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빈티지 로망스
바버라 호지슨 지음, 노지양 옮김 / 북노마드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전도연이 주연한 <내 마음의 풍금>(1999)이 떠올랐다.

지금은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명품 배우가 되어버렸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그녀는 오히려 ‘청순’과 ‘순수’의 아이콘이었다.
(최초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가 그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낡은 곰인형, 바늘 튀는 LP판, 조개탄을 때는 교실 난로, 우그러진 양은 도시락……
정말이지 지금은 오히려 이국적으로까지 느껴지는 60~70년대의 소품들이 화면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따스한 영화였다.
<내 마음의 풍금>의 영어 제목인 The Harmonium in My Memory는
<마이 빈티지 로망스>에 부제로 붙여도 근사하게 어울린다.
(읽어보고 나면 아마 이해가 갈 것이다.)


<마이 빈티지 로망스>는 그렇게,
얼핏 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기에 수많은 스피드 여행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이에 놓쳐버린,
그러나 가을밤 한 잔의 커피와 황금색 호롱불을 앞에 두고 살며시 꺼내볼 때 왠지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정겨운 물건들과 그에 얽힌 추억을 담고 있다. 


희미하게 결이 진 모래색 본문 용지나, 늦가을 분위기가 나는 클래식 밤색 표지,
타자기 폰트로 박아넣은 금박 제목이 모두 그런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누군가에게 격조 있는 선물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usco 2000
쿠스코 (Cusco) 연주 / 지구 / 1992년 1월
평점 :
품절


운전할 때 보통은 KBS 1FM을 듣지만, 곡이 별로 마음에 안 들거나 뭔가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할 경우는 꼭 이 음악을 듣는다.

내가 안데스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LP로 듣게 된 폴 모리 교향악단의 음반에서였다. 첫 곡이 영화 <대부> 주제가였던 레이블이었는데, 서너번째쯤에 El Condor Pasa가 있었다. 한귀에 반해버린(이런 표현 있나...?) 뒤 이런 음악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는 팝과 가요, 클래식만이 존재하던 시절, 소원이 이뤄진 것은 2000년대도 한참 들어서였다.

요즘은 KBS 1FM에 아예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고정 프로그램이 있고, 이런 음악들을 가리켜 따로 '월드뮤직'이라 한다.(물론 내용을 뜯어보면 정확한 표현으로는 제삼세계 음악이라고 하는 게 맞다) 참 격세지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에 행복해하곤 한다.

그런데 쿠스코 음악들은 단순히 월드뮤직, 민속음악의 재발굴이 아니라는 데 또 매력이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 전통문화 가운데 어떠어떤 게 어떠어떤 점에서 아름답다는 지적을 할 때 가끔 우리를 놀래키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그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국외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볼 때 새로운 매력이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 쿠스코는 안데스 현지인들이 아닌 안데스음악에 미친 독일인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유럽에서도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족의 젊은이들이, 가장 정열적이고 정서적인 스페인 식민지로 수백년간 라틴문화의 세례를 받아왔던 안데스에 찾아가 그들의 음악에 빠져든다... 이건 굉장한 장점이다.

그래서 쿠스코의 음악들은, 내가 느끼기엔 실제 정서보다 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색채를 띤다. 서양인들이 중국 공예품이나 일본 선에 대해 무지하게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른 레이블과 달리 제목이 아프리카적 정서를 암시하는 곡들이 많은데,  나는 여전히 안데스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 1번, 4번, 5번이 특히 매혹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NNI(야니) - Live At The Acropolis
야니 (Yanni)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1994년 3월
평점 :
품절


길게 찰랑이는 흑발, 멋진 콧수염에 다정한 미소의 상당히 제비스러운 뉴에이지 뮤지션, 야니의 대표작이다. 1993년 9월 25일 고대 아네테 극장 유적에서의 실황이라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못할 음색이라 그런지 청중의 박수소리도 묘하게 마음을 흔들고, 감동이 더한 것 같다. 뮤직비디오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그날 밤 잠을 못 자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야니는 뉴에이지 음악가들 가운데서는 가장 대중적인 축에 든다. 전자악기를 채용하는 비중이 높은 것도 그렇고, 실험주의적 기법이 적고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좋아한다는 점도 그렇고...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TV드라마에서 야니 음악을 채용하는 경우도 참 많을 거라 생각한다. 전혀 귀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달콤한 분위기를 내기는 딱이니까.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신적 깊이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에(이 점이 같은 그리스 뉴에이지 뮤지션인 크리스 스피어리스와 차이나는 부분 - 개인적 취향) 썩 즐기면서 음반들을 모두 찾아 듣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는 그의 다른 레이블에 비해 토속음악적 분위기가 강하다. 야니가 고향을 떠난 지 20년만의 귀국 리사이틀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그랬을까? 그리스 전통악기 부주키를 사용한 것도 그런 맛이 난다.(부주키 음색만으로는 약간 중동풍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6번(One Man's Dream)이 가장 좋고 1번(Santorini)도 마음에 든다.

근대올림픽 108년만에 그리스에 돌아온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 아름다운 사람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설레임을 안고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rystian Zimerman - Rachmaninov: Piano Concertos Nos. 1&2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작곡, Krystian Zimerman / 유니버설(Universal)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이 라흐마니노프 2번이라고 하더라. 그건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았을 게다. 그만큼 멜로디가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클래식 매니아들이 아니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곡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연주에 대한 분석은 이 아래 mannerist님의 리뷰가 너무나 훌륭하여 굳이 더 보탤 것이 없겠다.(피아노 전공자인 듯?) 다만 논리적 접근 위주인 책과 달리, 음악이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니만큼, 간식으로 즐기는 수준의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감히 새 리뷰를 끄적대기로 했다.

내 취향은 매너님 분류에 따르자면 전형적인 '무거운 터치를 싫어하고 아름답고 영롱한 소리를 좋아하는' 그룹이다. 사실 짐머만을 좋아하게 된 것도 쇼팽 협주곡을 듣고서부터니까(아바도와의 협연 음반이었던가?) 라흐마니노프를 쇼팽처럼... 그거 딱이다.

라흐마니노프 2번을 처음 접한 건 라자르 베르만 연주였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서주부의 묵직한 발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리히터와 호로비츠는 그보다 좀 낫긴 했지만, 라흐마니노프를 너무 '대륙적' 정서로 해석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런데 짐머만은... 듣는 순간에, 아하, 이렇게 라흐마니노프를 해석할 수도 있었네 하고 감동 먹었다. 마치 얼음 위를 피겨스케이터가 도약하듯이 경쾌하게 통통 튀면서도 힘을 실어보낸다. 유연하지만 경박하지 않다.

그래서 연주자까지 가려가며 듣는 수준이 아닌, 클래식 입문 수준의 사람들에게 라흐마니노프 2번 연주로 단연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