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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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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

- 헤세의 여행p.7 머리말 중(번역 홍성광)

 

이 구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챙겨봤던 tvN 예능 <꽃보다 청춘> 덕분이었다. 유희열, 이적, 윤상 이 세 사람이 모여 함께 떠난 페루 여행. 세 사람 중 가장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사람은 윤상이었다. 27년 동안이나 술에 의지해왔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술을 끊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윤상. 그런 윤상에게 이번 여행은 단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의 동행이 아닌 장기간 의지했던 술을 벗어나 온전히 자기 힘으로 견뎌내는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상은 새로운 풍경들 앞에서 자주 망설였고, 여행을 함께한 동생들 덕분에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면서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그는 여행을 갈무리하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며, “청춘이란 용기라고 말한다.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었다는 이 책 헤세의 여행에서 헤세가 말하는 여행 역시 이런 여행이다. 그 중 내가 인상 깊어했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p.36)

 

나 역시 일상을 도피하고, 바닥나버린 감성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헤세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면서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날, 그 시각에 그 곳에 모인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한 방을 쓰는 '다른 일상'을 보내면서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구나 실감했던 것이다.

 

낯선 풍경과 도시에서 단지 유명한 것이나 가장 눈에 띄는 것만 추구하지 않고, 본래적이고 더 심오한 것을 이해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파악하려고 갈망하는 자의 기억 속에는 대체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닐 것이다. (p.38)

 

이 구절도 지난 남원 여행에서 경험한 바 있다. 전 날에는 전주에서 경기전이니 향교니 오목대니, 전주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면 다음 날 남원으로 넘어와서는 전혀 새로운 여행을 하기로 감행한 것이다. 친구와 나의 여행에 빠지지 않았던 코드 뚜벅이를 버리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종일 여행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남원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자전거 덕분에 위 구절에서 헤세가 말한 우연적이고 사소한 것이 특별한 광채를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울에 롯데월드가 있다면, 남원에는 남원랜드가 있다며 경험해보라던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말을 믿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간 우리는 남원랜드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되돌아와야 했다. 주말이라 일찍이 영업을 종료했던 것이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남원랜드는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 힘들 정도의 경사지에 있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직접 끌고 올라야 했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내려올 때는 남원랜드에서 타지 못한 놀이기구를 타는 것 마냥 신나게 내리막을 달렸는데, 넓게 펼쳐진 남원의 풍경 위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내 눈에 가득 들어찼다. 지난 여행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소중했다. 그날 진 노을은 여느 날의 노을처럼 사소했고, 내가 그 노을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우연이었지만 그 어떤 것보다 특별했다. 헤세가 단언한 것처럼.

 

부끄럽지만 나는 해외여행은커녕 여권도 없는, 국내여행이 전부인 여행 초보다. 헤세의 여행처럼 낯선 것을 체험하면서 무엇보다 그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시험을 견뎌내보는 여행을 당연히 해보지 못했지만, 이것 하나는 자신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에 몇 번이고 공감하며 헤세의 여행과 같은 여행을 하고 싶다고 얼마든지 꿈꾸는 것을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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