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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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을 완독했다.

1.

2021년 김연수 다시 읽기의 첫 책으로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다. 지난 여름 내게 왔으나 뜻하지 않은 일로 읽기를 미룬 책이었다. '다시' 읽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가진 책부터 읽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완독한 지금에야 그 생각이 옳은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강요받던 찬양시를 마침내 쓰는 마음과, 그뒤 삼십여 년에 걸친 기나긴 침묵을 이해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옛말과 흑백사진과 이적표현의 미로를 헤매고 다닌 작가의 선물과 같은 이야기.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며 자신의 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시인과, 그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을 그려낸 작가. 반 년이나 늦어졌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과 그 안에서 쓰이는 말이 어려울 때면 나는 내가 챙겨 보았던 뮤지컬 작품들을 생각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혜산역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그녀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며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런 곳에서, 오랜전에 잊어버렸던 시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여학생 시절, 국어 선생을 따라 외웠다는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은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p.196)

젊은 소설가가 이십 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니 자연스레 기행도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그즈음 그는 도쿄의 기치조지에서 살면서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 이듬해 졸업을 앞두고 멀리 눈 쌓인 후지산이 보이는 이즈반도를 한 바퀴 여행하고 서울에 돌아와보니 구인회라는 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 구인회의 멤버 중에서 이상과 유정은 젊어서 죽고, 기림과 지용은 전쟁 뒤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됐으며, 상허와 구보는 북으로 와 이십 년 전의 일을 추궁받고 있었다.

(p.98-99)

전자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고 후자는 '팬레터'. 뮤지컬 덕후이기에 가능한 독서였지 싶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거기에 뭐가 적혀 있는 줄 알고 그걸 가져와? 북조선이라고 엔카베데(NKVD)기 없겠어? 남의 일에 끼어들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구."

(p.37)

는 미드나잇 시리즈를 떠올리게 했고, 소수민족들의 언어와 민요 등을 채집할 테이프 레코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영화 '콜드 워'가 떠오르기도 했다.

3.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p.32)

소설 전체를 통틀어 나는 이 구절에 가장 마음이 쓰였는데, 이어지는 준의 말 때문이었다. "이제는 자네가 자네의 시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해." 전선을 따라 끌려다니며 기행이 맡긴 시에 많이 의탁했던 준이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고, 기행은 대답 대신 어느 틈엔가 손바닥만한 마당을 희뿜하게 비추고 있는 달빛을 바라봤다.

'희붐하다'는 표현을 찾아 보았는데, '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약간 밝은 듯하다'라는 뜻이었다.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에,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은 그가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습을 표현한 우리말인 것만 같았다.

4.

작가님이 이 소설을 쓸 때 자주 들었다는 음악 3곡을 이 글에 기록해둔다.

김계옥, <눈이 내린다> (옥류금 연주)

아와야 노리코 <남의 마음도 몰라주고>

바흐의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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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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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기,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가 서 있다. 자신은 어디에 가까운지 파악하고 그 뒤에 가서 서보라고 한다면 나는 여지없이 맥시멀리스트 뒤로 갈 것이다. 장서가로 사는 한 짐이 많은 삶을 피할 길이 없다. 책만큼은 평생 덕질하겠지 싶어서.

책은 내가 덕질해 온 분야 중 가장 물성이 높은 분야다. 전자책도 많이 읽지만 종이책에 비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물성이 낮았던 분야는 무엇일까. 뜻밖에도 야구였다. 8년 간 삼성라이온즈 팬으로 살면서 내게 남은 건 마킹 된 유니폼 한 벌, 싸인볼, 팬북, 마스코트 피규어, 직관 티켓이 전부다. 1년이 갓 넘은 공연 덕질에 비하면 햇수 대비 소량이다. 공연 덕질로 말할 것 같으면 굿즈, 없어서 못 산다. 내줘요 동그란 거(OST 혹은 DVD앨범)...

신발, 옷, 악세사리, 화장품은 욕심이 없어서 물건이 없는 편이라 이쪽으론 이야기 거리가 없다. 대신 문구류를 좋아해서 연필과 만년필과 노트를 조금씩 갖고 있다.




2. 어느 날 1200자 책장을 두 개나 들인게 무색하게, 책을 바닥에 쌓기 시작하면서 물건 정리에 심각성을 느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사 모은 거지? 그때부터 비우기에 관심이 생겼다. 하루아침에 미니멀한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루라도 덜 맥시멈할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구매해둔 태미 스트로벨의 『행복의 가격』을 다시 읽었고, 유튜버 Erin Nam의 영상을 챙겨보았다. 후자는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는데, 활자를 읽으며 비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라는 제목 앞에서 깨달았다. 비우기는 이렇게 직관적인 이유에서 시작하는 거구나. 내 상황을 대입해 이야기하면 '1200자 책장이 두 개나 있는데 바닥에 책이 쌓이기 시작해서 비우기를 시작했다'가 될 것이다. 그저 정리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리하는 일이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결국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였기 때문에 채널을 구독했고, 그간 업로드 된 영상을 꾸준히 챙겨봤으며, 이야기를 한데 모은 이 책을 찾게 된 것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 부분이다.


몇 달 동안 쉼 없이 물건들을 비우면서, 오랫동안 쓸모없는 물건을 ‘굳이’ 짊어지고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깊은 서랍장 안쪽에 있던 선글라스와 손목시계가 그랬고, 이사 온 뒤로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옷이 그랬고, 먼지만 소복이 쌓여 있는 전자제품 상자가 그랬다. 자연스럽게 짐이 된 그 물건들은 알게 모르게 내 삶과 생활을 무겁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고단하게 느껴졌다. 내 공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은 문득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들리지 않는 잔소리를 해댔다. “나 빨리 치워야 할 걸? 너 지금 쉴 때가 아니야. 얼른 청소하고 설거지해!”

필요 없던 물건들이 천천히 사라지자 생각 이상으로 삶이 쾌적해졌다. 우선 집안일의 압박감이 줄었다. 또 쌓여 있던 물건처럼 묵은 감정 역시 사라졌다. 짐이었던 물건을 비운 것뿐인데 이유 없이 복잡하던 마음까지 해결된 것이다. (p.139)



정리를 시작하며 깨달았다. 물건을 정리한다는 건 비단 물질적인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 물건에는 지난 시절의 추억이, 저 물건에는 끝까지 쓰고 버리겠다는 고집이, 그 물건에는 충동구매로 얼룩진 후회가 깃들어 있었고 물건과 함께 그 마음들을 비우는 것이 '정리'의 완성이었다. 고로 나는 방에 물건을 쌓아두는 동시에 내 마음의 짐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인상 깊었던 건 이 구절.


물건은 물건일 뿐


물건은 나에게 편리함을 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기도 한다. 일의 능률을 높여주거나 쾌적한 생활을 도와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물건들에 의지하고 도움받으며 살아간다. 물건 없는 생활을 꿈꾸지만, 사실 물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전보다 반 이상은 줄어든 물건으로 그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참 대견하다. 


같은 미니멀 라이프라도 사람마다 각자 더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유난히 물건 비우기에 집착했다. 무엇보다 ‘돈의 힘’을 알아버린 어린 시절부터 생긴 물욕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우는 기쁨을 알고, 비워진 공간에 물건이 아닌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내 생활을 천천히 돌아보려는 진중한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채워졌다. 쉽게 물건을 사던 습관도 자연스럽게 고쳐졌다. 사실 나에게는 그게 가장 필요했다. 나는 오랫동안 물건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조바심을 버리고, 가진 물건으로 나를 평가하는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금,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제서야 물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확실해졌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절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 기억하고, 추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물건에 너무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내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해, 일의 능률을 위해, 즐거운 시간을 위해 필요하면 갖는다. 열심히 사용한다. 충분히 썼다면 비운다. 물건의 용도는 그뿐이다.

(p.205)


이에 대한 내 생각은 반반이다. 물건은 나를 대변해주기도 하지만 대변해주지 않는다. 물건은 내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취향의 소유자인지 말해주는 점에서 일부는 대변할지 모르지만, 물건이 곧 그 사람은 아니기에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우울할 날엔 물건을 사며 기분을 풀던 때도 있었는데, 정리를 시작한 뒤로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오히려 물건을 사지않게 되었다. 물건 때문인지 소비를 했기 때문인지 기분이 일시적으로 달라지긴 하지만, 그렇게 사들인 물건으로 다시 기분이 울적해졌기 때문이다. 위 구절의 제목을 곱씹어본다. 물건을 물건일 뿐이다.



3. 오늘은 외출하는 김에 중고매장에 책을 판매하기 위해 두 권을 챙겨나갔다. 두 권뿐이라 택배로 보내기엔 아까워서 선뜻 판매하지 못했던 책들이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우기 위해서 두 권을 들고 나오다니. 친구가 그런 나를 보고 정말 변한 것 같다고 했다. 타이밍을 놓쳐버려서 내내 들고다니다 집에 오는 길에야 비울 수 있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이 책들을 찾는 사람이 많을 때 비울 것. 이것도 정리를 시작하고 배운 것 중 하나다. 최근에는 tvN의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우면 공간을 재배치 할 수 있고, 재배치 하고나면 원했던 것이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이 탈바꿈한 공간이고,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게 해준 시간이고, 사랑을 챙기느라 좁아진 꿈에 대한 위로가 그것이다. 내가 시작한 정리는 드라마 같은 변화를 맞이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정리 일기를 쓰고 불필요한 물건을 늘리지 않으며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는 일상을 계속할 것이다. 나의 정리 일상이 누군가에게 "야, 너도 정리할 수 있어."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연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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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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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년은 말을 더듬는다. 엄마는 그런 아들을 걱정해 언어 교정원에 보냈다. 2년 전에 간 언어 치료소와는 달랐다. 그때 담당 선생은 정말로 소년을 치료하려 들었다. 그런데 이곳의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웅변 학원과는 다르단다. 말을 잘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야. 말을 하게 해 주는 곳이지.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할 순 없는 법이거든. 용기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내라고 할 수 있지만 용기란 게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에겐 그렇게 말해선 안 돼. 당연하지. 용기가 없으니까. 힘없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도 이상해. 힘이 있었으면 힘을 냈겠지. 안 그래?

(p.10-11)

스프링 언어 교정원의 치료 과목은 이렇다. 말더듬증 치료. 자신감 향상. 스피치. 성격 개조. 인생 연구. 대화의 기술. 청소년 상담. 소년은 언어 교정원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잘하지 못해 아무거나 다 하는 능력 없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원장은 생각에 빠진 소년을 '강의실 A'로 데려갔다. 정상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은 곳에서, 원장은 네임 펜으로 이름표에 뭔가를 쓴 뒤 소년의 목에 걸었다.

"무연입니다."

"반갑습니다. 무연."

소년의 이름표에는 '무연'이라 적혀있었다.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두 이름표를 달고 있었는데, 이름이 죄다 이상했다. '루트', '마야코프스키', '핑퐁', '모티프', '처방전', '곰곰이'. 알고보니 최근 가장 말하기 어려운 단어로 이름을 짓고 한 달간 그 이름으로 사는 거였다. 말을 안 하거나 노트를 쓰지 않는 사람은 원장이 직접 별명을 지어 준다.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원장의 말에 당연하게도 소년은 거의 소개를 하지 못했다. 무연중을 다닙니다, 라고 말하려 했지만 무연이라는 단어부터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소년의 이름은 그렇게 '무연'이 되었다.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단어로 이름을 지어 주는 걸 보니 원장이란 자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이 책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열네 살 소년이 언어 교정원에 다니며 언어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은 소설'인데, 이 책의 분위기를 소개하기 위해 도입부의글을 조금 풀어보았다.

2. 올해 초반에 내게 난청과 이명(耳鳴)이 찾아왔고, 이명과 상반기를 함께 보내는 동안 말수가 크게 줄었다. 업무에 관한 대화를 할 땐 문제가 없었지만, 모처럼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종종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대화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 길어질 때, 단어를 더듬는 불특정한 상황이 오면 매번 당황했다. 말을 좀 더듬으면 어때, 라고 생각했으면 괜찮았을까. 말을 더듬는 일은 말을 더듬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어져서 스스로를 깨나 괴롭혔다.

책이란 게,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것 같아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만난 것도 그랬다. 민음북클럽에서 진행된 '손끝으로 문장읽기' 의 이번 주제가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였고, 누군가의 피드에서 이 책을 추천받은 것이 기억나 골랐던 것인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이 책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말하는 것에 대해 크고 작은 고민을 하고보니 주인공에게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자. 언어 교정 시간 중 '자기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우주에서 가장 싫은 국어(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나의 말더듬증을 고쳐 주는 것을 국어를 가르치는 자로서의 최대 목표로 삼은 듯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 교정원에서 친구가 된 루트와 곰곰이는 그런 국어에게 복수하자는 말을 꺼낸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복수한다는 걸까? 복수하는 걸 도와준다고? 무슨 수로? 나는 결국 국어에게 한 번 더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야 복수 해달라고 부탁한다. 학교에 국어가 있다면 집에는 엄마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애인이 소년을 괴롭힌다.

집과 학교, 안팎으로 어려운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 읽다보니 금세 완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 마침내 맞이하는 결말 앞에서 기뻐했고, 스프링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식구들 한 명 한 명에 정이 들어버린 나머지 헤어짐이 아쉬웠다.159쪽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소설이지만 작품이 주는 따뜻함은 결코 분량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설이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구절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이이모, 이모는 왜 살아요?

이모는 웃었다. 그리고 나를 껴안아 줬다.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이모는 두 종류의 라켓을 보여 줬고 둘 중 하나를 골라 보라고 했다. 하나는 공격에 유리하고 주걱처럼 둥글고 평평한 라켓은 방어에 능하다고 했다. 나는 주걱을 골랐다.

음, 이건 셰이크핸드야. 초보자들이 잡기 가장 좋은 라켓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선수들도 선호하는 라켓이야. 이상하게도 탁구는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선수보다 셰이크핸드를 쥐고 방어하면서 경기하는 선수들이 더 많이 승리해. 세계적인 선수들도 대부분 셰이크핸드고. 어, 잘 새겨들어. 잘 방어하는 것, 공격하지 않더라도 일단 부드럽게 넘기는 것, 그게 중요한 거야. 계속 잘 방어하는 건 공격보다 훨씬 강한 공격이거든.

(p.79-80)






이이이모, 이모는 왜 살아요?

이모는 웃었다. 그리고 나를 껴안아 줬다.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여기 나오는 아들이 엄마에게 복수하려고 평생 칼을 갈고 또 갈았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용서하기로 했다는 게 흐름상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왜 마마말이 안 돼요?

넌 그게 돼?

…….

너도 안 되면서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 있고 싫지만 좋을 수 있으니까. 복수하고 싶으면서 용서하고 싶은 것도 가능하지.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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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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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본 영화 중 가장 갑분싸했던 결말은 영화 '미성년'이 아닐까.

이런 말은 백 마디 늘어놔도 모자르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표현하던 영화 속 남자주인공이 떠올랐다. 같은 뜻이라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그것을 보여주는 것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구나 싶었다. 남들에게 미성년의 결말이 주는 충격이 100이라면 나는 50의 충격을 받았는데, 그건 영화 '행복 목욕탕' 덕분(?)이었다. 아니 뜻은 알겠는데... 꼭 그렇게까지 보여줘야만 속이 후련했냐...! 싶은 심정이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내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영화도 있다. 인생 영화로 꼽는 '캡틴 판타스틱' 속 장면이 그랬다. 영화에는 한 인물의 죽음이 그려지는데, 고인의 장례 방식을 두고 두 가족이 대립한다. 산 자의 방식대로 장례를 치룰 것이냐, 고인이 생전에 요구했던 방식대로 장례를 치룰 것이냐. 나라면 전자와 후자 중에 어떤 방식을 택했을까. 나는 선뜻 택하지 못하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저렇게 어린 아이가 죽음 앞에서 겁먹지 않고 행동할 수 있다니. 죽음을 오래 전에 접하고 고민해봤더라면 나 역시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 책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택한 건 위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애정하는 김혼비 작가님의 추천사에 혹한 김에 이번에야말로 죽음에 관한 책을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저자의 이름은 케이틀린 도티. 로스앤젤레스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다. 어릴 적 쇼핑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어린아이의 추락사를 목격했다. 그 아이는 귀퉁이에 부딪혀 넘어지며 10미터 아래로 떨어져, 반질반질한 카운터에 얼굴부터 닿아 소름 끼치는 쿵 소리를 냈다(p.62)고 한다. 저자는 그날 이후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사로잡혔다. 대학에선 중세사를 전공해 죽음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의 한 화장터 업체에서 하루에 수십 구씩 시체를 태워가며 현대 장례 문화의 최전방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획일화된 장례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장례 문화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죽음을 부정하는 문화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도록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가 하면,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를 통해 죽음에 대한 담론을 친숙하게 풀어놓는다.

나는 그녀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창구 중 책을 통해 만난 것이었다. 시체를 방부처리하는 것도 낯설었지만, 화장 업체의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족의 시신이 있는 지역을 입력하고, 소정의 서식을 인쇄하고, 거기에 서명하고 팩스로 서류를 보내고, 신용카드 번호를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2주 후 집배원이 등기우편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건네주는 서비스를 접할 땐 어안이 벙벙했다. 장의사도, 슬픈 얼굴도 필요 없고, 가족의 시체를 마주할 필요조차도 없다니. 이 모든 것을 피하는 데 저렴하게 단돈 799.99달러면 된단다. 이 부분은 책 뒷부분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마따나 미국 장의사의 일상이겠거니 감안하고 읽었다.

비단 미국의 장례 문화와만 다르겠는가. 1960년대 이전에 와리족은 장례 과정에 식인 풍습이 존재했다.

또, 티베트 고산 지대에서는 땅에 바위가 너무 많아 매장을 하지 못하는 데다 나무마저 드물어 화장에 필요한 장작을 만들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망자를 처리하는 색다른 방식을 발달시켰다. 직업적인 로규빠(시신을 부수는 사람)가 시신에서 살을 잘게 자르고, 남은 뼈는 보리 가루와 야크 버터와 함께 빻는다. 시체는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놓아두어 독수리들이 먹도록 한다. 새들이 날아들어 그 시체를 파먹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실어 나른다. 이렇게 남은 살을 다른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것은 시체를 처리하는 너그러운 방식(p.130)이란다.

이전의 나였다면 각국의 장례 문화를 접했을때 그저 낯설었을 테지만, 이 책을 통해 장례 문화에도 귀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설적인 정신분석가 칼 융은 죽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원주민 고유의 전통으로, 종교적인 이유로, 마케팅과 소비주의 등등 그 어떤 이유로 시작되고 굳어졌든 간에 인간이 죽음과 맺는 관계는 오직 그 사람만의, 그 나라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린 시절에 알고 싶었던 버전의 이야기다. 어린 아이를 사랑과 죽음의 실상 앞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를 해피 엔딩이라는 거짓말에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다. 디즈니 공주 시대의 아이들은 동물들이 조연으로 나오고 비현실적 기대로 가득 찬, 눈가림 버전을 보며 자라났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현명하게도, 해피 엔딩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보는 세계는 오직 한 가지 결말만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모습들이 멸하고 우리 심장이 죽고, 해체되고, 절단되고, 처절한 고통을 겪는다."(p.208)

이 구절을 읽는데 2년 전 인상 깊게 본 애니메이션 '코코'가 떠올랐다. 애니메이션마다 빌런을 통해 '악'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죽음'을 소재로 러닝타임 내내 꽉 채운 작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죽음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니. 조지프 캠벨의 말마따나 우리가 보는 세계는 오직 한 가지 결말만을 낳지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해진 사회라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언제든 이야기할 수가 있다면 해피 엔딩을 마냥 경계할 필요가 없다. 해피 엔딩 너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글은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글이다. 이 글을 소개하고 싶어서 말이 길었다.

나는 한밤중 묘지에 출몰하는 존재를 두려워하라고 문화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들을 생각했다. 둥둥 떠다니는 유령이 악마같이 붉은 두 눈에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좀비가 그 퉁퉁 붓고 썩어가는 손을 근처의 무덤 밖으로 내민다. 오르간 소리가 점점 커지고, 부엉이들은 부엉부엉 우짖고, 문들은 삐걱댄다. 이것들은 무슨 싸구려 무대장치 같다. 그중 어느 하나만 삐끗해도 죽음의 정적과 완벽함은 무너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바로 그런 이유로 무대장치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정적 자체가 가만히 응시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피가 내 혈관 속을 돌아 그 밑에 깔린 부패한 시체들 위로 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 있다, 있을 수도 있는 많은 내일을 품은 채로. 그렇다, 지금 세운 여러 계획들은 내가 죽고 나면 산산조각 나버리거나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육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만 선택할 수 있다. 죽음이 28세에 찾아오든 93세에 찾아오든, 나는 만족한 채 무(無)로 돌아가 스르르 미끄러져 죽기로 선택했다. 그래서 내 몸을 이루는 원자가 나무들을 가린, 바로 그 안개가 되도록 말이다. 죽음과 묘지의 정적은 형벌이 아니라 잘 살아낸 삶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p.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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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 성매매라는 착취와 폭력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의 용감한 기록
봄날 지음 / 반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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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9일자, 그것이 알고 싶다의 클로징 멘트를 기억한다.

세상에 꺾어져도 좋은 꽃은 어디에도 없고, 외면 받아 마땅한 존재 역시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앞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또 편견이 가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계속해서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며 얼어붙은 도끼를 깨는 느낌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1007회 뉴질랜드에서 온 SOS 쪽지와 1008회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을 다룬, '꽃'들에 관한 인권보고서 시리즈였다. 뉴질랜드에서 감금당한 상태로 성매매를 해야했던 여성들, 국내에서 인신매매나 납치를 당한 뒤 성매매를 해야했던 동두천 기지촌의 여성들의 이야기. 클로징 멘트의 서두에서 이 시리즈를 보며 불편함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세상에 억울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성매매 여성들의 억울한 얘기까지 들어야 하느냐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라는 멘트를 듣는데, 머리가 멍했고 이어지는 멘트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이 시리즈를 어떤 마음으로 챙겨 보았던가.
그리고 2년이 지나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보았다. 2년 전 나를 흔든 멘트는 영화 속 소영의 대사로 돌아왔다.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사연만으로 어떤 이의 일을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이 책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민음북클럽 '밑줄긋고 생각잇기' 9회 – 주변부의 삶, 그리고 인간 존엄성으로 선택하게 된 이 책은 받아든 순간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밖에선 법 없이도 산다는 아버지는 집에서는 절대 권력의 폭군이었고, 동네 삼촌은 그림책을 읽고 있던 저자를 강간하고 100원짜리 동전 두개를 손에 쥐어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관할 경찰서를 잘못 찾아가는 바람에 그놈은 뺨을 몇 대 맞고 아버지와 헤어졌다는 해프닝으로 끝난 열여섯 살에 겪은 강간 사건. 임신한 저자를 버리고 떠난 군인 남자친구. 공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따라 시작한 가라오케 아르바이트. 열여덟 살에 유입된 업소, 바다 건너 낯선 섬 제주의 업소들, 낯선 도시에서 저자를 기다리던 유리방, 보도방과 시골의 티켓다방까지 20여 년 동안 저자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들.

몇 번이고 다른 책을 고를걸 후회했지만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건 2부 '나를 다시 찾아가는 시간'이 뒤에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인권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각종 법률 지원과 심리상담은 저자의 탈성매매에 큰 힘이 되었다. 도움을 받은 것으로 끝내지 않고, 성매매 경험 당사자로서 상담원과 내담자가 되어 언니(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내담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업소에서 쓰는 '언니'라는 호칭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함께 연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고.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용기를 낸 저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남의 성을 사는 행위를 쉬쉬하고 덮어주는 것, 더 어린 여자의 성을 구매하기 위해 어플을 만들고, 성행위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해서 돌려보며 웃는 구매자들을 심판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 사회 모두가 방관자다. 성매매의 경험을 성찰하는 것은 경험 당사자만의 몫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해 '필요악'이라는 궤변으로 포장하는 문화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뿌리 깊은 성매매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이 사회가 비로소 안전해지지 않을까?
성매매 경험을 했던 20여 년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성찰한다고 해도 나에게 휘둘러진 폭력의 잔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내 친구가, 내 가족이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 계속해서 '나답게'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상상하고 꿈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p.425)

언제나 상상하고 꿈꾸며 살아갈 '봄날'님께 며칠전 읽은 구절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한 여성이 자기 자신을 옹호할 때, 그는 사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주장도 펼치지 않으면서 모든 여성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에머 오튜 지음, 박다솔 옮김, 창비, 2016)에서 재인용.

2000년, 2002년 군산 화재사건으로 별이 된 언니들을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용기내어 글을 쓰고 책을 내주신 봄날님과 반비에 심심(甚深)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책과 함께한 지난 4주간의 조각들


밑줄긋고 생각잇기 9회 – 주변부의 삶, 그리고 인간 존엄성
내가 선택한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도착.
책 소개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20여 년간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이 써내려간 삶의 기록이다. 저자 봄날은 열여덟 살에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기까지, 그리고 그 후 업소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증언한다.

저자가 기록한 삶의 경험은 많은 한국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처하게 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서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가계를 짊어져야 했던 상황, 가족 내 성차별과 아버지의 가정폭력, 청소년 여성 노동자로서 겪은 부당한 노동착취, 저개발된 지방 도시, 직장 내 성폭력과 잘못된 사건 처리, 자원이 없는 젊은 여성이 당하게 되는 성 착취.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여성들이 생애단계마다 겪게 되는 전형적인 피해의 경험들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들이 한 여성의 삶에서 어떻게 서로 얽히고 교차하면서 성매매에 유입되고 또 빠져나오기 힘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책은 개인의 생애사를 통해서 성매매가 결코 특수하고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며, 한국 사회의 수많은 젠더 이슈들이 첨예하게 만나는 지대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세밀하게 기록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빈곤, 성차별, 노동 문제, 지역 간 격차, 남성들의 성폭력적 놀이문화 등이 성매매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책 소개 출처 : 예스24

쉽지 않은 책이지만 끝까지 읽어보겠다. 




입술이 예쁜 마담은 나더러 어디서 일했냐고 물어보았다. 다 말할 필요는 없어서 충청남도 D시에서 일했다고 했다. 사우나에서 나눈 이야기는 간단했다. 이 목욕탕은 여러 업소 아가씨들이 이용한다고 하면서 다른 업소 마담이나 아가씨들이 보는데 혼자 때를 미는 천박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목욕탕 이모에게 세신을 받으며 몸매 관리를 하라고 했다. 이 마담도 보통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중에 마담은 겉옷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는 속옷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속옷은 꼭 세트로 입으라고 했다. 속옷을 세트로 입지 않은 아가씨들에게는 "네가 때밀이 이모냐?"라면서 면박을 주었다. 속옷조차도 업주나 마담이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는 뼛속까지 성매매 여성임을 알려주었다.
-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p.70-71
저자를 때린 아버지와 어린 저자를 성추행했던 삼촌과 저자를 강간하며 웃던 그놈, 임신한 저자를 버리고 간 군인에 대해 쓴 1장 "어떻게 성매매를 하게 되었나요?"를 지나면, 2장 열여덟 살에 유입된 업소 이야기가 그려진다. 1장을 읽으며 몇번이고 이게 경험담이 아니었으면 했다. 2장도 쉽지 않은데, 겨우 1부―긴 터널의 2장을 읽고 있으며 4장이 남았고, 2부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에필로그의 제목처럼 이 책을 덮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 책 위에 서 있을 것이다.


그 남자를 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그리웠다. 거리의 모든 남자가 그 남자로 보였고 같이 보낸 시간들이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이 나 나를 괴롭혔다.
나는 다시 업소로 돌아왔다.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시간들은 술로 달랬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위해 더 모질게 스스로를 학대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남자를 영원히 내 가슴에서 떠나보내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고 많은 것을 버렸다.
그 남자와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를 이용하고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던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절망과 좌절을 배웠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랑을 그 남자로 인해 알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p.124)
화가 나고, 숨이 턱 막히고, 읽는 것에 속도가 나지 않을 즈음에 이 이야기의 차례가 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저자 봄날에게 찾아온 그 남자.

우리가 자주 찾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잔 입에 털어 넣었을 때 그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업소에서 일을 그만둘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차라리 빚을 갚아달라고 할까? 그러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할까? 그런데 나는 왜 망설이고 말을 못 하지? 답답하고 갑갑했다. 내가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이 남자는 들어줄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 앞에서는 사람과 사람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길 바랐다.
(p.117)

읽는 나도 무너져 내렸는데 저자는 이 시간을 어떻게 건넜고, 글로 써내려갔을까.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는 구절에 마음이 쓰여 눈을 떼지 못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기억은 그 시간에만 못박아두는 것만 같아서.



업소 생활을 하면서 화재 사고를 목격한 적이 없는 나는 도대체 몇 명의 아가씨가 죽었기에 여기까지 이 난리가 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훗날 청소 이모가 말하던 그 화재 사건이 군산 대명동 화재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현재 시행되고있는 성매매방지법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업소 창문의 창살을 없애면 성매매 여성들은 안전해질까? 소화기만 설치하면 끝일까? 여성들이 겪는 착취는 문제가 아닌 것일까?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화재 사건보다 잠이 더 중요햏고, 오늘은 매상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 진상을 만나지는 않을지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p.211)
어제 업로드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이 구절에 담긴 '군산 대명동 화재 사건'과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를 찾아보고 글을 쓰려는데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2000년 9월 19일, 군산시 대명동의 속칭 '쉬파리골목'의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구출되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20대 여성으로, 10대에 가출하였다가 포주에게 붙잡혀 인신매매되어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화재시 탈출하지 못한 이유가 성매매여성들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창문엔 쇠창살을 달아놓았었고, 출입구는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궈놓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그 안에서 나가지 못하고 모두 질식해서 사망하였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고작 100m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으나 경찰들이 포주들에게 뇌물을 받고 이를 눈 감아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건 이후에도 포주들에게 뇌물을 받고 수사정보를 유출한 경찰들이 적발되어 구속되기도 하였다.
*
2002년 1월 19일, 앞서 화재가 있었던 '쉬파리골목'과 인접한 개복동 유흥주점 '대가'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14명의 성매매 여성과 남자업주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인신매매로 팔려와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업소 30m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으나 경찰들은 뇌물을 받고 이를 눈감아주었고, 소방공무원들도 제대로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았다. 대명동 화재 참사 이후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충격은 컸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맞닿아있는 사건을 접하니 머리가 멍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또 편견이 가득한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그해의 군산. 명복을 비는데 때란 없다고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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