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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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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연(緣)이 있다면 이런 걸까. 이 책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기 전에 김광석의 이야기를 먼저 접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서였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글에서, 이윤기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듣게 된 ‘젊은 목소리에 실린, 결코 젊지 않은 노랫말이 인상적이어서 심상치 않았던 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7년째 미국 생활을 하던 이윤기였던지라 그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이며 가수는 도대체 누구냐고.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야. 왜? 잘 부르지 않나?”

“잘 부르기는 하는데, 젊은 녀석이 이렇게 슬픔의 끝을 알아버려서 어떻게 살아?”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픔의 끝, 아름다움의 끝, 끝의 슬픔, 끝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던 이윤기였기 때문일까. 김광석을 처음 접한 그가 슬픔의 끝을 알아버린 젊은 녀석이 어찌 사냐고 묻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울리는 절창에서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종말을 예감한다. 하지만 절창은 거기에서만 꽃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일지라도 이윤기의 물음에 답하는 친구의 말은 언제 생각해도 애달프다.

 

“죽었어, 벌써. 작년에.”

 

그가 떠난지도 18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수식은 끝이 없다. 짧지만 뜨거웠던 김광석, 다시 김광석, 오늘도 김광석, 내일도 김광석. 이 책의 제목 또한 김광석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은, 우리의 김광석, 나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이다. 숱한 기념 음반과 평전까지 출간된 걸 감안하면 낯선 사실이기까지 한데, 실제로 김광석 본인의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시간에 흩어져 남긴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들을 모은 것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도 김광석을 듣고, 노래하고, 추억하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김광석을 가지고 있지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은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쓴 김광석(p.25), 의사가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아이를 받아냈던 김광석(p.126), 마흔이 되면 멋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김광석(p.152,)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혼자 부르는 노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 총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첫 번째 파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광석이 아직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전의 생활과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글들. 그 중에서도 나는 ‘늙지 않는 시인’이라는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기형도 산문집을 읽다. 짧은 여행의 기록. 느낌이 많다. ‘짜쉭’ 스물아홉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목매다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보다 좀 나은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 어느 삼류 극장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그 짧은 여행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을까. (p.40)

 

기형도 산문집을 읽고, 기형도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고 쓴 김광석. 그의 말마따나 나 역시 써본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노래를 완성했노라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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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최인호 유고집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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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눈물 - 최인호 유고집』은 작가 최인호의 마지막 비밀 원고를 공개한 책이다. 2008년 암 진단을 받은 작가 최인호는 환자가 아닌 작가로서 죽고자 했고, 이에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 자신의 고통과 정직하게 마주한 채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나갔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눈으로 삶과 죽음을,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그리고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의 기적을 바라보고 기록한 책이다.

 

쌓여진 책 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미공개 원고 200매에는 ‘고통의 축제’라 명명한 암 투병 생활 속에서 신자이자, 작가이자, 결국에는 인간 최인호가 눈물로 기록한, 내밀한 고백이 담겨있었다.

매번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되는 글로 채워진 이 책은 책 속 구절로 미루어볼 때, 가톨릭 주보에 연재된 칼럼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모든 글의 끝은 주님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만 시작은 달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플라톤 『향연』,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 키에르 케고르『죽음에 이르는 병』, 스타인 벡 <분노의 포도>, 프란시스 톰슨 <하늘의 사냥개> 등 소설, 시, 그림, 조각, 벽화가 한 작품씩 언급되고,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님을 향한 글에 녹여낸 느낌이었달까.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책 전체가 주님에 대한 글로만 담겼으면 읽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매 글마다 작품이 언급되어서 무리 없이 잘 읽혔다. 신자이자 작가가 이 작품을 접했을 때는 이렇게 느끼는구나 했고, 특히 종교에 관련된 작품일 경우 내가 해석해내지 못했던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여러 분야의 작품이 언급되다보니 자연스레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언급되는데,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동안 12장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자화상은 대부분 권총으로 자살하기 3년 전에 시작해서 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림 그릴 소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고흐에게 있어 자신의 얼굴이야말로 그가 마음 놓고 그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재였습니다. 그의 자화상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표정으로 점점 더 침울해 가고 얼굴은 말라 가고 두 눈은 점점 더 광기에 젖어 가고 있습니다.

죽기 전 자화상을 완성하고 나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화상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다.” (p.193)

 

이 글에서 최인호는 자신이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이제야 알겠으니 자신을 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이 부분이 나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림 그릴 소재는 발견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자화상을 그린 고흐. 그 자화상이 고흐의 말마따나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얼굴을 그려서라도 붓을 놓고 싶지 않았던 화가로서의 고흐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작가 최인호도 고흐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해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으나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어서,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고무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미친 듯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필한 최인호. 자신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해달라던 최인호. 정말이지,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다고 주님께 외쳤던 최인호. 처절한 노력 끝에 그는 자신이 원한대로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 최인호로 세상을 떴다.

 

아아, 주님. 그래도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죽⋅고⋅싶⋅습⋅니⋅다. (p.33)

 

라던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내가 다 뿌듯하면서, 한없이 가슴이 저민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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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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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일 년 하고도 한 달 더 된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내가 좋아라하는 야구 선수 오승환이 강연 콘서트 ‘열정락서’에서 강연을 하던 날이었다. 오승환을 최대한 가까이서 보겠다는 나 때문에, 아침 일찍 강연장을 찾았던 나와 친구는 일찍이 입장권 교환권을 입장권으로 바꾸고 행사장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다. ‘열정락서’라는 강연의 테마에 맞게, ‘청춘’과 ‘열정’에 관한 주제로 개설된 행사장이 많았다. 그 중한 쪽 벽에 여러 단어들이 피켓에 하나씩 붙어있는 곳이 우리의 눈길을 끌어서 그 곳으로 향했는데, 알고 보니 많은 단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고르면 그 피켓과 함께 내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고른 단어는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고른 단어는 또렷이 기억난다. 많고 많은 단어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고심 끝에 책을 골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는 아니지만, 2년 전의 내게 청춘이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책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라 단언할 수 없지만 책은 여전히 내 일상이고, 책을 읽다보면 내 인생의 목적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어쩌면 책이 내 인생의 목적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뽑은 가장 소중한 단어 50’이라는 이 책의 부제와, 표지 하단에 있는 ‘죽는 날까지 가져갈 당신의 단어는 무엇입니까?’라는 이 책의 문구가 내 인생에 있어 책 이외에 다른 인생의 목적어를 생각하게 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여자 ‘엄마’부터 이유 없음이라는 가장 큰 이유 ‘그냥’까지. 머리말 속 작가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란 곧 인생의 목표가 되는 목적어일 것이니, 내가 꼽았을 혹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목적어를 잘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고, 내 인생의 목적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달까.


카피라이터라는 작가의 직업답게 각 단어마다 위트 있는 본문이 실려 있는데, 본문만큼이나 좋았던 건 각 단어에 대한 짧지만 여운 가득했던 작가의 생각이었다. 예를 들면 ‘만나다의 과거형은 만났다,가 아닙니다. 기다리다,입니다. (p.115)’, ‘믿는다,가 잘 안 되면 믿어 준다,로 시작해 보세요. 믿어 준다,가 얼마 후엔 믿는다,로 바뀝니다.(p.143)’, ‘실패했다. 앞의 두 글자를 보지 마십시오. 뒤의 두 글자를 보십시오. 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입니다.(p.313)’라는 생각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은, 그 어떤 단어보다도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한 단어 ‘자식’이었다.

 

우리 모두는 자식이다. 엄마나 아빠가 아닌 사람은 있지만 자식이 아닌 사람은 없다. 우리는 안다. 자식들은 안다. 거의 모든 부모의 인생의 목적어가 바로 자식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이 책에서는 자식이 순위 밖으로 밀려났을까?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설문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자식을 낳고 키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대답 속에 자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을 리 없다. 나이를 조금 올려 설문을 했다면 틀림없이 자식이라는 단어는 꽤 높은 순위에 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위 밖에서 서성대는 ‘자식’을 이 책에 초대했다. (p.244)

 

작가가 자식이라는 단어를 초대한 이유는 뜻밖이었는데, 이제 자식을 조금만 덜 소중히 생각하자는 뜻으로, 덜 사랑하자는 뜻으로 초대했단다. 초대 이유에 대한 이유가 바로 뒤에 이어진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고정관념이 하나 살고 있다. 그것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똑같은 자식인데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나’인가 ‘남’인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 (중략)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사람이 아닌 미물도 본능적으로 자식을 챙긴다. 그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기준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하면서 내 자식과 남의 자식에게 너무 큰 차이를 둔다는 것이다. 내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그것은 내 자식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자식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이다. (중략) 사랑한다면 덜 사랑하자. (p.244-247)

자식인 동시에 부모인 작가가 쓴 ‘자식’에 대한 이 생각은, 자식이지만 아직 부모는 아닌 내게서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생의 목적어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인생의 목적어는 지금의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가족, 사랑, 나, 엄마, 꿈, 행복, 친구, 사람, 믿음, 우리, 열정, 너, 도전, 지금, 희망, 돈, 건강, 자유, 이름 등등 많고 많은 단어 중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어떤 것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인생의 목적어를 어떠한 단어 하나로 결정짓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내게 어떤 단어가 더 소중하듯, 내일의 내겐 다른 단어가 더 소중해질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인생을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볍게 사는 법에 대한 작가의 말이 있어서 담아본다.

 

사람이 좋아지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를 꼽으라면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헐렁한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멋진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이유가 아닌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그냥 좋다,라는 말이 나는 그냥 좋습니다. (중략) 그냥은 아무 이유 없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두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태어난절묘한 말이 그냥일 것입니다. 그냥은 여유입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자잘한 이유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말입니다.

 

헐렁해집시다. / 넉넉해집시다. / 가벼워집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p.35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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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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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여자를 모른다’고 소설가 이외수는 말했다. 여기서 ‘모르다’는 뜻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뜻일텐데, 여자인 내가 여자를 모르는 부분이 있듯이 남자 역시 남자를 모르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아들이 자라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남자, 자동차가 애인이자 물신에 가까운 애착과 숭배의 대상인 남자, 여자가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면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자기를 향해 웃기만 해도 벌써 그녀를 상대로 성적 판타지를 펼치는 남자, 대표적인 여성 혐오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비롯해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 등등의 남자 이야기 말이다.

그런 남자들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 김형경은 저자의 이전 에세이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경험하고 공부한 심리학을 토대로 남자의 심리에 관련해서 남자도 몰랐던 남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들이 자라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아버지로서의 남자에 대해서는 그 두려움이 실은 자신이 늙고 힘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설명하고(p.39), 사물을 통해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남자의 방식이며 남자들은 자기 감정이나 내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자주 사물들을 화제로 삼는다고 말하면서 자동차를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설명하고(p.104), 진화심리학적으로 남자는 여자의 유혹에 약하게 진화되어왔으며 남자들이 그토록 유혹에 약한 이유는 그들이 치명적 나르시시스이기 때문이라 말하면서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들에 대해 설명하고(p.184-185),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남자는 두려운 대상을 비난하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곧 그들의 투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p.207~220).

 

이렇듯 저자가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남자 역시 잘 몰랐던 남자 이야기만큼이나 좋았던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 책의 구성이다.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혹은 저자가 읽은 책 속 구절이나 글을 인용해서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를 글로써 먼저 보여주고, 남자의 나르시시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의 구성이 남자에 대해 잘 모르고, 남자의 심리에 대해서는 더욱이 모르는 내게, 이해를 돕고 가독성을 높여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자에게 남자는 기본적으로 경쟁자이다. 비록 그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감사하고 경탄하는 성숙한 남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적어도 중년의 시기가 되어야 자식이 책임이나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제야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여기고, 아버지 역할에 필요한 것은 딱 두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넘치는 배려와 넘치는 우정. 하지만 그때는 이미 자식들이 충분히 상처받으면서 다 자란 이후일 때가 많다. (p.48)

 

인상 깊었던 위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연초에 굉장히 인상 깊게 본 영화 <어바웃 타임>의 부자(父子)를 떠올렸다. 주인공 팀의 집안에서 남자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설정 때문의 부자간의 유대관계가 더 와 닿았던 것도 있었지만, 부자의 모습을 보며 눈물지었던 건 그들의 넘치는 배려와 넘치는 우정이 부자간의 정을 모르는 나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을 행운이라 여겼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위해 시간을 여행해서 자주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아들. 남자에게 남자는 기본적으로 경쟁자이고 비록 그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지만, 영화 속 부자의 이야기지만 그런 남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일상에서 내 감정에 대한 심리를 생각할 때, 나는 저자의 이전 에세이집 중 한 권인 『사람풍경』을 자주 떠올리는데 그건 아마도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심리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딱딱한 심리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 들려주는 것 같았던 남 일 아닌 심리 이야기. 『사람풍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 내가 지나치고, 만나고, 경험할 모든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 책 『남자를 위하여』가 떠오를 것이다.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많은 남자들이 읽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때때로 인정하면서 남자도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알고, 나아가 남자인 자신을 이해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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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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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라는 이 책의 제목이 조르바를 환기했고, 조르바를 조우한 이윤기를, 조르바를 춤추게 한 이윤기의 글쓰기를, 조르바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테지만 끝내 조르바처럼 춤췄을 이윤기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는 1장부터 “번역을 할 때 말의 무게를 단다고 생각하라”는 2장,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3장, “유행하는 언어에도 보석같은 낱말이 무수히 반짝인다”는 4장,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면 신화의 언어를 보라”는 5장까지 총 5장에 걸쳐 쓰고 옮긴다는 것에 대한 이윤기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부분 부분 다시 읽은 뒤에야 나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곧 조르바이고, 조르바는 곧 자유이고, 자유는 곧 이윤기의 글쓰기였으며, 그의 글쓰기는 곧 자유를 갈망했던 이윤기다.’라고 말이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인생이 그렇게 풀린 (p.20) 그는 딱지본 소설에서 수십 년을 훌쩍 건너 뛰어 바로 ‘학원사’ 학생문고 쪽으로 한달음에 이른, 이상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생각했다. “아, 글이라는 게 세상을 이렇게 넓게 살도록 하는구나.”(p.21)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p.29)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글 읽기’와 ‘글 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깊어지는데, 이 구절이 책을 읽는 내 가슴을 친 구절이라 옮겨본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p.36-37)

 

이 구절로, 나는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웠고, 자신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이 모두 행복했을지 궁금해했을 이윤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옮긴이 이윤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두기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스스로 찾아 읽었던 건 아니지만 읽는 내내 행복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처음 접한 이윤기의 글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싶어 무척이나 행복해 한 독서였다.

 

조르바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르바는 그리스의 현악기 산투리의 삶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는 산투리조차도 마음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아는 한 산투리에게도 자유를 향수할 권리가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연하의 자본가인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p.153)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이런 노력이 있어 나는 조르바가 ‘나’를 ‘두목’으로 부르는 것을 자, 편히 읽을 수 있었구나 싶어서 감사했다.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던 언어 천재 이윤기.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말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책을 보내려니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른다.

이윤기가, 학문의 세계가 아닌, 사람의 모듬살이에서 엿보이는 종교 현상에 대해 쓰고 싶었을 때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던 그 구절, 정민섭 사제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 (p.61)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3년 전에 떠났지만, 그가 쓰고 옮긴 책들은 남아 오래도록 읽힐 것이며, 그는 여전히 소설과 번역과 신화라는 이름의,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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