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시선 239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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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떨어져 앉아 우는 여치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치소리가 내 귀에 와닿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 것
그 사이에 꽉 찬 고요 속에다 실금을 그어놓고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
밤낮으로 누가 건너오고 건너가는가 지켜보는 것
외롭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나는 여치한테 귀를 맡겨두고
여치는 나한테 귀를 맡겨두는 것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오도카니 무릎을 모으고 앉아
여치의 젖은 무릎을 생각한다는 것-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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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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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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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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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이애경 그냥 눈물이 나p.43

 

언제 어디서건 흔들리는 청춘을 만나게 될 때면,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는 이 말을 나는 어김없이 떠올리곤 한다. 청춘이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이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라고 할 때, 청춘은 그 파도를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 같았달까. 나의 청춘이 그러했고, 그리하기 때문에 나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 편에서 높은 파도를 생각했다. 물론,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생각하는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 속하는 청춘이 있을 수도 있다. 청춘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청춘이 아니며, 모든 청춘이 다 불안하고 초조한 청춘이란 법은 없으니까.

 

이 책, 무라야마 유카의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의 두 화자, 미쓰히데와 에리를 보면서도 어김없이 위 구절을 떠올렸다. 재밌는 건, 두 사람은 수영을 하는 사람들인 동시에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두 주인공이 마주하는 현실은 서핑 선수인 미쓰히데가 매일 마주하는 바다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그들을 집어삼켰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청춘 성장 소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여성과 남성, 이 두 가지 성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연애의 형태는 무한하게 존재하고 그 사람의 성별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결정된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은 간단히 말하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내용을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이 순간인 것 같다. (p.326)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 온 에리와

 

그런 사고방식이 옳은지, 아니면 그래도 연명 치료를 해서 1분이라도 오래 살게 해주는 것이 옳은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영원히 답을 낼 수 없는 난제인지도 모른다. 두 가지 모두 옳은 점이 있고 또한 그른 점이 있다. 그러니 각자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밖에 없다. (p.430-431)

 

아버지가 원한 안락사 문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끝내 답을 내야했던 미쓰히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닮은 꿈틀거림이 나를 희롱하고 헤엄치게 한다.

바다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지.

그녀가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며 영원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저 바다를 너무도 쉽게 몸속에 품고 있었다. (p.374-375)

 

미쓰히데는 에리가, 자신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며 영원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저 바다를 너무도 쉽게 몸속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지만, 책을 읽은 내게는 그런 미쓰히데도 이미 바다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쓰히데는 오래 전부터 바다 위에 있었으니까.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를,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로 생각하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민이 그토록 괴로웠던 것은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한 그 고민이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그 무렵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p.328)

 

앞서 말했던, 수영을 하는 사람과 서핑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높은 파도를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수영을 하는 사람은,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는 법, 즉 그 파도를 기쁨과 스릴로 느끼는 서핑을 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서핑을 하는 사람이 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핑을 하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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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뭐야 1 알 게 뭐야 1
김재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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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얜 누구지?

김원준? 글쎄누구더라?

우리 반이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네?

흐음.

몰라. 알 게 뭐야.

 

이 책 알 게 뭐야1는 제목인 알 게 뭐야.”라는 말부터 참 재미 있었다. “알 게 뭐야.”라는 말은, 꿈이 없는 청춘을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청춘이 할 수 있는 말도 되고, 또 다른 청춘이 기억을 하건 못 하건 간에 알 게 뭐야 라며, ‘이 순간, 그냥 외...이라 대꾸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주인공 김원준은 19세로, 얼짱 은하율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3이다. 여느 날처럼 얼짱 은하율의 사진을 들여다 보던 어느 날, 친구 정필이 가져온 잡지 속 여자애들 보는 잡지에서 전속모델 오디션 개최 홍보지를 접하게 되면서 김원준의 일상에 미미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김원준은 평범했고, 그래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네 얼굴을 보고, 내 키를 봐.” 네 얼굴은 구리고, 내 키는 수구리고. 이런 우리 따위가 무슨 모델 오디션이냐고, 쪽팔린 추억 따위 만들지 말고 제발 그만두자고, 아마 우린 안 될 거라고 원준은 말한다. 그런 원준의 말에 인마, 쫄지 말라며 네 곁엔 이 형님이 있지 않냐고 정필이 답하면서 둘은 결국 전속모델 오디션에 응모하게 되는데, 원준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응모가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전환점이 될지 말이다.

 

1차 오디션에 합격하고, 오디션장에서 얼짱 은하율을 만나고, 정필의 노력으로 은하율과 추억을 만들게 된 원준은 하율의 전화를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하율의 전화는 오지 않고 원준은 얼마 후 모델이 됐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열심히 놀아본 것도 아니었던 원준은 은하율을 보겠다는 일념 하에 모델이 되었지만, 잘난 애들끼리 몰래 연애나 하고 그냥 텔레비전 나와서 춤이나 추는 애들인 줄 알았던 아이돌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다짐한다. “김원준, 넌 그동안 뭘 했니? 그래!! 이왕 이렇게 시작하게 된 거 한번 열심히 해보자!! . . . . ! 이제 모델로 새롭게 시작이다!”라고. 비록 10분 뒤에 드르렁코를 골며 잠들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보는 잡지에서 스탭으로 일하는, 이웃집에 살던 미숙이 누나와의 재회, 자신의 매니저가 되겠다며 삭발하고 나타난 정필, 원준의 전화를 기다리는 듯한 하율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1권이 끝난다.

 

평균 조회 수 2만 건을 기록한 화제의 네이버 웹툰 <알 게 뭐야>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꿈이 없는 청춘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 청춘이 힙합이라는 불분명한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 꿈은 많을수록 좋고, 불분명한 건 지양하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지금의 청춘들 속에서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작가 소개 글을 뭐라고 써야 센스 있을까 며칠 동안 연구하고, 출판사 독촉에 전화기 끄고 잠수 탈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이제 어른인데 그러면 안 될 거 같다고 말하는 작가 김재한. 그런 그의 네이버 캐스트 인터뷰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어서 담아본다.

 

성장이란 완벽하지 않은 형태가 불안 불안하게 커나가는 건데 뭐든 해봐야 되든 안 되든 결과가 나올 거 아닌가. 친구 중에 고민만 많고 행동을 안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어떡하지?”라고 걱정할 때마다 나는 알 게 뭐야라고 말했다. (작가 김재한, 네이버 캐스트 인터뷰 중)

 

맞다. 청춘은 불안하고, 그래서 아픈 건 성장하기 때문이고 성장이란 완벽하지 않은 형태가 불안 불안하게 커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청춘이 할 일은 하나다. 뭐든 해보는 것. 결과는 뭐든 해야 나오는 것이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뼈저리게 아는 말이지만, 청춘에게 필요한 건 고민보다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친구들이 졸업 앨범을 펼쳤을 때 무료한 청춘 김원준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p.s. 시종일관 개그감을 잃지 않는 작가의 연출 덕에 책을 읽는 내내 웃었다. 딱 봐도 어떤 걸 패러디 했는지 알 것 같은, 재밌었던 패러디 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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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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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연(緣)이 있다면 이런 걸까. 이 책 『미처 다 하지 못한』을 읽기 전에 김광석의 이야기를 먼저 접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서였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글에서, 이윤기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듣게 된 ‘젊은 목소리에 실린, 결코 젊지 않은 노랫말이 인상적이어서 심상치 않았던 노래’에 관해 이야기한다. 7년째 미국 생활을 하던 이윤기였던지라 그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래이며 가수는 도대체 누구냐고.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야. 왜? 잘 부르지 않나?”

“잘 부르기는 하는데, 젊은 녀석이 이렇게 슬픔의 끝을 알아버려서 어떻게 살아?”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픔의 끝, 아름다움의 끝, 끝의 슬픔, 끝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던 이윤기였기 때문일까. 김광석을 처음 접한 그가 슬픔의 끝을 알아버린 젊은 녀석이 어찌 사냐고 묻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울리는 절창에서 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종말을 예감한다. 하지만 절창은 거기에서만 꽃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p.214)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일지라도 이윤기의 물음에 답하는 친구의 말은 언제 생각해도 애달프다.

 

“죽었어, 벌써. 작년에.”

 

그가 떠난지도 18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수식은 끝이 없다. 짧지만 뜨거웠던 김광석, 다시 김광석, 오늘도 김광석, 내일도 김광석. 이 책의 제목 또한 김광석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은, 우리의 김광석, 나의 김광석이 아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이다. 숱한 기념 음반과 평전까지 출간된 걸 감안하면 낯선 사실이기까지 한데, 실제로 김광석 본인의 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시간에 흩어져 남긴 일기, 수첩 메모, 편지, 노랫말 들을 모은 것으로, 저작권자인 유가족의 동의하에 그의 숨결이 최대한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늘도 김광석을 듣고, 노래하고, 추억하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김광석을 가지고 있지만,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은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김광석이 말하는 김광석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고.

 

마음의 평안이나 그저 안일한 평화가 주는 심심함보다, 가슴이 파이고 흐느끼는 밤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쪽을 택하리라 쓴 김광석(p.25), 의사가 출근 전이었고 간호사는 무슨 준비하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아이를 받아냈던 김광석(p.126), 마흔이 되면 멋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김광석(p.152,)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혼자 부르는 노래,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 미처 부르지 못한 노래 총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첫 번째 파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광석이 아직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 전의 생활과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글들. 그 중에서도 나는 ‘늙지 않는 시인’이라는 글이 가장 인상 깊었다.

 

기형도 산문집을 읽다. 짧은 여행의 기록. 느낌이 많다. ‘짜쉭’ 스물아홉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에 목매다는 것이니까. 다른 이들보다 좀 나은 것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스물아홉 살, 어느 삼류 극장에 앉아 조용히 숨을 거둔, 그 짧은 여행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을까. (p.40)

 

기형도 산문집을 읽고, 기형도는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시를 완성했다고 쓴 김광석. 그의 말마따나 나 역시 써본다. 김광석은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노래를 완성했노라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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