빌려 읽은 사람 거다. 이후엔 괜한 참견일 뿐이다. 쓸 때 좀 더 잘 쓰면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작가질 하기 힘든 것이지 뭐.


  하나만 더 쓸까? 임현은 사람 또는 사회의식의 선악, 그 절묘한 경계선을 관찰하는 게 장기인 것 같다. 작품 속에 소위 의식 테스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갑과 노트북을 공원 벤치에 올려두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누가 훔쳐가지 않는지 관찰하는 거. 또는 진상 고객으로 분장한 전문 배우가 역시 종업원으로 분장한 전문배우한테 호통치고 급기야 종업원이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면, 이들 주위의 손님이나 행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테스트.

  나도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 이런 거 몇 번 봤다. 근데 볼 때마다 열이 뻗쳐 기분이 무척 상했다.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희들은 어떤 종자이기에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양심에 따라 행위하지 않은 피시험자가 있어서 그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건 어떻게 하고? 아니, 이런 건 전적으로 다음 문제이고, 도대체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나가는 자유인을 이리 욕보일 수 있느냐는 거다.

  임선생도 이런 거에 한 번쯤은 시비할 만했건만 그건 또 그냥 지나가버리더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잘 읽었다. 문장이 탄탄해서 좋았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을 관찰하는 시각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찾아 읽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건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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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23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셋은 아무래도 좀 박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넷은 주고 싶지 않은.... 내 맘대로.

2026-10-2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6-10-2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그 ‘테스트‘ 좀 불편하긴 한데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불편했던 이유가 도청 때문이었거든요. 저는 누가 제 말과 행동을 그렇게 계속 몰래 관찰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ㅠㅠ

저도 점점 별 넷이 기본이 되어갑니다. 배달앱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되네요. 별 셋이 나쁜 건 아닌데도 셋을 주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셋을 주기도 하는데 절대 나쁜 책이란 뜻이 아닌데...

Falstaff 2026-10-23 19:10   좋아요 1 | URL
그죠, 관찰 카메라라는 명목으로 몰래 테스트하는 거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같은 별 넷이라도, 차마 다섯 개를 찍을 수 없는 아까운 별 넷이 있는 반면에, 그냥 그런데 또 까기에는 좀 그런 별 넷도 있어서.... 물론 전반적인 별점 인플레이션이 대부분이고요.
근데 암만해도 여기가 책가게니까, 될 수 있으면 좋게 얘기하는 게 맞는 일일 거 같기도 해서 ㅎㅎㅎ 그거 참. 살면서 쉬운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