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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말하지 않는 말로 말할 때, 말하지 않은 말로 말할 때, 서로에게 서로를 마라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때,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만 희미한 암시로. 다만 흐릿한 리듬으로.

 

뜻 없는 것들. 뜻 없는 것들. 뜻 없는 것들.

 

무한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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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내게 큰 축복이다.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

 

 

2014년 1월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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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눈앞의 것에 연연했으나 이제 기다려본다. 되울려오는 것을.

귀와 눈과 가슴께로 미동처럼 오는 것을.

그것을 내가 세계로 나아가는 혹은 세계가 나에게 와닿는 초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활은 눈보라처럼 격렬하게 내게 불어닥쳤으나

시의 악흥(樂興)을 빌려 그나마 숨통을 열어온 게 아닌가 싶다. 그 빚의 일부를 갖고 싶다.

새로운 시집을 내니 난(蘭)에 새 촉이 난 듯하다. 바야흐로 새싹이 돋아나오는 때이다.

움트는 언어여. 오늘 나의 영혼이 간절히 생각하는 먼 곳이여.

 

2012년 2월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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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정식 시집을 낸다

달력들의 전투대형은 단순하다

7열 횡대,

붉거나 검은 전투복

지피지기여도 백전백패

이 이상한 전투가 아름답기도 한 것은

내 육체의 텃밭인 턱에

수염이 끈덕지게 자라듯

내 마음의 비탈이 차차

늙어왔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리 아파 다리 펴고 싶은 의자에

다리 아파 앉고 싶은 사람처럼

염치없이

시 의자에 푹신 앉아보았으나

시를 앉혀보지는 못한 미안함 마음 절감하며

삐꺼덕,

시집을 엮는다

 

 

강화에서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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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시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썩는 것과 마르는 것. 아름다움이 절정을 다한 뒤에도 물기가 남아 있으면 썩기 시작한다. 그것이 꽃이든, 음식이든, 영혼이든. 그러나 썩기 전에 스스로 물기를 줄여나가면 적어도 아름다움의 기억은 보존할 수 있다. 이처럼 건조의 방식은 죽음이 미구에 닥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영속성을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게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어서 네 안의 물기를 말려버리라고, 피와 살을 증발시키라고. 어딘가로 달아나라고, 늘 방부제나 건조제를 서둘러 찾았을 뿐이다. 마른 열매와도 같은 정신에 하루 빨리 도달하려고 젊음을 앞당겨 반납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책상 위의 마른 석류를 들여다보니 주변에 검붉은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몇 년째 썩지 않는 석류를 보며 '불멸'이라는 말을 떠올리기까지 했는데,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아, 육체란 얼마나 덧나기 쉬운 것인가. 견고해 보이는 고요와 평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관능의 벌레들이 오글거리고 있는 것인가. 석류를 손에 들어보니 어느새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삶이란 완벽한 진공 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안도했다. 그리고 내 풍장의 습관도 앞으로 몇 번이고 생명의 기습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라는 걸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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