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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3기수째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활동해오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생이 보다 넓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게 가장 컸다. 그런 책을 접하더라고 그냥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쌓이고, 굳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다정한 편견』을 받아들고 잠깐 구경했는데, 이번에도 좋은 책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정확히 맞았다.
긴 글은 실력으로, 짧은 글은 노력으로 쓴다는 형철쌤의 추천사 속 글처럼 노력으로 쓰인 한 편 한 편의 글을 나는 내 일상 곳곳에서 읽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읽었고, 잠자리 머리맡에 두고 이 책을 읽다가 잠에 들었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머리를 하기 위해서 미용실에 챙겨 가서 읽은 일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소리와 적당한 소리를 내며 미용실을 가득 채우던 라디오의 소리 틈에서 이 책을 읽었다.
사람의 소리는 결코 소음이 될 수 없다는 그의 글처럼, 그날 미용실에서의 소리는 내게 결코 소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마침 내가 읽던 부분이, 작가의 따뜻한 심성이 엿보이는 가족과 고향 이야기들로 담긴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나 사회에 관한 성찰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준 2부 ‘선량한 물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남의 것에서도 대충 쓴 것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왜 글을 쓰고, 무엇을 쓸 것이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등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자세에 관해 말하는 3부 ‘바느질 소리’ 역시 참 좋았다.
칼럼을 연재하는 내내 그를 괴롭혔던 ‘원고지 4.5매 내외’라는 분량은, 그에게 단상에 가까운 생각들을 붙잡아둘 수 있게 했고 단어를 고르거나 문장을 다듬는 일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덕분에, 나는 복에 겨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리 여운 있는 글들을 한 편 한 편 곱씹어가며 읽을 수 있었고 이 책이 함께한 일상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좋고, 또 좋았던 글 중에서 나는 이 구절을 베스트로 꼽아본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독서에서 경탄과 경이로움이란 번쩍 하며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몽상의 끝에 찾아온다. 그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얼마나 느리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창조적 몽상의 대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를 두고 아예 '느린 독서'라고 이름 지었다. 완전한 독서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것은 경이로운 것들 앞에서 기꺼이 감탄할 자세 하나면 된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167 '독서의 자세' 중에서)
‘왜냐하면 나의 독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느린 독서를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매일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읽은 것처럼 미용실에도 챙겨가 잡지 대신 읽고, 가끔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읽고, 대중교통을 기다리고 오고가는 시간에 읽고. 틈이 나면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려면 책이 늘 손에 들려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가방은 늘 무거운데, 그렇게 챙겨 다니는 책들을 때때로 한 자도 읽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읽은 책들이 쌓여서, 이제는 정말 자유롭게 읽는다. 조르바처럼. 어느 날은 정독하고, 속독하고, 때때로 완독하지 못하지만 매일 읽어나간다. 이렇게 읽어나가면, 나도 언젠간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서, 머리에 약을 바르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책을 덮고 위의 글을 썼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메모 앱을 열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다가,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가, 나른해서 졸기도 하면서 이 짧은 글을 썼다. 짧은 글은 실력으로 쓴다는 형철쌤의 말에 공감하며.
누구나 가슴에 문장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문장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이든 상관은 없다.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스스로 고안해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남들에겐 하찮을 수 있어도 자신에겐 소중한 그 무엇일 것이다. 그 문장은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불려나온다. 평소에는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제 주인이 절망하여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p.156 '가슴속 문장 하나' 중에서)
가슴에 품고 싶어서 필사해 둔 그의 문장들이, 위 구절처럼 내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불려나오고, 평소에는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절망하여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걸어 나올 것임을 믿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이 책을 감사히 읽은 나의 다정한 편견이고, 이런 편견이라면 나는 백번이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