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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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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구절을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몇 권 정도의 책을 소유하고 한 달에 몇 권 정도의 책을 구매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책을 본격적으로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대략 몇 권을 구입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사 모은 책들이 몇 권이 되는지는 모르고 살았던지라 질문을 받은 김에 책을 세어봤다. 만화책과 잡지를 포함해서 500권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책 속 장서가들처럼 만 권 단위의 장서가 앞에서 나는 그저, 이제 막 장서가의 걸음을 뗀 꼬마였다. 10년 넘게 사용해온 침대를 빼고 책장을 들였으나 책장은 금세 들어찼다. 비어있는 책장 칸에 한 권 한 권 책을 채워 넣는 일이 즐거웠다. 책장에 꽂지 못한 책들은 내 손이 닿는 곳 여기저기에 한 권씩 쌓여 탑이 되었고, ‘책 좀 그만 사라던 엄마는 더 이상의 잔소리를 그만두었다. 꼬마인 내가 이럴진대, 장서가로 손에 꼽히는 사람들은 정말 오죽할까 싶었다.

 

책을 읽으면 장서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창정궤 위에 책이 한 권 놓여 있고, 그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독서입니다. 읽고 난 책은 없어도 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재미있는 일이지요. 장서와 독서의 관계에는 모순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p.54)

 

해부학자이자 사상가인 요로 다케시가 한 말이란다. 정말 그렇다. 읽고 난 책을 없어도 될 텐데, 실제로는 어디 그런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아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영화평론가이자 만 오천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장서가 이동진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장서가 많은 건 아니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특별히 책을 모으게 되는 건데요. 책 다이어트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죠. 가뜩이나 집도 좁은데 넓게 쓰고. 근데 이제 책을 모으는 것 자체가 습관, 혹은 타고난 성향, 심지어는 유전자, 뭐 이런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이동진의 빨간책방 89회 중)

 

심지어 유전자 때문인지는 아직 실감한 바 없지만, 습관이나 타고난 성향 같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나 역시 책을 읽는게 일상, 습관이 되면서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속독 보다는 정독으로 책을 읽는 성향인지라 돈이 들긴 해도, 사서 읽는 쪽을 훨씬 좋아하다보니 꼬꼬마 장서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다. 사실 이 모든 걸 떠나서 그저 책이 좋다. 책 저마다의 무게, 책을 넘길 때 그 촉감과 냄새, 책이라는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같은 게 그저 좋은 거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저 활자를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데 투자하는 시간과 손길이 깃드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이런 저런 장서가의 이야기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서가는 나심심이라는 필명을 쓰는 독서가였다. 오카자키 다케시가 장서의 괴로움가운데서도 궁극의 사례라 꼽은 나심심군의 집에서 유일하게 책더미가 없는 곳은 이부자리였다. 지진이 나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온몸이 책 속에 파묻힐 정도로 책이 느는데도 책장을 사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책장 살 돈이 있으면 책을 샀기 때문이란다. 전체 수입 가운데 노는 데 쓰는 돈은 야구 관람 정도고 나머지는 거의 책 구입비에 투자하는 사람다웠다.

 

적당한 장서량은 지금의 내가 소장하고 있는 5백 권이라지만, 그가 말하는 열두 번째 교훈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자서적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서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어렵다.’처럼 종이책 사랑을 멈추지 않을 이상, 나는 적당한 장서량 5백 권을 넘겨 책을 소장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꼬마 장서가라는 타이틀을 벗고, 어엿한 장서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서 중 한 권이 될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넣고,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p.s. 동진님의 말처럼, 공감하며 이 책을 읽고 나면 장서량이 이제 또 한 권 늘어버렸다는 역설이 생기게 되지만 이런 책이라면 기꺼이 역설을 받아들이리라, 싶은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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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변주곡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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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에세이가 책의 제목처럼 밤 열한시에 읽기 좋은 책이었다면, 고백하건대 이 책은 자정을 넘겨서 세시나 네시 즈음에 읽기 좋은 에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작가의 전작 생각이 나서를 참 좋아해서 출간되는 책들을 꾸준히 챙겨 읽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집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작가의 감성이 변했다기 보다는 책을 읽는 내 감성이 변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게 되면, 여자는 남자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다르게 말한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p.15)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단단하고 부서지지 않는 사랑과 평화를 집 안에 가둬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바람 불고 햇살이 비치는 거리를 그리워한다. (p.17)

 

우리는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 살며,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사랑한 것은 각자가 만들어낸 허상.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점점 멀어지고 있던 거였다. (p.269)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던 잊지 못할 구절처럼, 그게 그렇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문장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심리를 문장으로 표현한 그녀의 글들을 참 좋아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그런 글보다는 좀 더 몽환적인 글이 많아서 읽기 어려웠던 것 같다. 지난 책들로 그녀의 감성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한 것도,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힘겹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글의 다양하다면, 반응도 다양한 법이니까.

 

위에 좋아하는 구절을 모아봤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구절이다.

 

약간 변명 같지만 그때만 쓸 수 있는 글도 있다고,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때의 글이 지금의 내 성에 차지 않아도, 뭐 별로 상관없지 않나, 지금도 흘러가는 인생, 이다. (중략) 이제와서 족해도 부족해도, 언젠가 존재했던 마음이고 기억이다. 그러니 그건 그것대로 소중히, 작은 그릇에 담아 선반 위에 올려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의 힘으로 인해 여전히 흘러가는 인생, 이다. (p.308-311 그리고 남은 이야기 중에서)

 

이 구절을 구절대로 공감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약간 변명 같지만 그때만 읽을 수 있는 글도 있다고,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쁘지 않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때의 글이 내 성에 차지 않아도, 뭐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겠다고. 작가의 말처럼 지금도 흘러가는 인생이며 나는 내일도 또 다른 글을 읽을 테니까. 애석하게도 나와는 맞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겐 아주 잘 맞는 책일 수도 있다. 내게도 그런 책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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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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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등 뒤엔 천 개의 엇갈린 기억이 존재한다는 문구를 내세운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 미스터리 등 뒤의 기억은 감성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이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 히나코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물론, 히나코의 과거와 히나코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미스터리하게 풀려서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인데,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이 더해져서 감성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걸까 싶었다.

 

책 소개에서, 이번 소설 역시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정서를 고수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설적 구도는 기존 작품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랬다. 에쿠니 가오리의 모든 소설을 읽어온 건 아니지만, 보통은 적은 수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의 시점에 충실했던 것 같은데 이번 책은 많은 수의 인물의 등장과 시점이 나온다. 인상 깊은 구절을 적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메모를 하며 봤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인물들 간의 개연성 덕분이었다. 자칫 집중하기 어려웠던 낯선 구성이 집중력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행복했던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히나코를 중심으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사나오, 과거에 얽매여 히나코 주변을 맴도는 단노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얽혀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여기저기 던져놓은 미스터리들은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이들의 관계는 계속해서 얽혀있으므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역시 연장선상이겠구나 싶어서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겐 꽉 닫힌 결말보다는 이런 열린 결말이 해피엔딩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 인물을 콕 집어 이야기해보자면, 역시 히나코다. 히나코를 보고 있으면 에쿠니 가오리의 또 다른 소설 하느님의 보트속 요코가 자주 떠올랐다. 한 번 지나간 일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언제나 거기에 있다며, 지나간 일만이 확실하게 우리 거라던 요코 역시 행복했던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히나코와 요코, 두 사람의 공통점이 눈에 밟혔던 건 최근에 읽었던 에세이 속 구절 때문이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162)

 

히나코를 살게 하는 건, 동생 아메코와의 기억이었고 그 기억이 가상의 여동생을 만들었다. 요코는 딸 소우코와 함께 살아가지만 요코를 살게 하는 건 애석하게도 소우코 아빠와의 기억이었다. 이런 둘을 이해한다기보다는 짠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게 맞겠지만, 때때로 부럽기도 하다. 한 사람을 살게 할 만큼, 그 사람을 위로한 다른 사람과의 시간이란 대체 어떤 시간일까 싶어서.

 

그러나 글을 여기서 끝내긴 싫다. 히나코도 요코도 혼자인 것 같지만, 결국 혼자가 아니니까. 물리적으론 떨어져있어도 히나코를, 요코를 생각하는 가족이 있지 않은가. 지금껏 두 사람을 살게 한 기억도 좋지만, 그 기억은 이만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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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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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 해오면서 파워 블로거에 욕심을 내보지 않았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내가 부러워했던 파워 블로그들은 크게 두 블로그였는데, 책 블로그와 드라마 블로그였다. 파워 블로거의 내공도 부러웠지만, 내가 부러워했던 또 다른 것은 한 우물이었다. 어떻게 책 이야기만 할 수 있고, 드라마 이야기만 할 수 있지? 하루는 책 이야기를 하고 며칠은 드라마 이야기를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야구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부족하지만 직접 쓴 캘리그라피까지 포스팅 하는 나로서는 부러워는 해도 도무지 실천할 수 없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파워 블로거의 꿈을 접었다. 나는 딴짓을 좋아해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나의 딴짓에 비하면 넘사벽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꾸만 딴짓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말하길, 하나만 하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고 하나만 하다 죽기엔 인생은 너무나 길단다. 들어가는 말을 끝내고,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주 오해를 받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고백하는 일이다.

 

직업이 물리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하게 과학적 사고로 무장된 사람일 거라고 나는 자주 오해를 받곤 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내 일상은 오히려 지극히 게으르고 비과학적이다. 실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p.7)

 

그리고 이어지는 차례를 살피는데, 설탕 펜치와 연필깎이와 야채수프용 국자가 그의 고백이 진실이었음을 말해준다. 25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가져온 설탕 펜치, ‘에릭이라는 이름의 핑크빛 로봇, 범상치 않은 포르투갈 사나이설탕그릇, 세상을 여행하는 녹색 에마야주, 날렵한 야채수프용 국자 등 그의 연구실 혹은 집에 있을 소장품들은 모두 그가 한 딴짓의 결과물이다.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의 딴짓은 깊이도, 범위도 남다르다 싶어서 절로 대단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딴짓의 고수를 만난 기분도 들고. 그래서인지 데뷔도 하기 전에 이미 만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나 물리학자가 동화를 쓰게 된 사연은 놀랍지도 않았다.

 

한번 이런 열정에 사로잡히면 나는 앞뒤를 못 가리는 상태가 된다. 일종의 몰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들이 보기에 이런 상태의 나는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p.41)

 

위 구절은, 처음엔 금속으로 만들었다가 경기도 이천에서 우리 장인이 만든 도자기를 유럽에 진출시키고 싶어서 소재를 도자기로 바꾸었다던 이야기를 할 때 그가 한 이야기인데 굳이 이렇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 읽고 있으면 충분히 느껴진다. 맞다. ‘딴짓거리라는 건 남들이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일뿐, 나는 진지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는 그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가 풀어낸 이야기 끝에, 궁금했던 그의 연구실 사진이 펼쳐진다. 사진을 위해 따로 손댄 흔적 없이 자연스러운 연구실을 보고 있으면, 연구실도 이런데 집은 오죽할까 싶어진다. 책의 앞날개에 담긴 말마따나 몇 평 안 되는 교수실에 가득한 온갖 보물. 그의 보물들이 더 빛나보이는 건, 연구실에 앉아서 찍은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아래에 덧붙은 그의 말 덕분이다. “무모하게 살아도, 어떠한 삶도, 삶이 된다.”는 말. 그의 딴짓이 삶이 되었듯, 나의 여전한 딴짓도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자꾸만 믿어 보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취미 생활은 연애와 같다.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진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둘 사이는 럭셔리해지고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한다.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편지와 선물을 처리하듯, 취미 생활에서 구입한 물건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폐기물처럼 방치되기도 한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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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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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

- 헤세의 여행p.7 머리말 중(번역 홍성광)

 

이 구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챙겨봤던 tvN 예능 <꽃보다 청춘> 덕분이었다. 유희열, 이적, 윤상 이 세 사람이 모여 함께 떠난 페루 여행. 세 사람 중 가장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사람은 윤상이었다. 27년 동안이나 술에 의지해왔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술을 끊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윤상. 그런 윤상에게 이번 여행은 단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의 동행이 아닌 장기간 의지했던 술을 벗어나 온전히 자기 힘으로 견뎌내는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상은 새로운 풍경들 앞에서 자주 망설였고, 여행을 함께한 동생들 덕분에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면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그는 여행을 갈무리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며, “청춘이란 용기라고 말한다.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는 이 책 헤세의 여행에서 헤세가 말하는 여행 역시 이런 여행이다. 그 중 내가 인상 깊어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p.36)

 

나 역시 일상을 도피하고, 바닥나버린 감성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헤세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면서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날, 그 시각에 그 곳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한 방을 쓰는 '다른 일상'을 보내면서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구나 실감했던 것이다.

 

낯선 풍경과 도시에서 단지 유명한 것이나 가장 눈에 띄는 것만 추구하지 않고, 본래적이고 더 심오한 것을 이해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파악하려고 갈망하는 자의 기억 속에는 대체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닐 것이다. (p.38)

 

이 구절도 지난 남원 여행에서 경험한 바 있다. 전 날에는 전주에서 경기전이니 향교니 오목대니, 전주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면 다음 날 남원으로 넘어와서는 전혀 새로운 여행을 하기로 감행한 것이다. 친구와 나의 여행에 빠지지 않았던 코드 뚜벅이를 버리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종일 여행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남원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자전거 덕분에 위 구절에서 헤세가 말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울에 롯데월드가 있다면, 남원에는 남원랜드가 있다며 경험해보라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말을 믿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우리는 남원랜드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되돌아와야 했다. 주말이라 일찍이 영업을 종료했던 것이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남원랜드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 힘들 정도의 경사지에 있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직접 끌고 올라야 했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내려올 때는 남원랜드에서 타지 못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 마냥 신나게 내리막을 달렸는데, 넓게 펼쳐진 남원의 풍경 위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지난 여행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중했다. 그날 진 노을은 여느 날의 노을처럼 사소했고, 내가 그 노을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특별했다. 헤세가 단언한 것처럼.

 

부끄럽지만 나는 해외여행은커녕 여권도 없는, 국내여행이 전부인 여행 초보다. 헤세의 여행처럼 낯선 것을 체험하면서 무엇보다 그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시험을 견뎌내보는 여행을 당연히 해보지 못했지만, 이것 하나는 자신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에 몇 번이고 공감하며 헤세의 여행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얼마든지 꿈꾸는 것을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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