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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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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수째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활동해오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생이 보다 넓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게 가장 컸다. 그런 책을 접하더라고 그냥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안에 어떤 것들이 쌓이고, 굳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다정한 편견을 받아들고 잠깐 구경했는데, 이번에도 좋은 책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정확히 맞았다.

 

긴 글은 실력으로, 짧은 글은 노력으로 쓴다는 형철쌤의 추천사 속 글처럼 노력으로 쓰인 한 편 한 편의 글을 나는 내 일상 곳곳에서 읽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읽었고, 잠자리 머리맡에 두고 이 책을 읽다가 잠에 들었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머리를 하기 위해서 미용실에 챙겨 가서 읽은 일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소리와 적당한 소리를 내며 미용실을 가득 채우던 라디오의 소리 틈에서 이 책을 읽었다.

사람의 소리는 결코 소음이 될 수 없다는 그의 글처럼, 그날 미용실에서의 소리는 내게 결코 소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마침 내가 읽던 부분이, 작가의 따뜻한 심성이 엿보이는 가족과 고향 이야기들로 담긴 1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이나 사회에 관한 성찰과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준 2선량한 물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남의 것에서도 대충 쓴 것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왜 글을 쓰고, 무엇을 쓸 것이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등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자세에 관해 말하는 3바느질 소리역시 참 좋았다.

칼럼을 연재하는 내내 그를 괴롭혔던 원고지 4.5매 내외라는 분량은, 그에게 단상에 가까운 생각들을 붙잡아둘 수 있게 했고 단어를 고르거나 문장을 다듬는 일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덕분에, 나는 복에 겨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리 여운 있는 글들을 한 편 한 편 곱씹어가며 읽을 수 있었고 이 책이 함께한 일상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좋고, 또 좋았던 글 중에서 나는 이 구절을 베스트로 꼽아본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독서에서 경탄과 경이로움이란 번쩍 하며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몽상의 끝에 찾아온다. 그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얼마나 느리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창조적 몽상의 대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를 두고 아예 '느린 독서'라고 이름 지었다. 완전한 독서를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것은 경이로운 것들 앞에서 기꺼이 감탄할 자세 하나면 된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는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167 '독서의 자세' 중에서)

 

왜냐하면 나의 독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느린 독서를 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매일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읽은 것처럼 미용실에도 챙겨가 잡지 대신 읽고, 가끔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읽고, 대중교통을 기다리고 오고가는 시간에 읽고. 틈이 나면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려면 책이 늘 손에 들려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가방은 늘 무거운데, 그렇게 챙겨 다니는 책들을 때때로 한 자도 읽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읽은 책들이 쌓여서, 이제는 정말 자유롭게 읽는다. 조르바처럼. 어느 날은 정독하고, 속독하고, 때때로 완독하지 못하지만 매일 읽어나간다. 이렇게 읽어나가면, 나도 언젠간 책 너머의 것들에 감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글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용실에서, 머리에 약을 바르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책을 덮고 위의 글을 썼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메모 앱을 열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다가,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가, 나른해서 졸기도 하면서 이 짧은 글을 썼다. 짧은 글은 실력으로 쓴다는 형철쌤의 말에 공감하며.

 

누구나 가슴에 문장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문장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이든 상관은 없다.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스스로 고안해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남들에겐 하찮을 수 있어도 자신에겐 소중한 그 무엇일 것이다. 그 문장은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불려나온다. 평소에는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제 주인이 절망하여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걸어 나오기도 한다. (p.156 '가슴속 문장 하나' 중에서)

 

가슴에 품고 싶어서 필사해 둔 그의 문장들이, 위 구절처럼 내가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불려나오고, 평소에는 가슴속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절망하여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걸어 나올 것임을 믿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이 책을 감사히 읽은 나의 다정한 편견이고, 이런 편견이라면 나는 백번이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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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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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손편지를 쓰는 일에 소원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손편지를 자주 쓰곤 했다. 그런 나와 손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던 친구 모모와 언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이 편지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그치?”

정말 책으로 출간해야지라기 보다는, 그땐 친구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의 편지는 지극히 감상적이었고, 결정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일에 소원해지면서 한때의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 소중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 건 이 책 선생님, 요즘음 어떠하십니까덕분이다.

 

1973118, 아동문학가 이오덕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동화작가 권정생을 찾아갔다. 이오덕은 마흔여덟이었고 권정생은 서른여섯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그때부터 이오덕과 권정생은 2003년 이오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을 함께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어른, 아이 모두 권정생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정생을 세상에 알린 이오덕,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동화를 쓴 권정생. 이 책은 그런 둘의 만남과 삶을 엿볼 수 있는 편지를 가려 뽑아 오롯이 실어낸 책이다. ‘오롯이라는 부사의 정의 그대로 두 사람의 삶은 이 책을 통해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내게 전해졌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 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p.224)

 

권정생 작가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왜 그리도 이오덕 선생님이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았다. 자신같이 병들고 무능한 인간이 아닌, 건강하고 역량 있는 작가가 있어야 한다고 쓰셨지만, 그 누구보다 아동문학에 온 생애를 바쳐 쓰신 분이라는 걸 안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런 권정생 선생님을 빨리 알아보셨던 게 아닐까.

 

선생님 동화집 아직 가지고 있는데, 이웃 학교에 동화 공부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 나눠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에도 보낼 곳이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필요하면 다음 서울 가서 세종문화사에 원가로 몇 권 사서 적당한 곳에 보내겠습니다. (중략) 선생님 가지고 계시는 책은 될 수 있는 대로 모두 파십시오. 절대로 함부로 책을 공짜로 주지 마십시오. 그냥 준다고 좋은 것 아닙니다. 피땀 흘려 쓰고 만든 책인 것을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p.84)

 

권정생 작가님의 작품을 참으로 귀하고 값있는 것으로 아꼈고,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면 제 돈으로 책을 사서 흔쾌히 나눠주었던 이오덕 선생님. 교사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평생을 아이들과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온 삶을 아이들과 함께 산 선생님이 곁에 계셨기에 권정생 작가님이 온 힘을 다해 동화를 쓰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편지를 쓰는 그 시간은 물론이고, 편지가 오고 가는 시간에도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 편지 곳곳에서 묻어났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교감이 얼마나 아름답고 그걸 전해 받은 이에게는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던 권정생 작가님의 말처럼, 아동문학이라는 한 가지 일로 만나서 서로에게 편지 쓰는 일에 전념했을 두 분을 생각하면 내가 괜히 흐뭇해졌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귀 기울여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197328, 권정생 작가님이 이오덕 선생님에게 쓴 편지의 첫 구절을, 죄송하지만 멋대로 조금 바꾸어 이렇게 쓴다.

 

두 분이 주고받으신 편지, 잘 읽었습니다. 왠지 눈시울이 화끈 더워지고,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는 것을, 두 분의 글월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작가님의 작품이 이다지도 피땀 흘려 쓰고 만든 값진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희망합니다. 두 분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 역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고, 또 귀 기울여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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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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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차라리 쓰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 이가 답하는 게 좋다. '쟤는 아마 그것 때문에 맨날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을 거야', 이런 답이 나올 테니까. 왜 안 좋은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니까. 왜 사는가를 물어오면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면 대부분 부끄럽고 쪽팔리니까. (p.6)

 

이 책은 중앙북스에서 2009년에 출간된 책 한창훈의 향연의 개정판인데, 작가의 말이 책의 제목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재밌는 책이다.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라는 작가님의 단호한 말에 미소 지었지만, 이내 부러워졌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테니까. 그래서 왜 사는가를 물어보는 일이 그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나만 혼자 읽고 넘어가기 아쉬웠던 마음에, 블로그에 이 구절과 함께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 한 이웃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한창훈 작가님의 소설에는 바다와 관련된 것들이 많이 나와서 좋다고. 과연 그랬다.

 

내륙에서의 내 이력에는 늘 섬과 항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륙 사람들은 산과 벌판을 말하고 나는 바다를 이야기했다. (p.50)

 

변화가 더딘 것이 미덕이며 떠나는 일이 일상이 되는 곳. 전라도의 종착역 여수에서 그는 소설을 썼다. 그리고 그의 소설보다 먼저 접하게 된 이 산문집을 통해 나는 섬이라는 곳이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이자 이별과 쓸쓸함만큼은 풍족한 곳이며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곳임을 알았다. 나 역시 섬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고 돌아 온 여행객이었기에 생각하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의 큰 작가들 글을 한번 찾아 읽어보고 하늘의 뜻과 맞닿아 있는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한 일 년 고민 좀 해봐.”

 

당장 쓰는 기술을 원했던 영민하지도 않고 재주도 없었던 탓에 한 사십 먹어서 괜찮은 소설집 하나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숙제가 마음에 들었다. ‘소설이든 삶이든 궁리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대상 아니던가.’ (p.165) 하고 궁리한 끝에,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이 의미를 잃는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는 그의 말 역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맞는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운동장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푸른 바다였기에, 파란색과 더불어 흰색 크레용이 바닥났던 유년 시절. 그리고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바다 이야기를 그려내는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채운 모든 비문학적인 것은, 그의 문학을 키우는 데 분명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라 답하는 소설가이지 않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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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8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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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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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뉴욕의 이미지는 ‘CSI’였다. 많고 많은 이미지 중에 하필 CSI라니 싶지만 정말 그랬다. CSI 시리즈 중 뉴욕 시리즈를 가장 열심히 챙겨봤는데, 한 편 한 편 챙겨보면서 자연스레 뉴욕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하고 멋진 곳이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어둡고 쓸쓸한 곳. CSI를 통해 느낀 뉴욕은 그런 도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몇 년 간 가져왔던 뉴욕의 이미지는 이 책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게 되면서 삽시간에 바뀌었다. 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그리 쉽게 바뀌나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드라마로 접한 이미지의 뉴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뉴욕에서 살아온 사람의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본질은 블로그이고, 내가 쓰던 블로그는 절반쯤의 일기로, 대체로 사적인 글이었다. 이들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었고, 오랜 기간 정해진 주제 없이 그날 느낀 것을 지속적으로 써온 글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 글들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9)

 

라고 했지만, 내게 있어 이 책은 결코 위 의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 속의 구절처럼 달이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달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 기분이었다. (p.15)’는 구절을 인용하면 표현이 될까?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예술 이야기가 어쩜 그리 재밌던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미술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예술이라는 세계에 말이다. 이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절반쯤의 일기이며 대체로 사적인 이 글이 도리어 사적이어서 마음에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10)

 

이 구절은 이 책의 서문에 담겨있었고 그래서 나는 책의 시작부터 사적으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에드워드 호퍼와 에디 세즈윅, R.B. 키타이 등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했고, 시는 명사고 산문은 동사라고 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에는 무릎을 쳤다.

 

인간에게만 시가 있고 예술이 있듯,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고 역설이 있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p.102)

 

라는 구절을 읽고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라서 한참을 여운에 잠겨있기도 했다.

 

이다지도 사적인 동사 앞에서, 나는 뉴욕의 이미지를 새로 그릴 수 있었다.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아니, 이 모든 것보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찐하게 알려준 작가님이 살아온 멋진 도시라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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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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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할 책을 고르다보면, 책을 선물하는 그 시점의 내 심리상태가 파악되곤 한다.

 

선물을 받는 사람의 취향을 우선순위로 둘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내가 읽은 책 중에 이 사람이 읽어도 괜찮겠다 싶은 책을 고른다. 이를테면,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나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와 같은 책. 나만 읽기 아깝고, 선물하면 그 기쁨이 두 배가 되는 책들. 이도 아니면 선물을 하는 때에 내가 가지는 관심사가 반영되어 책을 고를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신간평가단 활동을 3기수째 해오면서 매달 신간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 책도 그런 습관으로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으로 미루어 볼 때 지금의 내 관심사는 오늘, , 재미 이렇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며칠 전 퇴근하고 만난 친구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신나게 대화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의 재미를 위해 오늘을 버티는 나(자신)'에 관한 대화. 친구에게 내일의 재미는 여행이었다. 내게 있어 '내일의 재미'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의 말은 맞았지만, 재미는 언제 어떤 무엇으로 바뀔지 모르는 일이고(야구가 무슨 재미가 있냐고 생각했던 몇년전의 내가 야구에 빠져 살듯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중요한 건 '재미가 있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재미있는 게 '오늘'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떠나서 사실 이 책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저자 '김혜남' 덕분이었다. 심리학 서적의 저자로만 알고 있던 작가님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자연스럽게 목차를 살펴보게 되었고, 이 책을 선물하자고 마음먹었다. 책 선물이라는 게 참 묘해서, 지금이 아니면 이 책을 선물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먼저 읽고 선물하는 게 아니어서 어색하긴 했지만, 어색해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좋은 책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이 책, 김혜남 작가님의 에세이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작가님이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 소개에 따르면 하루하루 잘 버텨 내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외로운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인데, 나는 그 중 내가 쉽게 절망하지 않는 까닭이라는 글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작가님은 이 챕터에서 도종환 시인의 시 폐허 이후를 인용하며 자신도 시에 나오는 저를 버리지 않는 풀이 되고 싶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대로 포기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나에게는 고통을 대신 겪어 주지 못해도 많이 아프냐며 손잡아 주고 같이 울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내가 절망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p.33)

 

이 구절이 와 닿았던 건, 앞서 병으로 인한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도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고, 그래서 그 시간을 기다렸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 작가님은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생각하면 아득히 먹먹해졌지만 작가님이 지켜온 밝은 분위기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한 장 한 장 흡족하게 읽을 수 있었다.

 

모든 챕터는 아니었지만, 챕터마다 그 이야기에 맞는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시거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서 들려주시는 것도 참 좋았다. 어릴 때 읽었던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에서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구절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남겼던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라는 말도 이 책을 통해 좀 더 와 닿았다.

 

작가님의 버킷리스트 중에 7번째, ‘책 한 권 쓰기에 눈길이 간다. 그동안 다섯 권의 책을 냈지만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책 한 권을 쓰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마음이 넘치게 따뜻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앞서 읽었던 구작가님의 에세이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으며 써내려갔던 버킷리스트를 다시금 꺼내들었다. 그리고 빈칸에 이렇게 써 넣는다.

 

이 책처럼, ‘내 마음을 넘치도록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책 한 권이라도 더 찾아읽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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