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바람이 불면서, 와인이 각광을 받고 있다. 명절 때 선물로도 자주 이용되고, 특히 여자들이 많이 낀 조금 격조 있는 모임에서는 와인을 보편적으로 활용하려 드는 것 같다.

그런데, 어딜 가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난다.

"역시 와인은 프랑스가 최고야!"

물론 수백가지 와인을 다 음미해 보고 나서 그런 결론을 내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만나본 사람들은 와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단지 주워들은 말과 '프랑스'라는 문화강국의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와인은 대서양 연안의 석회질 성분이 강한 토양에서 자라므로(보르도가 대표적 산지) 단맛이 적고 알코올 도수가 높으며 뻑뻑하고 무거운 맛이 나게 마련이다. 껍질째 갈아 넣는 레드와인 품종이 많은 것도 특징의 하나.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 와인 예찬론자 가운데 평소에는 달콤한 술이나 단 음식을 즐겨먹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도 당연히 달콤한 와인(독일 리슬링이라든가 이탈리아산 레드)을 좋아해야 하는데, 그런 '2류 와인(?)'을 좋아한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용납하지 못하니 자연히 그런 모순된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행태는 문화사대주의의 일종이며 허영심에서 나온 선언이다.

웃기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와인 소비량은 계속 늘고 있지만 프랑스 와인의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칠레나 호주, 남아공 같은 신흥 다크호스들이 고품질의 맛있는 와인을 적정가에 공급하는 데 반해 프랑스 놈들은 이름값만 믿고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니 장사가 되겠는가? 그 위기를 일본이나 한국의 헛똑똑이 와인 매니아들이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보졸레 누보 판매량의 80%가 한국과 일본 몫이래나 뭐래나...

만일 다음에 누군가 "역시 와인은 프랑스가 최고야!"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한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 그래요? 그럼 백세주나 매취순보다 깡소주를 더 좋아하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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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6-1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과 밤에 간단하게 맥주 한병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느날부턴가 맥주는 배가 부르다는 이유로 포도주를 먹게 되었죠. 제 입엔 미국산 콩코드의 달콤한 포도주가 맞더군요. 값도 싸고 쥬스처럼 달고, 하지만 단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프랑스산을 애호합니다. 님의 말대로 포도주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먹던 것만을 계속 먹게 되더군요. 좋은 술 있으면 추천 바랍니다.

verdandy 2004-06-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큰일났네... 남편 분께는 제가 이런 말 했다는 말씀 마시구요...^^

달콤한 것 좋아하신다면 우선 남아공산 St. Anna(내추럴 스위트 화이트와인)을 권합니다. 홈플러스에서밖에 못 보았습니다. 그외에 독일산으로 리슬링(Riesling : 병 표면에 품종이 표기되어 있음)류는 무엇이든 알싸하게 은은한 단맛이 나구요, 뉴질랜드산 White Cloud는 병 모양이 예뻐서라도 땅기는 와인입니다. 이탈리아산 Riunite는 전반적으로 다 괜찮지만 종류가 꽤 여러갠데(모두 달콤합니다) d'oro 나 lambursco 라 쓰인 것이 가장 맛있습니다.

언제 기회 되면 와인 이야기도 좀 자세히 쓰겠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 기성세대의 행태 가운데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회식만 했다 하면 2차, 3차를 끌고가는 버릇이었다. 처음엔 얌전히 이야기만 주고받지만,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꼭 이런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야, 오늘은 내가 쏜다! 2차 가자!"

그리고는 누군가 먼저 가겠다고 하면, "아~이 참, 거 일찍 가서 뭐 하려고 그래?" "알았어~ 내가 싫다 이거지!" 따위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자신이 낸다는 사실이 곧 사람들에게 뭔가 큰 것을 베푸는 일일까? 나는 이런 행태가 사실 큰 결례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가진 유일한 자원이자, 삶이라는 도자기를 구워내는 고령토와 같은 원재료이다. 회식이나 모임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잠시 중단하고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느끼기에 그 자리가 기분이 좋고, 누군가와 더 있고 싶다면 당연히 이렇게 말해야 되지 않을까?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향기를 더 맛볼 수 있게 귀한 시간을 좀더 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바로 접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말한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차마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시간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다. 타인의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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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팩 초프라가 들려주는 풍요로운 삶
디팩 초프라 지음, 김은정 옮김 / 경성라인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구성은 아주 특이하다. 1부는 알파벳 A에서 Z까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가운데 영적 의미가 풍부한 단어를 매치시켜 놓고, 그 의미를 한 페이지씩 부연 설명하는 방식이다. 2부는 우주적 풍요로움의 근원인 통일장(Unified field)의 25가지 성질에 대해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간단히 해설을 붙여 놓았다. 굳이 25개를 고른 것은 알파벳 수자와 형평을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번역자가 정신세계 방면의 이해가 부족한 듯, 본래는 함축적이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이 넘쳤으리라 생각되는 표현들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현학적 미사여구로 둔갑해 있다. 2001년이면 그리 오래 된 책도 아닌데, 역자의 약력을 찾을 길이 없다. 제발 이런 책은 영어를 좀 못 해도 마음공부와 관련된 사람에게 번역을 맡겼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N자에 해당하는 영적 어휘는 원래 saying No to Negativity이다. '부정적 마음을 떨쳐버리기'라 표현하면 될 것을 "무관심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나타냅니다."로 번역해놓았다. 대표적인 마구잡이 직역에 준오역이다. 이 문자에 대한 아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은데...

  무관심에 대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당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킵니다. 당신 스스로 사랑과 자양분으로 울타리를 치고, 당신의 환경에 부정성이 생길 여지는 만들지 마십시오.

여기서 밑줄 친 문장은 "부정적 마음을 떨쳐버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앞뒤 문맥만 보아도 negativity가 '무관심'이 아니라 '부정적 사고, 마음'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엉뚱한 의미로 연결지어 놓으니 이상한 경구가 되어버렸다.

이런 점 때문에, 원문의 시적 아름다움(보지는 못했지만, 예상하기로)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별을 세 개밖에 줄 수 없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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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6-1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디팩 초프라를 참 좋아합니다.
이런 책이 있다는것도 처음 알아서 주문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말고 번역된 다른 책이 없나 찾아봐야겠네요.

verdandy 2004-06-1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책 중에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목부터 확 땅겼는데,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절판이 되어버렸더군요. 그런데 얼마전에 도서관에 가서 보니 <더 젊게 오래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나온 책이 그 책 개정판이라고 하더라구요. 마음공부 책이라기보다는 초프라의 본래 직업(의사, 대체의학)에 관련된 전문지식(음식 영양소 도표 등)이 많아 살까 말까 그냥 다시 한번 빌려보고 말까 하고 있습니다.

혜덕화 2004-07-0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젊게 오래 사는 법은 제가 읽었는데, 사서 보는 것보다는 빌려 읽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내용이 대부분 "마음을 과학한다"에 있는 내용이고 요가 동작이라든가, 건강의 전반적인 부분을 대충 건드려 놓은 거라, 우리가 상식의 수준에서 들었던게 많거든요.
그런데 그 책 앞부분에 인간의 인체를 파장의 원리로 그려놓은게 있는데-수천년전 베다에 그려져 있었다던가?- 그 그림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인간이 서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말, 말로는 이해 되었는데 시각적으로 보니 놀랍더군요. 그 그림을 꼭 찾아서 보기시를......

verdandy 2004-07-0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도움 말씀 감사합니다. 전 사실 요즘 <마음을 과학한다>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 말을 어렵게 쓴 건지, 과학 책이 눈에 안 익은 건지...^^

darcpond 2004-07-0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과학이 세상을 ~ 에 관한 리뷰를 따라 여기 저기 읽어 보다 여기까지 따라 왔네요.
이책 저책 따라 읽게 될 것 같군요. 참 세상이란 이리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어찌
유기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드는군요. 좋은 날들 되십시오. ~
 

아침에 눈이 좀 일찍 떠진 관계로, 목욕을 하고 나서도 느긋한 마음으로 차 한잔을 하며 명상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던 것이 오늘은 어쩐지 어머님이 주신 자스민차 쪽으로 손이 갔다. 그런데... 자스민차를 마시면서 해 보니 몸이 더 개운하게 느껴진다. 잘 잤기 때문일까, 차 때문일까...

중국 여행을 하면서 경탄했던 것 중의 하나가 그사람들 어떻게 저리도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식을 먹어대면서 살찐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중에 북경에서 알게 된 어느 중국통에 의하면 모든 차에는 강력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상품화된 항목 중에 감비차(減肥茶)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건 모든 차에 공통된 효능을 특히 강조한 것일 뿐,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 지방 분해 효과가 탁월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사실을 들은 뒤, 예전에는 쓰게만 느껴졌던 자스민차가 향기롭고 아련한 단맛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단맛에 너무 중독되어 있어서, 차의 쓴맛 혹은 있는 듯 마는 듯 하는 숨겨진 뒷맛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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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06-16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커피대신 녹차로 바꾸고 있는 중인데,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니 저처럼 빼빼한 사람은 고려해봐야 겠네요. 그래도 녹차를 먹고나면 입안에 남는 향기가 참 좋아요.

verdandy 2004-06-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비효과가 정확히 어떤 성분과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탄닌(쓴맛)과 비례한다고 보면, 은은한 녹차는 괜찮지 않을까요?^^
 
클림트 - 에로티시즘의 횃불로 밝힌 시대정신 재원 미술 작가론 7
이주헌 지음 / 재원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월드컵 때는 고흐가 인기더니, 요즘은 클림트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5년쯤 전인가... 미술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클림트에 미쳐 있었다. 이 책은 1998년 12월에 나왔고, 그 친구를 만났던 것은 1998년 9월이었으니, 그 친구가 책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클림트풍을 좋아하는 것이 이 시대의 기호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클림트의 화풍을 싫어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음침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이란 내면의 영혼을 반영하는 것이니 나로서는 클림트의 정신세계에 친근감을 느끼기 못하겠다. 다만 요조숙녀적인 이미지만을 인정해 왔던 19세기말 20세기초의 사회 분위기에서 그때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음 에너지의 다른 측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것, 즉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클림트에 대한 나의 기호를 떠나 이 책은 제법 잘 된 저술이라 생각된다. 작품과 화풍을 평면적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 클림트의 사생활과 정신적 측면을 주목하고, 그것이 작품 속에 어떻게 현현되었는지를 연결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말로만 떠벌인 것은 아니며, 대표적인 작품들을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필요한 만큼 집어넣어 교양서로서 대중이 딱 이해하기 쉬운 선에 도달한 것 같다.

다만 '학부 회화'는 전체 그림을(뚜렷이 보이지 않더라도) 실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클림트의 작가론이긴 하지만 빈 분리파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이 있었으면 싶다.(대표적인 다른 화가의 이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표지를 대표작 대신 클림트의 사진으로 대체한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실패한 선택 아니었나 하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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