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소설가 신경숙님이 출연하신 SBS 힐링캠프를 챙겨봤다. 많은 이야기 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고, 여운이 길었던 말은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사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게 ‘엄마’니까. 엄마에게 있어 엄마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거다.

 

엄마에게 엄마가 필요하듯,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잊고 사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로 위로 받고, 이해가 필요한 연령층은 비단 청년만이 아니다. 학업과 연애, 취업으로 고민하는 청년만이 아니라 자식과 건강, 여생에 대해 고민하는 중⋅노년에게도 필요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 『인생 수업』이었다. ‘중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중년인 부모님이 떠올랐으므로, 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당신 혼자 생각하셨을 일이기도 하고, 친구와 만나면 이야기 할 법한 일이기도 하고, 아직 그런 적은 없지만 자식인 내게 터놓고 이야기 하고 싶을 법한 일―현재의 나는 행복한지에 대한 고민, 생로병사에 관한 고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죽음에 관한 고민, 쌓아온 인연에 대한 고민, 여생에 대한 고민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고, 그러한 일들에 대한 법륜 스님의 혜안이 담긴 책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 남편이 어떻게 했든, 아내가 어떻게 했든, 자식이 어떻게 했든, 부모가 어떻게 했든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그 가운데서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p.273)

 

에필로그 속 구절인데, 나는 이 구절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부모님을 비롯한 중년층들은 중년에 이를 때까지 자신이기 이전에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집에서는 자식의 부모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나부터 행복하라’는 법륜 스님의 말은, 나부터 행복해지기 위해 직장과 가정에서의 위치를 내려놓고 자신만을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그것이 그들의 인생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부터 행복하라 말함과 동시에,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한다. 그 조언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이해’가 되고, 때로는 ‘살’이 되어 결국에는 ‘힘’이 된다.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는 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 말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가 주제인지라, 노년을 맞이할 중년과 노년의 삶을 사는 연령층에게 더욱 좋은 책이겠지만, 중⋅노년에 속하지 않는 나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가깝게는 부모님, 멀게는 나의 미래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부모님과 함께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같이 읽고,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당신의 삶 또한 그러하다고, 그러니 기운 잃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라는 말을 전하는 대화를 하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게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에 ‘편(偏)’이 심한 나는, 음악 역시 챙겨 듣는 음악만 듣곤 한다. Original Sound Track, 줄여서 OST라 부르는 음악이 그것이다. 내 생애 첫 MP3플레이어였던 코원의 F1을 구매해서 기기에 처음 넣었던 노래 역시 OST였다. 컴퓨터 하면서 무한 반복해 듣는 OST였지만 좋아라하는 OST를 기기에 넣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고 신났더랬다. 하루는, 장르와 관계없이 드라마, 영화 등 작품에 쓰인 음악이라면 ‘닥치고’ 좋아하는 OST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그건, 음악을 들으면서 그 작품, 다시 말해 음악과 함께 접하는 ‘이야기’가 좋아서 나는 OST를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다. 작품 속 캐릭터, 혹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OST를 들으면 음악은 내게, 좀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들렸으니까. 이렇게 음악을 듣는 나에 반해, 소설 뿐 아니라 수필에서도 매력이 묻어나는 우리의 흑임자 (cf.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김중혁 작가님의 이번 에세이 『모든 게 노래』에 담긴 노래들은 전부 김중혁 작가님의 일상에서 재생 된 노래들이다.

 

유명 소설가 K1, K2와 남쪽으로 꽃을 맞으러 가는 차 안에서 함께 들었던 장사익씨 버전의 <봄날은 간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글 쓰는 재능을 물려주신, 취미삼아 노래 교실에 다니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연자의 노래 <10분 내로>, 음악을 듣는 데 있어 스킵을 멈추게 만든 듀란듀란의 데뷔 앨범, 앨범 제목을 들었을 때 마치 전쟁 때 잃어버린 기분이었던 그룹 얄개들의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독자에게 받은 선물인 ‘Afternoon’의 첫 앨범 《남쪽섬으로부터》중 <해변의 아침> 등등.

 

각각의 사연들을 떠올리면 사연과 함께 한 노래가 떠오르고, 노래를 떠올리면 그 노래와 함께 한 사연이 떠오르는 노래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노래』를 읽고 있으면, 내 인생에서 재생된 노래들이 떠오른다. 럼블피쉬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기억되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였던 공장 아르바이트, 좋아했던 보이 그룹의 멤버 미니홈피 뮤직 플레이어 리스트에 있어서 듣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가수로 손에 꼽게 된 Ra.D(라디)의 노래들, 하나뿐인 친척 언니 결혼식에서 형부가 부른 SG워너비의 <내 사람>, 여러 코드가 잘 맞아 절친한 친구와의 사이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코드 ‘성발라’ 성시경의 노래들, 중학생 시절 18번이었던 Daylight(데이라이트)의 <Daylight> 등등. 때로는 폭풍 공감하고, 때로는 키득거리고, 때로는 좋은 경험이 되는 『모든 게 노래』 속에 실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OST 위주로 음악을 듣는 나지만, 내게도 인생의 21번, 93번, 137번 트랙 쯤 되는 노래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글을 쓰려고 떠올리지 않아도, 내 인생 구석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는 노래들을 말이다.

 

재밌게 챙겨 읽었던 씨네 21 속 칼럼,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와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에 실린 글들이 한데 묶여 나온 이 책은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장으로 묶여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하게 계절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계절은 음악의 스피커가 되어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고, 음악은 계절의 공기가 되어 향기를 더 잘 맡을 수 있도록 해준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몰아치면 늘 듣던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 (p.53)

 

캐롤은 언제 들어도 캐롤이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 들어야 제 맛인 것처럼 음악과 계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벚꽃 흩날리는 봄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듣고, 무더운 여름에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듣고, 낙엽지는 가을에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듣고,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에는 박효신의 <눈의 꽃>을 듣는 나로서는 반가운 구성이었다.

 

소설가 김중혁의 감성을 완성해준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이고, 때로는 고뇌하는 청춘에 대한 위로이며, 때로는 한 소설가의 문학 생활에 대한 지론이자, 때로는 소중한 일상에 바치는 연가인 『모든 게 노래』속 글들을 읽다 보면 정말이지, 인생에 있어 희로애락 무엇이든 노래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모든 게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견뎌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견딘다. 시간의 속도를 더디게 만들기 위해 필름 속에다, 컴퓨터 속에다 풍경을 담는다. 우리는 소설을 쓰고 읽으며 시간을 견딘다. 소설 속에 거대한 시간을 담아 시간의 처음과 끝을 파악하려 애쓰고, 시간을 되돌리고 빨리 흐르게도 하며 시간의 민낯을 보려 애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견딘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모습과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를 화면 속에서 보며 우리의 시간을 잊는다. 그렇게 견딘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견딘다. 아니, 이 말은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운다.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시간을 견딘다. 음악이야말로 가장 짜릿한 마법이다. (p.229)

 

위 구절은 내가 이 책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구절이다. ‘시간’에 관심이 많고, ‘음악’을 좋아하는 작가 김중혁이 전하는, 시간을 견디는 가장 짜릿한 마법인 ‘음악’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만한 글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고,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다른 시간과 공간에 가닿는 방법을 배우고, 그렇게 시간을 견뎌왔고 또 견뎌낼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꼼쥐 2013-11-29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해밀 2013-11-30 0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 - 머플러, 장갑, 모자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북유럽 스타일 겨울 소품 23종
스기야마 토모 지음, 맹보용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더위에 유독 약한 내가 여름을 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저녁에 야구 보면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둘째, 읽는 순간만큼은 시원해지는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 소설. 셋째, 가장 더운 시간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무더운 여름을 버티는 나만의 방법이다. 더위에만 약했으면 좋겠지만, 더위만큼이나 추위에도 약해서 겨울을 나는 나만의 방법 역시 존재한다. 첫째, 온기로 손을 녹이고 천천히 마시는 커피. 둘째, 챙겨보기 시작한 이래로 매년 겨울 챙겨보는 영국 드라마 닥터후 크리스마스 스폐셜. 셋째, 목.도.리. 사실, 겨울을 나는 방법 세 가지 방법이 모두 목도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목도리를 좋아한다. 각기 다른 색상과 재질의 목도리.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지난 해 구매한 목도리를 올해에 두르고 다녀도 전혀 거부감이 없지만, 매 년 사 모으게 되는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드는 목도리를 하고 나와서도 목도리가 진열된 곳을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목도리를 구경하고 있을 정도로 하고 있어도 (저걸 사서) 하고 싶은 게 목도리다. 그래서 이 책 『북유럽에서 온 손뜨개 소품』이 반가웠다. 좋아라하는 겨울 소품인 목도리는 없지만, 목도리를 좋아하는 데에는 ‘겨울 소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그런 겨울 소품들이 23종이나 실려있다. 한 번쯤 떠서 하고 다니고 싶었으나 손재주가 없어서 하고 다니지 못했던 북유럽 느낌의 겨울 소품들.

 

 

노르웨이나 스웨덴, 핀란드 등 눈이 많이 내리는 북유럽 국가의 상징적인 패턴인 노르딕 패턴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기분이 든다. 보온을 위한 소품이다보니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품이 바로 겨울 소품인데, 이 책에서 선보이는 겨울 소품들은 겨울 소품이지만 그리 무거워보이지 않고, 담백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까지. 아이용 겨울 소품이 아니라 성인용 겨울 소품이 담백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뜨개질에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보고, 당장 뜨개질을 시작해봐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전진배치 되어있는 뜨개질 소품 착용컷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책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뜨개질 방법도 세세히 실려 있고 도안도 있겠다 한 번 만들어봐야지 보다는, 나도 이렇게 예쁜 겨울 소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예쁜 소품이면 만들기가 쉽지 않아도 충분히 보람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겨울 소품을 착용하는 데에는 보온을 위한 착용도 있지만, 각각의 겨울 소품이 주는 포근한 이미지, 착용한 사람은 몸이 따뜻해지고 착용한 사람을 보는 사람은 눈이 따뜻해지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스란히, 시간이라 쓰고 정성이라 읽는 그 과정을 거쳐서 아끼는 사람을 위한 겨울 소품을 기꺼이 만드는 것이다. 겨울엔 그 어떤 선물보다 추운 겨울을 버티는 데 힘이 되는 ‘온기’가 최고의 선물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 열한 시 - 120 True Stories & Innocent Lies
황경신 지음, 김원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 여느 날처럼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가 책 표지에 눈이 가서 집어 들고, 책을 펼쳐서 마주한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 덕분에 사 읽게 된 에세이가 있다. 바로, 이 책 『밤 열한 시』의 작가 황경신의 이전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다. 글과 사진, 그리고 황경신만의 감성이 담긴 책 『생각이 나서』를 읽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시간인 ‘밤 열한 시’를 보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더랬다.

 

그랬던 에세이집 『생각이 나서』 그 후 3년 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 바로 『밤 열한 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출간되어 그런지, 가을을 시작으로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며 120편의 글이 네 계절로 나뉘어 담겨있다.

 

가을에는 “언젠가라는 말처럼 슬픈 말도 흔치 않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언젠가이든,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이든. (p.31)” 이라 이야기하고, 겨울에는 “비록 덜 사랑하는 자가 권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 사랑이 행하는 일을 온전히 겪는 사람은 / 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자이다 / 정말 아름다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p.117)” 이야기하고, 봄에는 “그리운 사람을 /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 그것 말고는 다를 도리가 없는 / 봄의 한가운데 (p.169)”라고 이야기하고, 여름에는 “밤 열한 시 /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 어떤 기대를 품어도 괜찮은 시간 / 일어나지 않은 모든 일들에 대해 / 그저 포기하기에도 괜찮은 시간 / 의미를 저울에 달아보거나 / 마음을 밀치고 지우는 일도 무의미해지는 시간 (p.254)"이라 이야기하는 글들과 무심하면서도 감성적인 김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나서』를 읽던 그때처럼 언제, 어디서 읽어도 그 찰나가 꼭 밤 열한 시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론 시 같이 읽히고, 때론 노래 가사처럼 읽히고, 때론 일기 같이 읽히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문득 나의 밤 열한 시가 떠오른다. 어떤 날은 드라마를 보고 있고, 어떤 날은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날은 라디오를 듣고,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어떤 날은 글씨를 쓰고, 어떤 날은 차를 마셨던 밤 열한 시. 열흘이면 열흘 깨어있는 시간. 생각하기 보다는 활동하기 바쁜 시간. 모든 글을 밤 열한 시에 쓴 건 아니겠지만, 내가 밤 열한 시를 그렇게 보내온 동안 이 사람은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은 글이 되었으며, 한 권의 책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새로웠다. 누군가의 밤 열한 시는 이런 시간일까, 하고 말이다.

 

황경신이 말하는 밤 열한 시 같기도 하면서 나만의 밤 열한 시 같기도 한 시간들. 우리는 그 시간들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고, 이별을 생각하고, 기억을 생각하고, 마음을 생각하고, 말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며 매일 밤 열한 시를 보냈고, 보낼 것이다. 밤 열한 시는 그런 시간이니까.

 

p.s. 매 글의 본문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원고지 칸 안에 담긴 글들이었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구절에 빠졌던 그때처럼 간결해서 훅, 하고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그런 글. 원고지 칸 안에 글을 담은 구성이 크게 한 몫 했다. 원고지에 손으로 쓰인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과 글 안의 글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동시에 들었는데, 글의 감성과 구성이 주는 아날로그함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p.s 2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황경신 『생각이 나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던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그 당시 담임선생님이 애니메이션에 무척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셨다. 무슨 시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다. <귀를 기울이면>을 시작으로 그 당시까지 나온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여주셨으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절반은 그 때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라했던 나였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매일 TV에서 방영해주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애니메이션이었달까. 상상했거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상상력 그 이상으로 쉼 없이 펼쳐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애니메이션에 빠져든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봤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내 인생 한 부분을 채웠고, 여전히 살아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발음할 때면 늘 어려워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이어서 기대가 됐던 책이다. 그가 그 만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어떤 소년문고를 읽었고, 어떤 유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책은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 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400여 권 가운데 추천한 50권 한 권 한 권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1부와 자신의 유년과 어린이문학, 자신의 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있다. 이런 책을 추천했구나, 하며 1부를 가볍게 읽고 나서 본격적으로 2부를 읽기 시작했는데, 2부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혼자 날 수 있게 되면 정말 굉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p.38)’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책 <바람의 왕자들> 소개라던가 <마루 밑 아리에티>의 원작이 된 <마루 밑 바루우어즈>에 관한 소개, 비행기의 원시적인 엔진이나 기체에 대해 생생하게 쓰인 책 <플램바즈>에 관한 소개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들을 소개해 준 1부는 1부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책을 읽었구나’하는 정보가 되었다면, 2부는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는 제목의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보는 게 아니라 읽는 느낌이었달까. 그도 그럴게, 처음 책을 만난 무렵이라던가 처음으로 읽은 책, 어린이문학연구회 입회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린이문학은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런 어린이문학이 제 연약한 성정에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p.83)

 

아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p.100)

 

뭐랄까 내 안에 서랍 같은 게 있는 듯했습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무언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p.105)

 

아내가 『고도모노토모』(어린이의 벗이라는 뜻)를 구독해 그 잡지가 집에 꽤 많았는데, 열심히 읽은 것은 어른이었습니다. 어린이책도 꽤 많이 샀지만 아이들이 펼쳐본 흔적은 없습니다. 특히 정성껏 갖춰두면 읽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놓아두면 읽는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입니다. (p.132)

 

솔직히 말하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50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이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p.137)

 

책에는 효과 같은 게 없습니다.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그때 그 책이 자신에게 이러저러한 의미가 있었음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입니다.

효과를 보려고 책을 건넨다는 발상은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히려고 해도 아이들은 읽지 않습니다. (중략)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책만 읽는 아이는 일종의 외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놀면 바빠서 그럴 겨를이 없으니까요.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p.141-2)

 

어린이문학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하고 인간 존재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아이들에게 보내려는 마음이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p.155)

 

2부 중에서 공감하며 읽은 구절을 모아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어린이문학은 그런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고, 아이는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으며, 유년 시절 읽었던 책은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 안에 가득 담겨졌을 것이며, 책은 '갖춤'의 문제가 아니고, 책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게도 그런 책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몇 학년 때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짓말하다 죽은 말 이야기>라는 책으로, 비룡소에서 출판되었고, 말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하체만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이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소설을 즐겨 읽는다.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상상력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와 같은 상상력의 힘을 알게 된 책이었으니까.

 

어제, 그리고 오늘 읽은 책이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야 되돌아보니 효과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지라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내일도 책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이와나미 소년문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채우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그 애니메이션이 내 유년시절을 채우고, 유년시절을 보낸 지금의 내가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책이, 독서라는게 그런 거 아닌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