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에피소드로만 남을 일일지 모르지만... 며칠 전 59명의 국회의원들이 간도협약 무효화 결의안을 제출한 적이 있었다.

간도협약이란 1909년 조선통감부가 청 정부와 협약을 맺어 간도에 대한 소유권을 (청으로) 확정지은 조약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일본제국이 한반도 강점기에 맺은 모든 불평등조약을 무효화했으니, 간도협약 자체도 원천무효라는 주장이다. 이론으로만 따지자면 참 맞는 말이다.

자, 그런데 국제질서가 맞는 말대로만 돌아가나? 인민해방군 225만명에 대륙간 핵탄두를 450기나 보유한 중화인민공화국이 간도를 돌려준다? 말이 안 되지. 그럼 협상이나마 할 수 있나? 그것도 절대 아니다. 그럼 뭐 하러 이런 짓을 해서 중국을 자극하는가? 어리석은 발상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벌어진 배경은 바로 그런 한국인들의 Pan-Koreanism에 대한 과민반응이었다. 그 거대한 국가가 한국과 북한이 통일되고 나서 연변의 조선족에게 영향을 미칠 게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이었다. 중국은 분명 심리적으로 쫒겼다.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주장조차 못 하고 뒷구멍으로 작업 들어가다 들키니까 쉬쉬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측에서 대응한 묘수 가운데 하나가 대만과의 직항로를 12년만에 개통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을 다룰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신을 공격하지 말고 실리에 타격을 주어야 한다. 그들은 자존심이 강한 인간들이라, 간도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게 아니라, 명분에만 치우친 대응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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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yosae 2004-09-1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북공정의 대표적인 학자인 쑨진지孫進己는 그이 저서 <동북민족원류>에서 발해 지도를 당과 5대10국 사이에 위치시켜 중국 역사의 일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의 의도는 일단 한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을 한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서구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동북아 3국의 역사 기술의 기본 텍스트로 중국의 사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국어를 필수로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잠시도 현실의 눈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 까지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가운데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베트남 뿐입니다. 나머지 국가는 중국의 거대한 물결 앞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에서는 화교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중국이 그토록 만주의 문제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가는 역사적인 저항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이 저항성을 포기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verdandy 2004-09-1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요새님의 방문을 환영하며, 좋은 코멘트 남겨주신 데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간도 문제를 별개의 사안이라 보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동북공정을 주도한 중국인들의 방어적 의식에 간도협상과 2백만 조선족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지적한 것뿐이지, 이 두 가지가 같은 맥락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구려는 이미 1300년 전에 망해서 사라진 실체입니다. 따라서 고구려가 한국사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좀 찝찝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지배질서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외교적 혹은 학술적 노력에 의해 바로잡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간도 문제는 사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선 내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땅이란 말입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 아예 국제법상 영토분쟁의 제소 시효가 100년이라는 것을 거론하면서 2009년 이전에 이 문제를 이슈화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더군요.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령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간도가 한국 땅이라 판결한다면 그들이 간도를 순순히 내놓겠습니까? 안 내놓으면 무력으로 특전사를 파병해서 간도를 점령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대응책이 없는 사안에 대해 명분론적 선언을 자꾸 내세운다면 한중관계의 마찰과 반한감정의 대두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결국 피를 보는 것은 한국 쪽입니다.

저는 지금 간도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은 명나라를 도와 청에 대항하자던 인조 시기 서인정권의 실책, 강희제 융성기의 청을 상태로 북벌을 벌이자던 효종 시기의 무모함,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가 강화도조약으로 더 큰 피해를 보고 식민지지배로 빨려들어갔던 과거사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