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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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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나는 서점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실을 빌려 임시 서점처럼 만들고 ‘도서 바자회’를 열었던 그 때 그 공간부터 언제 가도 어김없이 기분 좋은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이 책의 추천글을 쓴 한겨레 문화팀장이자 건축 칼럼니스트 구본준은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서점을 닮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서점이 곧 천국인 사람이었다.

 

단지 책이 좋아서 서점을 좋아하는 내게 서점이 좋아서 책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심어준 서점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이었다. 정갈하지만, 그래서 다소 딱딱한 느낌의 대형 서점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책방마다 느낌이 무척 달랐던 헌책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중 신촌에 있던 헌책방의 구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계산대가 자리해 있고 남은 공간은 하나 같이 크기가 다른 책장들이 있는데, 그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또한 제각각으로 꽂혀 있었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찾는 책을 검색해서 한 번에 찾는 일은 편리했지만, 그 책을 찾는 것으로 끝이었을 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손이 갈 기회가 적었다. 헌책방은 정갈한 맛은 없었지만 내 발길이 닿는 대로, 내 손길이 닿는 대로 접할 수 있는 책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신선했고, 재밌었다. 또, 책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은 책탑으로 가득한 헌책방도 기억난다. 그 책탑 밑 부분에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책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무너질까, 책을 빼진 못하고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헌책방이었을지라도, 내겐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는 서점이 이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자신할 정도의 서점들 소개로 가득한 책이다.

프랑스 파리, 센 강 왼편 기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는 학생들의 거리 라탱 지구. 커다란 벚나무 그늘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모이는 젊은 작가 지망생들의 유토피아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1903년에 극장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객석을 모두 떼어내고 서가로 대체되어 갤러리 벽면 전체를 모두 책으로 채운, 모든 분야를 망라해 35만 권이나 되는 책을 보유한 ‘엘 아테네오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

그리스 산토리니, 신들이 사랑한 에게 해의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산토리니 섬 북쪽 끝에 위치한, 일찍이 플라톤이 꿈꾸었던, 바다 저편에 전설의 왕국에서 이름을 딴 ‘아틀란티스’ 서점까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정말이지 아름다운 서점들을 책 한권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서점들은 사진으로나마 내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 책에 실린 인터뷰와 칼럼 또한 아름다운 서점들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이 책에 대해 만족하게 했다. 그 중 가장 와 닿았던 글은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인터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내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나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음악, 미술, 철학 같은, 건축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책뿐이었으나, 정보가 지나치게 많지 않으니 내 상황에 맞게 책을 취사선택하기 쉬웠다. 서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상투적인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책이든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 기능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p.41)

 

후지모토 소우에게는 자신의 눈으로 돌아볼 수 있고 자신의 몸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만큼만 꽂혀 있던 그 작은 서점의 책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존재가 되었듯이, 지금도 세상 곳곳의 누군가가 이다지도 아름다운, 세상 곳곳의 서점들을 찾아 인생의 책과 조우하거나 혹은 자신의 세계관에 접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아름다운 서점과는 거리가 먼 서점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있어 ‘인생의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점이 있다면 그 서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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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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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폴리오 리뷰블로거를 2년간 해오면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정솔)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시리즈와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 변호사』,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이용한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 그리고 이 소설 아리카와 히로의 『고양이 여행 리포트』까지 고양이에 관한 책을 올해만큼 읽은 해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가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고, 고양이를 생각하면 먹먹했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들을 잔뜩 봤고, 우리나라에 있어 고양이라는 동물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고양이 책이 될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올해 고양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 뒤섞여서 읽는 내내 싱숭생숭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사토루와 단지 그의 은색 왜건이 주차된 자리를 좋아했던 길냥이. 사토루가 챙겨주는 1일 1식을 챙겨 받으며 생활해 온 길냥이 ‘나’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때 ‘나’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사토루였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사토루의 방에서 지내게 된 ‘나’와 그런 길냥이에 대한 사토루의 마음이 그려진 구절이 인상 깊었다.

 

“내 고양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선택은 솔직히 생각한 적 없었다. 태생이 길고양이여서 집고양이가 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는 신세를 지지만, 상처가 다 나으면 나갈 생각이었다. ……아니, 나가야겠지, 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갈 거라면, 이제 슬슬 나가주시지, 하고 쫓겨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가는 편이 쿨하지 않나. 고양이는 스마트한 생물이니까.

이 집 고양이로 살아주길 바라다니……. 그런 말은 빨리빨리 좀 하라고.

(중략)사토루와 함께 근처를 한 바퀴 돌고, 나는 다시 맨션으로 돌아왔다. 2층 제일 앞에 있는 문 앞에서 야옹 울었다. 얼른 열어.

올려다 본 사토루는 마치 우는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여기로 돌아오는 거다, 너?”응. 그러니까 빨리 열라고.

“너, 내 고양이가 될 거야?”그래. 그렇지만 가끔 산책 정도는 같이 가자.

이렇게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었다.

(p.15-17)

 

고양이 ‘나’가 사토루의 은색 왜건을 좋아했던 건 둘의 인연 덕분이었을까. 길냥이 ‘나’를 원했던 고양이 바보 사토루와 그런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어 ‘나나’라는 이름을 얻게 된 ‘나’의 잊지 못할 로드 무비가 담긴 이 책은, 사토루가 나나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이었고, 나나 역시 사토루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고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존재라면, 여행 동반자로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라고 쓰는데, 책을 읽을 때 겨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나나의 묘생이 끝날 뻔 했던 그 순간엔 사토루가 있었고, 사토루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엔 나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Pre-Report,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니 둘은 그런 연(緣)이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그 연(緣)은 서로가 만든 연(緣)이라서 더 애달팠다.

 

피할 수 없는 ‘어떤’ 사정으로, 현재이자 과거의 시간을 함께 여행한 사토루와 나나. 사토루는 나나가 있어 행복했을 것이고, 나나는 사토루가 있어 그 여행의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둘의 여행을 읽을 수 있었던 내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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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제로
롭 리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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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튠스가 등장하기 전 최고의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스템이었던 랩소디의 개발자이자 리슨닷컴의 설립자로, 음악 및 IT업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활동을 해온 롭 리이드의 첫 소설 데뷔작인 이 책 『이어 제로(Year Zero)』의 주된 설정은 이와 같다.

 

은하계에는 과학, 예술,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고등생명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유일한 단점은 음악을 더럽게 못한다는 것뿐. 이들은 지구 음악을 처음 접하고 뇌출혈과 황홀경에 빠진 1977년을 자신들의 원년(Year Zero)으로 삼을 만큼, 로큰롤과 팝 등 지구 음악에 심취한다.

 

소설가 박상의 소설 『15번 진짜 안 와』의 도입부에서 록(Rock) 음악에 빠진 신들이 떠오르는 설정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처럼 비슷한 설정을 접해 본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설정이다. 신 혹은 외계인이 지상 혹은 지구의 음악에 빠진다는 설정 말이다. 여기서, 작가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자. ‘음악 및 IT업계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활동’에 눈이 간다. 이어서, 이 소설의 다음 설정을 읽어보자. ‘그러나 수십 년 후, 빅뱅 이래 최대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우주는 파산 위기를 맞게 된다. 천문학적인 빚을 갚느니 차라리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은하계 반란 세력이 지구로 침입한다.’라니. 지구 음악을 처음 접한 1977년을 원년으로 삼을 만큼 지구 음악에 심취한 외계인다웠다. 심취해도 너무 심취해버린 나머지 빅뱅 이래 최대 규모의 저작권 침해와 부채로 파산 위기를 맞는 그들. 독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면 재밌기 그지없지만, 외계인들 입장에서는 천문학적인 빚을 갚느니 차라리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생각을 한 것 역시 재미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설정해서 소설을 쓰는 건, 비단 롭 리이드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설정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탄탄하고 맛깔나게 쓰는 건 분명 롭 리이드만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롭 리이드와 같이 IT분야와 음반 산업계를 잘 아는 사람일 수는 있어도 그걸 ‘외계’라는 소재에 녹여낸 건 롭 리이드만의 생각이었을 테니까.

 

특히, 나는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WoW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겁나게 먼 데서 접속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맞을 거예요. 그에게 현직 대통령 이름이나 서울의 거리 이름을 물어보세요. 분명히 당황해서 말을 더듬을걸요.”

“진짜 한국인은 모두 온라인 트리인가 뭔가에서 이뤄지는 다른 게임을 즐깁니다.” (p.131)

 

외계인들에게는 지구가 출입금지 구역이라, 불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워크래프트를 통해 인간과 소통을 하는데, 그 때 소통하는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한국인’이라고 한다니. 책을 읽는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재밌는 구절이었다. 외국에서는 외계인이 한국인이라고 둘러댈 만큼 물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영국의 국민 드라마라 불리는 SF드라마 <닥터 후(Doctor Who)> 애청자인 나는, 외계라는 설정이 낯설진 않았지만, 그 외계에 관한 자세한 설정들은 확실히 어려웠다. 닥터후의 경우, 영상물이다 보니 이해하지 못해도 그냥 볼 수 있었지만 책은 읽고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낼 자신이 있다면 극단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돋보이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연상시키면서도, 특유의 신선함과 영리함, 재미를 선사하는 독창적인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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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재앙
케르스틴 기어 지음, 함미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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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삶이다. -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의 말처럼,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삶에서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드라마 아닌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당한 불의의 사고로 드라마 같은 삶을 살게 된 여자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항상 우리에게 없는 것만 생각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남편인 펠릭스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만, 어느새 둘의 애정 생활에 소리 없이 스며든 일상을 보내면서 ‘남편과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하는 회의감을 느끼는 여자, 카티가 바로 그 여자다. 그런 카티의 앞에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 마티아스가 나타나는데, 회의감이 커질수록 카티는 우연히 만난 마티아스를 향한 사랑도 커감을 느낀다. 카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날은, 마티아스와 카티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 날이었다.

 

놀라움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 빌헬름 부슈

 

병원에서 눈을 뜬 카티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하기 시작하는데, 의식을 되찾은 날이 바로 남편 펠릭스와 처음 마주친 5년 전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없다. - 찰리 채플린

 

그렇다. 카티는 타임 슬립을 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렇게 카티는 운명과의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한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격언(혹은 명언)들을 넣어서 줄거리를 정리해봤다. 책을 읽을 때도 격언들을 꼼꼼히 챙겨 읽었지만, 줄거리 사이에 넣어 읽으니 격언이 괜히 격언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격언이란 삶 속에 존재하고, 삶 속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이 책 『이토록 달콤한 재앙』의 핵심은 타임 슬립을 통해 ‘이토록 달콤한 재앙’인 두 번째 삶이 주어졌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삶을 사는 카티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선택’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카티의 선택을 수긍하기도 하고, 수긍하지 않으면서 두 번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것이다. 카티의 선택이 낳은 결말을 납득하거나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 책의 매력은 크게 세 가지다. 타임 슬립이라는 다소 흔하고 익숙한 판타지 코드를 녹여냈지만, 주인공 카티와 카티의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각각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어서 식상하고 허무맹랑한 로맨스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 부부 혹은 연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을 아주 현실감 있게 보여주며, 사람들이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디테일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필치로 그려낸 점. 마지막은, 한국판 속 ‘옮긴이의 말’이다.

소설이 끝나면 이 책을 번역한 옮긴이 함미라의 편지가 이어지는데, 바로 주인공 카티에게 옮긴이가 보내는 편지다. 이 편지는, 책에 대한 옮긴이의 감상 같으면서도 실제 편지 같은 느낌이었다.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어서 그런지, 꾸밈없이 솔직한 옮긴이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가 두 발을 대고 서 있는 이쪽 들판보다 가보지 않은 저쪽 들판이 왠지 더 푸르러 보이는 건 결코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확신해. (중략) 내가 너처럼 혹시라도 두 번 살 기회가 주어져 다시 선택하게 된다면, 난 분명 나의 마티아스를 선택할 것 같아. 그런데 말야, 정말 신기하게도 결국에는 마티아스인 줄 알고 선택했던 그가 알고 보니 펠릭스였다는 황당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거든……. (결론적으로 펠릭스가 마티아스고 마티아스가 펠릭스가 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p.365 옮긴이의 글 중에서)

 

책을 다 읽고, 카티의 선택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만난 이 글은 옮긴이 이전에 한 명의 여자로서 카티의 선택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특히, 카티와 같은 유부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번역을 하는 내내 카티를 생각했을 번역가의 글이어서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 마리 폰 에브너에셴바흐

 

* 마리 폰 에브네에셴바흐는 어떤 상황을 생각했던 걸까? 나도 그걸 생각하고 싶다.

- 케르스틴 기어

 

위 격언은 책에 담긴 수많은 격언 중에 저자 케르스틴 기어가 유일하게 말을 덧붙인 격언인데, 그래서인지 이 격언은 저자 케르스틴 기어가 이 책 『이토록 달콤한 재앙』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가장 맞닿아있는 느낌이었다. 마리 폰 에브네에셴바흐가 어떤 상황을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케르스틴 기어만의 시점에서 풀어낸 글 같았다고나 할까.

 

바로 행복인 그걸 생각하는 작가 케르스틴 기어의 『이토록 달콤한 재앙』 덕분에 내 삶의 진짜 보물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자기만의 진짜 행복을 깨달은 여자, 카티의 눈물겨운 여행기이기도 한 이 소설을 읽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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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팅 1
조엘 샤보노 지음, 임지은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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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목숨을 건 입시 전쟁이다.

 

폐허가 되어 버린 아메리카 대륙에 세워진 통일연방에서 최고의 리더 자질을 가진 소년 소녀들을 뽑는 시험, 테스팅. 통과하는 사람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지만 이 ‘테스팅’의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 리더의 자격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다양하고 잔인한 시험이 계속된다. 독성이 있는 식물과 없는 식물을 골라내게 한 후 독성이 없다고 분류한 식물을 먹어 증명해야 하고, 주어진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감전을 당하는 라디오 수리 시험까지, 아이들이 보는 시험은 목숨을 대가로 한 무시무시한 시험이다. 그래서 시험을 볼수록, 시험을 볼 아이들의 수는 줄어든다. 그렇게, 모든 시험 후에는 전쟁으로 오염된 지역을 횡단하는 마지막 시험이 진행되는데, 이 시험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험이다. 오염된 물과 독성이 있는 풀은 물론이고 숨겨진 폭탄과 무시무시한 변종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으며, 응시자를 죽이는 것 또한 용인된다.

 

이 시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두뇌를 풀가동하여 지략을 짜야하는 것은 물론,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져야 하며,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언제 배신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한 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 『테스팅』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 수행’이라 쓰고, ‘생존 경쟁’이라 읽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주인공과 아이들. 그들을 지켜보는 관찰자인 독자는, 살아남으라 응원하면서도, 어떻게 살아남는지 유심히 지켜보는 양면적인 시각을 가진다. 이 책 『테스팅』이 폐허가 된 도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자를 죽여야 하는 생존 게임, 그 상황의 중심에 놓인 강인한 10대 소녀라는 설정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과 같이 10대 청소년에게서 많이 읽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당사자 중의 당사자이니까. 생존 경쟁에서 피 말리는 심정을 아니까 응원하고, 그 심정을 어떻게 견뎌내고 강인해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이 안의 우리들은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낙오되어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을 끌어안고 3년을 견뎌야 한다. (중략)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8일 동안의 기록이다.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 中)

 

공교롭게도, 『테스팅』을 읽는 중에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게 되었다. 전개 되는 과정은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대학 진학을 위해 낙오 되어선 안 된다는 불안감을 갖고, ‘생존 게임’이라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은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시험은 시작일 뿐, 시험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오늘 보고 내일도 보는 시험이 끝없이 이어지니까.

 

이 책 『테스팅』과 『헝거게임』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건, 어쩌면 ‘생존 경쟁’의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을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존 경쟁이 있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인물들이 있고, 끝내 살아남은 주인공을 통해 “너 역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일지도. 그도 아니면, 그냥 즐기면 된다. 내 경쟁은 어렵고, 외롭지만 남의 경쟁을 보는 건 재밌고, 외롭지 않으니까. ‘현실 도피’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이 책은 그냥, 충분히 재밌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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