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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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다기에, 『울지 않는 아이』를 먼저 읽고, 연이어『우는 어른』을 읽었다. 목차를 읽고 첫 장을 마주하는데 웬걸, 첫 장의 첫 구절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에 무언가 예정한 일은 없는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종종 있어 우습다. 예정이 없는데, 예정에 없는 일은 있다니. (p.10)

 

예정한 일이 없기만 한 건 아니지만, 위 구절처럼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나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읽게 된 것. 이 책을 읽게 된 일이 예정한 일은 아닌데,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행위로 우느냐 안 우느냐는 차치하고, 어른이란 본질적으로 ‘우는’ 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울 수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요. ‘울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진정 안도할 수 있는 장소를 지녔다는 것이겠죠. 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던 자신을 다소는 듬직하게 여겼지만, ‘우는 어른’이 되어 기쁩니다. (p.229 작가 후기 중)

 

진정 안도할 수 있는 장소를 지닌, 울 수 있는 우는 어른이 된 그녀의 에세이는 분명 성장 에세이다. 이 책의 목차처럼 크게 네 꼭지, 비가 세계를 싸늘하게 적시는 밤, 남성 친구의 방, 갖고 싶은 것들, 햇살 내음 가득한, 어슴푸레한 장소라는 시간 혹은 공간 속에서 그녀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기쁨을 표현하고, ‘지금’이 전부라는 찰나적인 태도로 나날을 살아가고, 때로는 그런 강아지들의 체질에 위로받으며(p.55), 가령 뜻하지 않은 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친, 신이란 존재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을 지나며(p.148), 아마도 자신이 반듯하기 때문에 타인을 믿을 수 있고, 자기 안에 악의가 없는 것이고, 아주 단순한 하이디의 선함이 하이디의 강함이라며 하이디처럼 선한 마음을 원하기도 하면서(p.194) 말이다.

 

그리고 그 성장 끝에서, 사무치게 와 닿는 구절을 만났다.

 

인생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 (p.217)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순이다. 모순인데, 사무치게 와 닿았다. 누구에게나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있고,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인생의 특별한 순간. 그런 순간을 당시에는 모르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프다는 점에서 청춘과 닮은 구석이 있는, 이 순간이 있어 우리네 삶은 애달프지만 살만하다.

 

열두 살 때나 지금이나 외톨이는 아니지만 외로운 여자고, 고독하고 히스테리컬한 여자,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성장 에세이를 읽으리라 예정한 일은 없었고, 그래서 예정에 없던 일이었지만 위 구절을 읽으면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면, 그리고 그 장소에서 울게 되면, 그 때 내 곁에 이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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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아이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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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를 꽤 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소설을 여러 권 읽었고, 특히 작년부터는 소담출판사에서 꼼꼼평가단으로 활동하면서, 그녀의 신작을 계속 읽어왔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로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었고, 꼼꼼평가단에 지원하겠다고 읽었던 『하느님의 보트』를 통해 에쿠니 가오리를 다시 보게 되면서, 이제는 그녀의 글을 제법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울지 않는 아이』와 『우는 어른』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에쿠니 가오리를 꽤 안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다. 적어도 에쿠니 가오리를 안다고 말하려면,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를 읽고 말해야 했다.

 

닥치는 대로 대충 살고 있는 탓에, 그때그때 쓴 줄잡아 8년치 에세이에는 당연히 에쿠니 가오리가 있다.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인 동시에 아내 에쿠니 가오리, 언니 에쿠니 가오리, 딸 에쿠니 가오리 등등 일상의 에쿠니 가오리가 한 가득이다.

 

가모이 씨는 인생이란 아이스크림 같다고 말한다. “인생의 여름날, 달달했던 그 아이스크림. 끝내는 시간과 햇빛에 녹아 없어져버리지만, 절대 남김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몸 온갖 곳에, 그 끈끈하고 달달한 감촉이 남아 있다”라고. (p.137)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책을 읽었었나 싶을 정도의 일상 속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지만 책 속 구절처럼, 절대 남김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 곳곳에 에쿠니 가오리가 녹아 있듯이, 이 책을 읽은 내게는 에쿠니 가오리의 글이 남아 있다. 가령, 이런 구절이다.

 

결혼이란 참 잔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고 마는 일이다. 서글프다. (p.146)

 

결혼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지만, 공감하게 만든 구절이었고,

 

나는 자신의 한심함에 어이가 없었다. 소설이나 영화라면, 바다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린 다음 순간, 바다에 있든지 또는 적어도 바다로 가는 차 속에 있을 텐데. 도무지 어쩔 방법이 없는데, 바다에 가고 싶고, 그것도 밤바다면 좋겠고, 어떻게든 바닷바람을 쐬고 싶은 심정은 절실했다. (p.178)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구나 했고,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는가, 하고 다그쳐 물으면 어떻게든 그곳에 내 발로 가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좀 더 복잡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그곳에 가보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 (p.200)

 

그곳에 가보는 행위로 쓰인 소설들을, 나는 읽어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가 후기처럼, 내가 읽어 온 그녀의 소설, 소설 속 이야기와 이야기 위에 놓인 캐릭터들을, 절반은 사랑하고 절반은 저주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에쿠니 가오리 『우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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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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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쓰는 마지막 서평은, 한순간의 실수로 컨설턴트라는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잃고 추락한 주인공이 고급 애완견을 산책 시키는 일을 하면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내용의 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전민식의 새로운 소설『13월』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 훈훈한 소설”이라는 심사평을 들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가 이번에는 정반대의, 사람 냄새와는 거리가 먼 차가운 소설로 돌아왔다고 한다.

 

맞다. 차가운 소설이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음모 가득한 비정한 사회를 그린 소설이고, 더 나아가 그런 사회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소설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게 가능해진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흔하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p.364 작가 후기 중)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안녕과 각자의 안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연말이지만, 『13월』을 완독하고 난 뒤 읽는 작가 후기에서의 ‘안녕’은 사무치게 섬뜩했다. 어느 겨울, 정읍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동의할 일이 생겨서 동의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소름 돋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의가 떨어짐과 무섭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몇 초 만에 알 수 있고, 근처에 CCTV가 있다면 무엇을 하는지 또한 알 수 있으며, 내가 그 곳에 서 있기까지 돈을 쓰고 서비스를 이용한 내역 정보를 통해 내 취향이나 이동 경로, 성향, 심지어 철학이나 친구 관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상상이 미치니 섬뜩했던 것이다. 그냥도 아니고 사무치게. 작가도 그러했고, 나 역시 그 ‘동의’를 통해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고아로 자라 일찍이 비행과 범죄에 노출되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꿈꾸던 명문대 학생이 된 재황. 하지만 그에게는 결코 평탄한 삶이 주어지지 않는다. 필연적인 가난으로 인해 위험한 유혹에 휩쓸리고 급기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마수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관찰자’라는 이름으로 재황을 ‘밥’이라 칭하며 그의 모든 일상을 기록하는 수인이라는 여자다. 수인이 소속된 곳은 ‘목장’이라는 수상한 이름을 간판으로 내 건 비밀 정부 기관으로 '인류를 위한 숭고한 프로젝트'라는 미명 하에 개인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인종을 개량한다는 엄청난 음모를 가진 곳이다.

 

라는 이 책의 주된 설정에, 주인공 재황은 우수한 유전 인자를 가진 인간이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키워진 인물이라는 설정이 얹어진다. 물론, 재황은 이 사실을 모른 채 계획된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살기 위해 24시간을 빈틈없이 살아간다. 때로는 소설을 쓰고, 때로는 승희를 그리워하며.

 

그런 재황을 관찰하는 수인은, 아버지의 불륜을 훔쳐보다 관음증과 조울증 등의 정신 질환을 앓았다. 누군가의 충분한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노력했으나 병력으로 인해 4대 보험이 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의 병을 능력으로 인정해주는 ‘목장’에 들어가게 되고, 그녀의 일상은 재황을 지켜보는 일로 가득 찬다. 그렇게, 그녀에게 재황은 점점, 전혀 모르지만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고 멀지만 가까운 존재가 된다. 벼랑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흔들리고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재황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인은 급기야 자신의 존재가 흔들릴 정도로 재황에게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보다 재황에게서 큰 위로를 받는 수인은 깨닫는다. 자신은 결코 재황의 앞에 나설 수 없는 재황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이봐, 수인 씨. 난 말이야 마루치를 내 가족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어.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버렸어. 왠 줄 알아? 매일 지켜보는데 한 마디도 건넬 수 없기 때문이었어. 무슨 소린 줄 알지? 그쪽은 아무 대답도 없는데 나의 애정은 무한히 가버리는 거야. 외사랑은 순수하면서도 고통스러워. 메아리가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외사랑만큼은 영원할 수 있어.” (p.260-261)

 

재황은 아무 대답도 없는데, 수인의 애정은 무한히 가버리고 수인이 재황의 그림자가 되어 재황을 관찰하던 그 시간이 끝나고 수인이 재황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시간이 온다. 그 시간의 수인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 ‘13월’을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 오기를 바라지만,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음모 가득한 비정한 감시 사회를 그린 이 소설 속에서라 그런지, 재황을 생각하는 수인의 마음이 애달팠다.

 

소설의 물음으로 되돌아가, 생각한다. 과연 나는 안녕할까? 답은 진즉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지 못하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무섭게 변했습니다. 저는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내 몸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던 문명의 이기들을 하나 둘 버리고 싶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p.365)

 

라는 작가의 말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되고 나아가 통제될 것을 알지만, 문명의 이기들을 버리지 못할 것을 안다. 그리하여, 앞으로 걸어갈 내 길이 한 층 더 불안하고 쓸쓸하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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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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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덴 자리에 찬찬히 얼음을 갖다 대듯이 게이스케는 매일 공책에 이야기를 썼다. 그럴 때만 외롭지 않았다. 넘쳐나는 말을 글자로 바꾸어 쓰고 있는 동안은 슬프지 않았다. (p.21)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무관심, 가난 때문에 친구들에게 집단 폭력을 당하던 게이스케의 유일한 ‘낙’이자 ‘구원’은 매일 공책에 쓰던 동화였다.

 

야요이의 마음은 유치원 다닐 때부터 좋아해온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만 해방되었다. 그 시간만을 버팀목 삼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p.69)

 

게이스케의 두 눈을 보고 숨을 삼켰던 야요이. 게이스케의 눈은, 야요이 자신이 알고 있는 눈이었다. 본 적 있는 눈이었다. 거울 속에서. 사진 속에서. 숨통이 막힌 듯이 답답한 감정을 어딘가 다른 곳에 가두어두고 온 듯한 눈. 얇은 막이 한 꺼풀 쳐져 있는 듯한 눈. 그 후로 같은 반이 된 게이스케가 몹시 눈에 밟혔던 건, 야요이 역시 아버지의 변태성욕으로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야요이에게 있어 구원은, 어릴 적부터 좋아해온 그림그리기였다.

 

그날부터 리코는 매일 국어 공책으로 마코와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에 공책을 펼치고 도중에 몇 번이나 연필을 깎으면서 오른손이 피곤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다리와 배 때문에 놀림당한 일. 특히 싫어하는 반 아이. 점심시간에 칠판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 소풍 갔을 때 내내 혼자였던 것. 할머니와 만든 여러 가지 추억. 히나단 안에 숨었던 일. 거기서 우연히 들은 엄마 아빠의 이야기. (p.133)

 

다리가 굽혀지지 않는 장애와 엄마의 임신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어둠 속의 아이’ 리코에게는 매일 국어 공책으로 이야기 하는 마코가 있었다.

 

축제 음악. 멀리서 작게, 하지만 귀를 기울이자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수화기를 꽉 눌러 댄 귀로 흘러 들어와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옛날에 들었던 그 축제 음악. 망대를 들고 바닷가 길을 나아가는 그리운 행렬. 핫피(예전 일본에서 하급 무사나 고용인이 착용하던, 소매가 짧은 상의 - 주) 차림의 남녀가 연주하는 대나무 피리와 큰 북. 전혀 변하지 않았다. 몇십 년이 흘렀지만 기억 속에 있는 소리와 똑같았다.

요자와는 곁에 둔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그 옛날의 저물녘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p.196)

 

자식도 없이 살아오다 아내마저 죽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계획하는 요자와를 살린 건, 그 시절 듣던 축제 음악이었다.

 

리코는 <하늘을 나는 보물>이라는 동화를 읽고 구원을 얻었고, 요자와는 편지를 받고 흔쾌히 축제 음악을 들려 준 사람 덕분에 구원을 얻었는데, <하늘을 나는 보물>은 게이스케가 쓰고 야요이가 그린 동화였으며, 요자와의 편지를 받고 축제 음악을 들려 준 사람은 다름 아닌 게이스케였으며, 게이스케는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요자와 덕분에 구원을 얻었다는 인연이 참 흥미로웠다. 이런 것이야말로 인연이지, 했달까. 그리고 어쩌면, 인연보다 더 이들을 구했던 건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있어 각자가 살았고, 끝내는 서로를 살린 그 ‘이야기’ 말이다.

 

아직 이야기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지어봐라. 뭐든지 상관없으니까 지어봐. 그러면 강해질 수 있어. 언젠가 힘든 일이 생겨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라고.

“이야기의 세계로 달아나라는 의미인가 싶었지. 선생님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줄 알았지. 그래서 그때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슬퍼졌지. 이야기가 현실을 구원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선생님은 마치 게이스케의 생각에 대답하듯이 이렇게 덧붙였다고 했다.

이야기의 세계로 달아나라는 뜻이 아니야. 이야기 속에서 다정함과 강함 등 여러 가지를 보고, 알고 나서 다시 돌아오는 거야. 다른 사람이 지은 이야기도 물론 괜찮아. 하지만 알고 싶은 것을 알려면 스스로 지어보는 편이 나아. 혹시 알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 해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자신이 지은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이니까. (p.253-254)

 

게이스케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요자와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이야기에 끄덕 끄덕, 수긍이 갔다. 나 역시 이야기 쓰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니까.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정말이지 이야기는 힘이 세다.

 

12월은 1년을 마무리하는 달이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달이기도 하다. 올 한해가 가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 못 다 이룬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내 이야기를 하나 둘 정리한다. 비록 메모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올 한해는 이렇게 살았구나, 토닥 토닥, 해가면서 말이다. 그 곁에,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이 책 『노엘』이 함께해서 따뜻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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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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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라는 이 책의 제목이 조르바를 환기했고, 조르바를 조우한 이윤기를, 조르바를 춤추게 한 이윤기의 글쓰기를, 조르바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테지만 끝내 조르바처럼 춤췄을 이윤기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멋있게 보이고 싶다는 제 생각을 비틀지 말라”는 1장부터 “번역을 할 때 말의 무게를 단다고 생각하라”는 2장, “당신의 글에서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는 3장, “유행하는 언어에도 보석같은 낱말이 무수히 반짝인다”는 4장,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면 신화의 언어를 보라”는 5장까지 총 5장에 걸쳐 쓰고 옮긴다는 것에 대한 이윤기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부분 부분 다시 읽은 뒤에야 나는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조르바를 춤추게 한 글쓰기는 곧 조르바이고, 조르바는 곧 자유이고, 자유는 곧 이윤기의 글쓰기였으며, 그의 글쓰기는 곧 자유를 갈망했던 이윤기다.’라고 말이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인생이 그렇게 풀린 (p.20) 그는 딱지본 소설에서 수십 년을 훌쩍 건너 뛰어 바로 ‘학원사’ 학생문고 쪽으로 한달음에 이른, 이상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생각했다. “아, 글이라는 게 세상을 이렇게 넓게 살도록 하는구나.”(p.21) “이 세상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p.29)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글 읽기’와 ‘글 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깊어지는데, 이 구절이 책을 읽는 내 가슴을 친 구절이라 옮겨본다.

 

‘글 읽기’에 관한 한 나는 황희 정승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p.36-37)

 

이 구절로, 나는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웠고, 자신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이 모두 행복했을지 궁금해했을 이윤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옮긴이 이윤기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두기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스스로 찾아 읽었던 건 아니지만 읽는 내내 행복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로 처음 접한 이윤기의 글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싶어 무척이나 행복해 한 독서였다.

 

조르바의 ‘자유’는 인간의 자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르바는 그리스의 현악기 산투리의 삶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는 산투리조차도 마음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가 아는 한 산투리에게도 자유를 향수할 권리가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연하의 자본가인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p.153)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이런 노력이 있어 나는 조르바가 ‘나’를 ‘두목’으로 부르는 것을 자, 편히 읽을 수 있었구나 싶어서 감사했다.

 

자신을 자유로운 인간의 상징인 조르바와 동일시하며 살아 펄떡이는 말에 유난히 집착하던 언어 천재 이윤기. 그가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작가의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말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책을 보내려니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른다.

이윤기가, 학문의 세계가 아닌, 사람의 모듬살이에서 엿보이는 종교 현상에 대해 쓰고 싶었을 때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던 그 구절, 정민섭 사제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 (p.61)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3년 전에 떠났지만, 그가 쓰고 옮긴 책들은 남아 오래도록 읽힐 것이며, 그는 여전히 소설과 번역과 신화라는 이름의,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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