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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ㅣ 한국희곡명작선 36
정상미 지음 / 평민사 / 2021년 1월
평점 :
먼저 극작가 정상미. 1979년 7월, 서울 강남 출생. 이이의 프로필을 보면 “어울리지 않게 강남에서 태어났다.”라고 썼다. 막내 이모가 1979년, 당시 기준으론 상 노처녀, 서른을 훌쩍 넘기도록 결혼을 하지 않자, 강남에서 농사짓는 사내에게 시집갔다고, 불쌍하다고, 언니, 그러니까 정여사께서 눈물을 찔끔거리던 시절이다. 거기 가려면 앞으로 들어설 서초역 1번 출구부터 걸어서 ‘40초’씩이나 걸리는 저 무지렁이 시골 동네였다. (끝까지 땅을 팔지 않아 나중에 진짜 부자가 돼 아직도 돈방석을 깔고 앉아 산다.) 어울리지 않기는 뭐가 어울리지 않나? 사방에서 땅 위로 솟은 건 칠성사이다 입간판 하나밖에 없던 동네였는데.
하여튼 점점 자라서 추계예술대학 문창과에 진학해 소설을 전공한다. (그 여자 데려다주느라고 숱하게 가봐서 아는데) 161번 버스를 타고 굴레방다리 정류장에서 내려 공업학교 길 건너편 방향으로 쪽 올라가면 나오는 추계예대 문창과엔 장르별로 전공이 따로 있나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가 4강에 오르는 바람에 전국민이 우리나라 자체가 세계에서 4등쯤 하는 줄 알았던 200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한 4년 구성작가도 하고, 논술강사, 기자생활도 했다지만 번듯한 기자였다면 어디 기자였는지 밝혔을 테니 하여튼 그저 그런 기자 생활도 하며, 이때 아마추어 연극에 관여를 했다고 한다. 이러다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이 된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 극단 “문학좌 文學座”에 입단해 3년 동안 연출을 공부했었나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처음 써본 희곡 <그들의 약속>이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극작가로 등단한다. 에이, 설마 정말로 난생 처음 쓴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할 수 있었을까. 습작은 죽어라 하지 않았겠어? 나 좀 알아달라고, 발표한 첫 작품이란 뜻으로 이해 해야지. 근데 이 해, 2012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극작가 가운데 계속 극작을 해서 희곡집을 출간한 이는 아직까지 정상미밖에 없는 거 같다. 그러니 이이의 재능을 뽐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가뜩이나 극작가의 일을 시작한 것에 “혹독한 대가를 치루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사람한테. 그래도 정상미는 “극장을 찾는 이들이 잠시라도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말이지.
시중에 나온 이이의 책은 <낙원상가> 외에는 그림까지 포함해 50쪽에 불과한 작은 희곡집 <제발, 결혼>과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품집> 뿐이다. 이것들 외에 2014년에 공연이 이루어진 것으로 <내 마음의 슈퍼맨> 등이 있는 것 같다. 희곡 단행본 말고 예를 들면 좀 거창하게 ≪정상미 희곡집 1≫ 같은 걸 냈으면 좋았을 뻔했다. 뭐 사정이 있겠지.
<낙원상가>는 종로3가 탑골공원 노인들 이야기다. 할아비 셋과 할어미 둘.
장기풍. 76세. 이름에 어울리게 탑골공원 장기계의 고수다. 바둑, 장기 할 때 그 장기. 젊은 시절에는 단역 영화배우로 이이의 말을 곧이 믿자면 신성일보다 출연작이 더 많단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던 어느 날, 안방 옷장 구석에서 영화감독 주머니에나 들어 있을 지포 라이터를 발견하고, 그걸 모른 척했다. 아내는 장기풍이 모른 척하는 걸 모른 척하다가, 결국 당신이 하는 연기가 지겨워 못살겠다며 나가버렸다. 그래 자기도 단역배우 때려치우고 색소폰 연주를 배웠는데, 다 늦게 배운 가락이라 정말 죽기 살기로 연습을 해 겨우 단계에 올라, 미군부대 클럽부터 시작해 전국 각지에 안 가본 카바레가 없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토록 많던 카바레가 싹 사라져버려 이젠 쪽방에서 홀로 지내며, 나름 연예인이라고 쪽 빼 입은 차림으로 탑골에 나와 장기도 두고 기분을 낸다. 요새는 낙원 빌딩 문화센터에서 이문희라는 75세의 여인을 만나 왈츠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으며, 사랑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자기 신세가 좀 그렇다.
김주식은 79세. 맹호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 참전 용사다.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인헌 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아들 내외, 손주들과 함께 살지만, 말이 좋아 아들 며느리가 모시는 것이지, 부자지간 세대차이로 날마다 또다른 전쟁터다. 요즘엔 죽은 아내와 조상의 묘를 파헤쳐 화장해 산골을 하겠다고 아버지한테 날마다 대드는 아들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다. 이러니 탑골에 나와 장기를 두어도 마음이 즐거울 리가 없다. 어느 날, 원각사지 12층 석탑 근처에서 이말자라는 70대 할미를 만나 모텔에 대실을 하고 나오는 걸 훈수꾼 최만동에게 들킨다. 김주식은 이말자가 생긴 것도 곱고 마음도 착한 것 같아 은근한 생각도 들었지만.
최만동은 쪽방 보다는 좀 나은 곳에서 혼자 산다. 가족은 있으나 떨어져 살고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온갖 모멸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탑골에 모인 모르긴 해도 독거노인들에게 몇 백 원씩 푼돈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만동은 2백원, 3백원, 5백원, 천 원을 위하여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노인한테 무료로 제공하는 대중교통과 두 발로 씩씩하게 걸어다니고 있다.
75세 여인 심남순은 이른바 탑골 삐끼. 찻집으로 손님을 데려가 매상을 올려주면 찻값의 일정비율을 수수료로 받는다. 이를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이는 남자 노인을 상대로, 차 한 잔 마시러 가요, 커피 한 잔 사주세요,를 수없이 시도한다. 그래 영감들한테 얻어 마시는 커피, 생강차, 쌍화차 때문에 늘 위통에 시달린다. 물론 상대를 골라 가능하면 몸을 내놓기도 하지만 가끔은 늙은 자신의 가슴을 보고 ‘납작만두’라고 비아냥 거리는 치사한 노인도 있다. 그런 것들은 벗겨보면 어떻게 하나 같이 미더덕이나 오만둥이하고 닮았는지 말야.
역시 75세 이문희는 소위 박카스 아줌마다. 그러나 심성은 낭만파. 낙원상가의 문화센터에서 왈츠를 배우다가 색소포니스트 장기풍과 친해진다. 장기풍은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며 손주들은 해외유학중인 줄 안다. 그러니 집안 좋고, 말하는 거 보면 배운 거 많을 거 같고, 손주 유학 보낼 정도의 재산이면 그것도 괜찮고, 무엇보다 사람을 매혹시키는 인격이 있어, 가능하면 그와 사랑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몸의 매매를 전제로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장기풍은 분위기가 삼삼해지면 손주들이 귀국하는 날이라 가족끼리 식사가 예약되어 있다고, 터치를 삼간다. 그런 그의 몸가짐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오직 하나의 의심은, 장기풍이 한 말이 사실일까? 하는 것. 탑골에 나온 노인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전직 대기업 사장, 임원, 장군출신의 퇴역군인, 유명학교 교수들을 필두로 우리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왕년의 명사들이 모두 출동한 것 같으니.
그러나 정작 이문희는 가명. 한 시절의 명배우 문희의 이름을 따, 딱 그녀만큼의 삶을 살고 싶어 이문희라고 거짓 이름을 사용하는 박카스 아줌마로 본명은 이말자. 나중에 베트남 참전 용사 김주식과 모텔에 두 시간 동안 들었던 인물이다.
이 다섯 노인들이 펼치는 일상극. 애초부터 비극으로 준비했지만 정상미는 이를 가벼운 터치로 그려나간다. 하마터면 무거운 저기압이 팽배할 노년과 죽음의 시간이 인생이 뭐 다 그런 거지, 경쾌한 뽕짝 리듬을 타고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