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생의 목적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일 년 하고도 한 달 더 된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내가 좋아라하는 야구 선수 오승환이 강연 콘서트 ‘열정락서’에서 강연을 하던 날이었다. 오승환을 최대한 가까이서 보겠다는 나 때문에, 아침 일찍 강연장을 찾았던 나와 친구는 일찍이 입장권 교환권을 입장권으로 바꾸고 행사장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다. ‘열정락서’라는 강연의 테마에 맞게, ‘청춘’과 ‘열정’에 관한 주제로 개설된 행사장이 많았다. 그 중한 쪽 벽에 여러 단어들이 피켓에 하나씩 붙어있는 곳이 우리의 눈길을 끌어서 그 곳으로 향했는데, 알고 보니 많은 단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고르면 그 피켓과 함께 내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고른 단어는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고른 단어는 또렷이 기억난다. 많고 많은 단어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고심 끝에 책을 골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는 아니지만, 2년 전의 내게 청춘이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책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라 단언할 수 없지만 책은 여전히 내 일상이고, 책을 읽다보면 내 인생의 목적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어쩌면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이라는 이 책의 부제와, 표지 하단에 있는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라는 이 책의 문구가 내 인생에 있어 책 이외에 다른 인생의 목적어를 생각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 ‘엄마’부터 이유 없음이라는 가장 큰 이유 ‘그냥’까지. 머리말 속 작가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란 곧 인생의 목표가 되는 목적어일 것이니, 내가 꼽았을 혹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목적어를 잘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고, 내 인생의 목적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달까.
카피라이터라는 작가의 직업답게 각 단어마다 위트 있는 본문이 실려 있는데, 본문만큼이나 좋았던 건 각 단어에 대한 짧지만 여운 가득했던 작가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만나다의 과거형은 만났다,가 아닙니다. 기다리다,입니다. (p.115)’, ‘믿는다,가 잘 안 되면 믿어 준다,로 시작해 보세요. 믿어 준다,가 얼마 후엔 믿는다,로 바뀝니다.(p.143)’, ‘실패했다. 앞의 두 글자를 보지 마십시오. 뒤의 두 글자를 보십시오. 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입니다.(p.313)’라는 생각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은, 그 어떤 단어보다도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한 단어 ‘자식’이었다.
우리 모두는 자식이다. 엄마나 아빠가 아닌 사람은 있지만 자식이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는 안다. 자식들은 안다. 거의 모든 부모의 인생의 목적어가 바로 자식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이 책에서는 자식이 순위 밖으로 밀려났을까?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설문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자식을 낳고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대답 속에 자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을 리 없다. 나이를 조금 올려 설문을 했다면 틀림없이 자식이라는 단어는 꽤 높은 순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위 밖에서 서성대는 ‘자식’을 이 책에 초대했다. (p.244)
작가가 자식이라는 단어를 초대한 이유는 뜻밖이었는데, 이제 자식을 조금만 덜 소중히 생각하자는 뜻으로, 덜 사랑하자는 뜻으로 초대했단다. 초대 이유에 대한 이유가 바로 뒤에 이어진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고정관념이 하나 살고 있다. 그것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똑같은 자식인데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나’인가 ‘남’인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 (중략)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사람이 아닌 미물도 본능적으로 자식을 챙긴다. 그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기준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하면서 내 자식과 남의 자식에게 너무 큰 차이를 둔다는 것이다. 내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그것은 내 자식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자식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이다. (중략) 사랑한다면 덜 사랑하자. (p.244-247)
자식인 동시에 부모인 작가가 쓴 ‘자식’에 대한 이 생각은, 자식이지만 아직 부모는 아닌 내게서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생의 목적어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인생의 목적어는 지금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등등 많고 많은 단어 중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어떤 것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인생의 목적어를 어떠한 단어 하나로 결정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내게 어떤 단어가 더 소중하듯, 내일의 내겐 다른 단어가 더 소중해질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인생을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볍게 사는 법에 대한 작가의 말이 있어서 담아본다.
사람이 좋아지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를 꼽으라면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헐렁한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멋진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이유가 아닌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그냥 좋다,라는 말이 나는 그냥 좋습니다. (중략) 그냥은 아무 이유 없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두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어난절묘한 말이 그냥일 것입니다. 그냥은 여유입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자잘한 이유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말입니다.
헐렁해집시다. / 넉넉해집시다. / 가벼워집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p.356-35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