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휴가를 냈다
실은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있어서
도무지 내일 수습할 수 있을지 감이 잘 안온다

휴가를 내고 밖에 있으니 
알라딘에 들어오는 횟수가 현저히 준다
회사에서는 심심하면 새로고침 하면서 봤었는데 ^^


2

내가 꽤 나이브한 이상주의자로 보였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 믿었다

나는 현실을 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장 크다는 광고 업계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하지만 지금 내 현실이 이상과 맞닿아있지 못하다는 것이
도달하고 싶은 이상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건 현실을 모르는 나이브함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3

이틀연속 와인이다
어제 와인을 마셨을 때, 나는 한잔에 붕붕 날았다
콰당콰당 헤롱헤롱

이렇게 와인한잔에 취하다니,
정말 부끄러웠다!

어쩌면 어제는 좀 취하고 싶은 날이었다는 내 마음을
내 몸이 정확히 읽어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나를 격려하기 위해 모여준
고맙고 고마운 올해의 인물들과 마신 와인,
살짝 가벼운 와인이라 세잔이나 마셨는데도 취하지는 않았으나
난 역시 묵직한 와인이 좋다며 ㅋ

오늘 일이 잘 되면, 너에게 올 한해 가장 좋은 일이겠다,그치?
라고 묻는 언니에게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언니를 만난 것만큼 감사한 일일 거에요"

하지만, 나는 오늘,
보여주고 싶던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했는걸

아쉽고, 또 아쉬운 마음 뿐


4

좋아해 마지않는 작가(?) K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뒤로 불륜관계인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L보다 더 심하다는 후문이다

부디 후문이길
도덕적 옳고 그름의 여부를 일단 떠난다 해도,
당신의 이미지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요 흑


5

이음아트는 언제고 찾아가도
참 따뜻하고 좋구나

헌책 여러권을 눈에 찍어놨는데,
손이 무거워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다
얌전히 있어주렴,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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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2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i 2007-11-2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음아트 다녀오셨나봐요. 저도 한 동안 뜸했는데..
조만간 점찍어놓은 연극보러 가는 길에 가보려구요^^

갑자기 작가 K가 누군지 궁금해졌어요. 상상력의 나래를.. ㅋㅋ

웽스북스 2007-11-22 13:14   좋아요 0 | URL
네네
이음아트에서는 책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좋아요
그런데 저는 미안하게도, 새책 구매는 온라인으로 ;;
거기서는 주로 중고책들을 봐요 ^^

1시간이나 이책저책 보다가, 그냥 나온 게 미안해서
다음번에는 가벼운 손으로 찾아가서 살까 해요 ^^
K는 비밀덧글로 알려드릴게요

2007-11-22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2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에 자기소개서를 쓸 때,
나는 '모순'이라는 컨셉에 의거해 나를 종종 소개하곤 했다
내가 완전 모순덩어리다, 하는 거 보면 말되는 게 거의 없다 -_-
앞뒤가 맞는 것도 별로 없다

나는 날씨에 지대한 영향을 받으면서도,
오늘의 날씨에 별 관심이 없다
집에서 나올 때 비가 안오면 우산은 거의 안들고다니고
가끔 보일러 펑펑 틀어놓은 집이 따뜻하다고 옷을 얇게 입고 나갔다가
된통 추운 적도 많았다


오늘 비온다는 소식 있더라,라는 동기의 말에는
그래?

근데 눈올 것 같아요,라는 앞자리 초록별씨의 말에는
하하, 그래요? 난 그런 거 잘 못느껴요-

내가 멍청해서 꼭 닥쳐야 안다, 날씨를-
근데 닥치면 너무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것도 문제


그런데 저녁에 정말 교회 아동부 제자한테 문자가 왔다
눈이와요

회사에 있던 나는 얼른 회의실 창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답장
여긴 안오네, 그래도 고마워 ^^


그리고 잠시 후, 날아온 사내쪽지
밖에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건 사내쪽지니까 맞는거지?
창가로 달려가 눈을 본다
와, 정말 많이 내리는구나, 이런 건 맞아줘야지,

일을 정리하고 퇴근을 준비한다


그러나 우물우물하는 사이에, 눈이 비로 바뀌었다
결국 비를 맞으며 퇴근한 셈

올해 아직 눈은 안맞은거야, 그래 안맞은거야, 라고 하는 순간
코트위로 간간히 덩어리진 것들이 보인다
니들, 눈이니? ㅠ (안쳐줘 안쳐줘)



난 올해의 첫눈을 봤지만,
아직 올해의 첫눈을 맞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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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11-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올해의 첫눈을 봤지만,
아직 올해의 첫눈을 맞지 않았어 2

웽스북스 2007-11-19 23:4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어디서 보셨나요? 저처럼 우울하게 회사에서 보신 건 아니죠?

2007-11-20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20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07-11-20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도 못했습니다.

웽스북스 2007-11-22 00:25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은 그럼 도넛공주님만의 첫눈을 보면 되지요 ^^
 



결국 사람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위로받고,
또 자신도 모르는새 누군가를 끊임없이 위로하며 사는 존재

조경란 낭독회에 누군가 갔다온 글을 읽으니
그녀도 위로를 받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한다
아,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다른 소설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구나


얼마전, 대학 때도 많이 친하지 않았고, 대학 이후에도 연락이 뜸했던
친구 H가 연락을 해 무언가를 제안하면서
내가 쓰는 리뷰들을 읽으며 위로받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며 뿌듯했겠다,라고 말하는 C에게 나는 답했다
아니, 고마웠어

척박한 일상 속에서, 짬을 내 남긴 글들이
그저 자기만족에서 그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다면,
내게 그 일은 뿌듯함을 넘어선, 고맙고 또 고마운 일


나도 모르는 새 그 친구에게 내가 건넨 위로가
또 다른 위로로 변해 나에게 건너왔다



ps

정말이지, 오늘은 곱게 자려고 했는데
이거 또 내일 출근 길에

악! 어제 알라딘에 쓴 글 삭제해야돼, 라며 내 발걸음을 재촉하는 기폭제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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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미 캡춰를 한 알라디너도 존재한다는 사실....=3=3=3=3=3

웽스북스 2007-11-19 09:39   좋아요 0 | URL
프하하 넘기시죠- 얼마면 되겠습니까?

Mephistopheles 2007-11-19 13:45   좋아요 0 | URL
전 알라딘에선 언제나 100원으로 모든 걸 해결합니다.

웽스북스 2007-11-19 16:02   좋아요 0 | URL
땡스투 한번이면 되겠습니까? ㅋㅋ

다락방 2007-11-19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미 읽어버렸어요. 후훗 :)

웽스북스 2007-11-19 10:07   좋아요 0 | URL
4시에쓰고 7시반에지운걸! 대단들하십니다~! 별 내용 없는 거라서 더 챙피하네요 ㅋㅋ

다락방 2007-11-19 11:12   좋아요 0 | URL
앗. 아녜요, 웬디양님.
저는 지금의 이 페이퍼를 없애버린다는 글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디양님의 댓글을 보니 이 페이퍼 말고 다른걸 쓰셨단 얘긴거죠?
그렇다면 못봤으니 안심하셔요 :)

웽스북스 2007-11-19 12:01   좋아요 0 | URL
아아! 전 다들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비돌이 2007-11-1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따 궁금하네요. 뭐라고 썼는지...

2007-11-19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전의 것을 못 읽었지만 그게 뭐든 웬디양님 기분이 바뀌신 것 같으니
좋은 일이에요.^^

웽스북스 2007-11-19 21:06   좋아요 0 | URL
헤헤헤 눈와요! (초단순~)
 



1
간만에 전화를 받았다. 야구소년(상익)이었다. 강남이란다. 커피를 살테니 회사앞으로 잠깐 오라고 했다. 북꼼에서 만나 보드게임하려고 딱 한번 만난 게 전부인데, 그 때부터 살갑게 메신저에서 인사도 잘하고, 조곤조곤 말도 잘 걸던 야구소년,을 거의 9개월만에 두번째 만난 셈.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부러워할 게 뻔한' 야구소년에게, 내가오늘 우석훈 선생님 강의를 들으러 가지롱-이라는 어투로 자랑을 했다. 그리고 이후에 같이 술도 마실 거지롱-을 얘기하다가, 그 모임 주최자인 지승호님에 대해 얘기하게 됐는데, 어라? '승호형이요?'란다. 안지 7년된 사이란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가 시사모에서 활동했던 얘기를 한다. 어어어, 알라딘에도 있어, 승주나무님이라고, 어라? '승주형이요?'란다. 안되겠다. 우석훈 선생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부러워 눈을 반짝이던 야구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구소년, 이따가 와도 되겠네요- 꼭 와요'

2
그런데 늦어버렸다. 이런- 그것도 30분이나 늦어버렸다. 늦으면 밖에 누군가 있어서 안내해주겠지,라고 생각했건만- 알라딘 관계자 분들도 모두 안에서 강연을 듣고 계셨다. 그래, 그러고 싶겠구나, 당연한 걸 생각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흑! 내가 좀 마이 소심하다. 민폐같은 거 끼치는 건 죽도록 싫어해서, 밖에서 못들어가고 15분이나 서있었다. 나때문에 신경쓰여서 강의가 잠깐 흐름이 끊길지도 모른다며, 중간에 쉬는시간이 있을 거라며- 하지만 쉬는시간은 없었고, 누군가 화장실 가기위해 나온 틈을 타 슬쩍 들어가 앉았다. 강의 흐름은 안끊겼지만 역시나 민폐다. 기왕 이럴 거였으면 진작 들어갈걸 -_-

3
강의는 거의 끝나가던 중, '이것만 얘기하고 끝낼게요'라니, 흑! 난 2호선 반바퀴를 돌아서 왔는데 말이다. 질의응답 도중 나이조사를 잠깐 해보니, 20대가 70% 이상이다. 우석훈 선생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나도 선뜻 내 얘기를 하기가 힘들다. 답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았다. 무겁게 책을 세권이나 들고 갔다. 구매리스트에서도 밝혔지만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순전히 사인 받으려고 미리 샀다. 이런 얄팍한! 책 세권에 쓰여진 메시지는 모두 달랐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빛과 같이"
88만원 세대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기를"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명랑, 상쾌 통쾌!

개인적으로 이런 디테일 매우 좋아라한다! ^^

4
시비돌이(지승호님)님과의 인연으로 우석훈 선생님과의 뒷풀이를 가질 수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하시는 얘기의 거의 대부분을 듣는 자세로 앉아있긴 했으나, 워낙 시끄러운 장소에서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셔서 100% 다 듣지는 못해 죄송했다. 그래도 자세만은 말 잘듣는 학생 모드 ^^
들었던 강연 끝자락과 사석에서 들었던 얘기는 88만원 세대 리뷰에 녹여볼까 한다. 물론 다 적을 수는 없겠고, 기억력은 점차 흐려져가는 상황 속에서 아직 뒷부분 조금 더 읽어야 하지만-

다만 인상적인 것 한 가지는

이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과 자신감,
그리고 나 역시 그 믿음이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응원을 보내게 된 것

그치만 나 역시, 누군가, 누구든 잘 싸워주세요, 내가 응원할게요! 라고 말할 뿐
내가 나가서 싸울래요,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20대인걸


5
1차 자리에서 우석훈님 얘기만 듣느라 난 고개를 옆으로 돌릴 새도 없었다. 얘기해보고 싶었던 다른 분들과 얘기하지 못한 게 아쉬워 늦은 시간임에도 따라간 2차, 하지만 난 거기서도 방청객 모드ㅋ 그러고보니 그날 계속 방청객 모드였구나

우석훈 강연회 방청객
우석훈 대담 방청객
무한주사 방청객 ㅎㅎ

집에 '금방 가요'라고 말한지 1시간 30분 후 먼저 일어나 집에 오니 새벽 3시다. 신촌에서 택시를 타고 온 건 처음- 택시비가 3만원 가까이 나오는구나 하하하! (신기록 달성) 조용히 들어가 화장도 안지우고 옷도 안갈아입고 바로 쓰러져 잤다는 충격적으로 쪽팔린 사건 (안쓰면 그만인 것을 쓰는 건 또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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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2007-11-19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님의 강의 다녀오셨나봐요.. 저도 기회가 되면 꼭 만나뵙고 싶은 분인데.. 왕부럽네요. <88만원 세대>는 저에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책이었어요.

웽스북스 2007-11-19 01:20   좋아요 0 | URL
네, 알라딘에서 주최한 강의에 기회가 되어 다녀왔답니다. 하니님 반가워요! (하니님 서재에서 친한척 해놓구 슬쩍 뻘쭘해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

순오기 2007-11-1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용~ 전 수능 끝낸 딸이랑 가고 싶어 신청했는데, 광주라고 안 뽑아줬나 봐욧~씩씩! 스케쥴 바꿔서라도 갈려고 그랬는데... 하지만, 님의 후기로 맛보기합니다!

웽스북스 2007-11-19 03:40   좋아요 0 | URL
스케줄 바꿔서 갈겁니다, 라고 우겨보시지 그러셨어요 ^^ 제가 후기를 더 상세히 올렸으면 좋았을걸, 어쩐지 자기중심적 후기를 남긴 것 같아 죄송하네요

마늘빵 2007-11-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3만원씩이나 나와요? 어휴. 그냥 밤새시지 하하.

웽스북스 2007-11-19 12:02   좋아요 0 | URL
다음날 일정만 없었어도, 부모님의 압박만 없었어도
그러고 싶었답니다 정말 ㅠㅠ

다락방 2007-11-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도대체 88만원 세대가 뭐길래 다들 이렇게 극찬하는걸까요. 저도 이참에 살짝 읽어봐야겠어요. 아울러 웬디양님의 리뷰 기다릴게요.

웽스북스 2007-11-19 12:02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언제 올라올지 아무도 몰라요 ㅋㅋ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 챕스틱(립케어제품을 통칭해 나는 이렇게 부른다. 마치 스카치테이프나 포스트잇 부르듯 ㅋ)을 왜 바르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핸드크림도, 스킨로션도- 핸드크림은 20대 중반이 지나서 바르기 시작했고, 남들 다 갖고 있는,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어진다는 존슨즈 베이비 스킨/로션 같은 건 왠지 나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있었으나 잘 쓰지는 않았다. 새스고딘이 말했지,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존슨즈베이비로션은 나를 끈적끈적하게 했지, 뭐 그닥 깨끗하거나 맑거나 자신있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챕스틱도 마찬가지다. 애들이 바르니까 따라 사보고, 또 따라 발라보고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입술에 뭐든 바르는 게 금지되던 시절, 챕스틱은 나름 '화장품'이 아닌 '의약품'이기에 '정당하게' 바를 수 있음에도, 바르는 행위 자체가 화장을 하는 느낌이어서, 그 재미를 즐겼던 것 같다. 이런 챕스틱 중에는 빨간 물이 들어가 있는 것도 있었는데, 잔잔히 드는 그 빨간 물이 얼마나 갔겠는가. 그럼에도 그렇게 잠시 입술을 붉게 만들어보는 것이 주는 묘한 쾌감 같은 것도 있었다. 어른 흉내를 내고 싶던 학생의 발악인가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챕스틱을 사지 않았다. 이제 더이상 챕스틱으로 어른 흉내를 낼 필요는 없었다. 반짝반짝 입술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챕스틱의 붉은기와는 비견할 수도 없는 립글로스가 있었으니까. 물론 챕스틱도 몇번 산 적이 있지만 끝까지 쓴 적은 없다. 바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챕스틱을 바르기 시작한 건 올해다. 아! 챕스틱을 발라주지 않으면 이렇게 입술이 파싹파싹 마르고 당기는구나, 라는 느낌을 올해 알기 시작한 거다. 늦은 건지도 모르겠다. 스킨을 안바르면 피부가 당기는 건 스물 서너살쯤 알았고, 핸드크림을 안바르면 손이 당기고 답답한 건 작년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핸드크림 한통을 다 써봤다. 알지 못하던 느낌들을 알아가는 이 느낌이 썩 기쁘지만은 않구나, 이런 건 앎의 즐거움으로 쳐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점점 알아가는 건 늘어만 가고 있다.

N사의 립케어제품 관련 설문조사를 하면서, 중고등학생과 20대의 결과를 비교해보니, 립케어제품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보습력이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의 경우 보습력만큼 중요하게 보는 게 바로 '색깔'이었다. 20대 이상에게 색깔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더이상 챕스틱의 희미한 붉은 빛은 20대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대신 잦은 화장품 사용으로, 건조하고 갈라진 입술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고려 요소는 50% 이상이 무조건 보습력! 그러고보니 나도 나이들어 다시 챕스틱을 사면서 무색무취에 무조건 입술 뽕뽕하게 수분 꽉 채워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제품을 선호하고, 조금 가격을 더 치르더라도 그런 것들을 고르게 된다. 10대의 구매 희망 제품과 20대의 구매희망 제품은 모두 N사였으나, 10대는 니베아, 20대는 뉴트로지나였다. 니베아 챕스틱은 붉은 틴트끼가 살짝 들어가 있는 제품도 있지만, 뉴트로지나의 경우 압축해놓은 바세린같다. 그야말로 의약품스럽다. 나는 심지어 그보다 보습력이 더 좋은 제품을 쓰고 있다. 특히 겨울이 되니 입술이 벽돌같다. 주위에는 입술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팽팽해지고 빵빵해지는 듀왑 제품을 즐겨 쓰는 사람도 많다.


생각해보니 모든 화장품들이 자유롭게 주어진 지금보다, 챕스틱의 희미한 붉은 기운이나마 잠시잠깐 즐기며 어른 흉내를 내던 그 때가 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챕스틱의 영양가에 기대지 않아도 촉촉하고 부드럽던, 듀왑같은 제품으로 억지로 후끈거리게 만들지 않아도 팽팽하고, 립글로스의 끈끈함을 더하지 않아도 반짝반짝하고 불긋불긋한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가 아름답다는 걸, 아직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나이라는 걸, 화장품에 기대기 시작하면 기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걸,  괜히 어른들이 부러워 문구점에서 파는 2000원짜리 립글로스를 쓰는 건 입술 망가지는 지름길이라는 걸,

이제 수능이 끝나고 조금씩 멋내기에 맛들이기 시작할 풋풋한 아가씨들에게 꼭 얘기해주고 싶다



ps 어제 이 글을 쓰다가 또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교회에서 중고등부 애들을 보는데, 입술밖에 안보여, 아 예쁘다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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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1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에는 입술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팽팽해지고 빵빵해지는 듀왑 제품을 즐겨 쓰는 사람도 많다."

아하하하...대체 그 제품엔 뭐가 들었기에...^^

웽스북스 2007-11-18 16:58   좋아요 0 | URL
뭔가 매운 향신료같은 성분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암튼 매운 음식 먹었을 때처럼 입술이 후끈해지는 느낌이 퍼지면서 입술에 잔주름이 펴지고 부어올라 빵빵해지죠- 입술에 볼륨감 없는 사람들의 로망? 막이러고 ㅋㅋ

이매지 2007-11-1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듀왑은 전 기분 나빠서 못 쓰겠더라구요 ㅎㅎ
한 번 샘플로 발라본 적 있는데 입술이 아프더라는 ㅠ_ㅠ
전 니베아꺼 써요.
뉴트로지나는 정말 의약품스러워서 되려 더 찝찝한;;

웽스북스 2007-11-18 19: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지금, 10대에 가깝다고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ㅎㅎ
좀더 나이가 들어서 입술이 더 쩍쩍 갈라지거든 바디샵 비타민E 라인 립케어 제품 써봐요, 완전 좋아요- 난 그나이 때 아무것도 안발랐어요 ㅎㅎ 나이들면 정말 입술이 막 땡겨요 ㅠㅠ

마늘빵 2007-11-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저는 약국에서 파는 챕스틱 쓰는데.. -_-a

웽스북스 2007-11-19 00:03   좋아요 0 | URL
구매경로 1위는 '약국' 맞더군요 ㅎㅎ

라주미힌 2007-11-1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옆의 여인의 입술에서 좋은 향이 나면 맛이 궁금하다는 ㅡ..ㅡ;;;
특히 딸기.. 흐흐흐

웽스북스 2007-11-19 00:03   좋아요 0 | URL
딸기맛이 날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ㅎㅎ

마늘빵 2007-11-19 11:54   좋아요 0 | URL
이 댓글 미묘하게 야한데요? ^^

웽스북스 2007-11-19 12:03   좋아요 0 | URL
야하긴 한데, 미묘하다기보단 좀 대놓고 야하지 않나요? ㅋ
라주미힌님께 딸기향 챕스틱을~!

라주미힌 2007-11-1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향.. 딸기맛이 아녜요? ㅡ.,ㅡ;;;
초코향도 있던거 같던데..

웽스북스 2007-11-19 16:01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챕스틱으로는 향이 퍼지는 정도지 달달한 맛까지는 느끼기 어렵구요~ 정 '달달한 립제품의 맛'을 느껴보고 싶으시면 랑콤의 쥬시튜브 계열 쪽이 향도 맛도 괜찮은 편입니다 ^^ 마침 제가 쓰는 쥬시튜브가 살짝 달달하게 초코 비스무레한 맛이 나는 제품이니 원하신다면 담번에 뵐일이 있을 때 새끼손가락에 조금 짜드리겠습니다 ^-^

프레이야 2007-11-19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향 챕스틱, 저 쓰던 것 어제 작은딸한테 줬어요. 입술이 텄다고 그래서요.
이제 정말 향이나 색이 없는 입술보호제가 좋던걸요. 진한 립스틱도 싫고..
그래서 립글로스만 바르는 편이죠. 아무것도 안 바른 큰딸의 깨끗한 얼굴이 참
이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웽스북스 2007-11-19 21:25   좋아요 0 | URL
저도 립스틱은 사본 적이 없어요, 누가 줘도 5번 이상 발라본 적도 없구요~
립글로스가 좋아요~ 흐흐
아무것도 안바른 그얼굴 참 예쁜때죠

아, 오늘 화장 다지워진 내얼굴, 가리고 퇴근해야지 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